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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7일 09시 57분 등록

Book Review

철학 이야기(봄날의 책)

강종희

2014. 6.17

 

  1. 저자에 대하여

윌 듀런트(William J. Durant, 1885~1981)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문명사학자로서, 세계적 베스트셀러 '철학이야기'를 통해 어렵게만 여겨졌던 철학을 일반인들에게 확산시키며 역사와 철학을 대중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 듀런트는 1885 11 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노스 애덤스에서 태어났다. 노스 애덤스와 뉴저지 주 커니의 가톨릭 부설 학교에서, 그 다음에는 저지 시의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와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한 후, 뉴저지 주 사우스 오렌지에 소재한 세튼홀 칼리지에 자리를 잡고 라틴어와 프랑스어, 영어, 기하학을 가르쳤다. 이후 그는 평온한 신학교에서 뉴욕의 가장 진보적인 자유주의 교육 실험 학교인 페레르 학교로 자리를 옮기는데 이 학교에서 1898 5 10일 러시아에서 태어난 아이다 카우프만이라는 제자와 사랑에 빠져 교직을 사임하고 그녀와 결혼한다. 이후 4년간 컬럼비아 대학에서 생물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1917년에 철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쳤다. 1914년부터는 뉴욕의 한 장로교회에서 역사와 문학, 철학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이 강의는 이후 13년간 주 2회씩 계속 이어졌다.

1913년부터 이미 ‘문화의 확산’을 생애를 통해 추구해야 할 평생의 가치로 정한 그는 1921년에는 성인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를 세워 철학, 역사, 문학을 가르쳤다. 1926년에 출간된 자신의 저서 '철학 이야기'의 성공으로 1년 후 교직을 떠날 여력이 생긴 듀런트 부부는 가끔씩의 평론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업시간을(매일 8시간에서 14시간)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에 바쳤다. 보다 철저한 준비를 위해 1930년에는 이집트와 근동, 인도, 중국, 일본 등지를 직접 탐방하고 1932년에 다시 일본과 만주, 시베리아, 러시아, 폴란드 등지를 방문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문명 이야기'시리즈의 제1 '동양 문명'(1935)이다. 이후 몇 번인가의 유럽 방문을 거쳐 제2 '그리스 문명'(1939) '카이사르와 그리스도'(1944)가 준비된다. 1948, 터키와 이라크, 이란, 이집트, 유럽 등지에서 체류하며 제4 '신앙의 시대'(1950)를 저술하고, 1951년에는 제5 '르네상스'(1953)를 출간했으며, 1954년부터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독일, 프랑스, 영국에 대한 추가 연구를 시작해 종교 개혁을 새롭게 조망한 제6 '종교 개혁'(1957)을 발표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철학사상에 관한 그의 강의는 수많은 학생들을 철학의 길로 이끌었고, 이후 『철학 이야기』라는 불후의 명저로 출간되며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키며 철학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그 후 50년간 윌 듀런트는 인류의 문명사를 정리하는 작업에 몰두하며 1935년 『동양의 유산』을 시작으로 1975년 발간한 『나폴레옹의 시대』까지 총 11권의 『문명 이야기』 시리즈를 출간하였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바로 이 『문명 이야기』 11권을, 인물 중심으로 압축하여 정수만 모은 책으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경이로운 입문서"라는 평가와 함께 인류 문명의 역사를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엮었다는 점에서 전문가와 일반 독자 모두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이들 저작을 준비하는 데 있어 듀런트 여사의 역할은 매년 그 비중이 더욱 커져 갔으며, 7 '이성의 시대가 시작되다'(1961)에서는 그 기여도가 너무나 커 책 표지에 두 사람의 이름이 공저자로 나란히 오르게 된다. '루이 14세의 시대'(1963) '볼테르의 시대'(1965), '루소와 혁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5년 제11 '나폴레옹의 시대'의 출간을 끝으로 50년에 걸친 이 대작은 완결된다. 에이리얼 듀런트(Arial Durant) 1981 10 25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윌 듀런트도 그로부터 13일 후 11 7일에 96세를 일기로 그녀를 뒤따랐다.

해외저자사전, 2014. 5, 교보문고에서 발췌

2. 마음 속에 들어온 글


2판 서문_ 나의 책을 위한 변명

8. 신학은 부서지고, 정치이론에는 금이 갔다. 발명은 삶과 전쟁을 복잡하게 만들고, 경제적 신조는 정부를 전복하고 세상에 불을 질렀다. 한때 모든 학문을 불러들여 그 도움을 받아 세상의 일관된 이미지를 만들고 매혹적인 선의 그림을 그리던 철학마저도 조정이라는 과제가 자신의 용기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진리의 전선에서 도주했다.  소심하게도 삶의 쟁점과 책임으로부터 몸을 피해 난해하고 좁은 길에 숨어버린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인간의 정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


서론_ 철학의 쓸모에 관하여

24. “삶에는 의미가 있고, 그 의미를 찾는 것이 나의 고기요, 술이다.” – 브라우닝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 또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을 늘 빛이나 불꽃으로 바꾸는 것” – 카라마조프 집안의 형제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명민하게 생각하거나 학파를 새우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지극히 사랑하여 그 가르침에 따라 단순하고, 독립적이고 통 크고, 신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 소로

너희는 먼저 마음에 좋은 것을 구하라. 그러면 나머지는 따라오거나 아니면 없어도 아쉽지 않을 것이다.” – 베이컨

26. 과정을 관찰하고 수단을 구축하는 것은 과학이다. 목적을 비판하고 조정하는 것은 철학이다….

철학이 없는 과학, 관점과 가치판단이 없는 사실은 파괴와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없다. 과학은 우리에게 지식을 주지만, 지혜를 줄 수 있는 것은 철학 뿐이다.

26. 철학은 다섯 가지 연구와 담론 분야, 즉 논리학, 미학, 윤리학, 정치학, 형이상학을 의미하고 아우른다. 논리학은 사고와 조사에서 이상적인 방법을 연구한다. 관찰과 내성, 연역과 귀납, 가설과 실험, 분석과 종합, 이런 것들이 논리학이 이해하고 안내하려 하는 인간 활동의 형태들이다. 미학은 이상적인 형식, 즉 아름다움을 연구한다. 이것은 예술의 철학이다. 윤리학은 이상적인 행동을 연구한다, 소크라테스는 최고의 지식은 선악에 관한 지식, 삶의 지혜에 관한 지식이라고 말했다. 정치학은 이상적인 사회조직을 연구한다(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공직을 차지하고 유지하는 기술이나 과학이 아니다). 군주정치, 귀족정치, 민주정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페미니즘, 이런 것들이 정치철학의 등장인물이다. 마지막으로 형이상학(이것은 매우 골치가 아픈데, 다른 형태의 철학과 달리 이상에 비추어 현실을 조정하려는 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은 모든 사물의 궁극적 실재를 연구한다. 물질’(존재론), ‘정신’(철학적 심리학), 인지와 인식 과정에서 정신물질의 상호관계(인식론) 등의 진정한 최종적 본질을 연구한다. 

그렇군. 친절한 해설에 감사.


1장 플라톤

 

36. 철학은 의심할 때, 특히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믿음, 교조, 이치를 의심할 때 시작된다. 이런 소중한 믿음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확실한 것이 되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혹시 어떤 은밀한 소망이 몰래 그것을 낳은 뒤 욕망에 사상이라는 옷을 입힌 것이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마음이 방향을 거꾸로 틀어 자기 자신을 점검하기 전까지 진짜 철학은 없다.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41. 사람들이 배울 준비가 되기 전에 가르치는 자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어디나 별 차이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을 훈계질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그 내용이 내가 모르는 것,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 때 분노한다.   

 

44.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진 게 있네. 잊지 말고 갚아주겠나? “그 빚은 반드시 갚겠네.” 크리톤이 말했다. “다른 건 없나?” 그 질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옥리가 얼굴을 덮은 것을 걷어냈다. 눈이 움직이지 않았다. 크리톤이 눈과 입을 감기고 닫아주었다.

 

이것이 진실로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지혜롭고, 가장 의롭고, 가장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우리 친구의 마지막이었다.

인류 역사에 기록된 아마도 최초의 사상범. 옥리가 그 의로운 인물을 안타까이 여겨 눈물을 흘리며 형을 집행한 사람.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많이 사랑했나 보다.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기록한 문장이 그림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55. 우민정치는 국가라는 배를 띄우기에는 너무 거친 바다다. 웅변의 바람만 살짝 불어도 물이 일렁여 항로가 틀어진다. 그런 민주정치의 결말은 참주정치나 독재정치다. 군중은 아첨을 사랑하고 꿀에 굶주려 있기 때문에마침내 인민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가장 교활하고 양심 없는 아첨꾼이 최고 권좌에 오른다.

웅변 정도면 열도 안 받는다. 눈물 한 줄기에 우리가 남이가이러면서 결집해주는 이 어마 어마한 사람들, 진짜 더럽게 거친 바다다. 어쨌든 월 듀런트는 정말 문장가구나. 철학서를 이렇게 쓸 수 있다니.


56. 무능하고 부정한 사람이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막고, 공동의 선을 위해 통치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람을 선출하고 준비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정치철학의 과제다.

감사하게 심플한 해설이다.


2장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97. “생명은 자연의 선물이지만, 아름다운 삶은 지혜의 선물” - 그리스의 격언

,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구나.


102. 오늘날 그(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어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어떤 과학에 관해서도 말할 수가 없다. 그런 용어들은 마치 화석처럼 우리 언어의 지층에 박혀 있다. 기능(faculty), 평균(mean), 공지(maxim,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는 삼단논법의 대전제라는 뜻이었다), 범주(category), 에너지(energy), 현실(actuality), 동기(motive), 목적(end), 원리(principle), 형식(form) – 철학적 사고에 불가결한 이런 용어들이 그의 정신에서 만들어졌다.   

106. 그러나 흔히 눈에 띄는 역사의 아이러니대로, 젊은 전사는 자신이 공격하는 늙은 스승의 많은 자질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늘 우리가 비난하는 것을 우리 안에 상당히 갖고 있다. 비슷한 것들을 대조해야만 얻는 것이 있듯이, 오직 비슷한 사람들만 싸우고, 목적이나 믿음의 아주 작은 차이를 두고 가장 혹독한 전쟁이 벌어진다.

증오하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그대로 쓰고 가는 아들처럼, 원수 같던 상사의 지랄을 그대로 재현하는 직원처럼, 내 안의 선임자는 알아차릴 수도 떨궈낼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109. “소크라테스는 인류에게 철학을 주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을 주었다.” – 르낭


118. 만물은 그 질료 또는 원료였던 것으로부터 성장한 형상 또는 실체다. 동시에 이 형상은 더 높은 형상이 자라나는 질료가 될 수 있다…. 질료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형상의 가능성이다. 형상은 질료의 현실태이자 완성된 실재다. 질료는 방해하고, 형상은 건설한다. 형상은 단순히 형태가 아니라 형채를 만들어가는 힘이며, 단순한 질료를 특정한 모양과 목저으로 빚어내는 내적 필연성과 추동력이다. 형상은 질료에 담긴 잠재적 능력의 실현이다. 만물이 존재하는 힘, 뭔가 하고, 뭔가 되려는 힘의 총합이다. 자연은 형상에 의한 질료의 정복이며, 생명이 항상적인 진전이자 승리다.


111. 아리스토텔레스에세 신의 섭리는 자연적인 원인들의 작용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111. 신은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인다. 기계적인 힘으로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포괄적인 동인으로서 움직인다. “신은 사랑 받는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을 움직이듯이 세계를 움직인다.” 신은 자연의 최종원인이며, 사물의 추동력이자 목적이며, 세계의 형상이다…. 신은 순수한 에너지다.


123.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술의 기능은 카타르시스, 즉 정화(淨化).  사회적 제약의 압박으로 우리 안에 축적된 감정이 터져나와 극적 흥분이라는 무해한 형식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그래서 비극은 동정과 공포를 통하여 이런 감정의 적절한 정화를 낳는다.” 카타르시스 이론은 예술의 신비한 힘에 대한 이해가 자라나는, 무한히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사변의 모든 분야에 들어가 손을 대는 것마다 아름답게 꾸미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빛나는 예다.     


126. “사람들이 친구 사이라면 정의 불필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의롭다 해도 우정은 여전히 은혜가 된다.”

친구란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132. 남성은 본디 우월하고 여성은 열등하다. 남성은 지배하고 여성은 지배당한다. 이 원칙은 필연적이며, 모든 인류에게로 확장된다. 여자는 의지가 약하며, 따라서 인격이나 지위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다. 여자의 가장 좋은 조건은 조용한 가정생활이며, 외적 관계에서는 남자의 지배를 받지만, 가사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다.

이런 된장,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살기 참 팍팍한 세상이다그리고 모든 여성이 가사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16년 직장생활을 때려치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큰 공포가 살림이었던 바, 여성문화센터를 찾아가 수납정리과정을 수업으로 듣고 책으로 독파하였으나 나의 살림실력은 여전히 여대생 기숙사 수준이라는. 살림은 책으로 배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사에 대한 선천적 재능 따위, 여자라고 자연 탑재된 것 아니란 말이요, 아리스토텔레스 선생.


134. “사람들이 개인 소유는 유지하면서도 분별력있게 자신의 소유를 개방하여 타인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시킬 수 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리스토테레스 선생은 어렵게 살아본 적이 없었나 보다. 여튼 뭔가 심각하게 모자라 본 적이 없으니 이런 소리 하는 거 아녀? 자신의 소유를 분별력있게(?) 타인과 공유하게 만들 수 있는 교육이나 국가가 존재한 적이 있었나? 아니라고 본다.  


135. “인간은 완전해지면 동물 가운데 최고가 된다. 그러나 고립될 경우에는 최악이 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회를 발전시킨다. 사회를 통해 지성을 발전시킨다. 지성을 통해 질서를 발전시킨다. 질서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킨다. 그런 질서 잡힌 국가에서 개인은 수많은 기회를 얻는다. 혼자 살면 결코 얻을 수 없는 발전의 길들이 열리는 것이다. 따라서 혼자 살려면 동물이 되거나 신이 되어야 한다.”    


136. 독재적인 통치자라면 특히 신들을 섬기는 데 열심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 통치자가 신앙이 깊어 신들을 숭배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그의 손에 부당한 일을 당할 것을 덜 두려워하고 신들이 그의 편에서 싸워 줄 것이나 생각하여 그에 반대한 음모를 꾸미는 일도 줄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를 앞세우는 지도자는 위험하다. 정치만으로 승부할 수 없는 이들이거나, 그럴 생각이 없는 인간들일 확률이 높음.


3
장 프랜시스 베이컨

168. 운문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언어가 최고이듯이, 산문에서는 베이컨의 언어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뤠에? 이것은 몰랐던 사실. 베이컨을 읽어야겠구나. 베이컨의 수상록에 도전!


170. 본성은 종종 감추어진다. 가끔 극복되기도 한다. 그런 없앨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억지로 없애려 하면 본성은 더 거세게 돌아온다. 학설과 담론은 본성은 덜 끈덕지게 만들지만, 본성을 바꾸거나 굴복시키는 것은 습관 뿐이다.   

역시, 습관 뿐이구나, 본능을 제어하는 것은. 이 게으름병과 마감병이 회사를 그만두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악화일로다. 새벽 5시 기상을, 분명히 1년 전만 해도 어느 정도 가능했었는데 이제는 영영 물 건너간 것처럼 실행을 안하고 있으니어떻게 건널 것인가. 아니지, 지속할 것인가. 오직 습관 뿐?


171. 사람은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건강에 이르는 한가지 왕도는 정원이다. 베이컨은 야훼 하느님께서는 먼저 동산을 마련하시고…”라는 <창세기)저자의 말에도 동의하고, 우리는 뒷마당을 가꾸어야 한다는 볼테르의 말에도 동의한다.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카렐 차페크)의 즐거움을 기억한다. 반드시 정원을 가지리라. 오십이 되기 전에, 정원이 있는 집에서 나는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리라.


171. 괴테와 마찬가지로 베이컨도 행동에 이르지 않는 지식을 경멸한다. “인간 삶의 극장에서는 오직 신과 천사 만이 구경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베이컨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뛰어들라고 준엄하게 꾸짖는 스승이다.


174. 최선을 선택하면 습관이 그 선택을 기쁘고 편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습관은 인간 삶의 최고 지휘권자이니까.

주옥 같다! 이 문장 외워두자. 습관은 인간 삶의 최고 지휘권자.


179.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 것의 이름이다.” “우주에서 우연이란 인간에게서 의지와 같다.”


181. 말의 자유와 침묵 사이에서 신중하게 중용과 절제를 지키는 것…. 그러나 너무 착하거나 선량한 태도로 자신의 무장을 해제하면 뜻을 제대로 표현하고 권리를 지미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태도를 보이면 상처 입고 비난을 당하기 쉽다. 따라서가끔 꿀이 있을 뿐 아니라 가시도 돋친, 자유롭고 관대한 정신의 불꽃을 뿜을 필요가 있다.

베이컨이 처세학에 있어서도 지극히 실용적이구나. 윤리학에 더 신경쓰는 사람이아면 처세학 따위를 주장하지도 않았겠지.   


182. 사물의 원인을 배우고

모든 두려움, 무정한 운명, 탐욕의 지옥에서 벌어지는

시끄러운 갈등을 짓밟은 자는 행복하도다. (베르길리우스)

 

185. “고대 황금기의 지혜로운 자들은 늘 국가가 법에 너무 바쁘고 교육이라는 면에는 너무 태만하다고 불평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188. 동굴의 우상

모든 사람에게는 그 나름의 동굴이나 굴이 있는데, 이것이 자연의 빛을 굴절시키거나 변색시킬 수 있다. 이것은 본성과 양육, 그리고 신체와 정신의 조건이나 분위기에 읳 형성된 그 사람의 성격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정신은 분석적으로 타고나. 어디에서나 차이를 본다. 어떤 정신은 종합적으로 타고나 어디에서나 닮은 점을 본다. 그래서 과학자와 화가도 있고, 시인과 철학자도 있는 것이다.

 

, 나는 어디에서나 닮은 점을 보는 사람인 것 같다. 여튼 동굴의 우상을 처음 이해했다. 편안한 설명.


203. 창조주는 우리에게 온 세상을 감당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세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영혼을 주셨다.”

 

204. 속임수, 거짓말, 아첨, 뻔뻔스러움,

이것이 궁정에서 사랑받는 네 가지 방법,

그대가 이 네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의 노예도 아니라면,

물러나라. 선량한 피어스여! 집에 가라, 존 치즈여!

 

조직은 어디나 똑같이 돌아가는 모양이다. 궁정이든, 회사든, 청와대건 뭐가 틀리겠어. 그런데 저 네 가지의 방법에 어느 하나라도 내가 능하다면, 기꺼이 또 그리 하지 않을까? 그것도 재능이라며. 정치를 못해서 스트레스 받았지, 정치를 안 하려고 했던 것도, 초연했던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해진다.

 

206.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에 몰두하다가, 말하자면 전장에서 죽었다. 그는 수필 죽음에 관하여에서 열심히 일하다 죽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것은 뜨거운 피가 솟구치는 부상을 입는 것과 같을 터인데, 그런 부상을 당한 사람은 그 순간에는 아픔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카이사르처럼 그도 원하는 대로 되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이 생각난다. 그가 쓴 서문에서 느꼈던 단호함과 비장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206. “내 영혼은 신에게 물려주겠다. 몸은 눈에 띄지 않게 묻어라. 내 이름은 다음 시대와 외국에 물려주겠다. “

 

, 이런 당당함, 이런 인물을 가졌던 시대는 행복하다.

 

4장 스피노자

207. 그는 어떤 것, 그 거처는 석양의 빛이먀, 동근 바다며, 살아있는 공기며, 파란 하늘이며, 인간의 정신 속이다. 어떤 움직임과 영, 이것이 모든 생각하는 것들, 모든 생각의 모든 대상을 밀고 나가며, 모든 것을 통과하여 나간다.

 

214. 철학의 목표는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 물질 속에서 정신, 정신 속에서 물질을 인식하는 것이다. 대립물과 모순이 만나고 합쳐지는 종합을 찾는 것이다. 지적인 면에서 신의 사랑과 등가라 할 수 있는 보편적 통일성의 최고 지식에 이르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 하나하나가 스피노자 사상의 내밀한 구조를 구성했다.

 

221. “가끔 나의 타고난 이해력으로 거두어들이는 열매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나는 이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것을 모으면서 행복했고, 한숨을 쉬고 슬퍼하는 대신 평화롭고 고요하고 기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229. “기독교 신앙즉 사랑, 기쁨, 평화, 절제, 만인에 대한 자비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증오에 찬 적대감을 그러내며 싸우고 매일 서로에게 신랄한 증오심을 보여주는 바람에, 나는 그들이 고백하는 미덕이 아니라 그런 겉모습이 그들의 신앙에서 가장 손쉬운 판별 기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233. <윤리학>에서 스피노자는 처음 두 가지 형태의 지식을 하나로 줄이고, 직관적 지식은 사물을그 영원한 측면과 관계에서 (sub specie dternitatis)’ 지각하는 것단 한 구절로 철학이 정의된 셈이다. – 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직관적 지식 (scientia intuitive)은 사물과 사건의 배후에서 법칙과 영원한 관계를 찾아내려 한다. 여기에서 스피노자의 매우 근본적인 구분 (그의 체제 전체의 기초), 즉 사물과 사건들의세계를 가리키는일시적 질서’, 그리고 법칙과 구조의 세계를 가리키는영원한 질서의 구분이 나온다.

 

235. 스피노자에게는 단 하나의 강박적 욕망밖에 없었다. 세상의 견딜 수 없는 혼돈을 통일과 질서로 환원하고 싶다는 것. 그에게는 남방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보다는 북방인의 진리에 대한 굶주림이 강했다. 그에게 예술가적인 면이 있다면 순수하게 건축가적인 면으로, 완벽한 대칭과 형식을 갖춘 사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236. 스피노자는 자신의 책2부에서 이렇게 말한다. “틀림없이 여기서 독자는 혼란을 느끼고 많은 것들 것 돌이켜보느라 멈출 것이다. 하지만 간청하거니와, 나와 함께 조금씩 나아가면서 끝까지 다 읽기 전에는 이것들에 관하여 어떤 판단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그러나 이 책을 한번에 다 읽지는 말고, 여러 번 자리에 앉아 조금씩 읽어라. 그렇게 해서 다 읽었으면 이제 비로소 이해의 첫 단계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라. 그때부터 주해서, 예를 들어 폴복의 <스피노자>나 마티노의 <스피노자 연구>를 읽어라. 둘 다 읽으면 더 좋다. 마지막으로 <윤리학>을 다시 읽어라. 그러면 완전히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두 번째로 다 읽으면 철학을 영원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238. 스피노자는 자연과 실체와 신의 동일성을 이런 의미에서는 부정하고, 앞서 말했던 의미에서는 긍정한다. 실체와 양태, 영원한 질서와 일시적 질서, 능동적 자연과 수동적 자연, 신과 세계이 모두가 스피노자에게는 서로 일치하여 동의어로 사용할 수 있는 이분법의 두 항인 것이다.

 

239. “나에게 신의 도움이라는 말은 고정되어 변함없는 자연질서, 또는 자연의 사건들을 묶는 사슬이라는 뜻이다.” 자연의 영원한 법칙과 신의 영원한 명령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삼각형의 본질로부터 영원에서 영원에 이르기까지 세 각은 두 개의 직각의 합과 같다는 결론이 나오듯이, 이와 똑같은 필연성에 의해, 똑 같은 방식으로, 신의 무한한 본성으로부터 만물이 나온다.

 

240. 철학에서 가장 큰 오류의 뿌리는 우리 인간의 목적, 기준, 선호를 객관적 우주에 투사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악의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욥이 배운 교훈, 즉 신은 우리의 작은 선과 악을 넘어서 있다는 교훈을 잊고 삶의 불행을 신의 선과 조화시키려고 애쓴다. 그러나 선과 악은 인간과 관련되어 있고, 종종 개인적 기호와 목적에 따라 달라지며, 개인들이 하루살이에 불과한 우주, ‘움직이는 손가락이 종족의 역사마저 물에 써서 흘려버리는 우주에서는 아무런 유효성이 없다.

 

241. 악과 선은 편견으로, 영원한 실재가 이것을 인식할 수는 없다. “세계는 무한한 것의 완전한 본질을 보여주지, 인간의 특정한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옳다.” 미와 추도 선과 악이나 마찬가지다. 미와 추 또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으로, 우주를 향해 던지면 받아들여지지 않고 던진 사람을 향해 돌아올 것이다.

 

242. 이런 의미에서 신유동하는 사물의 배후에 있는 보편적 과정과 영원한 실재에게는 정신도 있고 몸도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정신도 물질도 신은 아니다. 세계의 이중의 역사를 이루는 정신적 과정과 분자적 과정, 이 두 가지, 그리고 그 원인과 법칙이 신이다.

 

245. “본래대로라면 모든 것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나의 사물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들이는 노력이 바로 사물의 실제 본질이다.

 

247. 스피노자 윤리학의 탁월한 점은, 스스로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적대적인 철학들을 화해시켜 하나의 조화로운 통일체로 직조해내고, 그 결과 우리에게 근대 사상의 최고 성과라고 할 만한 도덕 체계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248. 스피노자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보다 관대하다. 스피노자는 자기중심주의가 자기보존이라는 지고의 본능이 도출한 불가피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더 큰 선을 얻는다는 희망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에게 선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스피노자에게는 이것이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성은 본성에 어긋나는 것을 절대 요구하지 않으므로 사람들 각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유용한 것을 구하고, 무엇이든 진정으로 완벽에 더 다가간 상태로 이끌어주는 대상을 원하는 것을 인정한다. 또 각자가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인정한다.”

 

249. 스피노자는 니체와 마찬가지로 겸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겸손은 음모가의 위선이거나 노에의 소심함이다. 겸손은 능력의 부재를 뜻한다. 스피노자에게 덕이란 재능과 능력의 형식이다. 따라서 양심의 가책도 덕이라기 보다는 결함이다. “회개하는 사람은 두 배로 불행하고, 이중으로 약하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니체처럼 겸손을 비난하느라 긴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는다. ‘겸손은 아주 드물기때문이다. 키케로가 말했듯이, 겸손을 찬양하는 책을 쓰는 철학자들도 잊지 않고 속표지에 자기 이름을 적어놓지 않는가.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은 오만한 사람에 가장 가깝다.” 스피노자는 그렇게 말한다. (의식적인 덕은 모름지기 은밀한 악을 감추거나 교정하려는 노력이라는 정신분석가들의 지론을 이런 식으로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252. 정신이 이성의 명령에 따라 어떤 것을 생각하는 한, 현재, 과거, 미래 어디에 속한 것을 생각하든 그 영향은 동일한 것이다. 우리는 상상과 이성을 이용해 경험을 예측으로 바꿀 수 있다. 과거의 노예에서 벗어나 미래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

 

253. 우리는 인간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자유를 성취한다. 감정의 수동성은인간의 굴레이며, 이성의 적극성은 인간의 자유다. 자유란 과정의 인과법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 감정이나 충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유는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조정되지 않고 완전하지 않은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만큼만 자유롭다. 초인이 되는 것은 사회적 정의와 편의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본능의 개인주주적 성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런 완전성이나 성실성에서 지혜로운 자의 평정이 나온다.

 

253. 위대해지는 것은 인간 위에 올라서서 남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불균등한 욕망의 편파성과 무용성 위에 올라서서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다.

 

254. 플라톤은 <국가>에서 똑 같은 생각을 아름다운 말로 표현했다. “진정한 존재에 정신을 집중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자잘한 일을 내려다볼 시간이 없고, 질투와 적의에 사로잡혀 그들과 맞서 싸울 여유가 없다. 그의 눈은 늘 고정된 불변의 원리를 향한다. 그는 이 원리들이 서로 해를 주지도, 해를 입지도 않고 모두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본다. 그는 이것을 모방하며, 여기에 최대한 자신을 맞춘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필연적인 것에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운명애 (amor fati)가 내 본성의 핵심이다.”

 

255. 자유로운 사람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한 명상이다. 이 철학은 넓은 시야로 우리의 안달 난 에고를 진정시킨다. 또 우리의 목적들을 제약하는 한계를 받아들이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체념이나 동향에서 말하는 무관심한 수동성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또 모든 지혜와 모든 힘의 불가결한 기초이기도 하다.

 

256. 우리는 법칙과 원인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고, 신의 일부다. 우리는 우리보다 큰 존재, 죽어가는 우리와는 달리 끝이 없는 존재의 스쳐가는 형태다. 우리 몸은 인류라는 몸의 세포이며, 인류는 생명의 드라마 가운데 한 사건이다. 우리 정신은 영원한 빛의 순간적인 반짝임이다. “우리의 정신은 이해를 하고 있는 한 사고의 영원한 양식이며, 이것은 다른 양식의 사고에 의해 결정되고, 이것은 또 다른 양식의 사고에 의해 결정되며, 이런 식으로 무한히 이어진다. 결국 이 모두가 동시에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지성을 이룬다.” 이러한 개인과 만유의 범신론적 결합 속에서 다시 동양이 등장한다.

 

257. “덕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덕 자체가 축복이다. “ 어쩌면 이와 마찬가지로, 명료한 사고에 대한 보답이 불멸이 아니라, 명료한 생각 자체가 불멸인지도 모른다. 명료한 생각은 과거를 현재로 실어 나르고 미래로 뻗어 나가면서 시간의 한계와 비좁음 너머 변화의 만화경 뒤에 영원히 존재하는 시야를 포착한다. 그런 생각은 불멸이다. 모든 진리는 영구적인 창조물이자 인간이 영원히 획득한 것의 일부로서 인간에게 영원히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258. 이렇게 나는 감정보다 우위에 있는 정신의 능력, 또는 정신의 자유에 관해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지혜로운 자가 단지 욕정에만 이끌리는 무지한 자보다 얼마나 앞서 있으며 얼마나 강한지 분명해졌을 것이다. 무지한 사람은 외적인 원인 때문에 여러 가지로 흥분할 뿐 아니라 정신의 진정한 만족을 한 가지도 누리지 못한다. 더욱이 그는 자신, , 사물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며, 수동적인 상태를 멈추는 순간에 존재로 멈추어버린다. 반면 지혜로운 자는, 그렇게 생각될 만한 사람이라면, 정신에 동요가 없다. 그는 어떤 영원한 필연성에 의해 자신을 의식하고, 신을 의식하고, 사물을 의식한다. 그는 절대로 존재를 멈추지 않으며, 늘 정신의 만족을 누린다. 여기에 이르도록 내가 안내한 길이 비록 매우 어렵다 해도 그 길을 발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좀처럼 발견되지 않으니 매우 어려운 것은 분명한 듯하다. 사실 구원이 바로 가까이에 있고 어려움 없이 발견될 수 있다면 어떻게 모두가 이런 식으로 구원을 내팽개치다시피 살고 있겠는가? 모든 탁월한 것들은 귀한 만큼이나 어렵다.

 

262. 국가의 목적은 이성적 존재를 야만적 짐승이나 기계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몸과 정신이 안전하게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유로운 이성에 따라 살면서 이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며, 증오와 분노와 간계에 힘을 낭비하거나 서로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목적은 진정으로 자유인 것이다.

 

262.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 속성상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관점이 법을 어기는 범죄로 간주될 때는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한다. …… 그런 상황에서는 법을 혐오하는 것, 정부에 반대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수치가 아니라 매우 명예로운 일로 생각한다.

 

264. 압제자의 사악한 비밀이 시민에게 감추어지느니, 차라리 정당한 방침이 적에게 알려지는 편이 낫다. 국사를 은밀히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은 완전히 자신들의 권위에 따라 일을 처리하려 한다. 그들은 전시에 적을 물리칠 음모를 짜듯이, 평화 시에 시민을 물리칠 음모를 짠다.

 

그렇지. 스피노자가 정치철학에 대해 좀 더 파고들었다면 더 엄청난 일들을 해냈을 것 같다. 

 

 

5장 볼테르와 프랑스 계몽주의

 

공기와 물로 빚어진 피조물로서, 그는 지금까지 살았던 누구보다 쉽게 흥분한다. 그에게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고동치는 원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정신적 기제가 그보다 섬세한 사람은 없으며, 그 정신의 평형은 누구보다 빨리 바뀌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 정확하다.

 

280. 그는 철학을 하기 전에 우선 살고 봐야 한다는 고전적 격언을 존중했다.

 

볼테르, 내 과인 것 같다 맘에 들었스

 

284. 이 통신은 영국의 정치적 자유와 지적 독립성을 프랑스의 압제나 굴레와 비교했다. 또 모든 질문과 의심에 대한 답으로 계속 바스티유만 제시하는 프랑스의 게으른 귀족과 십일조를 빨아먹는 성직자들을 비난했다. 나아가 중간계급에게 영국의 중간계급처럼 국가에서 합당한 자리로 나아가라고 촉구했다. 스스로 알지도 못했고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이 통신은 혁명을 알리는 닭의 첫 울음소리가 되었다.

 

286. 볼테르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이 우리를 약간 경박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척 비참하게 살아갈 것이다. 사람은 경박해질 수 있기에 목을 매달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는 까칠한 칼라일 같은 면이 전혀 없었다. “때로는 멍청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웃음으로 주름살을 펴지 못하는 철학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나는 엄숙을 병으로 봅니다.”

 

저도요!!! 동의합니다! 남편이 반드시 캉디드를 읽어보라한다. 반할 것이라며.

 

300. 볼테르가 구한 것은 유럽 문명의 역사를 통틀어서 하나의 실처럼 꿸 수 있는 통일의 원리였다. 그는 이 실이 문화의 역사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신의 역사는 왕들이 아니라 운동, , 대중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족이 아니라 인류를 다루고, 전쟁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행군을 다루어야 했다.

 

볼테르, 점점 맘에 든다.

 

300. 역사에서 왕을 거부하는 것은 정부에서 왕을 거부한 민주적 봉기의 일부였다. <도덕론>이 부르봉 왕조를 왕좌에서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306. 그렇다면 가장 광대한 정신의 평결은 무엇인가? 침묵이다. 운명의 책은 우리에게 닫혀 있다. 인간은 인간의 연구로는 도무지 알 수 없고,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인간은 진흙밭에서 괴로워하는 원자이며, 죽음에 잡아먹히고, 운명에 조롱당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원자다. 생각의 안내를 받아 멀리 보는 눈으로 희미한 별들을 측량해왔다. 우리의 존재는 무한과 섞인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이 세상, 이 자만과 오류의 극장에서는 행복을 말하는 병든 바보들이 가득하다.

 

310. 팡글로스는 가끔 캉디드에게 말했다.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 최선인 이 세계에서는 사건들이 연결되네. 자네가 웅장한 성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 종교재판소에 끌려가지 않았다면, 아메리카로 건너가지 않았다면, 금을 다 잃지 않았다면 …… 자네는 여기에서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 열매를 먹고 있지 않을 걸세” “다 좋은 거군요.” 캉디드가 대답했다. “어서 밭이나 갑시다.”

 

313. 교회는 처음 나온 몇 권의 판매를 금지했다. 반대가 심각해지자 동지들은 디드로를 버렸다. 그러나 그는 분노에서 힘을 얻어 더 열심히 일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이성에 반대하는 신학자들의 이런 막연한 연설보다 품위없는 일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에 들어가는 소떼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기독교의 품에 안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14. 확신을 갖는 사람은 사기꾼뿐이다. 우리는 제1원리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팔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도 모르면서 신과 천사와 정신을 정의하는 것, 그리고 신이 세상을 만든 이유를 안다는 것은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일이다. 의심은 별로 유쾌한 상태는 아니지만, 확신은 확실히 우스꽝스러운 상태다.

 

318. “오라, 용감한 디드로여, 두려움을 모르는 달랑베르여, 동맹을 맺어라. …… 광신도와 무뢰한을 압도하고, 재미없는 선언, 가련한 궤변, 거짓말하는 역사 …… 수많은 부조리를 부수어라. 분별력 있는 사람이 분별력 없는 사람에게 굴복하게 하지 마라. 지금 태어나고 있는 세대는 우리 덕분에 이성과 자유를 얻으리라.”

 

323. 미신은 지고의 존재를 순수하게 섬기는 마음의 가장 잔인한 적이다. 늘 자기 어머니의 가슴을 찢어왔던 이 괴물을 혐오하자. 미신과 싸우는 사람들은 인류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들이다. 미신은 종교를 끌어안아 인류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들이다. 미신은 종교를 끌어안아 숨을 막는 뱀이다. 우리는 뱀이 삼키려는 어미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뱀의 머리를 부수어야 한다.

 

332. 인간은 야만보다는 문명 속에서 훨씬 낫게 살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루소에게 인간은 천성적으로 맹수이며, 문명화된 사회란 이 짐승을 사슬로 묶고, 야만성을 누그러뜨리고, 사회 질서를 통하여 지성과 그 기쁨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열어가는 사회를 뜻한다고 말한다.

 

333. 즉 본능으로 낡은 것을 부수어야 하지만, 오직 지성만이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몰론 급진주의 안에는 반동의 싸앗들이 풍부하게 뿌려져 있었다. 본능과 감정은 궁극적으로 낡은 과거에 충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의 산물이며, 판에 박힌 방식으로 과거에 적용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카타르시스가 지나가면 심장의 요구가 초자연적 종교와좋았던 옛 시절의 일상과 평화를 다시 불러내기 마련이다.

 334. 내가 베푸는 작은 선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 나는 공격을 당하면 악마처럼 싸운다. 나는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밑바탕은 선한 악마이며, 웃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지, 웃음으로. 언제든 웃음이 이긴다

 

5, 칸트

 

355. 칸트는 마지막에 한계를 보여주려 할 때를 제외하면순수이성을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왜곡시키는 감각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순한 지식보다 우월한 것으로 찬양하려 한다. ‘순수이성은 우리 감각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 경험에서 독립된 인식을 뜻하기 때문이다. 정신의 타고난 본성과 구조에 의해 우리에게 속한 지식인 셈이다.

 

360. 감각 경험이나 관념은 단지 경험이 시간이나 공간에서 인접해 있다거나 비슷하다거나 최근의 것이라거나 빈번하다거나 강렬하다고 해서 연합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연합은 무엇보다도 정신의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감각이나 사고는 하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부름을 기다리며, 우리가 요구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이들을 선별하고 지휘하는 작용이 바로 이들을 사용하는 주인인 것이다. 감각 경험과 관념 위에 정신이 있는 것이다.

 

370. 우리의 행동 세계와 관련된 도덕 의식이 감각 현상을 다루고자 하는 한 가지 목적으로 계발된 이론적 논리학보다 우선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은 물자체의 배후에 정의로운 신이 존재한다고 자유롭게 믿도록 허락하며, 우리의 도덕 의식은 우리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명령한다. 루소가 옳았다. 심장의 느낌은 머리의 논리보다 위에 있다. 파스칼이 옳았다. 심장은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고, 머리는 이것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372. 자연의 만은 대상이 그런 아름다움, 그런 대칭과 통일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초자연적 설계라는 관념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칸트는 자연에는 낭비와 혼돈, 쓸모없는 반복과 증식의 에도 많다고 이야기한다. 자연은 생명을 보존하지만, 얼마나 많은 고통과 죽음을 대가로 치르는가! 따라서 외적 설계라는 겉모습은 섭리의 결정적 증거가 아니다. 그 관념을 너무 자주 사용하는 신학자들은 그것을 버려야 하고, 그것을 버린 과학자들은 사용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가 절대적 목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을 어떤 외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그가 가진 존엄을 위반하는 범죄다.” 이는 종교를 위선적 소극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필수적인 정언적 명령의 핵심이기도 하다. 따라서 칸트는 평등을 요구한다. 능력의 평등이 아니라 능력을 계발하고 적용할 기회의 평등이다.

 

392. 갈등과 악이 단순히 부정적인 공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지혜의 관점에서 보자면 완성과 선을 향한 무대다. 갈등은 성장의 법칙이다.

 

7장 쇼펜하우어

 

397. 쇼펜하우어 덕분에 우리의 은밀한 심장이 드러났다. 그는 욕망이 철학의 원리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사고가 비인격적 사건들의 추상적 계산이 아니라 행동과 욕망의 유연한 도구라는 것을 이해하는 길을 닦아놓았다. 그는 천재의 필요성과 예술의 가치를 우리에게 다시 가르쳐주었다. 모든 위대한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그는 다시 한번 영웅을 고귀하게 섬기라고 설교 했다.

 

402. 유럽의 혼돈은 우주의 혼돈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며, 어차피 신의 질서는 없고 천국의 희망도 없으며, 만일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눈이 멀었으며 지구는 악으로 덮혀 있다는 것이었다. 바이런, 하이네, 레르몬토프, 레오파르디, 그리고 우리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403.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1788년생인 바이런도 어머니와의 관계가 이와 비슷했다. 이 두 사람은 이런 환경 때문에라도 비관주의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남자, 더 심한 경우 어머니의 증오를 아는 남자는 세상에 매혹될 이유가 없는 법이다.

 

404. 그에게는 어머니도, 아내도, 자식도, 가족도, 조국도 없었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였으며, 친구 한 명 없었다. 하나라도 있는 것과 하나도 없는 것 사이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다.”

 

410. “겸손이란 위선적 자기비하에 불과하며, 질투로 가득 찬 세상에서 탁월함과 장점이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서 용서를 얻고자 하는 수단이다.” “겸손이 미덕이 된다면 그것은 바보에게 아주 유리한 상황임이 틀림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기가 바보인 것처럼 이야기를 할 테니 말이다

 

418. 재생산은 모든 유기체의 궁극적 목적이자 가장 강한 본능이다. 그렇게 해야만 의지가 죽음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재생산의 의지는 지식이나 사고가 거의 통제할 수 없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심지어 철학자도 가끔 자식을 둔다.

 

421. 사랑은 자연의 기만행위이므로 결혼은 사랑의 소모이며, 환멸을 낳을 수밖에 없다. 오직 철학자만이 결혼으로 행복할 수 있지만, 철학자들은 결혼하지 않는다.

 

432. “하나의 현상적 존재를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자살은 헛되고 어리석은 행동이다. 물자체, 생명, 전체적 의지는 그것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잠시 무지개를 지탱하는 물방울들이 금세 떨어지더라도 무지개 자체는 버티는 것처럼.”

 

434. 첫 번재 조언은 책보다 삶이 먼저라는 것이고, 두 번째 조언은 주석보다 본문이 먼저라는 것이다. 해설자와 비평가보다는 저자를 읽어라. “오직 저자에게서만 철학적 사고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철학에 끌린다고 느끼는 사람은 저자 자신의 저작이라는 고요한 성소에서 불멸의 스승을 찾아야 한다천재의 작품 하나는 주석 1000개의 가치가 있다.

 

438. 예술 작품은 예술이 표현하는 대상이 속한 집단의 플라톤적 이데아, 즉 보편적인 것을 보여주는 만큼 성공을 거둔다. 따라서 한 인물의 초상은 사진처럼 충실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그 인물을 통해 인간의 어떤 핵심적이거나 보편적인 특질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442. 불교는 기독교보다 심오하다. 의지의 파괴가 종교의 모든 것이며, 니르바나가 모든 개인 발달의 목표라고 설교하기 때문이다. 힌두교도는 유럽의 사상가들보다 생각이 깊다. 그들의 세계 해석이 외적이고 지적이지 않고 내적이고 직관적이기 때문이다.

 

7. 죽음의 지혜

 

454. 쇼펜하우어는 과장은 있었지만 천재의 필요성과 예술의 가치를 우리에게 다시 가르쳐 주었다. 그는 궁극적 선은 아름다움이며, 궁극적 기쁨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임을 알았다.

 

8장 허버트 스펜서

 

455. 그는 자신의 시대를 요약했는데, 단테 이래로 어떤 시대를 요약한 사람은 스펜서 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대가다운 솜씨로 방대한 지식 영역을 조정하는 일을 완수했기에 그 성취 앞에서는 비판하기가 부끄러워져서 입을 다물 지경이다. 우리는 지금 그의 노력과 노고가 밀어준 덕분에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 우리가 그보다 높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가 우리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482. 철학자들은 부모가 되기를 기피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반면 여자의 경우 어머니가 되면 보통 지적 활동이 축소된다. 어쩌면 여자의 사춘기가 남자보다 짧은 것도 여자가 더 일찍 재생산에 희생되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런가…? 왠지 그런 것 같다

 

 

485. 본능이 반응하는 관계는 비교적 판에 박힌 단순한 것인 반면, 이성이 대응하는 관계는 비교적 새롭고 복잡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성적인 행동이란 단지 어떤 상황에서 다른 본능적 반응들과 싸워서 살아남은 특정한 본능적 반응들에 불과하다. ‘숙고란 경쟁하는 충동들이 서로 죽이는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밑바닥에서는 이성과 본능, 정신과 생명이 하나다.

 

494. 그는 인간들이 그렇게 민주적인 산업 체계를 능률적으로 운영할 만큼 정직하고 유능한지 의심하지만, 그렇게 노력하는 데에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는 산업을 절대적 주인들이 지휘하지 않는 시대, 사람들이 쓰레기 생산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 않는 시대를 예측한다.

그 세상 언제 오나

 

502. 아마 이기주의는 계속해서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사실 그러는 쪽이 바람직한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익보다 남들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예의와 겸양으로 인한 혼돈이 나타날 것이다. 어쩌면사회적 조건이 규정하는 한계 내에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전체의 행복을 최대로 달성하는 첫 번째 필요조건일지도 모른다.”

 

509. 그는 강렬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짜증을 부릴 정도로 남의 간섭을 싫어했다. 그는 모든 새로운 입법 행위를 개인적 자유에 대한 공격으로 보았다.

 

9. 프리드리히 니체

 

513. 나는 그곳에 앉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다. 선과 악을 넘어서서 가끔은 빛을, 또 가끔은 어둠을 즐겼다. 오직 낮, 호수, 정오, 끝없는 시간만 있었다. 나의 친구여, 그때 갑자기 하나가 둘이 되었고, 차라투스트라가 내 옆을 지나갔다.

 

521. 니체는 전선으로 가는 길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기병대가 화려한 모습으로 떠들썩하게 도시를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그의 철학 전체의 씨앗이 되는 인식, 비전이 찾아왔다고 니체는 말한다. “나는 처음으로 가장 강하고 가장 높은삶의 의지는 비참한 생존 투쟁에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전쟁의 의지’, ‘권력의지’, ‘제압하려는 의지로 표현된다고 느꼈다.”

 

530. 또 여기에서 더 강한 의지, 죽음과의 싸움에서 태어난 의지, 삶의 씁쓸함과 고통속에서도 달콤함을 느끼며네 라고 말하기가 나왔다. 또 여기에서 자연의 한계와 인간의 운명을 스피노자처럼 명랑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로 올라서려는 애처로운 노력이 나왔을 것이다. “위대함을 보여주는 나의 공신은 운명애 (amor fati). …… 운명애는 모든 필연적인 것을 감당할 뿐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행동에 옮기기는 무척 어렵다.

 

536. “네 능력을 넘어선 것은 바라지 마라. …… 네 능력을 넘어선 덕을 가지려 하지 마라. 너 자신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마라.” 오직 초인만이 아는 행복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의 최대 목표는 일이다.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짓을 오래 전에 중단했다. 지금 나는 나의 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542. 철학은 표현하고 찬양하고자 하는 것이 상승하는 삶이냐, 하강하는 삶이냐에 따라 참이 되기도 하고 거짓이 되기도 한다. 퇴폐주의자는 말한다. “인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차라리 그가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라고 말하게 하라. 삶의 모든 영웅적 가치가 쇠퇴하는 것이 허용되고, 민주주의즉 모든 위인에 대한 불신 10년마다 또 다른 민족을 파멸로 몰아넣는 상황에서 어떻게 삶이 살 가치가 있겠는가?

 

547. 에너지, 지성, 자부심이것이 초인을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혼란스러운 욕망을 재료로 개성의 힘을 빚어내는 어떤 위대한 목적이 선별하고 통일할 때에만 열정은 권력이 된다. “자신의 식물을 기르는 원예사가 아니라 그 밑에 깔린 흙이 되는 사상가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자신의 충동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약한 자다. 억제할 힘이 없는 자이고, 퇴폐주의자다. 자신의 규율을 잡는 것그것이 최고다. “단순히 대중의 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자신에게 관대하지만 않으면 된다.” 남들에게도 가혹하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가혹할 수 있는 목표를 가지기만 하면 된다. 친구를 배신하는 것 외에 거의 어떤 짓이든 하겠다고 결심할 만한 목표를 가지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고귀함의 궁극적 표지이며, 초인의 최종적 공식이다.

 

10장 현대 유럽 철학자들 - 베르그송, 그로체, 버트런드 러셀

 

573. 베르그송은 인간의 가슴에서 영원히 솟아오르는 희망을 방어하러 나섰기 때문에 일찌감치 크나큰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은 철학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도 불멸과 신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쁘고 감사했다. 베르그송의 강의실은 자신의 마음속의 욕망이 그런 박식한 웅변으로 뒷받침되는 것을 기뻐한 화려한 숙녀들의 살롱이 되었다

 

1. 앙리 베르그송

 

577. 그러나 너무 많이 알면 회의주의에 빠지기 마련이다. 젊은 시절 독실했던 사람은 배교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젊은 시절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늙어서 성자가 된다.

 

579. 자유의지는 의식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안다는 뜻이다.

 

590. 이 신은 쉼 없는 생명, 행동, 자유다. 이렇게 생각하면 창조는 신비가 아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할 때,” 의식적으로 행동을 선택하고 삶을 계획할 때, “우리 내부에서 창조를 경험한다. 우리의 투쟁과 고난, 우리의 야망과 좌절, 현재보다 더 나아지고 더 강해지고자 하는 우리의 갈망은 우리 내부의생명의 약진’, 즉 우리의 성장을 이끌고 이 방황하는 행성을 끝없는 창조의 무대로 바꾸어놓은 생명의 충동의 목소리이자 흐름이다.

 

596. 베르그송 이후 우리는 세계를 우리 자신의 독창적인 힘들의 무대이자 재료로 보게 되었다. 베르기송 이전에 우리는 거대한, 죽은 기계의 톱니 바퀴였다. 이제 우리는 얼마든지 창조의 드라마에서 우리의 역할을 써나갈 수 있다.

 

2. 베네데토 그로체

 

604. 상상은 사고에 선행하므로, 상상도 사고에 필수적이기에, 정신의 예술적 활동, 즉 이미지를 형성하는 활동은 논리적인 활동, 즉 개념을 형성하는 활동보다 앞선다. 인간은 상상하는 순간, 예술가가 된다. 이것은 추론보다 훨씬 앞서는 일이다.

 

605. 차이는 이미지를 외화하는 능력이 아니라 대상을 표현하는 이미지를 내적으로 형성하는 능력에 있다.

 

607. “나에게 정확하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줄 수 있었던 사람은 없다. 내 경우에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나의 느낌을 따른다. 어느 누가 더 나은 안내자를 발견했다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나에게 아름다움과 진실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킬 것은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을 제외하면 세상에 진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3. 버트런드 러셀

 

610. 러셀은 명료함에 대한 열망 탓에 불가피하게 수학으로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귀족적 과학의 차분한 정확성에 전율을 느꼈다. “제대로 보면 수학에는 진리만이 아니라 최고의 아름다움도 있다. 이 아름다운 조각처럼 차갑고 꾸밈없는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약한 본성 어느 곳에도 호소하지 않고, 회화나 음악 같은 화려한 치장도 없지만, 그럼에도 숭고하고 순수하며, 오직 가장 위대한 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엄격한 완벽성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

맞다. 수학은 귀족적 과학이다. 물리학을 수준 낮은 과학이라 생각하는 nerd들이라니….

 

11장 현대 미국 철학자들 - 산타야나, 제임스, 듀이

 

621. 이 영혼은 마치 고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이교도 학자와 같은 억양으로 말하면서 침착하고 탁월한 안목으로 우리의 작은 체계를 살피고, 아주 차분한 추론과 가장 완벽한 산문으로 우리의 새롭고도 낡은 꿈들을 박살냈다. 플라톤 이후 철학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된 적은 없었다. 산타야나, 그의 말은 새로운 풍미, 섬세한 질감이 느껴지는 구절로 가득했고, 섬세한 통찰로 향기를 풍겼으며, 풍자적인 위트로 가시가 박혀 있었다.

 

624. 유럽이 아니라 이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태도, 관념, 이상은 토착적 형성물이다. 그들의 영혼은 보스턴이나 뉴욕이나 필라델피아나 리치먼드를 장식하는 가문들의 공상함에 물들이지도 않았고, 남부나 동부 유럽인의 격한 정렬에 물들이지도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원시적 환경과 과제에 의해 신체적으로는 억세고 정신적으로는 직접적이고 단순하게 빚어져 있다. 이것이말도 아는 상식을 갖춘 미국이고, ‘실용적인 사람들의 미국이고, ‘냉정한 사업가들의 미국이다.

 

1. 조지 산타야나

 

626. 플라톤 이후 철학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의 말은 새로운 풍미, 섬세한 질감이 느껴지는 구절로 가득했고, 섬세한 통찰로 향기를 풍겼으며, 풍자적인 위트로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의 시인적 기질은 풍부한 비유로, 그의 예술가적 기질은 끌로 다듬은 문단으로 말했다. 기분 좋게도 미국은 아름다움의 유혹과 진리의 부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627. 그는 <이성의 삶>의 윤곽을 그리기 전에 전문적인 인식론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모든 전문적인 자잘한 장치들을 동원하여 인간 이성의 기원, 타당성, 한계를 기꺼이 토론하려 한다. 그는 전통적인 가정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고의 큰 덫임을 알고 있다. “비판은 관습의 품에 안긴 영혼을 놀라게 한다.” 그는 그렇게 비관습적으로 말한다. 그는 기꺼이 거의 모든 것을 의심하려 한다.

 

630. 자연을 신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자연에 보태질 것은 없다. “자연이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히 시적이다. 그 말은 내가 사는 세계의, 만들어내고 통제하는 기능, 끝없는 활력, 변화무쌍한 질서를 충분히 암시한다.

 

637. 산타야나는 말한다. “이상 속에서 살고 사회나 예술에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은 이중의 불멸을 누린다. 그는 사는 동안 영원한 것에 몰입했고, 죽으면 그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거기에 몰입하게 된다. 그들은 그의 가장 좋은 것과 이상적 동일시를 하기 때문에 그가 합리적인 마음으로 그의 내부에서 파괴로부터 구출되기를 바랐던 모든 것의 화신이며 영원한 거처가 된다. 그는 자신을 미혹시키려는 어떤 속임수나 욕망 없이 자신이 완전히 죽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존재를 구성하는 것에 관하여 천박한 사람들보다는 나은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과 우주의 변화를 바라보는 구경꾼이자 고해 신부가 됨으로써 모든 영 안의 영적인 것, 모든 이해 가운데 정교한 것과 자신을 동일 시 할 것이다. 자신을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자신이 영원하다고 진정으로 느낄 수도 있고 알 수도 있다.”

 

642. 고전적 전통은 오직 소수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민주주의는 능력만큼 잡는 자유롭고 자유방임적 산업주의라는 대규모의 레슬링 시합을 모두에게 열어놓았기 때문에 모든 영혼이 올라가려다 상처를 입고, 아무도 만족을 모른다. 계급들이 서로 제약 없이 전쟁을 벌인다. “이 투쟁(자유주의가 전장을 닦아놓았다)에서 이기는 자는 누구든 자유주의를 끝낼 것이다.” 이것, 즉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파괴한 압제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혁명의 인과응보이기도 하다.

 

2. 윌리엄 제임스

 

652. 진리는 과정이며, “하나의 관념에서 발생한다.” 참은 증명이다. 실용주의는 하나의 관념이 어디에서 왔으며 그 전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대신 그 결과를 살핀다. 실용주의는강조점을 옮겨서 앞을 본다.”

 

658. 그는 인간을 낫게 만들려는 수많은 노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늘 누군가를 돕고 용기를 불어넣어 사람들을 고양시켰다. 그는 모든 개인에게 환경이 적절한 산파 노릇을 하면 밖으로 나올 수 있는비축 에너지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늘 개인을 향해서나 사회를 향해서나 이 자원을 완전히 이용하자고 호소했다.

 

660. “결론은 없다. 우리가 그와 관련하여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고 누가 결론을 내려주었는가? 점을 쳐줄 것도 없고 조언 해줄 것도 없다. 안녕.”

 

3. 존 듀이

 

662. 이제 유럽과 미국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이 산업화에 말려들어간 상황에서 우리는 책보다는 직업을 통해 배워야 한다. 학자적인 문화는 속물근성으로 향하지만, 직업 내의 동료애는 민주주의를 향한다. 산업 사회에서 학교는 축소판 작업장이자 축소판 공동체다. 학교는 실습과 시행착오를 통해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질서에 필요한 기술과 분야를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육은 성숙에 대비할 뿐 아니라 (여기에서 사춘기 뒤에는 교육이 끝난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나온다) 정신의 지속적인 성장과 삶의 지속적인 해명으로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정말이지 미국스럽다경험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동의하고 싶지 않은 이 기분

 

666. 우리는 불변의 인간 본성과 전능한 환경에 관한 우리의 관념을 잊어야 한다. 변화나 성장에 알려진 한계는 없다. 어쩌면 불가능은 없을지 모른다. 다만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669. 이런 낡은 문제들은 이제 우리에게 의미를 잃었다. “우리는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선다.” 그런 문제들은 사회적 마찰과 삶의 변화에 대한 열기 속에서 증발한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은 스스로 세속적이 되어야 한다. 지상에 머물며 삶을 해명해주면서 자립해야 한다.

 

670. 철학이라는 전문적 일에 종사하지는 않지만 진지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은 새로워진 산업적 정치적 과학적 운동이 지적 유산 가운데 무엇을 수정하고 무엇을 버리라고 요구하느냐 하는 것이다. …… 미래 철학의 과제는 그 시대의 사회적 도덕적 갈등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다. 미래 철학의 목적은 되도록이면 이런 갈등에 대처하는 기관이 되는 것이다……. 삶의 갈등하는 요인의 조정에 관한 멀리 내다보는 보편적 이론이 철학이다.

 

671. 하지만 우리는 부유해졌고, 부는 예술의 서곡이다. 물을 준 기름진 땅에서 식물이 자라듯이, 수백 년에 걸쳐 물리적 노력을 기울여 사치와 여가를 위한 수단을 축적한 나라에서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문화가 뒤따랐다. 부유해지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었다. 한 민족이 철학을 할 수 있으려면 그전에 먼저 살기부터 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나라들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한 것은 분명하다. 우리 영혼의 무질서는 이런 발전 속도 탓이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성장과 사춘기 경험으로 한동안 혼란에 빠지고 균형을 잃은 젊은이들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곧 성숙할 것이다. 우리 정신이 우리 몸을 따라잡고, 우리 문화가 우리 소유를 따라잡을 것이다. 어쩌면 셰익스피어보다 위대한 영혼, 플라톤의 정신보다 위대한 정신이 세상에 나올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부만이 아니라 자유까지 숭배할 때, 우리 또한 우리의 르네상스를 누릴 것이다.

 

3. 저자의 입장에서 다시

우선 베이컨과 볼테르를 만나게 해준 것에 감사해야겠다. 셰익스피어가 베이컨일 리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기뻤으나 그것이 셰익스피어에 대한 폄하에 가까웠던 점은 좀 유감이다. 필드가 다를 뿐이거늘. 여하튼 철학자들이란. 철학자와 수학자는 이래서 통한다. 귀족적 과학이 수학이라면, 귀족적 인문학이 철학일거다, .

웃기는 철학자, 웃는 것의 중요성을 아는 철학자, 볼테르를 제대로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 말로는 루소만 동 시대에 없었어도라고 한다. 루소 땜에 열 받은 볼테르의 모습은 이 책에서도 군데 군데 눈에 띈다. 러셀의 친절하지만은 않았던 서양철학사를 읽고 난 뒤라서인지, 그래도 철학이야기는 한결 부드럽게 느껴진다. 역시, 텍스트 이전에 저자를 알아야 하는 것이 그 때문인가. 인물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의 이 책이 훨씬 친절하게 느껴진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정성 들여 모든 것을 설명하는 강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뭔가 하나라도 남겨주는 재미있는 강의가 중요하듯이 말이다. 


목차

2판 서문_ 나의 책을 위한 변명
서론_ 철학의 쓸모에 관하여
1
장 플라톤
2
장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3
장 프랜시스 베이컨
4
장 스피노자
5
장 볼테르와 프랑스 계몽주의
6
장 이마누엘 칸트와 독일 관념론
7
장 쇼펜하우어
8
장 허버트 스펜서
9
장 프리드리히 니체
10
장 현대 유럽 철학자들
11
장 현대 미국 철학자들

용어 설명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목차는 대략 연대순을 따랐으나, 모든 철학자를 아우르려는 욕심은 내지 않았다. 목차는 세부 목차까지 다뤄줬으면 더 찾기에 편리할 수는 있었을 듯. 그것은 북리뷰를 해야 하는 나의 욕심이려나? 그러나 두 번 읽기를 통해 다시 도전하지 않고서, 감히 이 책의 잘잘못을 평하기에는 하부족이겠다. 그래도, 베이컨과 볼테르의 재기발랄함과 발칙함을 만난 것만으로도 기뻤다. I will be back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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