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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9일 11시 52분 등록

1.제목: 서양의 지혜 (그림과 함께 보는 서양철학사)

- 출판사: 서광사

- 옮긴이: 이명숙, 곽강제

 

2.저자 : 버트런드 러셀 (1872~1970)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이자 수리논리학자, 역사가, 사회 비평가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여겨진다.

 

러셀의 근본은 수학자였다. 1872년 영국 몬머스셔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러셀은 케임브리지대에서 수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러셀의 할아버지는 총리를 두 차례나 지낸 존 러셀 경이었다.

그는 일생의 여러 부분에서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순으로 자신의 이상을 생각해왔으나, 자신이 이 중 어느 쪽도 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일생의 대부분을 잉글랜드에서 보냈으나, 그는 웨일스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사망했다.

 

러셀은 1900년대 초반 "관념론 반대운동(revolt against idealism)" 을 일으켰으며, 그의 선배 프레게, 제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분석철학의 창시자 중 하나로 꼽히며, 20세기의 선두 논리학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를 저술했으며, 이는 수학을 이용해 논리학의 기틀을 닦고자 한 시도이다. 그의 철학 에세이 On Denoting"철학의 패러다임" 으로 간주되고 있다.그의 저술은 논리학, 수학, 집합론, 언어학, 철학중에서도 언어철학, 인식론, 형이상학에 영향을 주었다.

 

러셀은 당시 반전 운동가로서 크게 활약했다; 그는 자유 무역을 지지했으며, 반제국주의 운동가로도 활약했다.러셀은 1차 세계대전 때 반전 운동으로 인해 감옥에 수감되었으며,이후 아돌프 히틀러, 스탈린주의자, 전체주의,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과 반대 운동을 펼쳤다. 그는 핵무장 반대운동에도 열렬히 참가했다.

 

1950, 러셀은 "인본주의와 양심의 자유를 대표하는 다양하고 중요한 저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러셀은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인물로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이 넘는 책을 쉬지 않고 출간했다. 지능을 최대한 사용하는 놀라운 능력(그는 하루에 거의 고칠 필요가 없는 3천 단어 분량의 글을 썼다)과 뛰어난 기억력이 탁월한 업적의 밑바탕이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러한 왕성한 활동은 심오한 휴머니즘적 감수성을 원천으로 했다.

그의 사상은 두 개의 주제로 분리되어 있었다. 하나는 절대 확실한 지식의 탐구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관심이었다. 전자는 스승이며 협력자였던 화이트헤드와의 공저 수학 원리로 결실을 맺어 현대의 기호논리학과 분석철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현실 사회에 대한 진솔한 관심과 스스로가 자유로운 무정부주의, 좌파, 회의적 무신론 기질이라고 불렀던 성향은 1차 세계대전 때에는 평화주의자로, 2차 세계대전 후에는 핵 무장 반대자로서 사회변혁운동에서 일관성 있게 표현되었다.

 

러셀은 평생을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산 인물이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인권과 자유, 그리고 평화를 침해하는 모든 것을 일관되게 비난했다.

 

1920년대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을 만나고 나서는 이렇게 말한다.

"레닌과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후 나는 약간의 실망을 느꼈다. 애초에 그를 대단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지적 한계가 뚜렷이 드러났다. 그가 신봉하는 마르크스주의는 다소 편협했고, 작은 악마 같은 잔인한 일면마저 엿보였다."

 

이후 러셀은 1차 세계대전에 반대하면서 옥고를 치르는 등 행동파 지식인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유럽과 중국 러시아 등지를 돌아다니며 강연과 저술활동을 펼친 그는 뛰어난 학자이자 에세이스트로, 무신론자이자 무정부주의자로 시대를 풍미한다. 1950년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한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지성과 가슴이 시키는 대로 정직하게 살았던 인물이었다.

워낙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었던 러셀은 평생 탁월한 저술 70권을 남겼다. 그중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저서는 '서양철학사'. 이 책은 그리스철학에서 현대 분석철학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의 발자취를 '러셀에 의한 러셀의 시각'으로 정리한 책이다. 러셀은 서양 철학을 개괄하면서 누구도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상이 누구든 날 선 비판을 날리고, 동시에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거침없다.

"니체의 사상에는 과대망상 환자의 말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도 될 만한 부분이 많다."

"마르크스의 판단은 틀렸다. 설명돼야 할 사회 상황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얽혀 있다. 사회 상황은 권력에 좌우될 뿐이다. 부는 권력의 한 형태일 뿐이다."

"철학은 애초부터 소수 지식인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의 결과물이 아니다.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의연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철학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대중이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흡사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육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명쾌하고 솔직하게 모든 억압에 저항한 러셀의 체취가 있기 때문이다.

 

-학문적 업적

1)분석철학

러셀은 분석철학의 창시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선구자적 업적을 이뤘다고 평가받는다. 20세기 초에는 헤겔에 영향받은 이상주의에 반대했고, 30년 뒤에 이는 비엔나에서 논리실증주의자들에 의해 형이상학 반대를 반복했다.

 

2)논리와 수리 철학

러셀은 근대 수리 논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논리학자인 윌러드 밴 오먼 콰인은 러셀 자신의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러셀의 첫 수학에 관한 책은 기하학기초론에 관한 에세이(An Essay on the Foundations of Geometry)이다. 이 작품은 칸트에게 크게 영향을 받았다. 러셀은 자신의 책이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스키마를 받아들일 여유 공간이 없다는것을 깨닫고, 칸트의 수학과 기하학을 완전히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최초의 작업에 대해 거의 중요성 없다는 평가를 했다.

 

그는 또한 1+1을 증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서

행복의 정복, 철학이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철학에 있어서의 과학적 방법, 자유와 조직, 외계의 지식, 정신의 분석, 물질의 분석, 의미와 진실의 탐구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1950권위와 개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출처

http://blog.ohmynews.com/moonye/50975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89119&cid=1009&categoryId=1697

http://blog.daum.net/omegaus/15008016

http://ko.wikipedia.org/wiki/%EB%B2%84%ED%8A%B8%EB%9F%B0%EB%93%9C_%EB%9F%AC%EC%85%80

 

 


3.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옮긴이의 말 >>

-누구나 과거 철학자들의 생각과 관계없이 철학을 할 수 있다. 이 가능성이 없다면 철학은 아예 시작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철학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철학사를 어느 정도 알 필요가 있다. 첫째는 철학에 기여한 위대한 철학자의 저작이 그 후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데다가 여전히 참신한 독창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전문 철학자조차도 다시 검토해보면 새로운 착상을 얻는 수가 있기 때문이며, 둘째는 위대한 철학자의 저작에는 누구나 부딪칠만한 철학적 물음들과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시도해 볼 만한 방법들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사를 전혀 살펴보지 않고 철학적 물음의 답을 찾으려고 서두르는 사람은 옛날 철학자들이 이미 검토하여 반박해 버린 생각에 사로 잡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수가 굉장히 많다.

>> 과거가 갖는 힘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재조명 할 수 있고, 과거를 통해서 새로운 착상을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이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철학사는 인간과 사회와 세계에 관한 진지한 착상을 솔직하게 주장하는 일과 그에 대해서 엄격하게 비판하는 일이 진행되어 온 역사이다.

-돌이켜 보면 그리스 사람들이 철학을 비로샇여 과학과 예술을 꽃피우면서 그들의 사회에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할 수 있었던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스스로 이성 능력을 개발하고 활용하면서 독특한 문화 형태를 갖추었다.실제로 그리스 문화를 이끌었던 특색있는 개념들 즉 진리, 논리, 절제, 균형, 정의, 조화 등은 모두 이성의 구체화 아닌 것이 없다. 일찍이 그리스 사람들은 모두 사람이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살아갈 때 공동체의 최대의 행복이 이루어진다는 철학적 통찰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소크라테스의 지혜의 샘은 이성 이외의 다른게 아니다. 서양 사람들이 그를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하는 이유는 그가 이성의 가능성을 몸소 실천을 통해 보여준 이성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생애로 상징되는 철학 정신은 이성을 토대로 한 행복의 보편적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열렬히 추구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서양 철학사에서 진정 체득해야 할 요체는 바로 이 철학정신이다.

- 이 책이 철학적 사고 능력을 길러 스스로 이성의 인도에 따라 공평무사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지성인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소개한 사람에게는 그 보다더 큰 기쁨이 없을 것이다.

<<지은이의 말 >>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는 통상 말로만 표현되게 마련인 철학사상을 기하학적 비유를 이용하여 같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그림으로 표현한 사실일 것이다.

- 기하학적 그림에 의한 철학 사상의 해명은 -실제로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전혀 특정한 언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해명 이상의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 기하학적 표현에 의한 것이 이해를 더 쉽게 해주고, 많은 언어적인 것을 수식으로 간단히 표현해주어서 이해가 간단명료해서 너무 좋았다.

-내가 또 하나의 서양 철학사를 내놓은 이유는 두 가지 현실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철학사의 내용들을 간명하게 집약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하는 책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오늘날 사람들이 점점 더 맹렬하게 전문적 지식으로 치닫는 경향에 휘말려 지적 유산을 남겨 준 선조들에게 진 빚을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철학사를 쓰는 목적은 그런 건망증에 빠진 사람들에게 기억을 되살려놓으려는 것이다. 모든 서양철학은 몇 가지 중대한 점에서 그리스 철학이며, 그래서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들과 우리를 이어 주는 끈을 잘라 버리면서 어떤 철학 사상에 골몰하는 건 헛된 일이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지적 유산을 물려준 선조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목적 없이 배우기에만 바쁘다보니, 지적 유산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를 모르고 지내왔는데 이번 책을 통해서 그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철학자들의 토론을 이끌고 있는 주요한 철학적 물음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 머리말 >>

-10. 모든 과학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미지의 영역과 접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 접경지대에 이르러 그 경계선을 넘어간다면 그는 바야흐로 과학의 세계를 지나 사변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 사변적 사고 활동 역시 일종의 탐구 활동인데, 이것이 바로 다음 아닌 철학이란 학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여러 가지 과학은 모두 한결 같이 처음에는 철학적 탐구에서 시작되었다.

-10. 과학은 알려진 사실들을 설명하고 철학은 근본적 물음에 관해 사색한다.

<< 1.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

-21. 지적혁명에는 진리와 아름다움을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스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건 올페우스교의 영향인 것 같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철학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이론이라는 말의 그리스어 어원이 애초에는 오늘날의 관광과 비슷한 것을 의미했다는 사실은 기억해둘만한 가치가 있다. 헤로도투스는 이론이란 말을 이런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격렬하면서도 순수한 호기심- 즉 열정적으로 공평무사한 탐구에 몰두하는 마음 - 이것이 고대 그리스 사람들로 하여금 인류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 ‘이론이라는 말에 관광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관광처럼 해야지 진정한 지식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요즘처럼 지식이 상품화 되어서 스펙 쌓기에만 국한되다보니 선조가 준 무한한 가치를 모르고 쉬운 선택을 한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21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갈파한 바에 따르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인간은 혼자 사는게 아니고 사회속에서 산다. 사회는 아무리 원시적인 수준의 사회일지라도 어떤 종류의 조직을 갖추고 있게 마련인데, 질서라는 생각은 이 사회 조직으로부터 자라나온 것이다. 그래서 질서하면 다른 어떤 질서보다도 앞서는 것이 사회적 질서이다.

-22 사람들이 언어를 만들어낸 근본적인 목적은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에 종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기초가 되는 건 합의이다. 이 합의는 더 나아가 논리의 시발점이라 해도 무방하다. 논리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에 있어서- 비록 그들이 단지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에 합의하는데 그친다 할지라도 - 경우에 따라 합의에 도달한다는 사실로부터 생겨난다.

>> 언어를 통해서 합의를 이루는 것이고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논리가 필요하다. 합의와 논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29 철학에서 참으로 중요한 일은 답을 꾸며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물음을 제기하는 일이다.

>>이래서 철학이 중요한데 물음을 하지 않는 현실에서 철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내어 본다.

-36 헤라클레이토스는 삶과 죽음이 우주의 구석구석에서 영원히 명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 시간은 장기놀이를 하는 어린애라 할 것이니, 그 판의 전권이 그 손에 달려 있다.”고 쓰고 있다. 또 분별력이 둔한 자들을 업신여겨 조롱하면서 말을 듣고도 귀머거리처럼 못 깨다는 따름이다또한 제 말과 글의 뜻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을 가진 자들의 눈과 귀는 인간에 대한 사기꾼 증인이다라고 조금도 거리낌 없이 신랄한 어투로 경멸하고 있다.

-40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람들이 지혜로워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보는데, 그건 사물들을 근원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기본 원리를 파악하는 길이다. 이 근본원리는 서로 대립하는 것들이 조화를 이룬다는 원리다.

-41 프로타고라스가 사람은 저마다 만물의 척도다

>> 저마다 척도가 있기에 다름이 있고, 그 속에 차이가 있는 것이리라.

-49 이처럼 어떤 사람의 신념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일은 아주 흔히 일어나는데, 특히 자신의 신념들에 대해 비판적 검토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정말이지 누구도 이와 같이 서로 충돌하는 신념들을 동시에 승인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제 믿고 있던 신념과 전혀 상반되는 신념을 혹시 서로 모순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한번 해보지 잘도 믿고 살아간다.

>> ‘비판적 검토를 거치지 않고 얼마나 너무 쉽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았는지. 마치 나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반성이 된다.

-52 올림픽 경기는 그리스 사람들이 육체의 가치를 인정했었다는 생생한 징표이다. 이 사실은 조화를 강조했던 그리스 사람들의 특성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도 가지고 있으므로 둘 다 수련을 통해 다듬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리스의 사상가들은 중세의 스콜라적 전통을 물려받은 근대의 상아탑 지식인들과 같은 부류가 아니었다는 걸 기억해 두는 게 좋겠다.

>> 육체와 정신의 통일성. 정신만가지고도 부족하고 육체도 함께 수련을 해야지만 진정한 지식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67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우선 다른 건 몰라도 설명의 근거 그 자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설명의 본성이라는 것만큼은 명백하다. 이 물음을 맨 처음 제기한 건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들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이후에 잇달아 일어났던 학파들이 어떻게 이 문제를 점점 달리 설정하면서 좀 더 치밀하게 논의해 왔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마침내 이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답을 제시한 사람 역시 밀레토스 출신 철학자이다. 이 사람이 바로 레우킵포스인데, 그의 생애에 관해서서도 원자론의 아버지였다는 기록 이외에는 알려져 있는 게 없다.

-72 앞에서 설명했던 변증 방법과 논쟁 기술을 구별하는 일이 중요하다. 논쟁 기술을 연습하는 사람들은 상대편을 이기는 걸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변증 방법을 활용하여 탐구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발견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논쟁과 토론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 논쟁과 토론의 목적을 명확히 해서 하는 것이 중요한데 때로는 의미없는 논쟁과 토론을 위한 토론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목적에 맞게 선택하여 진행하는 자세가 필요

<< 2. 아테네의 철학 >>

-80 그가 가장 열중했던 관심사는 최고선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아주 선명하게 유지하고 있는 프라톤의 초기 대화편들을 보면 그가 윤리적 용어들의 정의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대화편 <<카르미데스>> 문제는 절제란 무엇인가이고, <<리시스>>의 문제는 우정이란 무엇인가이며, <<리케스>>의 문제는 용기란 무엇인가였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물음에 대해 궁극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물음의 답을 생각해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81 이 사실은 소크라테스 자신의 사상의 주된 노선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언제나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참다운 지식의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스스로 참다운 지식을 찾으려고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건 지식이 부족해서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일에 대해 제대로 알기만 하면 그에 관해서 죄를 짓지 않을 거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저지르는 악행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지이다. 따라서 최고선 즉 사람이 가장 훌륭한 상태인 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반드시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덕은 곧 지식이다. 최고선으로서의 덕과 지식을 연결시키는 건 그리스 철학 전체에 걸쳐 보이는 특징이다. 기독교 윤리는 이와 정반대이다. 기독교 윤리에서 중요한 것은 순수한 사랑인데, 이 사랑의 감정은 아무래도 무지한 사람에게서 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83 그러다가 마침내 소크라테스는 델피 신전이 내린 신탁의 참다운 의미 즉 오직 신만이 현명하고 인간의 지혜란 하찮은 것이며,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혜가 보잘 것 없는 것임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 인간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84 소크라테스는 친구들을 향하여 사형언도를 받았다는 사실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죽음은 꿈조차 없는 잠이거나 아니면 다른 세상에서 올페우스, 무사이오스, 헤시오도스, 호메로스와 더불어 아무 방해도 없이 대화하면서 사는 생활일 텐데, 거기서는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진 않을 거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하고 있다.

-86 그러나 이런 과목들은 어느 것도 그 자체로서 완결되는 것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이 모든 과목은 결국에는 변증의 규범들을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있었으며, 교육에 있어 참으로 강조되어야 할 점은 바로 이 변증의 규범들에 관한 연구라고 보았다.

이처럼 변증의 규범들을 가르치는 일은 오늘날까지도 진정한 교육의 목표로 유지되고 있다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한다. 대학의 기능은 학생들의 머리가 터질 지경으로 가능한 한 많은 사실을 쑤셔 넣는 일이 아니다. 대학의 고유한 임무는 학생들로 하여금 비판적으로 음미하는 습관을 익히게 하고, 어느 주제를 대하든 활용할 수 있는 규범들과 기준들을 이해하도록 하는 일이다.

-103 사람들이 자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든 아니면 자립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받지 못해서든 사람들에게서 자립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져 버린 곳에서는 어김없이 선전과 권위주의라는 사악한 잡초가 끊임없이 자라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판을 억누르는 처사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잘못이다. 비판을 억압하는 처사는 그 사회에 활력 있는 통일된 목표를 창조해 내기는커녕 국가라는 정치적 조직체에 맥 빠지고 부서지기 쉬운 획일성을 강요할 뿐이다. 응분의 소임에 따르는 권력과 책임이 부여되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그처럼 흔하다는 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 비판의 중요성을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이제 긍정적인 비판들을 해나가야겠다.

-105 교육은 지식에 도달하는 과정이며 그래서 훌륭한 삶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무지는 자유로운 삶 즉 지식과 통찰에 의해 성취되는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하겠다.

-109 누구나 논증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가정이나 가설을 세우고 시작하게 마련이다. 가정이나 가설이란 말은 둘 다 어떤 것의 밑바닥에 놓인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요점은 반드시 논증이 딛고 설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 가설로부터 논리적으로 귀결되는 결론을 연역해 내고, 결론이 사실과 일치하는지 살펴본다. 이것이 원래 현상을 설명한다” (saving appearances)는 말이 지녔던 의미이다. 가설은 그로부터 나온 결론이 사실과 딱 들어맞을 때 현상 즉 나타나 있는 그대로의 사태를 설명한다.

-127 그리스 사람들의 과학과 철학이 지닌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은 증명(Proof)이라는 생각이라고 지적했엇다. 동방의 천문학자들은 현상을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데 반해서,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현상을 설명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어떤 명제를 증명하는 과정은 반드시 논증을 구성하는 일을 필요로 한다.

-131 논리학은 통상적인 의미의 과학이 아니라 사물을 다루는 일반적인 방법에 관한 지식을 만들어 내는 과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 일반적 방법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논리학은 식별 (discrimination)의 기준과 증명(demonstration)의 기준을 과학에 제공하므로, 과학적 탐구를 활성화시키는 도구나 기구로 간주해야 한다.

-147 비극의 궁극적 목적은 감정을 깨끗이 비워 버림으로써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어 “catharsis”(승화)의 의미다. 관객은 연극 중의 인물에 동화되어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경험함으로써 그 자신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던 그런 감정의 짐을 실제로 벗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극은 치료 목적을 갖고 있다. 방금 사용한 치료라는 용어는 의학에서 빌려 온 말이다.

-148 철학적 물음들이 과학적 탐구의 경계선상에 발생하는 이유는 그리스 철학의 본성에 있다. 이는 특히 수학에 잘 맞는 말이다. 피타고라스 시대 이래로 산술학과 기하학은 그리스 철학에서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 3.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

-160 수중에 넣을 것이 있을 때는 전력을 다하여 획득하지만 수지가 맞지 않을 때는 불평하지 않고, 즐길 수 있을 때는 인생을 즐기지만 종잡을 수 없는 운명의 변덕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인생에 대한 일종의 기회주의적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다. “cynical”이란 말에 냉소적이라는 달갑지 않은 의미가 덧붙게 된 것은 견유학파의 신조가 이렇게 변조되어 널리 퍼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162 헬레니즘 이후의 철학 역시 철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용기에 의지해 왔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탐험가의 맹렬한 용기라기보다는 차라리 체념과 강인한 인내의 용기였다. 전통적 사회의 체제가 무너졌던 시대에 사람들은 평화를 구하였고,이 평화라는 일용품을 쉽게 확보할 수 없을 경우에는 피할 수 없는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이 점은 다른 어느 학파보다도 에피쿠로스가 이끈 철학 학파에 아주 분명하게 나타났다

 

-163 에피쿠로스에게 있어 최고선은 쾌락이다. 쾌락 없이는 훌륭한 삶도 있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쾌락에는 정신적 쾌락과 같은 비중으로 육체적 쾌락도 포함된다. 정신적 쾌락은 육체적 쾌락을 관조하는 데 있으며, 참으로 중요한 어떤 의미로도 육체적 쾌락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정신적 활동의 방향에 대해서는 아주 잘 제어해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관조의 대상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반면에, 육체적인 애착은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된다. 여기서 정신적 쾌락의 유일한 장점이 있다. 이런 견해에 입각해서 보면 덕있는 사람이란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신중한 사람이다.

-164 소크라테스가 지식은 선이라고 주장했던 점은 근본적으로 옳았다. 우리는 순전히 알기 위해서 공평무사한 마음으로 탐구할 때 에피쿠로스가 구하고 있는 것과 똑 같은 취한 듯 열중한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165 신들은 인간에게 상을 주지도 벌을 내리지도 않는다. 요컨대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극치이자 최고의 선이기도 한 고요한 평정 상태의 유지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신중하고도 절도있는 인생 행로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의무라고 보고 있다.

-167 스토아 철학이 정말로 정곡을 찌르고 있는 대목은 어떤 의미에서 덕이라는 내면적인 선이 다른 어떤 것보다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 본 사실이다. 물질적 재산의 손실은 언제라도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겠지만 인간이 자존심을 잃는다면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170 역시 박해란 언제나 박해하는 쪽이 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느 사회건 질서가 확고하게 잡혀 있고 자신 만만하다면 이교도를 박해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177 플로티노스 형이상학의 중심 이론은 삼위일체론이다. 이 이론은 유일자(the One), 정신(Nous), 영혼(Soul)을 삼위로 간주하는데, 이 세가지는 방금 나열한 순서대로 선행(先行)과 의존(依存)의 관계를 유지한다.

 

-177 결론적으로 말해 그리스 철학의 위대성은 로고서의 근본적 역할을 인식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 사상은 얼마간의 신비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신비주의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180 그리스와 로마의 사상가들이 적절한 정치 이론을 개발하는 일에 실패한 사실이 한 원인이었다는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그리스 사람들의 실패가 탁월한 지적인 힘에서 비롯된 어떤 오만 탓이었다면, 로마 사람들은 순전히 상상력의 결핍 때문에 실패했다.

-181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적 전통은 본질적으로 계몽과 해방을 추구한 운동이다. 그리스 철학이 목표로 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무지의 질곡에서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은 이 세계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게 함으로써 미지의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한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을 계속 유지시킨 것은 로고스이고, 그리스 철학이 열망하는 것은 최고선의 형상의 인도를 받아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공평무사한 탐구 그 자체를 윤리적으로 선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 까닭은 인간은 종교적 신비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공평 무사한 탐구의 성과를 이용해서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공평무사한 탐구의 전통에 더해서 그리스 철학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부정적 감정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맑고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고 방식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훌륭하게 사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류는 이 참신한 활력을 다소 자의식에 빠져들었던 스토아 철학이 헤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 자리를 굳혔을 때에 얼마간 잃어 버린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서양 문명을 이끄는 지성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최상의 것들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두 그리스 철학자들의 전통에 근원을 두고 있다.

<< 4. 초기 기독교 철학 >>

-186 서양의 문명을 지배한 기독교는 그리스 문화와 동방 문화가 약간씩 섞여 있는 유태교에서 파생된 종교이다.

기독교와 유태교는 신의 선민이 있다는 교리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신의 선민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이 두 종교는 이 세계가 신의 창조에 의해 시작되어 신의 마지막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똑같은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정말 구세주가 누구이고, 구세주가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약간씩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태교도는 구세주가 앞으로 이 세상에 와서 그들이 이 세상에서 승리하게 해주리라고 믿고 있는 반면에, 기독교도는 구세주가 나자렛에 태어난 예수이며 그의 왕국은 이 세상에 세워지는 왕국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게다가 기독교는 유태교도가 가지고 있던 이웃을 돕는다는 지도 원리로서의 의로움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으며, 또 이를 교조적 신조로 신봉하는 것도 이어받았다. 후세의 유태교와 기독교는 둘 다 본질적으로 신플라톤주의에서 유래하는 내세관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그리스 사람들의 이론은 철학적이어서 누구에게나 금장 이해되지 못한 반면에, 유태교와 기독교의 견해는 의로운 사람은 천국에 가고 악한 사람은 지옥의 불에 타 죽을 거라고 풀이되자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이후로는 정설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내세에 관한 이론을 아무나 이해할 수 있게 해준 것은 그 속에 있는 바로 이 보복의 요소였다.

-199 그리스 사람들의 창조개념은 자연스럽게 범신론으로 이어지는데, 범신론에서의 신은 이 세계 자체이다. 이 범신론은 신비주의에 강하게 기울어진 사람들이 언제나 매력을 느껴 온 사상인데, 철학자들 중에서 이 견해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은 스피노자이다.

 

-199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시간은 삼중의 현재이다. 사실 정확하게 현재라 부를 수 있는 현재야말로 참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것이다. 과거는 현재의 기억으로서 지금 살아 있고, 미래도 현재의 기대로서 지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이론의 초점은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간이 겪는 한 가지 정신적 경험으로서의 시간이 지닌 주관적 성격을 강조하는데 있다.

-202 우리는 철학적 물음을 그 배경에 있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모든 지식과 관계없이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철학의 역사를 고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철학적 물음이 이전에 제기되었으며, 또 그 철학적 물음들에 대해서 얼마쯤 이치에 닿는 답이 과거에 제시되었다고 보는 데 있을 뿐이다.

 

<< 5. 스콜라 철학 >>

 

-229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 손상을 입히고 있는 것은 탐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기독교의 독단적 교리가 결론을 냉혹하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33 아퀴나스 철학에서 사용되는 본질과 실존이란 용어는 잠재성과 현실성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본질은 순수하게 잠재적인 것이고, 실존은 순수하게 현실적인 것이다. 따라서 유한한 사물에게는 항상 이 두 가지가 섞여 있게 마련이다.

 

-234 신플라톤주의의 신은 어떻게 해서든 이 세계와 공존하는 신인데 반해서, 아퀴나스의 신은 이 창조된 세계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일종의 영적인 사제장 같은 것이다.

 

-235 신앙의 영역에서 이성적 탐구를 엄격하게 배제하는 일은 그 후로는 과학과 철학이 신앙의 신조들 즉 신앙의 내용을 흠잡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것을 필요로 하였다.

-237 신에 관한 지식은 창조된 사물들 다시 말해서 그 실존이 그저 우연일 뿐인데다가 신의 의지에 의존하고 있는 피조물들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스코투스는 실은 사물의 실존을 그 사물의 본질과 동일시하고 있는 셈이다. 아퀴나스 철학에서는 이와 반대로 실존과 본질의 동일시가 신을 정의하는 데 쓰였던 사실을 독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릇 지식이란 본질에 관한 지식이며, 따라서 이 본질은 신의 마음속에 있는 관념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신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체에서 본질과 실존이 일치하므로, 아퀴나스의 생각과는 반대로 개체를 개체이게 만드는 것은 물질일 수는 없으며, 오히려 반드시 형상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스코투스는 형상이 실체라고 간주하면서도 온갖 형상을 전부 인정하는 플라톤 식의 실재론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스코투스의 경우에는 하나의 개체에 다양한 형상이 있을 수 있지만, 이 형상들은 오직 사고 상에서만 뚜렷이 구별되기 때문에, 그런 형상들이 독립적으로 실존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239 오캄은 개체 즉 개개의 사물이 실재성을 갖는 것이고, 이 개체만이 직접적인 지식과 확실한 지식을 형성시킬 수 있는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전개한 교묘한 설명장치가 존재를 설명하는 일에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오캄의 "적은 것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은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라는 말을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생각이 더 널리 알려져 있는 오캄의 다른 표현, "필요 이상으로 있는 것을 증가시켜서는 안 된다."는 격률의 토대이다. 이 기본 방침은 그의 책에 있는 말은 아니지만 후세에 '오캄의 면도날'이라고 불리면서 전해 내려왔다.

-241 단테의 명성은 시인으로서의 업적에만 한한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나라의 일상 언어를 문학의 보편적 도구로 다듬었는데, 이로써 지방의 잡다한 사투리를 넘어선 표준어가 최초로 설정될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라틴어만이 문학의 표현 수단으로 쓰일 수 있었던 데 반하여, 이제는 이탈리아어가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243 각 민족마다 자기 나라 말을 사용하게 되자, 교회는 철학과 과학이 분야에서 전개되는 지적 활동을 지배하는 힘을 상당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세속 문학이 처음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여 점차 북부 유럽으로 올라오면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신앙과 이성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나와 전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에 뻗친 탐구심은 약간의 회의주의와 더불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들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려 놓았고, 사람들의 처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아니면 적어도 그걸 변경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도록 가르쳤다.

-246 그리스 사상과 중세 사상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사람은 누구나 당연히 그리스 사상에는 죄의식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의 눈에는 사람이란 저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죄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생활을 신들의 변덕으로 인해 구겨져버릴 수 있는 불안정한 것으로 보았음에 틀림없을 것 같다.

-247 기독교도들은 이 세상에서의 생활을 앞으로 다가올 더 훌륭한 생활을 준비하는 일로 간주하였으며, 인생의 현실에 일어나는 비참한 일들을 자기가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이 지고, 나온 죄를 정화시키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시련으로 간주하였다.

-248 철학과 신학의 이 결합은 이성이 어느 정도라도 신앙을 튼튼하게 해주는 동안에만 지속될 수 있었다. 14세기의 프란치스코 학자들이 이 가능성을 부정하고, 이성과 신앙은 서로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나서자 상황이 바뀌어 중세의 세계관은 점점 시들시 시작하였다. 철학이 신학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오캄은 신앙과 이성적 탐구를 연결하고 있던 온갖 고리를 다 풀어 버리고 신앙을 이성적 탐구로부터 해방시켰지만, 이 일은 반대편에서 보면 실은 철학을 원래의 이 세상의 학문으로 되돌아가도록 풀어준 셈이었다. 교회는 16세기 이후로는 철학의 분야를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였다

 

 

<< 6. 근대 철학의 발흥 >>

 

-250 중세시대의 몰락으로부터 17세기의 거대한 진보의 격랑에 이르는 전환기는 네 가지 도도한 운동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

첫째는 15세가와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문예 부흥 운동이다. 단테는 여전히 중세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탈리아어를 다듬어서 라틴어를 모르는 보통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드는 도구를 마련했었다.

문예 부흥 시대의 사상가들은 인간에게 훨씬 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새로운 문화 운동은 인본주의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새로이 대두한 커다란 대세들 가운데 두 번째 운동이다.

인본주의 운동은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과 같은 시기에 진행되었다. 이 종교 개혁 운동이 중세 세계를 바꾸어 놓은 세 번째 주요한 힘이었다.

오캄의 비판 이후 두 세기 동안에 과학 분야에서 위대한 진보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발전은 코페르니쿠스가 태양계에 관하여 태양 중심 체계를 재발견한 사실이다. 태양 중심 체계에 대한 설명은 1543년에 인쇄되어 공표되었다.

 

>> 언어를 라틴어에서 이탈리어로 바꾼 것은 큰 업적이다. 쉬운 언어로 변경되어서 많이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52 17세기 이후로 물리학과 수학은 급속히 발전하면서 기술의 발전을 대대적으로 촉진하였으므로 서양은 우세한 위치를 확고하게 하였다. 과학적 전통은 물질적 혜택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본래 독립적인 사상을 키우는 더없이 훌륭한 촉진제이다. 서양 문명이 전래된 곳이라면 어디서든 먼저 서양의 물질문명이 퍼지고 그 뒤를 따라 결국에는 서양의 정치적 이상까지 퍼져 나갔다.

 

>> 과학으로 인한 독립적인 사상을 키울 수가 있는 촉진제였는데, 동양에서는 그런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아쉽기만 하다.

 

-252 탐구가 존중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합리적 토론이 지켜야 하는 보편적 규범, 소크라테스의 용어로 말하면 변증의 규칙들뿐이다.

 

-253 철학의 분야에서는 인간에 대한 강조가 철학적 사변을 인간 내부로 향하게 만들었으며, 이 사실로 인해 힘을 강조하는 철학을 고무하는 관점과는 정반대되는 관점에 도달하였다. 인간은 이제 제 자신의 능력의 비판자가 되었다. 그래서 확실한 직접 경험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도전 받지 않은 채로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이 주관적 태도는 극단적인 형태의 회의주의에 도달하였는데, 이는 개인을 완전히 무시하는 경향이 너무 지나친 입장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 나름대로 지나친 입장이다. 그러므로 이 두 극단적 입장을 중재하는 해결책이 무언가 나와야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253 옛 권위의 토대를 허무는 데 마지막으로 기여한 것은 이 인쇄술이었다. 왜냐하면 자기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성서를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구해서 읽을 수 있게 되자, 교회는 더 이상 신앙 문제에 대한 보호자 역할을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문의 영역 전체를 보아도 똑 같은 원인이 학문으로 하여금 이 세상을 중시하는 쪽으로 복귀하도록 재촉하였다. 그런데 인쇄술은 옛 질서를 비판하는 새로운 정치 신조들을 전파시키는 수단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인본주의 학자들이 고대 학자들의 저작을 편집하여 출판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일은 다시 고전적 저작에 관한 연구를 광범위하게 촉진하였고, 교육의 표준들을 일반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 인쇄술의 영향은 생각보다 더 파격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가치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인쇄술의 발달, 인터넷의 발달, 그리고 이제는 동영상의 발달. 이제는 인쇄술보다 영상이 주는 매체의 힘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눈으로 보던것에서 이제는 느끼는 시대로 바뀌는 것 같다.

-253 인쇄술의 발명이 토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치와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쇄술의 혜택이 의심스럽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해 두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허위도 진리가 쉽게 인쇄되는 그만큼 쉽사리 인쇄될 수 있고, 그래서 허위도 진리가 쉽게 퍼지는 그만큼 쉽사리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인쇄물에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승인만 해야 한다면, 독서 능력은 사람에게 서의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릴 것이다. 누구나 자기 의견과 비판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에서만 누군가의 주장을 인쇄하여 광범위하게 유포하는 일이 탐구를 향상시킬 것이다. 이러한 자유가 없는 경우라면 차라리 문맹의 상태가 더 좋을 것이다. 우리 세대에 와서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한 문젯거리로 대두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제 인쇄물은 더 이상 대량 전달의 유일하게 강력한 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선 통신과 텔레비전이 발명된 이래로 이런 대량의 전달의 매체들을 우리 스스로 끊임없이 통제하는 일이 더없이 중요하게 되었으니, 이에 대한 통제가 없으면 자유가 전반적으로 시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 자기 의견과 비판을 말하는 것이 사람의 사고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힘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육 속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거나 비판을 하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나조차도 남의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나부터 먼저 바꿔나가야 겠다.

 

-254 기존 질서에 젖은 통치자들은 과감하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려는 사람에게 기존 질서가 파괴된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야만적 형벌을 언도하였다.

 

-267 루터는 이 항의문을 통해 교황청에 도전할 때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이 난처한 항의 질문은 외국 세력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느냐 마느냐 하는 완전히 정치적인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다. 루터가 교황의 파문 교서를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린 1520년에 이르자, 이 문제는 더 이상 단순히 종교를 개혁하는 문제가 아닌 것이 되었다. 독일의 군주들과 통치자들은 루터의 편을 들기 시작하고, 종교 개혁은 교황의 음흉한 세력에 대한 독일 민족의 반란이 되어 버렸다.

 

-267 개신교 신자를 지칭하는 “Protestant”(항의자) 라는 이름 자체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1529년에 웜의 회의의 규약을 다시 도입하려고 시도했을 때 이에 반대하는 개신교 지지자들이 발표했던 항의문에서 유래한다.

 

-268 종교적 원인과 경제적 원인은 둘 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특징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일반적 변화의 증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신교와 그 청교도적 특징들은 근대 상업의 발흥과 서로 협조하였기 때문이다

 

-280 베이컨은 사람들이 네 가지 유형의 정신적 약점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고, 그 것들을 우상이라 불렀다. 첫 번째 우상은 종족의 우상인데 우리는 인간이라는 종족이므로 바로 인간을 우상으로 받드는 경우를 말한다. 희망에 의거한 사고 즉 이랬으면 하고 바라는 생각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실례의 하나라고 하겠는데, 특히 자연 현상에 실제로 실존하는 질서보다 더 위대한 질서가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그렇다고 하겠다. 두 번째 우상은 동굴의 우상인데, 이는 개인이 자신의 잘못된 외고집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를 말하므로, 이 우상은 무수히 많다. 세 번째 시장의 우상은 사람이 언어에 현혹되는 경향으로 인해 일으키는 과오인데, 특히 철학에 만연되어 있는 과오이다. 끝으로 네 번째 극장의 우상은 사상의 체계나 학파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일어나는 과오이다. 그러고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종류에 속하는 과오를 많이 범했던 셈이다.

 

>> 베이컨의 비유가 재미있다. 종족, 동굴, 시장, 극장의 우상. 하지만 다시한번 되새겨볼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다.

 

-285 그는 선배 학자들의 책에서 배울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 버리고 여행을 통해 배우려고 시도했지만, 철학자들의 의견의 차이만큼이나 관습은 그것대로 다르다는 걸 발견하였다. 결국 데카르트는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살피는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방법론>>을 보면 이러한 이야기 다음에 앞에서 언급했던 난롯가에서의 사색에 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 선배 철학자들에게 정말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은 오만이지만, 자기 자신을 살피는 자세는 중요하다고 본다.

 

 

-286 다만 논리학, 기하학, 산술학만이 이 지적 대학살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그는 이 세 학문들에서 네 가지 규칙을 발견하였다. 첫째 규칙은 선명하고 분명한 관념 이외에는 어떤 관념도 결코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규칙은 어떤 문제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분할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필요한 만큼 부분적인 문제로 분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규칙은 사고가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는 순서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런 순서도 없는 경우에는 우리가 순서를 설정해야 한다. 넷째 규칙은 어떤 것도 간과하지 않았다는 걸 보장하기 위해서 항상 철저한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네 개의 규칙은 데카르트가 대수학을 기하학에 적요할 때 사용했던 방법인데, 그는 이 방법을 사용하여 오늘날 해석 기하학이라 불리는 분야를 창조하였다.

 

-286 데카르트의 방법은 그가 형이상학에 대한 사고를 진행시켜 나가자 그로 하여금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감각 기관을 통해 마련되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으므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수학까지도 정도만 가벼울 뿐이지 미심쩍다고 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신이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에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 의심하는 사람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그것이다. 바로 이 사실이 데카르트의 근본 명제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실존한다.” 는 명제가 딛고 서 있는 기초이다. 데카르트는 이 명제가 형이상학의 선명하고 분명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하였다. 데카르트는 이리하여 자기는 생각하는 것 즉 자연의 물질과 조금도 관계가 없고 또 그렇기 때문에 신체와도 무관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 모든 것을 의심해보는 자세는 필요하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모든 것에 과연 이것이 맞을까? 생각해보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가져보는 것은 중요하다.

 

-291 스피노자는 성서에 나오는 모든 저주를 받고 유태인 사회에서 추방당했다. 스피노자는 본래 약간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어서 이 사건 이후 완전히 고립된 처지가 되었다. 스피노자는 그때부터 몇몇 사람들과만 교우 관계를 유지하며 조용히 살았는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렌즈를 갈아주는 일 이외에는 온통 철학적 사색에 몰두하면서 지냈다.

 

-291 신과 종교에 관한 스피노자의 견해는 너무나 시대를 앞선 것이어서 그가 매우 품위 있는 윤리 이론을 제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전에는 물론이고 사후에도 1백 년 동안이나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생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스피노자의 가장 위대한 저작인 <<윤리학>>도 폭발적 충격을 줄 것으로 여겨져서 그의 사후에야 출판되었다.

 

-293 스피노자는 실체라는 건 완벽하게 제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그 다음에 실체는 무한하다는 게 증명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실체의 한계들이 실체와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실체는 오직 하나만 있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되고 나서, 이 실체는 우주 전체이며 또한 신과도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러므로 신과 우주는 둘 다 모든 사물의 총합체이므로 이 둘은 다른 게 아니라 그게 그것이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그 유명한 범신론이다. 범신론에 대한 스피노자의 설명 속에는 신비주의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걸 강조해 두어야 하겠다.

 

-294 사물들을 시간과 무관한 영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정신의 본성이다.

 

-294 스피노자는 인간의 모든 행동의 동기를 형성시키는 배후의 힘은 자기 보존이라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이처럼 순전히 이기적인 원리는 우리 모두를 자기 본위로 냉소나 일삼는 사람으로 떨어뜨려 버린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 버린 생각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머지않아 신과 사이좋게 살기를 열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사람이 이 일을 성취하고 나면 앞으로 설명한 적이 있는 시간과 무관한 영원의 관점에서사물들을 더 훌륭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 ‘자기 보존의 잠재된 힘은 사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고 하게 되는 것 같다. 생각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막상 급한 상황에서 취하는 태도는 결국 자기 보존이 되는 것이 많기에 내면 깊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295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스피노자가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을 다음 구절이 알려준다.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법인데, 자유로운 사람의 지혜는 죽음에 관한 성찰이 아니라 삶에 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한편 스피노자는 악을 소극적인 것 즉 결핍의 상태로 여기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전혀 없는 전체로서의 신 즉 자연은 악일 수 없다고 보았다. 스피노자에게는 모든 것이 이 유일하게 가능하고 또 실재하는 우주 속에서 최선의 상태로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유일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가능한 한 더 많이 우주와 접촉하기 위해 일상의 실제 생활에서 자기 자신을 보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 자유로운 사람의 지혜는 죽음에 관한 성찰이 아니라 삶에 관한 성찰이라니! 놀라운 결론이다. 죽음조차 초월해서 삶에 대해서만 깨어있는다는 의미일까? 이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 겠다.

 

-304 실행이 우리의 지식을 향상시켜 줄 수 있다는 건 옳은 말이다. 어떤 행동을 이지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그 행동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킨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일이 인간의 행동이나 실행의 영역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건 명백하다.

 

-305 이성주의자가 상상을 혼란된 생각의 근원이라고 기피하는 대목에서 비코는 반대로 발견의 과정에서 상상이 하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우리가 명료한 개념에 도달하기 전에 상당히 막연하고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 관하여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못한데, 아무리 사고 과정이 모호하다 할지라도 개념적 내용을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사고가 진행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시적 사고는 심상과 은유에 의해서 진해되는 반면에 개념적 사고는 의도적으로 이론을 꾸며 보는 일의 마지막 단계라고 말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306 과학과 철학의 임무는 일상 언어를 가지고 출발하여 새로운 탐구 과제를 풀어 낼 수 있도록 더욱 날카로워진 언어적 도구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명하고 분명한 관념에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는 데카르트의 철학적 주당이 함축하고 있는 가치 있는 근본 취지이다.

 

-307 비코의 중요성의 대부분은 오히려 거의 신비스럽다고 할 정도의 19세기 지적 성향과 철학 발전의 전조를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비코는 사회학에서 이상적 국가에 대한 이성주의자의 견해를 벗어나서,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경험적 방법에 의해 연구하는 일에 열중하였다. 이 점에서 그는 아주 독창적인 학자였으며, 처음으로 인류의 문명에 관해서 진정한 학문적 이론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성과는 그의 모든 사고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탁월한 생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은 비코가 라틴어로 “verum factum”이라고 표현했던 생각 즉 진리는 사실이다라는 생각이다.

 

 

<< 7.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 >>

 

-309 자신의 기업 활동으로 재산과 부를 축적한 중산 계층의 상인들은 군주들의 독단적인 권력 행사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운동은 재산권을 확보함과 동시에 왕권을 축소하자는 생각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왕권신수설의 거부와 더불어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기존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어났고, 또 그 결과 종래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311 자유주의 태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인주의를 존중하는 것이었다.

 

-312 개인주의 신조는 주로 이성주의자의 이론이었으므로, 이성이 최고로 중요하다고 주장되었다. 열정의 지배를 받는 건 문명화되지 못한 탓이라고 여기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지만 19세기에는 개인주의 신조가 정렬에까지 확장되었는데, 특히 낭만주의 운동의 물결을 타고 강자의 외고집을 찬양하는 여러 가지힘의 철학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이 결말은 실은 자유주의와는 전혀 반대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론들은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고 하겠는데, 그 이유는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큼 야심만만한 다른 사람의 도전이 두려워서 성공에 이르는 사다리를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316 로크는 현실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이어서, 철학적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정합성 있는 입장에서 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단편적 방식으로 취급하였다

 

-319 뉴턴의 물리학은 단번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철저히 일소해 버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로크의 정치 이론은 거의 새로운 내용이 없는데도 왕권신수설을 깨끗이 논박해 버렸고, 스콜라 철학의 자연법 사상을 근대의 상황에 알맞도록 변경시켜 기초로 삼고 국가에 대한 새로운 기본 신조를 확립하려고 노력하였다.

 

-320 로크의 자유주의를 이어받은 공리주의자 후손들은 계몽된 이기주의 윤리를 지지하였다. 이 계몽된 이기주의라는 생각은 인간의 가장 고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누구나 이 말과 함께 기억해야 할 일은 어떤 사람들이 매우 고상한 동기를 품고 꾸며낸 숭고한 이론 체계의 이름으로 사람이란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저질러 왔던 실로 영웅적인 잔학 행위를 이 계몽된 이기주의는 피했었다는 사실이다.

 

-325 정신이 실존한다는 말은 '지각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지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330 흄은 이 구절 조금 아래에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혹시 어떤 사람이 진지하게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반성을 해본 끝에 앞에서 내가 말한 것과 다른 자아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그와 더불어 더 이상 논의를 계속할 수 없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올바를지 모른다는 것과, 따라서 우리는 이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331 흄은 정신은 여러 가지 지각이 계속 등장하여 제 역할을 하는 일종의 극장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 비유에 제한을 가한다. 이 극장의 비유에 의해 오해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정신을 만들고 있는 것은 오직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지각들뿐이다. 이런 지각들의 장면이 상연되는 무대에 관한 생각이나 그러한 무대를 만드는 재료에 관한 생각은 전혀 갖지 말아야 한다.” 흄은 이어서 사람들이 개인의 동일성에 관해서 유지되는 어떤 사물에 관해서 갖게 되는 동일성 관념과 혼동하는 경향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실은 자신의 연속적인 경험에 정말로 일어난 변화를 위장하기 위해서 영혼자아실체의 개념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 8. 계몽 운동과 낭만주의 철학 >>

 

-338 계몽운동은 본질적으로 자립된 지적 활동의 가치를 더 높이는 일이었으며, 참으로 글자 뜻 그대로 이제까지 암흑이 지배해 오던 곳에 광명의 빛을 비추는 걸 목표로 삼았었다. 이 운동은 집념과 열의를 다해 추구할 수는 있었지만, 이 때문에 이 운동이 강렬한 감정들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방식은 아니었다. 세월이 가면서 어쨌든 계몽 운동과 반대되는 영향을 끼치는 힘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그건 낭만주의라는 훨씬 더 격렬한 힘이었다.

낭만주의 운동은 계몽운동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점에서 아폴로적 심성에 상반되는 디오니소스적 심성을 연상시키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낭만주의의 뿌리는 문예 부흥 시대에 고대 그리스를 다소 이상화시켜 동경했던 생각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39 낭만주의자들은 안전을 추구하는 대신에 모험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안락하고 안전한 생활이 불명예스러운 것이라고 일축해 버렸고,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불안한 생활 방식이 더욱 고상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생각으로부터 가난한 농부의 이상 즉 빈약한 생활을 자신의 수확으로 꾸려 가지만 자유로운 생활로 가난을 보상받고 도시 문명에 의해 부패하지 않은 농부를 이상으로 여기는 생각이 나왔던 것이다. 농부가 항상 자연을 접하고 산다는 점에도 특별한 미덕을 부여하였다. 낭만주의자가 이처럼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가난은 전원생활의 가난이다.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산업주의를 더 없는 저주로 여겼는데, 산업 혁명이 사회의 추악상과 개인의 신체적 재해를 많이 일으켜 놓았다는 건 분명히 옳은 말이다. 그 후로 수십 년 동안 서유럽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아 산업 무산계급에 대해 낭만주의적 견해를 취하게 되었다. 공장에서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불평은 그때부터 바로잡혀 왔다. 그러나 노동자에 대한 낭만적 견해는 아직도 정치학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341 18세기 계몽 운동 시절에 이루어진 훌륭한 기념비라 할 수 있는 업적은 프랑스에서 활동한 일군의 저술가와 과학자가 편찬했던 방대한 <<백과사전>>이다. 이 백과사전파 학자들은 과학 속에 새로운 지적 추진력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명백히 의도적으로 종교와 형이상학을 버렸다. 그들은 그 당시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모아 단순히 알파벳 순서로 된 기록으로서만이 아니라 이 세계를 다루는 과학적 방법에 대한 설명서로서 이용될 수 있도록 방대한 저술을 편찬하면서, 이 책이 기성의 권위가 내세우는 몽매주의와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되기를 바랐었다.

 

-345 루소는 문화가 사람들에게 부자연스러운 욕망을 가르쳐 놓고, 결국 사람들을 그런 욕망에 예속시킨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아테네를 반대하는 만큼이나 스파르타를 찬양하였다. 루소는 과학에도 비난을 퍼부었는데, 그 이유는 과학이 야비한 동기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요컨대 문명화된 사람은 모두 부패하였고, 진정으로 덕을 갖춘 사람은 문명에 때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원시인이라는 것이다.

 

-347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동프러시아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평생 한 번도 고향을 멀리 떠난 적이 없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루터교에 속하는 경건파의 교리를 실천하였는데, 이 성향은 그의 생활의 일반적 양식과 윤리에 관한 저술에 영향을 미쳤다.

 

-347 또한 칸트는 지나친 금욕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매우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였다. 그의 습관은 아주 규칙적이었으므로 그가 지나가는 걸 보고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시간을 맞추었다고 한다. 그는 튼튼한 편은 아니었으나 차분한 생활방식 때문에 질병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화술이 뛰어나고 사교 모임에 참석하면 항상 환영을 받았다. 칸트는 정치적 문제에 관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성실하게 계몽 사상의 전통에 따르는 자유주의자였으며, 종교에 관해서는 비정통 개신교의 한 입장을 주장하였다.그는 프랑스 혁명을 환영하였고, 공화주의 원칙에 대해서도 찬성하였다. 칸트는 자신의 위대한 철학 저서를 통해서 결코 폭발적인인기는 아니었지만 명성을 얻게 되었다. 말년에는 그의 정신력이 떨어졌지만, 쾨니히스베르크 사람들은 그를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했는데, 이는 참으로 극소수의 철학자만이 누린 명예였다.

 

-348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의 목표는 선천적 종합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351 지식론에 관한 칸트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가 사용했던 용어들의 의미를 명료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식의 형성 과정이 한편으로는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경험의 충격을 받아들이는 일만 하는 감각 기관과 관련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감각의 여러 요소를 결합시키는 이해력 즉 지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지성은 반드시 이성과 구별되어야 한다. 이 지성과 이성의 구별을 후세의 헤겔은 자신의 관점에서 이성은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것인데 반해서, 지성은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것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칸트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이성적이거나 이성을 타고났다는 점에서 평등하지만, 지성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이 불평등하다, 왜냐하면 지성은 참으로 사람마다 현격하게 활용의 정도가 실제로 다른 지성이기 때문이다.

 

-353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은 철학을 통해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로서 우리에게 제시되어 있는 세 가지 주요한 물음 가운데 단지 하나만을 다루고 있다. <<순수 이성 비판>>은 인간의 인식 능력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 책은 의지와 그가 판단력이라 부르는 것은 다루지 않고 있다. 의지는 윤리학의 연구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실천 이성 비판>>에서 논하고 있다. 판단에 관한 칸트의 견해를 보면 그는 판단력을 목적이나 목표를 평가하는 분별력으로 생각하고 있다.

 

-353 실천 이성의 근본적 물음은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칸트는 이 물음에 대해서도 상당히 혁명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칸트 이전의 모든 윤리학이 의지는 외부의 영향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항상 가정했었음에 반해서, 칸트는 의지가 제 자신을 다스린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지는 자율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칸트가 도덕 법칙으로 간주했던 것을 찾으려면 우리는 오히려 반대로 자신의 내부를 살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이 도덕 법칙은 특정한 명령들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도덕 법칙은 어떤 특정한 경우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알려 줄 수 없다. 왜냐하면 의지의 자율성을 인정한다면 이런 일이야말로 우리가 피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의 도덕 법칙은 결국 경험적 내용이 전혀 없는 순수하게 형식적인 원리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는 이 도덕 법칙을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라 불렀다.

 

-353 칸트는 윤리의 최고 원리를 다음과 같은 정언 명령 즉 네 의지의 준칙이면서 동시에 도덕의 보편적인 입법 원리로서도 타당성을 항상 가질 수 있는 준칙에만 의거하여 행위하라는 명령으로 설정하게 되었다. 상당히 준엄한 이 선언은 실제로는 너에게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 바를 네가 남에게 해주라는 가르침을 과장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 원리는 특별 변론 이 경우에는 이런 사실이 있으니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는 변론 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

 

-360 헤겔은 역사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여러 단계를 이 원리에 의거하여 밝히려고 시도한다. 이 일이 역사적 사실들을 견강부회로 왜곡시킬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역사적 사건들이 발생하는 양식을 알아내는 일과 그러한 원리로부터 역사 자체를 연역하는 일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 헤겔에 대한 셸링의 비판은 헤겔의 자연 철학이 지닌 결함을 지적했던 것만큼이나 정확하게 헤겔의 역사 철학이 지닌 결함을 지적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368 역사적 상황에 관한 헤겔의 인식을 보면, 그는 절대자가 언제나 우리의 눈앞에 전개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철학적 체계를 세우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셈인데, 그의 견해에 의하면 철학적 체계는 항상 사건이 일어난 뒤에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 헤겔은 <<법철학>>의 머리말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땅거미가 졌을 때만 날기 시작한다는 말로 아주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73 키에르케고르는 기존의 윤리 이론들이 너무나 이성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윤리 이론에 맞게 인생을 실제로 살아갈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한 사람의 도덕적 행동이 지닌 특수성은 어떤 윤리 이론에 의해서도 충분히 헤아려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는 어떤 도덕 규칙의 경우에도 그 규칙성을 깨는 반대 사례나 예외의 경우가 항상 쉽게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키에르케고르가 사람은 윤리적 원리보다 종교적 신념에 의해 살아야 한다고 몰아댔던 것은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374 이성을 과소 평가하는 것은 이성을 과대 평가하는 일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명심하는 게 좋은 일이다.헤겔은 이성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이성이 우주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는 과오에 떨어졌다. 키에르케고르는 반대편의 극단으로 치달아 결국 이성은 우리가 참으로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 즉 구체적인 것을 파악하는 데에는 쓸모가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과학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낭만주의를 지탱하는 최고의 원리들과 일치하고 있다.

 

>> 이성에 대해서 때로는 과소 평가하고, 때로는 과대평가를 하였는데 이제 그것의 중도를 지키는 노력들이 중요하다.

 

-376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철저히 악한 것으로 보며,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지 않을 수 없는 모든 고통을 이 의지 탓으로 돌린다. 게다가 그는 헤겔이 그랬던 것처럼 지식을 자유의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의 근원으로 간주한다. 이리하여 쇼펜하우어는 이성주의자들의 낙관주의 대신에 행복이 들어설 자리가 전혀 없는 우울한 인생관을 보여주고 있다

 

-376 쇼펜하우어는 이 인생의 고통스런 상황을 푸는 해결책을 불교의 신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의 인생에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 의지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의지를 마취시킴으로써 우리가 열반 즉 공에 도달하게 되어 마침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 신비로운 황홀 상태가 우리로 하여금 마야의 장막을 걷어 내고 세계의 실상을 보게 한다고 주장하는데, 마야란 이 세계에 대한 환상적 생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377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이성주의에 입각한 헤겔학파의 여러 가지 신조에 반대하면서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의지의 강조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거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많은 철학자에 의해 채택되었다. 이 생각은 실용주의자들의 철학뿐만 아니라 니이체의 철학에서도 볼 수 있으며, 실존주의자들 역시 의지가 이성에 대립하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쏟았다.

 

-379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자유인은 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루려고 분투노력해야 할 목표는 신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인간이다.

 

 

<< 9. 공리주의 철학과 그 이후 >>

 

-383 모든 혁신적 기계의 발명은 그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그렇지만 대체로 보아 인간은 보수적 동물인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의 기술적 재능의 발달이 정치적 지혜의 터득을 앞질러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 인해 생긴 불균형을 인류는 아직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 이로 인한 불균형이 오히려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는 요소인지도 모르지만, 기계의 발명전에 필요성에 대해서 더 심사숙고할 필요는 있으리라.

 

-385 아담 스미스가 상품 생산과 관련하여 논했던 노동의 분업은 얼마 나 되어 지적 탐구의 분야에서도 거의 같은 정도로 퍼지게 되었다. 학문적 탐구도 19세기를 지나면서 말하자면 산업화되었던 셈이다.

 

-390 공리주의 윤리학에 관한 밀의 설명은 <<공리주의>>(1863)에 개진되어 있다. 이 책에는 벤담을 넘어선 내용은 거의 없다. 최초의 공리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에피쿠로스와 마찬가지로, 밀은 결국 어떤 쾌락은 다른 쾌락보다 질적으로 더 높은 쾌락이라고 인정하려 하였다. 그러나 밀은 단지 양적 차이만 보이는 쾌락과 대비되는 질적으로 훌륭한 쾌락이 어떠한 것인가를 설명하는 일에 실제로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는 전혀 놀랄 만한 일이 못 되는데, 그 이유는 최대 행복의 원리와 그에 뒤따르는 쾌락의 계산 자체가 암암리에 양의 편을 들면서 질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391 공리주의 윤리학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는 처음부터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이 선이라고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이 윤리적 신조는 사람들이 항상 이런 보편적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식에 따라 실제로 행동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와는 전혀 관계없이 주장될 수 있다. 그러므로 공리주의 원리에 의하면 법의 기능은 사회에 최대의 행복이 이루어지도록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런 법적 토대 위에서 진행되는 개혁의 목표는 이상적인 제도의 완성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상당한 정도의 행복을 마련해 줄 수 있는 현실적인 제도의 정착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공리주의 윤리학은 민주주의 사회에 알맞은 이론이다.

 

-398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혁명에 동의하고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구분하기 위해 마련된 딱지가 반동 분자라는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글자 뜻 그대로 진보의 반대쪽으로 가는 사람 즉 진보를 방해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지만 변증적 과정은 이런 반동분자는 언젠가 때가 되면 제거된다는 것을 보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진보는 결국에는 승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생각은 마르크스주의 신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폭력에 의해 제거해야 한다는 이론적 근거로 사용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 정치 철학의 이 대목에는 구세주 신앙의 성향이 강하게 깔려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초기 신조를 창시한 마르크스가 한 우리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은 우리에게 반대하는 자들이다라는 말은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생각이 민주주의적 신념의 원리가 못 된다는 건 분명하다.

 

-400 콩트는 우리가 경험에 의해 직접 주어지는 것을 가지고 철학을 시작해야 하며, 현상의 배후로 넘어가는 일을 삼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으므로, 자신의 철학을 실증 철학이라고 불렀다

 

-408 제임스의 구별에 따르면 이성주의 이론은 물질적인 것을 희생시키고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성주의 이론은 낙관적인 성향을 보이고 통일을 위해 노력하며 실험을 무시하고 내성을 중시한다. 이를 '유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경험주의 이론이 있는데, 이 이론은 비관적 성향을 보이고 이 세계의 부분들이 분할되어 있음으로 인정하며 사변적 궁리보다는 실험을 더 좋아한다. 제임스에 의하면 이런 이론은 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414 여전히 철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어떤 논리 체계가 가동을 시작하기 전에 세워지는 논리적 기호들의 체계에 관한 일반적 가정들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415 역설에 얽혀 있는 난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탐구되었으나, 이 난점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일반적 의견 일치에는 아직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러면서도 철학자들에게 다시 한 번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과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철저히 음미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 10. 현대 철학 >>

 

 

-418 전문화를 재촉하는 현실적 필요성과 압력은 젊은이들의 관심의 폭을 넓히고 또 그에 대해 이해력을 갖출 충분한 시간을 갖기도 전에 곧장 좁은 영역으로 밀어 넣어 버린다.

 

>> 이것이 현대의 가장 큰 문제점이 되는 것 같다. 전체의 숲을 보기 이전에 곧장 좁은 영역으로 밀어버리게 되니 편협한 속에서 갇혀버리게 되는 상황이기에 전체를 볼 수 있는 견해가 필요하다.

 

-419 지금까지 이 세계를 완전한 파멸로부터 구해온 것은 역설적인 말이지만 반복해서 나타난 통치자들의 무능이었다.

 

-428 베르그송은 본능의 최고 형태를 직관으로 간주하는데, 이 직관은 이 세계와의 직접적 일치에 도달하는 일종의 정신 활동이다.

 

-429 우리는 '기억'이란 말을 어떤 때는 누군가가 지금 진행시키고 있는 회상이라는 정신활동을 가리키는 뜻으로 이해하며, 또한 때로는 그렇게 회상되고 있는 과거의 사건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440 서양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서양의 기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기술을 개발하였던 과학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이었다. 이 힘들은 그래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 과학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의 중요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늦었지만 지금이라고 그것을 찾아야 할 때인 것 같다.

 

-444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매 순간마다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있다. 그러니 인생에는 전통과의 연결이나 개인의 생활에 이미 일어난 사건과의 연결은 전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새로운 결단을 내릴 때마다 완전히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다.

-451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진술을 더 이상 나눠질 수 없는 궁극적인 단순 성분들로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이론은 때로 논리 원자주의라 불렸는데, 초기의 이성주의자들이 주장했던 단순하고 궁극적인 것들이 있다는 신조와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 맺음말>>

 

-453 아무리 방대한 책일지라도 단지 한 권의 책을 읽고 전문가가 될 수는 결코 없는 법이다. 정말이지 어떤 주제에 관해 그저 많이 읽기만 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주제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 건 아니다. 어떤 주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과 더불어 반드시 필요한 일은 그렇게 모은 가지각색의 자료에 대해 상당히 치밀하게 반성하는 것이다.

>> 가지각색의 자료에 대해 치밀하게 반성하는 자세가 중요한데 그동안은 가지각색의 자룔르 모으는데만 급급했다. 그래서 이제는 치밀한 반성을 해나가야 하리라.

-453 철학의 역사 중에서 관련 있는 대목을 때때로 상기시킴으로써 철학적 견해들이 자라온 배경 상황을 잊지 않도록 하는 일에 뜻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이 일을 통해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오늘에까지 이른 서양의 문화적 전통에 흐르는 연속성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454 언급범위를 이처럼 서양 철학에만 한정할 수밖에 없도록 했던 더욱 강력한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다. 그건 서양의 철학적 전통이 몇 가지 결정적인 점에서 동양 사람들의 사변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철학적 활동이 과학적 전통과 긴밀한 관련을 유지하면서 진행된 문명은 그리스 문명이외에는 전혀 없다. 그리스 사람들의 진취적 활동에 독특한 의의를 부여해주는 건 바로 이 사실이며, 더 나아가 서양의 문명을 독특하게 형성시켜 온 것도 실은 이 두 가지 전통이다.

 

>> 철학과 과학의 만남. 긴밀한 관련이 있고,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만 했지 철학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빠르게 발전은 했지만 사람들은 힘들고 괴로워한다. 그래서 이제는 철학을 하면서 과학도 같이 해나가야 하리라. 철학하지 않으면 그게 인생의 어느 순간이 될지 모르겠지만 결국엔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454 철학이 우리에게 마련해 줄 수 있는 것은 경험적 탐구의 성과들을 통찰하는 방식, 말하자면 과학의 성과들이 어떤 종류의 질서를 드러내도록 정돈할 수 있는 틀이다.

 

 

-455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건 오직 사람일 뿐이며, 사람이 명제를 언어로 진술할 때에는 오류에 떨어질 가능성이 항상 있는 법이다.

 

-456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사람에겐 살 가치가 없다.

 

-458 소크라테스는 한 사람이 아는 지식의 양은 거의 내놓을게 없을 정도로 적다고 아주 기꺼이 인정했다. 따라서 지식과 관련해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람은 반드시 지식을 추구해 한다는 그것이라 하겠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선과 동일시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탐구였다. 이것은 피타고라스로부터 유래하는 윤리의 원리이다.

 

458. 언론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탐구자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있는 자유로운 사회를 성장시키는 위대한 촉진제이다. 자유로운 사회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이 두가지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정도까지는 지금 관심의 대상인 지식이라는 좋은것에 이바지 할 수 있다. 이 말은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누구나 똑같은 의견을 갖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어떤 방법도 강압에 의해 금지되지 않도록 탐구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이지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사람에겐 살 가치가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4. 내가 저자라면

 

책의 제목이 서양의 철학사가 아닌 <<서양의 지혜>>. 버트런드 러셀이 서양철학의 역사를 음미하면서 재구성한 것인데, 서양의 철학사는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객관적인 나열일 것 같고, 이 책은 그 객관적인 것을 자신의 주관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탈레스에서부터 시작하여 비트겐슈타인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를 단순히 철학사만이 아닌 역사적 배경과 그 인물들의 자세한 부분까지 많은 분석과 비판을 하는 그의 체계가 놀랍다.

러셀의 할머니가 좋아하던 성서 이야기인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 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출애굽기 23:2/새번역성서)는 러셀의 좌우명처럼 그는 서양의 지혜를 객관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담담히 써내러 갔다.

그리고 그가 이 책을 쓴 의도처럼 지적유산을 물려준 선조들의 덕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고 선조들에게 진 빚을 잊어가고 있었다는 반성을 많이 했다. 지식을 덥석 물기만 하는데 바쁘고,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고, 질문을 하는 자에게 이상한 눈빛을 보내는 현실을 그냥 남의 탓인 냥 살아온 것이다. 철학자들이 어떤 고민을 했으며, 그것을 어떤 식으로 해결을 해왔는지 그것을 알아보려고 해도 현재가 그렇게 답답하지 않았을 거시다는 생각을 했다.

철학이 왜 중요한지, 논쟁과 토론, 비판이 왜 중요한지 우리는 이런 것을 잊은 지 오래 되었는데 이것의 중요성을 시대를 거슬러가면서 알려준다.

 

그리고 현대로 오면서 발전을 하고 있지만 많은 철학적 기반이나 학교의 기반이 이미 기원전에 이루어졌음을 보고 놀랬다. 철학의 기반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이고 학교의 기반은 피타고라스 학파를 기반으로 구성했다.

피타고라스학파 학교의 전통적 주제들인 산술학, 평면 기하학과 입체 기하학, 천문학, 음악학 즉 화성학이 교과과정의 기본적 골격이 현재에서 유지되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신기하다. 논리학과 수학의 절묘한 조화. 대학 입시를 위한 수학이 아니라 철학을 위한 기반이 수학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그동안 그리스 문명이 위대하다고 여러 번 보긴 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위대성을 알게 되었고, 동서양의 철학의 접근 방식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리스 사람들의 과학과 철학이 지닌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은 증명(Proof)이라는 생각이라고 지적했었다. 동방의 천문학자들은 현상을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데 반해서,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현상을 설명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어떤 명제를 증명하는 과정은 반드시 논증을 구성하는 일을 필요로 한다. (127p) ’

 

언급범위를 이처럼 서양 철학에만 한정할 수밖에 없도록 했던 더욱 강력한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다. 그건 서양의 철학적 전통이 몇 가지 결정적인 점에서 동양 사람들의 사변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철학적 활동이 과학적 전통과 긴밀한 관련을 유지하면서 진행된 문명은 그리스 문명이외에는 전혀 없다. 그리스 사람들의 진취적 활동에 독특한 의의를 부여해주는 건 바로 이 사실이며, 더 나아가 서양의 문명을 독특하게 형성시켜 온 것도 실은 이 두가지 전통이다. (454p)’

 

소크라테스의 위대성을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지식을 선과 동일시하려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세와 자신이 아는 지식의 양은 아주 적다고 강조하면서 늘 배우려는 자세에 고개 숙여진다.

 

소크라테스는 한 사람이 아는 지식의 양은 거의 내놓을게 없을 정도로 적다고 아주 기꺼이 인정했다. 따라서 지식과 관련해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람은 반드시 지식을 추구해 한다는 그것이라 하겠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선과 동일시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탐구였다. 이것은 피타고라스로부터 유래하는 윤리의 원리이다. (458p)

그리고 철학사상을 수학의 간단한 수식 기호등을 이용한 기하학적인 표현을 한 것이 인상적이다. 러셀만이 해낼 수 있는 방식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관련 삽화가 시대적 배경에 맞게 구성되어 이해하기 좋았다.

이름찾기,내용찾기, 삽화해설등 마무리까지 친절하게 구성을 하였다.

 

 

1) 전체적인 뼈대와 목차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인 탈레스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에 이르는 방대한 철학사를 시대적 배경과 함께 각 해당시기의 주요 철학자와 그들의 철학 사조를 분석하고 때로는 비판하면서 시대별로 정리를 하였다.

-목차

 

옮긴이의 말

지은이의 말

 

머리말

1.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2.아테네의 철학

3.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4.초기 기독교 철학

5.스콜라 철학

6.근대 철학의 발흥

7.영국의 경험주의 철학

8.계몽 운동과 낭만주의 철학

9.공리주의 철학과 그 이후

10.현대 철학

맺음말

 

이름찾기

내용찾기

삽화해설

감사의 말

 

 

 

2) 감동적인 장절

 

-10. 과학은 알려진 사실들을 설명하고 철학은 근본적 물음에 관해 사색한다.

 

-29 철학에서 참으로 중요한 일은 답을 꾸며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물음을 제기하는 일이다.

 

-49 이처럼 어떤 사람의 신념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일은 아주 흔히 일어나는데, 특히 자신의 신념들에 대해 비판적 검토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정말이지 누구도 이와 같이 서로 충돌하는 신념들을 동시에 승인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제 믿고 있던 신념과 전혀 상반되는 신념을 혹시 서로 모순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한번 해보지 잘도 믿고 살아간다.

 

-86 그러나 이런 과목들은 어느 것도 그 자체로서 완결되는 것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이 모든 과목은 결국에는 변증의 규범들을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있었으며, 교육에 있어 참으로 강조되어야 할 점은 바로 이 변증의 규범들에 관한 연구라고 보았다.

이처럼 변증의 규범들을 가르치는 일은 오늘날까지도 진정한 교육의 목표로 유지되고 있다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한다. 대학의 기능은 학생들의 머리가 터질 지경으로 가능한 한 많은 사실을 쑤셔 넣는 일이 아니다. 대학의 고유한 임무는 학생들로 하여금 비판적으로 음미하는 습관을 익히게 하고, 어느 주제를 대하든 활용할 수 있는 규범들과 기준들을 이해하도록 하는 일이다.

 

-103 사람들이 자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든 아니면 자립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받지 못해서든 사람들에게서 자립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져 버린 곳에서는 어김없이 선전과 권위주의라는 사악한 잡초가 끊임없이 자라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판을 억누르는 처사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잘못이다. 비판을 억압하는 처사는 그 사회에 활력 있는 통일된 목표를 창조해 내기는커녕 국가라는 정치적 조직체에 맥 빠지고 부서지기 쉬운 획일성을 강요할 뿐이다. 응분의 소임에 따르는 권력과 책임이 부여되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그처럼 흔하다는 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181 그리스 사람들의 철학적 전통은 본질적으로 계몽과 해방을 추구한 운동이다. 그리스 철학이 목표로 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무지의 질곡에서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은 이 세계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게 함으로써 미지의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한다. 그리스의 철학적 전통을 계속 유지시킨 것은 로고스이고, 그리스 철학이 열망하는 것은 최고선의 형상의 인도를 받아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공평무사한 탐구 그 자체를 윤리적으로 선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 까닭은 인간은 종교적 신비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공평 무사한 탐구의 성과를 이용해서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공평무사한 탐구의 전통에 더해서 그리스 철학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부정적 감정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맑고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고 방식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훌륭하게 사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류는 이 참신한 활력을 다소 자의식에 빠져들었던 스토아 철학이 헤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 자리를 굳혔을 때에 얼마간 잃어 버린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서양 문명을 이끄는 지성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최상의 것들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두 그리스 철학자들의 전통에 근원을 두고 있다.

 

-280 베이컨은 사람들이 네 가지 유형의 정신적 약점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고, 그 것들을 우상이라 불렀다. 첫 번째 우상은 종족의 우상인데 우리는 인간이라는 종족이므로 바로 인간을 우상으로 받드는 경우를 말한다. 희망에 의거한 사고 즉 이랬으면 하고 바라는 생각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실례의 하나라고 하겠는데, 특히 자연 현상에 실제로 실존하는 질서보다 더 위대한 질서가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그렇다고 하겠다. 두 번째 우상은 동굴의 우상인데, 이는 개인이 자신의 잘못된 외고집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를 말하므로, 이 우상은 무수히 많다. 세 번째 시장의 우상은 사람이 언어에 현혹되는 경향으로 인해 일으키는 과오인데, 특히 철학에 만연되어 있는 과오이다. 끝으로 네 번째 극장의 우상은 사상의 체계나 학파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일어나는 과오이다. 그러고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종류에 속하는 과오를 많이 범했던 셈이다.

 

-295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스피노자가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을 다음 구절이 알려준다.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법인데, 자유로운 사람의 지혜는 죽음에 관한 성찰이 아니라 삶에 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353 실천 이성의 근본적 물음은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칸트는 이 물음에 대해서도 상당히 혁명적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칸트 이전의 모든 윤리학이 의지는 외부의 영향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항상 가정했었음에 반해서, 칸트는 의지가 제 자신을 다스린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지는 자율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칸트가 도덕 법칙으로 간주했던 것을 찾으려면 우리는 오히려 반대로 자신의 내부를 살펴야 한다.

 

-440 서양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서양의 기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기술을 개발하였던 과학적 전통과 철학적 전통이었다. 이 힘들은 그래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453 아무리 방대한 책일지라도 단지 한 권의 책을 읽고 전문가가 될 수는 결코 없는 법이다. 정말이지 어떤 주제에 관해 그저 많이 읽기만 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주제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 건 아니다. 어떤 주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과 더불어 반드시 필요한 일은 그렇게 모은 가지각색의 자료에 대해 상당히 치밀하게 반성하는 것이다.

-453 철학의 역사 중에서 관련 있는 대목을 때때로 상기시킴으로써 철학적 견해들이 자라온 배경 상황을 잊지 않도록 하는 일에 뜻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이 일을 통해서 고대 그리스로부터 오늘에까지 이른 서양의 문화적 전통에 흐르는 연속성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454 언급범위를 이처럼 서양 철학에만 한정할 수밖에 없도록 했던 더욱 강력한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다. 그건 서양의 철학적 전통이 몇 가지 결정적인 점에서 동양 사람들의 사변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철학적 활동이 과학적 전통과 긴밀한 관련을 유지하면서 진행된 문명은 그리스 문명이외에는 전혀 없다. 그리스 사람들의 진취적 활동에 독특한 의의를 부여해주는 건 바로 이 사실이며, 더 나아가 서양의 문명을 독특하게 형성시켜 온 것도 실은 이 두 가지 전통이다.

 

-454 철학이 우리에게 마련해 줄 수 있는 것은 경험적 탐구의 성과들을 통찰하는 방식, 말하자면 과학의 성과들이 어떤 종류의 질서를 드러내도록 정돈할 수 있는 틀이다.

 

-456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사람에겐 살 가치가 없다.

 

-458 소크라테스는 한 사람이 아는 지식의 양은 거의 내놓을게 없을 정도로 적다고 아주 기꺼이 인정했다. 따라서 지식과 관련해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람은 반드시 지식을 추구해 한다는 그것이라 하겠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선과 동일시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탐구였다.

 

 

 

3) 보완점

한 절의 내용이 많다보니 서브 절들로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대의 대표적인 철학자들을 각 절이 시작되기 전에 잠시 언급해주면 전체적인 시대와 철학자들을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4) 키워드

철학, 과학, 지적 혁명, 공평 무사한 탐구, 논쟁, 토론, 비판, 윤리, 지식은 선 , 행복, 이성,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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