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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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소리_구달칼럼#11 (2014. 6. 23)
번쩍, 우르르 쾅! 천둥소리 천지에 가득한 날, 왜 이런 날이면 가슴이 뛸까?
퇴근 열차를 타고 일산 역에 도착하니 딸 민정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 길에 갑자기 시작된 폭우가 더욱 거세어진다. 미리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딸을 역에 세워두고 빗속으로 뛰어 나갔다. 역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집이지만 장대비에 순식간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버렸다. 우산을 쓰고 우리가 향한 곳은 집 근처 고기 집이다. 아내와 아들이 도서관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공부를 하는 덕분에 딸과 둘만의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려 역으로 뛰어 오는데 천둥소리와 함께 우박이 막 쏟아지는 거예요. 내 참, 별일이 다 있어요. 아빠 일산에 토네이도 발생 한 거 알아요? 경운기가 말려 올라 가서는 논 바닥에 처박히고 비닐하우스와 집들이 다 날아가고 난리도 아니래요.” 우리 집 소식통인 딸이 식당에 자리를 잡자마자 기염을 토한다. 창 밖으로는 비가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고 화로 숯불의 화기가 얼굴에 와 닿자 눅눅하던 기분이 금방 보송보송해 진다.
“이게 얼마만이냐? 너랑 나랑, 참 좋다. 장대비 오는 날 천둥 소리 들으며 단 둘이서 소주 잔을 기울이니 밤새도록 비가 퍼부어도 좋겠다.”
“아빠 나도 이런 날이 좋아요. 특히 천둥소리를 들으면 무섭기 보다는 가슴이 막 뛰어요 천둥소리에는 알 수 없는 이끌림 같은 게 있어요.”
“그래 맞아, 천둥소리! ‘그건 천둥소리 때문이었어’ 어느 여주인공의 독백 이었어. 아마 김주영이 쓴 소설일거야. 오늘처럼 천둥이 몹시 치는 날, 빨치산이 되어 자기를 찾아온 사내와 몸을 섞으면서 내뱉은 말이지. TV문학관에서도 상영되었는데 그 때 미친 듯이 귓전을 때리던 천둥소리만 기억에 남아있어. “
“ 왜 하필 그 순간에 천둥은 쳤을까요?”
“ 이제 보내면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내 남자와 살을 섞을 때, 그 마음은 천둥소리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던 게지. 그 장면은 강렬한 인상으로 나의 기억에 남아 지금도 천둥이 치면 되살아나곤 해.”
“오늘은 ‘아빠의 천둥소리’ 듣는 날이네요. 호호~”
“그때 난 왜 그랬을까? 천둥이 치고 비가 억수로 퍼붓는 여름날이었어. 초등학교 방과 후 뭘 하다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하나 없는 운동장의 빗속으로 뛰어 들었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맞는 비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단다. 마치 ‘쇼생크탈출’의 주인공 에디가 하수관을 기어 탈출 후 두 팔을 벌리고 쏟아지는 폭우를 음미하는 장면 같았지.”
“아빤 아마 천둥처럼 살고 싶은 가봐요. 야성을 향한 그리움, 그 갈망이 있는 것 같애요, 아빠 속에.”
“그래, 그런 것 같다. 아빠가 천둥이 몹시 치던 날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부산으로 떠나 던 날 기억하지? 네 엄마가 기겁을 했지. 제발 천둥이라도 멈추면 떠나라고 붙잡았지만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직감하고는 내 두 손을 부여잡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어. 난 생 처음으로 네 엄마의 기도를 받았단다. 사랑하는 낭군을 천둥 속으로 떠나 보내는 것이 마치 전쟁터로 보내는 것 같이 절박한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천둥 덕분에 네 엄마 기도도 다 받아보고 대장정의 출발로는 아주 좋았어.
여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에 마치 먼 북소리 같은 천둥소리에 잠이 깨었지. 아직 사방은 어둡고 비바람은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지. 막상 이 빗속에 출발하려니 으스스한 게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았어. 그때 천둥이 쳤지. 마치 진군 나팔소리 같았어. 그대로 페달을 밟고 달려 나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부산까지 완주한 것도 그 천둥소리 덕분이다 싶어.”
대추 한 알이 익기까지도 천둥 몇 개가 응원했는지 모를 일이라고 읊은 어느 시인처럼, 천둥소리는 내게 아마도 야성의 본능을 일깨우는 거부할 수 없는 계시가 아닌가 모르겠다.
지금도 천둥소리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내 안의 늑대를 불러내는 신호이기 때문일 것이다. 니체도 천둥처럼 내게 와 닿았다. 내 안의 초인을 부르는 천둥소리, 그것이 니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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