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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7일 01시 26분 등록

6월 오프 수업 후기

10기 김정은

 

 

3주전 교육팀 창선배님께서 과제를 미리 공지하셨다. 자신에게 중요한 사건 3가지를 신문기사처럼 객관적으로 쓸 것! 그 사건들을 통해서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일 것이다. 신문기사처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새로운 시도라 신선하기도 했고, 나를 객관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지난 40년간 묵혔던 내 비밀을 시원하게 털어놓고 나서 혼란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자신감이 넘쳐 자뻑에 달하고 있다. 놀랍다. 바닥을 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그래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했었는데. 계획적인 나는 이렇게 내가 예상했던 것과 상반된 상황이 될 때 참 당황스럽다.

 

비밀도 털어놓았고, 자랑도 늘어놓았다. 그렇다면 내게 이제 남은 것은? 지금 내 상태는? 속은 바닥을 치는데, 겉만 자뻑을 달리는 건가? 아직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건가? 정신이 몽롱하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내 몸은 요즘 내 몸이 아니며, 내 것이라 생각했던 내 마음도 내 마음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털어놓아 속이 텅 빈 것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변경연의 커리큘럼이 참 마음에 들었었다. 내가 제대로 파악했는지 모르겠지만, 매 달 크게 정해져 있는 큰 주제 아래 보석 같은 고전들을 읽고, 저자와 저서를 뜯어먹고 내 문장으로 배설하는 것이다. 미스토리를 작성함으로써 나를 비우고, 상반기 신화, 역사, 철학, 문학으로 다시 빈 속을 양질의 토양으로 채운다. 하계 연수 여행을 하면서 사랑을 주제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짚어 볼 것이다. 하반기 내 안의 영웅성 포착을 시작으로 미래, 경영, 창조의 고전들을 거쳐 그 토양에 씨를 뿌리는 작업을 하게 된다. 내년 그 씨앗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꽃을 피우기도, 열매를 맺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좋은 커리큘럼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일은 제대로 비우고, 양질의 토양을 채우는 것이다. , 제대로 비우고 있나? 외향형인 나는 내 속을 깊게 들여다 보는 것이 어렵다. 내 문제가 눈에 훤히 드러나는 내 신체에 있는 것이어서 내가 파악할 수 있었다. 내 문제가 신체에 있더라도 몸 속에 있거나, 마음이나 생각에 있었다면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어쩌면 지금 내 마음과 정신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인식하지 못 한 것일 뿐. 나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무의식적으로 그냥 막 글 써 보기이다. 나도 내 글이 아름답기를 바란다. 그래서 고심해서 정제된 표현을 쓰고 싶다. 하지만 그 일은 내년으로 미루리라. 지금은 무작정 많이 써 볼란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떠오르는 대로, 가감없이!

 

창선배님께서 내 주신 과제는 그렇게 썼다. 그냥 막 떠오르는 대로. 사건 세 번째 노조 파업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의 신문 기사를 참조했다. 다 쓰고 보니, 나는 주관적으로 쓰나, 객관적으로 쓰나 별 차이가 없다. 과연 내 인생에 영향을 준 것은 오직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밖에 없는 걸까?

 

6월 오프 수업에 에움이 올까? 지난 5월 오프 수업이 끝나고 에움은 나와 동침까지 했었다. 5월 오프 수업 후 우리는 각자 혼란스러워 했다. 에움은 6월 오프 수업을 하기로 한 주말, 토요일은 동생 결혼식으로, 일요일은 엄마 생신, 월요일은 집안 제사로 체력적으로 상당히 바쁜 주말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진해와 인천을 왔다갔다하며 천안을 들릴 수 있을지 대중 교통 노선을 뽑는 것도 불가능한 일 같았다. 치밀한 에움은 자신의 일정을 일찍이 데카상스에 알렸고 우리는 오프 수업 일자 변경안으로 투표까지 했지만 다들 개인적인 일정이 잡혀 있어 일자를 바꾸지 못했다.

 

원나잇 동침의 여파는 컸다. 에움이 오지 않는다면? 나도 별로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에움에게 꼭 오라고 해야 할까? 그녀가 몸살 나면 어쩌지 걱정도 된다. 언니 결혼식 후에 나는 링거투혼을 하며 엄마를 도와 손님 치레를 했었다. 게다가 에움 동생의 결혼식 바로 다음 날 에움 어머니 생신이다. 에움의 어머니는 매년 생신 그 다음날 제사를 지내야만 하셨다. 게다가 올해는 아들의 결혼식까지 겹쳤다. 에움의 도움이 절실해 보인다. 효녀 에움은 엄마를 위해 데카상스를 버리고 엄마를 도울 가능성이 높다.

 

에움에게 전화했다. 늦게 오더라고, 또 일찍 가더라도 꼭 오라고 데카상스와 나의 뜻을 전달했다. 일상은 언제나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올해 만은 나를 돌아보는 것을 0순위에 놓자!

 

점심으로 으리으리한 진수성찬을, 저녁으로 피울표 보이라면과 희동표 불고기와 쌈채소를 실컷 먹었다. 사랑하는 데카상스들과 무얼 먹어 맛이 없겠냐만 데카상스의 톡톡 튀는 맛 분석은 둔한 내 미감을 깨웠다. 내 감각들이 새로운 자극을 받으며 한입한입 음미하기 시작했다. 난 여태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를 왜 모르고 살았나? 난 왜 여태껏 취향이란 것이 없었나? 맛있다라는 형용사 외에 수많은 다른 표현들을 왜 떠올려보지 못했나? 여러 형용사들을 떠올리며 한입한입 먹었다. 너무 많이 먹었다.

 

과식이 원인이었나? 좌식이 익숙하지 않아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원인이었나? 수업은 시작 되었고 동시에 내 배도 가스를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체세포가 분열 하듯 배 속에서 가스가 가스를 낳기를 반복했다. 자연분만으로 아이 둘을 생산한 몸은 아이가 나오는 신성하고도 신비로운 그 길은 출산 후 며칠이 지나면 완벽하게 원상 복귀했다. 하지만 괄약근은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나? 슬금슬금 불안하다. 마음 놓고 웃을 수도 없다. 나의 데카상스에겐 향기로운 사람이고 싶은데 실수하지 않기를 제발!

 

배가 빵빵하게 분 풍선처럼 단단하게 차 올랐다. 내 초미의 관심사는 불상사가 안 생기는 것이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했지만 그 곳은 아예 입을 꽉 다물었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픈 내 마법 같은 주문으로 그곳은 이완작용이란 걸 완전히 잊어버렸나 보다. 이제 급성 맹장염의 통증이 왔다. 곧 진통 초기 느낌 있는 통증이다. 한 두 명 잠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나 향기롭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나 좀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나는 엉뚱한 곳에 초 집중한 상태로 수업에 전혀 몰입하지 못했다.

 

배가 아픈 와중에도 잠깐 잠깐 데카상스를 보았다. 내 눈엔 내가 좋아하는 시인, 장정일을 닮은 피울님, 이지적인 눈매를 닮아 손석희 여동생이 아닌가 싶은 종종님! 지난번에 에움과 동침하면서 에움에게 훅 갔다면, 이번엔 피울님의 눈물과 종종님의 감성 가득한 눈매에 그만 쓰러졌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늦게 에움이 동참했고, 아침 일찍 떠난다고 했다. 에움이 잠들기 전까지 내가 옆에 있어야지. 지난번 오프에서 나는 에움의 포숙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관포지교를 생각하며 배가 아프고 졸려도 자리에 꿋꿋이 앉아 있었다. 독한 에움은 무리한 일정에 피곤할 만도 할 텐데 졸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아예 밤을 지새우겠단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아 왔다. 아침이다. 죽겠다. 다시는 잠을 안 자는 것으로 의리를 지키진 않으리! 마음으로 글로 말로 포숙이 되리!

 

맹장염과 진통에 맞먹을 정도의 복통으로 얼룩진 6월 오프 수업! 그래도 기억에 남는 한마디가 있어서 좋다. 새벽녘 과제를 내 주셨던 창선배님께서 귀한 말씀을 해주셨다. 내 글은 남성적이고, 단호하며 설득력이 있다. 지금은 감정적인 면에서 부드럽진 않지만 계속 쓰다 보면 부드러운 글이 나올 것이다. 대중들로부터 설득력 있는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시집 한 권도 주셨다. 너무나 감사하다. 내 글이 부드러워지고, 아름다워 질 때까지 쓰고 쓰고 또 써야겠다.

 

마음에 걸리는 한마디도 있다. 40년 묵은 비밀을 털어놓은 자의 오만 방자함인가! 세치 혀의 독설인가! 난 독설은 독만 남긴다고 독설은 피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인데, 데카상스에게 무슨 말을 했나? 왜 자신을 털어놓지 않냐고 했다. 그 말이 내가 할 말인가? 전혀 아니다. 데카상스여! 나도 털어놓았으니 너도 털어놓으라는 독설은 잊어주세요! 그저 내가 털어놓으니 털어놓기 전보다 좋더라는 말을, 또 어렵게 털어놓은 분들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랍니다!   

 



IP *.65.15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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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1:39:30 *.104.9.210

혓바닥 깨우의리

밤세의리

포숙되의리

속 편안해지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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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 17:01:34 *.65.152.94

물 마시의리

좋은 물 마시의리

4리터 마시의리

맛 느끼의리 속 편안해지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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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2:31:04 *.94.41.89

다 털어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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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 16:59:48 *.65.152.94

그지요??

터는 게 터는 게 아니야~~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야~~

내 맘이 내 맘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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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5:07:32 *.219.222.34

나 경주 후유증으로 며칠을 고생하다 기진맥진했는데...

맹장염과 같은 진통이라니....참으로 인내심이 대단하심다.

그러게 담부턴 밤샘의리를 지키지 말고 글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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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 16:58:21 *.65.152.94

그지요?? 제가 평소엔 과민성 대장이라 거기가 그럴줄은 상상도 못했답니다 ㅋㅋㅋㅋ

요즘 데카상스가 제 삶의 큰 자극제인가봐요~~ 몸이 평소와는 반대로 작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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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17:01:23 *.113.77.122

단디 하느냐 수고 많았지 ^^

화장실을 오가면서도 계속 자리를 지키는 앨리스에게 감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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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 16:54:57 *.65.152.94

찰나 언니의 저력에 깜놀했습니다!!

모두들 체력이 대단하세요~~~ 부럽부럽~~^^

찰나 언니의 찰나적 개그를 볼 수 있어 더욱 좋은 새벽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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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 11:25:17 *.196.54.42

"지금은 무작정 많이 써 볼란다뼛속까지 내려가서떠오르는 대로가감없이!" => 오~, 이건 나의 말이기도 한데...  공감^^


"좌식이 익숙하지 않아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원인이었나수업은 시작 되었고 동시에 내 배도 가스를 생산해내기 시작했다나의 데카상스에겐 향기로운 사람이고 싶은데 실수하지 않기를 제발!"

=> ㅋㅋㅋㅋㅋ 그걸 생각하고 뒤에 의자까지 여분을 두었는데, 고집피우다 막판에 보니 남의 자리 뺏어 앉아 있었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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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 16:52:17 *.65.152.94

구달님 센스를 못 알아차리고;;;; 뒤 의자는 게스트들을 위한 상석이라 생각하고 못 앉았답니다~~

나중엔 도저히 안되서 뺐어 앉았지만요 ㅋㅋㅋㅋ

셈세한 부분까지 배려해주시는 구달님 짱!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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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1 21:52:57 *.160.136.190

스스로는 아는지. 자신의 변화되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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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02:13:21 *.124.78.132

상상만 해도 힘든 상황에 계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

늘 앨리스 언니를 보면 중심이 딱 잡혀있는 모습이 참 부럽고 또 닮고 싶어요. 그리고 의리있는 모습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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