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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7일 07시 41분 등록

<철학 이야기>

2014.06.16 이동희

 

1. 저자에 대하여 : 월 듀런트 (1885 ~ 1981)

 

1885 11 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노스 애덤스에서 태어났다. 노스 애덤스와 뉴저지 주 커니의 가톨릭 부설 학교에서, 그 다음에는 저지 시의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와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한 후, 뉴저지 주 사우스 오렌지에 소재한 세튼홀 칼리지에 자리를 잡고 라틴어와 프랑스어, 영어, 기하학을 가르쳤다. 이후 그는 평온한 신학교에서 뉴욕의 가장 진보적인 자유주의 교육 실험 학교인 페레르 학교로 자리를 옮기는데 이 학교에서 1898 5 10일 러시아에서 태어난 아이다 카우프만( 에이리얼 이라는 닉네임을 가진)이라는 제자와 사랑에 빠져 교직을 사임하고 그녀와 결혼한다. 부인은 뒤에 남편이 사용하던 애칭 에이리얼로 개명하였다.

 

듀란트는 1885 5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North Adams 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캐나다인인 Joseph Durant Mary Allard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뉴저지에 있는 가톨릭 교구의 부속학교에서 선생님 수녀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종교에 열정이 강한 그였기에 그가 성직자가 되는 것에 대해 어떤 이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1900 그는 베드로 학교에 입학을 하고, 1903년에 학교의 도서관에서 다양한 철학자와 무신론자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확고하게 가졌던 종교에 대한 신념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상 종교인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1907년에 졸업을 하고 뉴저지의 South Orange 세튼 대학에서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와 기하학 등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1909 그가 속해 있던 비밀조직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르크스를 통합하려는 연구를 시작한다. 스피노자를 만나면서 그의 삶에 철학자로서의 길이 열렸다. 신학교를 떠난 그는 자유 교육 실험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유주의 교육을 실험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때 알덴 프리먼은 윌의 서포터 역할을 했고, 그의 유럽 여행을 도왔다. 유럽 여행에서 듀란트는 13 연하였던 에이리얼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 , 그들은 Etherl 낳고, Louis 입양한다.

 

1917 그는 박사 학위를 따고,  번째 저서인 ‘Philosophy and the Social Problem’ 출간하고, 콜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지만 1 세계 대전으로 인해 수업이 순조롭지 않아 교수 자리를 내놓게 된다. 그는 교회에서 철학, 문학, 과학, 음악, 예술의 역사에 대한 강좌를 진행하게 되는데, 강의가 듀란트를 유명하게 만들어 <철학 이야기> <문명 이야기> 밑거름이 된다. 이를 바탕으로 1926년에 <철학이야기> 썼다.

 

1926년에 출간된 『철학 이야기』의 성공으로 1년 후 교직을 떠날 여력이 생긴 듀런트 부부는 가끔씩의 평론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업시간을(매일 8시간에서 14시간)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에 바쳤다. 보다 철저한 준비를 위해 1930년에는 이집트와 근동, 인도, 중국, 일본 등지를 직접 탐방하고 1932년에 다시 일본과 만주, 시베리아, 러시아, 폴란드 등지를 방문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문명 이야기』시리즈의 제1권 『동양 문명』(1935)이다. 이후 몇 번인가의 유럽 방문을 거쳐 제2권 『그리스 문명』(1939)과 『카이사르와 그리스도』(1944)가 준비된다. 1948, 터키와 이라크, 이란, 이집트, 유럽 등지에서 체류하며 제4권 『신앙의 시대』(1950)를 저술하고, 1951년에는 제5권 『르네상스』(1953)를 출간했으며, 1954년부터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독일, 프랑스, 영국에 대한 추가 연구를 시작해 종교 개혁을 새롭게 조망한 제6권 『종교 개혁』(1957)을 발표했다.이들 저작을 준비하는 데 있어 듀랜트 여사의 역할은 매년 그 비중이 더욱 커져 갔으며, 7권 『이성의 시대가 시작되다』(1961)에서는 그 기여도가 너무나 커 책 표지에 두 사람의 이름이 공저자로 나란히 오르게 된다. 『루이 14세의 시대』(1963)와 『볼테르의 시대』(1965), 『루소와 혁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으로 두 부부는 공동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75년 제11권 『나폴레옹의 시대』의 출간을 끝으로 50년에 걸친 이 대작은 완결된다.

 

1977년 발간된 <두 사람의 자서전(A Dual Autobiography)>에서 자신들의 공동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에이리얼 듀랜트(Arial Durant) 1981 10 25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윌 듀랜트도 그로부터 13일 후 11 7일에 96세를 일기로 그녀를 뒤따랐다. 현재 그는 아내와 함께 나란히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Westwood Village 기념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윌듀란트의 저서는 다음과 같다.

철학이야기, he story of Philosophy(1926), Transition(1927), The mansions of Philosophy(The pleasure of Philosophy 으로 재출간, 1929), The Case for India(1930), Adventure in Genius(1931), The pleasures of Philosophy(1953)

 

Ariel 과의 공동저서는 다음과 같다.

 

The Lessons of History(1968), Interpretations of Life(1970), A Dual Autobiography(1977), The Story of Civilization(1935, 1권발행), The Life of Greece(1939), Caesar and Christ(1944), The Age of Faith(1950), The Renaissance(1953), The reformation(1957), The Age of Louis XIV(1963), The Age of Votaire(1965), Rousseau and Revolution(1967; Pulitzer Prize, 1968), The Age of Napoleon(1975)

 

사후 출판된 도서는 다음과 같다.

The Greatest Minds and Ideas of All Time(2002), Heroes of History : A Brief History of Civilzation from Ancient Times to the Cawn of the Modern Age(2001)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P8

한때 모든 학문을 불러들여 그 도움을 받아 세상의 일관된 이미지를 만들고 매혹적인 선의 그림을 그리던 철학마저도 조정이라는 과제가 자신의 용기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진리의 전선에서 도주했다. 소심하게도 삶의 쟁점과 책임으로부터 몸을 피해 난해하고 좁은 길에 숨어버린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인간의 정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

 

P8

이제 남은 것은 더욱더 적은 것에 관하여 더욱더 많이아는 학문의 전문가와 더욱더 많은 것에 관해 더욱더 적게 아는 철학의 사변가뿐이다. 전문가는 곁눈가리개를 이용해 시야에서 온 세상을 가리고 비좁은 한구석만 남긴 다음, 거기에 코를 처박았다. 전망은 사라졌다. ‘사실이 이해를 대체했다. 수많은 조각들로 잘게 쪼개져 고립된 지식은 이제 지혜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P14

공자는 스펜서나 콩트만큼이나 실증주의적이다. 그의 관심은 늘 도덕과 국가에 가 있다.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수치스러울 정도로 이해가 쉽다는 점이다. 철학자에게 이보다 치명적인 약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현대인은 철학의 수다스러운 용어에 너무 익숙해져서 철학이 그런 용어 없이 제시되면 그것이 철학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난해함을 나쁘게 보는 편견을 가진 사람은 벌을 받는다.

 

P14

(철학 이야기)는 유머라는 양념을 뿌리려고 노력했다. 무서운 얼굴로 즐거움을 쫓아버리는 지혜는 지혜롭지 않기 때문일 뿐 아니라, 큰 전망에서 태어난 유머 감각은 철학과 가까운 친족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미소만큼 책에 상처를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유머가 있다는 평판은 정치가나 철학자에게는 재앙이다. 독일은 쇼펜하우어의 운첼만 이야기를 용서할 수 없었다. 오직 프랑스만 볼테르의 위트와 재기 발랄함의 깊이를 알아보았다.

 

P17

나는 인식론이 현대 철학을 납치하여, 거의 망쳐버렸다고 믿는다. 나는 인식 과정 연구가 심리학이 할 일로 인정받는 때, 철학이 경험 자체의 양식과 과정의 분석적 묘사라기보다는 모든 경험의 종합적 해석으로 다시 이해되는 때가 오기를 바라고 있다. 분석은 과학에 속하며, 우리에게 지식을 준다. 철학은 지혜를 위한 종합을 제공해야 마땅하다.

 

서론 철학의 쓸모에 관하여

 

P23

철학에는 즐거움이 있다. 심지어 신기루 같은 형이상학에도 매혹이 있다. 이것은 육체적 생존의 비루한 요구들 때문에 사상의 고원에서 경제적 투쟁과 이득의 장터로 질질 끌려 내려오기 전까지 모든 연구자가 느끼는 것이다.

 

P23

우리는 브라우닝에게 공감한다. “삶에는 의미가 있고, 그 의미를 찾는 것이 나의 고기요, 술이다

 

P24

우리는 온전해지고 싶어하며, 우리의 욕망들을 비판하고 그것들 사이의 조화를 찾아내 에너지를 조절하고 싶어한다. 조절된 에너지야말로 윤리학과 정치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또 어쩌면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소로는 말했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명민하게 생각하거나 학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지극히 사랑하여 그 가르침에 따라 단순하고, 독립적이고, 통 크고, 신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P24

우리가 지혜를 찾을 수만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은 우리에게 따라올 거라고 믿을 수도 있다. 베이컨은 우리에게 훈계한다. “너희는 먼저 마음에 좋은 것을 구하라. 그러면 나머지는 따라오거나, 아니면 없어도 아쉽지 않을 것이다.” 진리가 우리를 부유하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P24

하지만 철학이 정체된 것일까? 사실 과학은 늘 전진하는 반면, 철학은 늘 쇠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철학이 과학의 방법에 아직 열려 있지 않은 문제들, 예컨대 선과 악, 비와 추, 질서와 자유, 삶과 죽음 같은 문제들을 다루는 힘겹고 위험한 과제를 받아 들이고 있는 탓일 뿐이다.

 

P25

철학은 미지의 것(형이상학의 경우)이나 부정확하게 알려진 것(윤리학이나 정치철학의 경우)에 대한 가설적 해석이다. 철학은 진리의 공성전 맨 앞줄에 있는 참호다.

 

P25

철학은 당혹하여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승리의 열매를 딸인 과학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거룩한 불만족 속에서 불확실하고 탐사되지 않은 곳으로 계속 나아가기 때문일 뿐이다.

 

P25

철학자는 사실을 묘사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사실과 경험 일반의 관계를 확인하고, 그럼으로써 그 의미와 가치에 이르고 싶어한다. 그는 사물들을 해석적 종합 안에 묶으려 한다.

 

P26

사실들은 욕망과 관련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목적이나 전체와 관련을 맺지 못하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이 없는 과학, 관점과 가치판단이 없는 사실은 파괴와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없다. 과학은 우리에게 지식을 주지만, 지혜를 줄 수 있는 것은 철학뿐이다.

 

P26

구체적으로 철학은 다섯 가지 연구와 담론 분야, 즉 논리학, 미학, 윤리학, 정치학, 형이상학을 의미하고 아우른다. 논리학은 사고와 조사에서 이상적인 방법을 연구한다. 관찰과 내성, 연역과 귀납, 가설과 실험, 분석과 종합, 이런 것들이 논리학이 이해하고 안내하려 하는 인간 활동의 형태들이다. 우리 대부분에게는 따분한 연구지만, 사상사에는 인간이 사고나 조사의 방법에서 이룬 개선들이 큰 사건으로 기록된다. 미학은 이상적인 형식, 즉 아름다움을 연구한다. 이것은 예술의 철학이다. 윤리학은 이상적인 행동을 연구한다. 소크라테스는 최고의 지식은 선학에 관한 지식, 삶의 지혜에 관한 지식이라고 말했다. 정치학은 이상적인 사회조직을 연구한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공직을 차지하고 유지하는 기술이나 과학이 아니다.). 군주정치, 귀족정치, 민주정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페미니즘, 이런 것들이 정치철학의 등장인물이다. 마지막으로 형이상학 (이것은 매우 골치가 아픈데, 다른 형태의 철학과는 달리 이상에 비추어 현실을 조정하려는 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은 모든 사물의 궁극적 실재를 연구한다. 물질’(존재론), ‘정신’(철학적 심리학), 인지와 인식 과정에서 정신물질의 상호관계 (인식론)등의 진정한 최종적 본질을 연구한다.

 

P27

그러다 보면 우리도 레오나르도가 말하는 가장 고상한 쾌락, 즉 이해의 기쁨을 어느 정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P27

에머슨은 묻는다. “진정한 학자가 되는 비결을 아는가? 모든 사람에게는 뭔가 배울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의 제자다.” 우리가 그런 자세를 취하는 상대는 역사상 최고의 정신들이니,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일은 없을 것이다.

 

P28

따라서 그들의 일시적 오류는 용서하고, 그들이 가르치고자 하는 교훈을 열심히 배우겠다는 자세로 그 말에 귀를 기울이자. 만년의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합리적인 태도로, 철학 교사들이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지 말고, 오직 철학 자체만을 생각하라. 철학을 진심으로 잘 검토해보라. 철학이 악하면 모든 사람을 철학에게서 멀어지게 하려고 노력하라. 하지만 철학이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그런 철학이라면 철학을 따르고 섬기며, 기운을 내도록 하라

 

1장 플라톤

 

P29

플라톤은 조밀하고 섬세한 논리와 시에 대해 아폴론과 같은 열망을 보기 드물게 결합하고 있다. 그의 시대의 광휘와 조화는 이 둘을 녹여서 음악적 인상이 강렬한 하나의 거침없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 물줄기는 숨 가쁘게 질주하듯 다급하게 앞으로 밀고 나가면서도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1. 플라톤의 등장 배경

 

P32

아테네는 해군을 상선 선단으로 바꾸고, 고대 세계 최대의 교역 도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스파르타는 농사를 지으며 은둔과 정체에 빠져든 반면, 아테네는 번잡한 시장과 항구가 되어, 여러 인종의 사람들, 다양한 종교와 관습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이런 접촉과 경쟁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비교하고 분석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P33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취에 자부심을 느껴 밖으로 더 멀리 나갔다. 자신이 있는 곳에 관한 모든 지식을 흡수할 뿐 아니라 점점 넓게 연구하려 했다. 이들은 점점 대담해지면서, 전에는 초자연적인 매개체나 힘 탓이라고 생각하던 사건이나 과정을 자연에 근거하여 설명하려 했다. 마법과 제의가 서서히 물러나면서 과학과 통제가 들어섰다. 그리고 철학이 시작되었다.

 

P35

그들은 귀국하자마자 크리티아스를 앞세우고 부자의 혁명을 선언하며 참담한 전쟁 기간에 통치를 맡았던 민주정치파에 대항했다. 그러나 혁명은 실패하고, 크리티아스는 전장에서 죽었다. 크리티아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플라톤의 숙부였다.

 

2. 소크라테스

 

P36

그러나 집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처자식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인 크산티페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으름뱅이로, 집에 빵보다는 오명만 가져오는 사람이었다.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만큼이나 말하기를 좋아했다. 두 사람은 플라톤이 기록하지 못한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러나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를 사랑했으며, 소크라테스가 70년을 산 뒤에 죽었음에도 보내기를 아쉬워했다.

 

P37

그는 이 신탁이 그의 철학의 출발점인 불가지론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아는 유일한 한 가지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철학은 의심할 때, 특히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믿음, 교조, 이치를 의심할 때 시작된다.

 

P40

단순한 수가 지혜를 줄 것이라는 믿음은 저열한 미신 아닐까? 오히려 군중에 속한 사람이 혼자 따로 있는 사람보다 어리석고 폭력적이고 잔인하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 아닌가? “때리면 손을 대서 멈출 때까지 계속 소리가 나는 놋쇠 단지처럼 계속 장광설을 늘어놓는웅변가들에게 사람들이 지배당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 아닌가?

 

P41

<변명>에서 철학의 첫 순교자는 자유롭게 생각할 권리와 필요성을 선언하고, 자신이 국가에 가치 있는 존재임을 주장하고, 자신이 늘 경멸하던 군중에게 자비를 구걸하는 것을 거부했다. 군중은 그를 사면할 힘이 있었으나 그는 항소를 경멸했다. 재판관들은 그의 석방을 원했는데 오히려 성난 군중이 그의 죽음에 찬성표를 던졌던 것은 그의 이론을 독특한 방식으로 확인해주는 일이었다. 군중은 소리쳤다. 소크라테스는 신들을 부정하지 않았던가? 사람들이 배울 준비가 되기 전에 가르치는 자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P43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얼굴색이나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평소 하던 대로 옥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독배를 받아들고 말했다. “이 잔으로 신에게 헌주를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시오? 해도 되오, 안되오?” 옥리가 대답했다. “소크라테스여, 우리는 딱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준비했습니다.” “알겠소, 하지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내 여행을 보살펴달라고 신들에게 기도는 해도 되겠지. 사실 기도는 꼭 해야겠소. 내 여행길을 보살펴달라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기도요. “그러더니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입에 대고 아주 기꺼이 기운차게 독을 마셨다.

 

P44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진 게 있네. 잊지 말고 갚아주겠나?” “그 빚은 반드시 갚겠네크리톤이 말했다. “다른 건 없나?” 그 질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3. 플라톤의 준비 단계

 

P45

플라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야만인이 아니라 그리스인으로,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난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소크라테스의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4. 윤리적 문제

P49

소크라테스는 특유의 짓궂은 방식으로, 정의롭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철학적 전쟁의 개들을 풀어놓는다. 정의만큼 어려운 것이 없고, 또 정의만큼 가혹하게 정신적 명석함이나 기술을 시험하고 훈련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P52

여러분도 옳냐 그르냐 하는 것은 오직 힘이 동등할 때에만 문제가 된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사실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강한 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한 자는 어쩔 수 없이 싫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윤리의 근본 문제, 도덕적 행위 이론의 핵심이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올바름을 추구할 것이냐, 힘을 추구할 것이냐? 선한 것이 낫냐, 강한 것이 낫냐?

 

5. 정치 문제

 

P55

모든 통치 형태는 그 기본이 되는 원리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바람에 망하는 경향이 있다.

 

P56

플라톤은 사람들이 신발을 만드는 것 같은 단순한 일에서는 오직 그 일을 위해 훈련받은 사람이 그 일을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치에서는 표를 얻을 줄 아는 사람이 도시나 국가를 잘 관리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불평한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가장 잘생긴 의사나 웅변을 가장 잘하는 의사가 아니라 훈련받은 의사나 웅변을 가장 잘하는 의사가 아니라 훈련받은 의사를 부른다. 그의 학위는 특정한 준비 상태와 전문 능력을 보장한다. 그렇다면 국가 전체가 아플 때도 가장 지혜롭고 가장 훌륭한 사람의 봉사와 안내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무능하고 부정한 사람이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막고, 공동의 선을 위해 통치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람을 선출하고 준비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철학의 과제다.

 

6. 심리 문제

 

P56

사람들의 성격이 변하면 정부도 변합니다. 국가는 그 안에 있는 인간들의 본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지금 이런 상태인 것은 그 시민이 지금 이런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더 나아지기 전에는 국가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그전에는 모든 것이 변해도 본질적인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P57

플라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욕망, 감정, 지식 등 세 가지 주요 원천에서 흘러나온다. 욕망, 욕구, 충동, 본능 같은 것들이 첫 번째다. 감정, 기백, 야망, 용기 같은 것들이 두 번째다. 지식, 생각, 지성, 이성 같은 것들이 세 번째다. 욕망은 허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은 터질 듯한 에너지 저장소이며, 근본적으로 성적이다. 감정은 심장에, 피의 흐름과 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은 경험과 욕망의 유기적 공명이다. 지식은 머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은 욕망의 눈이며, 영혼의 조타수가 될 수 있다.

 

P58

정치란 학문이요, 예술이기 때문이다. 정치가는 정치를 목표로 삼아 살아가며 오랫동안 준비를 해야만 한다. 나라를 인도하는 데 적합한 사람은 오직 철학자 군주뿐이다.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이 세상의 왕이나 군주가 철학의 정신과 힘을 가지기 전에는, 즉 지혜와 정치적 지도력이 한 인간 안에서 만나기 전에는도시, 나아가 인류에게도 결코 악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플라톤의 사상이라는 아치 꼭대기의 이맛돌이다.

 

7. 심리적 해법

 

P60

우리는 꾀병 환자와 진짜 환자들이 득실거리는 나라를 유지할 여유가 없다. 유토피아는 사람의 몸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P60

다이몬은 나에게 선법이 변하면 그와 더불어 국가의 근본적인 법이 바뀐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 말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P61

천재성이 뿌리를 내리는 곳은 이런 행동과 감정의 밑바닥이다. “사람들은 의식적일 때는 참되거나 창조적인 직관에 이르지 못하며, 오히려 지성의 힘이 잠이나 병이나 치매에 묶여 있을 때 가능합니다. “ 예언자나 천재는 광인과 비슷하다.

 

P62

기본 과목은 …… 어린 시절에 가르쳐야 하지만, 절대 강요하면 안됩니다. 자유인은 지식의 획득에서도 자유인이어야 합니다. …… 강요에 의해 얻은 지식은 정신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강요하면 안되며, 어린 시절 교육은 오히려 일종의 놀이가 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의 자연스러운 경향을 더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P63

플라톤은 신을 믿지 않는 나라는 강해질 수 없다고 믿는다. 인격체가 아닌 단순한 우주의 힘, 또는 제1원인, 또는 생의 약진은 희망, 헌신, 희생을 고취하기 어렵다. 괴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도 없고, 적에게 포위된 영혼에게 용기를 줄 수도 없다.

 

P65

그들은 철학을 배운다. 그들은 이제 서른이 되었다. 그들에게  그 귀한 즐거움을 너무 일찍 맛보게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 젊은이들이 처음 철학의 맛을 보면 …… 마치 가까이 오는 모든 것을 찢고 무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강아지처럼 …… 재미 삼아 논쟁을 하고, 늘 논박하고 반박하기 때문입니다.” 귀한 즐거움인 철학은 주로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명료하게 생각하는 것, 즉 형이상학이다. 그 다음에는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 즉 정치학이다.

 

P68

따라서 수준 높은 교육의 핵심은 이데아를 찾는 것이다. 일반성, 관련의 법칙, 발전의 이상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들 뒤에서 그 관계와 의미, 그 작동 방식과 법칙, 그 사물을 지배하거나 그것을 통해 흐릿하게 드러나는 기능과 이상을 발견해야 한다. 법칙이나 목적이라는 맥락에서 우리의 감각 경험을 분류하고 조정해야 한다. 오직 이 한 가지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바보의 정신과 카이사르의 정신으로 갈라진다.

 

P68

이 투쟁의 장터에서 그들은 다름 아닌 삶의 책에서 배울 것이다. 세상의 투박한 현실에 손가락을 다치고, 철학의 정강이를 긁힐 것이다. 높고 넓은 이마에 땀을 흘려 빵과 버터를 벌 것이다. 이 가장 험난한 마지막 시험은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자비하게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완벽한 생산물 가운데 일부는 압력에 부서지고 선별의 마지막 파도에 쓸려 나갈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제 흉터 많은 쉰 살이 되어, 침착하고 자신감이 넘칠 것이고, 삶의 무자비한 마찰에 학자연하는 허영이 깎여나갔을 것이며, 전통과 경험, 문화와 갈등이 협력하여 빚어낸 지혜로 무장하고 있을 것이다. 마침내 이 사람들은 자동으로 국가와 통치자가 될 것이다.

 

8. 정치적 해법

 

P70

플라톤의 귀족정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데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자. 이것은 차라리 민주적 귀족정치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민중의 입장에서 보자면 도당들이 지명하는 후보로서 그들 앞에 제시되는 두 악 가운데 작은 악을 맹목적으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후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교육적 선발을 통해 공직에 나아갈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얻는 것이다. 여기에 계급은 없다. 지위나 특권의 상속도 없다. 가난하게 태어났다고 해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할 일도 없다. 통치자의 아들도 구두닦이의 아들과 똑 같은 수준에서 시작하여 똑 같은 대우를 받고 똑 같은 기회를 얻는다.

 

P71

플라톤은 학교에서 철학자들에게 학식을 주었을 뿐 아니라 생활 훈련도 시킴으로써 이런 곤란에 대비했다고 대답한다. 따라서 그들은 단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 오랜 경험과 시련에 단련되어 높은 목적과 고상한 기질을 갖춘 사람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플라톤이 말하는 철학은 행동하는 교양이며, 삶의 구체적이고 분주한 면과 어우러진 지혜다. 그가 염두에 둔 사람은 골방에 갇힌 비실용적인 형이상학자가 아니다. 플라톤은 칸트를 전혀 닮지 않았으며, 이 것은 (모든 면에서) 상당한 장점이다.”

 

P74

여자가 정치적 관리에 능력을 보인다면 다스리게 하라. 남자가 설거지에만 능력을 보인다면 섭리가 그에게 할당한 기능을 이행하게 하라

 

P76

우리의 전체 계획은, 수호자들이 잘 다스리고 소박하게 살면 경제적 인간들이 그들의 행정 독점을 기꺼이 허락할 것 수호자들이 경제적 인간의 사치 독점을 허락하듯이 이라는 희망에 기초를 두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완벽한 사회란 각각의 계급과 단위가 자신의 본성과 적성에 가장 잘 맞는 일을 하는 사회다. 어떤 계급이나 개인도 다른 계급이나 사회에 개입하지 않고, 모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능률적이고 조화로운 전체를 만들어내기 외해 협력하는 사회다. 이것이 정의로운 국가일 것이다.

 

9. 윤리적 해법

 

P77

정의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것은 단 세 가지뿐이다. 정의, 아름다움, 진리. 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의미를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플라톤으로부터 400년이 지난 뒤 로마의 유대 총독은 무력하게 물었다. “진리란 무엇인가?” 그러나 철학자들은 아직 대답을 하지 못했으며,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도 말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정의만큼은 플라톤이 정의를 시도한다. “정의란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P78

정의는 효과적인 협력이다.

 

P78

정의는 영혼의 각 부분의 질서와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영혼에게 육체의 건강과 같은 역할을 한다. 모든 악은 부조화, 즉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과 그 자신 사이의 부조화다.

 

P78

플라톤은 트라시마코스와 칼리클레스에게, 또 앞으로 등장할 모든 니체주의자에게 답변한다. 정의는 단순한 힘이 아니라 조화를 이룬 힘이다. 인간의 욕망이 질서를 갖추어 지성과 조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의는 더 강한 자의 권리가 아니라 전체의 효과적인 조화다.

 

P79

불의는 사리지고 마는 것이다.

 

P79

모든 도덕적 개념은 공동의 선 주위를 맴돈다. 도덕은 결합과 상호 의존과 조직에서 시작된다. 사회 안의 삶은 개인의 주권 가운데 일부를 공동의 질서에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집단의 복지가 행동 규범이 된다. 자연이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자연의 판단은 늘 최종적이다. 한 집단은 통일성과 힘이 있어야, 그 구성원들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능력이 있어야, 다른 집단과 경쟁하거나 갈등하는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각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보다 나은 협력이 무엇이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모든 사회가 생존을 위해 추구해야 하는 조직의 목표다.

 

P79

예수는 도덕이 약자에게 친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니체는 강한 자의 용기라고 말했다. 플라톤은 전체의 효과적인 조화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세가지 신조가 결합하여 하나의 완벽한 윤리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가운데 어느 요소가 근본적이냐 하는 점에 과연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

 

10. 비판

 

P80

금욕은 성직자 권력의 심리적 구조를 구성하는 부분이었다. 독신이어야 가족의 편협한 이기주의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고, 또 육체적 요구에 대한 우월성을 과시함으로써 일반 죄인들이 그들을 경외하면서 고해소에서 자신의 삶을 기꺼이 드러내도록 유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P82

공동 소유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책임을 희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모두에게 속하면 아무도 어떤 것도 돌보지 않을 테니까.

 

P83

다수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일부일처제에 가까운 결혼 생활을 할 것이며, 그런 결혼이나 가족에서 나오는 모든 도덕을 유지할 것이다. 아버지는 아내를, 어머니는 자식을 마음대로 또 지겹도록 옆에 둘 것이다.

 

P85

정치적 권력은 변하는 경제적 힘들의 균형에 계속 적응해야 한다.

 

P86

어쩌면 플라톤에게 가장 부족한 점은 유전과 변화에 대한 헤라클레이토스적 감각일지도 모른다. 플라톤은 이 세계를 찍은 영화를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그림으로 바꾸려고 안달을 한다. 그는 여느 소심한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질서만을 사랑한다.

 

P86

그의 국가는 움직임이 없다. 따라서 창조에 적대적이고 변화를 시기하는 경직된 80대가 다스리는 구식 사회가 되기 십상이다. 이 국가에는 예술은 없고 오직 과학만 있을 뿐이다. 과학적인 정신이 귀하게 여기는 질서를 찬양하지만, 예술의 영혼인 자유는 완전히 무시한다. 명목상의 아름다움은 숭배하지만,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거나 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예술가는 추방한다. 이것은 이상국가가 아니라 스파르타나 프로이센이다.

 

P87

제대로 훈련받고 자격을 갖춘 다음에 후보로 나선 사람들 가운데에서 유권자들이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서로 구별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4년마다 사기극을 공연하는 현재보다 민주적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질 것이다. 오직 한 가지만 수정하면 행정 기술을 배운 사람들에게만 공직을 부여하는 계획을 민주적으로 만들 수 있다.

 

P87

그는 달성하기 어려운 이상을 묘사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욕망을 이렇게 그려놓는 일에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할 수 있고, 적어도 그 가운데 일부를 현실로 바꾸려 하는 데 인간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토피아를 만드는 동물이다. “우리는 앞과 뒤를 보고, 있지 않은 것을 갈망한다.”

 

P88

선한 인간은 불완전한 국가에서도 완전한 법을 따를 것이다.

 

2장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P91

다른 어떤 사상가도 세계의 계몽에 그렇게 기여한 적은 없다. 그 뒤의 모든 시대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의존하며, 진리를 보기 위해 그의 어깨에 올라선다. 다른 어떤 정신도 그렇게 오랜 시간 인류의 지성을 지배한 적은 없었다.

 

1. 역사적 배경

 

P94

진짜 싸움은 플라톤의 말년에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 야심만만한 젊은이는 철학의 호의와 애정을 놓고 정신적 아버지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졌던 것으로 보이며, 지혜가 플라톤과 함께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암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늙은 현자는 이 제자가 젖을 다 빨아먹은 뒤 어머니를 걷어차 버리는 짐승 새끼라고 비난했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P100

어쩌면 노예가 쌌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발명이 뒤처졌는지도 모른다. 기계보다 근육에 돈이 훨씬 덜 들어갔으니 말이다.

 

P101

철학이 통일의 탐구라면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2000년의 역사가 그에게 준 높은 이름, 즉 철학자 (Ille philosophus)라는 이름을 얻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P102

오늘날 그가 만들어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어떤 과학에 관해서도 말할 수가 없다. 그런 용어들은 마치 화석처럼 우리 언어의 지층에 박혀 있다. 기능 (faculty), 평균 (mean), 공리 (maxim), 에너지 (energy), 현실 (actuality), 동기 (motive), 목적 (end), 원리 (principle), 형식 (form) – 철학적 사고에 불가결한 이런 용어들이 그의 정신에서 만들어졌다.

 

P102

아리스토텔레스도 문학적인 대화록을 썼고, 당대에는 플라톤의 대화만큼이나 명성이 높았지만, 플라톤의 과학 논문이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록도 사라져버렸다. 아마 시간이 두 사람에게서 더 나은 부분만 남겨놓았는지도 모른다.

 

3. 논리학의 창시

 

P104

논리학이란 간단히 말해 정확하게 사고하는 기술과 방법을 뜻한다. 이것은 모든 과학, 모든 학문, 모든 예술의 방법(logy)이다. 심지어 음악도 논리를 품고 있다. 정확한 사고 과정은 상당 부분 물리학과 기하학 같은 규칙으로 환원되어,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익힐 수 있으므로 논리학은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P104

논리학처럼 따분한 것도 없지만, 논리학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

 

P105

나와 대화하고 싶으면 너의 용어를 정의해라.” 볼테르는 그렇게 말했다. 논쟁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용어를 정의하려고 나섰다면 수많은 논쟁이 한 문단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진지한 담론의 중요한 용어는 모두 엄격한 정밀 조사를 거쳐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논리학의 알파요 오메가이며, 심장이요 영혼이다. 이것은 어려운 작업으로, 정신을 무자비하게 검증하지만, 일단 이루고 나면 일의 반은 끝난 셈이다.

 

P105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대상을 그 부류라는 바다에 떨어뜨린 다음 다시 끄집어내는데, 그러면 대상에서는 공통의 의미, 같은 종류와 집단의 표시가 몸에서 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진다. 동시에 그 개별성과 차이는 이 대상과 무척 닮았으면서도 동시에 무척이나 차이가 나는 다른 대상들과 함께 놓여 있기에 한층 분명하게 반짝인다.

 

P107

우리는 늘 우리가 비난하는 것을 우리 안에 상당히 갖고 있다. 비슷한 것들을 대조해야만 얻는 것이 있듯이, 오직 비슷한 사람들만 사우고, 목적이나 믿음의 아주 작은 차이를 두고 가장 혹독한 전쟁이 벌어진다.

 

P107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에게 그렇게 무자비했던 것은 자신의 내부에 플라톤적인 면이 많았기 대문이다.

 

P108

삼단논법은 진리 발견의 메커니즘이라기보다는 설명과 사고를 명료하게 해주는 메커니즘임이 분명하다.

 

P109

아무리 대담한 철학자라도 나뭇가지 아래서 논리학 책을 들고 노래를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논리학에서 느끼는 것은, 베르길리우스의 명령을 받은 단테가 색깔 없는 중립성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저 사람들에 관해서는 더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한번 보고 지나가자

 

4. 과학의 창시

 

P117

엘리스라는 어떤 여자가 흑인과 결혼했다. 그녀의 자식들은 모두 백인이었는데, 다음 세대에서 흑인이 다시 나타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묻는다. 검은색이 중간 세대의 어디에 감추어져 있었을까? 이런 중요하고 지적인 질문으로부터 한 걸음만 내디디면 그레고어 멘델의 획기적인 실험이 나올 수 있다. 무엇을 물을지 아는 것은 이미 반은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5. 형이상학과 신의 본질

 

P118

질료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형상의 가능성이다. 형상은 질료의 현실태이자 완성된 실재이다. 질료는 방해하고, 형상은 건설한다. 형상은 단순히 형태가 아니라 형태를 만들어가는 힘이며, 단순한 질료를 특정한 모양과 목적으로 빚어내는 내적 필연성과 추동력이다. 형상은 질료에 담긴 잠재적 능력의 실현이다. 만물이 존재하는 힘, 뭔가 하고, 뭔가 되려는 힘의 총합이다. 자연은 형상에 의한 질료의 정복이며, 생명의 항상적인 진전이자 승리다.

 

P120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을 베낀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철학자는 생각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거기에 신성이라는 개념을 제물로 바쳐버렸다. 그의 신은 아리스토텔레스 유형의 고요한 존재로, 로맨틱한 면은 전혀 없으며, 사물의 갈등과 오염을 피해 상아탑으로 물러나 있다. 플라톤의 철인왕으로부터도, 살과 피를 가진 엄한 존재인 야훼로부터도, 상냥하게 배려하는 아버지 같은 기독교 신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6. 심리학과 예술의 본질

 

P121

그는 습관의 힘을 강조하여, 처음으로 습관을 2의 천성이라고 불렀다.

 

P123

예술 작품은 형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통일성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이런 통일성이야말로 구조의 척추이자 형식의 초점이다.

 

P123

무엇보다도 예술의 기능은 카타르시스, 즉 정화다. 사회적 제약의 압박으로 우리 안에 축적된 감정이 터져 나와 극적 흥분이라는 무해한 형식으로 흘러 드는 것이다.

 

P123

카타르시슽 이론은 예술의 신비한 힘에 대한 이해가 자라나는, 무한히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사변의 모든 분야에 들어가 손을 대는 것마다 아름답게 꾸미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빛나는 예다.

 

7. 윤리학과 행복의 본질

 

P124

그는 행복을 최고의 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명한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필요한 것은, 행복의 본질과 거기에 이르는 길을 더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무엇이 다른지 물어봄으로써,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이런 인간 고유의 특질이 완전하게 발현되는 데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이 길을 찾으려 한다. , 인간이 독특하게 뛰어난 점은 사고의 힘이다.

 

P125

수월성으로 안내하는 지침이 있어, 많은 우회로와 지연을 피해 갈 수 있다. 그것은 중도, 즉 중요이다. 인간의 성격의 특질은 세 개씩 짝을 지을 수 있는데, 그 각각의 짝에서 첫 번째와 마지막 특질은 극단이고 악덕이며, 중간에 있는 특질은 미덕 또는 수월성이다. 예를 들어 용기는 겁과 무모함 사이에 있다. 관대함은 인색함과 사치 사이에 있다. 야망은 나태와 탐욕 사이에 있다. 겸손은 비굴과 오만 사이에 있다. 정직은 과묵과 다변 사이에 있다. 명랑은 우울과 익살 사이에 있다. 우정은 다툼과 아첨 사이에 있다. 자제는 햄릿의 우유부단과 돈키호테의 충동적 행동 사이에 있다. 따라서 윤리학이나 행동에서 옳음은 수학이나 공학의 옳음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정확하고, 적합하고, 최선으로 작용하여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

 

P125

중용은 각 상황에 따르는 조건들과 더불어 변하며, 성숙하고 유연한 이성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수월성은 훈련과 습관화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기술이다. 덕 또는 수월성이 있기 때문에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올바르게 행동했기 때문에 덕이나 수월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덕은 사람이 행동을 함으로써 그 사람 안에 형성된다. 우리는 우리가 되풀이 하는 행동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수월성은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P126

어느 한쪽 극단에 있다고 의식하는 사람은 중간이 아니라 반대편 극단을 덕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P126

분별 없는 극단주의자는 중용을 최대의 악덕으로 본다. 그들은 중간에 있는 사람을 자신의 반대편 극단을 향해 쫓아낸다. 용기 있는 사람이 겁쟁이한테는 분별없는 사람이 되고, 분별없는 사람한테는 겁쟁이가 된다.

 

P126

일곱 현자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어떤 일도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격언을 새겨 이 전통을 확립했다.

 

P127

훌륭한 우정은 갑자기 뜨거워지기보다는 긴 지속 시간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성격의 안정성이 필요하다. 우정이 만화경처럼 변하다가 사라지는 것은 성격이 변한 탓이다. 또한 우정은 평등을 요구한다. 감사에 기초한 우정은 기초가 불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128

정치적 출세도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그 길로 가면 민중의 변덕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구중처럼 변덕이 심한 것은 없다. 행복은 마음의 기쁨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오로지 진리를 추구하거나 포착했을 때 생기는 기쁨만 신뢰할 수 있다. “지성의 활동은 …… 그 자체를 넘어선 목표를 노리지 않으며, 그 자체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이 기쁨이 지성의 활동을 촉진한다. 자족, 끈기, 휴식 능력 같은 속성들은 …… 분명히 이런 활동에 따르는 것이므로, 그 안에 완벽한 행복이 있음이 틀림없다.

 

P129

그는 삶의 사건들을 위엄 있고 점잖게 감당하며, 한정된 군대로 전략을 구사하는 유능한 장군처럼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상황을 활용한다. …… 그의 가장 좋은 친구는 그 자신이며, 혼자 있을 때 기쁨을 느낀다. 반면 덕이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최악의 적은 바로 자신이고, 그는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것이 아리스토테레스의 초인인 셈이다.

 

8. 정치학

 

P130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법을 가볍게 바꾸는 습관은 악이다. 바꾸어서 얻는 것이 적다면, 법이든 통치자든 약간의 결함은 철학적 관용으로 견디는 편이 낫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변화로 얻는 것보다 불복종의 습관이 생기는 바람에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복종을 확보하고, 그럼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법의 힘은 관습에 크게 의존한다. “낡은 법으로부터 새로운 법으로 가볍게 옮겨가는 것은 모든 법의 가장 깊은 본질을 약화시키는 확실한 수단이다.” “오랜 세월의 경험을 무시하지 말자. 이런 것들이 만일 좋은 것이라면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다.”

 

P130

아리스토텔레스는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사회적 능률보다는 개인적 특질, 사생활, 자유를 높이 평가한다.

 

P131

공산주의는 우월한 능력을 행사할 만한 적절한 유인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힘든 일에는 이익이라는 자극이 필요하다. 모두가 모든 것을 소유하면 아무도 어떤 것도 돌보지 않을 것이다. “최대 다수가 공유하는 것에는 어떤 것도 돌보지 않을 것이다. “최대 다수가 공유하는 것에는 최소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모두가 주로 자기 것만 생각하지, 공적 이익은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P133

이런 교환에서 가장 가증스러운 것은 …… 고리대금업으로, 이것은 돈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 자체에서 이익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돈은 원래 이자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ㄱ환의 도구로 만들어졌다. 돈이 돈을 낳는 고리대금업은 …… 이익을 얻는 모든 방식 가운데 가장 부자연스럽다돈은 새끼를 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재정론의 논의가 철학에 걸맞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금융업이나 돈벌이에 종사하는 것은 자유인에게 걸맞지 않다.

 

P136

오직 사회적 통제만이 인간에게 덕을 줄 수 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회를 발전시킨다. 사회를 통해 지성을 발전시킨다. 지성을 통해 질서를 발전시킨다. 질서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킨다. 그런 질서 잡힌 국가에서 개인은 수많은 기회를 얻는다. 혼자 살면 결코 얻을 수 없는 발전의 길들이 열리는 것이다. 따라서 혼자 살려면 동물이 되거나 신이 되어야 한다.”

 

P136

혁명은 거의 언제나 지혜롭지 못하다. 몇 가지 선을 이룰지도 모르나 많은 악을 대가로 치러야 하며, 그 가운데 주된 것은 모든 정치적 선의 기초를 이루는 사회 질서와 구조의 교란, 나아가서 해체다.

 

P136

몇 가지만 고려하는 사람들은 판단을 쉽게 여긴다.” 또 결정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결심이 빠를 수 있다. “젊은이들은 급하게 바라기 때문에 쉽게 속는다.”

 

P137

호메로스의 말이 옳다. “다수의 주인은 나쁘다. 한 사람이 너의 지배자이자 주인이 되게 하라.” 그런 사람에게 법은 한계가 아니라 도구가 될 것이다.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는 법이 없다 그들 자신이 법이다.” 그런 사람을 위하여 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우스운 짓이다. 이 사람은 안티스테네스의 우화에 나오는 토끼 짝이 날 것이다. 그 우화를 보면, 동물들의 회의에서 토끼가 모든 동물의 평등을 주장하며 열변을 토하자, 사자가 네 발톱은 어디 있는데?” 하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P138

다수는 소수보다 덜 부패한다. 적은 물보다 많은 물을 더럽히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개인은 분노나 다른 감정에 휘말리기 쉬우며, 그럴 경우에는 판단이 뒤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모두 하나의 감정에 빠져들어 동시에 잘못 판단하는 경우는 떠올리기 어렵다.

 

P139

민주정치는 한 가지 면(예를 들어 법이라는 면)에서 평등한 사람들이 다른 모든 면에서도 평등하다는 관념에서 나온다. 평등하게 자유롭기에 절대적으로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결과 능력은 수에 희생되며, 수는 속임수에 의해 조작된다. 민중은 쉽게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리고, 생각이 잘 변하기 때문에, 투표는 지식 계급에게만 한정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귀족정치와 민주정치의 조합이다.

 

P139

힘은 수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소유에만 있는 것도 아니며, 군사적 또는 정치적 능력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힘은 이들의 조합에 있다.

 

9. 비판

 

P140

내가 울기를 바란다면 네가 먼저 울어야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좌우명은 어떤 것에도 감탄하거나 놀라지 않는 것이었다.

 

P140

그는 삼단논법이 인간의 추론 방식을 묘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추론을 장식하는 방법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사고가 전제에서 출발하여 결론을 찾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고는 가정된 결론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정당화하는 전제를 찾아간다. 그리고 실험이라는 통제되고 고립된 조건에서 특정한 사건을 관찰할 때 그것을 가장 잘 찾을 수 있다.

 

P141

반대로 지도가 없는 미답의 분야를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너무 쉽게 이론과 결론으로 달려들었다. 그래서 그리스 철학은 다시 도달할 수 없는 높이까지 뛰어올랐지만, 그리스 과학은 뒤에 쳐져 절뚝거렸다. 그러나 현대의 위험은 정반대다. 귀납적 자료는 베수비오 화산의 용암처럼 사방에서 쏟아진다. 정리되지 않은 사실들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우리 정신은 종합적 사고와 통일적인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새끼를 치고 늘어나 전문화의 혼란으로 치닫는 과학들에 압도당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의 가능한 모습의 한 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P143

생산수단이 점점 복잡해지고 비싸지면서 소유와 권력의 위험한 집중, 나아가 인위적이고 마침내 파괴적인 불평등이 생긴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10. 말년과 죽음

 

P145

알렉산드로스가 적대적인 도시의 한가운데 이 철학자의 상을 세우자 분개했다. 이런 혼란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서 그의 <윤리학>이 우리에게 남긴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발견한다. 여기에는 냉정하고 비인간적일 정도로 차분한 인간이 아니라,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태에서 엄청난 일을 해나가는 투사가 있다. 아카데메이아의 플라톤 후계자들, 이소크라테스의 웅변학파, 데모스테네스의 신랄한 웅변에 매달리는 성난 군중이 그를 추방하거나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3장 프랜시스 베이컨

 

P149

내 영혼은 신에게 물려주겠다. 몸은 눈에 띄지 않게 묻어라. 내 이름은 다음 시대와 외국에 물려주겠다.” 다음 시대와 많은 나라들이 그를 받아들였다.

 

1.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르네상스까지

 

P152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 패배의 덤덤한 수용과 쾌락의 품에서 패배를 잊으려는 노력 은 모두 정복당하거나 노예가 된 상태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이론이었다. 19세기 쇼펜하우어의 비관적인 동양적 스토아 철학과 르낭의 의기소침한 에피쿠로스 철학이 박살 나 혁명과 망가진 프랑스의 상징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P153

스토아 학파는 불가피하게 패배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부당한 생존 투쟁이 벌어지는 인생에서 유일하게 합리적인 태도로 철학적 무관심이라고 주장했다. 승리가 불가능하다면 승리를 비웃어야 한다. 평화를 얻는 비결은 우리의 욕망에 맞는 성취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성취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로마의 스토아 학파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진 것이 불충분해 보인다면, 세상을 다 가진다 해도 여전히 비참할 것이다.

 

P154

에피쿠로스는 에피쿠로스주의자가 아닌 셈이다. 그는 감각의 기쁨보다 지성의 기쁨을 찬양한다. 영혼을 흥분시키고 어지럽히는 쾌락을 버리고, 영혼을 잠잠하게 달래는 쾌락을 구하라고 말한다. 결국 그는 일반적인 감각의 쾌락이 아니라 아타락시아 정신의 고요, 평정, 안정 를 찾으라고 제안한다. 이것은 사실 제논의 무관심과 거의 맞닿아 있다.

 

P157

이 철학에는 도스토옙스키류의 평화주의자가 보여주는 조용한 용기에서 나오는 신비한 고상함 같은 것이 있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이런저런 것을 잃어버렸다고 말하지 말고 돌려주었다고 말하라. 그대의 아이가 죽었느냐? 아이를 돌려준 것이다. 아내가 죽었느냐? 아내를 돌려준 것이다. 재산을 빼았겼느냐? 그 또한 돌려준 것이 아니더냐?” 이런 구절에서는 기독교나 그 용감한 순교자들과 가까운 면모가 느껴진다.

 

P159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지혜와 정신은 어떤 대상에 작용할 때는 그 대상에 따라 움직익 거기에 제한을 받는다. 그러나 그 자신에게 작용할 때는 거미가 거미줄을 잣듯이 끝을 모르고 학문의 거미줄을 뽑아낸다. 이것은 그 실이나 작업이 훌륭하다는 면에서 감탄할 만하지만, 사실 아무런 내용도 이득도 없다.”

 

2. 프랜시스 베이컨의 정치 인생

 

P163

자연 속에 하나의 빛, 곧 처음에 솟아오를 때는 현재 인간 발견의 한계와 경계를 어렴풋이 보여주지만 나중에 더 높이 솟아올랐을 때는 어둠의 모든 구석구석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보여주는 빛을 밝히는 데 성공한다면, 그런 발견자는 우주에서 인간 왕국을 진정으로 확장한 자, 인간 자유의 투사, 현재 인간을 굴레에 묶고 있는 불가피한 것들을 없앤 자라는 칭호를 들을 만할 것 같았다.

 

P164

어쩌면 이 편지들이 존경하는 벌리 경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충성을 너무 과도하게 맹세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것은 효과가 없다. 언제나 내주어야 하지만, 절대 다 내주면 안 된다. 받는 쪽에서는 기대가 있어야 고마운 마음을 키워나가는 법이다.

 

3. 수상록

 

P167

드러나지 않는 삶이 최선의 삶이 그의 좌우명이었다.

 

P167

공부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쓰는 것은 게으른 것이다. 자신을 꾸미는 데 공부를 너무 이용하는 것은 허세다. 공부의 규칙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학자의 기질이다. …… 교활한 사람은 공부를 비난하고, 단순한 사람은 공부를 찬양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공부를 이용한다. 공부는 공부의 용도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은 공부 바깥에서, 공부 위에서, 관찰에 의해 얻어지는 지혜다.

 

P169

몰론<수상록>은 씹고 소화할 만한 소수의 책으로 꼽아야 한다. 그렇게 작은 접시에 그렇게 많은 고기를 그렇게 훌륭하게 양념이 내어 좋은 풍미를 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 테니까. 베이컨은 불필요한 말을 혐오하고, 단어를 낭비하는 것을 경멸한다. 그는 작은 구절로 무한한 풍요를 제공한다.

 

P170

본성은 종종 감추어진다. 가끔 극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없앨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억지로 없애려 하면 본성은 더 거세게 돌아온다. 학설과 담론은 본성을 덜 끈덕지게 만들지만, 본성을 바꾸거나 굴복시키는 것은 습관뿐이다. …… 하지만 인간은 본성에 대한 승리를 지나치게 과신해서는 안 된다. 본성은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도, 기회나 유혹을 통해 소생하기 때문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자로 변한 고양이와 같다. 식탁에 얌전하게 앉아 있다가도 쥐가 앞을 달려가면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럴 기회를 아예 주지 말거나, 아니면 잘 흔들리지 않도록 그런 기회를 자주 주어야 한다.”

 

P170

실제로 베이컨은 몸이 절제만이 아니라 무절제에도 단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간적인 방심으로 망가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순수하고 소화하기 쉬운 음식에 익숙한 사람이 깜빡 잊는 통에, 혹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다른 음식을 먹었을 때 쉽게 탈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즐거움을 과하게 탐하기보다는 다양하게 맛보는 편이 낫다.” 왜냐하면 젊은 시절 본성의 힘은 무절제를 많이 거치고도 탈이 없이 넘어갈 수 있지만, 이런 무절제는 나이 들어서까지 그대로 남기때문이다.

 

P171

우리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을 가리지 않고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마키아밸리나 그런 종류의 저자들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다. 악의 본질을 먼저 알지 못하면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을 결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덕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P171

베이컨은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과 일치시켜, 합금을 이용해 순수하지만 약한 금속을 더 오래가는 금속으로 바꾸듯이, 위선과 정직을 지혜롭게 섞으라고 조언한다. 정신에 폭과 깊이와 힘을 부여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충만하고 다채로운 인생을 살라고 말한다. 그는 단지 사색적이기만 한 삶을 찬양하지는 않는다. 괴테와 마찬가지로 베이컨도 행동에 이르지 않는 지식을 경멸한다. “인간 삶의 극장에서는 오직 신과 천사만이 구경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P173

그는 <젊음과 노년>이라는 에세이에서는 책 한 권을 한 문단으로 줄여놓는다. “젊은 사람은 판단보다는 만들어내는 데 적합하고, 의논보다는 실행에 적합하고, 안정된 일보다는 새로운 기획에 적합하다. 어떤 일에서 오랜 세월 쌓인 경험은 그 경험의 범위 내에서는 사람을 인도하지만, 새로운 일에서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 젊은 사람은 행동이나 행동의 관리에서 자신이 담을 수 있는 것 이상을 끌어안으며,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때에도 흥분한다. 수단이나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목적으로 날아가려 한다. 우연히 발견한 몇 가지 원리를 어설프게 따르려 한다. 혁신을 이루는 방법에는 관심이 없는 탓에 예상치 못한 불편을 겪는다. …… 나이 든 사람은 지나치게 반대하고, 너무 길게 의논하고, 모험심이 너무 적고, 너무 빨리 후회하고,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고 범상한 성공에 만족한다. 물론 양쪽을 모두 활용하는 것이 좋다. …… 양쪽의 장점이 서로의 결함을 교정하기 때문이다.

 

4. 위대한 재건

 

P178

뿌리 주변의 흙을 파헤치고 흔들어 놓자이것이 베이컨이 <학문의 진보>에서 자신의 과제로 삼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토에 들어서는 왕처럼 말한다. “내 의도는 지식을 한 바퀴 돌며, 어떤 부분이 노력하는 사람들의 손길에서 벗어나 경작되지 않은 채 황폐해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또 그 버려진 땅의 지도를 충실하게 그린 다음, 공중과 개인의 노력을 동원하여 그 땅을 일구는 것이다.”

 

P180

첫 번째 필요조건은 지식,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관한 지식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반쪽에 불과하다. 자신을 아는 것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을 아는 수단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P182

친구는 네 적이 될 것처럼 사랑하고, 적은 네 친구가 될 것처럼 사랑하라.” 친구에게도 자신의 진짜 목적과 생각을 너무 많이 드러내지 마라. 대화할 때는 네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질문을 자주 해라. 말을 할 때는 믿음이나 판단보다는 자료나 정보를 제시하라.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은 출세에 도움이 된다. “허세는 정치가 아니라 윤리의 허물이다.”

 

P182

과학에 필요한 것은 철학이다. – 즉 과학의 방법론을 분석하고, 과학의 목적과 결과를 종합하는 것이다. 철학이 없으면 어떤 과학이든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P182

결국 베이컨이 사랑한 것은 과학보다는 철학이었다. 혼란과 슬픔의 삶에도 이해에서 오는 당당한 평안을 줄 수 있는 것은 철학뿐이다. “학문은 죽음과 역경에 대한 공포를 정복하거나 완화해준다.”

 

P185

그의 큰 꿈은 자연 정복과 인간 힘의 확대를 위한 과학의 사회화다.

 

P187

베이컨이 사용하는 우상이라는 말(아마 신교도의 우상 숭배 거부를 반영했으리라)이 가리키는 것은 현실이라고 착각하는 심상, 사물이라고 착각하는 생각이다. 여기에서 오류가 생기며, 논리학의 첫 번째 문제는 이 오류의 근원을 추적하고 막는 것이다. 이제 베이컨은 명불허전인 오류 분석으로 나아간다. 콩디야크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오류의 원인을 베이컨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P188

인간은 먼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문제를 결정한 다음에 경험에 의존한다. 그 경험을 자신이 찬성한 의견에 맞게 구부리고, 개선 행렬의 포로처럼 끌고 다닌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 오성은 건조한 빛이 아니라 의지와 감정이 주입된 것이며, 여기에서 마음대로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나온다. …… 사람은 자신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것을 더 쉽게 믿기 때문이다.

 

P189

상상의 역할은 지성이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는 것을 돕는 데서 그쳐야 하며, 잘못하면 지성의 최대 적이 될 수도 있다.

 

P189

DJES 기질은 오래된 것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며, 어떤 기질은 새로운 것을 열심히 끌어안는다. 공정하게 중간을 유지하여, 고대인이 올바르게 확립한 것을 부수지도 않고 요즘 사람들이 정당하게 혁신한 것을 경멸하지도 않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P189

인간은 언어를 통해 대화하지만, 말은 군중의 이해를 따르는 것이라 부적절하게 형성된 나쁜 말에서는 정신이 놀라운 장애에 부딪힌다.

 

P190

머리가 맑고 정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원인도 원인이 없을 수 없고, 어떤 움직이는 것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철학에서 가장 위대한 재건은 바로 이것, 즉 거짓말을 그만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P191

확신을 갖고 출발한다면 의심에 이르겠지만, 의심에서 시작한다면 확신에 이를 것이다.

 

P191

단순한 경험을 생기는 대로 받아들이면 우연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을 구하고자 노력했을 때에는 실험이라고 부른다.

 

P193

우리가 사물의 형상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형상 자체 때문이 아니라, 형상, 즉 법칙을 알면 우리의 욕망에 맞게 사물을 다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수를 계산하고 다리를 건설하려고 수학을 연구한다. 사회라는 정글에서 우리의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 심리학을 연구한다. 과학이 사물의 형상들을 충분히 찾아낸다면, 세상은 인간이 만들고자 하는 유토피아의 재료가 될 것이다.

 

P193

그렇게 과학을 완전하게 다듬고, 그런 다음 과학을 통제하여 사회 질서를 완벽하게 다듬으면 그 자체로 충분한 유토피아일 것이다. 이것이 베이컨이 죽기 2년 전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자 마지막 저술인 <신아틀란티스>에서 묘사한 세계다.

 

P196

사실 신아틀란티스에는 정부가 아예 없다. 통치자들은 사람을 다스리기보다는 자연을 통제하는 데 몰두한다. “우리 기관의 목적은 사물의 원인과 비밀스러운 움직임을 알고, 인간 제국의 경계를 확대하여 모든 것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책, 나아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핵심 문장이다.

 

5. 비판

 

P200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이것이 모든 위대한 영혼이 겪는 비극이다.

 

P201

셰익스피어는 두말이 필요 없는 심리학자지만 철학자는 아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삶과 인류를 염두에 둔 어떤 목적으로 통일된 사고 구조가 없다. 그는 사랑과 사랑 문제에 몰두하며, 몽테뉴의 표현을 빌리면, 오직 상심했을 때만 철학을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세상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플라톤이나 니체나 베이컨을 고귀한 존재로 만드는 재건의 비전에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았다.

 

P203

인간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시간은 많다. 우리에게 몇 백 년만 주면, 우리는 만물을 통제하고 다시 만들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가장 고귀한 교훈, 즉 인간은 인간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 승리 앞에 설치한 장애물하고만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교훈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6. 에필로그

 

P204

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삼중으로 하인이다. 군주나 국가의 하인, 명성의 하인, 일의 하인이다. 그래서 몸에도 행동에도 시간에도 자유가 없다. …… 자리에 오르는 것은 힘든 일인데, 사람들은 수고를 하여 더 큰 수고를 하는 곳으로 간다. 자리에 오르는 것은 때때로 천한 일인데, 사람들은 불명예스러운 행동으로 명예스러운 곳으로 간다. 자리에 오르는 길은 미끄러운데, 거기서 물러서면 추락이거나 최소한 실추다.

 

4장 스피노자

 

P207

그는 어떤 것, 그 거처는 석양의 빛이며, 둥근 바다며, 살아 있는 공기며, 파란 하늘이며, 인간의 정신 속이다. 어떤 움직임과 어떤 영, 이것이 모든 생각하는 것들, 모든 생각하는 모든 대상을 밀고 나가며, 모든 것을 통과하여 나아간다.

 

1. 역사적이고 전기적인 사실들

 

P210

하지만 스페인 왕은 이 이질적인 인종이 끈기 있게 모은 부를 빼앗아 자신의 지갑을 불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과 거의 같은 해에 페르난도는 유대인을 발견했다.

 

P211

자존심이 강한 이 저자는 철회와 회개의 공식에 따라 회당 문지방에 엎드려야 했고 회중이 그의 몸을 밟고 지나갔다. 우리엘은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 자신을 박해한 사람들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글을 쓰고는 총으로 자살했다. 이것이 1640년의 일이었다. 당시 근대의 가장 위대한 유대인 이자 근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여덟 살의 아이로, 회당의 총애를 받는 학생이었다.

 

P213

그에게는 예쁜 딸이 있어, 스피노자의 애정을 차지하려고 라틴어와 경쟁했다. 현대의 대학생이라도 그런 유인이 있다면 라틴어를 공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아가씨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외면할 만큼 지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구혼자가 값비싼 선물을 들고 오자 스피노자를 향한 관심을 접었다. 우리의 주인공 스피노자는 틀림없이 이 순간 철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P214

철학의 목표는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 물질 속에서 정신, 정신 속에서 물질을 인식하는 것이다. 대립물과 모순이 만나고 합쳐지는 종합을 찾는 것이다. 지적인 면에서 신의 사랑과 등가라 할 수 있는 보편적 통일성의 최고 지식에 이르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 하나하나가 스피노자 사상의 내밀한 구조를 구성했다.

 

P215

모든 형태의 물질의 바탕에 있는 동질의 실체와 모든 형태의 정신의 바탕에 있다는 또 다른 동질의 실체라는 데카르트의 개념이었다.

 

P220

가말리엘이 말했듯이 일은 사람의 덕을 유지해주는 반면, “일을 배우지 못한 모든 학식 있는 사람의 결국 악당이 되기 마련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P221

가끔 나의 타고난 이해력으로 거두어들이는 열매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나는 이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것을 모으면서 행복했고, 한숨을 쉬고 슬퍼하는 대신 평화롭고 고요하고 기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P221

몸가짐이 무질서하고 너저분하다고 해서 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러 외모에 무관심한 척하는 것은 오히려 정신이 가난한 증거다. 진정한 지혜는 그런 정신에서 가치 있는 거처를 찾을 수 없으며, 학문은 무질서와 혼란만 만나게 될 것이다.”

 

2. 신학정치론

 

P229

기독교 신앙 즉 사랑, 기쁨, 평화, 절제, 만인에 대한 자비 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증오에 찬 적대감을 그러내며 싸우고 매일 서로에게 신랄한 증오심을 보여주는 바람에, 나는 그들이 고백하는 미덕이 아니라 그런 겉모습이 그들의 신앙에서 가장 손쉬운 판별 기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3. 지성 정화론

 

P233

<윤리학>에서 스피노자는 처음 두 가지 형태의 지식을 하나로 줄이고, 직관적 지식은 사물을 그 영원한 측면과 관계에서 (sub specie dternitatis)’ 지각하는 것 단 한 구절로 철학이 정의된 셈이다. – 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직관적 지식 (scientia intuitive)은 사물과 사건의 배후에서 법칙과 영원한 관계를 찾아내려 한다. 여기에서 스피노자의 매우 근본적인 구분 (그의 체제 전체의 기초), 즉 사물과 사건들의 세계를 가리키는 일시적 질서’, 그리고 법칙과 구조의 세계를 가리키는 영원한 질서의 구분이 나온다.

 

4. 윤리학

 

P235

스피노자에게는 단 하나의 강박적 욕망밖에 없었다. 세상의 견딜 수 없는 혼돈을 통일과 질서로 환원하고 싶다는 것. 그에게는 남방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보다는 북방인의 진리에 대한 굶주림이 강했다. 그에게 예술가적인 면이 있다면 순수하게 건축가적인 면으로, 완벽한 대칭과 형식을 갖춘 사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P236

스피노자는 자신의 책2부에서 이렇게 말한다. “틀림없이 여기서 독자는 혼란을 느끼고 많은 것들 것 돌이켜보느라 멈출 것이다. 하지만 간청하거니와, 나와 함께 조금씩 나아가면서 끝까지 다 읽기 전에는 이것들에 관하여 어떤 판단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그러나 이 책을 한번에 다 읽지는 말고, 여러 번 자리에 앉아 조금씩 읽어라. 그렇게 해서 다 읽었으면 이제 비로소 이해의 첫 단계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라. 그때부터 주해서, 예를 들어 폴복의 <스피노자>나 마티노의 <스피노자 연구>를 읽어라. 둘 다 읽으면 더 좋다. 마지막으로 <윤리학>을 다시 읽어라. 그러면 완전히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두 번째로 다 읽으면 철학을 영원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P238

스피노자는 자연과 실체와 신의 동일성을 이런 의미에서는 부정하고, 앞서 말했던 의미에서는 긍정한다. 실체와 양태, 영원한 질서와 일시적 질서, 능동적 자연과 수동적 자연, 신과 세계 이 모두가 스피노자에게는 서로 일치하여 동의어로 사용할 수 있는 이분법의 두 항인 것이다.

 

P239

나에게 신의 도움이라는 말은 고정되어 변함없는 자연질서, 또는 자연의 사건들을 묶는 사슬이라는 뜻이다.” 자연의 영원한 법칙과 신의 영원한 명령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삼각형의 본질로부터 영원에서 영원에 이르기까지 세 각은 두 개의 직각의 합과 같다는 결론이 나오듯이, 이와 똑같은 필연성에 의해, 똑 같은 방식으로, 신의 무한한 본성으로부터 만물이 나온다.

 

P240

철학에서 가장 큰 오류의 뿌리는 우리 인간의 목적, 기준, 선호를 객관적 우주에 투사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 악의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욥이 배운 교훈, 즉 신은 우리의 작은 선과 악을 넘어서 있다는 교훈을 잊고 삶의 불행을 신의 선과 조화시키려고 애쓴다. 그러나 선과 악은 인간과 관련되어 있고, 종종 개인적 기호와 목적에 따라 달라지며, 개인들이 하루살이에 불과한 우주, ‘움직이는 손가락이 종족의 역사마저 물에 써서 흘려버리는 우주에서는 아무런 유효성이 없다.

 

P241

악과 선은 편견으로, 영원한 실재가 이것을 인식할 수는 없다. “세계는 무한한 것의 완전한 본질을 보여주지, 인간의 특정한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옳다.” 미와 추도 선과 악이나 마찬가지다. 미와 추 또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으로, 우주를 향해 던지면 받아들여지지 않고 던진 사람을 향해 돌아올 것이다.

 

P242

이런 의미에서 신 유동하는 사물의 배후에 있는 보편적 과정과 영원한 실재 에게는 정신도 있고 몸도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정신도 물질도 신은 아니다. 세계의 이중의 역사를 이루는 정신적 과정과 분자적 과정, 이 두 가지, 그리고 그 원인과 법칙이 신이다.

 

P245

본래대로라면 모든 것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나의 사물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들이는 노력이 바로 사물의 실제 본질이다.

 

P246

인간은 자신의 결의와 욕망은 의식하지만 자신이 바라고 욕망을 갖도록 유도하는 원인은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스피노자는 자유의지를 느끼는 것과 공중을 나는 돌이 스스로 자신의 탄도를 결정하고, 자신이 떨어질 장소와 시간을 스스로 선택한도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P246

인간 행동은 기하학의 법칙들처럼 고정된 법칙을 따르므로 심리학은 기하학적 형식으로 연구되어야 하고 수학적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나는 선과 면과 입체에 관해 이야기하듯이 인간에 관해 쓸 것이다.” “나는 인간 행동을 조롱하거나 한탄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이래하려고 신중하게 노력해왔다. 또 그렇게 하기 위하여 더위, 추위, 폭풍, 천둥 등이 대기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듯이, 정념을 …… 인간 본성의 악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속한 속성이라고 여겼다.

 

P246

요하네스 뮐러는 본능과 감정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썼다. “생리학적 조건과는 별도로 정념들의 상호관계에 관해서 보자면, 스피노자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대가의 솜씨로 해준 이야기보다 나은 이야기를 하기는 불가능하다.”

 

P247

스피노자 윤리학의 탁월한 점은, 스스로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적대적인 철학들을 화해시켜 하나의 조화로운 통일체로 직조해내고, 그 결과 우리에게 근대 사상의 최고 성과라고 할 만한 도덕 체계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P248

열정이나 가정은 그 자체로는 기쁘거나 좋지 않으며, 우리의 능력을 줄이거나 키울 때에만 나쁘거나 좋을 뿐이다. “나는 덕과 능력을 같은 것으로 본다.” 덕이란 행동 능력이고, 재능의 형식이다.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면서 자신에게 유용한 것을 구할수록 덕도 커진다.”

 

P248

스피노자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보다 관대하다. 스피노자는 자기중심주의가 자기보존이라는 지고의 본능이 도출한 불가피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더 큰 선을 얻는다는 희망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에게 선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스피노자에게는 이것이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성은 본성에 어긋나는 것을 절대 요구하지 않으므로 사람들 각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유용한 것을 구하고, 무엇이든 진정으로 완벽에 더 다가간 상태로 이끌어주는 대상을 원하는 것을 인정한다. 또 각자가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인정한다.”

 

P249

스피노자는 니체와 마찬가지로 겸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겸손은 음모가의 위선이거나 노에의 소심함이다. 겸손은 능력의 부재를 뜻한다. 스피노자에게 덕이란 재능과 능력의 형식이다. 따라서 양심의 가책도 덕이라기 보다는 결함이다. “회개하는 사람은 두 배로 불행하고, 이중으로 약하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니체처럼 겸손을 비난하느라 긴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는다. ‘겸손은 아주 드물기때문이다. 키케로가 말했듯이, 겸손을 찬양하는 책을 쓰는 철학자들도 잊지 않고 속표지에 자기 이름을 적어놓지 않는가.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은 오만한 사람에 가장 가깝다.” 스피노자는 그렇게 말한다. (의식적인 덕은 모름지기 은밀한 악을 감추거나 교정하려는 노력이라는 정신분석가들의 지론을 이런 식으로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스피노자는 겸손을 싫어하지만 근신은 찬양하며, 행동과 장부촉 이음처럼 연결되지않는 오만에 반대한다. 자만은 사람들을 서로 불편하게 만든다. “자만하는 사람은 자신에 관해서는 훌륭한 행동만 이야기하고, 남에 관해서는 나쁜 행동만 이야기한다.” 오만한 사람은 자신의 완벽과 공적에 입을 떡 벌리며 놀라는 열등한 사람들이 있을 때 기뻐하며, 그러다 결국 그를 가장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희생된다. “오만한 사람만큼 아첨에 잘 넘어가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P251

우리는 외적인 원인들에 의해 여러 방향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파도처럼 서로 맞서는 바람들에 밀려 너울거릴 뿐, 결과나 운명을 깨닫지 못하기때문이다.

 

P252

정신이 이성의 명령에 따라 어떤 것을 생각하는 한, 현재, 과거, 미래 어디에 속한 것을 생각하든 그 영향은 동일한 것이다. 우리는 상상과 이성을 이용해 경험을 예측으로 바꿀 수 있다. 과거의 노예에서 벗어나 미래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

 

P253

우리는 인간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자유를 성취한다. 감정의 수동성은 인간의 굴레이며, 이성의 적극성은 인간의 자유다. 자유란 과정의 인과법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 감정이나 충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유는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조정되지 않고 완전하지 않은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만큼만 자유롭다. 초인이 되는 것은 사회적 정의와 편의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본능의 개인주주적 성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런 완전성이나 성실성에서 지혜로운 자의 평정이 나온다.

 

P253

위대해지는 것은 인간 위에 올라서서 남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불균등한 욕망의 편파성과 무용성 위에 올라서서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다.

 

P254

플라톤은 <국가>에서 똑 같은 생각을 아름다운 말로 표현했다. “진정한 존재에 정신을 집중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자잘한 일을 내려다볼 시간이 없고, 질투와 적의에 사로잡혀 그들과 맞서 싸울 여유가 없다. 그의 눈은 늘 고정된 불변의 원리를 향한다. 그는 이 원리들이 서로 해를 주지도, 해를 입지도 않고 모두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본다. 그는 이것을 모방하며, 여기에 최대한 자신을 맞춘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필연적인 것에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운명애 (amor fati)가 내 본성의 핵심이다.”

 

P255

자유로운 사람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한 명상이다. 이 철학은 넓은 시야로 우리의 안달 난 에고를 진정시킨다. 또 우리의 목적들을 제약하는 한계를 받아들이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체념이나 동향에서 말하는 무관심한 수동성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또 모든 지혜와 모든 힘의 불가결한 기초이기도 하다.

 

P256

우리는 법칙과 원인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고, 신의 일부다. 우리는 우리보다 큰 존재, 죽어가는 우리와는 달리 끝이 없는 존재의 스쳐가는 형태다. 우리 몸은 인류라는 몸의 세포이며, 인류는 생명의 드라마 가운데 한 사건이다. 우리 정신은 영원한 빛의 순간적인 반짝임이다. “우리의 정신은 이해를 하고 있는 한 사고의 영원한 양식이며, 이것은 다른 양식의 사고에 의해 결정되고, 이것은 또 다른 양식의 사고에 의해 결정되며, 이런 식으로 무한히 이어진다. 결국 이 모두가 동시에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지성을 이룬다.” 이러한 개인과 만유의 범신론적 결합 속에서 다시 동양이 등장한다.

 

P257

덕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덕 자체가 축복이다. “ 어쩌면 이와 마찬가지로, 명료한 사고에 대한 보답이 불멸이 아니라, 명료한 생각 자체가 불멸인지도 모른다. 명료한 생각은 과거를 현재로 실어 나르고 미래로 뻗어 나가면서 시간의 한계와 비좁음 너머 변화의 만화경 뒤에 영원히 존재하는 시야를 포착한다. 그런 생각은 불멸이다. 모든 진리는 영구적인 창조물이자 인간이 영원히 획득한 것의 일부로서 인간에게 영원히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P258

이렇게 나는 감정보다 우위에 있는 정신의 능력, 또는 정신의 자유에 관해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지혜로운 자가 단지 욕정에만 이끌리는 무지한 자보다 얼마나 앞서 있으며 얼마나 강한지 분명해졌을 것이다. 무지한 사람은 외적인 원인 때문에 여러 가지로 흥분할 뿐 아니라 정신의 진정한 만족을 하 가지도 누리지 못한다. 더욱이 그는 자신, , 사물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며, 수동적인 상태를 멈추는 순간에 존재로 멈추어버린다. 반면 지혜로운 자는, 그렇게 생각될 만한 사람이라면, 정신에 동요가 없다. 그는 어떤 영원한 필연성에 의해 자신을 의식하고, 신을 의식하고, 사물을 의식한다. 그는 절대로 존재를 멈추지 않으며, 늘 정신의 만족을 누린다. 여기에 이르도록 내가 안내한 길이 비록 매우 어렵다 해도 그 길을 발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좀처럼 발견되지 않으니 매우 어려운 것은 분명한 듯하다. 사실 구원이 바로 가까이에 있고 어려움 없이 발견될 수 있다면 어떻게 모두가 이런 식으로 구원을 내팽개치다시피 살고 있겠는가? 모든 탁월한 것들은 귀한 만큼이나 어렵다.

 

5. 정치론

 

P262

국가의 목적은 이성적 존재를 야만적 짐승이나 기계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몸과 정신이 안전하게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유로운 이성에 따라 살면서 이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며, 증오와 분노와 간계에 힘을 낭비하거나 서로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목적은 진정으로 자유인 것이다.

 

P262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 속성상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관점이 법을 어기는 범죄로 간주될 때는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한다. …… 그런 상황에서는 법을 혐오하는 것, 정부에 반대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수치가 아니라 매우 명예로운 일로 생각한다.

 

P264

압제자의 사악한 비밀이 시민에게 감추어지느니, 차라리 정당한 방침이 적에게 알려지는 편이 낫다. 국사를 은밀히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은 완전히 자신들의 권위에 따라 일을 처리하려 한다. 그들은 전시에 적을 물리칠 음모를 짜듯이, 평화 시에 시민을 물리칠 음모를 짠다.

 

6. 스피노자의 영향

 

P168

어떤 것, 그 거처는 석양의 빛이며, 둥근 바다며, 살아 있는 공기며, 파란 하늘이며, 인간의 정신 속이다. 어떤 움직임과 어떤 영, 이것이 모든 생각하는 것들, 모든 생각의 모든 대상을 밀고 나가며, 모든 것을 통과하여 나아간다.

 

5장 볼테르와 프랑스 계몽주의

 

공기와 물로 빚어진 피조물로서, 그는 지금까지 살았던 누구보다 쉽게 흥분한다. 그에게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고동치는 원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정신적 기제가 그보다 섬세한 사람은 없으며, 그 정신의 평형은 누구보다 빨리 바뀌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 정확하다.

 

1. 파리 : <오이디푸스>

 

P280

그는 철학을 하기 전에 우선 살고 봐야 한다는 고전적 격언을 존종했다.

 

2. 런던: <영국 통신>

 

P284

이 통신은 영국의 정치적 자유와 지적 독립성을 프랑스의 압제나 굴레와 비교했다. 또 모든 질문과 의심에 대한 답으로 계속 바스티유만 제시하는 프랑스의 게으른 귀족과 십일조를 빨아먹는 성직자들을 비난했다. 나아가 중간계급에게 영국의 중간계급처럼 국가에서 합당한 자리로 나아가라고 촉구했다. 스스로 알지도 못했고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이 통신은 혁명을 알리는 닭의 첫 울음소리가 되었다.

 

3. 시레: <로망스>

 

P286

볼테르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이 우리를 약간 경박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척 비참하게 살아갈 것이다. 사람은 경박해질 수 있기에 목을 매달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는 까칠한 칼라일 같은 면이 전혀 없었다. “때로는 멍청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웃음으로 주름살을 펴지 못하는 철학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나는 엄숙을 병으로 봅니다.”

 

4. 포츠담과 프리드리히

 

P294

여자란 그런 것.” 그는 철학적으로 내뱉었다 (그런 남자도 있다는 사실은 잊고). “내가 리슐리외를 쫓아냈듯이 생랑베르가 나를 쫓아내는군! 그게 만물의 질서다. 못 하나가 박히면 다른 못은 빠져나간다.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는 법이다.

 

5. 레델리스: <도덕론>

 

P300

볼테르가 구한 것은 유럽 문명의 역사를 통틀어서 하나의 실처럼 꿸 수 있는 통일의 원리였다. 그는 이 실이 문화의 역사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역사는 왕들이 아니라 운동, , 대중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족이 아니라 인류를 다루고, 전쟁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행군을 다루어야 했다.

 

P300

역사에서 왕을 거부하는 것은 정부에서 왕을 거부한 민주적 봉기의 일부였다. <도덕론>이 부르봉 왕조를 왕좌에서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6. 페르네: <캉디드>

 

P306

그렇다면 가장 광대한 정신의 평결은 무엇인가? 침묵이다. 운명의 책은 우리에게 닫혀 있다. 인간은 인간의 연구로는 도무지 알 수 없고,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인간은 진흙밭에서 괴로워하는 원자이며, 죽음에 잡아먹히고, 운명에 조롱당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원자다. 생각의 안내를 받아 멀리 보는 눈으로 희미한 별들을 측량해왔다. 우리의 존재는 무한과 섞인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이 세상, 이 자만과 오류의 극장에서는 행복을 말하는 병든 바보들이 가득하다.

 

P310

팡글로스는 가끔 캉디드에게 말했다.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 최선인 이 세계에서는 사건들이 연결되네. 자네가 웅장한 성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 종교재판소에 끌려가지 않았다면, 아메리카로 건너가지 않았다면, 금을 다 잃지 않았다면 …… 자네는 여기에서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 열매를 먹고 있지 않을 걸세” “다 좋은 거군요.” 캉디드가 대답했다. “어서 밭이나 갑시다.”

 

7. <백과전서> <철학 사전>

 

P313

교회는 처음 나온 몇 권의 판매를 금지했다. 반대가 심각해지자 동지들은 디드로를 버렸다. 그러나 그는 분노에서 힘을 얻어 더 열심히 일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이성에 반대하는 신학자들의 이런 막연한 연설보다 품위없는 일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에 들어가는 소떼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기독교의 품에 안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314

확신을 갖는 사람은 사기꾼뿐이다. 우리는 제1원리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팔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도 모르면서 신과 천사와 정신을 정의하는 것, 그리고 신이 세상을 만든 이유를 안다는 것은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일이다. 의심은 별로 유쾌한 상태는 아니지만, 확신은 확실히 우스꽝스러운 상태다.

 

8. 파렴치를 박살 내라

 

P318

오라, 용감한 디드로여, 두려움을 모르는 달랑베르여, 동맹을 맺어라. …… 광신도와 무뢰한을 압도하고, 재미없는 선언, 가련한 궤변, 거짓말하는 역사 …… 수많은 부조리를 부수어라. 분별력 있는 사람이 분별력 없는 사람에게 굴복하게 하지 마라. 지금 태어나고 있는 세대는 우리 덕분에 이성과 자유를 얻으리라.”

 

P323

미신은 지고의 존재를 순수하게 섬기는 마음의 가장 잔인한 적이다. 늘 자기 어머니의 가슴을 찢어왔던 이 괴물을 혐오하자. 미신과 싸우는 사람들은 인류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들이다. 미신은 종교를 끌어안아 인류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들이다. 미신은 종교를 끌어안아 숨을 막는 뱀이다. 우리는 뱀이 삼키려는 어미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뱀의 머리를 부수어야 한다.

 

9. 볼테르와 루소

 

P332

인간은 야만보다는 문명 속에서 훨씬 낫게 살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루소에게 인간은 천성적으로 맹수이며, 문명화된 사회란 이 짐승을 사슬로 묶고, 야만성을 누그러뜨리고, 사회 질서를 통하여 지성과 그 기쁨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열어가는 사회를 뜻한다고 말한다.

 

P333

즉 본능으로 낡은 것을 부수어야 하지만, 오직 지성만이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몰론 급진주의 안에는 반동의 싸앗들이 풍부하게 뿌려져 있었다. 본능과 감정은 궁극적으로 낡은 과거에 충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의 산물이며, 판에 박힌 방식으로 과거에 적용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카타르시스가 지나가면 심장의 요구가 초자연적 종교와 좋았던 옛 시절의 일상과 평화를 다시 불러내기 마련이다.

 

10. 대단원

 

P334

내가 베푸는 작은 선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 나는 공격을 당하면 악마처럼 싸운다. 나는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밑바탕은 선한 악마이며, 웃음으로 끝을 맺는다.

 

6장 이마누엘 칸트와 독일 관념론

 

P339

나는 이미 지키고자 결심한 노선에 마음을 고정시켰다. 나는 나의 길로 들어설 것이며, 무엇도 내가 이 길을 좇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난과 무명의 세월을 살며 거의 15년 동안 자신의 걸작을 스케치하고 쓰고 다시 썼다. 이렇게 느리게 성숙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철학계를 박칵 뒤집어놓은 적도 없었다.

 

1. 칸트로 가는 길

 

P343

그렇게 유죄 평결을 받은 이 신앙과 희망이 재판관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종교만이 아니라 이성에 대한 조사도 요구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삼단논법으로 수천 년에 걸친 수백만 명의 믿음을 파괴하겠다고 나선 이 지성이란 무엇인가? 거기에는 오류가 없는가? 아니면 지성 또한 다른 모든 인간 기관과 마찬가지로, 그 기능과 능력에 엄격한 제한이 따르는 한 기관에 불과한가? 이제 이 재판관을 재판하고, 모든 오래된 희망을 그렇게 거침없이 죽여버린 이 무자비한 혁명재판소를 조사할 때가 되었다. 이성을 비판할 때가 온 것이다.

 

2. 칸트 자신

 

P354

칸트는 몸이 아주 약해서 스스로 철저한 섭생을 해야 했다. 그는 의사 없이 이렇게 하는 쪽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며, 결국 여든 살까지 살았다. 일흔 살에는 <아픈 느낌을 결단의 힘으로 정복하는 정신력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를 썼다.

 

3. 순수이성비판

 

P355

칸트는 마지막에 한계를 보여주려 할 때를 제외하면 순수이성을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왜곡시키는 감각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순한 지식보다 우월한 것으로 찬양하려 한다. ‘순수이성은 우리 감각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 경험에서 독립된 인식을 뜻하기 때문이다. 정신의 타고난 본성과 구조에 의해 우리에게 속한 지식인 셈이다.

 

P360

감가 경험이나 관념은 단지 경험이 시간이나 공간에서 인접해 있다거나 비슷하다거나 최근의 것이라거나 빈번하다거나 강렬하다고 해서 연합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연합은 무엇보다도 정신의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감각이나 사고는 하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부름을 기다리며, 우리가 요구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이들을 선별하고 지휘하는 작용이 바로 이들을 사용하는 주인인 것이다. 감각 경험과 관념 위에 정신이 있는 것이다.

 

4. 실천이성비판

 

P370

우리의 행동 세계와 관련된 도덕 의식이 감각 현상을 다루고자 하는 한 가지 목적으로 계발된 이론적 논리학보다 우선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은 물자체의 배후에 정의로운 신이 존재한다고 자유롭게 믿도록 허락하며, 우리의 도덕 의식은 우리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명령한다. 루소가 옳았다. 심장의 느낌은 머리의 논리보다 위에 있다. 파스칼이 옳았다. 심장은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고, 머리는 이것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5. 종교와 이성에 관하여

 

P372

자연의 만은 대상이 그런 아름다움, 그런 대칭과 통일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초자연적 설계라는 관념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칸트는 자연에는 낭비와 혼돈, 쓸모없는 반복과 증식의 에도 많다고 이야기한다. 자연은 생명을 보존하지만, 얼마나 많은 고통과 죽음을 대가로 치르는가! 따라서 외적 설계라는 겉모습은 섭리의 결정적 증거가 아니다. 그 관념을 너무 자주 사용하는 신학자들은 그것을 버려야 하고, 그것을 버린 과학자들은 사용해야 한다.

 

6. 정치와 영구평화에 관하여

 

모든 인간은 그 자체가 절대적 목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을 어떤 외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그가 가진 존엄을 위반하는 범죄다.” 이는 종교를 위선적 소극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필수적인 정언적 명령의 핵심이기도 하다. 따라서 칸트는 평등을 요구한다. 능력의 평등이 아니라 능력을 계발하고 적용할 기회의 평등이다.

 

7. 비판과 평가

 

P382

19세기에는 칸트의 윤리학, 즉 타고난 선험적이고 절대적인 도덕 감각 이론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진화철학이 사회적 행동의 기질은 희미하게 타고날지 모르지만 의무감은 개인 안의 사회적 침전물이며, 양심의 내용은 후천적으로 얻는 것이라는 막강한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8. 헤겔에 관한 메모

 

P392

갈등과 악이 단순히 부정적인 공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지혜의 관점에서 보자면 완성과 선을 향한 무대다. 갈등은 성장의 법칙이다.

 

7장 쇼펜하우어

 

P397

쇼펜하우어 덕분에 우리의 은밀한 심장이 드러났다. 그는 욕망이 철학의 원리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사고가 비인격적 사건들의 추상적 계산이 아니라 행동과 욕망의 유연한 도구라는 것을 이해하는 길을 닦아놓았다. 그는 천재의 필요성과 예술의 가치를 우리에게 다시 가르쳐주었다. 모든 위대한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그는 다시 한번 영웅을 고귀하게 섬기라고 설교 했다.

 

1. 시대

 

P402

유럽의 혼돈은 우주의 혼돈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며, 어차피 신의 질서는 없고 천국의 희망도 없으며, 만일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눈이 멀었으며 지구는 악으로 덮혀 있다는 것이었다. 바이런, 하이네, 레르몬토프, 레오파르디, 그리고 우리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2. 인간

 

P403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1788년생인 바이런도 어머니와의 관계가 이와 비슷했다. 이 두 사람은 이런 환경 때문에라도 비관주의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남자, 더 심한 경우 어머니의 증오를 아는 남자는 세상에 매혹될 이유가 없는 법이다.

 

P404

그에게는 어머니도, 아내도, 자식도, 가족도, 조국도 없었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으며, 친구 한 명 없었다. 하나라도 있는 것과 하나도 없는 것 사이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다.”

 

P408

그러나 명성이 일찍 찾아왔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제 살날이 2년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1860 9 21일 그는 혼자 아침 식탁에 앉았고,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한 시간 뒤 여주인은 그가 여전히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죽은 것이다.

 

3. 표상으로서의 세계

 

P410

겸손이란 위선적 자기비하에 불과하며, 질투로 가득 찬 세상에서 탁월함과 장점이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서 용서를 얻고자 하는 수단이다.” “겸손이 미덕이 된다면 그것은 바보에게 아주 유리한 상황임이 틀림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모두 자기가 바보인 것처럼 이야기를 할 테니 말이다

 

4. 의지로서의 세계

 

P418

재생산은 모든 유기체의 궁극적 목적이자 가장 강한 본능이다. 그렇게 해야만 의지가 죽음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재생산의 의지는 지식이나 사고가 거의 통제할 수 없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심지어 철학자도 가끔 자식을 둔다.

 

P421

사랑은 자연의 기만행위이므로 결혼은 사랑의 소모이며, 환멸을 낳을 수밖에 없다. 오직 철학자만이 결혼으로 행복할 수 있지만, 철학자들은 결혼하지 않는다.

 

5. 악으로서의 세계

 

P432

하나의 현상적 존재를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자살은 헛되고 어리석은 행동이다. 물자체 , 생명, 전체적 의지 는 그것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잠시 무지개를 지탱하는 물방울들이 금세 떨어지더라도 무지개 자체는 버티는 것처럼.”

 

6. 삶의 지혜

 

P433

사실 이것이 교양과 지혜가 필요한 기술이다. 계속 감각적인 것만 추구하면 결코 오랜 만족을 얻지 못한다. 재산을 모으는 기술만이 아니라 삶의 목적도 이해해야 한다.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행복에 더 기여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교양을 얻는 것이 행복에 더 기여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교양을 얻는 것보다는 부자가 되는 것에 훨씬 집중한다.

 

P434

첫 번재 조언은 책보다 삶이 먼저라는 것이고, 두 번째 조언은 주석보다 본문이 먼저라는 것이다. 해설자와 비평가보다는 저자를 읽어라. “오직 저자에게서만 철학적 사고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철학에 끌린다고 느끼는 사람은 저자 자신의 저작이라는 고요한 성소에서 불멸의 스승을 찾아야 한다천재의 작품 하나는 주석 1000개의 가치가 있다.

 

P438

예술 작품은 예술이 표현하는 대상이 속한 집단의 플라톤적 이데아, 즉 보편적인 것을 보여주는 만큼 성공을 거둔다. 따라서 한 인물의 초상은 사진처럼 충실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그 인물을 통해 인간의 어떤 핵심적이거나 보편적인 특질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P442

불교는 기독교보다 심오하다. 의지의 파괴가 종교의 모든 것이며, 니르바나가 모든 개인 발달의 목표라고 설교하기 때문이다. 힌드교도는 유럽의 사상가들보다 생각이 깊다. 그들의 세계 해석이 외적이고 지적이지 않고 내적이고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7. 죽음의 지혜

 

P446

여자는 상관하지 않을수록 좋다. 그들은 심지어 필요악도 아니다. 여자가 없다면 인생은 더 안전하고 평탄해질 것이다. 남자가 여자의 아름다움에 놓인 덫을 인식한다면, 재생산이라는 터무니 없는 희극은 끝날 것이다. 지성의 발달은 재생산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거나 꺾어버릴 것이며, 이로써 마침내 인류의 멸종이 가능해질 것이다.

 

8. 비판

 

P447

쇼펜하우어에게는 계속 여가를 누릴 만한 돈이 있었으며, 그는 지속적인 여가가 지속적인 일보다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철학자들의 우울해지는 경향은 앉아 있는 직업의 부자연스러움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공격은 단순히 배설의 기술을 잃어버린 병의 증상에 불과한 경우가 너무 많다.

 

P454

쇼펜하우어는 과장은 있었지만 천재의 필요성과 예술의 가치를 우리에게 다시 가르쳐 주었다. 그는 궁극적 선은 아름다움이며, 궁극적 기쁨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임을 알았다.

 

8장 허버트 스펜서

 

P455

그는 자신의 시대를 요약했는데, 단테 이래로 어떤 시대를 요약한 사람은 스펜서 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대가다운 솜씨로 방대한 지식 영역을 조정하는 일을 완수했기에 그 성취 앞에서는 비판하기가 부끄러워져서 입을 다물 지경이다. 우리는 지금 그의 노력과 노고가 밀어준 덕분에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 우리가 그보다 높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가 우리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1. 콩트와 다윈

 

P461

스펜서가 이런 사상적 물결의 정점에 올라선 것은 진화의 개념을 모든 연구 영역에서 적용하자고 제안한 명석한 정신, 그리고 거의 모든 지식이 그의 이론에 경의를 표하게 만든 폭넓은 정신 때문이었다.

 

2. 스펜서의 발전

 

P467

그는 말한다. “나는 설명에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마를 듣곤 했다. 흔치 않은 명료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내 자료와 추론과 결론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는 넓은 범위의 일반화를 사랑했으며, 증명보다는 가설로 자신의 작업을 흥미롭게 만들었다.

 

3. 1원리들

 

P480

지혜로운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믿음을 존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보는 최고의 진리를 두려움 없이 말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오든 자신이 세상에서 올바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이 목표로 삼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그 또한 좋다는 것, 비록 전자의 경우만큼 좋지는 않아도 그래도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4. 생물학: 생명의 진화

 

P482

철학자들은 부모가 되기를 기피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반면 여자의 경우 어머니가 되면 보통 지적 활동이 축소된다. 어쩌면 여자의 사춘기가 남자보다 짧은 것도 여자가 더 일찍 재생산에 희생되기 때문일지 모른다.

 

5. 심리학: 정신의 진화

 

P485

본능이 반응하는 관계는 비교적 판에 박힌 단순한 것인 반면, 이성이 대응하는 관계는 비교적 새롭고 복잡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성적인 행동이란 단지 어떤 상황에서 다른 본능적 반응들과 싸워서 살아남은 특정한 본능적 반응들에 불과하다. ‘숙고란 경쟁하는 충동들이 서로 죽이는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밑바닥에서는 이성과 본능, 정신과 생명이 하나다.

 

6. 사회학: 사회의 진화

 

P488

이런 본질적 특질에서 사회적 유기체는 개별 유기체와 같다. 둘다 성장하고, 성장하면서 복잡해지며, 복잡해질수록 부분이 점점 서로 의존하게 되고, 구성 단위의 수명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긴 수명을 누리며 …… 양쪽 모두 통합이 증가하면 이질성도 증가한다.

 

P494

그는 인간들이 그렇게 민주적인 산업 체계를 능률적으로 운영할 만큼 정직하고 유능한지 의심하지만, 그렇게 노력하는 데에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는 산업을 절대적 주인들이 지휘하지 않는 시대, 사람들이 쓰레기 생산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는 시대를 예측한다.

 

7. 윤리학: 도덕의 진화

 

P502

아마 이기주의는 계속해서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사실 그러는 쪽이 바람직한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익보다 남들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예의와 겸양으로 인한 혼돈이 나타날 것이다. 어쩌면 사회적 조건이 규정하는 한계 내에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전체의 행복을 최대로 달성하는 첫 번째 필요조건일지도 모른다.”

 

8. 비판

 

P505

나는 추상적인 것 안에 들어가 돌아다니는 일에 너무 몰두해 있기 때문에 구체적 인간의 관찰자로는 형편없다.” 이것은 위험한 정직성이다.

 

P509

그는 강렬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짜증을 부릴 정도로 남의 간섭을 싫어했다. 그는 모든 새로운 입법 행위를 개인적 자유에 대한 공격으로 보았다.

 

9. 결론

 

P10

이상한 이야기지만, 그의 명성은 찾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그는 자신의 명성의 정점을 지나서까지 살았으며, 말년에는 자신의 장광설로도 온정주의적입법의 물결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슬퍼했다.

 

9장 프리드리히 니체

 

P513

나는 그곳에 앉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다. 선과 악을 넘어서서 가끔은 빛을, 또 가끔은 어둠을 즐겼다. 오직 낮, 호수, 정오, 끝없는 시간만 있었다. 나의 친구여, 그때 갑자기 하나가 둘이 되었고, 차라투스트라가 내 옆을 지나갔다.

 

1. 니체의 혈통

 

P516

니체는 다윈의 자식이고 비그마르크의 형제다. 그가 영국의 진화론자와 독일 민족주의자들을 조롱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을 흔히 비난하고 했으니까. 그것은 자신의 채무를 위장하는 그의 무의식적인 방법이었다.

 

2. 청년 시절

 

P521

니체는 전선으로 가는 길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기병대가 화려한 모습으로 떠들썩하게 도시를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그의 철학 전체의 씨앗이 되는 인식, 비전이 찾아왔다고 니체는 말한다. “나는 처음으로 가장 강하고 가장 높은 삶의 의지는 비참한 생존 투쟁에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의지’, ‘권력의지’, ‘제압하려는 의지로 표현된다고 느꼈다.”

 

3. 니체와 바그너

 

P528

나는 그 자신을 향한 솔직함과 진지함이 결합되지 않은 위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 점이 눈에 띄는 순간, 그 사람의 성취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4. 차라투스트라의 노래

 

P530

또 여기에서 더 강한 의지, 죽음과의 싸움에서 태어난 의지, 삶의 씁쓸함과 고통속에서도 달콤함을 느끼며

라고 말하기가 나왔다. 또 여기에서 자연의 한계와 인간의 운명을 스피노자처럼 명랑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로 올라서려는 애처로운 노력이 나왔을 것이다. “위대함을 보여주는 나의 공신은 운명애 (amor fati). …… 운명애는 모든 필연적인 것을 감당할 뿐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행동에 옮기기는 무척 어렵다.

 

P536

네 능력을 넘어선 것은 바라지 마라. …… 네 능력을 넘어선 덕을 가지려 하지 마라. 너 자신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마라.” 오직 초인만이 아는 행복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의 최대 목표는 일이다.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짓을 오래전에 중단했다. 지금 나는 나의 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5. 영웅 도덕

 

P542

철학은 표현하고 찬양하고자 하는 것이 상승하는 삶이냐, 하강하는 삶이냐에 따라 참이 되기도 하고 거짓이 되기도 한다. 퇴폐주의자는 말한다. “인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차라리 그가 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라고 말하게 하라. 삶의 모든 영웅적 가치가 쇠퇴하는 것이 허용되고, 민주주의 즉 모든 위인에 대한 불신 10년마다 또 다른 민족을 파멸로 몰아넣는 상황에서 어떻게 삶이 살 가치가 있겠는가?

 

6. 초인

 

P547

에너지, 지성, 자부심 이것이 초인을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혼란스러운 욕망을 재료로 개성의 힘을 빚어내는 어떤 위대한 목적이 선별하고 통일할 때에만 열정은 권력이 된다. “자신의 식물을 기르는 원예사가 아니라 그 밑에 깔린 흙이 되는 사상가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자신의 충동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약한 자다. 억제할 힘이 없는 자이고, 퇴폐주의자다. 자신의 규율을 잡는 것 그것이 최고다. “단순히 대중의 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하지만 않으면 된다.” 남들에게도 가혹하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가혹할 수 있는 목표를 가지기만 하면 된다. 친구를 배신하는 것 외에 거의 어떤 짓이든 하겠다고 결심할 만한 목표를 가지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고귀함의 궁극적 표지이며, 초인의 최종적 공식이다.

 

7. 퇴폐

 

P551

최악은 영국인이다. 바로 그들이 민주적 망상으로 프랑스 정신을 타락시켰다. “상점주, 기독교인, , 여자, 영국인, 민주주의자 들은 모두 한통속이다영국의 공리주의와 속물근성은 유럽 문화의 최저점이다. 오직 살인적 경쟁이 벌어지는 곳에서만 삶을 단순한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상상할 수 있다. 상점주와 선주의 수가 귀족을 압도할 만큼 늘어난 곳에서만 민주주의가 생길 수 있다. 민주주의는 영국이 근대 세계에 준 선물, 그리스적 선물이다. 누가 유렵을 영국으로부터, 영국을 민주주의로부터 구해낼 것인가?

 

8. 귀족주의

 

P557

범용이 그 자체로 결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오한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근면, 절약, 규칙성, 절제, 강한 신념 이런 미덕으로 범용한 사람도 완벽해질 수 있다. 그러나 도구로서 완벽해지는 것일 뿐이다. “높은 문명은 피라미드다. 피라미드는 넓은 기초 위에서만 설 수 있다. 그 필요조건은 견실하게 강화된 범용성이다.” 언제 어디서나 일부는 지도자가 되고 일부는 뒤따르는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다수는 높은 수준에 이른 사람들의 지적인 지도를 받으며 일할 수밖에 없고, 또 기꺼이 일할 것이다.”

 

9. 비판

 

P567

니체는 품위를 열망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논박을 당해왔다. 그럼에도 그는 현대 사상의 이정표로 서 있으며, 독일 산문의 산봉우리다. 미래에는 과거를 니체 이전니체 이후로 나눌 거라는 그의 예측은 약간 과장된 것이 틀림없다.

 

10 피날레

 

P569

만일 다른 사람들이 조금만 더 평가해주었다면 이런 보상적인 자기중심주의가 방지되고 니체는 자신의 관점과 정신을 더 잘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너무 늦게 나왔다.

 

10장 현대 유럽 철학자들 (베르그송, 그로체, 버트런드 러셀)

 

P573

베르그송은 인간의 가슴에서 영원히 솟아오르는 희망을 방어하러 나섰기 때문에 일찌감치 크나큰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은 철학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도 불멸과 신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쁘고 감사했다. 베르그송의 강의실은 자신의 마음속의 욕망이 그런 박식한 웅변으로 뒷받침되는 것을 기뻐한 화려한 숙녀들의 살롱이 되었다

 

1. 앙리 베르그송

 

P577

그러나 너무 많이 알면 회의주의에 빠지기 마련이다. 젊은 시절 독실했던 사람은 배교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젊은 시절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늙어서 성자가 된다.

 

P579

자유의지는 의식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안다는 뜻이다.

 

P580

물줄기는 강바닥의 구불구불한 경로를 따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강바닥과 구별된다. 의식은 자신이 생기를 불어넣는 유기체의 변화를 따라갈 수밖에 없지만, 그것과 구별된다.

 

P583

곡선의 아주 작은 요소는 직선에 근접한다. 그 요소가 작아질수록 근접한다. 어떤 한계 내에서는 직선의 일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곡선 위의 각각의 점에서는 접선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생명력은 모든 지점에서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힘의 접선이다. 그러나 그런 점들은 사실 그 곡선을 만들어내는 운동이 여러 순간 정지한 상태를 정신이 상상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곡선이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듯이 생명은 물리화학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P585

무의식의 가장 성스러운 깊은 곳을 탐사하고 의식의 표층 밑에서 노력하는 것, 이것이 지금 열리는 세기의 심리학에 주어진 핵심 과제다. 그곳에서 놀라운 발견들이 심리학을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P590

이 신은 쉼 없는 생명, 행동, 자유다. 이렇게 생각하면 창조는 신비가 아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할 때,” 의식적으로 행동을 선택하고 삶을 계획할 때, “우리 내부에서 창조를 경험한다. 우리의 투쟁과 고난, 우리의 야망과 좌절, 현재보다 더 나아지고 더 강해지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은 우리 내부의 생명의 약진’, 즉 우리의 성장을 이끌고 이 방황하는 행성을 끝없는 창조의 무대로 바꾸어놓은 생명의 충동의 목소리이자 흐름이다.

 

P596

베르그송 이후 우리는 세계를 우리 자신의 독창적인 힘들의 무대이자 재료로 보게 되었다. 베르기송 이전에 우리는 거대한, 죽은 기계의 톱니 바퀴였다. 이제 우리는 얼마든지 창조의 드라마에서 우리의 역할을 써나갈 수 있다.

 

2. 베네데토 그로체

 

P604

상상은 사고에 선행하므로, 도 사고에 필수적이기에, 정신의 예술적 활동, 즉 이미지를 형성하는 활동은 논리적인 활동, 즉 개념을 형성하는 활동보다 앞선다. 인간은 상상하는 순간, 예술가가 된다. 이것은 추론보다 훨씬 앞서는 일이다.

 

P605

차이는 이미지를 외화하는 능력이 아니라 대상을 표현하는 이미지를 내적으로 형성하는 능력에 있다.

 

P607

나에게 정확하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줄 수 있었던 사람은 없다. 내 경우에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나의 느낌을 따른다. 어느 누가 더 나은 안내자를 발견했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나에게 아름다움과 진실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킬 것은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을 제외하면 세상에 진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3. 버트런드 러셀

 

P610

러셀은 명료함에 대한 열망 탓에 불가피하게 수학으로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귀족적 과학의 차분한 정확성에 전율을 느꼈다. “제대로 보면 수학에는 진리만이 아니라 최고의 아름다움도 있다. 이 아름다운 조각처럼 차갑고 꾸밈없는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약한 본성 어느 곳에도 호소하지 않고, 회화나 음악 같은 화려한 치장도 없지만, 그럼에도 숭고하고 순수하며, 오직 가장 위대한 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엄격한 완벽성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

 

P612

추론이 쓸모가 있으려면 사물을 대상으로 삼아야 하고, 매 단계마다 사물과 접촉을 유지해야 한다. 추상은 요약으로서 쓸모가 있지만, 논증의 수단이 되려면 검증을 받고 경험의 주석을 붙여야 한다.

 

11장 현대 미국 철학자들 (산타야나, 제임스, 듀이)

 

P621

이 영혼은 마치 고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이교도 학자와 같은 억양으로 말하면서 침착하고 탁월한 안목으로 우리의 작은 체계를 살피고, 아주 차분한 추론과 가장 완벽한 산문으로 우리의 새롭고도 낡은 꿈들을 박살냈다. 플라톤 이후 철학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된 적은 없었다. 산타야나, 그의 말은 새로운 풍미, 섬세한 질감이 느껴지는 구절로 가득했고, 섬세한 통찰로 향기를 풍겼으며, 풍자적인 위트로 가시가 박혀 있었다.

 

머리말

 

P624

유럽이 아니라 이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태도, 관념, 이상은 토착적 형성물이다. 그들의 영혼은 보스턴이나 뉴욕이나 필라델피아나 리치먼드를 장식하는 가문들의 공상함에 물들이지도 않았고, 남부나 동부 유럽인의 격한 정렬에 물들이지도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원시적 환경과 과제에 의해 신체적으로는 억세고 정신적으로는 직접적이고 단순하게 빚어져 있다. 이것이 말도 아는 상식을 갖춘 미국이고, ‘실용적인 사람들의 미국이고, ‘냉정한 사업가들의 미국이다.

 

1. 조지 산타야나

 

P626

플라톤 이후 철학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의 말은 새로운 풍미, 섬세한 질감이 느껴지는 구절로 가득했고, 섬세한 통찰로 향기를 풍겼으며, 풍자적인 위트로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의 시인적 기질은 풍부한 비유로, 그의 예술가적 기질은 끌로 다듬은 문단으로 말했다. 기분 좋게도 미국은 아름다움의 유혹과 진리의 부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P627

그는 <이성의 삶>의 윤곽을 그리기 전에 전문적인 인식론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모든 전문적인 자잘한 장치들을 동원하여 인간 이성의 기원, 타당성, 한계를 기꺼이 토론하려 한다. 그는 전통적인 가정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고의 큰 덫임을 알고 있다. “비판은 관습의 품에 안긴 영혼을 놀라게 한다.” 그는 그렇게 비관습적으로 말한다. 그는 기꺼이 거의 모든 것을 의심하려 한다.

 

P628

그것은 그 순간의 경험이다. – 이 색깔, 이 형태, 이 맛, 이 냄새, 이 특질이다. 이것이 진짜세계이고, 이것을 지각하는 것이 곧 본질의 발견이다.

 

P630

자연을 신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자연에 보태질 것은 없다. “자연이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히 시적이다. 그 말은 내가 사는 세계의, 만들어내고 통제하는 기능, 끝없는 활력, 변화무쌍한 질서를 충분히 암시한다.

 

P637

산타야나는 말한다. “이상속에서 살고 사회나 예술에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은 이중의 불멸을 누린다. 그는 사는 동안 영원한 것에 몰입했고, 죽으면 그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거기에 몰입하게 된다. 그들은 그의 가장 좋은 것과 이상적 동일시를 하기 때문에 그가 합리적인 마음으로 그의 내부에서 파괴로부터 구출되기를 바랐던 모든 것의 화신이며 영원한 거처가 된다. 그는 자신을 미혹시키려는 어떤 속임수나 욕망 없이 자신이 완전히 죽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존재를 구성하는 것에 관하여 천박한 사람들보다는 나은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과 우주의 변화를 바라보는 구경꾼이자 고해 신부가 됨으로써 모든 영 안의 영적인 것, 모든 이해 가운데 정교한 것과 자신을 동일 시 할 것이다. 자신을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자신이 영원하다고 진정으로 느낄 수도 있고 알 수도 있다.”

 

P642

고전적 전통은 오직 소수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민주주의는 능력만큼 잡는 자유롭고 자유방임적 산업주의라는 대규모의 레슬링 시합을 모두에게 열어놓았기 때문에 모든 영혼이 올라가려다 상처를 입고, 아무도 만족을 모른다. 계급들이 서로 제약 없이 전쟁을 벌인다. “이 투쟁(자유주의가 전장을 닦아놓았다)에서 이기는 자는 누구든 자유주의를 끝낼 것이다.” 이것, 즉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파괴한 압제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혁명의 인과응보이기도 하다.

 

2. 윌리엄 제임스

 

P652

진리는 과정이며, “하나의 관념에서 발생한다.” 참은 증명이다. 실용주의는 하나의 관념이 어디에서 왔으며 그 전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대신 그 결과를 살핀다. 실용주의는 강조점을 옮겨서 앞을 본다.”

 

P658

그는 인간을 낫게 만들려는 수많은 노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늘 누군가를 돕고 용기를 불어넣어 사람들을 고양시켰다. 그는 모든 개인에게 환경이 적절한 산파 노릇을 하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비축 에너지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늘 개인을 향해서나 사회를 향해서나 이 자원을 완전히 이용하자고 호소했다.

 

P660

결론은 없다. 우리가 그와 관련하여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고 누가 결론을 내려주었는가? 점을 쳐줄 것도 없고 조언 해줄 것도 없다. 안녕.”

 

3. 존 듀이

 

P662

이제 유럽과 미국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이 산업화에 말려들어간 상황에서 우리는 책보다는 직업을 통해 배워야 한다. 학자적인 문화는 속물근성으로 향하지만, 직업 내의 동료애는 민주주의를 향한다. 산업 사회에서 학교는 축소판 작업장이자 축소판 공동체다. 학교는 실습과 시행착오를 통해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질서에 필요한 기술과 분야를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육은 성숙에 대비할 뿐 아니라 (여기에서 사춘기 뒤에는 교육이 끝난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나온다) 정신의 지속적인 성장과 삶의 지속적인 해명으로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P666

우리는 불변의 인간 본성과 전능한 환경에 관한 우리의 관념을 잊어야 한다. 변화나 성장에 알려진 한계는 없다. 어쩌면 불가능은 없을지 모른다. 다만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P666

의사나 엔지니어는 자신이 무엇을 다루는지 아는 만큼 생각과 행동에서 자유롭다. 어쩌면 우리는 여기에서 모든 자유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P669

이런 낡은 문제들은 이제 우리에게 의미를 잃었다. “우리는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선다.” 그런 문제들은 사회적 마찰과 삶의 변화에 대한 열기 속에서 증발한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은 스스로 세속적이 되어야 한다. 지상에 머물며 삶을 해명해주면서 자립해야 한다.

 

P670

철학이라는 전문적 일에 종사하지는 않지만 진지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은 새로워진 산업적 정치적 과학적 운동이 지적 유산 가운데 무엇을 수정하고 무엇을 버리라고 요구하느냐 하는 것이다. …… 미래 철학의 과제는 그 시대의 사회적 도덕적 갈등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다. 미래 철학의 목적은 되도록이면 이런 갈등에 대처하는 기관이 되는 것이다……. 삶의 갈등하는 요인의 조정에 관한 멀리 내다보는 보편적 이론이 철학이다.

 

맺음말

 

P671

하지만 우리는 부유해졌고, 부는 예술의 서곡이다. 물을 준 기름진 땅에서 식물이 자라듯이, 수백 년에 걸쳐 물리적 노력을 기울여 사치와 여가를 위한 수단을 축적한 나라에서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문화가 뒤따랐다. 부유해지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었다. 한 민족이 철학을 할 수 있으려면 그전에 먼저 살기부터 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나라들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것은 분명하다. 우리 영혼의 무질서는 이런 발전 속도 탓이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성장과 사춘기 경험으로 한동안 혼란에 빠지고 균형을 잃은 젊은이들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곧 성숙할 것이다. 우리 정신이 우리 몸을 따라잡고, 우리 문화가 우리 소유를 따라잡을 것이다. 어쩌면 셰익스피어보다 위대한 영혼, 플라톤의 정신보다 위대한 정신이 세상에 나올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부만이 아니라 자유까지 숭배할 때, 우리 또한 우리의 르네상스를 누릴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월 듀런트의 철학이야기는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의 지혜와 달리 원저자의 인용구를 이용하여 철학자의 사상을 서술하는 형식으로 원저자의 뜻과 자신의 의도를 잘 드러내는 문장으로 훌륭한 철학 소개서를 저술하였다. 특히, 각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핵심 사항들을 정리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실어 철학자의 기여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같이 볼 수 있게 정리한 것이 철학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을 주며 또한 한 철학자를 여러 면에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철학이야기를 읽으면서 약간은 헷갈리는 것이 많은 이용구를 이용하여 철학 사상을 전개하지만 철학자의 이야기인지 월 듀런트의 이야기 인지 구분이 안 갈 경우도 있는 것도 있다. 일단 이런 부분은 해당 철학자의 사상으로 여기고 읽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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