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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9일 12시 00분 등록

일단 쓴데까지 올려봅니다. 오늘 안으로 수정해 올리겠습니다.



Column 8

소면의 힘

강종희

2014. 6.8

 

오사카의 비 오는 밤. 우산을 들고 나선 낯선 거리, 지붕 낮은 단칸의 식당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출장이 아닌 가족끼리의 해외여행을 한번 떠나보자며, 23일로 떠난 패키지여행의 첫날밤, 우리는 배고팠다. 발 디딜 틈 없이 관광객으로 꽉 찬 도톤보리의 유명한 금용라멘집에서 평상 위에 앉아 맛본 라멘은 너무 짰고 결정적으로 금방 배가 꺼졌다.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 잔다고! 내일은 강행군이니 일찍 쉬라며 내려놓은 변두리 호텔 문을 나서니, 슈퍼마켓과 조그만 골목 식당 몇 개가 눈에 띄었다. 까막눈에 달리 메뉴를 설명하는 사진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데, 환하게 등롱을 밝혀놓은 집 창문 너머로 뭔가를 굽는 석쇠가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흘러나오던 누룽지 냄새. 아마도 주먹밥을 굽던 중이었나 보다. 망설이지 않고 식당으로 들어섰다. 

 

오사카 심야식당.jpg이런일본은 정녕 영어프리 국가였다. 메뉴는 순 일본어로만, 사진 설명 따위 없고 젊은 종업원들도 기본적인 영어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 국수를 누들이라 하지 못하고 밥을 라이스라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답답함이여.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옆 테이블 위에 놓은 국수와 꼬치구이였다.

 

얼핏 보기에 면발이 가는 것이, 소면인 것 같았다. 소면은 일본어로 아마도소멘? 꼬치구이는 어정종 먹으러 가서 뭐라 뭐라 써 있는 거 봤는데…. 야끼도리? 신통 방통하게도 이 따위 횡설수설을 기똥차게 알아들은 종업원이 음식을 내왔다.

 

우와, 진짜 소면이었다. 배추와 미역 조금, 닭고기가 아주 살짝 고명으로 얹힌 시원한 야채 육수의 소면. 찐한 간장과 가다랭이 국물 우동의 짠 맛과 돼지뼈 육수가 느끼한 라멘과 달리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 집에서 부르르 끓여먹는 간단한 한국식 소면과 큰 차이 없는 그런 소박한 국수였다. 여기에 소금 양념, 간장 양념, 뭔지 모르겠으나 매콤하게 맛있는 양념으로 구운 닭고기 꼬치 구이와 구운 주먹밥을 곁들이니 맥주가 약수처럼 시원했다. , 맛나다!

 

사실 일본의 면 요리라 하면 우동과 메밀 소바가 워낙 대중적이나, 소면 역시 일본의 대표적인 국수다. 우리가 멸치국물에 말아 먹거나 여름에 비빔면으로 주로 먹는 소면도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일본 면 문화의 시발점이 되는 제분 기술은 원래 우리가 전해준 것이니 문화는 섞이고 주고받는 데서 꽃피우기 마련인가보다.

 

우리가 즐기는 소면이 일본으로부터 도입됐다는 기록은 여러 군데 남아있다. 우선 19세기 초 《규합총서(閨閤叢書)》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사고 (五洲衍文長箭散稿)》에 '왜면'이라는 말이 있고, 이것이 요즘 먹는 소면(素麵)을 설명하고 있어, 소면이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는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다.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최근까지도 소면문화가 융성했던 곳이 부산의 구포시장 일대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조선 시대 부산의 왜관은 일본과의 유일한 교역창구였고, 소금과 밀가루를 섞어 반죽한 뒤 기름을 발라 건조한 건면, 즉 소면을 일본에서 들어온 기록도 남아있는데, 조선시대 경상도의 물류요충지였던 구포에 경부선이 들어 오면서, 밀의 국내 최대 생산지였던 황해도에서 구포까지 밀이 운반되는 루트가 생겼다. 일제강점기부터 부산 시내에서는 구포역과 시장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었고, 6.25사변 시에는 부산으로 밀려든 난민들에게 가격도 싸고 보관도 용이한 건면인 소면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마디로 소면은 가난한 자들의 양식이자, 라면이 나오기 전까지 최초의 간편식으로서 애용되었다.     

 

그런데 일본을 중심으로 빵과 국수의 역사를 정리한 빵과 국수의 문화사’(오카다 데쓰)를 보면, 일본이 본격적으로 밀이 섞인 국수를 먹게 된 것은 고구려 승려인 담징의 덕으로 돌리고 있다. 유명한 승려이자 화가이기도 했던 담징이 일본에 먹, 종이 등과 함께 전한 것이 바로 맷돌이다. 최초의 제분기계라 할 맷돌을 담징이 전해주기 전까지 일본에는 밀을 분쇄하여 식재료로 쓸 수 있는 기술 자체가 없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국수는 원래 승려들의 음식으로 향유되다가, 에도 시대에 와서는 완전히 대중화되어 가판에서 국수를 파는 국수행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때 국수의 주소비자들은 에도에 몰려든 가난한 젊은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는 시기가 좀 더 빠르긴 하지만 17세기 이미 파리 다음의 대도시가 된 이탈리아 나폴리의 상황과도 비슷했다.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파스타는 싼 값에 배를 불릴 수 있는 최고의 패스트푸드가 되주었고, 이미 나폴리에는 대규모의 파스타 공장이 가동되고 있었다. (누들, 크리스토프 나이트하르트, 시공사 참조)

 

이렇게 국수, 특히 말려서 건조한 건면은 세계 최초의 패스트 푸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대도시의 번잡하고 고단한 삶과 수 없는 관계를 이루는 노동자들의 음식이기도 하다.

IP *.134.6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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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2:53:02 *.94.41.89

아마도 이탈리아 본토에서는 그 파스타용 밀이 생산되지 않았다죠!

그래서 파스타 보급이 확대되자 파스타용 밀교역으로 돈이 빠져나가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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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15:08:44 *.196.54.42

전 원래 면은 별 안 좋아하지만 종종님 글발로 쫄깃거리는 소면은 함 먹어봐야 겠어요^^ ㅎㅎ

부창부수라 하더니 소면 하나 가지고 부부가 풀어놓는 글이 반 책이 되었네요, 부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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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20:26:09 *.104.9.216
저도 면을 무척 좋아합니다.
'소면'이란 단어에서 왜색이 보이는 것 같아요.

언제 여름에 데카상스 소면데이 한번 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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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9 20:59:57 *.218.180.22

저도 면을 무지 좋아하는데 요즘 비빔국수를 제 손으로 비벼

같이 먹는  맛을 알았어요.

면 한그릇에 웃음이 묻어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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