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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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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7일 10시 07분 등록

1.저자에 대하여: 윌리엄 듀런트(William James Durant 1885.11.5 ~ 1981. 11. 7)

윌 듀런트는 미국의 교육가이자 철학자로 메사추세츠 노스 애덤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가톨릭계 학교에서 수녀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성직자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10대 말에 도서관에서 다윈, 헉슬리, 스펜서의 책을 접하면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가톨릭교회와 사회주의를 결합하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더 많은 호기심과 탐구심에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기로 마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20대 중반 스피노자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는 철학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듀런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듀런트는 스피노자를 읽으면서 가톨릭과 사회주의를 결합하려는 꿈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사회 교육 쪽으로 관심을 옳기게 된다. 1907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뉴저지 주 세튼홀 칼리지에서 라틴어와 프랑스어, 영어, 기하학을 가르치는가 하면 뉴욕의 가장 진보적인 자유주의 교육 실험 학교인 페레 모던 스쿨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곳에서 제자 에이다 코프먼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후에 남편이 그녀를 부를 때 사용하던 애칭인 에이리얼로 개명) 그녀는 러시아 출신으로 그 때 나이 갓 15살의 어린 소녀였다. 무려 13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윌 듀런트는 교직을 사임하면서까지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결혼 , 그들은 Ether 낳고, Louis 입양하게 되며 평생 동반자이자 도반으로 함께 일생을 걸어가게 된다. 흔히들 대학자들의 경우 가정을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렇게 사랑도 중시하는 명사들을 보게 되면 존경스럽고 나도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왠지 죠셉 켐벨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제자와 결혼하고, 평생 사랑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어서 일까?

1914년부터는 교회에서 주2회 일반인 대상 철학, 문학, 과학, 음악, 예술의 역사에 대한 강좌를 진행하며, 이는 훗날 그의 ‘철학 이야기’와 ‘문명 이야기’의 밑거름이 된다. 1917년에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첫번째 저서 ‘Philosophy and the Social Problem’을 출간한다. 이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수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자, 사임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13년간 지속하여 진행했다고 한다.

1921, 그의 강의를 듣고 매료된 출판업자의 제안으로 철학 이야기가 각 철학자들 편으로 정리된 11권의 팸플릿이 나오게 되었다. 블루북이라는 이름의 이 팸플릿은 큰 인기를 끌었고 결국 1926년 이들 이야기를 단행본으로 모은 지금의 ‘철학이야기’가 출간되게 되었다. 이 책은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 시키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철학 이야기’의 성공 덕분에 듀런트는 평생 여행하고 글만 쓰며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 책은 30년간 200만 부가 팔렸다니 엄청난 스테디 셀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90여년이 흐른 지금도 고전으로 꾸준히 판매되고 있으니 부럽기 그지없다.

  

그는 아내와 함께 1935년부터 75년까지 전 11권으로 구성된 ‘문명이야기’를 차례대로 발표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 에이리얼 듀런트는 7권이 출간된 1961년에야 작품의 공저자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시절에는 여류 작가도 흔치 않았었나 보다. 어쨌든 이들 부부는 제 10권 ‘루소와 혁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된다. 부부 공저자라니, 그리고 함께 어마무시한 업적을 이루고 또 상까지 함께 탔다고 하니, 게다가 그간의 공동작업에 대해 이야기한 ‘A Dual Autobiography’ 까지 발간했다고 하니 더 없이 로맨틱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도 부부 공저자로서의 미래 풍광을 꿈꾸어 보고 싶다.

 

그의 마지막 책은 1953년 발표된 ‘철학의 즐거움’이다. 그는 이 책의 저술을 위해 자료 수집 등에 11년의 준비 기간을 가졌고, 집필에만도 3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하였다고 한다. 23장으로 계획되었던 이 책은 결국 그가 21장을 작성해놓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영원히 미완성인 채로 남게 되었다.

 

그는 결혼과 삶 자체가 로맨틱 했듯 죽음도 로맨틱하게 맞이했다. 그의 아내 에이리얼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결국 1981 10월 세상을 뜨자 13일 만인 11 7일 그 또한 세상을 뜬 것이다. 그리고 LA Westwood Village Memorial Park Cemetery 나란히 묻혔다.

 

96세의 길었던 생애의 마지막까지 저술 활동에 여념이 없었던 듀런트, 젊었을 때는 실제 강의로, 늙어서는 책으로 일반인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그리고 사랑하는 부인과 공동 작업에 애썼던 그의 열정과 사랑이 가득찬 삶이 왠지 감동스럽다. . 

 

 

2. 가슴을 무찔러드는 글귀

5. 아내에게.. 강해져라, 나의 동지여내가 쓰러지더라도 그대는 흔들림 없이 서 있을 수 있도록. 내 노래의 부서진 조각들이 그대 안에서 마침내 더 고운 선율이 된다는 것을 내가 알 수 있도록. 그대는 내가 떠나면서 멈춘 곳에서 시작하여 더 깊이 헤아리게 될 것이라고 내 심장에게 말할 수 있도록.

 

서문 나의 책을 위한 변명

7. 이 책의 약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또 그런 감사하는 마음을 미약하게나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나 자신도 반가운 마음이다.

 

8. 삶과 지식 사이의 틈은 점점 더 벌어졌다. 통치하는 자들은 생각하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고, 알고 싶은 자들은 아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전례 없이 배움이 늘어나는 와중에 대중의 무지가 번창하고, 이런 무지가 자신의 대리인들을 선택하여 세상 큰 도시의 지배를 맡겼다. 과학이 전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기부를 받고 떠받들어지는 와중에 매일 새로운 종교가 태어나고, 낡은 미신이 전에 잃어버렸던 땅을 되찾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비관주의를 중얼거리는 과학의 사제와 믿을 수 없는 희망을 중얼거리는 신학의 사제 사이에서 보통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9. 최초의 개설서’, 지식의 인간화를 위한 최초의 노력은 플라톤의 대화였다. 박식한 사람들이라면 선생이 두 가지 글을 썼다는 사실을 알지도 모르겠다. 하나는 아카데메이아의 학생들을 위하여 전문적인 언어로 쓴 것이고, 또 하나의 글을 아는 아테네의 보통 사람들을 철학의 귀한 즐거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중적인 대화체로 쓴 것이었다.

 

11. 독자들은 철학이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16. 어쩌면 모든 종류의 선생이 다른 선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의 깊은 학자는 정확성으로 우리의 의욕을 점검해주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은 학자들의 성과에 온기와 피를 부어 넣는다. 우리는 손을 잡고 미국에서 천재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만한 청중, 바꾸어 말하면 천재를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 청중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선생들이지만, 약간 진전을 이루고, 최선을 다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프롤로그만 발표하고 물러나면 된다. 우리 뒤에는 더 나은 연주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17. 이 책은 몇몇 우뚝 솟은 인물들 주위에 사상 이야기를 배치하여 지식을 인간화하려는 시도다.

 

서론 철학의 쓸모에 관하여
24.
소로는 말했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명민하게 생각하거나 학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지극히 사랑하여 그 가르침에 따라 단순하고, 독립적이고, 통 크고, 신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베이컨은 우리에게 훈계한다. “너희는 먼저 마음에 좋은 것을 구하라. 그러면 나머지는 따라오거나, 아니면 없어도 아쉽지 않을 것이다.” 진리가 우리를 부유하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자유롭게는 해줄 것이다.

 

26. 철학은 다섯 가지 연구와 담론 분야, 즉 논리학, 미학, 윤리학, 정치학, 형이상학을 의미하고 아우른다. 논리학은 사고와 조사에서 이상적인 방법을 연구한다. 관찰과 내성, 연역과 귀납, 가설과 실험, 분석과 종합, 이런 것들이 논리학이 이해하고 안내하려 하는 인간 활동의 형태들이다. 우리 대부분에게는 따분한 연구지만, 사상사에는 인간이 사고나 조사의 방법에서 이룬 개선들이 큰 사건으로 기록된다. 미학은 이상적인 형식, 즉 아름다움을 연구한다. 이것은 예술의 철학이다. 윤리학은 이상적인 행동을 연구한다. 소크라테스는 최고의 지식은 선악에 관한 지식, 삶의 지혜에 관한 지식이라고 말했다. 정치학은 이상적인 사회조직을 연구한다(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공직을 차지하고 유지하는 기술이나 과학은 아니다).

 

27. 에머슨은 묻는다. “진정한 학자가 되는 비결을 아는가? 모든 사람에게는 뭔가 배울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의 제자다.”

 

27. 사실 위인들은 그들의 말을 들을 귀와 영혼이 있을 때에만 우리에게 말을 한다. 그들에게서 꽃을 피운 것의 뿌리라도 우리에게 있을 때에만 말을 건넨다는 뜻이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경험을 했지만, 우리는 그 경험에서 그 비밀과 섬세한 의미를 완전히 빨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 주위에서 윙윙거리는 현실에 함축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천재는 그 함축된 것을 듣고, 천체들의 음악을 듣는다. 천재는 철학이 가장 높은 수준의 음악이라는 피타고라스의 말의 의미를 안다.


1)
플라톤
37.
왜 제자들이 그를 그렇게 존경했을까? 어쩌면 그가 철학자였을 뿐 아니라 인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전투에서 큰 위험을 무릅쓰고 알키비아데스의 목숨을 구했다. 그는 두려움도 없이, 또 지나치지도 않게 신사처럼 술을 마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그의 겸손한 지혜였음이 틀림없다. 그는 지혜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고, 다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혜를 구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38. 소크라테스는 우리의 가장 어려운 문제 두 가지에 대해 아주 분명한 답 두 가지를 철학에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그 질문 가운데 첫째는, 덕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최선의 국가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49. 이것은 주인이 아낌없이 차려놓은, 엘리트를 위한 성찬이다. “플라톤이 철학이고, 철학이 플라톤이다.” 에머슨은 그렇게 말하며, 오마르가 코란을 두고했던 말을 국가에 바친다. “도서관들을 다 불태워라. 모든 도서관이 이 책에 다 들어 있다.”

 

54. 왜 이런 유토피아는 결코 지도에 나타나지 않을까? 플라톤은 대답한다. 탐욕과 사치 탓이다. 사람들은 소박한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소유욕이 있고, 야망이 있고, 경쟁심이 있고, 질투심이 있다. 그들은 이미 가진 것에 곧 싫증을 내고,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한다. 가만히 있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으면 갖고 싶어한다. 그 결과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영토를 잠식하고, 땅의 자원을 둘러싼 집단 간 경쟁이 벌어지고, 전쟁이 터진다. 교역과 재정이 발달하고, 새로운 계급 구분이 나타난다.

 

56. 무능하고 부정한 사람이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막고, 공동의 선을 위해 통치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람을 선출하고 준비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철학의 과제다.

 

65. 귀한 즐거움인 철학은 주로 두 가지를 의미한다. 명료하게 생각하는 것, 즉 형이상학이다. 그 다음에는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 즉 정치학이다. 따라서 우리의 젊은 엘리트는 먼저 명료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목적을 위해 그들은 이데아에 관한 가르침을 공부해야 한다.

 

66. 사실 이데아는 이 모든 것, 즉 관념이자 법칙이자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77. 완벽한 사회란 각각의 계급과 단위가 자신의 본성과 적성에 가장 잘 맞는 일을 하는 사회다. 어떤 계급이나 개인도 다른 계급이나 사회에 개입하지 않고, 모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능률적이고 조화로운 전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협력하는 사회다. 이것이 정의로운 국가일 것이다.

 

77. 정의로운 사람이란 딱 맞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자신이 받는 것과 똑 같은 가치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87. 그는 달성하기 어려운 이상을 묘사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욕망을 이렇게 그려놓는 일에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할 수 있고, 적어도 그 가운데 일부를 현실로 바꾸려 하는 데 인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토피아를 만드는 동물이다. “우리는 앞과 뒤를 보고, 있지 않은 것을 갈망한다.”

 

89. 라라슈푸코는 늙는 법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지만, 플라톤은 알았다. 솔론처럼 배우고 소크라테스처럼 가르치며, 의욕에 찬 젊은이들을 인도하고, 동지들의 지적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가 제자들을 사랑하듯이, 제자들도 그를 사랑했다. 그는 그들의 철학자이자 안내자일 뿐 아니라 친구이기도 했다.

 

89. 그들은 밤사이에 그가 아무런 소란도 없이, 짧은 잠에서 영원한 잠으로 고요히 건너갔음을 알아차렸다. 아테네 사람들 모두가 무덤까지 그를 따라갔다.

 

2)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103.
아리스토텔레스의 첫 번째 위대하고 탁월한 점은 거의 선배 없이, 거의 전적으로 혼자 열심히 생각해서 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103. 심지어 플라톤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까지 생각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변칙적 인물로서, 자주 신화의 구름에 사로잡혔고, 아름다움이 진실의 얼굴에 두터운 베일을 덮도록 내버려두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스스로 정한 규칙을 자주 어겼다. 그러나 그런 경우의 그는 과거의 산물이지, 그의 사상이 구축할 미래의 산물은 아니었다.

 

115. 생명은 꾸준히 복잡성과 힘을 늘려왔다는 점. 지능의 발달은 구조의 복잡성이나 형태의 이동 가능성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 점차 기능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생리학적 통제의 집중 현상이 계속되었다는 점 등이 그렇다. 생명은 서서히 신경계와 뇌를 창조했다. 그리고 정신은 환경의 정복을 향하여 단호하게 전진했다.

 

121. 습관의 힘을 강조하여, 처음으로 습관을 2의 천성이라고 불렀다.

 

124.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목적은 선을 위한 선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는 행복 자체를 위해 행복을 선택하지, 그 이상의 어떤 것을 결코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명예, 쾌락, 지성을 선택한다. … 그것들을 통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24. 행복의 주된 조건은, 몇 가지 신체적 전제조건을 제외하면, 인간 고유의 명예이자 힘인 이성적 삶이다. , 아니, 수월성은 분명한 판단, 자제, 욕망의 균형, 수단의 세련에 달려 있다. 이것은 소박한 사람이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며, 누가 별다른 뜻 없이 주는 선물도 아니다. 원숙하게 발달한 사람이 경험으로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이르는 길, 수월성으로 안내하는 지침이 있어, 많은 우회로와 지연을 피해 갈 수 있다. 그것은 중도, 즉 중용이다. 인간의 성격의 특질은 세 개씩 짝을 지을 수 있는데, 그 각각의 짝에서 첫 번째와 마지막 특질은 극단이고 악덕이며, 중간에 있는 특질은 미덕 또는 수월성이다. 예를 들어 용기는 겁과 무모함 사이에 있다. 관대함은 인색함과 사치 사이에 있다. 야망은 나태와 탐욕 사이에 있다. 겸손은 비굴과 오만 사이에 있다. 정직은 과묵과 다변 사이에 있다. 명랑은 우울과 익살 사이에 있다. 우정은 다툼과 아첨 사이에 있다. 자제는 햄릿의 우유부단과 돈키호테의 충동적 행동 사이에 있다.

 

125. 수월성은 훈련과 습관화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기술이다. 덕 또는 수월성이 있기 때문에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올바르게 행동했기 때문에 덕이나 수월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덕은 사람이 행동을 함으로써 그 사람 안에 형성된다.” 우리는 우리가 되풀이하는 행동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수월성은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125. 제비 한 마리나 화창한 날 하루로 봄이 오지 않듯이, 인간 또한 하루나 짧은 시간에 축복받은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없다.

 

126. 이러한 중용의 학설은 그리스 철학의 거의 모든 체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적 태도를 정리한 것이다.

 

126.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어떤 일도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격언을 새겨 이 전통을 확립했다.

 

127. 외적인 재물이나 인간관계가 행복에 필요하기는 하지만, 행복의 핵심은 여전히 우리 안에, 원숙한 지식과 영혼의 맑은 상태에 있다. 분명 감각적 쾌락의 충족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조잡한 에피쿠로스적 관념을, 긁으니까 가려워지고 가려워지니까 또 긁는다고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다. 또 정치적 출세도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그 길로 가면 민중의 변덕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군중처럼 변덕이 심한 것은 없다. 행복은 마음의 기쁨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오로지 진리를 추구하거나 포착했을 때 생기는 기쁨만 신뢰할 수 있다.

 

127. 그는 불필요한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그가 그럴 만큼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위기 앞에서는 기꺼이 자신의 삶이라도 내놓는다. 어떤 상황에서는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남들이 자신을 섬기는 것은 부끄러워하지만, 사람들을 섬기는 경향이 있다. 친절을 베푸는 것은 우월의 표시다. 남의 친절을 받는 것은 종속의 표시다. … 그는 공적 과시에 참여하지 않는다. …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드러낸다. 인간과 사물을 경멸하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솔직하다. … 그는 결코 열렬히 찬탄하는 법이 없다. 그의 눈에 위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가 아닐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근사근하지 않다. 사근사근함은 노예의 특징이다. … 그는 결코 악의를 느끼지 않으며, 늘 상처를 잊고 웃어넘긴다. … 그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 자신이 칭찬을 받든 다른 사람들이 비난을 받든,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는 면전이 아닌 한, 심지어 적이라해도 남들을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몸가짐은 침착하고, 목소리는 저음이고, 말은 신중하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맹렬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것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심하는 사람만 목소리가 날카로워지고 걸음이 급해진다. … 그는 삶의 사건들을 위엄 있고 점잖게 감당하며, 한정된 군대로 전략을 구사하는 유능한 장군처럼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상황을 활용한다. … 그의 가장 좋은 친구는 그 자신이며, 혼자 있을 때 기쁨을 느낀다. 반면 덕이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최악의 적은 바로 자신이고, 그는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135. ‘복종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결코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 없다는 말은 명언이다.

 

140. 추구할 목적은 공동체가 결정해야 하지만, 그 수단을 선택하고 적용하는 일은 오직 전문가가 해야 한다는 말이다. 선택의 기회는 민주적으로 확산되어야 하지만, 공직은 실력을 갖춘 자들, 최고로 선별된 자들에게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140. “내가 울기를 바란다면 네가 먼저 울어야 한다

 

146. 그는 지혜롭게도 아테네가 철학에 두 번 죄를 지을 기회를 주지 않겠다고 말하며 그 도시를 떠났다.

 

146. 로마의 위엄은 사상의 빛보다는 권력의 과시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3) 프랜시스 베이컨
151. 이방인이었지만 그래도 결국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던 소년왕은 그리스의 화려한 문화를 숭배했고, 그 문화를 자신의 의기양양한 군대가 휩쓸어버린 동양 전역에 퍼뜨리는 꿈을 꾸었다.

 

153. 평화를 얻는 비결은 우리의 욕망에 맞는 성취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성취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로마의 스토아 학파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진 것이 불충분해 보인다면, 세상을 다 가진다 해도 여전히 비참할 것이다.”

 

161. 지식이 늘어나면서 공포는 줄었다. 인간은 미지의 것을 섬기기보다는 정복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자신감이 모든 활기찬 정신을 고양시켰다. 장벽은 무너졌다.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제한이 없었다. “마치 천체처럼 지구 전체를 일주하는 저 작은 배들은 우리 시대의 행복이다. 이 시대에는 고대인들이 이 너머는 안 된다는 말을 사용하던 곳에서 당당하게 이 너머로 더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162. 천재는 한 가문이 재능으로 구축한 구조물의 정점이며, 천재의 후손으로 가면 이 재능은 다시 범상한 사람 수준으로 가라앉는다.

 

163. 한편 나는 나 자신이 인류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었으며, 또 공동의 복리를 돌보는 일이 공중의 권리로서 물이나 공기처럼 모두에게 열려 있는 의무 가운데 하나라고 여겼기에, 내가 인류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내가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데 맞도록 태어났는가를 자문했다. 탐색해본 결과 인간의 삶을 문명화하는 기예나 발명품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63. 나에게는 조사하고자 하는 열정, 끈기 있게 판단을 유보하고, 기쁜 마음으로 명상하고, 주의 깊게 동의하고, 기꺼이 그릇된 인상을 교정하고, 꼼꼼하게 노력하여 생각을 정리하는 힘이 있었다. 나는 새로운 것을 무조건 갈망하지도 않고, 오래된 것을 맹목적으로 찬양하지도 않았다. 나는 모든 형태의 협잡을 극도로 혐오했다. 이런 모든 이유 때문에 나는 나의 성정과 기질이, 말하자면 진리와 어떤 친족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태생, 나의 성장과 교육은 모두 철학이 아니라 정치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말하자면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젊은 사람에게는 드문 일이 아니지만, 가끔 여러 의견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또 조국에 대한 나의 의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힘으로 나를 부른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국가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할 경우, 나에게 운명으로 맡겨진 과제를 성취하려 할 때 나를 도와주고 지원해줄 수 있는 조력자들을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이런 동기들 때문에 나는 정치에 투신했다.

 

165. 사랑과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것은 효과가 없다. 언제나 내주어야 하지만, 절대 다 내주면 안 된다. 받는 쪽에서는 기대가 있어야 고마운 마음을 키워나가는 법이다.

 

167. ‘드러나지 않은 삶이 최선의 삶이 그의 좌우명이었다. 그는 사색적인 삶과 활동적인 삶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을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167. 공부 자체가 목적이나 지혜가 될 수 는 없으며, 행동에 적용되지 않은 지식은 창백한 학문적 허영이라고 생각했다. “공부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쓰는 것은 게으른 것이다. 자신을 꾸미는 데 공부를 너무 이용하는 것은 허세다. 공부의 규칙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학자의 기질이다. … 교활한 사람은 공부를 비난하고, 단순한 사람은 공부를 차양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공부를 이용한다. 공부는 공부의 용도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은 공부 바깥에서, 공부 위에서, 관찰에 의해 얻어지는 지혜다.”

 

171. “우리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을 가리지 않고 공개적을 드러내는 마키아벨리나 그런 종류의 저자들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다. 악의 본질을 먼저 알지 못하면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을 결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덕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171. 베이컨은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과 일치시켜, 합금을 이용해 순수하지만 약한 금속을 더 오래가는 금속으로 바꾸듯이, 위선과 정직을 지혜롭게 섞으라고 조언한다. 정신에 폭과 깊이와 힘을 부여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충만하고 다채로운 인생을 살라고 말한다.

 

172. “이 과도하고 뜨거운 감정은 참으로 이상하다. … 아무리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연인을 보는 것만큼 터무니없을 정도로 자신을 좋게 보지는 못한다. …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들은 누구 하나 미칠듯한 사랑에 빠진 적이 없으며, 이것은 위대한 정신과 위대한 일은 이런 약한 감정을 멀리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73. “자신을 열 친구가 없는 사람들을 자신의 마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다. … 정신에 여러 가지 생각이 가득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지혜와 이해가 밝아지고 분명해진다.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쉽게 논하게 되고, 좀 더 질서 있게 정리하게 되고, 말로 바꾸었을 때 어떻게 보일지 알게 되고, 마지막으로 지금보다 지혜로워진다. 이런 면에서는 한 시간 대화하는 것이 하루 사색하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

 

173. 젊은 사람은 판단보다는 만들어내는 데 적합하고, 의논보다는 실행에 적합하고, 안정된 일보다는 새로운 기획에 적합하다.

 

176. 철학은 어린 시절 그의 보모였고, 공직에 있을 때 친구였으며, 감옥에 있을 때나 수모를 당할 때 위안이었다.

 

179. 베이컨은 걱정이 많고 결혼도 했고 고통도 받았지만, 삶이 결국은 아주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180. 베이컨은 세상에서 출세하는 방법에 관해 약간의 예비적 암시를 준다. 첫 번째 필요조건은 지식,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관한 지식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반쪽에 불과하다. 자신을 아는 것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을 아는 수단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181. 너무 착하거나 선량한 태도로 자신의 무장을 해제하면 뜻을 제대로 표현하고 권리를 지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태도를 보이면 상처 입고 비난을 당하기 쉽다. 따라서 가끔 꿀이 있을 뿐 아니라 가시도 돋친, 자유롭고 관대한 정신의 불꽃을 뿜을 필요가 있다.

 

182. 혼란과 슬픔의 삶에도 이해에서 오는 당당한 평안을 줄 수 있는 것은 철학뿐이다. “학문은 죽음과 역경에 대한 공포를 정복하거나 완화해준다그는 베르길리우스의 유명한 시구를 인용한다. ‘사물의 원인들을 배우고 / 모든 두려움, 무정한 운명, 탐욕의 지옥에서 벌어지는 시끄러운 갈등을 / 짓밟은 자는 행복하도다.’

 

183. 산업적 환경이 집요하게 되풀이하는, 끝없는 획득의 가르침을 잊게 해주는 것이 어쩌면 철학의 가장 좋은 열매일지도 모른다. “철학은 우리에게 먼저 정신의 유익을 구하도록 이끈다. 나머지는 그 뒤에 공급될 수도 있고 별로 원치 않게 될 수도 있다.” 지혜 한 조각만이 영원한 기쁨이다.

 

189. “일반적으로 자연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은 다음을 규칙으로 삼아야 한다. 자신의 정신이 특별히 만족스럽게 포착하여 오래 머무는 것은 오히려 의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문제를 다룰 때는 오성을 평탄하고 맑게 유지하도록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196. 우리는 하느님의 첫 번째 창조물, 즉 빛을 구할 뿐이다. 세계 모든 곳에서 성장의 빛을 얻으려 한다. 빛의 상인들은 솔로몬의 집의 구성원들로, 12년마다 외국에 나가 문명화된 세계 구석구석의 외국 민족들과 함께 산다.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과학과 산업과 문학을 연구하고 12년 뒤에 돌아와, 자신들이 찾아낸 것을 솔로몬의 집의 지도자들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이들이 돌아오면서 비어버린 외국의 자리는 새로운 과학 탐험가들이 채운다. 이런 식으로 온 세상의 가장 좋은 것들을 금세 신아틀란티스로 들여온다.

 

198. 논리학이란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 경험과 방법론을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문이란 소수가 가진 기술을 규칙에 의거하여 모두에게 가르칠 수 있는 과학으로 바꾸려는 시도이지 않은가.

 

203. “인류의 야망을 세 종류, 말하자면 세 등급으로 구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 것이다. 첫째는 자신의 힘을 자신의 조국에 사용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야망인데, 이것은 천박하고 타락한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조국과 사람들 사이에서 그 지배력을 확대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욕망인데, 이것은 첫 번째보다는 확실히 위엄이 있지만 탐욕이 덜 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류 자체의 힘과 지배력을 우주에 확립하고 확대하려고 노력한다면, 그의 야망은 의심의 여지없이 앞의 두 가지보다 건전하고 고상하다.” 사실 그의 영혼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이 적대적인 야망들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이 베이컨의 운명이었다.

 

204. 사람들은 수고를 하여 더 큰 수고를 하는 곳으로 간다. 자리에 오르는 것은 때때로 천한 일인데, 사람들은 불명예스러운 행동으로 명예스러운 곳으로 간다. 자리에 오르는 길은 미끄러운데 거기서 물러서면 추락이거나 최소한 실추다.

 

204. 괴테는 말했다. “한 사람의 약점은 그의 시대에서 온다. 반대로 그의 장점과 위대함은 그 자신의 것이다.”

 

206. 그는 더 일찍 정치를 버리고 모든 시간을 문학과 과학에 쏟지 못한 것을 애달파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에 몰두하다가, 말하자면 전장에서 죽었다. 그는 수필 <죽음에 관하여>에서 열심히 일하다죽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것은 뜨거운 피가 솟구치는 부상을 입는 것과 같을 터인데, 그런 부상을 당한 사람은 그 순간에는 아픔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카이사르처럼 그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

 

206. 그는 아직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명랑한 목소리로 실험은아주 멋지게 성공했다라고 썼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파란만장한 삶이 이따금씩 찾아온 열병처럼 그의 몸을 완전히 소모해버렸던 것이다.

 

206. 베이컨은 유언장에 특유의 당당한 말을 남겼다. “내 영혼은 신에게 물려주겠다. … 몸은 눈에 띄지 않게 묻어라. 내 이름은 다음 시대와 외국에 물려주겠다.” 다음 시대와 많은 나라들이 그를 받아들였다.

 

4) 스피노자
209. 아무런 정치 조직 없이, 사회적 통합을 위한 아무런 법적 강제 없이, 심지어 공통의 언어도 없이, 이 훌륭한 민족은 자신의 몸과 영혼을 유지하고, 인종적, 문화적 통합성을 보존했으며, 뜨거운 사랑으로 가장 오래된 의식과 전통을 지켰고, 끈기 있고 단호하게 구원의 날을 기다렸으며, 그 어느 때보다 수가 늘었고, 모든 분야에서 그 천재성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2000년의 방랑 끝에 잊지 않고 있던 옛 땅으로 의기양양하게 귀환했다. 어떤 드라마가 이 웅장한 수난, 이 다채로운 장면, 이 찬란하고 정의로운 성취에 비견될 수 있겠는가? 어떤 소설이 이 현실의 로맨스에 비견될 수 있겠는가?

 

211. 자존심이 강한 이 저자는 철회와 회개의 공식에 따라 회당 문지방에 엎드려야 했고 회중이 그의 몸을 밟고 지나갔다. 우리엘은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 자신을 박해한 사람들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글을 쓰고는 총으로 자살했다.

 

212. 스피노자 정신의 배경에는 이런 유대인의 오디세이아가 꽉 차 있었으며, 이 때문에 그는 파문으로도 흔들 수 없는 확고한 유대인이 되었다.

 

213. 이 아가씨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외면할 만큼 지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구혼자가 값비싼 선물을 들고 오자 스피노자를 향한 관심을 접었다. 우리의 주인공 스피노자는 틀림없이 이 순간 철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214. 모든 철학은 결과적으로 개인의 정신과 자아에서 시작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첫 주장을 한다는, 외견상 분명해 보이는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이 출발점에는 르네상스의 개인주의적 요소가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215. 여기에서 데카르트는 멈추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216. 이단 혐의로 회당 장로들 앞에 불려갔던, 외적으로는 평온하나 내적으로는 혼란에 빠져있던 젊은이의 정신 속에서 벌어졌던 일들이다.

 

216. “저주를 읽는 동안 흐느끼는 소리와 커다란 뿔피리를 길게 부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의식이 시작될 때 환하게 밝혀져 있던 불이 의식이 진행되면서 하나씩 꺼져 마지막에는 다 꺼졌다. 파문당한 사람의 영적 삶이 소멸되었다는 상징이었다. 회중은 완전한 어둠에 파묻혔다.”

 

218. 다른 사람을 정당하게 판단한다는 것은 자신의 피부 바깥으로 나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219. 스피노자는 용기 있는 태도로 조용히 파문을 받아들였다. “그것 때문에 내가 어떤 경우에도 하지 않았을 일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어둠 속에서 휘파람을 부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젊은 학자는 이제 무자비하고 가혹한 고독을 맛보게 되었다.

 

219. 그런 식으로 정신의 내용을 뿌리째 뽑아내는 것은 큰 수술이며, 상처를 깊이 남긴다. 사람들이 온기를 찾기 위해 함께 웅크리는 소 떼처럼 모여 있는 다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다른 정통파를 끌어안았다면, 스피노자는 저명한 개종자라는 역할 속에서 가족과 종족으로부터 완전히 추방당하면서 잃었던 삶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19. 이러니 스피노자의 글에서 유머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또 그가 율법의 관리자들을 떠올리며 가끔 신랄한 말을 내뱉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

 

220. 스피노자의 슬프고 부드러운 얼굴이 마음에 들었고, 그가 가끔 저녁에 내려와 자기들과 함께 파이프를 피우며 자신들의 소박한 마음에 맞게 조율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즐거워해다.

 

220. 그는 유대인 공동체 속에서 살 때 모든 학생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히브리 법에 따라 렌즈 가는 일을 배운 적이 있었다. 그가 렌즈를 간 것은 물론 연구와 정직한 교육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말리엘이 말했듯이 일은 사람의 덕을 유지해주는 반면, “일을 배우지 못한 모든 학식 있는 사람은 결국 악당이 되기 마련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220. 렌즈 가는 일은 잘했지만, 간신히 먹고 살 수준 이상으로 꾸준히 하지는 않았다. 그는 성공을 거둔사람이 되기에는 지혜를 너무 사랑했다.

 

221. 그는 그 나름의 수수한 방식으로 행복했다. 이성보다 계시를 믿으라고 충고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가끔 나의 타고난 이해력으로 거두어들이는 열매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나는 이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것을 모으면서 행복했고, 한숨을 쉬고 슬퍼하는 대신 평화롭고 고요하고 기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221. 스피노자는 좋은 가운을 입는다고 해서 사람이 결코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가치 없는 것을 귀한 포장지로 싸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221. 그는 이렇게 썼다. “몸가짐이 무질서하고 너저분하다고 해서 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러 외모에 무관심한 척하는 것은 오히려 정신이 가난한 증거다. 진정한 지혜는 그런 정신에서 가치 있는 거처를 찾을 수 없으며, 학문은 무질서와 혼란만 만나게 될 것이다.”

 

224. 스피노자는 다시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적은 것으로 만족한다. 자연이 그러하다면 나도 그러하다.”

 

226. 그는 빨리 찾아온 죽음을 받아들였으며, 다만 생전에 감히 출판할 수 없었던 책이 죽은 뒤에 사라지거나 파괴될까 걱정했다.

 

227. 학식 있는 사람들이 그의 지혜 때문에 그를 존중했듯이, 소박한 사람들은 그의 부드러움 때문에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철학자와 행정관들이 민중과 섞여 그의 마지막 안식처까지 따라갔다. 그의 무덤에서는 신앙이 다양한 사람들이 만났다.

 

228. “모든 성서는 일차적으로 전 민중을 대상으로 쓴 것이고, 이차적으로 전 인류를 대상으로 쓴 것이다. 그 결과 그 내용은 가능한 한 대중의 이해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성서는 이차적 원인들로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특히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헌신하게 하는 데 가장 잘 힘을 발휘하는 체제와 문체로 이야기한다. … 그 목적은 이성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잡아끌어 장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기적이 많고 신이 자꾸 출현하는 것이다.

 

228. 사람들은 신이 자신들을 위해 사건들의 자연적 질서를 깬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래서 유대인은 자신들이 신의 총애를 받는다는 생각을 다른 민족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주기 위해 하루의 길이를 늘리는 기적적인 해석을 했다. 이런 사건은 모든 민족의 초기 역사에 많이 나타난다. 꾸미지 않고 말 그대로 이야기하면 영혼을 움직일 수 없다.

 

230. 박해가 없었다면 그들은 유럽의 여러 민족과 결혼하여 섞이고, 어디에서나 그들을 둘러싸는 다수자에게 삼켜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치워버린다면, 철학적인 유대인과 철학적인 기독교인이 교의에 동의하고 평화롭게 협동하며 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230. 그는 예수의 윤리가 지혜와 거의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예수를 숭배하다 보면 신을 지적으로 사랑하는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

 

231. 일상생활에서 자주 일어나는 모든 일이 헛되고 무익하다는 것을 경험이 내게 가르쳐준 뒤, 내가 두려워하는 모든 대상과 내가 두려워하게 되는 모든 이유는 정신이 그것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한, 그 자체로서 선하거나 악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마침내 진정으로 선하고 그 선함을 전달할 수 있는 것, 다른 모든 것을 버리게 할 만큼 정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혹시 있을까 하는 문제를 살펴보기로 결심했다. 영원히 지속되는 지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혹시 발견하고 얻을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결심했다. … 나는 명예와 부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많다는 것, 그러나 내가 새로운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싶다면 부와 명예를 얻는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명예와 부를 많이 소유할수록 쾌락도 늘어나고, 그 결과 그것들을 더 늘리려는 마음도 강해진다. 반면 언제라도 그런 희망이 좌절되면, 속에서 깊디깊은 고통이 생겨난다. 명성도 이런 큰 약점이 있어, 그것을 추구하려면 삶의 방향이 사람들의 변덕에 맞추는 쪽으로 가야 한다. … 영원하고 무한한 것을 향한 사랑만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안전한 쾌락을 정신에게 줄 수 있다. … 최대의 선은 정신이 자연 전체와 이루는 합일을 아는 것이다. … 정신이 그것을 알면 알수록 자신의 힘과 더불어 자연의 질서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정신이 자신의 힘이나 능력을 잘 이해할수록 자신의 방향을 잡고 자신을 위한 규칙을 세우는 일도 쉬워진다. 또 자연의 질서를 이해할수록 쓸데없는 것들에서 자유를 얻는 일도 쉬워진다. 이것이 온전한 방법이다.

 

235. 질서는 우리 정신의 곁을 거스른다. 우리는 공상의 무질서한 선들을 따르고, 위태롭다 해도 우리의 꿈에서 철학을 짜 나아가는 쪽을 더 좋아한다.

세상의 견딜 수 없는 혼돈을 통일과 질서로 환원하고 싶다는 것. 그에게는 남방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보다는 북방인의 진리에 대한 굶주림이 강했다. 그에게 예술가적인 면이 있다면 순수하게 건축가적인 면으로, 완벽한 대칭과 형식을 갖춘 사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235. 간단히 말해서, 스피노자는 읽는 것이 아니라 연구해야 한다.

 

236. 200쪽의 짧은 책에 금욕적인 한 사람이 과잉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깎아내고 자기 평생의 생각을 담아놓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236. 철학책은 대충 훑으면 반드시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모든 부분이 앞부분에 의존하고 있다. 뻔해 보이고 언뜻 불필요해 보이는 명제가 당당한 논리 전개의 초석으로 드러난다. 전체를 읽고 생각해보기 전에는 어떤 중요한 대목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236. 스피노자는 자신의 책 2부에서 이렇게 말한다. “틀림없이 여기서 독자는 혼란을 느끼고 많은 것들을 돌이켜보느라 멈출 것이다. 하지만 간청하거니와, 나와 함께 조금씩 나아가면서 끝까지 다 읽기 전에는 이것들에 관하여 어떤 판단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책을 한번에 다 읽지는 말고, 여러 번 자리에 앉아 조금씩 읽어라. 그렇게 해서 다 읽었으면 이제 비로소 이해의 첫 단계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라. 그때부터 주해서, 예를 들어 폴록의 <스피노자>나 마티노의 <스피노자 연구>를 읽어라. 둘 다 읽으면 더 좋다. 마지막으로 <윤리학>을 다시 읽어라. 그러면 완전히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두 번째로 다 읽으면 철학을 영원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239. 나는 신이 만물의 외적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이라고 봅니다. 나는 만물이 신 안에 있다하고 말합니다. 만물이 신 안에서 살고 움직입니다.

 

240. 신의 뜻과 자연법칙은 다양하게 표현되지만 결국 하나의 실재다. 따라서 모든 사건은 변하지 않는 법칙의 기계적 작용에서 나오는 것이지, 별들 속에 앉아 있는 무책임한 독재자의 변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240. 선과 악은 인간과 관련되어 있고, 종종 개인적 기호와 목적에 따라 달라지며, 개인들이 하루살이에 불과한 우주, ‘움직이는 손가락이 종족의 역사마저 물에 써서 흘려버리는 우주에서는 아무런 유효성이 없다.

 

241. 스피노자는 여전히 신을 여성이 아니라 남성으로 그리는 일반적인 믿음에 주목하여,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하는 지상의 상황을 반영한 개념을 용감하게 거부한다.

 

245. 의식에서 관념의 지속 시간을 결정하는 충동적인 힘은 종종 의지라고 부르지만, 사실 욕망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며, 이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이다.” 욕망이란 우리가 의식하는 욕구 또는 본능이다. 그러나 본능이 늘 의식적인 욕망을 통해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본능 뒤에는 모호하고 다양한 자기보존 노력이 있다. 나중에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어디에서나 살고자 하는 의지와 권력을 향한 의지를 보았듯이, 스피노자는 모든 인간 활동, 심지어 인간보다 하위의 활동에서도 자기보존을 위한 노력을 본다.

 

245. 하나의 사물이 스스로 존속하는 힘은 그 존재의 핵심이자 본질이다. 모든 본능은 개체를 유지하려고 자연이 계발한 장치다. 쾌감과 통증은 본능의 만족 또는 방해다. 그것은 욕망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다. 우리는 어떤 것이 쾌감을 주어서 그것에 욕망을 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욕망을 품기 때문에 그것이 쾌감을 주는 것이다. 또 우리는 욕망을 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에 욕망을 품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의지란 없다.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 본능을 결정하고, 본능이 욕망을 결정하며, 욕망은 사고와 행동을 결정한다.

 

247. 윤리학에는 세 개의 체계밖에 없다. 하나는 붓다와 예수의 윤리로, 여기에서는 여성적 미덕을 강조하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귀중하다고 생각하며, 악을 선으로 갚음으로써 악에 저항하고, 미덕을 사랑과 동일시하며, 정치에서는 무제한의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또 하나는 마키아벨리와 니체의 윤리로, 이것은 남성적 미덕을 강조하고, 사람들 간의 불평등을 받아들이며, 전투와 정복과 통치의 위험을 음미하고, 미덕을 권력과 동일시하며, 세습 귀족제를 찬양한다. 세 번째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로, 여성적인 미덕이나 남성적인 미덕의 보편적 적용 가능성을 부정한다. 이 윤리는 오직 지식이 많고 성숙한 정신만이 다양한 상황에 비추어 언제 사랑이 통치하고 언제 권력이 통치할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미덕을 지성과 동일시한다. 또 통치에서 귀족제와 민주제를 다양하게 혼합하는 일을 옹호한다.

 

247. 스피노자는 우선 행복을 행동의 목표로 설정한다. 그러면서 행복이란 쾌락의 존재이고 고통의 부재라고 아주 단순하게 정의한다. 그러나 쾌락과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또 쾌락과 고통은 상태가 아니라 이행 과정이다.

 

248. 열정이나 감정은 그 자체로는 나쁘거나 좋지 않으며, 우리의 능력을 줄이거나 키울 때에만 나쁘거나 좋을 뿐이다. “나는 덕과 능력을 같은 것으로 본다.” 덕이란 행동 능력이고, 재능의 형식이다.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면서 자신에게 유용한 것을 구할수록 덕도 커진다.” 스피노자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보다 관대하다. 스피노자는 자기중심주의가 자기보존이라는 지고의 본능이 도출한 불가피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더 큰 선을 얻는다는 희망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에게 선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스피노자에게는 이것이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성은 본성에 어긋나는 것을 절대 요구하지 않으므로 사람들 각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유용한 것을 구하고, 무엇이든 진정으로 완벽에 더 다가가 상태로 이끌어주는 대상을 원하는 것을 인정한다. 또 각자가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인정한다.”

 

249. 덕의 기초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인간의 행복은 그렇게 하는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249. 겸손은 음모가의 위선이거나 노에의 소심함이다. 겸손은 능력의 부재를 뜻한다. 스피노자에게 덕이란 재능과 능력의 형식이다. 따라서 양심의 가책도 덕이라기보다는 결함이다. “회개하는 사람은 두 배로 불행하고, 이중으로 약하다.”

 

249.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은 오만한 사람에 가장 가깝다.”

 

250. “똑같은 증오로 상처입은 것을 복수하고자 하는 사람은 비참하게 살 것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증오를 몰아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기쁨과 자신감에 넘쳐 싸운다. 그는 한 사람에게든 여러 사람에게든 똑같이 저항하며, 행운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그에게 지는 사람들은 기쁘게 그에게 굴복한다.” “정신을 정복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영혼의 위대함이다.”

 

250. “이해하려는 노력은 덕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기초다.”

 

251. 그는 이성없는 열정이 장님이듯, 열정 없는 이성은 죽은 것임을 알고 있다.

 

254. 인간은 죄가 없다따라서 우리는 악한을 벌하지만, 거기에 증오는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므로 우리는 그들을 용서한다.

 

254. 그는 신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사적인 일에 몰두하는 변덕스러운 인격체가 아니라, 변하지 않고 우주를 떠받치는 질서라는 오랜 교훈을 배운다.

 

255.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필연적인 것에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 운명애가 내 본성의 핵심이다.

 

255. 모든 벌거벗은 진실을 감당하고 / 차분하기 그지없게 상황을 직시하는 것, / 그것이 최고의 주권이다. – 키츠

 

255. 이런 철학은 우리에게 삶을 긍정하라고, 심지어 죽음조차 긍정하라고 가르친다. “자유로운 사람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한 명상이다.”

 

256. 그는 자신의 욕망을 사물의 보편적 질서와 합치고, 자연 속에서 눈에 띄지 않는 한 부분이 되려 했다. “최고의 선은 정신이 자연 전체와 이루는 결합을 아는 것이다.”

 

256. 우리는 법칙과 원인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고, 신의 일부다. 우리는 우리보다 큰 존대, 죽어가는 우리와는 달리 끝이 없는 존재의 스쳐가는 형태다.

 

260. “아무도 혼자서는 자신을 방어하고 삶의 필수품을 확보할 만큼 강하지 않으므로 모든 사람에게는 혼자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며, 이 때문에 인간은 천성적으로 사회 조직을 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268. 어쩌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스피노자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그의 글이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면을 드러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심오한 말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 <전도서>에서 지혜를 두고 한 말을 스피노자에게 해도 될 듯하다. “첫 사람은 그를 완전하게 알지 못했고, 마지막 사람은 그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의 생각은 바다보다 크고, 그의 조언은 큰 바다보다 깊기 때문이다.”

 

5) 볼테르와 프랑스 계몽운동

273. 호감을 주지 못하고, 추하고, 허영심 만혹, 경솔하고, 외설적이고, 비양심적이고, 심지어 때로는 부정직하기도 했던 볼테르는 그 시대와 장소의 결함을 거의 빠짐없이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볼테르는 변함없이 친절하고, 사려 깊고, 자신의 에너지와 돈을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고, 적을 무너뜨리는 일만큼이나 친구를 돕는 데 정성을 다하고, 펜을 한번 휘둘러 죽일 수도 있으면서 화해를 청해오면 바로 무장을 해제했다. 그렇게 모순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좋든 나쁘든 이 모든 특질은 볼테르에게는 부차적인 것으로, 본질이 아니었다. 그에게 놀랍고도 기본적인 것은 그의 정신의 가없는 생산성과 광채였다.

 

276. “교육만큼 자유를 주는 것은 없다.”

 

280. 우리의 사제들은 소박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 그들이 학식이 풍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쉽게 잘 믿는 것일 뿐이다. (41)

 

280. 우리 자신을 믿고, 우리 자신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자. / 그것이 우리의 신탁, 우리의 제단, 우리의 신이 되게 하자. (25)

 

282. 볼테르는 용기를 내어 새 언어를 익히는 일에 나섰다. 그는 역병이라는 단어는 한 음절이고 학질이라는 단어는 두 음절인 점에 기분이 상해, 영어의 반이 역병에 걸리고 나머지 반은 학질에 걸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곧 영어를 잘 읽게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안 되어 당대 최고의 영문학을 섭렵했다.

 

282. 그는 좋은 집안인 척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가계를 묻지도 않았다. 콩그리브가 자신의 희곡들을 하찮아하며 자신을 저자라기보다는 유한 신사로 생각해주기를 바라자, 볼테르는 날카롭게 한마디 했다. “만일 선생이 불행하게도 여느 신사와 다름없는 사람에 불과했다면, 나는 선생을 만나러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284. 우리가 숭배하는 사람은 폭력으로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자가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우리 정신을 정복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286. 당시의 도덕은 인류의 위선을 계속 품위 있게 존중해주기만 한다면 연인을 여자의 살림에 보태는 일을 허락했다. 게다가 여자가 단지 연인이 아니라 천재를 선택한다면, 온 세상이 그녀를 용서했다.

 

286. “웃고 웃겨라가 그의 좌우명이 되었다.

 

287. “때로는 멍청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웃음으로 주름살을 펴지 못하는 철학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나는 엄숙을 병으로 봅니다.”

 

289. 완벽한 정신의 진정한 즐거움인 사색으로 즐겁게 살아가겠구나. 진정한 행복을 그 어디에서도 못 찾겠더니, 바로 여기에 그것이 있도다.

 

297. “보시오, 당신은 방금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에게서 따귀를 맞은 것이오.”

 

298. “연결도 되지 않고 선후도 없는 수많은 작은 사건들,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못한 수많은 전투들. 정신을 밝혀주지는 못하고 압도하기만 하는 공부는 포기했어요.”

 

307. … 깊어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으며, / 나는 괴로워할 뿐, 불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329. 볼테르는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낸다는 인간 입법자들이 만드는 유토피아에는 회의적이었다. 사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하는 것이지, 논리학의 삼단논법처럼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문으로 몰아내면 창문으로 다시 들어온다. 문제는 어떤 변화로 우리가 실제로 사는 세상에서 곤궁과 불의를 줄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334. 달랑베르가 이렇게 대꾸했다. “천재의 얼굴은…늘 그 형제인 다른 천재가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귀여워하는 개. 벨레본이 입을 맞추자 볼테르는 “생명이 죽음에 입을 맞춘다.”라고 말했다.

 

335. 그는 죽기 전에 파리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의사들은 그렇게 힘든 여행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자 볼테르는 말했다. “내가 어리석은 짓을 하고 싶을 때에는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하지.” 그는 오래 살았고 아주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자기 방식대로, 오래전에 추방당했던 자극적인 파리에서 죽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를 가로질러 힘든 여행을 했다. ..그는 바로 젊은 시절의 친구 다르장탈에게 갔다. “자네를 보기 위해 죽다 말고 왔네.

-  죽다 말고 파리를 방문한 볼테르, 죽기 전까지도 위트있는 말을 내뱉을 줄 아는 점이 바로 볼테르의 매력인 듯 하다. 남들이 어리석다고 해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점 또한 얼마나 멋진가!

 

336. 그날 저녁 늙은 문자의 족장은 집으로 가서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는 이제 지쳤음을, 자연이 아마도 그 이전의 누구에게 준 것보다 많이 주었을 그 거칠고 경이로운 에너지를 한껏 사용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생명이 자신에게서 뜯겨나가는 것을 느끼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죽음은 볼테르에게도 승리를 거두었다. 마지막을 1778 5 30일에 찾아왔다.

 

337. 장례차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인간 정신에 큰 힘을 주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자유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묘비에는 오직 세 단어만 필요했다.

여기 볼테르 눕다.

- 이름 하나로 완성될 수 있는 묘비가 참으로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왠지 묘비 앞에 내가 서 있는 장면이 상상된다. 나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볼테르를 향해 인사한다.

6) 이마누엘 칸트와 독일 관념론
352.
그가 새로운 형이상학 체계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야말로 이 소심하고 겸손한 교수가 저지를 수 있는 최후의 범죄인 듯이 보였다. 그 자신도 그런 쪽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마흔 두 살 때 이렇게 썼다. “나는 운 좋게도 형이상학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나의 애인은 아직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354. 칸트의 삶은 규칙동사 가운데서도 가장 규칙적인 동사처럼 흘러갔다. 일어나고,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식사를 하고, 걷는다. 하이네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양말 신는 법에도 철학을 적용하여, 양말 끈을 바지 주머니 안으로 끌어올려, 그 끝에 용수철을 달고, 용수철은 작은 상자에 담았다. 그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행동에 옮겼으며, 그 결과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355. 칸트는 스물두 살에 전능한 젊음이 지닌 훌륭한 열망을 듬뿍 담아 이렇게 썼다. “나는 이미 지키고자 결심한 노선에 마음을 고정시켰다. 나는 나의 길로 들어설 것이며, 무엇도 내가 그 길을 좇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 나 또한 나의 길로 가고 싶다.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일년이 흐른 후이면 희미한 이 길도 조금은 명확해질까?  

 

그는 가난과 무명의 세월을 살며 거의 15년 동안 자신의 걸작을 스케치하고 쓰고 다시 썼다. 그는 이것을 1781년 쉰 일곱살이 되어서야 마무리했다. 이렇게 느리게 성숙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철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은적도 없었다.
-
책 한권을 위해 이러한 세심하고 신중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 감동스럽다. 그리고 평생을 다 바친 그의 인생이 참으로 경이롭다. 누군가에게 큰 영향력을 줄 수 있을 책, 더욱더 신중하게 써내려 가는 것이 작가의 의무가 아닐지그리고 그 신중함을 위해 나는 더욱더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할 것 같다.

 

356. 순수이성비판은 사고를 연구하는 세밀한 생물학, 개념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조사, 타고난 정신 구조의 분석이다. 칸트는 이것이 형이상학의 문제 전체라고 믿는다. “이 책에서 나는 주로 완전함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감히 여기에서 해결되지 않는, 적어도 해결의 열쇠를 제공하지 않는 형이상학의 문제가 단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청동보다 오래 지속될 기념비를 세웠다. 자연은 이런 자부심으로 우리를 자극하여 창조로 나아가게 한다.

 

357. 이런 진리(선험적으로 참이어야 한다)는 우리 정신의 내적 구조로부터, 우리 정신이 작동하는 자연적이고 불가피한 방식으로부터 그 필연적 성격을 끌어온다. 인간의 정신은 경험과 감각이 절대적이면서도 변덕스러운 의지를 기록하는 수동적 밀랍이 아니며, 일련의 또는 일군의 정신적 상태에 붙여놓은 한낱 추상적 이름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정신은 감각 결과를 관념으로 조정하는 적극적 기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질서 있게 통일된 사고로 변형하는 기관이다.

 

358. 정신에 내재한 구조 또는 타고난 사고의 법칙을 연구하려는 노력이 칸트의 선험적 철학이다.

 

360. 이 연합은 무엇보다도 정신의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감각이나 사고는 하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부름을 기다리며, 우리가 요구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이들을 선별하고 지휘하는 작용이 바로 이들을 사용하는 주인인 것이다. 감각 경험과 관념 위에 정신이 있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은 지각된 사물이 아니라 지각 양식, 즉 감각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공간과 시간은 지각 기관인 셈이다.

 

공간과 시간은 선험적이다. 모든 질서 잡힌 경험이 그것들과 관련되고 그것들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공간과 시간이 없으면 감각은 절대지각으로 자라날 수가 없다.

 

362. 개념없는 지각은 맹목적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정신이 망치질로 혼돈해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적극적 노력이 아니라면, 어떻게 똑 같은 경험을 했는데도 한 사람은 평범하게 남고, 더 적극적이고 지칠 줄 모르는 사람은 지혜의 빛과 진리의 아름다운 논리를 보는 곳으로 올라갈 수 있겠는가?

 

세상을 인식하는 사고 자체가 질서를 잡기 때문에 세상에 질서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질서를 잡는 것이 경험 분류의 첫 단계이며, 그 마지막은 과학과 철학이다.

368. 우리의 모든 경험 가운데 가장 놀라운 현실은 바로 우리의 도덕 감각, 즉 유혹과 마주했을 때 이것이 그르다는 피할 수 없는 느낌이다. 유혹에 굴복할 수도 있지만, 그 느낌은 그대로 남는다. 아침에는 훌륭한 결심을 하지만 저녁이면 어리석은 짓을 하는구나.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 결심을 한다. 도대체 무엇이 뼈아픈 가책을 일으켜 새로 결심을 하게 하는가? “우리 행위의 준칙이 의지에 따라 보편적인 자연법이 되도록 행위하라.”는 우리 내부의 정언적 명령, 우리 양심의 무조건적 명령이다.

 

369. 이 세상에서 조건 없이 선한 것은 선한 의지, 즉 자신의 이익이나 손해에 관계없이 도덕법칙을 따르려는 의지뿐이다. 당신의 행복은 상관하지 말고 당신의 의무를 이행하라. “본디 도덕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남들의 행복을 구하고 우리 자신에게는 완벽을 구하자- 그것이 행복을 주건 고통을 주건. 자신의 완벽을, 남들의 행복을 이루려면 자신이건 다른 사람이건 모든 경우에 인간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접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런 원리에 따라 살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는 곧 이성적 인간들의 이상적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공동체를 창조하려면 우리가 이미 거기에 속한 것처럼 행동하기만 하면 된다. 불완전한 상태에 완전한 법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의무를 이행하라는 이 절대적 명령이 마침내 의지의 자유를 증명한다는 점에 주목하라. 우리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런 의무 같은 개념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이 자유를 이론적 추론으로는 증명할 수 없고, 도덕적 선택의 위기에 직접적으로 그것을 느낌으로서 증명한다. 우리는 이런 자유가 우리의 내적 자아, 순수한 에고의 핵심이라고 느낀다. 우리 내부에서 경험을 빚어내고 목표를 선택하는 정신의 자연 발생적 활동을 느끼는 것이다.

 

370. 불편하지만 선한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371. 우리의 이성은 물자체의 배후에 정의로운 신이 존재한다고 자유롭게 믿도록 허락하며, 우리의 도덕 의식은 우리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명령한다.

 

40 성직자의 힘과 맞서는 데는 흔히 칸트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 이상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에게 그럴 만한 용기가 있었다는 것은 예순여섯 살에 판단력 비판을 발표하고, 예순아홉 살에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를 발표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보여준다.

 

374. 칸트는 이제 거의 일흔 살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힘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일부 전기 작가들은 이런 양보를 두고 그를 비난했지만, 이때 칸트는 일흔 살이었고, 몸이 몹시 약했으며, 싸움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 또 그는 이미 할 말을 세상에 다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375. 인간은 일치를 바란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 종에게 무엇이 좋은지 더 잘 알며,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힘을 새롭게 발휘하고, 타고난 능력을 더 계발할 수 있도록 불화를 일으킨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전적으로 악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곧 그런 투쟁이 어떤 한계 내에서 제한되어야 하며, 규칙, 관습, 법칙으로 규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378. 모든 인간은 그 자체가 절대적 목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을 어떤 외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그가 가진 존엄을 위반하는 범죄다.

 

379. 칸트는 평등을 요구한다. 능력의 평등이 아니라 능력을 계발하고 적용할 기회의 평등이다.

 

384. “내가 많은 것들에 아주 분명히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사실입니다…..다만 나에게는 그것을 이야기할 용기가 절대 없지요. 하지만 내가 확신하지 않는 것 또한 절대 말하지 않겠습니다.”

 

7)) 쇼펜하우어
408.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펼치는 순간, 즉시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그 문체다…..모든 것이 명료하고 질서가 잡혀 있다. 모든 것이 의지로서의 세계라는 중심 개념, 따라서 투쟁이 세계이고, 따라서 비참한 세계라는 중심 개념으로 감탄할 만하게 집중되어 있다. 단도직입적일 정도로 정직하고, 기분이 상쾌할 정도로 힘차고, 비타협적일 만큼 직접적이다.

 

쇼펜하우어는 상인의 아들답게 구체성이 풍부하고, 예가 풍부하고, 응용이 풍부하고, 심지어 유머도 풍부하다.

 

410. 인생은 짧지만 진리를 멀리까지 영향을 미치며 오래 산다. 우리는 진리를 이야기해야 한다.

 

마지막 말은 고상하게 했지만, 이 글 전체에는 뭔가 신포도 이야기 같은 면이 있다. 세상에 쇼펜하우어만큼 인정을 갈망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산 자들에 관해서는 좋은 것만 이야기하도록 하자.

 

나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이야기할 생각이다. 하지만 나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한 권의 책보다 짧게 이야기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겸손이란 위선적 자기 비하에 불과하며 질투로 가득 찬 세상에서 탁월함과 장점이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서 용서를 얻고자 하는 수단이다. “겸손이 미덕이 된다면 그것은 바보에게 아주 유리한 상황임이 틀림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모두 자기가 바보인 것처럼 이야기를 할 테니 말이다.”

412. “의식은 우리 정신의 표면에 불과하며, 지구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껍질만 알 뿐이지 속은 모른다. “ 의식적 지성 밑에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의지, 노력하는 집요한 생명력, 자발적 행동, 오만한 욕망의 의지가 있다. 

 

의지는 눈이 보이는 절름발이를 어깨에 태우고 다니는 힘센 명인이다.” 우리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어떤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이유를 찾는다. 우리는 심지어 욕망을 덮어버리려고 철학이나 신학을 열심히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성과 설명 능력을 갖춘 사람을 상대로 논쟁하고 설득하려다가 마침내 그가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 우리가 그의 의지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보다 짜증나는 것은 없다.”

 

사람을 설득하려면 그의 이익, 욕망, 의지에 호소해야한다. 우리가 승리는 얼마나 오래 기억하고, 패배는 얼마나 빨리 잊는지 보라. 기억은 의지의 하인이다. “셈을 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불리한 쪽보다는 유리한 쪽으로 실수하는 일이 훨씬 잦다. 부정직한 의도가 없는데도 그렇게 된다.” “반대로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소망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일에서는 이해력이 높아진다. “

 

오직 생각에만 기초해서 행동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실수하기 쉽다.

 

414. 성격은 의지에 있지 지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격 또한 목적과 태도의 연속이다. 이것이 의지다. 머리보다 심장이 낫다는 대중적 언어가 옳다.

 

모든 종교는 의지나 마음이 훌륭한 것에는 보상을 약속하지만 머리나 이해력이 뛰어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도 약속하지 않는다.

 

415. 개인의 신체구조도 개인적으로 조절된 의지, 즉 개인의 성격에 상응한다.

 

지성은 지치지만 의지는 절대 지치지 않는다. 지성은 잠이 필요하지만 의지는 자는 중에도 움직인다. 피로는 통증과 마찬가지로 뇌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뇌와 연결되지 않은 근육(심장처럼)은 절대 지치지 않는다….잠에 대한 요구는 뇌를 써서 일하는 사람에게 가장 크다.

 

의지는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원래의 핵심적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

 

잠잘 때는 의지의 전체적인 힘이 유기체의 유지와 개선을 향한다. 그 결과 고비를 순조롭게 넘기는 일이나 치유는 잘 때 이루어진다. 잠이 원래의 상태라는 부르다흐의 말은 옳다.

 

416. 생명은 잠에 대한 투쟁이다. 처음에는 우리가 잠에서 영토를 빼앗지만, 결국은 잠이 도로 찾아간다. 잠은 죽음의 일부를 빌려와 생명 가운데 낮에 소진한 부분을 갱신하여 유지하는 것이다.

머리의 가장 지혜로운 부분은 매일 밤 가장 이상하고 가장 말이 안 되는 꿈이 나타나는 현장이고, 꿈에서 깨어난 뒤에야 다시 명상을 이어가는데.

 

418. 의지는 살려는 의지이며, 그 영원한 적은 죽음이다.

 

재생산은 모든 유기체의 궁극적 목적이자 가장 강한 본능이다. 그렇게 해야만 의지가 죽음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심지어 철학자도 가끔 자식을 둔다.

 

419. 짝을 고르는 것이 비록 무의식적이기는 하지만 많은 부분 서로 자식 생산에 적합한지 여부에 대한 판단으로 결정된다.

 

420. 모든 사람은 자신의 결함이 상속되지 않도록 그 결함을 없애줄 짝을 구한다.

 

424. 세계가 의지라면 그것은 고난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 우선 의지 자체가 결핍이며, 의지는 늘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보다 큰 것을 쥐려 하기 때문이다. 총족되는 소망이 하나라면, 충족되지 않는 소망은 열이다. 욕망은 무한하며, 충족은 제한적이다.

 

우리가 수많은 욕망에 굴복하면서 늘 희망과 공포에 시달리는 한, 우리가 의지에 종속되어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지속적인 행복이나 평화를 누릴 수 없다. 충족은 결코 만족을 주지 않는다.

 

425. 모든 개인은 내부에 파괴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실현된 욕망은 새로운 욕망을 키우며, 이 과정은 끝없이 반복된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의지가 그 자체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의지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의지는 늘 굶주려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고통의 양은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

 

역시 인생은 악이다. 고통이 그 기본적 자극이고 현실이며 쾌락은 고통이 멈춘 소극적 상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옳다. 지혜로운 사람은 쾌락을 구하려 하는 대신 걱정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우리는 우기가 실제로 소유하는 축복이나 이점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귀중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것이 고난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소극적으로만 우리를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오직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에만 우리는 그 가치를 느끼게 된다. 반면 결핍, 박탈, 슬픔은 적극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직접 전달된다……더 좋은 것은 그냥 좋은 것의 적이라는 멋진 프랑스 속담에도 똑 같은 진리가 담겨 있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 좋다.

 

426. “결핍과 고난이 인간에게 휴식을 허락하는 순간 ,권태가 즉시 다가와 기분 전환을- 즉 더 많은 고난을- 요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 나의 요즘 상황인 것만 같이 느껴진다. 원래 삶은 악이며 고이다. 그러니 괴로운 마음도 당연한 것이거늘..

 

인간의 경우도 인식이 명료할수록, 지능이 높을수록 고통도 커진다. 천재가 가장 큰 고난을 겪는다.

- 조금 더 단순하게, 조금 더 생각없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하다. 누군가 말했듯 개처럼 현실을 온전히 즐기면서

 

427.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생각하는데서 훨씬 큰 고통이 생기는 법이다.

 

429. “낙관주의는 인간의 불행에 대한 씁쓸한 조롱일 뿐이다.”

 

430. 행복해지려면 아이처럼 무지해야 한다. 아이는 의지를 갖고 노력하는 것이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채워지지 앟는 욕망의 피곤함, 충족의 보람 없음을 아직 알지 못한다.

 

435. 오직 저자에게서만 철학적 사고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철학에 끌린다고 느끼는 사라은 저자 자신의 저작이라는 고요한 성소에서 불멸의 스승을 찾아야 한다. 천재의 작품 하나는 주석 1000개의 가치가 있다.

 

우리 행복은 우리 호주머니에 든 것보다 우리 머리에 든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명성도 어리석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의 거처로 삼기에는 한심한 곳이다.”

 

한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대단한 것일 수 없다. 결국 모든 사람은 홀로 서 있다. 중요한 것은 홀로 서 있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얻는 행복이 우리 주변에서 얻는 것보다 크다…..한 사람이 사는 세계는 주로 그가 그 세계를 보는 방식에 의해 형성된다….한 사람에게 존재하거나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의 의식에만 존재하고 그 사람 혼자에게만 일어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가장 핵심적인 일은 그의 의식의 구성이다. 따라서 행복하다는 것은 자족적이라는 뜻 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는 큰 진실이 담겨 있다.

 

442. 궁극적인 지혜는 니르바나다. 자신의 자아를 욕망과 의지가 최소한인 상태로 줄이는 것이다.

 

454. 그는 궁극적 선은 아름다움이며, 궁극적 기쁨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임을 알앗다.

 

모든 위대한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던 시대에 그는 다시 한 번 영웅을 고귀하게 섬기라고 설교했다.

 

8) 허버트 스펜서
466. 그는 삶을 분석하고 묘사하는 데 너무 바빠 삶을 살 여유가 없었다.

 

468. 그러나 그는 점차 자기 분야를 찾아, 정직한 농부처럼 그 땅을 갈았다.

 

472. 우리는 악한 것들에 선한 영혼이 있을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말해 오류인 것에도 진리의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자주 잊어버린다.

 

480. 지혜로운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믿음을 존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보는 최고의 진리를 두려움 없이 말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어떤 결과가 오든 자신이 세상에서 올바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이 목표로 삼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그 또한 좋다는 것, 비록 전자의 경우만큼 좋지는 않아도 그래도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481. 평균적으로 성장은 에너지 소비율에 반비례하며, 재생산율은 성장 수준과 반비례한다.

 

485. 의지는 우리의 적극적 충동들이 총합에 부여하는 추상적 용어이며, 의욕이란 관념이 방해받지 않고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다. 관념은 행동의 첫 단계이며, 행동은 관념의 마지막 단계다. 마찬가지로 감정은 본능의 첫 단계이며, 감정의 표현은 완성된 반응의 유용한 서곡이다.

 

487. 사람들은 평생에 걸친 연구라는 준비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물리학이나 화학이나 생물학의 권위자가 된다. 그러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일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식료품점의 아들도 전문가이고, 해법을 알며,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요구한다.

 

510. “어떤 사람도 그가 쓴 책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의 정신적 활동의 가장 좋은 결과물은 책으로 들어간다.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는 열등한 결과물과 섞이지만 책에서는 분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

 

511.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며, 삶의 소박한 기쁨들이 아니라 문명을 얻으려 한 일이 어리석인 짓이었다고 생각했다.

 

512. 우리가 그보다 높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가 우리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9) 프리드리히 니체
528. “나는 그 자신을 향한 솔직함과 진지함이 결합되지 않은 위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 점이 눈에 띄는 순간, 그 사람의 성취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529.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귀중하고 보람 있는 경험이었던 이 사람과 자신을 별들의 우정이 아직도 소리 없이 묶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철학은 어떤 압제도 뚫고 들어올 수 없는 도피처를 제공한다. 그는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열정들을 찬찬히 살펴봄으로써 그것을 가라앉히려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감정의 화학이 필요하다.

 

530. “위대함을 보여주는 나의 공식은 운명애다..운명애는 모든 필연적인 것을 감당할 뿐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531. 나는 그곳에 앉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다. 선과 악을 넘어서서 가끔은 빛을, 또 가끔은 어둠을 즐겼다. 오직 낮, 호수, 정오, 끝없는 시간만 있었다. 나의 친구여, 그 때 갑자기 하나가 둘이 되었고, 차라투스트라가 내 옆을 지나갔다.

 

532. “이 작품은 홀로 서 있다.”

 

536. “네 능력을 넘어선 것은 바라지 마라. 네 능력을 넘어선 덕을 가지려 하지 마라. 너 자신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마라.” 오직 초인만이 아는 행복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의 최대 목표는 일이다.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짓을 오래전에 중단했다. 지금 나는 나의 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이냐 차라투르트라여? 해야 할 말을 하고, 산산히 부서지도록 하라!”

 

540. 강한 사람은 욕망을 이성으로 위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간단하게 나는 원한다.”라고 주장한다.

 

542. 우리는 지나치게 선한 것에 주의해야 한다. “인간은 더 선해지고, 더 악해져야 한다.”

 

543. 인간 노력의 목표도 만인의 고양이 아니라 더 훌륭하고 강한 개인의 계발이 되어야 한다.

 

547. 에너지, 지성, 자부심- 이것이 초인을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혼란스러운 욕망을 재료로 개성의 힘을 빚어내는 어떤 위대한 목적이 선별되고 통일할 때에만 열정은 권력이 된다.

 

 우리에게는 목표가 있어야 하며, 목표가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모두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법이다.”

 

561. 니체는 증명하지 않는다. 그는 발표하고 드러낸다. 그는 논리보다는 상상력으로 우리 마음을 얻는다.

 

 

570. ! 그가 밝은 모습으로 말했다. “나도 좋은 책을 몇 권 썼는데.” 그것으로 정신의 맑은 순간은 끝이 났다.

 

10) 현대 유럽의 철학자들

10-1. 앙리 베르그송

577. 너무 많이 알면 회의주의에 빠지기 마련이다. 젊은 시절 독실했던 사람은 배교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젊은 시절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늙어서 성자가 된다.

 

578. 생각할 때는 우리 과거의 작은 부분만 동원된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고, 뜻하고, 행동할 때는 우리 과거 전체가 동원된다.

 

시간은 축적이기에 미래는 결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새로운 축적이 매 단계마다 일어나기 때문이다.

 

적어도 의식적인 존재에게 존재하는 것은 변하는 것이며, 변하는 것은 성숙하는 것이고, 성숙하는 것은 자신의 자아를 끝없이 계속 창조하는 것이다.

 

579. 인간은 방향이 바뀐 힘의 초점이며, 창조적 진화의 중심이다.

 

 자유의지는 의식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안다는 뜻이다.

 

588. 생명은 노력하는 것, 위로 밖으로 계속 밀고 나아가는 것이다.

 

성장에는 스스로 추진하는 방향이 있다.

 

생명은 매 단계마다 매체의 타성과 싸워야 한다.

 

돌아다니는 것, 가서 찾는 것, 식물처럼 기다리지 않는 것은 매 순간 노력과 피로를 대가로 치르고 사는 승리다. 의식은 허락되기만 하면 곧장 본능, 습관, 잠이라는 편안한 자동성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10-2. 베네체토 크로체

605. “우리가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즐길 때 우리가 표현하는 것은 늘 우리 자신의 직관이다.

 

606. 아름다움은 적절한 표현이다. 사실 적절하지 않다면 진짜 표현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오랜 질문에 아주 간단하게 아름다움은 표현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607. 내가 지킬 것은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을 제외하면 세상에 진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도 언젠가는 가장 어두운 진실에서도 빛나는 아름다움을 볼 만큼 영혼이 강하고 맑아지는 날이 올 것이다.

 

10-3. 버트랜드 러셀
608. 10년 뒤 쉰 두살의 그가 강건하고 명랑하며 여전히 반항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것을 보자 기분이 좋았다. 그의 희망을 거의 모두 파괴하고, 그의 우정을 모두 망가뜨리고, 한때 안전하고 귀족적이던 그의 삶의 모든 끈을 끊어버린 10년을 보낸 뒤였음에도 그랬다.

 

609. 케임브리지가 평화주의를 이유로 그를 해고하자 그는 세계를 자신의 대학으로 삼고, 방랑하는 소피스트가 되었으며, 세상을 기꺼이 그를 지지했다.

 

그는 세상의 고통이 대개 신비주의, 비난받아 마땅한 모호한 사고에서 오므로, 도덕의 제1법칙은 똑바로 생각하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610. 그는 평행선이 어딘가에서 만날 수도 있고, 전체가 그 부분 가운데 하나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뻐한다.

 

613. 자유인은 유치한 희망과 인격화된 신들로부터 위로받을 수 없다. 결국에는 자신도 죽을 수 밖에 없고 만물도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용기를 내야만 한다. 굴복하지는 않는다. 이길 수는 없다 해도 최소한 싸움을 즐길 수는 있다. 또 자신의 패배를 예측하는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을 파괴할 맹목적 힘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 자유인은 이런 외부의 야만적 힘들, 아무런 목적 없는 고집으로 그를 정복하고, 그가 구축한 모든 가정과 문명을 때려 부수는 그런 힘들을 섬기지 않는다. 그는 실패에 맞서 계속 투쟁하고, 조각되고 그려진 것들의 연약한 아름다움을 적어도 수백 년 동안은 양육하고, 파르테논의 웅장한 폐허를 기리는 내부의 창조적 힘들을 섬긴다.

 

615. 자신의 의견을 성급하게 절대화하는 것이 지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뚜렷한 특징이다. 과학자들은 믿는 것이 느리며, 말할 때 마다 수정을 한다.

 

616. 우리 성격의 본능적인 부분은 아주 쉽게 변한다. 그것은 신념에 의해, 물질적 환경에 의해. 사회적 환경에 의해. 제도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새롭고 자연스러운 도덕의 두 계명: 첫째는 존중의 원리로 개인과 공동체의 활력을 최대한 장려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관용의 원리로 다른 개인이나 공통체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성장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학교와 대학이라는 우리의 훌륭한 조직이 제대로 발달하고 제대로 사람을 받아들여 지혜롭게 인류의 성격을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인간은 못할 일이 없다.

 

11) 현대 미국의 철학자들

11-1. 산타야나

628. 나는 그저 독자를 대신하여 독자가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는 원칙들을 표현하려는 것뿐이다.

산타야나는 겸손하게도 자신의 체계 외에 다른 체계들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누가 다른 맥락이 더 좋다고 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내 맥락에서 생각해달라고 요청하지 않는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전망이 앞에 더 밝게 펼쳐지도록 영혼의 창을 최대한 깨끗하게 닦으라고 말한다.”

 

628. 우리는 북북서로 향할 때, 즉 선험적으로만 관념론자가 되어야 한다. 남풍이 불어올 때는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640. 어떤 인종은 분명히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 존재조건에 더 철저하게 적응함으로써 그들의 정신은 승리와 여유와 상대적 안정을 얻었다.  

 

644. 우리에게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 없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좋은 것에 맞추어 살 용기만 필요할 뿐이다.

삶이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가정은 여러 가정들 가운데 가장 필수적인 것이지만, 만일 가정이 아니라면, 결론으로서는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결론이다.

 

완벽에는 비극이 있다. 완벽이 생기는 우주 자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 완벽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렸을 적 나는 완벽하길 꿈꾸었다. 왜 그다지도 완벽을 꿈꾸었던 것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645. 지혜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쪽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것, 세상을 적대시하지 않고 거리를 두는 것, 덧없는 아름다움을 반기고 덧없는 고난에 동조하면서도 그들이 덧없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는 것.”

 

사람은 살기 위해서는 죽음보다 삶을 기억해야 한다. 멀고 완벽한 희망만이 아니라 즉각적이고 실재적인 것을 끌어안아야 한다.

 

11-2. 윌리엄 제임스

652. 참인 것들은 올바른 것이 우리의 행동으로 가는 길에서 방편에 불과하듯이, 우리의 생각으로 가는 길에서 방편일 뿐이다.

 

655. 우주는 폐쇄된 채 조화를 이루는 체계가 아니다. 서로 맞서는 흐름과 갈등하는 목적들의 전장이다. 우주는 일원적 세계가 아니라 다원적 세계임이 애처로울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656. 일원적 세계와 비교할 때 다원적 세계가 지닌 가치는 교차하는 흐름과 서로 싸우는 힘들이 있는 곳에서 우리 자신의 힘과 의지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세계에서는 그 무엇도 확정되어 있지 않고 모든 작용이 중요하다.

 

미완성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맡은 역할의 대사 몇 줄을 쓸 수 있고, 우리가 살아야만 하는 미래를 빚어내는 데 우리의 선택이 어느 정도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런 세계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은 운명의 세계가 아니라 우연의 세계다.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

 

660. 결론은 없다. 우리가 그와 관련하여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누가 결론을 내려주었는가? 점을 쳐줄 것도 없고 조언 해줄 것도 없다. 안녕

 

11-3. 존 듀이

666. 선하다는 것은 단지 복종적이고 해를 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능력 없이 선한 것은 절름발이다. 지성이 없다면 세상의 어떤 덕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무지는 행복이 아니라 자각없이 예속되는 것이다. 오직 지성이 있어야만 운명을 결정하는데 참여할 수 있다.

 

우리는 결국 본능이 아니라 생각을 신뢰해야 한다. 산업화 때문에 점점 물질화되어가는 환경에서, 우리를 둘러싼 미로처럼 복잡한 문제들에서, 본능이 어떻게 우리를 적응시킬 수 있겠는가?

 

667. 듀이는 국가를 불신하며, 사회의 일 가운데 최대한 많은 부분을 자발적 결사체가 수행하는 다원적 질서를 바란다. 그는 다수의 조직, 정당, 법인, 조합 등에서 개인 행동과 공동 행동의 화해를 본다.

 

669.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은 스스로 세속적이 되어야 한다. 지상에 머물며 삶을 해명해주면서 자립해야 한다.

 

671.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고 가끔 우리 자신의 피상성, 지방주의, 편협성과 고집, 미성숙한 불관용, 혁신과 실험에 대한 소심한 폭력에 실망한다면, 영국이 세워지고 나서 셰익스피어가 나오기까지 800년이 필요했고, 프랑스가 세워지고 나서 몽테뉴가 나오기까지 800년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갑작스러운 성장과 사춘기 경험으로 한동안 혼란에 빠지고 균형을 잃은 젊은이들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곧 성숙할 것이다. 우리 정신이 우리 몸을 따라잡고, 우리 문화가 우리 소유를 따라잡을 것이다.

 

우리가 부만이 아니라 자유까지 숭배할 때, 우리 또한 우리의 르네상스를 누릴 것이다.


옮긴이의 글

717. 듀런트가 이 이야기를 쓰면서 노린 것은 전문화되고 파편화되어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불가해한 학문으로 전락한 철학을 그 상아탑에서 끌어내, 현실을 해석하고 또 때로는 바꿀 수도 있는 생각의 무기로 다시 다듬어내자는 것이었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효한 철학자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제시한 책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718. 이런 듀런트의 목표가 현실화되고 또 실제로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에 듀런트 자신이 철학을 받아들인 경험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719. 이 책이 엄청나게 팔려 듀런트는 평생 여행하고 글만 쓰며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 참으로 부럽다 ^^

               

이렇게 철학이야기에는 듀런트 자신이 젊은 시절 정신적으로 방화하며 여러 사상을 탐색하던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을 노동자들과 나누고나 하는 열정이 그대로 녹아 있다.

- 저자의 경험이 담겨 있기에 아마 이 책이 나 같은 철학 무지렁이에게도 와 닿는지 모른다.  

 

이 이야기에는 한 젊은이가 지금 이 곳의 문제와 씨름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리는 근거로서 철학이 뜨겁게 살아나는 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세상에 좋은 철학 책은 많지만, 이렇게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흔드는 책, 거대한 철학자들을 우리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반자로 만들어주는 책, 우리의 현실이 곧 철학이 지닌 근본 문제의 출발점임을 알려주는 책은 달리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 나 또한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흔들어주는 책을 써보고 싶다. 아마 그렇기 위해서는 내 열정이 오롯이 담겨야 할 것이다. 내가 스스로 뜨겁게 온몸을 담궈 봐야 할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중요 철학자들의 이야기들을 시간 순으로 보여주고 있어 철학자의 삶을 통해 시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철학이 없는 시대에 이르러서는 같이 통탄하기도 했고, 철학이 발전하는 시기에는 나 또한 마음이 풍요로워 지는 듯 했다.

 

철학자의 삶 또한 성장 배경에서부터 발간한 책과 사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물 흐르듯이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한 인간의 위대한 일생을 오롯이 느끼게 하면서 그의 철학을 함께 전달하고 있어 사상에 대한 감동도 더해지는 것 같다.

더불어 단순한 천재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감옥에 갈 위기에 쳐해 도망을 치거나, 렌즈를 갈거나, 외로움을 느끼거나, 청혼을 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양말도 철학을 적용해 신거나 하는 등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반해 때로 웃기도 때로 울기도 했다.

 

이전에 읽은 러셀의 책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쉽고 재미나게 읽혔던 것 같다. 듀런트의 재치 넘치는 문체도 좋았다. 각 장의 앞에 철학자들을 요약해놓은 내용도 명쾌했고 철학자들을 만나러 간다는 설레임을 주는 촉매제가 되어 주기도 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는 이 책이 너무 일찍 출판된 것이 아쉬워졌다. 듀런트가 지금까지 살아 21세기의 철학자들에 대해 논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 아쉬운 점은 주석이 책의 맨 뒷장에 위치해 찾아보기가 다소 번거로웠다는 것이다. 각 장의 바로 아래 쪽에 읽었더라면 더욱 쉽게 읽을 수 있었을 듯 하다. 또한 저자가 언급했던 것처럼 동양철학사가 빠져 있는 점도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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