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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7일 11시 09분 등록

철학이야기_구달리뷰#10 (2014. 6. 17)

윌 듀랜트 지음

정영목 옮김

봄날의책 출판

 

1. 저자에 대하여

 

윌 듀랜트 (William James Durant, 1885~1981)

 

<철학이야기>의 탄생

1914년부터 는 한 교회(Labor Temple)에서 주2회씩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철학, 문학, 과학, 음악, 예술의 역사에 대한 강좌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는 훗날 그의 ‘철학 이야기’와 ‘문명 이야기’의 밑거름이 된다. 1917, 그는 첫번째 저서 ‘Philosophy and the Social Problem’을 내고, 박사 학위를 따고, 콜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수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자, 자신의 자리를 사임한다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13년간 계속된다.

 

1921, Little Blue Books’ 시리즈의 발행인인 줄리어스(E. Haldeman-Julius)가 우연히 듀랜트의 강의를 듣고, 강의를 책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듀랜트는 돈을 벌기 위해 강의를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정성과 집요함에 결국 11권의 소책자를 모아 1926 <철학 이야기>가 세상에 내놓았다. 듀랜트는 이 책을 위해 11년간 준비를 하였으며, 500권의 철학서 원전을 읽고, 3년간 썼다. 그리고 출판되자 마자 이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단 기간 내에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윌 듀랜트의 생애와  50년의 혼이 깃든 대작 <문명이야기>

 

1885 11 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노스 애덤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유 교육 실험학교인 페레르 근대학교(the Ferrer Modern School)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자유주의 교육을 실험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그의 삶의 동반자인 에이리얼(Ariel)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에이리얼과의 만남을 통해 그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인류에게 선물하게 된다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50년이 넘는 집필기간을 통해 탄생하게 되는 <문명이야기>이다.

 

런트는 사랑하는 아내 에이리얼과 함께 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1926년에 출간된 자신의 저서 『철학 이야기』의 성공으로 1년 후 교직을 떠날 여력이 생긴 듀런트 부부는 가끔 씩의 평론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업시간을(매일 8시간에서 14시간)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에 바쳤다.

 

보다 철저한 준비를 위해 1930년에는 이집트와 근동, 인도, 중국, 일본 등지를 직접 탐방하고 1932년에 다시 일본과 만주, 시베리아, 러시아, 폴란드 등지를 방문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문명 이야기』시리즈의 제1권 『동양 문명』(1935)이다.

 

이후 몇 번인가의 유럽 방문을 거쳐 제2권 『그리스 문명』(1939)과 『카이사르와 그리스도』(1944)가 준비된다. 1948, 터키와 이라크, 이란, 이집트, 유럽 등지에서 체류하며 제4권 『신앙의 시대』(1950)를 저술하고, 1951년에는 제5권 『르네상스』(1953)를 출간했으며, 1954년부터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독일, 프랑스, 영국에 대한 추가 연구를 시작해 종교 개혁을 새롭게 조망한 제6권 『종교 개혁』(1957)을 발표했다.

 

이들 저작을 준비하는 데 있어 듀랜트 여사의 역할은 매년 그 비중이 더욱 커져 갔으며, 7권 『이성의 시대가 시작되다』(1961)에서는 그 기여도가 너무나 커 책 표지에 두 사람의 이름이 공저자로 나란히 오르게 된다. 『루이 14세의 시대』(1963)와 『볼테르의 시대』(1965), 『루소와 혁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으로 두 부부는 공동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75년 제11권 『나폴레옹의 시대』의 출간을 끝으로 50년에 걸친 이 대작은 완결된다.

 

1977년 발간된 <두 사람의 자서전(A Dual Autobiography)>에서 자신들의 공동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에이리얼 듀랜트(Arial Durant) 1981 10 25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윌 듀랜트도 그로부터 13일 후 11 7일에 96세를 일기로 그녀를 뒤따랐다.

 

윌 과 에이리얼 부부는 50년간 11권의 <문명이야기>를 써냈다. 그리고 그들은 죽기 전엔 <역사 속의 영웅들>이란 책을 쓰다 영면하였다. 13살 차이의 아내와 13일 간격으로 세상에 작별인사를 했다. 살아 있는 동안 그 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지적, 영혼의 반려자로 함께 아주 오래 살았고, 또 함께 떠났다.

 

그는 따뜻한 남편으로 평생을 아내 에이리얼과 아름다운 동행을 하였다삶의 동반자이상적 동료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역사가 참혹하고 어두운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수 많은 저작에서 유머와 재치 그리고 낙관적 시선을 유지하게 해 주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듀란트는 ‘통찰’의 대가이기도 하다하나의 주제를 잡으면 그것을 꿰뚫는 무언가를 찾아내고엮어낸다문명에 대한 주제를 정하고 50년 동안 책을 쓴 것을 보면 듀란트의 엄청난 인내와 끈기도 엿볼 수 있다.  

철학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특히 철학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터득하려고 사람에게는 이 책이 아주 유용할 것이다.

 

2. 내가 저자라면

 

저자가 말하는 철학은 종합적 사고를 통하여 지혜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대순 계단식 전개 방법을 썼다. 현대의 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부터 시작된 선배 철학자들의 빚을 지고 있다. 그 흐름을 열댓 명의 기둥이 된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시대적 역사와 주요사건들과 함께 풀어나갔다.

 

러셀은 좀 지루했지만 듀랜트는 쉽고 재미있었다. 듀랜트 특유의 유머를 양념처럼 뿌렸기 때문일 것이다. 지루한 철학책을 이렇게 재미있게도 쓸 수 있구나 하고 감동했다.

 

러셀이 수학자답게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라면 듀랜트는 인간의 냄새가 난다. 그는 철학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먼저 설명함으로써 그의 사상으로 접근하기 쉽게 유도한다. 또한 소제목으로 세분하여 다양한 관점으로의 접근이 이 책의 구성적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듀랜트는 독자들이 어떤 방향으로 철학에 다가서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건 아마도 이 책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록을 기초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인생이란 우리의 본질과 경험하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빛과 불꽃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라는 니체의 말을 머리글에 인용한 것을 보라. 이는 바로 철학과 철학도들이 가야 할 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듀랜트 자신도 즐기면서 철학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즐거운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음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가 있었다. 

 

3. 마음의 장절

 

9

지식의 인간화를 위한 최초의 노력은 플라톤의 <대화>였다. 플라톤은 두 가지 글을 썼는데 하나는 아카데메이아 학생들을 위한 전문적인 글이었고, 다른 하나는 글을 아는 아테네의 보통사람들을 철학의 귀한 즐거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중적인 대화체로 쓴 것이었다. 철학을 문학으로 변형하거나, 드라마로 극화하거나, 아름다운 문체로 꾸미는 것이 플라톤에게는 철학에 대한 모욕이 아니었다. 역사의 유머인지 그의 전문적인 글은 사라지고 대중적인 글만 남았다.

 

=> 윌 듀런트가 철학이야기를 플라톤의 <대화> 같은 문학적 아름다운 문체로 쓸 것이라는 예감에 흥분된다.

 

11

독자들은 철학이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12

이 책은 완전한 철학사가 아니다. 이 책은 우뚝 솟은 인물들 주위에 사상 이야기를 배치하여 지식을 인간화하려는 시도다. 여기에 선택된 사람들이 생명을 얻는데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비중이 낮은 몇몇 인물을 생략했다.

 

14. 유머라는 양념

무서운 얼굴로 즐거움을 쫓아버리는 지혜는 지혜롭지 않기 때문일 뿐 아니라, 큰 전망에서 태어난 유머는 철학과 친족 관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머가 있다는 평판은 정치가나 철학자에게는 재앙이다. 독일은 쇼펜하우어의 운첼만 이야기를 용서할 수 없었다. 오직 프랑스만 볼테르의 위트와 재기 발랄함의 깊이를 알아 보았다.

 

=> 저자의 유머 감각이 얼핏 스치기 시작한다. 쇼펜하우어와 볼테르가 기대된다.

 

15

이 책은 머리말이자 권유에 불과하다.

 

스피노자는 읽는 것이 아니라 연구해야 한다. 유클리드에게 다가가듯이 다가가야 하며, 200쪽의 짧은 책(윤리학)에 금욕적인 한 사람이 과잉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깎아내고 자기 평생의 생각을 담아 놓았다. 이 책을 한번에 다 읽지 말고 여러 번 자리에 앉아 조금씩 읽어라. 그렇게 다 읽었으며 이제 비로소 이해의 첫 단계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라. 그때부터 주해서, 예를 들어 플록의 <스피노자>나 마티노의 <스피노자 연구>를 읽어라. 둘 다 읽으면 더 좋다. 마지막으로 <윤리학>을 다시 읽으라. 그러면 완전히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두 번째로 읽으면 철학을 영원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 독서법에 대하여 저자가 강의하고 있다. 철학이 어렵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깊이 들어가 공부하지 않으면 피상적이 되고 그렇게 해서 공부 맛을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간은 부족하고 할 공부는 많고그러할 지라도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갈 일이다.

 

17. 독자에게

나는 인식론이 현대 철학을 납치하여, 거의 망쳐버렸다고 믿는다. 인식 과정 연구가 심리학이 할 일이다. 분석은 과학에 속하며, 우리에게 지식을 준다. 철학은 지혜를 위한 종합을 주어야 마땅하다.

 

23. 서론, 철학의 쓸모에 관하여

 

철학에는 즐거움이 있다. 심지어 신기루 같은 형이상학에도 매혹이 있다. 이것은 육체적 생존의 비루한 요구들 때문에 사상의 고원에서 경제적 투쟁과 이득의 장터로 질질 끌려 내려오기 전까지 모든 연구자가 느끼는 것이다. 귀중한 기쁨이던 시절을 경험했다. 젊은 시절 지혜에게 구애를 하던 마음의 자취가 늘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의미를 잃고 혼돈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 안에 뭔가 핵심적이고 중요한 것이 있다고 믿는다.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 또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을 늘 빛이나 불꽃으로 바꾼다는 뜻이다.”

 

=> “작가란 만나는 모든 것을 글로 바꾼다는 뜻이다.”

 

24

우리는 지금 사물을 그들의 영원한 모습으로, ‘영원의 빛 속에서보고 싶어한다. 우리는 불가피한 것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미소를 짓고 싶어한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지혜를 지극히 사랑하여 그 가르침에 따라 단순하고, 독립적이고, 통 크고, 신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마음에 좋은 것을 구하라. 그러면 나머지는 따라오거나, 아니면 없어도 아쉽지 않을 것이다. 진리가 우리를 부유하게 해주지는 못하지만 자유롭게는 해줄 것이다.

 

25

모든 과학은 철학에서 시작하여 예술로 끝난다. 철학은 진리의 공성전 맨 앞줄에 있는 참호다. 과학은 이미 장악한 영토다. 그 뒤의 안전하게 확보한 지역에서는 지식과 예술이 불완전하지만 경이로운 세계를 건설한다. 철학은 승리의 열매를 딸인 과학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거룩한 불만족 속에서 불확실하고 탐사되지 않은 곳으로 계속 나아간다. 과학은 분석적 묘사이고 철학은 종합적 해석이다.

 

26

철학이 없는 과학, 관점과 가치판단이 없는 사실은 파괴와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없다. 과학은 우리에게 지식을 주지만, 지혜를 줄 수 있는 것은 철학뿐이다.

 

26-27. 철학의 담론분야

1. 논리학: 사고와 조사에서 이상적인 방법을 연구한다.

2. 미학: 이상적인 형식, 즉 아름다움을 연구한다. 이는 예술의 철학이다.

3. 윤리학: 이상적인 행동을 연구한다. 최고의 지식은 선악과 삶의 지혜에 관한 지식.

4. 정치학: 이상적인 사회조직을 연구한다.

5. 형이상학: 모든 사물의 궁극적 실재를 연구한다. 즉 물질(존재론), 정신(철학적 심리학), 정신과 물질의 상호관계(인식론) 등의 진정한 최종적 본질을 연구한다.

 

=> 이렇게 해체해 놓으니 그 아름다움과 기쁨은 사라진다. 오그라든 추상성이나 형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천재, 철학자를 찾아 나서자. 연구원들이 먼저 해야 할 연구가 철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철학은 가장 높은 수준의 음악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장 플라톤

 

32

기원전 490~470년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질투를 잊고 힘을 합해 그리스를 아시아 제국의 식민지로 만들려던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 휘하의 페르시아군을 물리쳤다. 젊은 유럽과 노쇠한 동방이 맞붙은 이 싸움에서 스파르타는 육군 아테네는 해군을 제공했다. 전쟁이 끝난 뒤 스파르타는 군대를 해산했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수반되기 마련인 경제적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아테네는 해군을 상선 선단으로 바꾸어, 고대 세계 최대의 교역 도시로 부상했다. 스파르타는 농사를 지으면 은둔과 정체에 빠져든 반면 아테네는 번잡한 시장과 항구가 되어, 여러 인종의 사람들, 다양한 종교와 관습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이런 접촉과 경쟁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비교하고 분석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33

아마 최고의 회의주의자는 상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보았기에 너무 많이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신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점차 과학을 다듬어 갔다. 교환이 점점 복잡해 지면서 수학이 성장했고, 항해가 점점 대담해 지면서 천문학이 성장했다. 부자가 늘면서 연구와 사교의 전제조건인 여가와 안정이 확보되었다.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취에 자부심을 느껴 밖으로 더 멀리 나갔다. 자신이 있는 곳에 관한 모든 지식을 흡수할 뿐만 아니라, 점점 넓게 연구하려 했다. 마법과 제의가 서서히 물러가면서 과학과 통제가 들어섰다. 그리고 철학이 시작되었다.

 

이런 사고의 흐름의 자연스러운 종결점은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60)의 유물론이었다. “현실에는 원자와 공허 밖에 없다.” 이것이 그리스 사유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플라톤 시대에는 한동안 지하로 내려갔다가 에피쿠로스(기원전 342-270)에게서 다시 나타났다.

 

34

그들의 정치학은 두 학파로 나뉘었다. 한 학파는 루소처럼 본성이 선하고 문명이 악하다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오직 계급을 구분하는 제도 때문에 불평등해 진다고 보았다. 법은 약자를 묶고 지배하기 위한 강자들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학파는 니체처럼 자연은 선악을 넘어선다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도덕은 강자를 제한하고 저지하려는 약자의 발명품이다. 권력은 인간의 최고의 미덕이자 최고의 욕망이다.

 

35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0-400)이 벌어져 스파르타 군대가 마침내 아테네의 해군을 물리치자, 크리티아스가 이끄는 아테네의 과두정치파는 전쟁에서의 비효율을 근거로 민주정치를 폐기할 것을 주장하면서 은근히 스파르타의 귀족정부를 찬양했다. 아테네가 항복했을 때 스파르타가 요구한 강화조건 가운데는 망명귀족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도 있었다. 그들은 귀국하자마자 크리티아스를 앞세우고 부자의 혁명을 선언하며 참담한 전쟁기간에 통치를 맡았던 민주정치파에 대항했다. 그러나 혁명은 실패하고, 크리티아스는 전쟁에서 죽었다. 크리티아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플라톤의 숙부이다.

 

35. 소크라테스

수많은 향연을 생생하게 증언해주는, 주독이 오른 넓적한 코 - 가장 유명한 철학자라기 보다 짐꾼의 두상이다. 그러나 다시 보면 거친 돌을 통해서도 어떤 인간적인 따스함과 허세 없는 소박함을 만날 수 있으며, 덕분에 이 못생긴 사상가는 아테네의 가장 훌륭한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사상가가 되었다.

 

36-37

스승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일을 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자신들의 식탁을 빛내달라고 초청하면 가서 먹었다. 제자들은 그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는 어느 모로 보나 생리적으로 왕성하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만큼이나 말하기를 좋아했다. 두 사람은 플라톤이 기록하지 못한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러나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를 사랑했으며, 소크라테스가 70년을 산 뒤에 죽었음에도 보내기를 아쉬워했다.

 

37

내가 아는 유일한 한 가지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마음이 거꾸로 방향을 틀어 자기 자신을 점검하기 전에는 진짜 철학은 없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말했다.

 

38

그 질문 가운데 첫째는, 덕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최선의 국가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40

오히려 군중에 속한 사람이 따로 혼자 있는 사람보다 어리석고 폭력적이고 잔인하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 아닌가?

 

41

아들이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어 아버지의 신들에게 등을 돌리고 아버지의 면전에서 웃음을 터뜨렸을 때 민주정치의 지도자인 아버지 아니토스의 감정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라.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토론에 취하게 하여 타락시킨 사람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죽는 편이 좋다. 아니토스와 메레토스는 그렇게 말했다.

 

42

그의 나이 일흔(기원전 399)이었다. 어쩌면 그는 이제 죽을 때가 되었고, 다시는 이보다 쓸모있게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들지도 모른다. “기운 내게.” 그는 슬퍼하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내 몸만 묻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43

나도 모르게 눈물이 빠르게 흘러 내렸다. 그래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 자신을 생각하며 울었다. 소크라테스 때문에 운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런 벗을 잃는다는 나 자신의 불행을 생각하면 운 것이다.

 

44

독이 심장에 이르면 끝날 걸세.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진 적이 있네, 잊지말고 갚아 주겠나? 그 빚은 반드시 갚겠네

 

45

내가 야만인이 아니라 그리스인으로,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난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소크라테스의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그는 카토처럼 민주정치를 파괴하고 가장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의 지배로 바꾸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가장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들을 발견하여 그들에게 통치할 능력을 주고 또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설득할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그가 평생 몰두하는 과제가 되었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구해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민주정치 지도자들의 의심을 사게 되었다. 친구들은 아테네가 그에게 안전하지 못하며 이 참에 세상구경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설득했다. 그래서 플라톤은 기원전 399년 세상구경을 나섰다.

46

플라톤은 총 12년을 방랑하며 모든 곳에서 지혜를 흡수하고, 모든 신전에 들어가 보고, 모든 신조를 음미했다.

 

플라톤은 기원전 387년에 아테네로 돌아왔다. 이제 그는 다양한 많은 땅의 많은 지혜로 성숙하게 무르익은 마흔의 남자였다. 젊은 시절의 뜨거운 의욕은 조금 사라졌지만, 이제 균형 잡힌 사고를 할 수 있다.

 

플라톤에게는 지식이 있고 예술이 있었다. 그의 경우에는 한 영혼에 철학자와 시인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아름다움과 진실이 서로 자기 자리를 찾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표현 매체를 창조했다. 그것이 대화였다. 그 전에는 철학이 이렇게 찬란한 의상을 입은 적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후에도 물론 없었다. 번역으로 보아도 이 문체는 빛을 발하고 반짝거리고 도약하고 보글거린다.

 

=> 플라톤은 28세에 세상 여행을 나서 12년간 이집트와 시칠리아, 이탈리아 등 그 당시 전세계와 다름없던 곳을 샅샅이 여행했다. 플라톤도 노마드였다. 그 여 행을 통하여 그는 진정한 철학자요 시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렇듯 여행은 사람을 무르익게 만든다.

 

47

플라톤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렇게 철학과 시, 학문과 예술이 매혹적으로 섞여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대화의 어떤 인물의 입장에서, 어떤 형식으로 말하는지 쉽게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는 농담과 비꼼과 신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간혹 당황하게 된다. 플라톤은 오직 우화로만 가르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내가 나이 든 사람으로서 그대 젊은이들에게 우화로 말할까, 아니면 신화로 말할까?”

 

49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산아제한과 우생학, 니체의 도덕성과 귀족정치 문제, 루소의 자연복귀와 자유의지론적 교육문제, 베르그송의 생의 약진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여기에 모든 것이 있다. “플라톤이 철학이고 철학이 플라톤이다.”

 

54

왜 내가 묘사한 그런 소박한 낙원은 결코 오지 않을까? 플라톤은 대답한다. 탐욕과 사치 탓이다. 사람들은 소박한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소유욕이 있고, 야망이 있고, 경쟁심이 있고, 질투심이 있다. 그것은 이미 가진 것에 곧 싫증을 내고, 가지지 모산 것을 갈망한다.

 

56

국가도 사람과 같습니다. 사람들의 성격이 변하면 정부도 변합니다. 국가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본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지금 이런 상태인 것은 그 시인이 지금 이런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더 나아지기 전에는 국가가 더 나아질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58

명상과 이해에서 기쁨을 얻는 소수가 있다. 이들은 물품도 승리도 아닌 앎을 갈망한다. 이들은 시장과 전장을 떠나, 은둔하여 얻는 고요하고 명료한 상태에서 생각에 몰입한다. 그들의 의지는 불이라기 보다는 빛이며, 그들의 안식처는 권력이 아니라 진리다. 이들은 지혜의 사람들이며, 세상에 이용당하지 않고 한쪽에 물러나 있다.

 

63

신을 믿는 것에 불멸에 대한 개인의 믿음이 보태지면 더 좋다. 다음 생에 대한 희망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죽음에 맞서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견딜 용기를 준다. 신앙을 갖고 싸우면 두 배로 무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을 믿는 것은 우리에게 해를 주지 않으며,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한없이 이익을 줄 수도 있다.

 

65

젊은이들이 처음 철학의 맛을 보면 마치 가까이 오는 모든 것을 찢고 무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강아지처럼 재미 삼아 논쟁을 하고, 늘 논박하고 반박한다. 귀한 즐거움인 철학은 주로 두 가지를 의미한다. 명료하게 생각하는 것, 즉 형이상학이다. 그 다음에는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 즉 정치학이다.

 

77

정의란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79

각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보다 나은 협력이 무엇이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모든 사회가 생존을 위해 추구해야 하는 조직적 목표다.

 

89

늙는 법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지만, 플라톤은 알았다. 솔론처럼 배우고 소크라테스처럼 가르치며, 의욕에 찬 젊은이들을 인도하고, 동지들의 지적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가 제자들을 사랑하듯이, 제자들도 그를 사랑했다. 그는 그들의 철학자 이자 안내자일 뿐 아니라 친구이기도 했다.

 

91.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다른 어떤 사상가도 세계의 계몽에 그렇게 기여한 적은 없다.

그 뒤의 모든 시대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의존하며,

진리를 보기 위해 그의 어깨에 올라선다.

다른 어떤 정신도 그렇게 오랜 시간

인류의 지성을 지배한 적은 없었다.

 

144-145

나는 그곳에서 철학의 가족 가운데

만인의 찬사를 받고, 만인의 존경을 받는 스승,

지식 있는 자들의 스승을 보았다.

그 곳에서 플라톤도 보앗고, 소크라테스도 보았는데,

그 두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그 사람 가까이에 서 있었다.

 

이런 시구들을 보면 1000년 동안 이 스타기로스 사람이 얼마나 큰 명예를 얻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새로운 도구, 축적된 관찰, 끈기있는 실험을 통해 과학이 다시 태어났다.

 

146

대사제였던 에우리메돈은 기도와 제사가 소용없다고 가르쳤다는 혐의로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소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를 살해한 배심원이나 군중보다 훨씬 적대적인 사람들이 자신을 재판에 넘길 수도 있는 상황임을 알았다. 그는 지혜롭게도 아테네가 철학에 두 번 죄를 지을 기회를 주지 않겠다고 말하며 아테네를 떠났다. 아테네에서 고발당한 사람은 언제나 망명을 택할 권리가 있었다.

 

210.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과 거의 같은 해에 페르난도는 유대인을 발견했다.

 

213

이 아가씨는 자신에게 찾아온 이 기회를 마다할 만큼 지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구혼자가 값비싼 선물을 들고 오자 스피노자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우리의 주인공 스피노자는 틀림없이 이 순간 철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 참으로 유머가 넘치는 구절이다.

 

214

철학의 목표는 다양성 속에서의 통일성, 물질 속에서 정신, 정신 속에서 물질을 인식하는 것이다. 대립물과 모순이 만나고 합쳐지는 종합을 찾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 하나하나가 스피노자 사상의 내밀한 구조를 구성했다.

 

215

그가 매력을 느꼈던 것은, 모든 형태의 물질의 바탕에 있는 동질의 실체와 모든 형태의 정신의 바탕에 있다는 또 다른 동질의 실체라는 데카르트의 개념이었다. 실재가 이처럼 궁극적인 두 실체로 분리된다는 주장은 통일을 향한 스피노자의 열정에 불을 지피는 도전이었으며, 축적된 그의 사고에 수태를 자극하는 정액 역할을 했다.

 

217

이로써 지금부터 누구도 이자와 입에서 나오는 말로 대화하지 말고, 글로 생각을 나누지 말고, 누구도 이 자에게 어떤 일도 해주지 말고, 누구도 이 자와 한 지붕 밑에서 거하지 말고, 누구도 이 자에게 4 큐빗 이내로 접근하지 말고, 누구도 이 자가 구술했거나 손으로 쓴 글을 읽지 말라고 모두에게 경고 하노라.

 

회당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붙어 사는 네덜란드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 때문에 유대교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리의 핵심적인 부분까지도 의심하는 사람을 파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참으로 엄청난 유대교의 파문령이다. 이렇게 철저한 사회적 매장을 당하고도 굿굿하게 자신의 길을 간 스피노자는 그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

 

218

그들의 종교는 그들에게 신앙인 동시에 애국심이었으며, 회당은 의식과 예배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삶의 중심이었다. 스피노자는 진실성의 의문을 제기했던 <성경>은 그들 민족의 휴대용 조국이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그들은 이단이 반역이고 관용은 자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스피노자는 유대인을 넘어 온 세상에 속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219

스피노자는 용기 있는 태도로 조용히 파문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이 젊은 학자는 이제 무자비하고 가혹한 고독을 맛보게 되었다. 고독 가운데에서도 유대인이 자기 민족에게서 고립되는 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것도 드물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떠나라고 명령했다. 누이는 얼마 안 되는 유산마저 속임수로 빼앗았다. 예전 친구들은 그를 피했다. 이러니 스피노자의 글에서 유머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224

자연은 적은 것으로 만족한다. 자연이 그러하다면 나도 그러하다.

 

226

현재의 평온을 사랑하기에 공적인 교사라는 자리에 들어가는 일은 삼가야 할 듯 합니다.

 

227

학식 있는 사람들은 그의 지혜 때문에 그를 존중했듯이, 소박한 사람들은 그의 부드러움 때문에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230

유대인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에 대한 기독교도들의 증오 때문이다. 유대인은 박해 때문에 종족의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통일성과 연대를 얻을 수 있었다. 박해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유럽의 여러 민족과 결혼하여 섞이고 사라졌을 것이다.

 

231. 지성 정화론

스피노자는 왜 자신이 철학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 들려준다.

 

영원히 지속되는 지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혹시 발견하고 얻을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영원하고 무한한 것을 향한 사랑만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안전한 쾌락을 정신에게 줄 수 있다. …최고의 선은 정신이 자연 전체와 이루는 합일을 아는 것이다. 자연의 질서를 이해할수록 쓸데없는 것들에서 자유를 얻는 일도 쉬워진다.

 

=> 스피노자는 자연과의 합일을 최고의 선이라 했다. 자연을 신과 같다고 보았으니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자연과 하나되는 삶은 나의 경험으로 봐도 그것이 선인 것은 맞는 말이다. , 떠나자, 자연으로!

 

232. 스피노자의 단순한 행동규칙

1. 사람들에게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이야기 한다.

2. 건강 보전을 위해 필요한 쾌락만 누린다.

3. 삶과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만큼의 돈만 구한다.

 

237-238. 자연과 신, 실체, 속성, 양태

양태는 실재를 일시적으로 표현하는 개별적인 사물이나 사건, 어떤 특정한 형태나 모양이다. 당신, 당신의 몸, 당신의 생각, 당신의 집단, 당신의 종, 당신의 행성이 양태다. 이 모든 것은 그 뒤와 밑에 놓여있는 어떤 영원하고 변함없는 실재의 형태, 양태, 또는 말 그대로 최신 유행이다. 그 밑에 놓인 실재란 무엇인가? 스피노자는 그것을 실체Sub-stance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그대로 풀이하자면 밑에 있는 것이 된다. 본질적 존재, 또는 본질을 가리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같은 영원히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이며, 다른 모든 것은 이것의 형태 또는 양태라는 말이다.

 

실체를 자연이나 신과 동일시 한다. 자연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능동적이고 생명이 넘치는 과정으로, 스피노자는 이것을 낳는 자연이라고 부른다. 베르그송의 생의 약진창조적 진화인 셈이다. 이 과정의 수동적 산물은 태어난 자연이다.

 

239

신의 무한한 본성으로부터 만물이 나온다. 신과 세계의 관계는 원의 법칙과 모든 원의 관계와 같다. 실체와 마찬가지로 신은 인과의 연쇄 또는 과정이며, 만물의 바탕이 되는 조건이며, 세계의 법칙과 구조다.

 

240-241

따라서 자연의 어떤 것이 우리에게 우스꽝스럽거나 터무니없거나 악해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물을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자연 전체의 질서와 일관성을 대체로 모르는 탓이다. 또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이성의 명령에 따라 배치되기를 바라는 탓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의 이성이 나쁘다고 선언하는 것은 우주적 자연의 질서와 법칙에서는 나쁘지 않고, 다만 따로 떼어낸 우리 자신의 본성의 법칙에서만 나쁠 뿐이다. 선과 악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만 생각하면 확실한 것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똑 같은 것이 동시에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음악은 우울한 사람들에게는 좋고, 애도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쁘며, 죽은 자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243. 물질과 정신

오직 하나의 과정이 있을 뿐이며, 이것이 안에서는 생각으로 보이고, 밖에서는 운동으로 보인다. 오직 하나의 실체가 있을 뿐이며, 이것이 안에서는 정신으로 보이고, 밖에서는 물질로 보이지만, 실제로 둘은 갈라 놓을 수 없고 통일되어 있다.

 

정신의 결정, 몸의 욕망과 결정은하나이자 같기때문이다. 온 세상은 이런 식으로 이중적인 동시에 통일되어 있다.

 

=> 내가 나를 생각해 봐도 몸과 마음이 하나이다. 어느 하나가 아프면 나머지 하나도 따라서 아프기 마련이고, 둘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246

인간은 자신의 결의와 욕망은 의식하지만 자신이 바라고 욕망을 갖도록 유도하는 원인은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스피노자는 자유의지를 느끼는 것은 공중을 나는 돌이 스스로 자신의 탄도를 결정하고, 자신이 떨어질 장소와 시간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인간 행동은 기하학적 법칙들처럼 고정된 법칙을 따르므로 심리학은 기하학적 형식으로 연구되어야 하고 수학적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271. 볼테르와 프랑스 계몽주의

공기와 물로 빚어진 피조물로서, 그는 지금까지 살았던 누구보다 쉽게 흥분한다. 그에게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고동치는 원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정신적 기제가 그 보다 섬세한 사람은 없으며, 그 정신의 평형은 누구보다도 빨리 바뀌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 정확하다.

 

274

내 직업은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275-276

운명은 그가 천천히 부패한 시대를 해체할 수 있도록 83년이란 생애를 주었기에, 그는 시대와 싸울 여유가 있었으며, 결국 승리자로 죽었다.

 

정말이지, 생전에 그렇게 큰 영향력을 휘두른 작가는 없었다. 망명하고, 투옥되고, 교회나 국가의 앞잡이들이 그의 책을 거의 다 판매금지했음에도, 그는 힘차게 진실로 가는 길을 만들어내, 마침내 왕과 교황과 황제가 그의 비위를 맞추었고, 세상의 반이 그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 볼테르가 등장했고, 그는 웃음으로 제압했다.”

 

277

일단 한 나라가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일을 중단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랑스는 볼테르와 더불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279

섭정은 무고한 사람을 투옥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인지 그를 풀어주고 연금을 주었다. 그러자 볼테르는 편지를 보내 숙식문제를 해결해준 데 감사하면서, 간청하건대 앞으로 그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거의 한 달음에 감옥에서 무대로 뛰어 올랐다. 그의 비극 <오이디푸스> 1718년에 제작되었으며, 45일간 밤마다 공연되어 파리의 모든 기록을 깼다.

 

=> 재기발랄한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볼테르의 일면을 본다. 그는 배짱과 용기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280

그는 철학하기 전에 우선 살고봐야 한다는 고전적 격언을 존중했다. 그는 1729년 정부가 되는대로 발행한 복권을 몽땅 사들여 큰 돈을 벌었으며, 정부는 약이 올라 씩씩거렸다. 그러나 그는 돈을 모을수록 관대해 졌다. 그의 삶이 오후로 접어들면서 그의 주위에 모여드는 피보호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그의 프랑스 사람 특유의 재치있는 펜에 유대인의 이재가 보태진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그의 다음 희곡 <아르테미르>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 복권 사서 돈을 벌다니 과연 천재는 다르다.

 

284

볼테르가 영국에서 배울 수 있는 거의 모든 것, 그 문학, 과학, 철학을 흡수해들인 빠른 속도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 모든 다양한 요소들을 받아들여, 프랑스 문화와 정신의 불로 달군 다음, 프랑스의 재치와 웅변이라는 금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통신은 영국의 정치적 자유와 지적 독립성을 프랑스의 압제나 굴레와 비교했다.

 

스스로 알지도 못했고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이 통신은 혁명을 알리는 닭의 첫 울음 소리가 되었다.

 

=> 당시는 영국이 프랑스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 있은 것 같다. 볼테르가 섭정에 의해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게 된 것이 결국 프랑스 혁명을 가져오게 한 계기가 된 것이다.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86

자연이 우리를 약간 경박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척 비참하게 살아갈 것이다. 사람은 경박해질 수 있기에 목을 매달지 않는 것이다.

 

287

때로는 멍청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웃음으로 주름살을 펴지 못하는 철학자들에게 화 있을지어다. 나는 엄숙을 병으로 봅니다.

 

292-293

프리드리히는 자유사상가로, 왕이 신민을 보듯이 교조를 우습게 보았다. 볼테르는 프리드리히가 왕좌에 오르면 계몽주의를 유행시킬 것이고, 자신은 어쩌면 플라톤이 디오니시우스에게 했던 역할을 프리드리히에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큰 희망을 품었다.

 

=> 기원전 387년에 디오니시우스는 시칠리아의 수도 시라쿠사의 통치자 였는데 자신의 왕국을 유토피아로 만들어 달라고 플라톤을 초대했다. 이 경우처럼 볼테르는 그와 가까운 프로이센의 왕인 프리드리히의 초청을 받으면 플라톤처럼 프로이센을 계몽시킬 수도 있겟다는 희망을 품었다.

 

294

생랑베르여 꽃이 피는 것은

모두 그대를 위해서라네

장미의 가시는 모두 나를 위한 것이고

그대에게는 장미뿐이라네

 

여자는 그런 것, 볼테르가 늙은 리슐리외를 쫓아냈듯이 생랑베르는 볼테르를 쫓아냈다. 그게 만물의 질서다. 1949년 연인 뒤 샤틀레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3 남자는 임종의 자리에서 만나 서로 한 마디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공동의 상실 때문에 친구가 된 것은 그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 예였다.

 

=>참으로 의연하고 멋진 내려놓음의 순간이다.

 

295

재능만 있고 질투심은 없는 문인, 서너 명과 함께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조용하게 생활하고, 각자의 예술을 계발하고, 그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고, 서로 일깨워준다면 얼마나 즐겁겠는가! 언젠가 이런 작은 낙원에서 살 날을 그려본다. 이제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 볼테르가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초청받아 포츠담에 간다. 그 곳에서 거의 매일 저녁에 대왕의 만찬에 초대받아 누리게 된 삶을 노래하고 있다. 대왕의 특급 손님으로 예술을 아는 왕과 다른 예술가들과 교제하며 생활한다면 이곳은 예술가의 낙원이 됨직하다.

 

303

방문객들을 환대하는 것은 불테르에게조차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일이 되었다. 한 지인이 찾아와 6주 동안 머물 것이라고 하자 볼테르는 이렇게 말했다. 댁과 돈키호테의 차이는 뭡니까? 돈키호테는 여관을 성으로 착각했고, 댁은 이 성을 여관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신이여 나를 내 친구들로부터 보호해 주소서, 적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307

볼테르의 손에서는 펜이 달음질을 치며 웃음을 터뜨린다. <캉디드>는 아마 모든 문학가운데 가장 훌륭한 단편일 것이다.

311

물질과 영혼은 무엇이든 서로 작용하여 함께 성장하고 쇠퇴하므로 그 본질적 유사성과 상호의존성에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혼이 순수한 영이라면 어떻게 의욕으로 몸이 뜨거워질 수 있고 몸의 열로 정신적 과정이 방해를 받을 수 있겠는가? 모든 유기체는 애초의 하나의 배아에서부터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진화해온 것이다.

 

312

인간이 최고의 지능을 갖춘 것은 인간이 원하는 것이 가장 크고 가장 넓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욕구가 없으면 정신도 없다.

 

314

한 사람이 모든 주제에 관해 글을 쓰는데, 그 하나하나가 다름 아닌 고전 급이라고 상상해보라. 이 글은 볼테르의 작품 가운데 로멘스들을 제외하면 가장 쉽게 읽히고 재치가 반짝인다. 모든 항목이 간결함, 명료함, 재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319

무슨 권리로 자유롭게 창조된 한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처럼 생각하도록 강요할 수 있을까? 미신과 무지로 이루어진 광신이 모든 세기의 병이었다. 사람들이 서로의 철학적, 정치적, 종교적 차이를 받아드리지 못한다면 생피에르 수도원장이 호소했던 영구평화 같은 것은 실현될 수 없었다. 사회적 건강을 향한 첫걸음은 불관용이 뿌리내린 교회 권력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328

인간이 어머니 자궁에 있는 식물 상태로부터, 유아기 상태라 할 수 있는 동물 상태로, 또 거기서 이성의 성숙이 느껴지는 상태로 발전하는 데는 20년이 필요하다. 인간의 구조 가운데 일부라도 알아내는 데는 3000년이 필요하다. 그의 영혼을 아는 데는 영원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죽이는 데는 한 순간이면 족하다.

 

333

볼테르와 자유주의자들은 사람을 교육하고 변화시킴으로써 지성이 천천히 평화롭게 이 고리를 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루소와 급진파는 낡은 제도를 부수고 심장의 명령에 따라 자유, 평등, 우애가 지배하는 새로운 제도를 건설하는, 본능적이고 정열적인 행동으로만 그 고리를 깰 수 있다고 느꼈다. 어쩌면 진실은 이 양분된 진영 너머에 있을 지도 모른다. 즉 본능으로 낡은 것을 부수어야 하지만, 오직 지성만이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333

한편 늙은 웃는 철학자는 페르네에서 자기 밭을 갈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337

그는 인간 정신에 큰 힘을 주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자유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묘비에는 오직 세 단어만 필요했다.

여기 볼테르 눕다

 

339. 이마누엘 칸트와 독일 관념론

나는 이미 지키고자 결심한 노선에 마음을 고정시켰다.

나는 나의 길로 들어설 것이며, 무엇도 내가 이 길을 쫓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난과 무명의 세월을 살며 거의 15년 동안 자신의 걸작을 스케치하고 쓰고 다시 썼다.

이렇게 느리게 성숙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철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적도 없었다.

 

341.

니체는 칸트를 당연하게 여기고 그 다음으로 나아간다. 소펜하우어는 ”<순수이성비판>이 독일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하며, 누구나 칸트를 이해하기 전에는 아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350

칸트는 <에밀>을 단번에 끝까지 다 읽기 위해 매일 보리수까지 다녀오던 산책을 생략했다.

 

351

칸트가 자신을 계발하고 과감하게<순수이성비판>을 발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것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큰 공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정부였다면 봉급을 받는 교수가 감히 그런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칸트는 대왕의 후계자에게 더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칸트는 이런 자유에 감사해 하면 <순수이성비판>을 멀리 내다볼 줄 알았던 진보적인 교육부 장관, 체들리츠에게 헌정했다.

 

351

사실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야말로 이 소심하고 겸손한 교수가 저지를 수 있는 최후의 범죄인 듯이 보였다. 나는 운 좋게도 형이상학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나의 애인은 아직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362

감각 경험은 조직되지 않은 자극이고, 지각은 조직된 감각경험이며, 개념은 조직된 지각이고, 과학은 조직된 지식이며, 지혜는 조직된 삶이다. 뒤로 갈수록 질서, 순서, 통일성의 등급이 높다.

 

363

정신이 망치질로 혼돈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적극적 노력이 아니라면, 어떻게 똑 같은 경험을 했는데도 한 사람은 평범하게 남고, 더 적극적이고 지칠 줄 모르는 사람은 지혜의 빛과 진리의 아름다운 논리를 보는 곳으로 올라갈 수 있겠는가?

 

371

루소가 옳았다. 심장의 느낌은 머리의 논리보다 위에 있다. 파스칼이 옳았다. 심장은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고 머리는 이것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379

100년에 걸친 철학적 폭풍우에 두들겨 맞은 지금, 이 논리학 철학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의 복잡한 구조물은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다행히도 이 위대한 건축물 가운데 많은 부분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비판 철학은 사상사에서 영원히 중요성을 띈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건축의 세밀한 부분과 바깥 구조물은 많이 흔들렸다.

우선 공간은 감각의 형식일 뿐 지각하는 정신과 독립된 객관적 실체가 없는 것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렇다는 것은 공간이란 지각된 대상으로 채워지지 않은 텅 빈 개념이기 때문이다. 공간은 확실히 외적 지각의 필연적 형식이다.

 

381

칸트의 위대한 업적은 외적 세계는 오직 감각의 결과로만 우리에게 알려진다는 것. 정신은 단순히 무력한 백지, 감각경험의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힘, 경험이 도달하는 데로 선별하고 재구성하는 경험임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383

사실 칸트는 숭배의 대상이던 낡은 오류들을 파괴하면서 그 작업의 위험성을 알았기 때문에 도덕적 신학을 통하여 허약한 임시 받침대 몇 개를 마련하고 싶었을 뿐이다. 폐가가 그의 머리위로 무너지기 전에 탈출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종교를 파괴한 뒤 하인 람페와 함께 산책을 나갔을 때 갑자기 이 늙은 하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광경을 보았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의도적 희화화임이 틀림없다.

늙은 람페에게는 신이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람페는 행복할 수 없다고 실천이성은 말해. 따라서 내 입장에서는 실천이성이 신의 존재를 보증해도 상관없어. 만일 이런 해석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두 번째 비판을 선험적 마취론이라고 불러야 하리라.

 

385

신은 프랑스인에게는 육지를 주고, 영국인에게는 바다를 주고, 독일인에게는 허공의 제국을 주었다. 이성을 비판하고 감정을 찬양하는 칸트의 태도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주의주의, 베르고송의 직관주의, 윌리엄 제임스의 실용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닦았다.

 

386

칸트의 관념론이 다양하게 혁신되면서 다양하게 손질된 계몽주의 유물론과 100년간 싸움을 벌인 결과, 이제 승리는 칸트 쪽에 닿아 있는 듯하다. 인간은 물질의 창조자다. 이제 철학은 이전의 소박했던 시절처럼 다시 순진해 질 수 없을 것이다. 칸트가 있었기에 철학은 이제 늘 달라지고, 심오해 질 수 밖에 없다.

 

397.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 덕분에 우리의 은밀할 심장이 드러났다. 그는 욕망이 철학의 원리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사고가 비인격적 사건들의 추상적 계산이 아니라 행동과 욕망의 유연한 도구라는 것을 이해하는 길을 닦아 놓았다. 그는 천재의 필요성과 예술의 가치를 우리에게 다시 가르쳐 주었다. 모든 위대한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그는 다시 한번 영웅을 고귀하게 섬기라고 설교했다.

 

401

그러나 워털루, 세인트 헬레나, 빈을 거치며 이제 정말로 끝이 왔다. 굴복한 프랑스의 왕좌에는 그 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지만 그 어떤 것도 잊지는 않은 부르봉 가문의 인물이 앉았다.

이것이 인간 역사의 전례 없는 희망과 노력을 보여준 세대의 찬란한 결말이었다. 이 비극은 얼마나 희극적인가?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뜨거운 눈물이 고여있었다!

 

403

너는 견디기 힘들고 부담스러워서 같이 살기가 어려워. 좋은 자질은 모두 자만심에 가려져있고, 다른 사람들의 험을 찾는 기질을 억누르지 못해서 세상에 쓸모가 없어.

 

408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펼치는 순간, 즉시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그 문체다. 여기에는 칸트의 수수깨끼 같은 용어도 없고, 헤겔의 불명료함도 없고, 스피노자의 기하학도 없다.

모든 것이 명료하고 질서가 잡혀있다. 모든 것이 의지로서의 세계라는 중심개념, 따라서 투쟁의 세계이고, 따라서 비참한 세계라는 중심개념으로 감탄할 만하게 집중되어있다.

단도직입적일 정도로 정직하고, 기분이 상쾌할 정도로 힘차고, 비타협적일 만큼 직접적이다.

 

433

부를 기쁨으로 전환할 방법을 모른다면 부를 얻는데 헌신하는 삶은 의미가 없다.

 

435

자신의 정신이 빈곤해서 생기는 일종의 진공흡입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강력하게 빨아드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어떤 주제에 관해 스스로 생각하기 전에 그 주제에 관해 읽는 것은 위험하다. 읽을 때는 다른 사람이 우리대신 생각한다. 우리는 그의 정신적 과정을 되풀이 할 뿐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거의 온종일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점차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세상 경험은 일종의 텍스트로 볼 수 있으며, 생각과 지식은 주석을 이룬다. 생각과 지식은 많은데 경험이 거의 없을 경우, 그 결과는 페이지마다 본문은 두 줄인데 주석은 마흔 줄 달려있는 책과 같다.

 

445

그들은 현재만을 살고 주요한 사회활동이 쇼핑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돈을 버는 것은 남자의 일이고 자기들의 일은 그 돈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들의 분업개념이다.

 

447

쇼펜하우어에게는 계속 여가를 누릴만한 돈이 있었으며, 그는 지속적인 여가가 지속적인 일보다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철학자들의 우울해지는 경향은 앉아있는 직업의 부자연스러움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공격은 단순히 배설의 기술을 잃어버린 병의 증상에 불과한 경우가 너무 많다.

 

454

쇼펜하우어는 과장은 있었지만 천재의 필요성과 예술의 가치를 우리에게 다시 가르쳐 주었다. 그는 궁극적 선은 아름다움이며, 궁극적 기쁨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임을 알았다.

 

513 프리드리히 니체

나는 그곳에 앉아 아무것도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았다.

선과 악을 넘어서서 가끔은 빛을, 또 가끔은 어둠을 즐겼다. 오직 낮, 호수, 정오, 끝없는 시간만 있었다. 나의 친구여, 그때 갑자기 하나가 둘이 되었고, 차라투스트라가 내 옆을 지나갔다.

 

521

니체는 시력이 나빠서 군인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하고 간호일로 만족해야 했다.

그는 끔찍한 광경들을 볼만큼 보았지만, 그래도 전장의 진짜 참혹한 일들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소심한 영혼은 나중에 이런 경험 없는 상태 특유의 강렬한 상상으로 전쟁을 이상화 한다.

사실 그는 너무 예민하고 민감하여 간호일에는 적당치 않았다. 피만 봐도 몸이 아팠다. 결국 그는 병이 들어 망가진 몸으로 집에 돌아갔다. 그는 나중에도 셀리 같은 뻔뻔스러움이나 칼라일 같은 배짱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사의 갑옷을 입은 소녀의 영혼이었던 것이다.

 

547

에너지, 지성, 자부심 이것이 초인을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혼란스러운 욕망을 재료로 개성의 힘을 빚어내는 어떤 위대한 목적이 선별하고 통일할 때에만 열정은 권력이 된다.

 

570

아들을 사랑하여 마지막에 마치 피에타처럼 아들을 품에 받아들인 여자, 그녀는 1897년에 죽었고, 누이는 니체를 바이마르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크라머가 그의 조각상을 제작했다. 한때 강력했던 정신이 무너진, 무력하고 체념한 모습을 보여주는 애처로운 조각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다. 제정신일 떄는 누리지 못했던 평화와 고요가 이제 그의 것이 되었다. 자연은 그를 미치광이로 만들고는 자비를 베풀었다. 한번은 누이가 자신을 보며 우는 모습을 보았지만 왜 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물었다 리스벳 왜 우는 거야? 우리 행복하지 않아?

한번은 책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들였다. 그러자 그의 창백한 얼굴이 환해졌다. “!” 그가 밝은 모습으로 말했다. “나도 좋은 책을 몇 권 썼는데.” 그것으로 정신이 맑은 순간은 끝이 났다.

 

573 현대 유럽 철학자들

베르그송 ,크로체, 버트런드 러셀

베르그송은 인간의 가슴에서 영원히 솟아오르는 희망을 방어하러 나섰기 때문에 일찌감치 크나큰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은 철학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도 불멸과 신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쁘고 감사했다. 베르그송의 강의실은 자신의 마음속의 욕망이 그런 박식한 웅변으로 뒷받침되는 것을 기뻐한 화려한 숙녀들의 살롱이 되었다.

 

576-577

유물론이란 골리앗을 이길 운명을 타고난 다윗, 베르그송이 젊은 시절에는 열렬한 스펜서 지지자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베르그송은 스펜스를 공부하면 할수록 유물론적 기계론의 류머티즘에 걸린 3가지 관절을 더 예리하게 의식했다. 즉 물질과 생명 사이의 관절, 육체와 정신 사이의 관절, 결정론과 자유의지 사이의 관절이었다.

 

621. 현대 미국 철학자들, 산타야나, 제임스, 듀이

이 영혼은 마치 고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이교도 학자와 같은 억양으로 말하면서 침착하고 탁월한 안목으로 우리의 작은 세계를 살피고, 아주 차분한 추론과 완벽한 산문으로 우리의 새롭고도 낡은 꿈들을 박살냈다.

플라톤 이후 철학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된 적이 없었다.

산타야나, 그의 말은 새로운 풍미, 섬세한 질감이 느껴지는 구절로 가득했고,

섬세한 통찰로 향기를 풍겼으며,

풍자적인 위트로 가시가 박혀 있었다.

 

626

플라톤 이후 철학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의 말은 새로운 풍미, 섬세한 질감이 느껴지는 구절로 가득했고, 섬세한 통찰로 향기를 풍겼으며, 풍자적인 위트로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의 시인적 기질은 풍부한 비유로, 그의 예술가적 기질은 끌로 다듬은 문단으로 말했다. 기분 좋게도 미국은 아름다움의 유혹과 진리의 부름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661

언제쯤이나 철학은 또 다른 삶에 관한 당혹스러운 문제들은 종교에 맡기고, 인식 과정에 관한 이 까다로운 어려움들은 심리학에 맡기고, 인간의 목적을 밝히고 인간 삶의 조화와 고양을 이루는 데 모든 힘을 다할 수 있을까?

 

671. 맺음말

부는 예술의 서곡이다. 수백 년에 걸쳐 물리적 노력을 기울여 사치와 여가를 위한 수단을 축적한 나라에서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문화가 뒤따랐다. 한 민족이 철학을 할 수 있으려면 그전에 먼저 살기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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