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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9일 10시 59분 등록

서양의 지혜


B. 러셀 지음, 이명숙, 곽강제 옮김, 서광사, 1990.


1. 저자에 대하여


■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 ■

출생/사

1872.5.18 영국 웨일스 몬머스셔 주 / 1970.2.2. 귀네드 주

 

•활동 분야

철학자, 수학자, 사회운동가

 

•발 자 취

•저 서

1872. Wales의 Trelleck 귀족 집안에 출생. 조부, 자유당 수상 역임

철학이란 무엇인가(1912) 철학의 문제들(1912)

1875~1890(18-23세) 3세에 부모를 여의고 조부 댁에서 자람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1916), 수리철학의 기초(1919)

1895. Cambridge대학의 Trinity College에서 수학과 철학 전공

러셀 북경에 가다(1922), 상대성 이론의 참뜻(1925)

1911.  Royal Society 회원

러셀의 자녀교육론(1926), 우리는 합리적 사고를 포기했는가(1928) 

1940. New York 주립 대학 초청 교수의 부임 좌절

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 결혼과 성(1929)

1950. 노벨문학상 수상 <권위와 개인>

러셀의 행복론 / 행복의 정복(1930) 게으름에 대한 찬양(1935)

1951.  Oder of Merit 수상

종교와 과학(1935), 권력(1938), 의미와 진리의 탐구(1940)

1959. 핵무장 반대 운동

러셀 서양철학사(1945), 인간과 그 밖의 것들(1948)

1955. Einstein-Russell Manifest 발기

권위와 개인(1949), 반속적 에세이(1950), 서양의 지혜(1959)

1965. Labour Party의 당원

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1959), 사실과 허구의 교차로(1961)

1966. Vietnam Tribunat 창설

인류에게 내일은 있는가(1961), 러셀자서전/러셀의 철학노트(1969)


……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

……

<사진:알라딘>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 버트란트 러셀의 생애


 러셀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자 저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지성은 철학을 넘어 그의 저작에까지 이르러 그를 문학가에게 수상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만들어 주었다. 러셀은 1950년 권위와 개인이라는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그는 작가이기보다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이었던 사람이다. 아니, 윤리학, 사회학, 교육학, 역사학, 정치학, 논쟁술 등에 관한 40 여 권 이상의 책을 썼으니 대단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1872년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에서 보듯이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3rd Earl Russell은 귀족 가문, 백작의 작위를 물려받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존 러셀은 빅토리아 여왕 시절 두 번의 총리를 지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러셀은 할머니 손에서 자라야 했다. 그의 부모는 일찍 사망했고 1878년에 할아버지 존 러셀도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할머니의 특별한 교육방침과 원칙이 러셀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삶의 원칙이 분명한 사람이었고 공교육을 거부했다고 한다. 러셀의 좌우명은 그녀의 할머니가 즐겨 외우던 출애굽기(23:2)의 성경구절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 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가 되었다.

 그가 할머니로부터 받은 이 영향으로 그는 사회의 부정의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했는데, 그것은 그가 98세로 사망할 때까지 이어진 할머니로부터의 가르침이었다. 러셀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하거나 아무리 큰 권력의 행위라 하여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비판하였으며, 그것이 비판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일관성을 견지하였다. 바로 이러한 지적 정직성을 갖고 러셀은 핵무기와 베트남 전쟁을 비판하였다. 대중의 편견에 흔들리지 않고 진실을 지켜야 한다는 러셀의 태도는 이미 고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공자도 누누이 강조한 바가 있었다.

 러셀은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실천적 지식인으로 변모해 갔다. 전쟁 중인 1916년에는 징병 반대 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납부를 거부하여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강의권을 박탈당했고, 2년 후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핵무기로 인한 인류의 파멸을 막고자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조직했고, 아흔의 나이에도 시민 불복종 운동에 앞장섰다.

 또한 러셀은 아인슈타인, T. S. 엘리엇, 디킨슨, 케인스, 화이트헤드, 조지프 콘래드, 비트겐슈타인 등 한 세기를 풍미한 위대한 사람들과 교류함으로써 20세기 지성사에서 그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지칠 줄 모르는 지적 정열로 하루 평균 3,000단어 이상의 글을 썼고, 화이트헤드와 함께 10년에 걸쳐 『수학 원리』를 집필하는 등 수학과 철학, 사회학, 교육, 종교, 정치, 과학 분야에 걸쳐 7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생의 마지막에 출간한 자서전은 정직하고 명쾌한 문체로 자신의 인생을 놀라운 통찰로 그려 내어 오늘날까지도 자서전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0년 2월 2일 밤, 98세의 나이로 웨일스에서 사망했다.


■ 사랑에 대한 갈망


 러셀은 매우 고독한 사춘기를 보냈고 몇 번의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주된 관심사가 종교와 수학이었고, 그가 자살을 하지 않은 것은 조금이라도 수학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러셀은 1890년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고 나서 1890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보다 어린 조지 에드워드 무어를 만났고 17세에는 퀘이커 교도였던 앨리스 페어살 스미스와 만났으며, 그녀의 가족과도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러셀과 앨리스는 사랑에 빠져 할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94년 12월 13일 결혼했다. 그러나 곧 그들은 1901년 파경을 맞고 1921년 이혼을 한다. 그의 어린 시절 사랑이자 아내인 앨리스와의 파경이 이유는 그가 자전거를 함께 타다가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의 장모가 잔인하게 그를 조종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후 그들이 이혼하기 전까지 별거기간 동안 러셀은 오톨린 모렐, 배우 콘스턴스 말레슨 등 여러 사람들과 열애 관계였다. 

 그러나 사랑이란 무엇일까. 보통은 사랑은 이성간에 생기는 감정으로 얘기한다. 그의 인생을 지배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러셀은 얘기한다. 그것이 지식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순수하게 이성간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면, 정말 그런듯하다. 그의 98년의 생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그가 적어도 4번은 결혼했고 3번을 이혼했다는 것을 안다. 이십대, 사십대, 오십대를 지나 마지막 결혼은 그가 65세일 때였다. 그는 자신의 체험담을 담아 결혼과 도덕에 관한 책을 썼고, 그 책은 남녀 모두에게 억압적이지 않는 성, 사랑, 결혼의 방정식을 찾고자 노력하는 내용이다.


참고 자료


•위피키디아.

•네이버백과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지은이의 말


- “위대한 저작치고 엄청난 악이 아닌 게 없다” - 알렉산드리아의 시인 칼리마쿠스


- 이 책에서 시도하고자 하는 일은 탈레스에서 비트겐슈타인에 이르는 서양 철학을 개관하면서, 그와 더불어 서양철학이 전개되어 온 역사적 상황을 일깨워 주려는 것이다.


- 서양철학사를 내놓는 이유는 첫째, 철학사의 내용들을 간명하게 집약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하는 책이 거의 없기 때문, 둘째, 오늘날 사람들이 점점 더 맹렬하게 전문적 지식으로 치닫는 경향에 휘말려 지적 유산을 남겨 준 선조들에게 진 빚을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 철학사가 서술되는 두 가지 방식은 첫째, 이 사람은 무엇을 말했고 누구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를 이야기해 주는 식으로 순전히 해설만 하는 방식, 둘째, 철학적 토론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해설과 더불어 논평을 가하면서 서술하는 방식이다.


- “논박 당하는 걸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오해되는 게 더 두렵다.  - 칸트


머리


p10 모든 과학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미지의 영역과 접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 접경지대에 이르러 그 경계선을 넘어간다면 그는 바야흐로 과학의 세계를 지나 사변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 사변적 사고 활동 역시 일종의 탐구 활동인데,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철학이란 학문이다.

⇒ 과학은 처음에는 철학적 탐구에서 시작. 과학은 알려진 사실들을 설명하고 철학은 근본적 물음에 관해 사색한다.


p11~12 철학은 과학과 구별됨과 동시에 철학 아닌 다른 종류의 사변 활동과도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원래 철학이 시작된 건 인생의 고민거리를 풀어 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철학은 일찍이 그리스 사람들이 그랬듯이 순전히 가보고 싶어서 하는 탐험 여행처럼 오직 알고 싶어서 시도하는 지적 모험이다.

⇒ 언제나 가보고 싶으면서도 가보지 못하는 산과 강과 마을, 어쩌면 무지개가 선다는 늪, 이빨 없는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산다는 산 속, 집채보다 더 큰고래가 헤엄친다는 바다, 별똥이 떨어지는 어디메쯤? 이런 구절이 나오는 수필이 요람기였던가. 순전히 가보고 싶어서라는 구절에 나는 요람기를 떠올린다. 철학에 대한, 지적인 모험 역시도 어린 아이가 꿈꾸는 미래와 같이, 혹은 어른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것 같이 아득. 또 아득.


p12 철학에 대한 정의는 어떤 정의든 논란이 일게 마련인데, 그 이유는 어떤 정의든 정의하는 사람의 철학적 태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철학을 해보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과거 사람들이 철학을 어떻게 해왔는가를 보여주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셈이다.

⇒ 스스로 철학을 해본다. 그러니까 정의를 내려보라는 말인가.


p14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물음이 많이 있는데, 이런 물음은 과학이 답을 내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 이런 물음의 답을 탐구하는 일과 경우에 따라서는 그 중의 어떤 물음을 제거해 버리는 일이 철학의 임무이다.

⇒ 깊이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물음들. 타인들이 아무리 답을 해도 그 답이 와닿지 않을 그런 물음들이 있기 마련.


1.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밀레토스 학파 : 탈레스 - 아낙시만드로스

피타고라스-헤라클레이토스

엘레아 학파 :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


p20 그리스 정신은 질서 정연하고 합리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마구 날뛰는 본능적인 다른 면이 있다. 전자는 철학과 예술과 과학을 일으켰다. 후자는 생산력을 숭배하는 의식에서 연유하는 매우 원시적인 종교로 나타나고 있다.

⇒ 그리스. 신화로서 많은 이들의 정신세계를 사로잡고 철학 역시도 사로잡는. 그리스라는 나라의 세계와 사람과 역사와 철학.


p20~21 언제나 공감이란 격렬한 감정과 정열에 들뜨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법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본질이 카타르시스, 즉 감정을 정화시키는 일이라고 설명한 건 정곡을 찌른 말이다. 어쨌든 그리스 정신이 이 세계를 단호하게 변혁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 정신의 양면성 덕분이었다. 니체는 그리스 정신의 이 두 요소를 아폴로적 원리와 디오니소스적 원리라고 불렀다. 이 두 요소 중의 어느 하나만으로는 그리스 문화의 엄청난 폭발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 니체는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 1872)』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로적인 것을 이야기했다. 그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자연스럽고 원시적인 에너지에 결부시켰고, 아폴로적인 것을 질서가 잡힌 시각적인 미와 자기 인식에 결부시켰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음악이며 합창대의 춤으로 표현된다. 반면에 아폴로적인 것은 개체화의 원리이며 시각적인 장치나 무대상의 배우를 통해서 표현된다.


p21 지적 혁명에는 진리와 아름다움을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스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건 올페우스교의 영향인 것 같다.

⇒ 올페우스교는 오르피즘이라고도 하는데, 오르페우스가 신의 계시에 따라 창시하였다고 전해지는 고대 그리스의 밀의적 종교이다. 언젠가는 죽게 마련인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영혼이 영적 존재로서 불사와 영원의 행복을 얻는다는 것을 기본 종지로 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교의에 바탕을 둔 계율에 따라 엄격한 수행과 특별한 제의를 행하였다. BC 7세기경 디오니소스 숭배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나, BC 6세기에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여 그리스 본토와 남이탈리아 각지로 퍼졌다. 플라톤이나 핀다로스의 저서 등에서도 이 영향을 엿볼 수 있다(두산백과).


p21 그리스 철학 전체를 지도하면서 이끌고 있는 생각은 로고스(logos)라는 개념이다. 이 말은 다른 무엇보다도 '말'과 '한도(限度)'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철학적 논의와 과학적 탐구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잇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적 논의와 과학적 탐구를 아울러 하는 사람은 지식이 좋은 것이라는 윤리적 신조를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데, 이 지식의 좋은 점, 즉 인류를 행복하게 해주는 능력은 공평무사하게 탐구하였기 때문에 얻어지는 결과이다.

 로고스는 파토스(pathos)와 대립되는 이성을 말한다. 말이나 연설과 같은 언어, 설명과 이유의 논증이란 의미, 사물의 본질을 정의하는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


p29 철학에서 참으로 중요한 일은 답을 꾸며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물음을 제기하는 일이다.

 

p31 철학을 이 세상 살아가는 방식으로 삼는 새로운 철학정신의 선구자는 사모스 태생의 피타고라스였다.


p31 밀레토스 사람들에게는 철학하는 일이 현실 생활에 대단히 유용한 일이었으며, 철학자들은 현실의 문제를 처리하는 행동가일 수 있었고 또 실제로 행동가로서 활약했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경우에는 철학이 세계에 대해 초연히 명상하는 일로 여겨졌다.

⇒ 피타고라스 학파는 인간이 영혼이 순환하는 윤회에 얽매어 있다고 믿고.


p32 인생을 학문적 지식에 의해 살아간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이 심성을 순화하는 데 사용했던 강력한 수단은 음악이다.

⇒ 실제로 이들은 음계의 숫적 비례 관계를 발견하고 현악기의 현의 길이를 조절하여 얻을 수 있는 세 개의 음을 인생을 살아가는 세 가지 방식과 대비시켰다는 설이 있다. 그러니까 균형을 뜻하는 조화 관념, 높은 음과 낮은 음의 화음처럼 대립하는 것의 조절을 통한 조정과 화합, 중용이나 중도의 개념들 말이다. 그러나 피타고라스 정리의 개념과정에서 무리수가 도출되고 ‘irration(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말이 쓰이고 이러한 비밀을 폭로한 이유로 동료 한사람을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고 하는데, 조화와 균형은 어디로 갔을까.


p37 “신은 인간을 어린애로 본다. 그것도 인간이 낳은 어린애로 본다." -헤라클레이토스

⇒ 사람이 알고 있는 걸 너무 자랑해서는 안 된다.


p37 “숨은 조화가 노출된 조화보다 더 훌륭하다.”      -헤라클레이토스

⇒ 조화는 한눈에 빤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실재의 세계는 서로 대립하는 성향들의 균형잡힌 조정에 있다는 새로운 이론은 전개했는데 바로 이점이 그가 철학에 남긴 괄목할 만한 발견이자 기여이다. 그리고 서로 대립하는 것들 사이의 투쟁의 근저에는 한도에 따라 이루어지는 숨은 조화나 조율 즉 실재의 세계가 있다는 것. 대립의 상태가 그대로 조화의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활대와 활시위의 조화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리하여 그의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다라는 말도 이러한 맥락으로 보면 될 것이다.


p38 “사람은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새로운 물이 계속 흘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 헤라클레이토스

⇒ 이 세계의 어떤 사물도 계속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 결국 만물은 유전한다는 것.


p38 "우리는 같은 강에 들어가면서 들어가지 못하며, 우리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못한다.“ - 헤라클레이토스

⇒ 인간이란 존재는 끊임없이 변해가면서도 통일성을 유지한다.


p40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람들이 지혜로워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보는데, 그건 사물들을 근원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기본 원리를 파악하는 길이다. 이 근본 원리는 서로 대립하는 것들이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적 의식과 희생을 통해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며 그것이 지닌 피상적이고 원시적 성격을 간파했다. 헛된 짓임에도 피로 몸을 더럽히면서 자신을 정화시킨다고 여기는 것이다.


p41 헤라클레이토스는 보편 원리 즉 로고스는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도 많은 사람이 눈이 멀어서 이를 보지 못하고 저마다 자기 특유의 지혜를 가진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여론은 결코 보편 원리가 아니다.

 에페서스 사람들 중 헤르모도루스를 추방했다는 점.


p43 파르메니데스의 비판의 요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고의 대상이 될 수조차 없다는 것인데, 그 까닭은 누구도 무(無)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그의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는 주장의 끝이 이 우주가 “단단한 균질의 물질로 이루어진 변화없는 유한한 구”라는 세계상으로 나아간다. 그는 물질주의적 일원론으로의 귀결이다. 그가 간과한 것은 자신이 견해에 대한 부정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더 이상 사고가 나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그는 변화에 대한 부정을 말하고 있다.


p49 어떤 사람의 신념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일은 아주 흔히 일어나는데, 특히 자신의 신념들에 대해 비판적 검토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은 어제 믿고 있던 신념과 전혀 상반되는 신념을 혹시 서로 모순되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도 한번 해보지 않고 잘도 믿고 살아간다.

⇒ 신념. 잘못 사용되면 독이 되는. 비판이란 그래서 필요한 것.


p52 아폴로는 빛의 힘과 이성의 힘을 상징하는 신이다.


p55 누군가가 독자적인 생각인데다가 대중의 평판까지 나쁜 생각을 주장하는 일은 아주 좋은 시절에도 위험한 일이다.

⇒ 대중이 어리석은 경우라면? 누구에게 위험한 것? 자기 자신에게?


p61 불가능한 결론을 수반하는 가정은 그 자체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제논

⇒ 제논은 변증적 논증을 처음 조직적으로 사용한 이다. 그리고 그는 무한 후회 논증(똑같은 논거를 몇 번이고 되출이해서 사용하는)에 빠져 있는데 이 방법을 통해 아킬레스와 거북의 경주 이야기, 경주로의 역설, 세 개의 유한한 선분 역설, 화살의 역설을 논증했다. 그리고 그의 변증 방법은 주로 피타고라스 학파의 입장을 파괴하고 공격하는데 사용되었다.


p71 소피스트들은 인간이 도저히 참다운 지식에는 도달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지식이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선언해버렸다. 사람에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쓸모 있는 의견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지식과 의견이란 차이가 있으니까.


p72 논쟁 기술을 연습하는 사람들은 상대편을 이기는 걸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변증 방법을 활용하여 탐구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발견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점이 바로 논쟁과 토론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진리가 단순 논쟁의 기술에 의해 설득될 수 있다는 사실이 서글픔 이상이다. 문제는 얼토당토 않는 논쟁이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는 것이다. 거기엔, 진리에 따른 순수한 논쟁이 아니라 공포와 억압이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논쟁에 설득당한 것이 아니라 공포에 굴복당한 것이다.


2. 아테네의 철학


p83 소크라테스는 델피 신전이 내린 신탁의 참다운 의미 즉 오직 신만이 현명하고 인간의 지혜란 하찮은 것이며,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혜가 보잘것없는 것임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 인간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 델피 신탁이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한다.


p86 아카데미아 교육과정의 목적은 사람들의 관심을 오관으로 경험하는 세계 속에 무상한 변화로부터 그 배후나 근저에 있는 불변의 구조로 전향시키는 것, 플라톤의 말로 다시 표현하면 생성의 세계로부터 존재의 세계로 전향시키는 것이었다.


p86 대학의 기능은 학생들의 머리가 터질 지경으로 가능한 많은 사실을 쑤셔넣는 일이 아니다. 대학의 고유한 임무는 학생들로 하여금 비판적으로 음미하는 습관을 익히게 하고, 어느 주제를 대하든 활용할 수 있는 규범들과 기준들을 이해하도록 하는 일이다.

⇒ 많은 사실을 쑤셔넣는다고 믹스되어 그것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땅의 교육자들을 비롯 학부모들과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

 

p88 플라톤은 철학자들 중에서도 위대한 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문장가이기도 한 독보적인 존재이다.

⇒ 플라톤. 위대한 문장가라고? 그의 문장은 은유적이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p93 우리가 철학자가 되면 이성과 진리의 햇빛 아래서 동굴 바깥에 있는 진짜 사물들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실재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에게 진리를 드러내 보여주고 알 수 있는 힘을 주는 빛은 선의 형상을 상징하고 있다.

⇒ 인생을 사는데 한번이라도 철학자가 안 될 수가 없다. 더구나 이 땅,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일은 더욱 더.


p102 자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든 이 능력을 반드시 스스로의 노력과 이 노력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 줄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의 도움에 의해서 획득할 수 있을 뿐이다.

⇒ 훌륭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슬플 뿐.


p105 교육은 지식에 도달하는 과정이며 그래서 훌륭한 삶에 이르는 과정이다.

⇒ 지식에 도달한다고 훌륭한 삶을 살아가진 않지.


p117 누군가가 어떤 것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린다는 건 그것이 존재하는 사실 그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른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고, 그래서 오류를 범하게 된다. 옳은 판단과 마찬가지로 그른 판단 즉 오류도 전혀 무섭거나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독자는 놀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떠한 문제건 그 해답을 알기만 하면 이와 마찬가지로 무섭거나 신비로울 것이 전혀 없는 법이다.

⇒ 그러니까, 그 해답을 알기만 한다면...


p121 내가 보기에는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플라톤의 학문이 지닌 폭과 깊이에 도달한 철학자는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불과 몇 안 되며, 그 폭과 깊이를 능가한 철학자는 전혀 없다. 나는 철학적 탐구를 하겠다는 사람이 플라톤의 철학을 무시한다면 전혀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 이런 플라톤을 최초로 비판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다. 다만, 그의 비판이 언제나 플라톤을 제대로 이해하고 진행된 것이라 할 수는 없다고.


p129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은 논증이 필요하지 않은 명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는 이런 진술들을 공리라고 불렀다.


p130 로고스는 말, 한도, 공식, 논증, 설명 등의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논리학은 로고스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p140 윤리적 문제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물을 때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목적이 이성혼의 행복에 있다고 보았으며, 다시 이성혼의 행복은 이성의 인도에 따라 덕스러운 활동을 능동적으로 끊임없이 해나가는 삶이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의하면 덕(德)이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도 최선의 삶은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이성에 의해 음미하면서 사는 삶이다.


p141 도덕적 탁월성 즉 품성의 덕과 관련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덕으로 보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는 어떤 행위든 행해지면 미흡하거나 과도할 수 있는데, 이 둘 중의 어느 편에 속하는 행위든 적절한 행위가 못 된다고 보았다. 덕스러운 행동은 이 두 극단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 중용이란 것이 정확히 가운데를 말하는 건 아니지!?


p142 사람이 훌륭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필요한 충고를 구하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이란 자기애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연장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당신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듯이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건 당신의 이익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다소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격 때문에 상처를 입고 있겠다고 하겠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 우정이란 자기애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연장하는 것. 음. 그런 자기애를 연장하려 하지 않는 이들이 친구가 없는 게 되나.


p146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는 모방이 예술이라는 인위적 수단에 의해서 진짜 감정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걸 뜻하는 것 같다.

⇒ 예술은 결국 모방이다. 이 세계에 대한.


p147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인간의 행위에 대한 모방이라고 정의한다. 비극은 훌륭하고 완벽한 것이어야 하고, 길이가 적당해야 하며, 또한 관객에게 두려움과 연민의 공감을 일으켜 영혼을 깨끗이 씻어 주어야 한다.


p147 비극의 궁극적 목적은 감정을 깨끗이 비워버림으로써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어 카타르시스(승화)의 의미다. 관객은 연극 중의 인물에 동화되어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경험함으로써 그 자신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던 그런 감정의 짐을 실제로 벗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극은 치료의 목적을 갖고 있다.

⇒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좋아한다. 한번쯤 절절한 비극을 그려보기도 할 것이다. 분명.


p153 사람이 어떤 견해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그 견해에 대해서 초연하게 공평무사한 태도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찾아보기 힘든 미덕이다.

⇒ 음, 그렇지. 간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


3.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p160 견유학파의 철학자들이 늘 되뇌는 요지는 이 세상에서 세속적으로 좋은 것들을 외면해 버리고, 이 세상에서 추구할 가치가 있는 유일하게 좋은 거신 덕에 전념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히 소크라테스가 지녔던 기질들 중의 하나다. 이런 태도는 세상사에 대한 반응치고는 상당히 부정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사실 세상사에 얽매이는 끈이 약하면 약할수록 상처받거나 실망할 가능성이 더 적어진다는 것은 옳은 말이긴 하다.

⇒ "cyncial"이란 말에 “냉소적”이라는 달갑지 않은 의미가 덧붙게 된 것은 견유학파의 신조가 변조되어 퍼졌기 때문이다. 바로 수중에 넣을 것이 있을 때는 전력을 다해 획득하지만 수지가 맞지 않을 때는 불평하지 않고, 즐길 수 있을 때는 인생을 즐기지만 종잡을 수 없는 운명의 변덕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인생에 대한 기회주의적 태도이다.


p162 헬레니즘 이후의 철학 역시 철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용기에 의지해 왔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탐험가의 맹렬한 용기라기보다는 차라리 체념과 강인한 인내의 용기였다. 평화라는 일용품을 쉽게 확보할 수 없을 경우에는 피할 수 없는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이 점은 다른 어느 학파보다도 에피쿠로스가 이끈 철학 학파에 아주 분명하게 나타났다.


p163 에피쿠로스에게 있어 최고선은 쾌락이다. 쾌락없이는 훌륭한 삶도 있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쾌락에는 정신적 쾌락과 같은 비중으로 육체적 괘락도 포함된다.

⇒ 헬레니즘 시대는 그리스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로부터 시작된 외세의 침입을 받아 그 지배하에 있었던 시대이다. 이로 인해 그리스 본래의 문화에 외국의 문화가 혼합되었으며, 이 상태는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그리스의 고전적인 철학도 그 모습이 퇴색되어, 주로 개인적인 인생 문제가 주된 관심이었다. 에피쿠로스도 또한 이 인생 문제를 사색의 주제로 삼았다. 그는 인식에 대해서는 감각론을 주장하고 감각은 그 스스로 참을 전한다고 말하면서, 오류가 생기는 것은 감각을 해석하는 방법에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식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무지나 미신에 기초한 신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것은 평정하고 자율적인 심신의 안정 상태, 즉 '아타락시아'라 하고, 이것을 쾌락이라 칭하였다.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p163 능동적 쾌락은 우리가 자기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에 대한 욕구를 원동력으로 해서,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목적을 위해 분투하는 가운데 체험하게 된다. 일단 목적이 달성되어 더 이상 어떤 욕구도 없을 때 수동적 쾌락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수동적 쾌락은 포만의 상태에서 느끼는 취한 듯 열중한 상태이다.

⇒ 수동적 쾌락은 그러니까 능동적으로 쾌락을 쟁취하여야 자연 뒤따르는 것이군.


p165 신들은 인간에게 상을 주지도 벌을 내리지도 않는다. 요컨대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극치이자 최고의 선이기도 한 고요한 평정 상태의 유지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신중하고도 절도있는 인생 행로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의무라고 보고 있다.


p165 스토아 철학 운동을 계속해서 결속시켜 준 것은 그 동안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었던 스토아 철학의 윤리적 가르침이다. 스토아 철학의 이 윤리적 측면은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험과 고통이 닥쳐도 아랑곳하지 않는 용기, 물질적 환경에 대한 무관심, 이런 것은 스토아 철학자들이 소중히 여겼던 미덕이다.

⇒ 소크라테스 이전의 소피스트들부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면서, 세계와 만물의 본질에 대한 관심은 인간과 현실의 삶으로 조금씩 옮겨졌다. 포르퓌리오스가 절절히 지적했듯이, 어쨌든 모든 사색과 고민은 결국 삶에서 비롯하는 인간 영혼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철학의 목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키프로스에서 온 제논은 돌기둥이 늘어선 아테네 신전 회랑에서 사람들에게 자기의 신념을 강연했다. 강렬한 햇살이나 비를 피하기에 적당한 그 공간을 '스토아'라 불렀다. 그래서 제논에 의해 시작된, 금욕주의로 알려진 사상의 줄기를 스토아철학이라 한다. 제논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삶의 행복은 마음의 평정에서 온다. 그 평온함은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버리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네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지 말고, 이미 얻은 것을 원하라." 이런 도덕적 강론은 운명결정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스토아학파가 말하는 안내자는 단순한 운명이 아니라 자연이었다.

   스토아철학에서 말하는 자연은 신이요, 우주요, 섭리다. 이는 곧 성실한 이성을 뜻한다. 그런 자연의 관념에서 보편적 사상은 저절로 형성된다. 자연이란 좁게 보면 인간 이성이지만, 넓게 보면 세계 이성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공동생활을 규율하는 것이 자연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이 바로 자연법사상이다. 자연이라는 세계 이성은 민족이나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만인이 한결같이 공유하는 것이다. 제논의 한마디가 모든 의미를 담고 있다. "인류는 각각 다른 정의의 법칙 아래서 다른 도시에 나뉘어 살 것이 아니라, 마치 공동의 목장에서 풀을 뜯는 양처럼 공동의 법 아래서 오직 하나의 생활, 하나의 질서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

   그리스의 스토아철학은 로마의 스토아학파와 기독교에 영향을 미쳤다. 키케로와 세네카로 대표되는 로마 법사상은 그리스 스토이즘을 계승한 것이다. 이 정신은 구체적 제도에도 스며들었다. 에드워드 기번에 의하면 로마에선 노예에 대한 가혹한 규제와 잔인한 취급이 자기 보호를 위한 자연법칙에 적합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경제적 이유 때문에 주인이 노예를 인간적으로 대하기 시작했고, 그 경향은 황제의 덕행이나 정책에 의해 더욱 가속화됐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이렇다. 로마제국에는 애당초 여성에게 재산 처분권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남편이 죽은 뒤 양육해야 할 사람이 있으면 부인이라도 재산을 처분할 수 있게 했다. 네로는 노예에 대한 비인간적 학대를 금지했다. 에스파냐 출신의 방랑자 하드리아누스는 함부로 노예를 죽인 자를 처벌했다. 신전으로 도피한 노예를 체포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안토니우스 피우스 시절이었으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연극에서 실제 무기를 사용한 격투를 금지했다. 이런 실정법의 변화는 사상사적으로는 스토이즘의 영향이고,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인권의 부분적 실현이다.

    - 스토아철학 (인권, 2006.5.31, ㈜살림출판사, 네이버 지식백과)


p167 스토아 철학이 정말로 정곡을 찌르고 있는 대목은 어떤 의미에서 덕이라는 내면적인 선이 다른 어떤 것보다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본 사실이다. 물질적 재산의 손실은 언제라도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자존심을 잃는다면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 돈을 잃어도 마찬가지. 돈을 잃으면 자존심을 잃기도 하고..인간 이하의 존재와 같은 생활을 하니까.


p169~17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기독교도를 박해했는데, 이는 악의에서 그런 게 아니라 기독교도가 국교를 거부하는 일이 불화의 골치 아픈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분히 올바른 처사였겠지만, 그러나 역시 박해란 언제나 박해하는 쪽이 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느 사회건 질서가 확고하게 잡혀 있고 자신만만하다면 이교도를 박해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p174 헬레니즘 문화 속의 비그리스적 요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강화되어 갔다. 동방의 세계는 일찍이 앞에서 지적했듯이 대체로 보아 그리스 문명에서는 지배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던 신비주의적 요소를 제공했다. 그리하여 메소포타미아와 그 밖의 더 먼 곳으로부터 종교적 영향력이 일대 혼란을 일으키면서 사방의 세계로 흘러 들어왔는데, 이 와중에서 결국에는 기독교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등장했다. 이와 동시에 신비적 경향은 온갖 종류의 미신과 미신적 행위가 만연하도록 조장하였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운명에 별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게 되자 비합리적인 힘이 터전을 얻게 된 것이다.

⇒ 그러니까 비합리성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만족을 꿈꾸는 자의 허세로군.


p177 플로티노스 형이상학의 중심 이론은 삼위일체론이다. 이 이론은 유일자(the One), 정신(Nous), 영혼(Soul)을 삼위로 간주하는데, 이 세가지는 방금 나열한 순서대로 선행(先行)과 의존(依存)의 관계를 유지한다.

⇒ 이 이론 자체가 기독교 신학에 영향을 끼쳤지만 기독교적 이론이 아니라 신플라톤적 이론이다. 삼위 일체론에서 말하는 유일자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의 구와 아주 흡사한 것으로, 그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은 존재한다”라는 말일 뿐이다. 유일자에 대해 이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은 유일자보다 더 위대한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누스는 신비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지적 의미에서의 정신 비슷한 어떤 것이다. 유일자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태양과 같다. 그렇다면 누스는 유일자가 제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햇빛이다. 어떤 의미에서 누스는 자의식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정신을 감각의 도움없이 제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훈련시킴으로써 누스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누스를 통해서 누스와 모습이 같은 유일자도 알 수 있게 된다.

   영혼은 내면과 외면의 양면을 가지고 있고 내면에 있어서는 누스를 향하여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영혼이 외면을 드러낼 때에는 감각의 세계로 하강하게 되는데, 실은 영혼 자신이 이 감각의 세계의 창조자이다. 이 이론은 범신론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p180~181 그리스와 로마의 사상가들이 적절한 정치 이론을 개발하는 일에 실패한 사실이 한 원인이었다는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그리스 사람들의 실패가 탁월한 지적인 힘에서 비롯된 어떤 오만 탓이었다면, 로마 사람들은 순전히 상상력의 결핍 때문에 실패했다.


p181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적 전통은 본질적으로 계몽과 해방을 추구한 운동이다. 그리스 철학이 목표로 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무지의 질곡에서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은 이 세계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게 함으로써 미지의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한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을 계속 유지시킨 것은 로고스이고, 그리스 철학이 열망하는 것은 최고선의 형상의 인도를 받아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공평무사한 탐구 그 자체'를 윤리적으로 선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 까닭은 인간은 종교적 신비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공평무사한 탐구의 전통에 더해서 그리스 철학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부정적 감정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맑고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고방식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훌륭하게 사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류는 이 참신한 활력을 다소 자의식에 빠져들었던 스토아 철학이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 자리를 굳혔을 때에 얼마간 잃어버린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서양문명을 이끄는 지성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최상의 것들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두 그리스 철학자들의 전통에 근원을 두고 있다.


4. 초기 기독교 철학


p186~187 서양의 문명을 지배한 기독교는 그리스 문화와 동방 문화가 약간씩 섞여 있는 유태교에서 파생된 종교이다.

     기독교와 유태교는 신의 선민이 있다는 교리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의 선민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이 두 종교는 이 세계가 신의 창조에 의해 시작되어 신의 마지막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똑같은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정말 구세주가 누구이고, 구세주가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약간씩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태교도는 구세주가 앞으로 이 세상에 와서 그들이 이 세상에서 승리하게 해주리라고 믿고 있는 반면에, 기독교도는 구세주가 나자렛에 태어난 예수이며 그의 왕국은 이 세상에 세워지는 왕국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게다가 기독교는 유태교도가 가지고 있던 이웃을 돕는다는 지도 원리로서의 의로움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으며, 또 이를 교조적 신조로 신봉하는 것도 이어받았다. 후세의 유태교와 기독교는 둘 다 본질적으로 신플라톤주의에서 유래하는 내세관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그리스 사람들의 이론은 철학적이어서 누구에게나 금장 이해되지 못한 반면에, 유태교와 기독교의 견해는 의로운 사람은 천국에 가고 악한 사람은 지옥의 불에 타 죽을 거라고 풀이되자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이후로는 정설로 자리잡게 되었다. 내세에 관한 이론을 아무나 이해할 수 있게 해준 것은 그 속에 있는 바로 이 보복의 요소였다.

⇒ 기독교와 유태교가 같은 뿌리임을 알면서도 정확한 차이, 본질적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한때는 유태교는 유태인만 믿는 종교, 기독교는 전세계인이 믿는 종교라 생각하기도 했고. 어쨌든 둘 다 나에게는 끌리지 않는 종교. 교리를 떠나 그를 믿는 교인들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이 큰 탓이다.


p189 원시 기독교는 사실은 수정된 유태교이며, 이는 개신교가 처음에는 가톨릭 개혁운동이었던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p195 암브로시우스는 이 새로운 상황에서 황제가 이교도를 편드는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시민이 병사로서 황제에게 충성해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황제는 신에게 봉사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글을 써 보냈다. 이 말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을 음미해 보면, 암브로시우스의 이 말은 신의 것은 신에게 돌리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라는 예수의 요구보다 더 큰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에서 세상의 복종을 요구하는 신의 명령의 전달 매체인 교회가 국가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요구를 간파할 수 있다.

⇒ 암브로시우스는 주교이다. 그는 로마귀족 아우렐리우스가의 출신으로, 아버지의 임지 트리어에서 태어나고, 로마에서 법률과 수사학을 배웠다. 밀라노의 집정관이었을 때, 그리스도교 정통파와 아리우스파의 싸움을 수습시킨 것이 높이 평가되어, 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에게 지지를 받아서, 374년 주교가 되었다. 그 이후, 그라티아누스 황제에 대항해서 위크트리아 여신의 제단을 철거시키고, 이를 재건하려는 로마원로원 귀족인 신마크스를 제압하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잔학행위를 탄핵하고, 동방교회의 황제교황주의를 타파해서 황제의 교회 내에서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등, 교회의 지위향상에 노력했다.


p198 아우구스티누스의 근본적 목적은 성서의 가르침과 플라톤 학파의 철학적 유산을 조화시키는 데 있었다. 이 점에서 그는 호교론 전통의 선구자다.

⇒ 호교론(Apologetics, 護敎論)은 변증론이라고도 한다. 2세기에 기독교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라고 역설한 신학자들의 주장이 특히 이 이름으로 불리우는데, 이에 한정되지 않고 신학 중의 한 부분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 있을 때 그에 맞서 기독교를 옹호, 변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가톨릭교, 그리스정교회의 신학에는 수용되어 있지만, 프로테스탄트는 이를 배척한다. 호교론이 과제로 삼아 논하는 것은 신의 존재의 증명, 영혼불멸, 기적, 예언을 포함한 성스러운 계시에 대한 가르침, 종교 반대론의 분석이나 이단 신앙의 신학적 분석 등이다. 이 입장에는 근본적 모순이 있다. 즉 근본적인 종교적 도그마는 이성으로 파악되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이성에 호소하여 그 합리성을 입증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결국 형식상으로는 합리적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비합리적이다. 따라서 호교론이 설명하는 바는 궤변일 수밖에 없다. -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네이버 지식백과


p199 범신론은 신비주의에 강하게 기울어진 사람들이 언제나 매력을 느껴 온 사상인데, 철학자들 중에서 이 견해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은 스피노자이다.

⇒ 범신론은 신(神)과 전우주(全宇宙)를 동일시하는 종교적·철학적  사상체계를 말한다.


p202 역사를 보면, 미신의 전통은 미신을 벗어난 사상을 산출하지 못했었고, 또 금욕주의를 진취적 정신보다 더 높이 평가했던 전통은 시대의 도전에 맞설 수 있는 건설적인 정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우리는 철학적 물음을 그  배경에 있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모든 지식과 관계없이 잘 이해할 수 있다.

⇒ 철학적 물음이론 계파에 상관없는 것이니까.


5. 스콜라 철학


p215 실재주의는 보편자들이 사물이며, 보편자가 개별자보다 앞선다는 주장이다. 이와 반대되는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입장은 유명주의라 하는데, 보편자들은 단지 이름일 뿐이며, 따라서 개별자가 보편자보다 앞선다고 주장한다.

    스콜라 철학의 실재주의는 형상론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근대에 와서는 관념주의라고 불리고 있다.


p224 종교적 열정은 십자군 운동을 일으킨 원동력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운동에는 강렬한 경제적 동기도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동방 세계는 손에 넣을 수 있는 전리품, 그것도 덕스럽고 신성한 동기에서 얻게 되는 전리품이라는 입맛 당기는 약속이었고, 한편 손 가까이 있는 유럽의 유태인들은 그들의 종교적 분노를 화풀이할 수 있는 만만한 대상이었던 셈이다. 회교 세계에 들어간 기독교 국가의 기사들은 자기네 문화보다 한없이 우월한 문화와 자기들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명확하게 깨닫지 못했었다.

⇒ 지금도 서방세계는 동방 세계에 대해 같은 사고를 가지고 있는 듯.


p225 스콜라 철학에서 가장 큰 이론적 문제는 철학계를 서로 대립하는 두 진영으로 분열시킨 보편자 문제였다. 실재주의 진영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권위와 그의 형상론을 근거로 삼고 보편자는 사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유명주의 진영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빌려 보편자는 그저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 스콜라 철학은 교부철학에 의해 세워진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이성적인 사유를 통하여 논증하고 이해하려 했던 중세 철학 흐름이다.


p229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 손상을 입히고 있는 것은 탐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기독교의 독단적 교리가 결론을 냉혹하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p233 아퀴나스 철학에서 사용되는 본질과 실존이란 용어는 잠재성과 현실성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본질은 순수하게 잠재적인 것이고, 실존은 순수하게 현실적인 것이다. 따라서 유한한 사물에게는 항상 이 두 가지가 섞여 있게 마련이다.


p234 신플라톤주의의 신은 어떻게 해서든 이 세계와 공존하는 신인데 반해서, 아퀴나스의 신은 이 창조된 세계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일종의 영적인 사제장 같은 것이다.

⇒ 어느 신이 좋은 거지?


p237 지식이란 본질에 관한 지식이며, 따라서 이 본질은 신의 마음속에 있는 관념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신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체에서 본질과 실존일 일치하므로, 아퀴나스의 생각과는 반대로 개체를 개체이게 만드는 것을 물질일 수는 없으며, 오히려 반드시 형상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도 하는데, 창조하고서도 모른다.


p239 오캄은 개체 즉 개개의 사물이 실재성을 갖는 것이고, 이 개체만이 직접적인 지식과 확실한 지식을 형성시킬 수 있는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적은 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은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 "필요 이상으로 있는 것을 증가시켜서는 안 된다." 이는 곧 후세에 '오캄의 면도날'이라고 불리우는 그의 사상이다. 오캄은 철저한 유명주의자였다.

⇒ ‘“실체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오캄이 강조한 것은 단순성이다. 단순성이 비평을 받게 되는 근거는, 임의의 단순성에 있는 목록에서, 동일한 단순성에 대해서 무한히 많은 법칙과 설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사에 의해 밝혀진 바는 단순한 이론들이나 법칙들보다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재론자들은 풍부함, 그럴듯함 그리고 대체로서의 모든 진실을 이상의 것을 찾게 되는 것이고, 적어도 최소의 보충적 원리들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학적인(형식적인 것을 포함해서) 단순성의 연구에서 추진적인 역할이 있었던 것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훈련된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고, 특히 케플러(Kepler, 1571-1630), 갈릴레오(Galileo, 1564-1642) 그리고 아인슈타인(Einstein, 1879-1955)이 이에 해당한다.

     - 이호중, 과학사사전, 2011., 네이버 지식백과


p241 단테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나라의 일상 언어를 문학의 보편적 도구로 다듬었는데, 이로써 지방의 잡다한 사투리를 넘어선 표준어가 최초로 설정될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라틴어만이 문학의 표현 수단으로 쓰일 수 있었던 데 반하여, 이제는 이탈리아어가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p243 각 민족마다 자기 나라 말을 사용하게 되자, 교회는 철학과 과학의 분야에서 전개되는 지적 활동을 지배하는 힘을 상당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말살정책이 생각나는군.


p246 그리스 사상과 중세 사상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사람은 누구나 당연히 그리스 사상에는 죄의식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의 눈에는 사람이란 저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죄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생활을 신들의 변덕으로 인해 구겨져버릴 수 있는 불안정한 것으로 보았음에 틀림없을 것 같다.


p247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덕은 그 자체가 보상이었음에 비해서, 기독교 신자들은 신이 덕을 행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덕행이라는 어려운 길을 걷는 일 그 자체가 영혼의 구원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덕행은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p248 철학과 신학의 이 결합은 이성이 어느 정도라도 신앙을 튼튼하게 해주는 동안에만 지속될 수 있었다. 14세기의 프란치스코 학자들이 이 가능성을 부정하고, 이성과 신앙은 서로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나서자 상황이 바뀌어 중세의 세계관은 점점 시들시 시작하였다. 철학이 신한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오캄은 신앙과 이성적 탐구를 연결하고 있던 온갖 고리를 다 풀어 버리고 신앙을 이성적 탐구로부터 해방시켰지만, 이 일은 반대편에서 보면 실은 철학을 원래의 이 세상의 학문으로 되돌아가도록 풀어준 셈이었다. 교회는 16세기 이후로는 철학의 분야를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였다.

⇒ 종교와 철학은 같은 보이지만 당연, 달라야 한다.


p248 이성과 신앙의 분리는 그와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이성적 활동과 종교적 활동을 엄밀하게 분리하여 제각각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이성과 신앙의 분리, 정치와 종교의 분리. 제발, 필요한 것은 종속되지 않는 이성. 분리이다.


p249 스콜라 철학이 빠져 있었던 잘못은 경험적 탐구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결함에 대해 최초로 주의를 기울인 사람들은 프란치스코회 학자들이었다. 경험에 의해 발견된 사실들이 이처럼 경시되었던 것은 이 세계의 문제보다는 신과 저 세상의 문제에 훨씬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시대에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예부흥 시대의 사상가들은 다시 한번 인간을 모든 문제의 중심에 세웠다.

⇒ 인본주의는 곧 인간을 중심으로 돌려놓고자 하는 운동.


6. 근대 철학의 발흥


중세 시대의 몰락으로부터 17세기의 거대한 진보의 격랑에 이르는 전환기의 네 가지 도도한 운동은 15~16세기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문예부흥운동(르네상스), 인본주의 운동, 종교개혁 운동, 오캄의 비판에 의해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한 경험적 탐구.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체계. 그리고 전환기의 두 가지 중요한 발전은 활자를 사용하는 인쇄기의 발명과 발견을 목적으로 한 항해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새로운 철학의 흐름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는 것


p253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인쇄물에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승인만 해야 한다면, 독서 능력은 사람에게 거의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 뭐, 그럼 다시 읽어야지. ㅎㅎ


p254 기존 질서에 젖은 통치자들은 과감하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려는 사람에게 기존 질서가 파괴된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야만적 형벌을 언도하였다.

⇒ 질서, 질서, 질서. 하나의 질서라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이용되고 있는 현실의 세계.


p263 에라스무스는 사람은 누구나 신과 직접 접촉할 수 있으므로 신학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개신교의 견해이다.

 학창시절, 에라스무스는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학자로 기억해야 했다. 대표적인 책은 우신예찬이고 네델란드 사람이었고. 그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수도원에서 양육되었으며, 20세에 정식 수도사가 되었다 한다. 1511년, 런던으로 가는 여정에서 우신예찬(愚神禮讚, Encomium Moriae)을 구상하고 토머스 모어의 집에서 집필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부패한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고 성직자의 위선과 신학자 허구성 등을 풍자하고 야유했다. 이것이 종교개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p264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공동의 소유를 크게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도 플라톤의 이유와 비슷하다. 개인이 사물들을 사유 재산으로 삼는 사회에서는 공동의 복지가 철저하게 존중될 수 없다는 것이다.

⇒ 결국 유토피아가 가지는 환상은 ‘함께’를 이야기하고 있다.


p268 종교적 원인과 경제적 원인은 둘 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특징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일반적 변화의 증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신교와 그 청교도적 특징들은 근대 상업의 발흥과 서로 협조하였기 때문이다.


p280 베이컨은 사람들이 네 가지 유형의 정신적 약점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고, 그것들을 “우상(偶像)”일 불렀다.

첫 번째 우상은 종족의 우상,  인간을 우상으로 받드는 경우, 희망에 의거한 사고, 이랬으면 하고 바라는 생각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경우로 특히 자연 현상에 실제로 실존하는 질서보다 더 위대한 질서가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그렇다고 하겠다. 두 번째는 동굴의 우상, 개인이 자신의 잘못된 외고집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로 무수히 많다. 세 번째는 시장의 우상, 사람이 언어에 현혹되는 경향으로 인해 일으키는 과오, 특히 철학에 만연되어 있는 과오이다. 네 번째는 극장의 우상, 사상의 체계나 학파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일어나는 과오이다.


p291 스피노자는 성서에 나오는 모든 저주를 받고 유태인 사회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렌즈를 갈아주는 일 이외에는 온통 철학적 사색에 몰두하면서 지냈다.

⇒ 스피노자를 기억하는 건,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그 사과나무 때문이다. 여기서 내포하는 것은 어쨌든 오늘 하루를 충실히(?) 잘 살겠다는 의미가 있다.


p291 신과 종교에 관한 스피노자의 견해는 너무나 시대를 앞선 것이어서 그가 매우 품위 있는 윤리 이론을 제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전에는 물론이고 사후에도 1백 년 동안이나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생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스피노자의 가장 위대한 저작인 <윤리학>도 폭발적 충격을 줄 것으로 여겨져서 그의 사후에야 출판되었다.


p293 스피노자는 실체라는 건 완벽하게 제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그 다음에 실체는 무한하다는 게 증명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실체의 한계들이 실체와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실체는 오직 하나만 있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되고 나서, 이 실체는 우주 전체이며 또한 신과도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므로 신과 우주는 둘 다 모든 사물의 총합체이므로 이 둘은 다른 게 아니라 그게 그것이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그 유명한 범신론이다. 범신론에 대한 스피노자의 설명 속에는 신비주의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걸 강조해 두어야 하겠다.


p294 사물들을 시간과 무관한 영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정신의 본성이다. -스피노자

⇒ 이런데, 신비주의를 뺀다고?


p294~295 사람이 외부의 여러 가지 영향력과 원인에 얽매여 있는 한 노예 상태에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 상태는 모든 유한한 것이 처해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사람은 신과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한 더 이상 그러한 영향력에 지배되지 않게 되는데, 그 까닭은 우주 전체는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사람은 점점 전체와 동조를 이루어 감에 따라 그 정도에 맞는 자유를 얻게 된다. 왜냐하면 자유라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독립 즉 자기 결정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오직 신에게만 옳은 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는 방도는 이러한 신과의 동화이다.

⇒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노예상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쉽지 않은 삶.


p295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법인데, 자유로운 사람의 지혜는 죽음에 관한 성찰이 아니라 삶에 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한편 스피노자는 악을 소극적인 것 즉 결핍의 상태로 여기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전혀 없는 전체로서의 신 즉 자연은 악일 수 없다고 보았다. 스피노자에게는 모든 것이 이 유일하게 가능하고 또 실재하는 우주 속에서 최선의 상태로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유일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가능한 한 더 많이 우주와 접촉하기 위해 일상의 실제 생활에서 자기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p301 라이프니츠는 오직 신만이 완전 과학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신은 우주의 모든 것을 필연성의 맥락에서 이해한다고 보았다.

    라이프니츠의 예정 조화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엔테레키 이론 즉 잠재성이 현실성으로 나타나려고 분투한다는 이론에 의해서 고무 받은 것처럼 보인다. 라이프니츠는 이 이론에서 모든 잠재성이 동시에 실현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은 최대한 많은 양의 현실성을 갖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p304 실행이 우리의 지식을 향상시켜 줄 수 있다는 건 옳은 말이다. 어떤 행동을 이지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그 행동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킨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일이 인간의 행동이나 실행의 영역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건 명백하다.

⇒ 삶을 행복하게 하는 건, 생각과 그에 따른 행동.


p306 과학과 철학의 임무는 일상 언어를 가지고 출발하여 새로운 탐구 과제를 풀어 낼 수 있도록 더욱 날카로워진 언어적 도구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명하고 분명한 관념에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는 데카르트의 철학적 주당이 함축하고 있는 가치 있는 근본 취지이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머지는?


7.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


p308 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개신교의 성격을 지녔지만, 칼빈주의 식의 편협한 테두리 안에 머물지는 않았다. 자유주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식으로 신과 교섭해야 한다는 개신교의 생각을 약간 더 발전시킨 것이었다. 그 밖에도 편협한 신앙은 사업을 하는 데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자유주의는 그 당시에 상업과 공업을 발달시키면서 부상하고 있던 중산층 사람들이 만들어 낸 생활 태도였기 때문에, 귀족층과 군주가 똑같이 특권을 누리고 있던 기존의 견고한 전통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유주의의 요지는 관용이다.

 칼뱅은 신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하는 신관을 가지고 있다. 구원을 받는 자와 멸망에 이르는 자는 영원한 옛날부터 신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고 하는 예정설을 이야기한다.


p311 자유주의 태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인주의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 자유, 개인주의를 존중. 그러나 자유에 대해 한발짝 더 나가보면 속박이다.


p312 개인주의 신조는 주로 이성주의자의 이론이었으므로, 이성이 최고로 중요하다고 주장되었다. 열정의 지배를 받는 건 문명화되지 못한 탓이라고 여기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지만 19세기에는 개인주의 신조가 정열에까지 확장되었는데, 특히 낭만주의 운동의 물결을 타고 강자의 외고집을 찬양하는 여러 가지 '힘의 철학'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이 결말은 실은 자유주의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고 하겠는데, 그 이유는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큼 야심만만한 다른 사람의 도전이 두려워서 성공에 이르는 사다리를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개인주의는 속박이고 강박이다.


p316 로크는 현실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이어서, 철학적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정합성 있는 입장에서 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단편적 방식으로 취급하였다.


p319 뉴턴의 물리학은 단번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철저히 일소해 버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로크의 정치 이론은 거의 새로운 내용이 없는데도 왕권신수설을 깨끗이 논박해 버렸고, 스콜라 철학의 자연법 사상을 근대의 상황에 알맞도록 변경시켜 기초로 삼고 국가에 대한 새로운 기본 신조를 확립하려고 노력하였다.

⇒ 왕권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왕은 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며, 인민은 저항권 없이 왕에게 절대 복종하여야 한다는 절대주의 시대의 이론. 절대주의를 보강하는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이용되었다.


p320 이성주의가 꼭지점을 땅에 대고 서 있는 피라미드라면 경험주의는 밑면으로 버티고 선 피라미드다.

⇒ 경험주의 철학은 관찰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약간의 결함이 발견되더라도 전체가 붕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륙의 선천적 체계는 그 자체로서는 정합성이 있을지라도 그 기본 주장이 반박되어 버리면 허무하게 무너져 흩어져 버린다.


p325 정신이 실존한다는 말은 '지각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지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 수동성이 아닌 능동성.


p326~327 버클리는 "대체로 나는 이제까지 철학자들의 흥미를 끌었고 또 지식에 도달하는 길을 가로 막고 있던 난점들은 그 전부는 아닐지라도 아주 많은 난점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 탓에 생겨났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먼지를 일으켜 놓고는 그 먼지 때문에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불평한다."


p329 흄이 말하는 경험은 지각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지각들 사이에서는 이 연속 이외의 어떠한 결합 관계도 지각될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데카르트 식의 이성주의와 로크 및 그 추종자들의 경험주의의 근본적 차이점이다. 이성주의자들은 사물들이 밀착하여 딱 들어맞게 결합되어 있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이 결합 관계가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에 반해서 흄은 사물들 사이에 그러한 결합 관계가 있다는 걸 거부하며, 오히려 혹시 그런 결합관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결합 관계를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암시하고 있다.

⇒ 흄은 영국의 철학자이다. 경험론 철학자 로크의 학설에 영향을 받아, 불가지론의 방향으로 진전시켰다. 그에 의하면 지식의 역할은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을 인도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여기서 이미 그가 회의론의 입장에 있으며 불가지론의 주장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것은 직접적인 감각적 경험인 '인상'(印象)의 흐름이며,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고 한다. 자아라는 것도 이러한 '인상의 묶음'을 말할 뿐이다. 경험에서 얻어진 사물의 기본적 관계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인과관계)이지만 이것은 단지 관습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그 확신성은 이론적 지식의 입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견해로부터 그의 도덕설은 유용성이 그 기준을 이룬다는 공리주의(功利主義)의 입장을 취하고, 신에 대한 신학이나 철학의 이론을 거부하며 종교를 역사적 경험에 호소하여 이해, 그 공과를 인정하고 있다. 이 불가지론의 철학은 현재에도 그 영향이 계속되어 실증주의로 나타난다. -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네이버 지식백과


p330 혹시 어떤 사람이 진지하게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반성을 해본 끝에 앞에서 내가 말한 것과 다른 ‘자아’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그와 더불어 더 이상 논의를 계속할 수 없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올바를지 모른다는 것과, 따라서 우리는 이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흄


p331 흄은 “정신은 여러 가지 지각이 계속 등장하여 제 역할을 하는 일종의 극장”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 비유에 제한을 가한다. “이 극장의 비유에 의해 오해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정신을 만들고 있는 것은 오직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지각들뿐이다. 이런 지각들의 장면이 상연되는 무대에 관한 생각이나 그러한 무대를 만드는 재료에 관한 생각은 전혀 갖지 말아야 한다.”


p332~333 흄은 경험으로부터 인과 관계에 도달하는가에 대해 심리학적 설명을 제시한다. 그는 일정한 종류에 속하는 두 대상(인상)이 지각에서 빈번하게 결합하다 보면 그 인상들에 의해 만들어진 두 관념을 연상하게 되는 정신의 습관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정신의 습관이 충분히 강해지게 되면, 감각에는 단지 한 대상만 주어지더라도 정신에는 두 관념의 연상이 불러일으켜진다는 것이다. 흄은 일단 정신의 습관이 충분히 강해졌다면, 이런 연상에는 결코 실수가 있을 수 없으며 또 이런 연상을 하지 않을 도리도 없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인과 관계는 정신의 습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 습관은 바로 이 심리적 과정에 의해서 생긴다고 할 수 있다.


8. 계몽운동과 낭만주의 철학


p337 낭만주의 운동은 계몽 운동의 아폴로적 심성에 상반되는 디오니소스적 심성을 상기시킨다.


p338 계몽운동은 본질적으로 자립된 지적 활동의 가치를 더 높이는 일이었으며, 참으로 글자 뜻 그대로 이제까지 암흑이 지배해 오던 곳에 광명의 빛을 비추는 걸 목표로 삼았었다. 이 운동은 집념과 열의를 다해 추구할 수는 있었지만, 이 때문에 이 운동이 강렬한 감정들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방식은 아니었다. 세월이 가면서 어쨌든 계몽 운동과 반대되는 영향을 끼치는 힘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그건 낭만주의라는 훨씬 더 격렬한 힘이었다.

     낭만주의 운동은 계몽운동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점에서 아폴로적 심성에 상반되는 디오니소스적 심성을 연상시키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이성<감성?


p339 낭만주의자들은 위험스럽게 사는 편을 지지하였다. 낭만주의자들은 안전을 추구하는 대신에 모험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안락하고 안전한 생활이 불명예스러운 것이라고 일축해버렸고, 어쨌든 이론적으로 불안한 생활 방식이 더욱 고상하다고 주장하였다.


p340 낭만주의는 이성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도 똑같이 보여주고 있다. 이 비이성주의적 태도는-이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가장 잘 알려진 실례는 실존주의라고 하겠는데-여러 가지 점에서 산업사회가 개인의 생활을 잠식하는 일이 확대일로에 있는 현실에 대한 반발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p347 칸트는 평생 한 번도 고향을 멀리 떠난 적이 없었다. 또한 그는 지나친 금욕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매우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였다. 그의 습관은 아주 규칙적이었으므로 그가 지나가는 걸 보고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시간을 맞추었다고 한다. 그는 튼튼한 편은 아니었으나 차분한 생활방식 때문에 질병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화술이 뛰어나고 사교 모임에 참석하면 항상 환영을 받았다. 칸트는 정치적 문제에 관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하게 계몽 사상의 전통에 따르는 자유주의자였으며, 종교에 관해서는 비정통 개신교의 한 입장을 주장하였다.

⇒ 규칙적 생활습관을 갖고자 하지만 잘 안되는 것. 칸트처럼 내 생활이 시계가 되는 습관을 가질 수 있을까.


p348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의 목표는 선천적 종합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p351 지성과 이성의 구별을 후세의 헤겔은 자신의 관점에서 이성은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것인데 반해서, 지성은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것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칸트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이성적이거나 이성을 타고났다는 점에서는 평등하지만, 지성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이 불평등하다. 왜냐하면 지성은 참으로 사람마다 현격하게 활용의 정도가 실제로 다른 지능이기 때문이다.

⇒ 지성이란 넓은 의미로 감정이나 의지라는 의식작용에 대하여, 안다고 하는 작용을 가리키며, 여기에는 사물을 아는 최초의 출발점을 이루는 감각도 포함된다. 그러나 지성은 보다 엄밀히 규정하여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지성은 감각으로 얻은 것을 재료로 하여 사고를 통하여 추상적으로 개념으로서 종합하여 지식을 정돈하는 사고작용을 하는 의식의 작용을 가리킨다. 이 경우는 대체로 감각과 구별되는 오성(悟性)이나 이성과 같은 의미인데, 이들 오성ㆍ이성의 양자가 별개의 사고능력을 가리킬 때엔 주로 오성을, 그렇지 않으면 양자를 합친 것을 가리킨다.

   이성은 일반적으로 보고 들어서 아는 감각적 능력과 구별되는 개념(槪念)에 의한 사유능력(思惟能力).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단순히 개념적 사유를 할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이 오직 본능적 충동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데 비해서, 인간은 의무의식(義務意識)에 의해서 행위를 하는 것이 본질적 특질이며 따라서 인간의 행위가 어떤 이성적인 힘에 의해서 지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개념적 사유능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이성적 명령에 따르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이성적 동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철학사전, 중원문화, 2009


p353 실천 이성의 근본적 물음은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칸트는 이 물음에 대해서도 상당히 혁명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칸트 이전의 모든 윤리학이 의지는 외부의 영향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항상 가정했었음에 반해서, 칸트는  의지가 제 자신을 다스린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지는 자율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칸트가 도덕 법칙으로 간주했던 것을 찾으려면 우리는 오히려 반대로 자신의 내부를 살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이 도덕 법칙은 특정한 명령들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도덕 법칙은 어떤 특정한 경우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알려 줄 수 없다. 왜냐하면 의지의 자율성을 인정한다면 이런 일이야말로 우리가 피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의 도덕 법칙은 결국 경험적 내용이 전혀 없는 순수하게 형식적인 원리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는 이 도덕 법칙을 정언 명령이라 불렀다.

⇒ 칸트(I. Kant)의 실천이성(實踐理性)은 이와 같은 이성의 활동을 학문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므로 행할 수 있다”(Du kannst, denn du sollst)라는 칸트의 유명한 말이 명시하고 있듯이 단순히 자율적으로 도덕법(道德法)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서 행위를 스스로가 정한 도덕법칙에 합치되게끔 이끌어 가는 의지의 힘을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한편 이성을 오성(悟性)과 구별하여 그와 대립시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 중에서도 철학사상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개념적ㆍ논리적 인식 능력인 오성에 대해서 최고의 실재(實在)를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오성보다 한층 더 높은 인식을 가리킨 경우다. - 철학사전, 중원문화, 2009


p358~359 피히테의 철학과 셸링의 철학 양쪽 모두에서 헤겔이 나중에 변증적 방법으로서 사용한 사고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피히테의 철학에서는 자아가 비자아를 극복하는 과업과 맞서게 하는 방법을 볼 수 있다. 셸링의 자연 철학에는 훨씬 더 분명하게 변증적 과정을 예시하는 양극의 대립자들과 그것들의 통일이라는 근본적 사고 형태가 있다.


p363 자유는 환상을 품는 게 아니라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거나, 그리스 철학에서 이미 헤라클레이토스가 전조를 보였던 이 세계의 필연적 진행과정을 파악하는 일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하겠다.

⇒ 자유에 대한 수많은 정의들. 각각이 틀리지 않고 나름 와닿는 경우도 있지만, 보다 확실하게 와닿는 정의를 발견하기까지.


p368 역사적 상황에 관한 헤겔의 인식을 보면, 그는 절대자가 언제나 우리의 눈앞에 전개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철학적 체계를 세우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셈인데, 그의 견해에 의하면 철학적 체계는 항상 사건이 일어난 뒤에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 헤겔은 <법철학>의 머리말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땅거미가 졌을 때만 날기 시작한다”는 말로 아주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그래서 늦은 오후에 인식되는 것. 무언가가 다 이루어지고 난 이후에.


p369 관념주의자들의 생각이 단지 애매하고 막연한 말로 표현되기는 했을지라도 그들의 착상이 노리고 있는 목표를 알아보려는 노력을 해보지도 않은 채 통째로 깨끗이 잊어버리는 건 위험한 일이라 하겠다.


p371 관념주의자의 견해는 사람들에게 자칫하면 배타심과 잔인성과 포악한 행동을 일으키기 쉽다. 이에 비해서 자유주의의 원리는 사람들에게 관용심과 이해심과 타협심을 길러 놓는다.


p372 계몽 사상가들은 정열을 불안스런 마음으로 방관하는 경향이 있는데, 키에르케고르는 정열이 다시 철학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게 하고 싶어 했다. 이 성향은 시인들이 전개한 낭만주의 노선이며, 선은 지식에서 그리고 악은 무지에서 나온다고 보는 윤리관과 대립하고 있다. 실존주의는 오캄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의지를 이성으로부터 단절함으로써 사람은 철학적 반성의 결론이 아니라 의지의 자발적 기능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 일은 아주 쉬운 방식으로 신앙이 다시 한 번 사람의 정신생활에 들어설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p373 키에르케고르는 의지가 이성보다 선행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간에 관해서 사람은 지나치게 과학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폈다.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은 한 사람의 영혼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종교는 실존적 사고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 키에르케고르는 덴마크 종교 사상가이다. 실존주의 사상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청년시절 종교에 대한 아버지와의 불화와 연애의 실패가 그 후 그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당시 덴마크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은 절대왕제로부터 입헌군주제로 옮겨가고 있었고(1849),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요구가 고양되고 있었던 시기, 키에르케고르는 자기의 체험과 사회적 변동 속에서 자기 자신에의 반성에 의한 단독자로서의 삶의 태도와 주체적 진실을 추구하는 '실존'적 삶의 태도라는 사상을 육성해 가면서, 미적 향락에 의한 미적 실존을 배제하고 또한 자기를 보편화하는 길에 선 윤리적 실존을 부정하여, 신앙에 의한 자기 구제의 종교적 실존을 최고의 삶의 태도라 하였다. 이리하여 자기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진정한 생활을 추구하는 자유에 따른 '불안'속에서 자기를 단련시키면서, 신과 자기와의 질적인 단절에 직면하여, 신앙에 의한 이 모순의 종합을 '질적 변증법'을 통하여 진리로 현현할 것을 목표로 한다.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요구가 인간을 평균화시켜 단독자, 실존인 자기를 잃어버리게 한다고 보아, 이에 강력히 저항했다. 나아가 당시의 교회에 대해서는 교회가 권력과 결탁, 형해화한 것을 비판(덴마크에서는 루터교), 독자적 신앙으로 대치하였다. 그의 사상은 당시에는 많은 반향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20세기에 들어서 실존주의가 유행되면서, 니체와 함께 인기를 끌게 되었다. -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p374 이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이성을 과대평가 하는 일만큼 위험하다는 걸 명심하는 게 좋은 일이다. 헤겔은 이성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이성이 우주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는 과오에 떨어졌다. 키에르케고르는 반대편의 극단으로 치달아 결국 이성은 우리가 참으로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 즉 구체적인 것을 파악하는 데에는 쓸모가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과학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낭만주의를 지탱하는 최고의 원리들과 일치하고 있다.


p376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철저히 악한 것으로 보며,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지 않을 수 없는 모든 고통을 이 의지 탓으로 돌린다. 게다가 그는 헤겔이 그랬던 것처럼 지식을 자유의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의 근원으로 간주한다. 이리하여 쇼펜하우어는 이성주의자들의 낙관주의 대신에 행복이 들어설 자리가 전혀 없는 우울한 인생관을 보여주고 있다.

⇒ 쇼펜하우어는 독일의 철학자로 교단에 서지 않고, 주로 민간 문필가로서 지냈다. 그는 칸트와 같이 현상과 물자체(物自體)를 구별하지만, 경험적 현상의 세계는 주관의 여러 형식(시간, 공간 및 인과의 법칙)에 의존하는 단순한 표상에 불과하고 물자체에 해당하는 것은 의지, '맹목적인 생존의지'라고 본다. 무기적 자연에서 동식물, 인간에 이르기까지 전체는 이러한 의지의 객체화ㆍ개별화의 여러 단계이기 때문에 세계는 보편적으로 무근거, 무원리이고, 부단한 욕망에 쫓기어 만족할 수 없는데 이러한 생은 고통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최악의 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술적 관조에 의해 세계를 망각하거나, 욕구를 단멸(斷滅)하고, 인도 종교사상의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허무주의는 1848년의 혁명 후, 사람들에게 주목되었다가 혁명이 좌절된 후 실망한 독일의 중간층에서 유행하였다.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p377 우리의 인생에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 의지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의지를 마취시킴으로써 우리가 열반 즉 공에 도달하게 되어 마침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마야의 장막을 걷어 내고 세계의 실상을 보게 한다고 주장하는데, 마야란 이 세계에 대한 환상적 생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 쇼펜하우어가 한 말.


p379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자유인은 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루려고 분투노력해야 할 목표는 신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인간이다.

⇒ 니체는 독일의 철학자로 생(生)철학의 대표자이자 실존주의의 선구자이다. 그는 정신이상으로 정신병원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그는 종래의 합리적 철학, 기독교 윤리 등 모든 종래의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철저한 니힐리즘(nihilism)을 주장하여 생(生)의 영겁회귀(永劫回歸) 속에서 모든 생의 무가치를 주장하고, 선악의 피안에 서서 '약자의 도덕'에 대하여 '강자의 도덕'을 가지고 '초인'(超人)에 의해서 현실의 생을 긍정하고 살아야 함을 주장했다. 이 사상 속에는 생물진화론의 생존투쟁의 사고가 존재하고 있음과 동시에,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진행해 가는 19세기 말의 사회상태를 반영하여, 노동자 계급의 격렬해져 가는 공세 앞에서 자본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종래의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대신하여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를 제창하였으며, 사회주의를 '노예도덕'으로 간주하고 지배계급의 독재지배를 '군주도덕'으로 높이 내걸어 '권력에의 의지'를 강조하는 입장에 선 사람이었다. -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9. 공리주의 철학과 그 이후


p383 모든 혁신적 기계의 발명은 그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그렇지만 대체로 보아 인간은 보수적 동물인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의 기술적 재능의 발달이 정치적 지혜의 터득을 앞질러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 인해 생긴 불균형을 인류는 아직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p384 마르크스의 목표는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변혁하는 데 있다.


p385 선은 쾌락이고 악은 고통이라는 것, 따라서 사람이 도달해야 할 최고의 상태는 고통을 상쇄하고 남는 쾌락의 양이 가장 많은 상태라는 것, 이 견해는 벤담에 의해 채택된 후 공리주의로 알려지게 되었다.

⇒ 악은 고통...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


p387 사회 개혁에 헌신한 사상 운동으로 서 공리주의는 모든 관념주의 철학이 이루어 놓은 것을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확실하게 성취하였으며, 게다가 그런 성과를 공연한 소란을 별로 일으키지도 않으면서 성취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원리는 다른 해석을 끌어낼 수 있는 소지를 가지고 있다. 지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 원리를 경제 활동의 자유 방임과 자유 무역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p391 공리주의 윤리학은 민주주의 사회에 알맞은 이론이다

⇒ 정말? 사실 민주주의라는 이름하에 생각하고 있던 많은 가치가 일순 무너진 것을 경험하고 보니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마저 든다.


p398 이상의 모든 사실은 마르크스가 정치 이론가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선동가이자 혁명을 선전하는 논객이었음을 알려 준다. 그의 글들은 흔히 일종의 의분과 강직한 윤리적 어조를 띠고 있는데, 이런 어조로 말하는 것은 그의 말대로 모든 상황에서 변증적 과정이 필연적 진로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면 앞뒤 조리가 맞지 않는 일이다.

⇒ 마르크스 이론에 대해 한번도 빠져보지 않았다면 바보라고, 그러나 여전히 그 이론에 빠져 있는 것도 바보라던가?


p400 콩트는 우리가 경험에 의해 직접 주어지는 것을 가지고 철학을 시작해야 하며, 현상의 배후로 넘어가는 일을 삼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으므로, 자신의 철학을 실증 철학이라고 불렀다.


p408 제임스의 구별에 따르면 이성주의 이론은 물질적인 것을 희생시키고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성주의 이론은 낙관적인 성향을 보이고 통일을 위해 노력하며 실험을 무시하고 내성을 중시한다. 이를 '유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경험주의 이론이 있는데, 이 이론은 비관적 성향을 보이고 이 세계의 부분들이 분할되어 있음으로 인정하며 사변적 궁리보다는 실험을 더 좋아한다. 이를 '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한다.


p415 역설에 얽혀 있는 난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탐구되었으나, 이 난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일반적 의견 일치에는 아직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러면서도 철학자들에게 다시 한 번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과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철저히 음미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10. 현대철학


p418 전문화를 재촉하는 현실적 필요성과 압력은 젊은이들의 관심의 폭을 넓히고 또 그에 대해 이해력을 갖출 충분한 시간을 갖기도 전에 곧장 좁은 영역으로 밀어 넣어 버린다.


p419 지금까지 이 세계를 완전한 파멸로부터 구해온 것은 역설적인 말이지만 반복해서 나타난 통치자들의 무능이었다.

⇒ ? 통치자들은 영원히 무능하다. 그리고 그들의 무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민들의 무능과 의지가 이 세계를 완전한 파멸로 이끈다.


p421 철학에 대한 과학의 반발은 알고 보면 결국 콩트의 실증주의가 일으킨 결과였다.

실증주의와 관련해서 콩트가 가설을 설정하는 일을 배제하려 했는데 그는 자연의 과정이 설명될 수는 없고 기술될 수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p427 베르그송의 경우에는 논리 그 자체가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브래들리는 이성주의자라 할 수 있고, 베르그송은 비이성주의자라 할 수 있다.


p428 베르그송은 본능의 최고 형태를 직관으로 간주하는데, 이 직관은 이 세계와의 직접적 일치에 도달하는 일종의 정신 활동이다. 그는 지성은 경험을 왜곡하는 반면에 직관은 경험을 실제 그대로 파악한다고 본다.

⇒ 베르그송은 프랑스의 관념론 철학자로 생철학, 직관주의의 대표자이다. 그는 모든 사물의 근원으로서 '순수지속'을 주장하여, 과학적 인식에 의한 물질, 시간, 운동은 이 지속의 안에 보여지는 여러 형태들이며 지속의 고정화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지속 그 자체는 신비적인 직관에 의해서만 파악되고, 여기에서는 아는 활동과 실재를 창조하는 활동이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관념론적 생물학의 입장에서 생기론을 도입하여 생명의 자유로운 '창조적 진화'를 주장했다. 사회적 견해에서는 각 계급의 불평등이 '자연적인'상태이며, 전쟁은 '자연 법칙'으로 불가피하다고 했다. -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p440 서양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서양의 기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기술을 개발하였던 과학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이었다. 이 힘들은 그래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p443 야스퍼스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일과 자유롭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일은 바로 이 수준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자유가 이성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자유에 관해서는 합리적 설명을 할 수 없다고 본다. 또한 그는 자유롭다는 느낌이 불안한 느낌 또는 그가 키에르케고르에게서 빌려 온 용어로 말하면 두려움과 동반하여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즉 객관적 존재의 수준은 이성의 지배를 받는 반면에, 자아-존재의 영역은 기분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할 수 있다.

⇒ 야스퍼스는 현대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이다. 그의 사상은 정신병리적 현상 속에서 연구되었는데, 인간의 개성에 대한 강한 탐구가 나타난다고 생각하여 철학적 사고의 원천을 거기에서 찾았다. 합리적인 과학 연구란 참된 존재의 암호를 취급하는 것이고, 이 암호를 해독하여, 합리적인 지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세계를 지배하는 비합리성을 명확히 하는 것에 최고의 지(知)가 있다고 한다. 철학은 즉 '암호읽기'를 내용으로 하여, 최고의 지를 나타내는 것을 과제로 하고 있다. 이때에 '한계상황'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이것이 인간에게 자기 실존의 참된 의의를 드러내며, 이로써 세계에 대한 과학적 견해에서 벗어나 실존 그 자체에 직면하고, 또 신(神)에 대한 참된 경험도 하게 된다. 이렇게 실존에 눈뜬 인간의 교제인 '실존적 교제'가 진실한 인간 사회의 존재방식이라고 한다. -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p444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매 순간마다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니 인생에는 전통과의 연결이나 개인의 생활에 이미 일어난 사건과의 연결은 전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새로운 결단을 내릴 때마다 완전히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다.

⇒ 새로운 인생을 사는 방법, 늘 선택의 괴로움을 경험하면서.


맺음말


p454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문제로 삼으면서 주의를 기울였던 문제들 중의 하나는 이 세계의 일반적 특성들이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p455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건 오직 사람일 뿐이며, 사람이 명제를 언어로 진술할 때에는 오류에 떨어질 가능성이 항상 있는 법이다.

⇒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 또한 사람이다.


p456 인간이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 중의 하나는 이 세계 속에서 행동하는 일이다. 인간이 기울이는 과학적 노력은 수단에 관련이 있는 반면에, 행동에 관한 관심을 목적을 다룬다.


p459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어떤 방법도 강압에 의해 금지되지 않도록 탐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이지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사람에겐 살 가치가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 인간이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근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3. ‘내가 저자라면’


■ ‘서양의 지혜’의 목차 및 전체적 뼈대


옮긴이의 말

지은이의 말

 

머리말

1.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2. 아테네의 철학

3.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4. 초기 기독교 철학

5. 스콜라 철학

6. 근대 철학의 발흥

7.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

8. 계몽 운동과 낭만주의 철학

9. 공리주의 철학과 그 이후

10. 현대철학

맺음말

 

 저자인 러셀은 이 책의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철학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철학을 해보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과거 사람들이 철학을 어떻게 해왔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러셀은 위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그동안 철학이 전개되어 온 흐름에 따라 그 흐름을 주도한 철학자의 주장과 생애를 서술하고 있다. 간간히 철학가들이 주장하는 이론에 대해 러셀 자신의 개인적 평가를 담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처음 철학적인 질문이 제기된 것이 언제였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누가 그것을 제기하였는지에 대해 시작하며 러셀은 철학에 관한 사유와 논증들이 변화되고 이어져 가게 되는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지만 특정 시대에 특정 철학사조가 나타나는 이유는 당대의 사회문화적인 상황과 연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문화적인 상황들 속에 나타나는 철학사조의 전개가 철학가들의 개인적인 특성과 관심과 맞물려 이루어나가게 되는지를 러셀의 생각을 통해서 보게 된다.


■ 감동적이었던 장절

  

 글쎄. 전반적으로 시원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서인지 어떤 장이 감동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은 10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각 장의 내용전개는 동일한 패턴으로 흐르고 있기에 딱히 어떤 장절을 감동적이라 꼽기는 애매하다. 아마도 감동적이라 꼽는다면 특정한 철학가나, 특정한 철학사조에 대한 매력이 그 이유가 될 것이다.

 어쨌든 철학의 흐름이 당대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음으로 그러한 배경을 이야기하고 철학가들의 개인의 생애에 대한 아주 약간의 이야기들을 곁들이고, 그들이 제기한 주장에 대해 자신의 논평을 곁들여 이끌어 가는 것은 그 의견에 대한 수용을 떠나 보다 흥미로울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보완점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먼저 편집에 관하여 얘기하자면, 이 책은 1990년 출간되고 현재까지 계속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판본의 변화를 주고 있지 않다. 두드러진 여백의 미는 좋아 보이긴 하지만 그로 인한 작은 글씨체나 정리되지 않고 나열된 그림의 배치가 개인적으로는 책의 가독성을 높이는데 방해가 되었다. 교과서를 읽은 지 오래 되었지만, 마치 학생들 교재용 참고서라고 할까, 그런 느낌을 받는 책이었다. 내가 서양의 지혜에 대한 지식을 좀 더 흥미롭게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 수 있는 편집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사실, 러셀에 대한 기대가 많아서 이 책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나에게 서양철학에 대한 이해를 잘 이끌어 주리라는 기대. 그는 20세기 대표적인 지성이라 불리고 무려 4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그의 사고나 문장들에 잔뜩 기대를 가졌다. 아마도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족도가 덜 하다는 것은. 고등학교 때 배운 국민윤리 이상의 느낌을 가지지 못한 것은 나의 이해의 부족이 크게 자리할 것이다. 그 점을 감안하고라도!

 20세기의 지성이라는 러셀의 저작에 대해 감히 어떤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에 대한 보완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러셀이 과거의 사람들이 철학을 어떻게 해왔는가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이 책을 덮고 나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을 통해서 나는 특정한 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보다는 흘러가는 대로의 철학가들을 소개받기만 한 것이다. 아마도 부족함은 여기에서 오는 것일 게다. 좀더 깊이 있게 들어가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 더 이상 논의가 되지 않으니까 답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학가들의 주장인 듯 러셀 자신의 주장인 듯 덧붙여진 의견에 대해서도 좀더 명확하게 분리가 되었으면 하는데 이 역시 철학가들을 명확히 알지 못하기에 정확히 분리한다거나 다른 의견을 덧대지 못한다는 점이 있었다. 이 책 한권으로는 철학이 전개되어 온 흐름에 대한 윤곽을 잡아보기는 하겠지만 러셀이 드문 드문 보태는 자기 의견에 동조가 되지 않는 점은 분명하다. 만약 흡입력이 있었다면 러셀의 주장 모두를 고개를 끄덕이며 수용하고 있지 않았을까. 철학가들의 이론을 요약하고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철학가들의 사상에 대해 부족하게 이해된 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해까지 해주도록 러셀에게 바랐다면 지나친 것일까. 다만 이 책은 보다 깊이 있게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전단계로서의 개론서의 역할에는 충분했다고 본다. 다른 철학가들과 그들의 사상에 대해 찾아 읽어보기를 재촉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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