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4년 6월 10일 16시 28분 등록

J에게 : 온몸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지금 도서관에서 빌려온 아이들이 그리고 이야기를 만든 <시끌벅쩍 그림이야기>를 보고 있다.  미술지도를 받는 아이들이 제각각 동화 하나씩을 만든 것을 스물일곱 개나 모았다. 이 그림책을 도서관에서 처음 집에 들었을 때 나는 주머니가 없는 엄마 캥거루가 나오는 부분을 우연히 펼쳤다. 그 내용이 궁금해서 보다가 착한 결말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곤 이 책에는 아이들 시선이 담겨있겠다 싶어서 빌려왔다.


이 책의 뒷부분에 괴물 이야기가 나오는 데, 그 부분에 이 책을 엮은이는 '괴물, 모험 그림' 모음편 앞에 이렇게 적고 있다.


'상상의 세계를 즐기는 어린이들이나 주로 밖에 나가 에너지를 쓰는 남자아이들은 괴물이나 모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아이들은 평소 그림을 그릴 때도 손과 생각과 입을 모두 사용합니다. 손으로 괴물을 그리고 입으로는 괴물 소리를 내며 몸으로는 괴물 흉내를 내는 식이지요.괴물 하나를 그리면서도 시청각적인 요소를 모두 동원하는 그들의 에너지와 상상력은 놀랍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이미 그림속에 들어가서 그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곤 합니다. 그러면서 평소에 쌓인 스트레스도 스르르 풀립니다.

즐거운 마음에서 다양한 캐릭터가 창조되고,이런 경험을 통해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나만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s-IMG_4119.JPG 


이글을 읽고 그 다음에 첫번째로 나온 아이의 그림을 보니 괴물(귀신)이 참 재미나게 그려져 있다. 내 조카가 생각났다. 너의 조카는 어떤지 모르겠다. 내 5촌 조카 중에 하나는 어려서 침을 하도 많이 흘려서 턱받이가 모두 젖는 아이였다. 그녀석은 혼자서 놀때도 옆에서 보면 뭔가를 자꾸 중얼 거렸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데 '피융피융 피융, 슝슝, 두두두두, 두두두두, 윙~, 피융피융피융'을 헤대느라 온통 침범벅이었다. 아이들은 이름 이전에 소리나 모양이나 행동으로 기억하는 듯 하다. 아이에게는 '경찰차'나 '소방차'보다는 '삐뽀차'다.


우리가 무엇인가의 이름을 말할 때 그것의 특징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을 구분짓는 전달하기 쉬운 것(이름이라는 것)을 단숨에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말하는 그 순간에 그것을 연상하며 그 이름을 말하는지 궁금하다.


전에 즐겨봤던 <바쿠만>이라는 만화에는 '니즈마'라는  천재 만화가가 나온다. 노력형인 주인공들과는 달리 만화에 대해서는 모든 면에서 감이 탁월한 사람이다. 그가 사악한 캐릭터로 만들어낸 것은 까마귀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크로우'라는 이름을 붙인 것인데 그는 그 만화를 그릴 때 작업실을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손으로는 그리면서 한편으로는 공격하고 한편으로는 막고, 또 입으로는 효과음을 내면서 그린다. 그런데, 니즈마를 어시스트하는 점프의 편집기자는 그런 니즈마를 아주 잘 이해한다. 니즈마는 캐릭터에 몰입해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니즈마의 만화가 재미있는 것은 그것을 그리는 만화가가 그 캐릭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니즈마는 독자와 대결하지 않는다. 니즈마는 주인공 자신이 되어서 자신이 원하는 전개로 사건이 흥미진진하게 펼쳐 나간다. 아이들이 기대하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자꾸 만들어낸다.  그 만화를 읽는 아이도 주인공이 되어서 만화가처럼 몰입해서 볼테니까.


니즈마는 평소의 복장이 웃옷의 목둘레 부분에 지우개 가루를 털어내는 작은 깃털 빗자루를 몇 개 꼽고 있다. 그것은 꼭 그의 작은 날개처럼 보인다. 그는 이야기할 때도 펜을 들고, 킷털빗자루를 들고 캐릭터가 하는 동작을 하며 작업실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면서 이야기를 한다. 


니즈마라는 만화가는 주인공들과는 대조가되는 인물이다. 그런 니즈마가 처음으로 소년 점프사를 찾아갈 때의 에피소드가 초반에 나온다. 니즈마는 마중을 나온 편집자를 따라가다가 한눈을 판다. 길거리에서 앉았다가 날아다가는 까마귀에 정신이 팔려있다. 그 까마귀를 보고 따라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 이후로 몇 년후에 니즈마가 크로우를 만들게 되었을 때, 그때 동경에 상경하던 날 본 그 까마귀를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볼 때, 완전히 그것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른들은 그저 눈으로 본다. 눈으로 보고 어떤 모습인지를 살펴보고, 눈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한다. 여전히 제 3자인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것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소리를 따라하면서 그것이 되어 버린다. 


대체로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는 시기는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좌뇌의 활동이 우뇌를 앞서는 시기라고 하나. 크기를 비슷하고 그리고, 비례를 맞추는 것에 골몰하게 되는 시기, 비슷하게 그리기에 골몰하다가 잘 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그리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때부터는 언어로 기술하는 쪽으로 간다고 한다. 그러나 좀전에 이야기한 만화가 니즈마는 그렇지 않았던가 보다. <바쿠만>이라고 하는 만화의 주인공인 아시로기는 니즈마와 대조적이다. 그 아이도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계속 만화를 그리지는 않았다. 중3 정도에서 만화가가 되려고 결심하고 잘 그리기 위한 노력을 한 케이스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그림을 잘 그리지 않는, 혹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우리들과 같은 출발점을 가진 사람이다. 


주인공들과는 반대로 니즈마는 계속 그림을 그리며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듯이 보인다. 보는 것 자체가 그리는 것 자체가 되는 사람으로 보여진다. 온몸을 사용하여 공감하고 온몸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어린아이 말이다. 그래서 수많은 다양한 시점으로 재미나게 만화를 그렸을 거란 짐작을 해본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그 주인공이 되었으니 신나는 모험을 했겠지라고. 이건 그냥 내 생각이다. 만화가는 한 편의 만화를 그리기 위해 자료조사도 하고 그림도 여러가지로 그리고 편집회의도 하니까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요소를 넣었겠지만, 나는 만화 스토리를 보고 이랬을 거라고 짐작해 보는거다. 니즈마는 이렇게 세상을 볼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보는 방식으로 사물이나 동물, 식물을 몇 번이나 보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관찰하는 제3자이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직접 그리고 이야기를 쓴 것을 엮은 책을 보면서 나는 내가 여전히 관찰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난 그저 눈으로 보고 손으로만 그리려고 했으니까 그리려는 그것이 되어 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s-사용자 지정 3.jpg

'바쿠만의 주인공들. 아시로기무토'


s-사용자 지정 5.jpg

'니즈마 에이지'가 크로우를 그릴 것으로 편집자를 만날 때



**

처음에 나온 그 아기주머니가 없는 엄마캥거루는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니?

아기주머니가 없었던 엄마캥거루는 다른 동물들에게 묻고 물어서 빵집에 가게 된다. 빵집에 친절한 아저씨가 자기 앞치마를 엄마캥거루에게 벋어주어서 엄마캥거루는 주머니가 생겼고, 이제 그 주머니에 아기캥거루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생 아이가 만들어내고 그린 이 이야기에 나는 감동받았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그린 그 아이는 무엇을 보았을지 궁금하지 않니? 

IP *.131.205.7

프로필 이미지
2014.06.10 17:01:45 *.201.146.68

일단은 소질이 없어요. 

발로 그려도 손으로 그린거랑 차이가 없는데요. 뭘!


^^

프로필 이미지
2014.06.10 19:59:17 *.131.205.7

그말 못 믿겠습니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니 잘 그릴 거란 짐작을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06.11 08:39:01 *.62.162.118
어느새 어른이 되어 그림 그리기를 잃어버리고 사네요. ^^ 뭔가를 그려 보고 싶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06.12 08:38:11 *.131.89.14

형선씨는 에너지 충만이니까 잘 그리실 거예요.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같아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