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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9일 11시 30분 등록

<서양의 지혜>


1 저자에 대하여:버트런드 러셀 1872.05.18~1970.02.02

버트런드 러셀.jpg


<러셀의 생애>

20세기 대표 지성,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라 불리는 버트런드 러셀은 영국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40여 권에 이르는 수많은 저작을 남긴 영국의 철학자, 수학자, 사회학자, 문필가였고 1950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평화운동과 반핵운동으로 세계인들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1872.05.18에 영국의 웨일즈에서 태어난 그는 3세에 엄마와 누이동생을 잃었고, 5세에 부친을 잃었으며 부친대신 친권자 노릇을 했던 할아버지는 그의 나이 7세때 사망을 했다. 이렇게 10살이 되기 전에, 죽음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전부터 삶의 가장 중요한 사람들과의 이별로 시작을 하였으니 인생의 출발이 순조롭다고는 할 수 없겠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유년시절에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을 금할 길이 없다. 보통 이런 큰 일을 겪은 사람들은 성장과 사회 적응부분에서 특이 현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이런 에너지를 왕성한 지적 욕구와 결합하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그를 부르는 수식어는 엄청나게 많은 편이다.

그의 유년시절에 영향을 미친 인물은 크게 두 명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한 명은 청교도이면서 다윈주의를 받아들이고 열린 사고를 했던 할머니 러셀 백작 부인이고 다른 한 명은 그의 형 프랭크이다. 러셀은 프랭크에게 유클리드의 저작을 소개 받았는데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고백했다. 러셀의 할머니는 그를 공교육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정교사의 손에 맡겼는데 그로 인해 대인관계를 풀어나가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고 고독과 외로움은 늘 그의 친구가 되었으며 자살도 여러 번 생각을 했지만, 수학에 대한 궁금증이 그를 죽음의 길로 인도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지적욕구가 강하다는 것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음을 러셀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당시 그의 취미는 성, 종교, 수학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고백했다. 수학은 그를 자살하지 못하게 만들어준 생명의 은인이고, 성에 대해서는 수 많은 여자들과의 염문과 불륜 그리고 4번의 결혼 생활을 통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은 삶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으며, 삶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세 부분이 죽은 상태다.” 라고 말했는데 세 부분은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하다. 그는 18세에 무신론자임을 공포했는데 종교에 대한 그의 어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저명한 인물들 중 대다수는 기독교를 불신하지만, 대중에게 그 사실을 숨긴다. 혹시 수입원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인류에게 커다란 해악을 저질렀으니, 모든 두려움은 나쁘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내가 죽으면 썩어 없어질 뿐 나의 에고 따위가 남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내 나이는 젊지 않지만 삶을 사랑한다. 그러나 내가 허무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공포로 몸을 떠는 모습에 대해선 경멸한다.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 수 있는 건 그것에 끝이 있기 때문이며, 사고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제 가치를 잃는 것도 아니다.”

그는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 여권신장을 위해서도 애썼으며 이때 그의 반대편에 서 있는 여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남자들이 자기들의 지위를 잃을 까봐 위협을 하는 야만적 행동은 이해할 수 있으나, 여자들이 자신들의 모욕을 그대로 지속해나가려고 하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았다."라는 표현에서 그의 심정과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의 생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872년 웨일즈에서 출생

1890년 켐브리지 대학에 입학

1893년 켐브리지 대학 최우등 졸업

       앨리스와 결혼

1895년 선임연구원

1910년 켐브리지 대학에서 강의

세계1차대전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미친 영향 조사하기 위해 블라미르 레닌과 만남

1921년 앨리스와 이혼 후 도라와 결혼 (자녀 존 콘래드 러셀 백작, 캐서린 제인 러셀 태어남

1927년 실험적으로 비콘힐 학교를 설립

1932년 러셀이 학교 운영에서 손을 뗀 뒤로도 도라는 1943년까지 이 학교를 운영

1932년에 별거하였으며 결국 이혼

1934년 퍼트리샤 스펜스와 세 번째로 결혼. (자녀 콘래드 서배스천 로버트 러셀 백작이 태어남)

세계2차대전 히틀러를 보며 민주주의에 대한 영구한 위협을 느끼고 정치적으로 상대적인 평화주주의자 제창. 1945년 원자폭탄 발명 후 수소폭탄의 발명을 예언하고 핵무기 반대운동, 세계평화운동을 벌임.

1950년 노벨문학상 수상

1952, 네 번째 아내 이디스 핀치와 결혼

1967~69년 세 권 분량의 자서전 출간

1970년 생을 마감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를 한 시간은 적어도 12년이다. 게다가 요즘은 유치원과 대학교육, 대학원까지 하는 사람이 많으니 인생의 많은 부분을 교육에 올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사교육까지 더하면 부모들의 허리가 휘청한다는 말이 당연할 수 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음악, 체육, 미술등 인간으로서 꼭 필요한 것들을 학교에서 알려준다. 교육의 질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 보면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행태를 하고 있는 것들도 많이 눈에 띈다. 가령 획일화된 교육,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의 수업시간이 대표적인 그것들이다. 그렇기에 많은 시간을 교육에 투자하고도 무엇인가 헛헛함이 느껴진다. 내가 원하는 교육이 아니고 나를 드러내는 교육이 아니라 일방적인 틀에 나를 끼워 맞춰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의 실질적인 공부는 사회에 나와서 시작이 되었다. 처음에는 바쁜 일상에 전혀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에 잊혀졌던 헛헛함이 느껴졌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나를 알아가기 위한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공교육에서 볼 수 없었던 교육의 사각지대를 직접 찾아나서야 하는데 요즘 와서 드는 생각은 그 사각지대 안에 철학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획일화된 교육 때문에 어쩌면 사고하는 방식을 점점 잊고 있는데 반해 철학은 통찰력과 직관력 그리고 사유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공교육에서도 이런 부분이 들어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 아쉬움은 늦게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기에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0 철학자들이 철학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10 과학은 알려진 사실을 설명하고 철학은 근본적 물음에 관해 사색한다.

12 철학은 일찍이 그리스 사람들이 그랬듯이 순전히 가보고 싶어서 하는 탐험 여행처럼 오직 알고 싶어서 시도하는 모험이다.

>세계에 대한 나의 막연한 호기심과 철학자들의 호기심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12 철학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철학을 해보는 것뿐이다.

16 철학과 과학은 누구나 잘 아는 바와 같이 그리스 사람들이 창조하였다.

>그들의 어떤 점이 철학과 과학을 창조하게 했는지 궁금하다. 경제적으로는 많은 고통을 겪고 있고 실패한 정부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만 세계를 재패하지 못했으면서도 그들의 문명은 정복자를 정복시키는 힘을 갖고 있었다.

20 그리스 정신은 질서 정연하고 합리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마구 날뛰는 본능적인 다른 면이 있다. 전자는 철학과 예술과 과학을 일으켰다. 후자는 생산력을 숭배하는 의식에서 연유하여 매우 원시적인 종교로 나타나고 있다.

>뻔하지 않은 그들이, 양 극단을 갖고 있는 그들이 매력적이다. 이 문구를 보니 그리스의 신들의 행동이 조금 더 이해가 간다.

20~21 언제나 공감이란 격렬한 감정과 정열에 들뜨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법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본질이 카타르시스, 즉 감정을 정화시키는 일이라고 설명한 건 정곡을 찌른 말이다.

21 니체는 그리스 정신의 두 요소를 아폴로적 원리와 디오니소스적 원리라고 불렀다.

>이보다 더 잘 표현된 말은 찾아보기 힘들 듯 하다.

21 지적 혁명에는 진리와 아름다움을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21 이 격렬하면서도 순수한 호기심-즉 열정적으로 공평무사한 탐구에 몰두하는 마음-이것이 고대 그리스 사람들로 하여금 인류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공평무사한 탐구….인간이라면 갖게 되는 관심과 호기심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21~22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갈파한 바에 따르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혼자 사는 게 아니고 사회 속에서 산다. 사회는 아무리 원시적인 수준의 사회일지라도 어떤 종류의 조직을 갖추고 있게 마련인데, 질서라는 생각은 이 사회 조직으로부터 자라나온 것이다. 그래서 질서하면 다른 어떤 질서보다도 앞서는 것이 사회적 질서이다.

23 그리스 철학이 전개되어 온 단계들을 살펴보면 어느 단계에서나 여러 가지 이원론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그리스 사람들의 사상에서 이 구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원론은 선과 악의 이원론과 조화의 투쟁의 이원론이다. 다음에는 현상과 실재의 이원론이 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대단히 활기를 띠고 있는 이원론이다. 이에 더해서 정신과 물질을 가르는 이원론, 자유와 필연을 나누는 이원론도 있다.

>어느 곳보다 이원론이 발달하고 이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보면 역시 그리스 민족의 양면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4 사실은 그리스 철학만이 지닌 매우 돋보이는 특징들 중의 하나는 이와 같은 철학의 영역들의 벽을 허물어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는 방식에 있다.

29 철학에서 참으로 중요한 일은 답을 꾸며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물음을 제기하는 일이다.

>물음을 제기하면 그에 대한 답을 찾게 되는 노력을 하게 되지 않을까?

31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밀레토스 사람들에게는 철학하는 일이 현실 생활에 대단히 유용한 일이었으며, 철학자들은 현실의 문제를 처리하는 행동가일 수 있었고 또 실제로 행동가로 활약했었다.

>이렇게 실생활에서도 유용한 철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32~33 인생을 학문적 지식에 의해 살아간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이 심성을 순회하는 데 사용했던 강력한 수단은 음악이다. (중략) 그래도 현의 길이를 조절하여 조화로운 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피타고라스 이후로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적 사고에 중심 역할을 했던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중략) 피타고라스가 음악에서 발견한 몇 가지 수학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모든 사물의 근본의 수에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기는 아주 쉬웠을 것이다.

>수학과 음악의 관계가 궁금했었다. 별 연관성이 없어 보였지만 뭔가 보이지 않는 끈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바로 이것이었나 보다.

33 그리스 사람들은 헤로도투스의 말에 따르면 탐구 그 자체를 위해서수학적 문제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피타고라스가 그 중에서도 최초의 인물이었다.

36 이들의 신앙이 지닌 이 아폴로적 성격에 의해서 서양의 이성주의적 신학이 동양의 신비주의와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초기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으로 올림푸스 산의 신들을 믿는 종교가 밀려나게 되고, 그 대신 새로운 종교적 신념들이 발전하게 되었다.

>철학이 삶에 주는 영향이 지대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지금과 많이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이처럼 삶에 밀접한 철학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리스였기에 위대한 철학자들이 배출되었을 것이다.

37 그렇긴 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후세에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로 표현 된 생각, 즉 사람은 알고 있는 걸 너무 자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로 예시하고 있다. “신은 인간을 어린애로 본다. 그것도 인간이 낳은 어린애로 본다.”

37 (헤라클레이토스) 우주에 관한 이 생각은 명백하지 못할 때가 잦은 데 자연은 숨기기를 좋아한다는 그의 말이 그 이유를 알려준다고 하겠다. (중략) 그는 숨은 조화가 노출된 조화보다 더 훌륭하다는 말을 남겼다.

38 (헤라클레이토스) “사람은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새로운 물이 계속 흘러 오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는 같은 강에 들어가면서 들어가지 못하며, 우리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못한다.”

39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개념을 이어받아 사물은 저마다 제 나름의 한도를 잃지 않음으로써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원래의 그것과 똑 같은 사물로 유지된다고 설명하였다.

40 (헤라클레이토스) “헛된 짓인데도 저들은 피로 몸을 더럽힘으로써 자신을 정화시킨다고 여긴다. 이런 짓은 진흙탕에 들어가 흙탕물로 발을 씻는 짓이나 매한가지다. 누구나 이런 짓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게되면 미쳤다고 간주해 버릴 것이다.”

>2,500년 전의 철학자가 한 말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많은 교육을 받아 인간이 더 똑똑하게 진화한 것 같지만 아직도 도처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타인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쉽지만 자신을 객관화 시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일인듯하다.

43 (파르메니데스)다시 말하면 사고의 대상이 될 수 업는 것은 도저히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에 존재할 수 있는 것만이 사고의 대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존재의 대상이 궁금하다. 어디까지가 존재의 대상에 포함되는 것인지…?

45 원자론자들은 파르메니데스로부터는 불변의 기본 입자라는 생각을 받아들였고,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는 끊임없는 운동이란 생각을 받아들였다.

>철학이 과학에 미친 영향

45 인류의 지성의 발전이 이처럼 양극으로 대립하는 두 입장을 끊임없이 탐구해 본 다음에 나타나는 이런 식의 종합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건 확실히 옳은 말이다.

49 이처럼 어떤 사람의 신념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일은 아주 흔히 일어나는데, 특히 자신이 신념들에 대해 비판적 검토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자기 객관화는 항상 필요한 것 같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등에 대한 나침반을 소지해야 한다.

49 하지만 철학자들의 생각의 상호 연관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연대에만 얽매이지 말고 넘어서야만 한다.

51 아시아에서는 통치자의 권위가 하늘이 내려주었다고 여겨지는 법률에 의해 옹호되는데 반해서, 그리스 사람들은 법률이란 인간이 인간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어떤 법률이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시민들의 합의에 따라 바뀔 수 있었다.

>멋진 생각. 만약에 세계의 중심이 동양이 되고 모든 것이 동양의 체계나 사고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른 것은 몰라도 정치부분은 그 후진성을 면치 못했을 것은 분명하다.

53 사람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도 가지고 있으므로 둘 다 수련을 통해 다듬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훌륭하다.

54 그리스 문명은 조화의 원리를 근거로 하고 있으면서도 내부의 분쟁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결국은 이 사실이 그리스 문명의 위대성을 더 한층 놓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 문명은 끝내 그리스 단일 국가를 이루어 존속시킬 수는 없었지만, 그리스 땅을 정복했던 사람들을 문명에 의해서 모조리 정복해 버린데다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명의 뼈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역사를 볼 때 가장 감동스러운 부분이다. 수 많은 침략을 당하고 전쟁을 치렀지만 문명으로서 정복자를 정복해버린 이들의 역사에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교해 볼 때 수없이 많은 짓밟힘을 당하고서 빼앗긴 억울한 역사의 이면에는 무엇이 존재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스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훌륭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면 문제가 달라졌을까? 아니면 동양의 특성이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저급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까?

59 건강이란 서로 대립하는 것들 사이에 성립하는 일종의 균형이라고 보는 의학 이론도 이 원리로부터 나온 것이다.

63 이처럼 똑 같은 논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사용하는 논증을 무한 후퇴 논증이라 한다.

78 (소크라테스) 강직증성 집념에 빠져 버리는 증세

81 (소크라테스) 그는 언제나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참다운 지식이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스스로 참다운 지식을 찾으려고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건 지식이 부족해서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니까 사람이 저지르는 악행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지이다. 따라서 최고선 즉 사람의 가장 훌륭한 상태인 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반드시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덕은 곧 지식이다. 최고선으로서의 덕과 지식을 연결시키는 건 그리스 철학 전체에 걸쳐 보이는 특징이다.

>그래서 무지를 탈출해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물리적,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행하지 않는다 하여도 나의 어떤 행동이 누군가에는 폭력성을 갖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81 물음과 대답을 계속하면서 주제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이 방법을 변증이라 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이 변증이란 방법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니지만 변증의 대가였다.

>나도 이런 변증으로 수업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83 (소크라테스) 그는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의 무지를 폭로하고 다니는 동안에 적을 많이 만들게 되었다. (중략) 소크라테스는 지혜로운 체하는 사람들의 가면을 벗기는 일에 일생을 바치게 되었다.

83~84 소크라테스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자식들을 내세워 동정을 구하지 않았다. 그는 재판관들에게 은전을 구걸하지 않고 진실을 기어이 확신시키려고 노력하였다.

84 죽음은 꿈조차 없는 잠이거나 아니면 다른 세상에서 올페우스, 무사이오스, 헤시오도스, 호메로스와 더불어 아무 방해도 없이 대화하면서 사는 생활일텐데, 거기서는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진 않을 거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하고 있다.

85 (플라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당리당략이 판치는 정치판에서는 누구도 자립적이고 정직한 인간으로서 오래 살 수 없다고 보게 되었던 것이다. 플라톤이 철학에 일생을 바치기로 마침내 결심을 굳힌 것은 이 사건(소크라테스의 사형) 이후의 일이다.

85 아카데미아의 체제는 플라톤이 여행중에 보았던 남부 이탈리아의 피타고라스 학파가 세운 여러 학교를 본따서 조직하였다. 아카데미아는 서양에 중세 이후로 나타난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의 전신이었다.

>위대한 플라톤! 그래서 플라톤이구나! 이 대목에서도 느끼고 간다.

86 아카데미아의 교육 과정의 목적은 사람들의 관심을 오관으로 경험하는 세계 속의 무상한 변화로부터 그 배후나 근저에 있는 불변의 구조로 전향시키는 것, 플라톤의 말로 다시 표현하면 생성의 세계로부터 존재의 세계로 전향시키는 것이었다. (중략) 이 모든 과목은 결국에는 변증의 규범들을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있었으며, 교육에 있어 참으로 강조되어야 할 점은 바로 이 변증의 규범들에 관한 연구라고 보았다. (중략) 대학의 고유한 임무는 학생들로 하여금 비판적으로 음미하는 습관을 익히게 하고, 어느 주제를 대하든 활용할 수 있는 규범들과 기준들을 이해하도록 하는 일이다.

>내가 잘못 배웠을까? 우리 나라 교육제도가 잘못 되었을까?

86 정말 중요한 문제는 아카데미아의 교육 목표 즉 인간의 정신을 스스로 이성을 발휘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현 시대는 교육의 목표와 반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모든 생활 여건이 생각하지 않도록 변하고 있고, 직장에서도 그곳에서 원하는 이상의 생각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점점 인간을 폐쇄된 우리에서 사육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87 플라톤은 교과서를 쓴 적이 없으며, 자신의 철학을 하나의 고정된 체계로 표현해 달라는 요구를 항상 거절하였다.

91 먼저 철학자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보기로 하자. 이 말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철학자는 아니다. 따라서 이 정의는 너무 넓으므로 철학자란 진리에 대한 통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좁혀야 한다.

93 소크라테스의 형상론이 성립하기 어렵게 만드는 핵심적 남점은 형상과 수많은 개별자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형상은 하나뿐인데 반해서 개별자는 많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형상과 개별자들 사이의 관계를 참여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설명하지만, 어떻게 개별자들이 형상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알기란 매우 난감한 문제이다.

96~97 음악이나 교양을 가르치는 이유는 신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이다. 오늘날 영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신사라는 개념은 플라톤에서 유래한 것이다.

>플라톤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구나!

98 누구나 공포와 유혹을 둘 다 물리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관리자로서의 자격을 제대로 갖추게 된다. 관리자들의 사회 생활과 경제 생활의 방식은 엄격한 공산주의라고 할 수 있다.

98 플라톤은 정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거짓말을 해도 좋다는 권리를 허용하였다.

>공공의 이익을 누가 판단할 것인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99 플라톤이 생각해 본 이상 국가를 그리고 있는 <국가>는 플라톤의 정치 이론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온갖 종류의 무시무시한 악명을 붙이는 근거가 되어 왔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말로만 듣던 이상국가를 처음으로 들여다 보게 되었는데 소름끼칠 정도로 끔찍한 부분이 있다. 왜 이런 구상을 하게 되었을까?

100 이 사실은 단지 교육이 흔히 기대되는 것만큼 어떤 병이든 다 고치는 치료술은 못 된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100 플라톤이 마지막 대화편 <법률>에서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철학자인 왕을 도저히 찾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정치 체제는 법치 아래서 일인 통치와 다수 통치를 결합한 체제라는 것이었다.

102 교육이 그저 단편적인 지식을 줄줄 쏟아 넣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102~103 학문의 본산으로서의 대학은 학생에게 자립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 주고, 지금까지 그가 지녀온 편견과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는 탐구 정신을 함양시켜 줄 때에만 본래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립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져 버린 곳에서는 어김없이 선전과 권위주의라는 사악한 잡초가 끊임없이 자라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판을 억누르는 처사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더 심각한 잘못이다. 비판을 억압하는 처사는 그 사회에 활력있는 통일된 목표를 창조해 내기는커녕 국가라는 정치적 조직체에 맥빠지고 부서지기 쉬운 획일성을 강요할 뿐이다. (중략) 그렇다면 교육은 교사의 지도 아래 학생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가? 씁쓸할 뿐이다.

103 소피스트들은 단지 쓸모있는 지식을 공급하는 상인일 뿐이고, 저들의 가르침은-그걸 설령 가르침이라 치더라도-지극히 피상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피스트! 깊이가 부족했구나!

105 교육은 지식에 도달하는 과정이며 그래서 훌륭한 삶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무지는 자유로운 삶 즉 지식과 통찰에 의해 성취되는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하겠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앎이 우선되어야 자유의 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105 오늘날 무미건조한 교과서식의 서술이 범람하고 있는데, 이러한 논술 방식은 어떤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철학적 주제를 대화체로 풀어 나가는 글은 플라톤이 처음 시작한 이래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모방했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다. 이 현상은 유감스러운 일인데, 그 까닭은 우리 시대의 철학적 저술이 보여주는 문체가 가능한 최성의 문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화체의 글은 다른 어떤 형태의 저술보다도 저자에게 고도의 문학적 훈련을 요구한다.

108 정말이지 정통 사상의 뿌리를 찍어 버리는 이런 이단적 사상가들이 그런 운명에 처한다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이단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버티고 외칠 수 있는 용기와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108 소크라테스는 법률은 설혹 부당하다 할지라도 법치의 평판이 나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123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최초로 플라톤을 비판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이 언제나 플라톤을 제대로 이해하고 진행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123 역사적으로 볼 때, 논리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은 오히려 장애물이었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 주된 원인은 추종자들 대부분이 그의 이론에 대해 노예처럼 맹종하는 교조주의적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129 아리스토텔레스가 후세에 귄위로 군림하게 된 결과 삼단논증은 2천여 년이나 줄곧 논리학자들에 의해 논증의 유일한 유형으로 인정받았다.

>삼단논증의 시발점이 아리스토텔레스였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140 윤리적 문제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물을 때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목적이 이성혼의 행복에 있다고 보았으며, 다시 이성혼의 행복은 이성의 인도에 따라 덕스러운 활동을 능동적으로 끊임없이 해나가는 삶이라고 보았다.

142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이란 자기애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연장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당신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듯이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건 당신 자신의 이익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다소 독선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성격 때문에 상처를 입고 있다고 하겠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이익이라는 말이 걸린다. 그렇지만 의도하지 않은 생각 속에 이 뜻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147 비극은 훌륭하고 완벽한 것이어야 하고, 길이가 적당해야 하며, 또한 관객에게 두려움과 연민의 공감을 일으켜 영혼을 깨끗이 씻어 주어야 한다. 비극의 완벽성에 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발단, 전개, 결말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중략) 비극은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는 의미로 완벽해야 한다. 비극은 길이도 문제인데, 작품이 너무 길면 관객이 뒤척거리게 되고 또 너무 짧으면 인상을 주지 못하게 된다.

149 고대의 과학과 철학의 많은 원전을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던 이 도서관이 기원전 47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군대가 알렉산드리아를 불시에 습격했을 때 화염 속에 쓰러져 버린 건 불행한 일이었다.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전쟁이란 누가 하느냐를 막론하고 그 자체만으로 최고의 악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가 나은 유일한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있고 그의 업적은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하지만 그 이면은 여느 전쟁처럼 끔찍한 그림자를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155 기원전 4세기 초엽은 대왕이 이끄는 제국은 두 발이 약한 거인이라는 걸 보여주었던 시기이다.

159 자유인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모험적인 직업 군인이 되는 것이었고, 군대에서 공훈을 세워 크게 돈벌이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그들의 희망이었다.

>아마 얼마전까지만해도 군인은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주 몇 개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예전보다 생활이 안정된 곳에서 살다 보니 군인이라는 직업이 빛을 잃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런 평화의 시대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궁금하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전쟁을 겪지 못한다면 나는 교복자율화와 두발자율화의 첫 세대이면서 일생 동안 전쟁을 겪지 않은 행운아에 속할 것이다.

159 마케도니아가 추진한 영토 확장의 결과로 이처럼 자신만만한 인생관은 한꺼번에 부서졌다. 당시의 철학은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염세주의와 불안감을 띠는 경향이 있다.

170 그러나 역시 박해란 언제나 박해하는 쪽이 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느 사회건 질서가 확고하게 잡혀 있고 자신만만하다면 이교도를 박해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구나! 이 단순한 진리를 이제 와서 깨닫게 되는구나!

173 대규모의 정부와 법률 그리고 행정 분야가 바로 그것이다. 이 부분에서 로마는 그리스 사람들의 사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81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적 전통은 본질적으로 계몽과 해방을 추구한 운동이다. 그리스 철학이 목표로 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무지의 질곡에서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은 이 세계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게 함으로써 미지의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한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을 계속 유지시킨 것은 로고스이고, 그리고 철학이 열망하는 것은 최고선의 형상의 인도를 받아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182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철학이란 학문이 오늘날처럼 대체로 종교로부터 독립해 있었다.

209~210 유럽이 수백 년 동안 투쟁의 시기를 보낸 후에 안정의 시기로 접어들었을 때 학교를 세우고 운영한 사람은 모두 성직자였다. 스콜라 철학은 문예 부흥 운동이 일어날 때까지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고 지속되었다.

246 그리스 사상과 중세 사상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사람은 누구나 당연히 그리스 사상에는 죄의식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의 눈에는 사람이란 저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죄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생활은 신들의 변덕으로 인해 구겨져 버릴 수 있는 불안정한 것으로 보았음에 틀림없을 것 같다.

247 왜냐하면 신앙이 이성을 초월하기는 하지만, 신앙에게는 이성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신앙을 변호하도록 함으로써 최대한 신앙을 강화시켜 의심의 공격을 물리치는 일이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중세 시대는 철학이 신학의 시녀가 되어 버렸다.

249 스콜라 철학자들은 종교적 교리에 가능한 한 이성적 설명을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중에 뛰어난 발명의 재주와 세밀한 분석력을 발휘한 경우가 흔하다. 이들이 장기간에 걸친 이러한 노력은 언어라는 토론의 도구를 예리하게 다듬어 놓게 되었는데, 이 도구들은 뒤이어 등장한 문예 부흥 시대의 사상가들이 물려받아 사용하였다. 아마 스콜라 철학이 이루어 놓은 가장 가치 있는 성과는 이것일 것이다. 스콜라 철학이 빠져 있었던 잘못은 경험적 탐구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50 문예부흥 운동은 전체적으로 보아 인생을 대하는 일반적 태도에 직접 영향을 주었던 반면에, 인본주의 운동의 영향은 사상가들과 학자들에게서만 살아 유지되었다.

253 인쇄술의 발명이 토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치와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쇄술의 혜택이 의심스럽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해 두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허위도 진리도 쉽게 인쇄되는 그만큼 쉽사리 인쇄될 수 있고, 그래서 허위도 진리가 쉽게 퍼지는 그만큼 쉽사리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의 자유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사람을 잘 믿고 활자로 된 것은 더더욱 믿어버리는 경향은 지식에 대한 열등감이 근원일까? 최근 들어 믿기 전에 한 두 번 더 생각해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는데 그 이면에는 씁쓸함이 존재한다.

257 문예 부흥은 사람들을 교회의 독단적 교리로부터 해방시키기는 하였으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종류의 미신으로부터 해방시키지는 못했다. 점성술은 교회가 끊임없이 저지해 온 미신인데, 이 시기에는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배운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광범위한 인기를 얻었다.

>미신은 종교보다 오래 되었다. 미신이란 말 자체도 사실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만들어 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고 우리의 DNA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처럼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260 겉과 속이 다른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신조는 치밀하게 검토되지 못한 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최대한 실행에 옮겨졌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했을까? 아마도 마키아벨리의 심정이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었으리라.

262 에라스무스는 젊은 시절에 겪은 이런 경험들 때문에 자기에게 억지로 부과되었던 엄격하고 상상력이 없는 스콜라 철학에 대해 일생 내내 증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자유의지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인생의 책임전가를 남에게 돌리지는 않을 테니까.

263 에라스무스의 영향이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것은 교육 분야이다. 최근까지도 서유럽의 견해가 우세한 사회라면 어디서나 중등교육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인문 교육은 그가 전개했던 문학 활동과 교육 활동의 덕을 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알게 되는 점은 철학이 우리 생활과 역사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의 철학의 비중과 다른 점이지 않을까?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철학, 역사 등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실정인데 지금 불고 있는 인문학의 붐이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외침이 관심과 마음을 얻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64 그 후 1534년에 왕을 새로운 교회의 수반으로 세우는 수장령이 선포되었을 때 모어는 선서를 하지 않았다.

>나에게 이런 소신과 소신을 굽히지 않을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주변의 소리에 휩쌓이지 않는.

265 이처럼 턱없이 부자연스러운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포자기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한 생활이 계속되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점은 이상 국가라는 나라들이 공통으로 지닌 특징이다.

>넌센스다. 이런 이상국가를 꿈꾸고 있다니이런 나라를 건설하게 된 바탕이 궁금하다.

266 모어 같은 사람들이 종교 개혁에 대한 지지의 표명을 보류하면서 한탄했던 것도 종교적 충성에 덧씌워지는 이 새로운 정치적 성격이었다. (중략)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다른 신조의 출현에 뒤따라 일어나는 폭력과 투쟁에 대해 개탄했다.

>필요악이 또 필요악을 부를 때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272 위대한 과학 혁명이 시작된 것은 이와 같이 고대의 사고 방식이 부흥된 결과였다.

274 그러나 한편으로 현상을 무시하는 일이 위험하다면, 다른 한편으로 현상을 맹목적으로 기록하는 일도 터무니 없는 사변이 그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276 물론 갈릴에오가 지신의 과학적 사상을 취소한다고 말한 것은 거짓 연극에 지나지 않았지만, 종교 재판소는 이탈리아에서 그 후 몇 세기 동안 과학적 탐구를 짓밟아 뭉개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280 가설로부터 구체적이면서 시험 가능한 상황을 이끌어 내는 수학적 연역이 없다면 과연 우리가 시험해 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낼 방도가 전혀 없다.

>나에게는 우주인의 말처럼 들린다. 일상 생활에서는 수학이라는 것이 거스름돈 계산만 잘하면 되므로 입시를 위한 것 말고는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보이지 않는 성을 이루고 있는 느낌을 든다.

285 (데카르트) 이성 능력의 개인차는 단지 어떤 사람들이 이성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훌륭하게 사용한다는 사실로 인해 생긴다는 것이다.

291 “본인은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 보면 철학을 진전시키는 일이 중단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본인의자신의 철학이 기성 종교를 뒤엎으려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어느 선에서 철학하는 자유를 억제해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아직도 철학 교수직보다 더 좋은 행운을 바라고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본인의 입장에서 지금과 같은 생활이라야 가장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평온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강의하는 일을 삼가 하고자 한다는 걸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스피노자가 진정으로 현명하게 자기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300 한 방울의 물은 말하자면 우리 자신이 매일 살아가고 있는 우주보다 규모는 작으나 그 나름대로 완전한 우주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한 방울의 물이 그렇듯이, 사람마다 각자의 우주를 창조하며 사는 것 같다. 그 우주가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지만 이를 탓해서도 크기를 논해서도 안될 것이다.

304 연습이 완전을 낳는다.

>감동적인 말이다. 나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어떤 부분은 평범 이하를 달리고 있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구원을 하면서 접하는 책들의 내용은 내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많은 사람을 만나며 경험도 적지 않게 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단순의 힘은 이런 말을 맹목적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말의 진실이 아니라 완전을 낳을 만큼 연습의 연습을 할 마음에 준비와 각오가 되어있느냐 라는 것이다.

305 “진리는 사람이 이룩한 것이다.” 인간의 지식의 지평은 활동의 영역만큼 확장된다.

308 따라서 자유주의의 요지는 관용이었다.

311 자유주의는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을 죽어가는 중세의 전통이 그때까지 여전히 매달려 있던 정치적 폭정과 종교적 박해, 경제적 횡포와 지적 억업과 같은 모든 압박하는 권위로부터 해방시켰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는 극단적인 개신교 교파들의 자파 신앙에 대한 맹목적 열정에도 반대하였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이런 문제에 대한 교회의 권위를 거부하였다.

312 그렇지만 19세기에는 개인주의 신조가 정열에까지 확장되었는데, 특히 낭만주의 운동의 물결을 타고 강자의 외고집을 찬양하는 여러 가지 힘의 철학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이 결말은 실은 자유주의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자기 기만에 빠져 있다고 하겠는데, 그 이유는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큼 야심만만한 다른 사람의 도전이 두려워서 성공에 이르는 사다리를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353 왜냐하면 칸트 이전의 모든 윤리학이 의지는 외부의 영향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항상 가정했었음에 반해서, 칸트는 의지가 제 자신을 다스린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354 상당히 준엄한 이 선언은 실제로는 너에게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 바를 네가 남에게 해주라는 가르침을 과장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377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 생각만을 니체 사상의 전후 맥락에서 떼어 내어 부각시키면서 그를 20세기에 등장한 정치적 독재자들의 대변인으로 간주했다. 물론 독재자들이 니체로부터 상당한 암시를 받았다는 건 인정해야 하겠지만, 니체를 너무나 피상적으로 이해한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을 니체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온당하지 못한 일이다.

>’피상적으로 이해하기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한 악의 근원을 무지라고 한 그 말이 아닌가 싶다.

379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자유인은 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루려고 분투 노력해야 할 목표는 신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인간이다.

>나는 점점 니체가 좋아지려고 한다. 그의 자유인에 대한 사상과 최고 수준의 인간이 호감이 가는 이유는 자유주의에서 살고 있으나 자유롭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최고 수준이라는 수식어를 탐하기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383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거대한 철도망이 유럽과 미국에 깔리게 되었고, 같은 시기에 바다를 항해하는 배도 증기선으로 바뀌었다. 이 모든 혁신적 기계의 발명은 그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 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그렇지만 대체로 보아 인간은 보수적 동물인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의 기술적 재능의 발달이 정치적 지혜의 터득을 앞질러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 인해 생긴 불균형을 인류는 아직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삶은 빨라지고 편리해졌지만 뭔가 조화롭지 못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같은 생각일까?

385 한편 이와 달리 교육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존의 사회 질서를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질서로 믿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입식 교육은 때로 아주 효과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하게 문제가 되어 있는 상황을 공평한 태도로 폭넓게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를 정확하게 처리할 수 없다고 주장한 점에서는 개혁가들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일에는 실제로 상당한 교육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스콜라 철학이 일부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것처럼 주입식교육 방식이 나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의 시야와 사고력이 제한당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를 알수록 뒤통수를 맞았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389 존 스튜어트 밀은 말년에 나는 한때도 소년인 적이 없었다. 크리켓조차 전혀 해본 적이 없다고 불평했다.

>지금도 밀처럼 사는 아이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진심으로 불쌍하다. 인생이 어찌 공부만 하다 가리요. 공부는 평생을 해야 하기에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될 터인데. 아마 제임스 밀이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가장 극성스러운 강남의 엄마가 되었을 것 같다.

391 맬더스는 결혼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론을 뛰어나게 성공적으로 만족시킨 사례를 몸소 보여주는데, 그는 4년 동안 세 자녀만을 두었다.

>버틀런드 러셀의 유머코드가 이것이구나! 덕분에 한 번 빵 터지고 간다.

396~397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이 세계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해 왔을 뿐인데, 진정한 과제는 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중략) 그는 진리란 신중한 사색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실천에 의해 증명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마르크스는 사색에 의해 진리를 파악한다는 생각은 부르즈와의 개인주의의 결합해 있다고 보았으므로 물론 몹시 싫어했다.

416~418 그래서 과거에는 한 사람이 몇 가지 학문에 통달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한 사람이 단 하나의 학문을 철저히 파악하기조차 점점더 어렵게 되어 가고 있다. 지적 탐구의 영역이 계속 더 좁은 영역으로 세분되었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는 참으로 언어의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건전하지 못한 사태는 현대 기술 사회의 성장을 촉진시켰던 여러 가지 변화가 일으킨 결과이다. (중략) 전문화를 재촉하는 현실적 필요성과 압력은 젊은이들이 관심의 폭을 넓히고 또 그에 대해 이해력을 갖출 충분한 시간을 갖기도 전에 곧장 좁은 영역으로 밀어 넣어 버린다. 이 모든 현실의 결과로 각기 다른 탐구 분야에 전념하고 잇는 사람들이 만나면 의사소통이 매우 어려운 경우가 흔하게 되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런 이유도 있었구나. 지식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금 이 시대에서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은 벅찬 삶임을 알겠다.

439 (세계 2차대전) 이 전쟁은 무력이 기술적으로 더욱 강화된데다가 전쟁에 얽혀 있는 이데올로기적 동기도 더욱 강경했으므로 결국 군대들 사이의 전투가 아니라 국민들 사이의 총력전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군인들은 물론이고 시민들이 역시 이 전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을 생각하면 내가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 부끄러워진다. 인간의 생존권조차 보장되지 않았던 시대를 삶의 터전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선조들의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의 삶이 없었다면 나의 존재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항상 마음에 불편한 투정이 샘솟는 것은 무엇일까?

439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기술의 발전에 커다란 자극을 주어 온 두 가지 중요한 힘은 교역과 전쟁이었다.

453 하지만 아무리 방대한 책일지라도 단지 한 권의 책을 읽고 전문가가 될 수는 결코 없는 법이다. 정말이지 어떤 주제에 관해 그저 많이 읽기만 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주제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 건 아니다. 어떤 주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과 더불어 반드시 필요한 일은 그렇게 모은 가지각색의 자료에 대해 상당히 치밀하게 반성하는 것이다.

>나는 위에서 말한 미련한 짓을 대표적으로 한 사람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끊어질듯말듯한 희미한 끈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왔으며, 앞으로도 갈 것이라는 믿음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이다. 편협한 세상에서 내가 보는 것이 전부인양 착각을 일삼고 산 시절이 부끄럽기는 하나 필요조건이었다면 그리고 남들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면 어쩌겠는가? 지금에 감사할뿐이다.

453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이 일을 통해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른 서양의 문화적 전통에 흐르는 연속성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 뭐가 뭔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나지만 러셀의 목표는 나에게 적중했다. 철학이라는 분야의 역사를 한번 훓

었다는 것과 그 뿌리가 깊다는 것, 그리고 일상생활에 철학자들이 끼친 영향력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공감하게 되었다.

455 인간이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 중의 하나는 이 세계 속에서 행동하는 일이다.

>철학의 영역과 역할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458 지식과 관련해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람은 반드시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그것이라 하겠다.

>결국은 철학을 하라는 말이군.


3 내가 저자라면

개인적으로 요즘 철학에 관심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더 많이 알지 못해 깊이 공감하

는 것은 힘들었으나 피상적으로나마 철학의 흐름을 짚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철학이라는 것이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고

실용적이지 못한 학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사가 그렇고 문학이 그렇듯이 철학 또한 삶을 깊이 느끼고 호흡하게 만들

어 주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의아했다. 왜 서양 철학의 역사가 아니고 서양의 지혜일까? 궁금해서 다시 지은이의 말을

 읽어보니 <서양 철학사>라는 책은 따로 있고 이 책은 철학자들의 토론을 이끌고 있는 주요한 철학적 물음들을 전반적

으로 살펴보았으므로 <서양의 지혜>라고 하였단다. 철학을 이렇게 표현한 그의 마음에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책 전체의 뼈대와 목차>

옮긴이의 말

지은이의 말

머리말

1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2 아테네의 철학

3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4 초기 기독교 철학

5 스콜라 철학

6 근대 철학의 발흥

7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

8 계몽 운동과 낭만주의 철학

9 공리주의 철학과 그 이후

10 현대 철학

맺음말

철학 사조를 이렇게 시대의 흐름으로 정리를 해주니 고마웠다. 저자가 알고 있는 것보다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을지라도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에는 넘치는 책이다. 왜 그렇게 똑똑한 많은 사람들이 철학에 심취해 있었을까? 읽는 내내 이 생각

이 떠나질 않았다. 아직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아마 도 우리 몸의 정신적 구조의 일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간결한 목차가 읽기에는 좀 불편했다. 세부목차를 세워줬더라면 긴 여행에서 잠깐씩의 쉼을 맛볼 수 있지 않

았을까 싶다.


<감동적이었던 장과 절>

54 그리스 문명은 조화의 원리를 근거로 하고 있으면서도 내부의 분쟁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결국은 이 사실이 그리

스 문명의 위대성을 더 한층 놓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 문명은 끝내 그리스 단일 국가를 이루어 존속

시킬 수는 없었지만, 그리스 땅을 정복했던 사람들을 문명에 의해서 모조리 정복해 버린데다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

양 문명의 뼈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역사를 볼 때 가장 감동스러운 부분이다. 수 많은 침략을 당하고 전쟁을 치뤘지만 문명으로서 정복자를 정복

해버린 이들의 역사에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교해 볼 때 수없이 많은 짓밟힘을 당하고서 빼앗

긴 억울한 역사의 이면에는 무엇이 존재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스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훌륭한 문명을 가지고 있

었다면 문제가 달라졌을까? 아니면 동양의 특성이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저급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까?


81 (소크라테스) 그는 언제나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참다운 지식이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스스로 참다운 지식을 찾으려고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건 지식이 부족해서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니까 사람이 저지르는 악행의 가장 중요

한 원인은 무지이다. 따라서 최고선 즉 사람의 가장 훌륭한 상태인 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반드시 지식을 가져

야 한다. 그러니 덕은 곧 지식이다. 최고선으로서의 덕과 지식을 연결시키는 건 그리스 철학 전체에 걸쳐 보이는 특징이

.

>그래서 무지를 탈출해야 하는 이유이다. 내가 물리적,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행하지 않는다 하여도 나의 어떤 행동이

 누군가에는 폭력성을 갖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2~103 학문의 본산으로서의 대학은 학생에게 자립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 주고, 지금까지 그가 지녀온 편견과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는 탐구 정신을 함양시켜 줄 때에만 본래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립적으로 생각하

는 능력이 사라져 버린 곳에서는 어김없이 선전과 권위주의라는 사악한 잡초가 끊임없이 자라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

로 비판을 억누르는 처사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잘못이다. 비판을 억압하는 처사는 그 사회에

 활력있는 통일된 목표를 창조해 내기는커녕 국가라는 정치적 조직체에 맥빠지고 부서지기 쉬운 획일성을 강요할 뿐이

. (중략) 그렇다면 교육은 교사의 지도 아래 학생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교육을 접할 수 있을까?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25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환경적인 요소만 조금 변했을 뿐 획일화된 수업과 질문하지 않는 학생들, 점점 생각을 하지 않도

록 만드는 구조등이 오히려 교육이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몇 년 전부터 시대적으로 비판에 대한 자유를 침

범 당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도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삶의 질은 높아지고 교육의 기회는 널려있지만 우리는 잘 짜인

 각본이나 틀 속에서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교육의 사각지대는 자신의 오롯이 찾아야 할 몫으로 남겨진

 숙제가 되었다.


<보완점>

1 인색한 목차

러셀의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목차를 세우는 것에 너무 인색하지 않았나 싶다. 목차를 세부적으로 나누

어주는 친절함이 있었다면 책의 긴 호흡에 덜 지쳤을 것이다. 한 단원을 다 읽는 것은 마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는데, 시간에 쫓기다 보니 기쁜 마음보다는 불안함이나 지루함이 느껴졌다.


2 장황한 이론 전개

한 사람의 이론을 이야기하기 위해 너무 장황하게 덧붙인 다른 이론들 때문에 산만했으며 산길을 헤매는 느낌처럼 무엇

을 이야기하는지 더 난해했고 원래 설명하려던 것을 잠깐 잊기도 했다. 친절해야 할 때 친절하지 못했고, 그렇지 않아도

 될 때 과도한 친절을 보여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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