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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2일 21시 13분 등록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_구달리뷰#11 (2014. 6. 22)

고병권 지음

소명출판

 

고병권 (1971~ )

1971년 전남 담양 출생

서울대 화학과 졸업

서울대 사회학과 사회학 박사

연구공간 수유+너머 추장

부커진R 편집인

 

저자 고병권은 니체에 정통한 철학자이다. 그는 니체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철학을 직접 적용하여 살아가는 독특한 삶의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일상에서 그는 항상 웃고 있다. 니체가 말한긍정의 힘이 그의 신체에 각인되어 있는 것일까. 웬만한 일로는 화나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가 시도하는 유머는 대개 썰렁하지만, 다른 이의 썰렁한 유머에도 그는 크게 웃는다.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으며, 친구들과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실에서 그는 자주 분노한다. 그의 분노의 대상은 주로 국가, 권력, 자본, 무기력 같은 것들이다. 친구들의 얼굴에서웃음이 사라지게 하고, 친구들을에서 내모는 그것들에 그는 눈 감거나 고개를 돌린 적이 없다. 삶에서 그것들을추방시키기 위해 그는 오늘도 친구들과 함께 웃고, 공부하고, 투쟁하고 있다.

 

그가 대표로 맡고 있는수유 + 너머는 지식 공동체의 새로운 전형으로 평가 받고 있다. 출신 학교, 전공 등의 제약 없이 누구든지 소속될 수 있고, 연구부터 생활까지 자급자족적 운영을 지향한다. 400여 평 규모의 공간엔 멋진 카페와 청소년을 위한공간 플러스도 들어 있다.

 

현재수유 + 너머에 정식 회원으로 소속돼 있는 연구자들은 60여명. 이들은 그야말로앎과 삶을 함께 하는 집단이다. 한 계절에 7, 8개 강좌가 열리며, 직장인을 대상으로 44주에 걸쳐 진행되는대중지성코스는 철학을 비롯, 문화예술, 동양고전, 글 쓰기 등 4과목을 집중적으로 강의한다. 책 속의 지식과 책상 위의 지식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지식의 형태가 특이하다.

 

단 한 번이어도 좋습니다. 함께 책을 읽어 봅시다. 함께 토론해봅시다. 함께 공부해봅시다. 혼자서 책을 읽으면 머릿속 지식에 그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사건이 됩니다." 그의 말이다.

정기적으로 책을 읽는 행사를 벌이는데,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세상과 소통하며,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동일한 주제로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해 보면,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다를지라도 서로 소통한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서>

『화폐, 마법의 사중주』그린비, 2005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린비, 2003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세종서적, 2001『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소명출판, 2001

 

니체 (Nietzsche, Friedrich Wilhelm, 1844 ~ 1900)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자. ‘생의 철학의 기수(旗手)이며,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지칭된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5세 때 아버지와 사별하고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함께 할머니의 집에서 자랐다.

 

1864년 본 대학에 진학하여 신학과 고전 문헌학을 공부했으며, 1865년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갔다,

 

그는 25세의 젊은 나이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재직 중이던 바젤 대학을 퇴직하고, 이후 주로 스위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양지에 머물며 사색과 저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1888 6개월 동안 무려 5권의 책을 출간한 이후 그 해 말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니체는 1889 1월 거리에서 쓰러진다. 바젤의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그는 그때부터 11년간 뇌 손상과 정신착란으로 살아가다 1900 8 25일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저서로는 『비극의 탄생』『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니체 대 바그너』『이 사람을 보라』등이 있다.

 

2. 내가 저자라면

 

니체는 개인의 생명을 우주적인 삶으로 확장시켰다.  자아를 초인으로 끌어올렸다.  온갖 제도와 질서에도 공격의 화살을 퍼부었다. 모든 기성사상과 가치를 인정치 않았다. 온갖 권위로부터 인간의 능력을 무한까지 해방시켜 주었다. 저자는 자신의 입으로 니체를 말하면서 사실은 니체의 입으로 저자를 말하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서술 방식은 나 자신도 모르게 니체의 이야기를  니체로부터 직접 듣는 듯한 묘한 흥분이 일게 한다.

 

구성면으로 볼 때 1부의 니체가 즐겨 썼던 핵심 단어에 대한 흐름이 좋았다. 삶을 사랑하는 철학에서부터 시작을 하여 강한 자와 선한 자, 권력의지와 무한회기, 초인에 이르기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명제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하고, 보다 나은 삶을 찾아가게 한다.

 

저자는 니체의 모든 책을 읽고, 철학적 흐름을 꿰고서 니체의 철학 사상에 대해 힘있는 문체로 잘 풀어 놓았다.  저자는 니체의 모든 책을 넘나들며 풀이해 놓아 생소한 부분도 많았다. 니체의 계보학과 해석학에 대한 부분은 난해했지만 4장 근대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은 흥미로웠고 5장과 6장의 권력의지와 영원회귀 부분은 뜨거운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저자가 제공하는 잘 정리된 주제별 세부 목차를 통해 니체의 몇 가지 사상의 정수들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어떤 작은 통찰의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1)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 대상 자체가 아닌, 대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방식과 마음자세가 중요하다.

2) 세계를 주체적인 의지와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삶을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실천으로서의 자신의 운명에 대한 사랑, 즉 아모르 파티(Amor Fati)가 주된 메시지이다.

 

그러므로 니체를 생의 철학자라 한다. 그의 철학은 살아가는데 힘을 준다. 좀더 힘껏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삶을 사랑하게끔 한다. 초인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는 자는 춤을 춘다.”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최고의 문장이다.

 

3. 마음의 장절

 

3. 책 머리에 니체는 사물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사상가다.

 

4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조각들을 빠뜨리는 걸까? 둔감한 신체 그것이 문제다. 길들여진 눈이나 길들여진 귀는 너무도 많은 것을 놓친다. 눈이 시대의 광학 훈련에 익숙해져 상식을 벗어난 어떤 것도 보지 못하고 귀가 대답 할 수 있는 질문들 만을 들으려 한다면 신체는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다. 길들여진 눈, 길들여진 귀, 무엇보다 길들여진 두뇌를 지배하는 것은 관습과 법이다. 그것들이 감각하고 그것들이 명령한다.

 

그는 또한얼음 덮인 고산 속에서 자발적으로 생존하는사람으로, 괴이하고 의심스러우며 금지되어온 모든 것들을 찾아내어 자신의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4-5새로운 사상에 길을 열고 존경 받고 있던 습관과 미신의 속박을 부수는 것이 어째서 광기가 아니면 안 되었던가를 이해하는가? 모든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자기를 미치게 하거나 미친 짓을 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미친 것아픈 것을 혼동하는 사람들은 그와 그의 사상을 정신 병원으로 보내지만, 그는 자신의 광기가 건강에 반대 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두뇌 훈련과 싸우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가 미쳤던 것은 아파서가 아니라 보편적 신념이나 시대 정신의 구속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5니체는 자신의 사상이 시대와 맞지 않는, ‘때 아닌 것이며미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자신의 철학을미래의 철학이라고 간주할 때, 미래는 과거나 현재의 다음에 오는 시간이 아니라 어느 시대든, ‘때 아닌 것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이미 와 있고 지금도 우리 곁에 있지만 감각되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시간이다.

 

5자기가 심오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명료함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5우리는 잘못 간주되어진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은 계속 자라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벗고 매년 봄마다 새 껍질을 입으며 계속해서 젊어지고 미래로 채워지며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 창조와 생성 그리고 변신이 그를 오해하게 만든다.

 

7불행한 시기에 철학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철학은 오히려 행복할 때 용감하고 성공적인 장년기의 열렬한 명랑함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꿀을 많이 모은 꿀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행복에 대해 혼동하지 않는다. 스스로 건강한 사람 만이 병을 옮기지 않고 치료를 할 수 있다. 철학을 하려거든 행복해지는 법, 건강해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는 참으로 행복조차 배워야 하는 짐승들이다.

 

문밖에서 사유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걷고, 뛰고, 오르고, 춤추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하게 웃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는 자는 춤을 춘다.

 

=> 내가 평소에 갖고 있는 철학과 참으로 일치한다. 특히문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환하게 웃고 춤추듯 걷자는 것은 거의 나의 좌우명이다. 광명한 햇살과 같은 명랑함으로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니체의 철학은 참으로 진리다.

 

8삶의 방식을 바꾸기 전에 병은 낫지 않는다. 그가 가르쳐 준 것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맛보는 법이다. 철학을 하려거든 맛보는 혀부터, 냄새 맡는 코부터, 바라보는 눈부터, 소리를 듣는 귀부터, 그리고 소화 시킬 수 있는 위장부터 바꾸어야 한다.

 

8<수유 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의 자유로운 공기와 풍성한 대화가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이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공부하기, 산책하기, 사랑하기는 배우지 못했다면 결코 니체의 철학과 윤리 정치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8대지가 제 위에서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게 존재 이상의 보답을 기대 하지 않듯이, 나도 나의 아들과 딸에게 존재 이상을 기대하지 않겠다.

 

9모든 책들은 동료를 구하는 몸짓이다.

 

18. 천 개의 길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천 가지 방식이 남아있다. 갈 길을 못 찾았다고? 그러나 길은 없어진 게 아니라 넘쳐나고 있다. 길의 부재가 아니라 과잉으로서의 카오스. 그런데 반듯한 길이 사라지고 미로뿐이라고? 덕분에 길은 여행자들에게 나눠줄 기쁨을 숨겨 둘 수 있었지

 

19. 천 개의 젖가슴 너희는 왜 바다의 욕망이 태양을 향해서 천 개의 젖가슴으로 부풀어 오르는지 모른다. 왜 태양이 그것에 입맞추고 애무하는지를 모른다. 참된 인식이란 사물들을 애무하는 것이다.

 

19우리는 동전의 앞뒤면 만 가지고도 무한한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1. 천 개의 이야기 나는 어떤 우연이는 나의 냄비로 끓인다 나의 모든 작품은 낚시 바늘이다 나는 미래로 날아간다 길게 숨을 쉬고 나서 잠수 하라. 그래야만 깊은 바다까지 볼 수 있으리라.

 

1부제1장 아모르 파티 : 삶을 사랑하는 철학 (니체와 철학 사이에서)  -25

1. 삶에 대한 철학의 공과 -25

 

28. 영양철학

잘못된 사상만큼 건강에 해로운 것도 없다. 청명한 날씨가 어쩌면 철학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니체는 음식물이 철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철학은 얼마나 건강에 도움이 될까?

 

진리가 아닌 다른 목표를 추구해 보시오. 건강이나 미래, 성장, , 생명 같은 것을..

 

29

건강과 생명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니체는 분명히 삶과 생의 철학자이다. 니체 철학이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삶과 건강이며, 그가 대결하고 있는 주제는 죽음과 질병이다. 그에게서 철학은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의 대결구도 속에 놓여있다.

 

니체가 철학자들을 죽음의 설교자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이 세계 속에서의 삶을 평가절하하고, 어떤 생성도 없는 영원불멸의 세계를 염원하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생성과 소멸의 역동성을 참지 못하고 그것을 단순한 현상이나 가상으로 치부한다. 그리고는 실재계 real world, 다시 말해 참된 세계가 따로 있다고 믿는다.

 

소크라테스를 기소했던 그리스 법정은 그를땅 아래와 하늘 위를 탐구하는 기이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30

소크라테스는 죽음의 설교자라는 니체의 공격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철학을죽음을 위한 준비라고 정의했다. 플라톤 역시 영혼은 죽음을 통해서만 진리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도 죽음의 설교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 세계는 죄로 가득한 세계이며 천국은 저 세계에만 있다. 기독교인들은 삶을 괴로운 것이라 말하며, 그 이유를 우리의 죄와 연관시킨다. 삶이 불행하다고 느낌이 클수록 우리의 죄는 커진다. 이들 역시 삶을 죽음을 위한 준비에 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삶을 배신하는 삶을 살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조롱한다. “그들 역시 삶의 지푸라기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삶의 지푸라기에 매달려 있음을 비웃고 있다.”

 

31

니체는 철학이 죽음을 위하여 쓰일 게 아니라 바로 삶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유인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

 

삶으로부터 나쁜 기운을 덜어주는 철학, 삶으로부터 죄의식을 걷어내는 철학,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 삶을 긍정하는 철학, 삶을 사랑하는 철학은 가능할까? 니체는 철학이 비탄의 음울한 구름을 걷어내고 삶 앞에서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철학이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니냐고 묻는다.

 

2. 거인들의 웃음소리와 신들의 한탄  -32

 

32

상대가 자신의 무지를 고백할 때까지 소크라테스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초라함과 부족함을 고해 바칠 수 밖에 없었다. 이로써 극단적인 두 세계가 생겨난다. 초라함과 부족함의 세계, 그리고 아름다움과 완전함의 세계. 존재의 피안에 하나의 세계가 날조되었고 그것이 참된 세계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참된 세계는 하나의 신화가 되고 말았다. 이제 상상된 세계가 현실의 세계를 평가한다.

 

33

이 세계와 자기 삶에 대한 거대한 부정이 신과 진리의 위대함을 만들어 냈다.

 

38

누가 오이디푸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라고 묻는 그리스인들은 이제 프로메테우스야말로 우리의 영웅이라고 말한다. 프로메테우스 전설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인적 노력을 하는 개인은 필연적으로 신을 모독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3. 세 개의 죽음디오니소스와 그리스도, 소트라테스의 경우  -39

 

39

그리스 비극은 삶의 비극을 극복하려는 그리스인들의 명랑성을 드러낸다. 삶의 비극성은 삶에서 오지 않고 죽음에서 온다. 삶의 비극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죽음이 주는 공포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와 관계한다.

 

41

디오니소스는 여기서 저기로 뛰어다니고 춤추는 존재였다. 파괴와 혼돈으로 보였던 것은 사실 그의높이뛰기와 넓이뛰기’, 훌륭한 무용수로서 추는 춤이었다. 그가 뛰는 이유는 즐거움, 정력, 건강, 과도한 풍요 때문이었다. 니체는 디오니소스를 긍정의 신으로 이해함으로써 삶을 부정하는 기독교의 신과 대비시킨다.

 

4. 비극이 상연되는 극장과 심판의 법정  -43

 

40주신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상에서의 삶의 구속을 넘어서기 위해 일종의 혼수상태에 빠져든다. 그들은 자신들을 얽매던 과거의 모든 체험과 일상을 잊어버린다. 이때 무시무시한 충동에 자신을 내맡기는 거인족에게 하나의 충고가 던져진다. 결코 너무 많이 하지 말라일상의 한계와 구속은 넘어서는 혼수상태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면 과도함을 막고 절제를 요구한 것이 아폴론적인 것이다. 니체의 분석에 따른다면 주신 찬가는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화해와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44

원래 비극은 합창이었지 연극이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비극은 연극으로, 사람들은 관객으로 전락했다.

 

5. 미래의 철학자  -49

 

51

그 사회가 가치에 복종함으로써 길들여지는 것, 그리고 나서 그 가치를 미덕으로 숭상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류 공동체가 처한 가장 커다란 위기다. 이 과정이 지속되면 사회는 자신을 구원해줄 미래적 가치를 생산할 수 없게 된다.

 

습속과 대결했던 많은 지혜로운 인간들은 광인으로 불렸고 그들의 생각은 광기로 이해 되었다

 

52광기의 반대 되는 것은 건강이 아니라 길들여진 두뇌와 보편적 신념이다. 다시 말해서 미쳤다는 것은 길들여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뽑아내는 정신은 일반적인 구속성과 대결한다. 아픈 광인은 병원에 갇힌 환자지만 건강한 광인은 자유 정신을 지닌 전사로 등장한다.

 

6. 사랑의 의미  -56

 

56니체가 철학의 보내는 권고는 삶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삶을 사랑함은 우리가 사는 일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철학은 본래부터 사랑의 학문이다. 필로-소포스, 지혜에 대한 사랑, 그것이 철학이다.

 

57사랑하는 사람이 무엇보다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랑이 구속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즉 사랑이 구속이 아니라 자유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철학자다.

 

59삶을 변화시키는 예술로서의 철학 그것은 불가능한 과제일까?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은 철학에게 보내는 어떤 신호가 아닐까? 삶을 바꿔라. 천국에 이르는 길이 삶의 실천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하는 것이었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 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다.

 

2장 강한 자와 선한 자 (니체의 계보학)  -60

1. 계보학 1 – 비판  -60

 

63도덕 교사들의 허영심도덕 교사들은 너무나 기꺼이 만인에 대한 처방전을 주려고 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든지, 모든 사람을 도우라 혹은 네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가하지 말라등등 모든 가르침은 어떤 인간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니체는 바로 도덕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즉 일반화 할 수 없는 것까지 일반화 하기 때문에 도덕은 기괴하고 불합리한 형체를 띠고 있으며, 그 때문에 항상 절대적 태도를 취해서 특수한 형태에 대한 고려 없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64

그래서 니체는 도덕을 가리켜 어리석음, 어리석, 어리석음, 소심함, 소심함, 소심함이 섞인 잡탕이라고 불렀다.

 

2. 계보학 2 – 탐사  -64

 

66-67

계보학자는 쟁기를 든 농부나 땅을 파 내려가는 광부를 닮았다. 기원이라는 심층을 향해 파 내려가서 그들이 확인하는 것은 이질성과 다양성이다.

 

3. 도덕의 자연사    -68

 

69

도덕이야말로 인위적인 조작행위다. 니체의 말대로 모든 도덕은 되는대로 내버려두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며, 자연에 대한 어느 만큼의 억압이다.

 

73

도덕의 계보학은 도덕의 자연사를 넘어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가치에 대해 가치 평가하는 것, 도덕적 토양의 진정성을 진단하는 것으로….

 

4. 강한 자와 선한 자  -73

 

74

삶이 강화되는가, 빈혈을 겪는가, 부정되는가 등에 따라 그 토양에서 자라는 도덕적 식물의 종류는 완전히 달라진다.

 

76-77

귀족들은 나쁜 것에 대해 어떤 적의나 원한도 품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안된 것, 불쌍한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노예는 외적인 것, 다른 것,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노예는 자신과 대립하는 것,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에 대해 먼저 악이라고 규정하고 그와 상반되는 자기 자신을 선이라고 정의한다. 이리하여 좋은 것/나쁜 것(우등한 것/열등한 것)이라는 윤리적 구분이 선한 것/악한 것이라는 도덕적 의미로 바뀐다.

 

여기서 평가 양식상에 중요한 차이가 나타난다. 귀족적 평가 양식은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귀족들은 자신을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와 달리, 노예는 타자에 대한 부정과 비난에서 시작하고 있다. 긍정과 부정은 귀족적인 것과 노예적인 것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강한 자는 선한 자가 아니다. 강한 자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이다. 그러나 선한 자는 억압하지 않는 자, 보복하지 않고 그것을 신에게 맡기는 자, 자신을 숨기는 자, 인내심이 강하여 겸손한 자이다. 선한 자야말로 약한 자이다. 니체는 이상한 추장 한 명을 내세워 자신의 속내를 표현한다. “라투카족의 추장 코모로는 이렇게 말했다. ‘선한 자들은 모두 약하다. 악인이 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한 까닭에 그들은 선한 자들인 것이다.’”

 

78

강자들, 고귀한 자들의 평가 양식을 니체는거리에 대한 열정으로 표현하곤 했다.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긍정의 대상이 되며, 이들은 오히려 더 많은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노력한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나오늘의 나가 다르도록 노력하는 것, 이 때문에 거리에 대한 열정에는 자기극복의 원리도 내재해 있다.

 

=> 니체가 표현한 귀족적이고 강한 자의 특질은 자기가 하는 일과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하루하루 보다 나아지는 자신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을 경주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데카상스의 특징이기도 하다.

 

5. 약자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가?  -79

84

약자가 뭉쳐서 강자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강자를 약자로 만드는 것을 통해, 즉 강자로 하여금 더 이상 강자일 수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승리한 것이다. 니체가 약자의 도덕을 저지의 심리학이라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이상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더 이상 예외자가 되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을 통해서 약자는 승리하고 만다. 강자는 능동성 개념을 박탈당하고…… 적응이라는 개념이 전면으로 나온다.

 

6. 도덕이라는 동물원  -85

 

86

가장 결정적인 수단은 삶에 죄의식을 심어주는 것, 성직자들이 마법사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자를 죄수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모든 고통을 죄에 대한 벌로 이해함으로써 환자들이 고통에 더 이상 항거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고문실, 지옥의 발명 따위의 비도덕적 장치들이 이들의 승리를 증명한다.

 

어떤 야성도 잃어버리고 오로지 창살에 몸을 비비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도덕의 가장 이상적인 장소는 동물원이다. 성직자는 맹수 조련사다.

 

87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놀던 야수가 동물원에 갇히게 되었을 때 그것은 과연 개선된 것인가? 공포감과 고통, 상처, 굶주림이 야수를 병약한 짐승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먼저 고결한 저 세계를 설정하고 이 세계에 대한 평가절하가 일어났다. 불교의 모든 것은 헛되다는 가르침에 이르기 까지 부정의 운동은 무를 향해서만 나아간다. 약자의 운동, 노예적 도덕을 이끌어 온 힘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허무주의, 허무에 대한 의지이다.

 

=> 결국 무엇인가? 야성을 잃어버린 인간은 동물원의 야수로 살다가 허무 속으로 사라져간다는 이야기이다.

 

7. 선악을 넘어서  -88

88

르네상스의 덕은 하나의 힘이나 능력이다.

 

89

중력이나 전자기력처럼 덕도 사람을 당기고 밀치면서 행사되는 실제적 힘인 것이다.

악이란 해로운 만남에 불과하며 일종의 소화불량과 같은 것이다.

 

90

악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그것은 내 신체에 해로운 존재나쁜 음식이나 나를 슬프게 만드는 사람 따위와의 마주침에 적합한 말일 것이다. 악이란 지금 현재의 조건 속에서 나에게 맞지 않는 것과의 마주침이다. 다른 관계 속에서 만났거나 내가 훨씬 강한 소화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악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상태에서는 해로운 존재, 그것이 바로 악이다.

 

모든 것은 아담의 무능력에서 기인한다. 신은 아담의 능력에 맞추어, 그 과일은 다른 짐승에게는 좋은(선한) 과일일 수도 있지만 지금 아담의 몸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나쁜(악한) 것이라고 말한 셈이다. 그러나 아담은 어린애처럼 이것을 도덕적 금지로 인식했던 것이다.

3장 투시주의와 광학의지 (니체의 해석학과 니체에 대한 해석학)  -92

1. 헤르메스가 전하는 메시지  -92

92

해석학hermeneutics이라는 말의 유래가 된 그리스의 신 헤르메스Hermes는 신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자였다.

 

93

이는 결국 해석학자가 신의 참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르메스의 해석(헤르메스가 이해한 바로서의 신의 목소리)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는 것, 즉 이중의 해석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해석학자에게 부여된 가혹한 운명이다.

 

그러나 사태를 더욱 불행하게 하는 것은 헤르메스의 행실이다. 신의 사자 헤르메스는 정직하고 성실하기는커녕 거짓말의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신이다. 태어나자마자 한 일도 도둑질과 거짓말이었다. “나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를 훔치는 것이 죄가 된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94

사실 거짓말과 도둑질의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헤르메스의 맹세를 누군들 믿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신의 뜻을 이해할 도리가 없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장사꾼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그와 거래할 수 밖에 없는 현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까? 그리이스인들에게 헤르메스는 상업과 부의 신이기도 했다.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의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그와 거래해야 한다. 해석학자들에게는 어떤 거래의 기술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에게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의 방법은 존재하는가?

 

2. 진리의 해석학  -95

95

해석학은 기본적으로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학문이다. 차이(거리) 자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서 니체의 독창성이 드러난다. 다른 학자와 니체의 구분선은 제우스의 의중에 있기보다 헤르메스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96

니체는 거리의 열정을 강조한다. 강한 인간들은 차이를 끊임없이 만들고, 차이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다양성이야말로 좋은 사회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니체에게는 헤르메스가 메시지를 바꿀 수 있는 배짱과 지혜를 갖춘 신인지도 모른다.

 

3. 스핑크스의 눈  -103

103

진리의 해석학에 대한 니체의 입장을 보여주는 단어는 투시주의다. 다양한 종류의 눈이 있다. 스핑크스도 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진리가 있고, 따라서 어떠한 진리도 없다.

 

107

진리라고 불리는 것은 본래 어떤 것인가? 이런 것은 이렇다고 나는 믿는다. 즉 진리란 하나의 신앙이며 가치평가이다. …그런데 바로 차이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그것을 특정한 방향으로 모으려고만 하는 것이 그들의 병이다.

 

너는 이러이러해야만 한다는 것은 다양한 시선을 특정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일종의 훈련이다.  이러한 광학의지는 그들의 주장이 허구일 때조차도 하나의 의무이며 명령이다. 세계를 해석하는 우리의 눈은 조직되고 훈련 받는다. 우리의 눈은 더 이상 여럿이 아니다. 특정한 방향만 보도록 우리의 눈은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사고와 판단, 지각 활동은 본질적으로프로쿠루테스의 침대이다. 모든 새로운 것들, 모든 차이적 존재들을 하나의 틀에 끼워 넣는 동일화의 의지와 모든 사건의 근본적 위조가 행해지고, 시선에 대한 광학적 훈련이 수행된 뒤에 목표를 달성한다.

 

108

논리학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도덕, 즉 가축 떼의 도덕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논리학은몇 가지 동일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면이라는 전제조건과 결부되어 있다. 논리적 사고나 추리가 진행되려면 이 조건이 먼저 충족된다고 전제해야 한다. 사건의 근본적 위조가 상정된 후에야 논리학이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니체는 대표적인 예로 유클리드 공간을 든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로 자명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유클리드적 공간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리만 공간에서는 그러한 공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종의항변할 수 없다는 식의 주관적 강요라고 할 수 있다. 항변할 수 없다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무능력이다.

 

=> 정말 그랬다. “리만공간은 것은 지구 삼차원의 공간을 이야기 하는데 이 곳에서 그린 삼각형은 구면삼각이 된다. 구면삼각의 내각의 합은 180도가 아니다. 그러니 이차원적 유클리드 공간에서만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란 말이 진리가 된다. 우리의 논리학이 이렇듯 가설로 세운 전제조건의 진리여부에 니체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4. 가치의 발명  -109

109도대체 진리가 있다는 것일까 없다는 것일까? 우리가 해석을 진리를 이해하는 문제로 두는 한 길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를 하나의 해석으로 이해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진리가 해석 위에서 논의 된다면 길은 누구도 다 막아 낼 수 없을 만큼 과잉적인 것으로 돌변한다. 천 개의 작은 길이 있다. 카오스나 미로야말로 니체에겐 즐거움의 대상이다.

 

111

콘웨이는 니체가 독단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진리는 해석의 문제라는 투시주의를 성공적으로 제시했다고 본다.

 

112

니체에게 해석은 무엇보다도 창조와 생성의 문제다. 그것은 미래를 만들려는 자가 벌이는 가치평가 행위인 것이다. 사람들이 사실을 해석이라는 행위를 통해 받아들일 때 그것은 매우 능동적인 행위가 된다. 그들은 해석을 통해 하나의 가치를 창조하고 생성한다.

 

114

위대한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다. 과거의 시간 속에 들어있는 건설의 질료와 힘들이 모두 미래적 건축가에게는 소중하게 이용된다.

 

해석의 비밀은 바로 이런 것이다. 생성은 차이를 만들어 내고 차이는 계속해서 생성된다. 그가 정말로 칭찬받아야 할 점은 완결된 멜로디를 구사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멜로디를 구사한다는데 있다. 결정된 형식은 쉼 없이 깨지고 밀려나며 미결정적인 형식의 의미를 갖는다. 그의 주제 이탈은 동시에 그 이야기의 연속이고 전개이다. 해석은 새로운 가치의 발명이다.

 

115

니체의 해석이란 바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차이의 생성이다.

 

=> 작가의 비밀 또한 끊임없이 글을 쓴다는 데 있지 않을까? 과거의 시간 속에 들어 있는 기억의 편린들을 길어 올리고 상상의 옷을 입혀 거미줄 치듯 문장을 짜 나가는 현재진행형이 작가의 비밀일 듯.

 

5. 니체에 대한 해석학방법과 스타일의 문제  -115

115

해석자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창조와 생성이다.

 

116-117

니체의 스타일, 경구나 은유가 저속한 무리를 내쫓는 기능을 한다. 니체는 자신의 이야기를 포착할 수 있는 독자를 선택하기 위해 그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경구와 은유는 단일하고 결정적인 해석을 쉽게 무너뜨린다. 해석은 항상 무한하게 열리기 때문이다.

 

펜의 갈라진 틈에서 나오는 잉크는 형이상학적인 축 사이를 자유롭게 춤추는 갇히지 않은 글쓰기이다. 니체의 스타일은 결정할 수 없다. 만약 니체에게 스타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니체의 아포리즘들이 만들어 내는 페이스의 변화는 리듬을 만들어 내고, 독자들은 이 리듬에 반응하여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구성한다.

 

118

결국 문제는 니체의 텍스트를 끊임없이 가로지르고 있는 혁명적 힘들을 추적하는 것이며, 그것과 만나는 일이다.

 

6. 헤르메스는 해석자였다.  -119

해석학자들은 제우스를 보고 싶어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보고 배워야 할 스승은 헤르메스다. 재치와 배짱의 신 헤르메스, 헤르메스는 전령이기 이전에 해석자이다. 그는 메시지를 해석하는 자이고 창조하는 자이다. 헤르메스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고통으로 여겨지는 한 해석학자들은 창조하는 해석의 즐거움을 모른다.

 

=> 그렇다. 니체를 고통으로 읽는 한, 니체의 매력을 발견할 수 없다.

 

다양성이 건강을 증명한다는 자연의 생태주의적 가르침도 우리에게는 이해되어 있지 않다. 오직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은 차이가 생기면 불안정하게 되고 평화를 해친다는 것, 우리는 헤르메스의 장난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해석학은 여전히 디오니소스의 웃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

4장 우상의 몰락과 위대한 정치 (니체의 근대정치체제에 대한 비판)  -121

1. 작은 정치의 시대  -121

124

순응주의 사회, 즉 사람들이 한 무리의 가축 떼로 전락한 사회는 오래 지속되어온 서구의 형이상학과 기독교, 그리고 그것이 습속화된 삶이 도달한 곳이다. 근대성이란 허무주의 운동의 귀결점이다. 근대란 정치의 쇠퇴형식, 혹은 정치의 소멸이다.

 

125

허무주의가 바로 정치의 죽음. 새로운 세시의 도래와 더불어 지상의 지배를 위한 투쟁이 막을 열 것이고, 필연적으로 위대한 정치가 도래할 것이다.

 

=> 니체의 미래 정치 전망은 그래도 희망적이다. 다행이다.

 

2. 새로운 우상의 탄생과 몰락 1 – 근대 국가와 전쟁  -125

 

131

민주주의는 가장 효과적인 전쟁 억제 수단이다. 고대의 국가가 전쟁에서 기원한다면 근대의 국가는 전쟁에 대한 피로감에서 등장한다. 모두가 지쳐 더 이상의 전쟁을 포기할 때, 새로운 우상인 국가가 등장한다. 너희는 전쟁에 지쳤고 이제 너희의 피곤함이 .이 새로운 거짓 신에게 봉사한다. 너희가 국가, 그 새로운 거짓 신에게 봉사하려고 할 때 국가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주려고 하리라. 그렇게 해서 국가는 두 눈의 심안을 매수하는 것이다.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모두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는 곳, 그 곳을 나는 국가라고 부른다.

 

국가가 끝나는 곳, 거기서 비로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의 노래, 유일한, 그리고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가락이 시작된다.

 

3. 새로운 우상의 탄생과 몰락 2 –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132

133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로운 개인이란특이성을 갖추지 못하고 보편성 아래서 단지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 개별자들인 셈이다.

 

137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사회주의는 전제주의를 닮아간다. 니체에게 국가란 항상거짓 신일 뿐이다.

 

139

하나의 제도와 법은폭력성과 잔인성을 가지며 주체들은 그 아래서 거기에 맞게길들여지고’ ‘길러진다.’

 

4. 길들이기와 길러내기  -139

140

다이어트는 이것들의 규형을 맞추라는 의학적 처방이었다. 네 가지 체액은 각각 운동, 섹스, 수면, 사회적 관계에 관여하는 것으로, 병이 생기는 것은 이들이 과도하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40-141

베버는 근대 합리적 훈육의 진원지로 수도원과 군대를 들었는데, 이 두 곳은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들이 개발된 곳이기도 하다. 베버는 수도원과 군대에서 생겨난 훈육방식이 프로테스탄트들의 일상생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시간을 분절하고 그것에 맞추어 금욕적인 생활태도를 확립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을 항상계산 가능한 것’, ‘계획된 것으로 만들었다. 수도원과 군대에서 그랬듯이, 훈육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계산 가능하게 하고, 합리적으로 의도된 목표에 헌신하도록 대중들을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적합하게 만드는 것이다.

 

니체는 사람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고도의 권위를윤리라고 보았는데, 윤리는 관습에 의하여 규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니체는 비윤리적이라고 비난 받는 것들에 주목했는데, 비윤리적이라고 비난 받는 것들은 개인적인 것, 자유로운 것, 제멋 대로인 것, 길들여지지 않은 것, 예측되지 않은 것, 계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런 점에서 훈육의 대상으로 삼았던 비합리적 힘으로서의 신체는 단순히 살fresh의 의미로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충동이나 욕망처럼 잘 길들여지지 않고, 예측되지 않으며, 계산하기 어려운 힘을 가리키는 것이며, 사회체 안에 존재하는 계산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은 세력들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142

니체는 이러한 비윤리적인 힘들을 다스리는 훌륭한 수단 중의 하나가 노동이라고 말한다.

 

노동이 칭찬받고 노동의 축복에 관하여 지치는 일도 없이 이야기 되는 경우, 니체는 그 저의를 본다. 그러한 노동이 최고의 경찰이라는, 노동은 각 사람을 억제하고, 이성, 열망, 독립욕의 발전을 방해할 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노동을 통해 보다 안전해 질 것이다.

 

국가 같은 체제는 군대와 같이 개개인을 굴복케 하여 단체에 정렬시키는데 이것을길들이기라 한다. 사람들이 길들면 자연스럽게 복종하게 하여 그것이 본능이 되게 한다. 이 작업을길러내기라 한다. 이는 주로 학교에서 행한다.

 

사람들은 길들이기와 길러내기를 항상 개선이라고 부르는데, 사실상 이것은 뛰놀던 야수가 동물원에 갇혔을 때처럼, 개선이 아니라 덜 위험한 상태로 나약해졌음을 의미할 뿐이다. 문명(길들임)의 과정은 무시무시한 맹수 같은 본성에 대항하여 철퇴와 고문을 필요로 했다.

 

144-145

각 체제에서 선언된 가치들을 능동적으로 가치 평가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보다는, 그것을 허위적 능동성으로 내면화시키고 그것에 무의식적으로 복종하도록 함으로써 허무주의는 하나의 지배를 이룰 수 있었다.

 

=> 현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비윤리적이라고 비난 받는 것들 - 개인적인 것, 자유로운 것, 제멋 대로인 것, 길들여지지 않은 것, 예측되지 않은 것, 계산하기 어려운 것들이 창의적 정신의 토양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창의적 인간을 기다리는 현대에 와서는 윤리도 새롭게 변화함을 본다.

 

5. 아곤의 정치  -145

근대의작은 정치를 끝내는 새로운 정치위대한 정치는 어떤 것일까?

 

146

아곤agon이라고 부르는 그리스의 독특한 정치문화는 정치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소재들을 제공한다. 아곤은 보편화나 전체화에 빠지지 않는 다양성의 정치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적대가 아닌 경쟁을 위해 어떤 정치적 기술들이 동원되었는지 보여준다. 아곤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통하여 사회의 항상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체제다.

 

147. 도편추방

그리스인들은 자신과 경쟁할만한 존재가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스 사회는 지나친 천재의 출현이 경쟁 자체를 방해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도편 추방이라고 하는 제도를 두었다.

 

147-148

도편추방은 자극의 수단이고 천재에 대한 보호의 수단이라는 것이 니체의 주장이다. 이것은 일인의 지배를 혐오하며 그것이 지닌 위험을 경계하는 제도이지만, 천재를 죽이는 제도가 아니라 오히려 천재를 보호하고 더 자극하기 위해서 제2의 천재를 만들어 내는 수단이다. 다시 말해 이 제도의 핵심은 천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천재를 여럿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

 

그리스인들은 여러 진리들이 공존하고 경쟁하기를 바랐다. 경쟁이 없는 진리는 의미도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149

시민들의 모임이 폴리스 자체였다. 시민들은 도시국가 안에 존재하지만, 그것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았다. 사회는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의 선택형태가 자신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한 기반을 제공할 뿐이었다.

 

152

우리 자신의 권리를 초월적 기구에 양도하면 할수록, 가장 평균적인 자들의 그리고 마지막에는 최대다수자들의 지배에 만족하게 된다.

 

전쟁이란 내가 주권적 능력을 그대로 가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생성적 힘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좋은 전쟁은 화약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전쟁은 우리를 계속해서 새롭게 구성하는 문제다. 우리 안에서 국가의 탄생을 막아내는 것, 그것을 위해 계속 싸우는 것, 그것이 바로 전쟁이다.

 

5장 권력의지와 영원회귀(1) : 자연학 + 윤리학  -153

1. 초월적인 것의 죽음과 내재적 우주론원자론의 경우  -154

157

살아있는 것들을 앙,상한 해골로 만들어 버리는 흡혈주의, 철학자들의 사색이란 일종의 흡혈 행위로, 이들이 생각하는 인간이나 개념은 심장(핏기)이 없어 창백하다.

 

2. 왜 원자가 아니라 힘인가?  -158

 

159

니체는 원자를 힘으로 대체한다. 힘은 항상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만 작동한다. 힘은 차이 와 거리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161. 힘들의 바다

여러 힘과 힘의 파랑의 유희로서 하나인 동,시에 다수이고, 여기에 모이는가 싶으면 저기에 감소하는 힘들의 바다, 그것이 세계 그 자체이다..

 

3. 힘의 질능동과 반동  -161

 

163

과학사를 통해 볼 때 자연학은 항상 자연을 필연적인 법칙 아래에 두려고 했으며, 절대적인 체계, 하나의 이데아를 꿈꾸어 왔다.

 

165. 의지

니체의 의지는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모든 힘 안에 내재하는 그야말로 어떤 것이다. 힘에 들어있는 내적 의지를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힘의 질이다. 힘의 양이 얼마나 되는가가 아니라 어떤 질을 가지고 행사되고 있는가는 물리학자들도 풀지 못하는 문제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질적인 차이를 통해 드러나는 의지이다. 강약의 문제는 양적인 문제보다 질적인 문제이다.

 

166

귀족과 노예 혹은 강자와 약자에 대한 니체의 구분은 양적인 것이 아니다. 그가 끊임없이 대비시키는 것은 행위 양식이고, 가치에 대한 평가방식이다.

니체에게 강함은 어떤 것이었는가? 강함은 무엇보다도먼저 시작하는 것’, ‘창조하는 것’, ‘자율적인 것’, ‘넘치는 것’, ‘선사하는 것’, ‘공격하는 것 등으로 그려진다. 약함은권리를 양도하는 것’, ‘무리 짓는 것’, ‘보편적인 것에 대한 추구’, ‘결여된 것’, ‘적응하는 것’, ‘외적인 것에 대한 비난과 원한등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 표현들은 모두 강함과 약함, 즉 힘을 측정하는 니체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167

강함과 약함이 능동과 반동을 고유함으로 갖고 있다. 들뢰즈는 능동과 반동이 힘의 질적인 구분이라고 말한다. 능동적인 힘은 시작하는 힘이며 공격하는 힘이다. 반동적인 힘은 비난하는 힘이며 상쇄시키고 흡수하는 힘이다. 모든 방향(가치)은 능동적인 힘이 결정한다. 우리는 반동적 힘의 작동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능동적인 힘을 무력화 시키는 것, 그것이 반동적 힘의 내적 의지이다. 우리는 힘의 질적인 차이가 그 내면의 의지 즉 권력의지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68-169

금욕이나 단식도 부정의 의도 아래서는 욕망을 억누르는 도덕적 통제의 수단이지만, 강화의 의도 아래서는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맛을 음미하는 능력을 배가시켜 주는 수단이 된다. 결국 우리의 힘들의 질적인 차이가 그 내면에 있는 의지나 의도, 다시 말해서 권력의지의 차이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문제는 권력의지의 차이이다.

 

=> 세계를 힘이 행사하는 장으로 인식한 니체에게 그 힘은 질이 양보다 중요하다. 힘의 질은 능동성에 의해 결정되고, 이는 내면의 의지나 의도, 즉 권력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결국 권력의지가 핵심인데 이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주체적 힘이다.

 

4. 권력의지에 대한 오해  -169

170

권력의지는 모든 힘에 내재한 명령 자체이다.

 

171

의지란 본래 주인으로서 욕망을 다룬다. 즉 그것에 방향과 한도를 지시하는 것이다. 권력의지는 능력을 실현하라는 명령이다.

 

172-173. 욕망

우리는 결여된 것을 획득하려고 노력하는 데 이것이 욕망이다. 욕망에 대한 또 다른 정의가 있는데 그것은 욕망을 생산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때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넘침이다. 욕망을 그 자신이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즐거움과 관계시키는 것이다. 결핍된 자의 초조함과 넘치는 자의 즐거움은 너무도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다. 니체는 묻는다. 여기 만들어져 있는 것은 기아가 원인인가, 과잉이 원인인가?

 

173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힘을 발휘하고 싶어한다. 생명 자체는 권력의지다. 노예는 복종함으로써 명령한다.

 

174

의지명령이므로 본래 주인과 관계되는 것이다.

 

허무주의는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를 의지하는 것이다. 무화하려는 의지이다. 허무주의자가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할 때, 그때의 권력의지는 모든 창조적이고 생성적인 힘들의 능력을 박탈함으로써 허무주의를 지배적인 것으로 관철시킨다.

 

5. 권력의지의 윤리학과 권력 느낌  -175

175

니체가 권력의지의 질적인 차이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표현은 긍정과 부정이다. ‘긍정은 디오니소스의 정신이며, 그리스 예술의 정수이고, 예수가 전하는 복음의 본질이다.

 

176

내가 사랑하는 도덕은 어떤 일이든 행하도록 촉진시키고, 반복해서 행하도록 자극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하도록, 밤은 밤대로 꿈꿀 수 있도록 재촉하며, 이것을 잘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것이다.”

 

6장 권력의지와 영원회귀(2) : 두 가지 반복과 두 번의 긍정 -180

1.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세계그리스적 사유로부터  -180

180

영원회귀는 긍정적의 자유의지가 이해하는 세계의 존재 방식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계의 생성방식 - 이다.

긍정의 권력의지는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생성과 소멸의 반복을 새로움과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고귀한 운동으로 느낀다.

 

183

니체에게 세계란 어떤 손실도 없이 정말 긴 세월을 거듭 회귀(반복)하는 힘의 대양이었다.

 

184

생성의 세계는 무구하다! 생성을 그 자체로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

 

185

영원회귀의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생성의 세계에 대한 긍정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놀라운 생각을 소개한다. 그것은 세계를 놀이로서 이해하고 있는 점이다. “세계는 제우스의 유희이며 물리적으로 표현하자면 불이 자기자신과 벌이는 유희이다.”

 

186

세계가 무슨 목적이나 도덕적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심각한 표정을 지을 것도 없다. 그것은 하나의 놀이일 뿐이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놀이!

 

2.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익숙한 오해  -186

 

191

긍정의 권력의지는 회복기의 차라투스트라처럼그게 삶이던가, 그럼 좋다. 한 번 더!”라고 말한다. 그것은 반복하기를 원한다. 생성의 반복은 죄지은 자들의 운명이기는커녕 삶의 경이로움이며 그 자체로 삶의 구원이다. 생성을 긍정하는 것은 권력의지의 최고 표현이다.

 

191

생성을 긍정하는 것은 권력의지의 최고의 표현이다.”생성의 존재의 성격은 생성뿐이다. 그리고 생성만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영원회귀는 이러한 생성의 반복을 의지하는 것이다.

 

192

영원회귀란 존재의 세계를 생성의 세계로 만드는 것이다.

삶은 죽음과 반대말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것만이 죽을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것만이 새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성하지 않는 것’, ‘의욕하지 않는 것이다.

 

3. 반복의 두 경우병에 걸린 차라투스트라와 회복된 차라투스트라  -193

 

199

차라투스트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후계자가 분명하다. 영원회귀가 끊임없는 변화와 생성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4. 긍정을 부르는 긍정  -200

 

5. 차이의 놀이와 회귀의 비밀  -206

 

208

우연은 창조의 힘이다. 우연은 카오스와 미로를 즐기는 정신이다. 미로나 카오스는 길이 없음이 아니라 길의 넘침이다. 이로써 생성의 공간이 열린다. 다수성과 운명애, 우발성은 긍정의 권력의지의 특징이다.

 

209

영원회귀는 명령이기보다는 유혹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것은 즐거움을 자신의 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왜 그렇게 영원회귀를 멈추지 않는가? 그것은 즐겁기 때문이다. 모든 쾌락 안에서는 원환의 의지가 꿈틀거린다. 모든 즐거움들은 계속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7장 인간 : 원숭이와 초인 사이에 걸려있는 밧줄 -210

1. …und…  -210

 

213

데모크리토스는 인간이 동물로부터 문화를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새에게서 노래를 배우고, 거미로부터 그물로 사냥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215

사실 인간은 자연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자기 자신도 잘못 이해한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사이에 끼어있는 und’자를 바라보고 니체는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자신들이 자연이나 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그것들과 대등하게 나열될 수 있는 존재나 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인간의 오만한 욕망이 그 한 글자를 통해서 들통났기 때문이다.

 

2. 진화와 변신  -216

216

푸코는 인간을 바닷가 모래밭에 그려진 얼굴에 비유하면서 밀물이 한 번 밀려들고 나면 지워질 운명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제 발로 서서 스스로를 자각했던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듯이 그의 운명이 끝날 날도 머지 않았다는 것이다.

 

218-219

초인은 변신과 변용을 주장한다.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고, 사자가 마침내 아이가 되는 변용을. 낙타는 잘 견디는 정신의 표상이다. 이에 비해 사자는 거대한 부정의 정신이다. 사자는 자유를 획득하고 자신의 터전에서 주인이 되고자 한다. …너는 해야만 한다(당위와 의무)만 존재한다고 말할 때, 사자는 으르렁거리며 나는 하고 싶다를 외친다.

 

나는 하고 싶다보다 위에 있는 것은 나는 존재한다이다. 사자가 할 수 없는 일,을 어린아이가 한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 그것은 사자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린아이는 존재 자체로 하나의 신성한 긍정이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한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하나의 놀이이고,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다.

 

=>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란 말씀이 이제 이해가 된다.

 

3. 신의 죽음과 인간의 몰락  -221

 

222

니체는 왜 신이 죽음을 복음이라고 말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신앙의 대상인 신이 죽었으므로 신앙도 죽을 것이고 따라서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실천과 행동이 신앙을 대체해 나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니체는 사실 구세주가 전하려 했던 복음이 사실상 신의 죽음과 통한다고 본 것 같다.

 

더 이상 이 세계를 검열하는 심판이 사라졌으며, 저 세계에서 죄를 묻는 일은 없다는 것. 천국이란 믿음의 문제이기는커녕 새로운 삶의 방식이고 실천하는 것.

 

4. 보다 높은 인간들  -226

 

231

너 자신을 네 스스로의 불길로 태우고자 해야 한다. 먼저 재가 되지 못할 때 네가 어떻게 새로와지길 바라겠는가?

 

5. 놀이와 웃음, 그리고 춤  -231

231

모든 완벽해진 것, 무르익은 것들은 죽기를 원한다.” “그러나 모든 익지 못한 것들이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나의 죽음을 나는 너희에게 권장한다. 내가 원하기 때문에 나에게 오는 죽음을.” “너 자신을 네 스스로의 불길로 태우고자 해야 한다. 먼저 재가 되지 못할 때 네가 어떻게 새로워지길 바라겠는가?” 긍정이란 어떤 것인가? 영원회귀란 어떤 것인가? 초인이란 어떤 것인가? 바로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 자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한번 더라고 말하는 것이다.

 

232

초인의 특징은 놀이와 웃음과 춤이다. 즐거움은 놀이의 반복을 가져온다. 놀이는 다음의 놀이를 계속해서 부른다.

 

234

영원 회귀하는 긍정의 권력의지는 변화된 신체로서 자신을 경험한다. 초인은 신체의 변신이며새로운 느낌 방식이다. 신체가 즐거움을 경험하면한번 더라고 말한다. 신체는 영원회귀를 의욕한다. 그것이 또한 긍정의 권력의지다.

 

8 N개의 얼굴, N개의 철학 : 니체는 자신을 어떻게 변신시켰는가? -235

1. 가면의 철학  -235

 

238

니체는 우산을 잃어버리듯 이름을 쉽게 잃어 버렸다. 그는 하나의 정체성을 쉽게 내던져 버렸다. “사람은 불멸하기 위해서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개인은 계속되는 변화를 통해 자신의 주어진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써만 자기를 생성시킬 수 있다.

 

239

니체가 권하는 독서법이란 걷는 법이나 춤추는 법과 다르지 않다. “책 사이를 걷고 뛰고 오르고 춤 추는 자, 문 밖에서 생각하는 자가 독자로 적당하다. 추론하기 보다는 제 방식대로 소화시키는 괴물!

 

2. 비극의 시대에서 냉소의 시대로  -240

 

3. 화약 냄새가 사라진 전투  -245

 

246

니체는 이 책이 완성된 시각이 바그너가 베니스에서 죽은 시각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공표했다. 바그너는 제국에 대한 복종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차라투스트라의 메시지도 분명하다. 제국적인 것에 대한 반대, 국가와 교회라는 우상에 대한 반대!

 

4. 모든 가치의 전환  -247

 

250

<반그리스도>에서 기독교로부터 예수를 구원한다. “삶을 사랑하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의 실천이라는 예수의 복음을 가장 잘 이해한 자. 그때부터 니체는 자신의 필명을 십자가에 못박힌 자라고 쓰기 시작했다.

 

5. 다시 떠나는 여행자  -250

250

니체에게 가장 적합한 이름은 여행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그의 여행 기록이다. 니체는 항상 떠나는 사람이며,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찾는 일은 항상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일이다.

 

252

확실히 유목민의 기질이 니체를 이끌고 있다. 니체의 사상은 유목적 사상이다. 유목민이란 여행자이며 외부자이다. 그러나 니체의 여행자가 떠났다고 했을 때, 그는 공간적으로 떠난 게 아니다. 그가 떠난 건 지배적인 질서이며 지배자의 코드이다.

 

253

과연 철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금지된 것들을 찾아나서는 여행이 아니던가?  철학이란 얼음으로 둘러싸인 고산 속에서 자발적으로 생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자는 금단의 영토에 발을 들여놓는 여행자다.

 

2부베버 - 근대 허무주의 비판의 딜레마 -257

1. 근대라는 탈주술화된 주술  -257

 

258

어떤 점에서 근대는 제 발로 ‘설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제 발로 ‘서야 하는’ 시대다. 절대적 가치가 붕괴했으므로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 항상 새것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근대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2. 근대인의 탄생  -260

 

263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다. 스스로 구원받았음을 믿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많은 재화를 벌어들인다면 그것은 신이 돕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전환이 부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뒤집어졌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서 재화를 쌓는 것이야말로 신을 영광되게 하는 것이다.

 

3. 관료제 기계  -264

 

267

우리는 기계로서의 관료제가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생산적이고 능동적인 인간은 사라진다. 생산하는 것은 관료제로 불리는 기계다. 인간 역시 기계의 생산 작업에 동원되는 부속품일 뿐이다. 소명의식에 불타던 근대인은 언제부턴가 주어진 절차와 규정에 의거해서 수동적으로 일 처리에 동원되고 있는 암울한 근대인으로 돌변하였다. 

 

4. 신체 길들이기, 신체 길러내기  -269

 

270

베버는 사람들의 생활을 시간과 공간에 따라 분할하고 그것을 계산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훈육이라고 개념화했다. “훈육은 모든 계산 가능하도록 그리고 공통의 명분과 합리적으로 의도된 목표에 헌신하도록 대중들의 육체와 전신을 적합하게 만드는 것이다.

 

5. 베버의 정치학  -276

276

베버의 정치학은 합리적 훈육의 지배에 저항할 수 있고 개인의 도구화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형 창출을 목표로 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소명’을 가진 정치인, 강한 ‘책임 윤리’를 가진 정치인의 출현이었다. 영혼이 사라진 강철 겉옷 속에 다시 영혼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사람, 스스로 강철 감옥보다 더 강한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277

베버는 바람직한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이러한 내적 거리라는 점을 주장했다. 정치인에게는 소명에 대한 열정과 함께 뛰어난 목측능력이 요구된다. 목측능력이란 마음을 평정하게 유지하고 그것에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내재적 거리를 두는 것이다. 

280

책임윤리를 강조하는 정치인이란 가치나 신념만을 강조하는 선동적인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효율성을 강조하는 관료제적 정치인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다이몬을 선택하고, 자신의 행위가 초래할 결과를 정확히 계산한다. 그리고 관료제 기계를 수단의 기능에 엄격히 한정시킴으로써 합리적 훈육이 초래하는 사회적 삶에 대한 통제를 저지시키는 사람이다.

 

6. 베버 전략의 딜레마  -280

 

283

현대 정당들은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더 많은 규율들을 필요로 하고 더 많은 규율들은 더 많은 대중들을 수동적으로 만들 것이다. 정치가가 대중들의 의사를 더 잘 대표할 수록 대중들은 더욱 복종한다. 계몽은 계몽 대상의 계몽 필요성을 더욱 증대시킬 뿐이다.

 

차이에 대한 회피와 포섭의 정치학 (자유주의자와 공동체주의자의 논쟁을 중심으로)

 

293

그러나 신자유주의에서 국가는 자유주의에서처럼 약화되지는 않는다. 군사적 지출의 확장이나 경제적 조정비용의 확장은 물론이고 가치와 도덕적 구조물에 대한 위기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현대 국자의 또 다른 중요한 얼굴이며, 헤겔로 대표되는 근대적 국가의 이상이기도 하다.

298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의 국가에 대해서는 서로의 편차 이상으로 그 둘 모두를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묶어주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가치들의 투쟁, 차이들의 투쟁을 정치 영역으로 보내서 경제적 영역의 자유를 확실히 보장받고자 했던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열망은 동일한 요소를 정치의 영역에서도 배제하고자 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자 열망과 그리 멀지 않다. 자유의 보증자로서의 국가, 국가의 영역, 정치의 영역들의 범위는 계속해서 줄어들지만, 그것은 네그리의 표현대로 ‘핵심으로서의 축소’라고 할 수 있다. 

301

 “공허한 이치를 내세우며 반성을 일삼는 오성의 것”이라고 말하며, 완전성은 결코 “진행의 영속적 진행”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수령이 오래된 거목이 계속해서 가지를 뻗는다고 해서 새로운 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319

우리가 생태적이고 미적인 패러다임을 말한다면, 그것은 정치에 대한 어떤 생태적 신비화나 심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발견해야 할 정치적 주체들과 그들의 새로운 소통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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