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정산...^^
  • 조회 수 1485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14년 6월 10일 15시 16분 등록

 

연휴가 끝나는 월요일 아침.  연휴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한 덕에 몸이 가볍다. 낮으론 여름 더위가 시작 됐지만 아침녘은 아직 선선하고, 오늘은 날씨도 쾌청하다. 집을 나서 전철역까지 10여분을 산책하 듯 걸으니 상쾌하다.  어제 저녁 늦게 잠든 덕에 출근이 조금 늦었다. 늦은만큼 발걸음이 빨라진다.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줄이 평소보다 길다. 연휴 뒤 월요일 출근길은 유난히 붐빈다. 진하게 휴가를 보낸 사람들이 나 처럼 좀 늦은 출근을 하는 게다. 4호선과 2호선을 타고 출근하는 길.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세 정거장은 가끔 전쟁을 치루는 구간이다.

 

전철이 도착했다. 내 앞 사람까지는 힘겹게 올라 탔는데, 내가 타려니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마땅치 않다. 타야하나? 기다려야 하나?  전철 안내판에 후속차가 안보이는 걸 보니 5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지금 타지 않으면 잠실역에 내려서 회사까지 뛰어야 할 지도 모른다. 일단 뒤로 돌아 엉덩이를 들이 밀어본다.  한번 두번 힘을 쓰는데 안 들어가진다. 이대론 안되겠다. 상체를 전철 안쪽으로 기울이고 다리를 굽혔다 펴면서 묵직하게 힘을 준다. 조금 밀리면서 공간이 생겼다. 엉덩이로 밀면서 전철문 상단 안쪽을 손으로 짚는다.  이젠 팔과 다리 양쪽 힘으로 밀어댄다. 몸이 반 이상 들어갔지만 아직 신발은 전철 문지방에 걸쳐있다. 다시 한번 용을 쓴다. 그러자 사람들이 뒤로 밀린다. 사정없이 밀고 들어오는 내 힘에 밀린건지, 아니면 용을 쓰는 게 안쓰러워 안쪽에 있는 사람들이 한발짝씩 안으로 비켜준 건지. 빈틈이 없어 보이던 공간에 약간의 틈이 생겼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나서 안도의 숨을 쉰다.

 

힘들게 자리를 잡았는데 차 문이 닫히질 않는다. 아마 다른 칸에서 올라 타려고 실갱이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두어명이 달려와 타려는 시늉을 하다 엄두가 안나는 듯 포기하고 다른 쪽 문으로 뛰어 간다. '이젠 더 탈 자리 없어요. 운 좋게 탄건 내가 마지막이에요. 헌데 문은 왜 빨리 안 닫는거야?'  조금씩 몸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전철역까지 빠르게 걸었고, 밀고 들어오느라 힘을 썼다. 게다가 좌우 뒷편으론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있다. 등줄기에 가볍게 땀이 배어난다.

 

문이 닫히길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뛰어온 30대 초반의 늘씬한 아가씨가 내 옆의 10센티 남짓 되는 공간으로 밀고 들어온다. 남자들도 포기하고 갈만큼 꽉 들어 차 있는데, 이 아가씨는 상황 판단도 안 해보고 무작정 올라 타려한다. 엉덩이로 밀면서 전철문 상단을 손으로 짚고 푸시하는 모습이 많이 해 본 솜씨다. 내 옆의 작은 빈 공간을 정확하게 파고 들어온다.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아가씨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붐비는데 어딜 비집고 들어오는거야. 왠만하면 다음 차를 타지...' 좀 전에 무지막지하게 밀어 붙이며 타려고 했던 내 모습은 벌써 잊었다. 그냥 몸에 힘을 빼고 편안히 서 있는다. 먼저 타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편히 있으면 밀고 들어오는 사람은 힘들다. 앞서 탄 사람이 조금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으면 타기 힘들어진다. 헌데 왠걸. 이 아가씨 번개처럼 작은 공간을 파고들더니 결국 자리를 잡고 만다. 대단한 처자다.

 

차 문이 닫힌다. 이젠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앞뒤로 꼭꼭 끼어서 가방과 양복 웃도리를 잡은 손은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차가 달리면서 차체가 내쪽으로 기울어지자 숨쉬기도 버거워 진다. 유리창에 눌린 왼쪽 갈비뼈가 뻐근해 지는 걸 느낀다.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머리에서도 땀이 송송 배어나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전철은 느리게 달린다. 얼마전 사고가 난 후 달리는 속도가 많이 느려진 것 같다. 혜화역에선 타는 사람도 없는데 한참동안 문을 열어 놓고 서 있는다. '왜 안가는거야?'

 

보통은 동대문역에서 몇 명쯤 내리는데, 오늘은 내리는 사람도 없다. 이마와 머리에 맺힌 땀방울이 몇 방울 흘러내린다. 손을 꼼짝 못하니 닦을 수도 없다. 그냥 흐르는대로 냅두는 밖에.

 

지금 난 37도의 난로에 둘러 쌓여 있다. 이건 마치 극기 훈련하는 기분이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에서 느끼는 옆 사람의 체온을 이렇게 표현했다.  "여름 징역은 자기 옆사람을 증오하게 합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형벌을 마치고 2호선 환승을 하고 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자리는 널널하고 시원한 에어컨이 나온다. 자리를 잘  잡으면 중간에 앉을 수도 있다. 20여분 남짓 가는 동안 책도 보고 졸기도 한다. 방금 전에 옴짝달싹 못하며 땀흘리던 기억은 편안함과 느긋함으로 바뀐다. 고통뒤에 오는 즐거움이 더 달콤한 법이다.

 

10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월요일이면 가끔 이런 전쟁을 치른다. 30분만 먼저 집에서 나오면 이런 지옥을 면할 수 있을 텐데. 내 짧은 기억력은 고통뒤에 오는 달콤함에 취해서 항상 그걸 잊어버린다.

IP *.97.37.232

프로필 이미지
2014.06.10 16:05:15 *.153.23.18

어휴 생각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집니다. 월요일 지옥철...

연휴 동안 잘 쉬셨다니 좋습니다. ^^

프로필 이미지
2014.06.11 08:34:19 *.62.162.118
공감 백배! ^^ 저도 늘 달콤함에 취해 30분 먼저가 잘 안됩니다. ^♥^
프로필 이미지
2014.06.12 08:27:18 *.50.21.20

저도 그렇습니다. ㅠㅠ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