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참치
- 조회 수 1926
- 댓글 수 15
- 추천 수 0
회사를 그만두고 11월부터 시작된 전쟁은 7개월을 끌다가 얼마 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전쟁은 큰 소리 한번 없이 날카로운 신경전만 난무했고, 팽팽한 기 싸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도깨비불을 만들어 냈으니,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들의 싸움이라 할 수도 있을 텐데, 더 주도 면밀한 것은 평화 속에서 시작이 되었고 아무도 모르게 끝이 났다는 것이다.
그 전쟁의 당사자는 다름 아닌 시어머님. 우리 어머님으로 말씀 드리자면 동네에서도 인심 좋기로 소문이 나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눠 드시는 분이기에 이웃들한테도 그런 대접을 받으시는 분이다. 사람을 좋아하시고 내 사람이다 싶으면 아낌없이 주시면서도 자신의 영역은 절대 침범을 받지 않는, 지킬 것은 지키는 절대 고수의 지존이시기도 하다. 어머님의 살림 경력은 20세부터 시작되셔서 올해로 55년째, 음식 솜씨 좋다는 주변의 칭찬에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시고, 어머님 세대의 냉장고 정리법인 검정봉지는 찾아볼 수 없는 정리의 여왕이시며, 청소는 또한 쓸고 닦는 것의 일인자라 할 정도로 청결을 중요시 하시는 분이다.
대부분 아파트에 사는 요즘 사람들에겐 우리동네의 풍경이 그려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동네는 단독주택이 대부분인데 20년 이상을 한 동네에서 사신 분들이기에 서로 친목이 잘 되어있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며 산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동네 어르신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어머님의 방앗간을 통해서 듣는 것이 일이다. 또 지혜로우신 우리 어머님은 당신의 딸들이 극성스럽다는 것을 아시고는 딸들과 이야기하거나 전화를 하실 때, 일단 며느리 칭찬을 깔아놓고 시작하시는 분이다. 그렇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불철주야 애쓰시는 분과 무슨 전쟁이냐고?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는 살림을 도맡아 해주셔서 주말 이외에는 손을 댈 시간이 없었다. 어머님은 항상 종종 거리며 뛰어다니는 나를 안타까워하셨고, 나는 살림을 통째로 맡겨놓은 것이 대단히 죄송스러워 집에서 쉬기만 하면 어머님의 살림의 대한 짐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과 어머님표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담는 노하우를 모조리 마스터하리라는 야심찬 다짐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다가 언제가 될지 모르는 D-day는 연구원이라는 명목으로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으니 난생 처음 쉬어보는 나에게 가정 살림을 배워보겠다는 일념이 컸을 것은 당연했다.
뒤를 돌아보니 나는 23살때부터 요리에 대한 남다른 집착을 보였다. 건축과라 졸업작품을 하기 위해서는 몇 달 동안 팀을 이루어 동거동락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작품보다도 음식에 신경을 많이 썼다. 먹는 즐거움을 빼면 무엇이 남으리오. 우리 팀은 4명이서 학교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서 학교의 실험실 중 하나를 쓰게 되었다. 매일 같이 사먹는 밥이 못마땅했던 나는 작업실 한쪽에 나만의 공간 즉, 주방을 만들고는 엄마의 노하우를 전화로 전수받아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동료와 우리 작업을 도와주러 오는 먹성 좋은 후배들을 위해 겁도 없이 십 인의 음식을 해댔으며, 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쾌감을 느꼈으니 어쩜 내 음식에 재미를 붙이게 된 근원은 그들의 훌륭한 마루타 덕분일 것이다. 그러면서 졸업작품은 겨우 최소한의 작업만으로 이름만 올려 놓았고, 나의 대부분의 생각은 ‘다음에는 무슨 음식을 만들어주지?’를 구상하기에 바빴으니 과를 잘못 선택했어도 한참이나 잘못했다.
이런 기질을 갖고 있는 나와 요리와 살림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절대 고수의 자존감을 갖고 계신 경력 55년 살림의 달인과 한판 붙었으니 그 기 싸움이 오죽했으랴.
첫 번째는 아침밥상부터 시작된다. 아침요리의 주도권은 밥솥에 쌀을 누자 앉히느냐가 그날 아침 음식의 지배권을 갖는다. 이 면에서 나는 상당히 불리했다. 어머님은 새벽 4시면 일어나시는 완전 새벽형이고 나는 새벽보다는 밤이 편한 사람이니 아침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내가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웠겠는가? 잠귀가 밝은 편이 아님에도 어머님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듣고 총알처럼 반응했다. 어머님은 늘 하시던 일을 그냥 하시는 것이지만 40대 며느리가 70대 시어머님한테 아침을 얻어 먹는 다는 것이 맘이 편하질 않았고, 남편이 집에서 먹게 되는 하루 한끼를 내 손으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아침밥을 하고 내 일을 보면 마음이 편한데, 그렇지 않고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보는 날이면, 할 일을 하지 않고 나온 것 같은 불편함이 하루 종일 따라다녔다. 아침밥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하루를 얻을 수 있는 쿠폰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한때는 그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상 시간이 조금씩 빨라지기도 했으니, 나의 수면시간과의 전쟁도 같이 시작된 셈이다.
두 번째, 음식의 간이다. 어머님은 나이와 함께 둔감해진 미각을 소유하고 계시고 음식을 짜게 드시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습관을 갖고 계신데 찌개를 끓이시는 날이면 마지막에 간을 보고 물을 더 붓는 것이 내 일이 되었다. 혹시라도 그런 과정 없이 그냥 식탁으로 가는 날이면 남편 입에서 여지없이 짜다는 소리가 나왔고, 그 말에 서운하신 어머님은 2~3일동안 아침 식탁에 손을 대려 하시지를 않았다. 하지만 어머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능히 당신 입에 싱거움 정도는 감수를 하실 수 있는 분이었기에 그 후로 간을 보는 일은 항상 나에게 맡기셨다. 이 부분에서는 나의 영역을 생각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청결과 과학적 사고. 어머님은 경험이 우세하신 분이고 나는 지식이 우세한 사람이다. 어머님의 살림이 아무리 깨끗하다고 한들 비과학적이고 비위생적인 것들이 내 눈에 포착되기 시작되었는데, 건강에 유독 과민 반응을 보이는 나이기에 그런 것들은 정말 참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깔끔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재료를 다듬어 놓으시는 것을 보면 영양분이 있는 곳은 죄다 잘려나갈 때가 있다. 나름 과학적인 견해를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면 ‘이렇게 먹고 살았어도 아무 문제 없었다’ 라는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일축 되었다. 이 부분의 신경전은 내가 가장 촉각을 곤두세웠던 부분 중에 하나이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으면 6일 동안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헤프닝이 발생했을까? 이만하면 신경전의 최상급까지 갔다 할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이상하게 포기가 되지 않는 아침밥상, ‘대충 해주는 대로 먹고 편안하게 살면 그만인 것을 극성스럽게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요리의 즐거움을 배제한 나의 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다. 때로는 55년간 해오신 어머님의 영역에 내가 느닷없이 들어온 침입자라고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했지만, 하루 중에 1/3은 새파랗게 젊은 며느리가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 그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자의 노력 또한 처절했으니, 어머님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었던 나도 집에 있는 날이 지속되면서 여느 며느리와 똑같이 시어머님에 대한 흉이 조금씩 늘기 시작하니 그것 또한 스트레스가 되었다.
끝을 내다볼 수 없었던 전쟁에서 대중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일이 발생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어머니의 과한 성향이었다. 애정과 말씀이 과하신 것은 물론이고 음식의 양과 간이 과하기에 입이 짧은 이 집 남자들에게 어머님의 음식은 언제부턴가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그 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들의 입맛을 맞추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대중의 선택. 그 뒤로 식탁에서 어머님께서 하신 음식과 나의 음식이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이루면서 대치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식탁 위의 38선을 만들어 냈다. 나의 음식 쪽으로는 어머님의 젓가락이 넘어오는 일이 없었고, 어머님의 음식 쪽으로는 남자들의 젓가락이 넘어가지 않았으며 가운데서 편식하지 않는 나만이 비무장지대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웃기는 형상이었다. 하지만 대중들은 새로운 사람의 요리를 원했고, 밤 12시가 넘어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주문대로 만들어내는 야식 써비스를 시행한지 몇 달 만에 대중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의 음식에 대한 집착과 미련은 한동안 38선이 유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진행이 되었고, 나도 한 여자의 독보적인 영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마음이 무거워져 고민을 하고 있을 즈음, 전시사항임을 모르는 남편의 결정적인 한 마디가 나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아내가 해준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이 말은 나에게 천군만마를 만들어 주었고, 주방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눈치 9단 어머님 또한 스스로 내려놓음을 선택하시면서 우리의 소리 없는 전쟁은 7개월 만에 종료가 되었다.
하지만 전쟁은 승리자나 패배자 모두 대가를 치르는 법, 나의 경우는 적의 항복으로 아침뿐만 아니라 나머지 식사에 대한 책임과 의무까지 껴안게 되었으니, 생각보다 버거운 임무를 맡은 격이다. 이제는 매일 무엇을 먹여야 하나라는 고민과 나의 대중 두 남자를 위한 새로운 매뉴 개발에 대한 머리 아픈 사명까지 부여 받았으니 자업자득의 고통이라 하겠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152 | 조금 먼 미래의 예언 [5] | 어니언 | 2014.06.30 | 1971 |
4151 | #12 여행은 '과잉 노출증'이다 [6] | 희동이 | 2014.06.29 | 2084 |
4150 | 지하철 [2] | 레몬 | 2014.06.29 | 1961 |
4149 | #12 착한감자_정수일 [3] | 정수일 | 2014.06.29 | 1919 |
4148 | 10기들에게 보냄 [21] | 자로 | 2014.06.26 | 2096 |
4147 | 이론과 실제 [3] | 정산...^^ | 2014.06.24 | 1943 |
4146 | MeStory(12) : 내게 영향을 준 사람들 _ 2 [3] | 타오 한정화 | 2014.06.24 | 1938 |
4145 |
내 사랑, 치자 ![]() | 미나 | 2014.06.23 | 2139 |
4144 | 철학은 친절한 밥상을 놓고 말하겠어요 [16] | 종종 | 2014.06.23 | 1970 |
4143 | 그의 변화 [9] | 녕이~ | 2014.06.23 | 1979 |
4142 | 엄마 바꾸기 [19] | 앨리스 | 2014.06.23 | 1885 |
4141 | 갈매기 조나단, 비상이 꿈꾸는 낙하 [5] | 에움길~ | 2014.06.23 | 2161 |
4140 | 왜 스스로 깊어지지 못하는가?_찰나칼럼#11 [12] | 찰나 | 2014.06.23 | 1932 |
» | 7개월간의 전쟁 [15] | 왕참치 | 2014.06.23 | 1926 |
4138 | Why so serious? [16] | 어니언 | 2014.06.23 | 2024 |
4137 | 천둥소리_구달칼럼#11 [14] | 구름에달가듯이 | 2014.06.23 | 1979 |
4136 | #11 3월 29일 첫 모임과 낮술 그리고 다시 보기 [17] | 희동이 | 2014.06.21 | 2467 |
4135 | #11 매제 보시게_정수일 [7] | 정수일 | 2014.06.21 | 2044 |
4134 | 오늘을 또 살아보렵니다 [6] | 유형선 | 2014.06.19 | 1902 |
4133 | 감사하는 마음 [3] | 정산...^^ | 2014.06.17 | 1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