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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3일 11시 40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가상 인터뷰

지금 해언은 높은 산을 올라가고 있다. 숨막히게 더운 6월의 날씨에 땀이 비오듯 흘렀다. 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지는 험한 산골에 넓적하니 앉기 좋은 바위가 하나 나타났다. 그녀는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작은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마시다가 조금 윗쪽에 있는 산중턱 삐져나온 바위 위에서 좌선에 빠져있는 한 신선을 발견한다. 차라투스트라인가! 그녀는 서둘러 물병을 가방에 집어넣고 바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위에 도착해보니, 그것은 차라투스트라가 아니었다. 숱많은 콧수염을 늘어뜨린 강렬한 인상의 얼굴, 니체였다. 그는 발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저어, 죄송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어디로 갔죠?"

니체는 산아래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해언에게 말했다.

"그는 마흔 살이 되었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이 산으로 들어왔었고, 그 후 10년 동안 지루함을 모르고 이곳에 있었지. 그러고는 스스로의 넘치는 지혜에 싫증이 났다. 너무 많은 꿀을 모은 꿀벌처럼. 이젠 도움을 달라는 손길이 필요했네. 그의 모든 지혜를 나누고 싶어했지.

 

 그는 바다 저편에 잠겨 저 아래 암흑 세계로 빛을 가져가는 태양을 보며, 그가 찾아가려는 사람들이 몰락이라고 부르는 것을 행하기 위해 지상으로 갔네."

 

"제가 한 발 늦었군요." 

"그래도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그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 있으면 나에게 물어보게."

"저어, 그럼. 이번 주 칼럼 저자에 대하여는 차라투스트라 대신 니체 선생님의 인터뷰로 하겠습니다. 더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선생님께서 차라투스트라이기도 하시니. 오히려 선생님의 인생을 좀더 조망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어렸을 때 어떤 분위기 속에서 자랐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1844 10월 독일제국의 프러시아령내 작센 주의 뤼첸 근처에 있는 뢰켄 마을에서 태어났네. 아버지 카를 루드비히 니체는 목사였어. 그로부터 2년 뒤 누이동생 엘리자베트가 태어났고, 다시 2년 터울로 남동생 요제프가 태어났네. 그러나 요제프는 출생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아버지는 내가 다섯 살 때 뇌연화증으로 세상을 떠났어. 당시 아버지 다음으로 가계를 책임지게 된 할머니는 우리 가족을 이끌고 나움부르크로 이사를 했네. 차로 30분정도 가면 나오는 곳이니 원래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어.

 

 이 곳에서 나는 여초 환경에서 자랐네. 할머니, 어머니, 미혼인 두 고모와 여동생으로 이루어진 여인사회에서 나는 유일한 남성이었지. 드센 여자들은 나를 가만 내버려두지 못했지. 그들은 나에게 드레스를 입히고 머리에 리본을 달아주었어. 밤이 되면 누군가가 내 침대로 들어와 나를 만졌어. 나는 그런 것을 원치 않았지만, 싫다고 강력하게 말하지 못했어. 나는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기 때문이었어. 그러나 간단히 말해서 나의 꿈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싫어, 안입어! 만지지마!’라고 말하는 것이었네. 그게 가장 최초의, 단순한 형태의 주장이라고 생각하네.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필사적으로 생각했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수가 되어 독립했지.

 

2. 기억나는 순간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 내가 맨정신이었던 마지막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주겠네. 1889 1 3. 토리노의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마부에게 매를 맞고 있던 말에게 나는 달려들었네. 말을 껴안으며 매를 막으려다 넘어져 의식을 잃게 되었지.

 

나는 오랫동안 아팠네. 그러다 겨울이 되었던 거였네. 또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라 땅이 질퍽거렸어. 그럴 때 나는 담요를 두르고 마차를 탄채 산책을 나왔었네. 옆에 있던 짐을 끄는 수레에는 아직 채 다 자라지 않은 작은 말이 메여있었네. 진창에 빠진 마차를 꺼내기 위해 마부는 말에게 채찍질을 했네. 한 번, 두 번, 세 번, 매질이 계속될수록 나는 그것을 가만히 보고 앉아 있을 수 없었네. 그 작은 말이, 그 조그만 등과 슬퍼 보이는 눈이 내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했거든. 나는 그것을 보고 몸을 날려서 말을 감쌌네. 때리지 말라고. 그러다 실갱이가 붙어 나는 넘어졌고, 그 후로 십 년 넘게 정신병원에 수감되어있었네. 나는 가난한, 약한, 연약한 것들이 억압받는 것을 못 견뎌 했네. 그건 아까도 말했지만 그 애의 모습에, 그 말의 모습에 내가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던 걸세.

 

3. 당신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었어요. 1960년 하이데거의 <니체>라는 책과 카우프만의 연구를 통해 그 오해가 벗겨졌지요. 그 전까지는 당신이 아리안주의자에, 유대인을 경멸하고, 세계지배를 요구하는 식민주의자들에게 사상적 배경을 제공했다고 오해하고 있었어요. 버트런드 러셀도 서양철학사에서 나치를 비롯한 폭력적 사상을 당신의 후계자들로 칭하며, 당신을 가루가 되도록 깠었답니다.

 

> 그 이야기를 하려면 여동생 이야기를 잠깐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네. 엘리자베트는 내가 바젤 대학교 교수가 되기 전부터 임종까지 돌보아주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그러나 그녀가 나의 미완성 원고와 메모들에 지배적인 저작권을 행사하며, 뜻을 완전히 왜곡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런 불행한 일이 벌어졌던 것 같네. 특히 내가 썼다고 알려진 나의 여동생과 나는 결국 위서로 판명되었네. 여동생과의 사이가 좋진 않았네. 특히 그 아이가 반유대주의자와 결혼하면서 완전히 관계가 틀어져버렸네.

 

엘리자베트는 극렬한 인종차별주의자였네. 엘리자베스는 히틀러에게 '니체의 초인이란 당신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나의 저서들을 모아 일종의 보관서까지 열었으며, 미쳐 있던 나에게 흰 사제복을 입혀 전시하기도 했네.

 

당시 유럽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주의적 사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네만, 애초에 제국주의나 파시즘을 옹호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상은 아니었네. 죽을 때까지 나는 무국적주의자일세. 또한 유대인의 노예도덕이 기독교의 근본이라고 비판하긴 했지만, 반면 유대인들이 오랜 고난의 세월을 통해 단련된 가장 질적으로 뛰어난 민족이라 평했고, 반유대주의자들이 유대인들을 공격하는 논거가 단지 유대인들의 돈에 대한 시기와 질투, 원한 뿐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네. 유대인들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도 저서에 들어가 있기도 하지. 애초에 내가 바그너와 갈라선 이유 중에는 바그너의 완강한 반유대주의적 성향도 포함되어 있네. 나는 국가주의적, 종교적 집단 광기를 혐오하네.

 

몇 가지 질문을 하고, 그 답을 받는데 니체는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털어놓고 편안해진 얼굴로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제 다시 혼자 있고 싶다면 나를 돌려보냈다. 나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내려왔다.

 

*참고문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동서문화사)

위키피디아(영문, 한글, 위키 북스, 니체전기/니체의 가족)

Mirror.enha.kr/니체

한겨레 기사

 (http://blog.hani.co.kr/blog_lib/contents_view.html?BLOG_ID=romaji&log_no=33218&resize=Y)

도덕의 계보학 소개 페이지 (구글 북스, 지만지고전천줄, 강영계)

구글맵

강신주 박사의 철학 고전읽기2,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앙일보 닮은 지성, 토리노서 쓰러지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ctg=15&Total_ID=196240)

 

 

2. 가슴을 무찔러 들어오는 구절

 

6. 병든 시대가 자랑하는 진리들 역시 그 시대가 지닌 질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의 말처럼 " 불행한 시기에 철학을 시작해서는 안된다. 철학은 오히려 행복할 때, 용감하고 성공적인 장년기의 열렬한 명랑함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지금 내가 무엇인게 아니라, 무엇이 되어야 할까에 집중하여 생각해보아야 한다.

7.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행복에 대해 혼동하지 않는다.

7.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는 자는 춤을 춘다.

>> 연구원을 하면서 책을 읽는 시간을 고통과 조급함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또 두터운 책들을 뒤적이지 않았으면 언제 그 진리의 순간과 마주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완벽하게 알지 못했지만, 마치 패키지 여행을 하듯 놀라운 세계의 구석구석을 마주하고 있다. 특히나 이 세계는 지혜의 세계이다.

8. 사피엔스라는 말의 어원 그대로 '맛을 보는 사람'...

18.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천 가지 방식이 남았다. 갈 길을 못 찾았다고? 그러나 길은 없어진 게 아니라 넘쳐나고 있다.

>>니체는 시인이었구나.

19. 인식으로부터 욕망을 몰아내겠다고? 너희는 욕망의 창조성을 모른다.

27. 목표의 실존을 남들보다 크게 확신한다는 점이다.

27. 모험가들은 '어떤 곳'을 뒤지지만 철학자들은 '모든 곳'을 뒤진다. 모험가들에게 '모든 곳'에 있는 것은 무가치 하지만, 철학자들에게는 '어떤 곳'에만 있는 것이 무가치하다.

 

28. 니체가 철학과 맺는 관계, 그 자체가 우리에겐 문제이다.

28. 청명한 날씨가 어쩌면 철학보다도 훨씬 가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8. 철학에 청진기를 대는 일.

29. 니체 철학이 중요하게 다르는 주제는 삶의 건강이며, 그가 대결하고 있는 주제는 죽음과 질병이다.

29.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생성과 소멸의 역동성

>> 니체 철학의 핵심은 통쾌함이구나. 하고 싶은 말은 하는 것.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것. 못다한 말을 할 수 있는 뻔뻔함이 니체의 철학이었다. 설령 그는 그러지 못했을지라도.

30. 죽음을 위한 준비, 영혼은 육체의 제약 때무에 이데아의 세계에 다가설 수 없다.

30. 삶을 배신하는 삶을 살고 있다. ... 그들 역시 삶의 지푸라기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삶의 지푸라기에 매달려 있음을 비웃고 있다.

31. 반박되어야 할 존재라기보다는 치료받아야 할 존재다.

32. 존재의 피안에 하나의 세계가 날조되었고 그것이 참된 세계로 불리게 되었다.

>> 진리란 늘 참인 말. =어디갖다 놓아도 맞는 말. 그렇기 때문에 보편성이 개별성 보다 앞선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

36. 그리스 인들은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공폭를 고유한 명랑성으로 극복한다.

38. 오이디푸스가 수동적으로 죄를 지었다면 프로메테우스는 능동적으로 죄를 범한다. .. 프로메테우스 전설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인적 노력을 하는 ㄴ개인은 필연적으로 신을 모독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40. 디오니소스는 개별적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거대한 충동을 나타내며 아폴론은 항상 절도의 자기 인식을 잃지 않는 이성을 나타낸다.

41. 괴로워하기는커녕 차이가 만들어 내는 다수성을 즐기고 있었다. 세상에 조재하는 차이들은 고통의 대상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놀이의 대상이었다.

41. 디오니소스가 가장 혹독한 고뇌도 웃음으로서 긍정한다면,

41. 디오니소스는 토막토막 잘리었으면서도 삶을 약속하고, 영원히 다시 살아나며 파괴로부터 돌아온다.

>>. 그리스인 이야기. Do not have to be serious!

42. .디오니소스의 갈기갈기 찢겨진 죽음에는 어떤 죄도 수반되지 않으며 그 죽음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재생의 약속을 통해 삶을 그정하는 힘으로 전환된다.

>> 자연스러운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아니, 죽음이란 그래야 한다. 그것은 남은 사람들에게 책임을 남기지 않는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이벤트여야 한다. (국가에 의해 수장되거나 하는 경우는 아주 이례적인 상황이다. )

43. 세계와 인생은 우리가 집착할 만한 것이 못된다는 인식이 획득되는 것이다. 이것이 비극적 정신의 본질이다.

44. 비극의 타락이 일어난 두 장소..극장과 법원이다. 극장은 삶을 연극으로 만드는 장소이고, 법원은 삶의 죄를 추궁하는 심판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 연극이 삶만큼 살아있음을 알려줄수 있을까? 다르게 생각하기 정도를 제안할지 모른다.

44. 오늘날 극장에 앉아있는 관객으로서의 대중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가 참여하는자들이었고, 모두가 변신하는 자들이었다.

45. 삶을 개념으로 포착할 때 그것 역시 일종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사유 공간은 극장이며 그들이 세운 체계의 무대이고 개념들은 장치들이다.

>> 날 것들. 삶을 개념으로 포착하지 말것. 그것은 싱싱한 것들이다.

47. 극장은 숨은 구조와 관계들을 구상화하면서 동시에 구조 자체를 등장시킬 수 있어 구조의 보편성을 드러내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극장이야말로 객관적 표상들을 되찾고 해석하는 데 편리한 모델인 것이다. 관객들은 연출자나 감독들이 적당히 숨겨놓은 구조를 발견하고는 마치 제 것이나 되는 양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더구나 극장은 사람들의 감각을 평등화하고 보편화하는 마력을 지녔다.

 그 속에서 철학은 자신들의 체계와 구조를 확인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선 극장에 있어선 안된다. 극장에서 살말은 집단으로만 정직하다. 극장에 갈 때 사라들은 그 자신들을 집에 놓고 간다. 스스로의 발언권과 선택권을 방ㅂ기한다. 자깅기의 취미도 버린다. ... 가장 개별적인 양심도 최대다수로 평등화하는 마력에 굴복한다.

48. 극장이 관객들을 바보로 만든다면 법정은 그들을 죄수로 만든다.

48. 나는 법을 죽였습니다. 시체가 생명 있는 자를 불안하게 하는 것처럼 법은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

50. 그대가 신앙을 가질 때까지 신앙을 설교하라. 그 다음부터 그대는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앙을 설교할 것이다. 신앙이 삶을 생산하면 이제는 삶이 신앙을 생산할 것이다.

50. 인간은 시대의 목적을 향해 훈련받아야 한다.

50. 니체가 철학자를 국가가 신하를 기르기 위해 베풀어주는 관직이라고 비꼬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50. 현실에서 철학은 국가의 시녀

51. 철학자는 무엇보다도 그 자신이 사상가여서는 안된다. 항상 사상가를 뒤쫓는 사상가, 다른 사람에 관한 사상가, 그들이 바로 철학자들이다.

51. 그 사회의 가치에 복종함으로써 길들여지는 것, 그리고 나서 그 가치를 미덕으로 숭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류 공동체가 처한 가장 커다란 위기다.

51. 모든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자기를 미치게 하거나 미친 짓을 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52. 평가에 반대되는 것은 건강이 아니라 '길들여진 두뇌' '보편적 신념'이다.... 미쳤다는 것은 길들여지지 않았다, 보편적 신념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53. 나는 너무 일찍 왔다.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따.

53. 광인의 시간은 미래다. 미래란 항상 와 있지ㅏㄴ 항상 오해받는 시간이고, 아무리 늦게 나타나도 항상 너무 이르게 나타나는 시가니다. 이것은 시대와 불일치 하는 시대이며, 때 아닌 것의 형태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53. 자신의 독자를 미래의 시간에 둔다. 나의 모든 작품은 낚시 바늘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미래의 철학자로 부르고 싶어한다.

54. 미래의 철학자 대 철학적 노동자!

54. 철학적 노동자들은 창조를 모른다.

>> 연애 사상, 밀당의 역사. 종교와 왕국의 대립상황에서 힘의 축이 돈으로 남아간다. 중교는 이미 그 힘을 쓰지 못했다.... 이런 종류의 역사책을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56. 삶을 사랑하라'는 것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다. ..

"우리가 삶을 사랑함은 우리가 사는 일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뭉니다.

57. 창조하는 자는 새로운 표에 새로운 가치를 써넣을, 함께 창조하는 자를 구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보다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사랑이 구속으로 변질되는 일이다.

58. 방랑하는 화란인에서 여성은 방랑자를 숭배해서 그와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은 무엇을 가져왔던가? 그는 방랑하기를 멈춘 것이다. 바그너는 그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는 파멸했다. 니체는 비제의 카르멘에 나오는 돈 호세의 사랑법을 보여준다. 그래! 내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내 우상 카르멘을!... 우상으로 존재하는 연인은 더 이상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다.

59. 자신의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예술적 행동이다. 삶을 살아하는 철학은 ...변모의 예술이다. ... 단지 보유하는 것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획득하고 계속 획득되어야만 하는 그런 것이다.

>> 니체 이전의 철학의 영토를 상상해본다.니체를 만나기 전의 내 삶은 어땠는가? 앎은 베일을 걷히고, 틈이 없을 것 같던 철학과 철학 사이 그 좁은 길에 니체가 있다.

62. 도덕학자들에게 결여된 것은 역사 의식이다. 도덕적 가치 자체가 생성되어 왔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한 도덕 역시 욕망을 표현하는 상징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62.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 민족은 어떤 민족도 살 수가 없다. 도덕의 기초를 정립하려는 열망에는 항상 가치들의 끔찍한 전쟁에 대한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

63. 도덕은 자신의 행동 기준이 되지만, 동시에 타인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 일반화할수 없는 것까지 일반화하기 때문에 도덕은 기괴하고 불합리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63. 다른 시대, 다른 과거에 대한 빈양학 지식도 이유가 된다.

64. 니체는 도덕을 가리켜 어리석음, 어리석음, 어리석음, 소심함, 소심함, 소심함이 뒤섞인 잡탕이라고 불렀다.

65. 보편적 가치란 가치에 있어 차이의 상실을 의미한다. .. 현재는 과거의 후예일 뿐이라는 주장이나 현재야말로 과거의 목적이라는 주장을 위해 사물들을 과도하게 단순화한다.

65. 잃어버린 사건들의 해방

68. 화폐란 도덕적 판단처럼 가치의 표시이다.

69. 화폐의 위조란 가치를 조작하는 행위다. 경제학자들이 떠받드는 화폐는 하나의 가치 척도로 환원할 수 없는 다양한 사물이나 활동이 성공적으로 교환되도록 한다. 이것이야말로 마법이며 뛰어난 위조 행위인 것이다.

>> 그러나 그것의 부작용은 우리 주변 도처에 나타난다.

69. 자연에 대한 어느 만큼의 억압이다. ..자연스러운 도덕의 부자연스러움이다.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의 역전, 자연과 비자연의 역전.

70. 인간의 도덕화, 그것이 바로 문제다.

70. 자연이란 바꿔말하면 자연처럼 감히 비도덕적인 것이다.

71. 그리스인들은 시기심 자체도 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감정이 본래 선하거나 악하다는 생각은 이들에겐 낯설었던 것이다. 이 두 여신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한 여신은 끔찍한 전쟁과 불화를 요구한다. 어떤 사멸적 존재도 이 여신을 당해낼 수 없다. 이 여신은 연장자로서 어두운 밤을 낳았따. 그러나 최고의 지배자 제우스는 다른 여신을 대지의 뿌리와 인간들의 편에, 훨씬 선한 신으로서 세워놓았다. 이 여신은 미숙한 남자를 노동으로 내몬다. 재산이 없는 한 남자는 부유한 다른 남자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는 재빨리 같은 ㅂ아식으로 씨를 뿌린다. 이웃은 번영을 추구하는 이웃과 경쟁한다. 이 불화의 여신은 인간들에게 선하다. 도공은 도공을 시기하고, 목공은 목공을, 거지는 거지를, 가수는 가수를 시기한다.

72. 한 민족의 선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른 민족은 조롱거리, 치욕이라고 부른다.

73. 비이기적 가치, 즉 연민이나 자기 희생, 자기 헌신과 같은 본능들의 가치... ->허무에로의 유혹, 종말의 발단, 죽음과 같은 정체, 회고적 권태, 삶을 부정하는 의지, 궁극적으로는 병의 우울한 징표

>> 쇼펜하우어의 도덕은 말로는 쉬우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과 관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불행을 안고 가게 만든다. 또한 희생 같은 것은 매사에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단 한번, 결정적인 순간에 발현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보편적이지 않다. 니체는 소크라테스 이후에 인류가 지고 있던 멍에를 벗겨주었다.

74. 도덕적 식물의 종류

75. 좋음의 판단은 좋은 사람들 자신에게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창조한 가치에 이름을 붙일 권리를 가진다.

  ...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좋음이나 정의에 대해 말할 때 항상 누구의 것인가를 물었다.

75. 디케의 길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란 각자의 길이다.

77. 귀족은 자신을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노예는 타자에 대한 부정과 비난에서 시작하고 있다. 긍정과 부정은 귀족적인 것과 노예적인 것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77. 강한 자는 선한 자가 아니다. 강한 자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이다. 그러나 선한자는 억압하지 않는 자, 공격하지 않는 자, 보복하지 않고 그것을 신에게 맡기는 자, 자신을 숨기는 자, 인내심이 강하며 겸손한자이다. 선한 자야말로 약한 자이다.

78. 거리에 대한 열정(pathos of distance)...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긍정의 대상이 되며, 더 많은 차이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 ...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도록 노력하는 것. ... 개별적인 차이를 부정해서 모호한 보편성에 도달한다.

80. 번개라는 주체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서 치는 행위를 벌이는 것처럼 말한다. 차라리 활동의 활동이라고 말해야 할 것을 우리는 주체의 활동이라고 말함으로써 주체는 활동과 분리되고, 그 활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로 돌변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처럼. 이른바 강자에 대한 약자의 복수가 이렇게 시작된다.

81. 그들의 정신적 공격 본능이 밖으로 발산되지 못할 때, 그 본능은 안으로 투사된다.

81. 공격의 내면화로서의 양심과 죄책감을 이야기한다.

83. 자비야말로 법을 넘어서는 강자의 특권이다.

84. 반동적 힘은 능동적 힘으로부터 그것이 할 수 있는 것을 빼앗는다. ... 강자로 하여금 더 이상 강자일 수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승리한 것이다. ...더이상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더 이상 예외자가 되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을 통해서 약자는 승리하고 만다. ... 능동성 개념을 박탈당하고 적응이라는 개념이 전면으로 나온다.

86. 노동이야말로 충동을 억누르는 훌륭한 수단임을 보여준다. 자신의 생활에 사악한 충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생활을 꼼꼼하게 계획하고, 계획표대로만 생활한다. 완전한 자기 망각, 단호히 고정된 생활 양식, 완전히 짜여진 시간, 그리고 그것을 위한 훈련.

86. 도덕은 하나의 동물원이다. 덫에 빠져 있을 때조차 자유보다는 철책이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거기에는 성직자라는 맹수 조련사가 있다는 것. 성직자들은 인간들이 개선되었다고 말한다.

88. 니체는 자신이 인정한 덕은 판단을 누구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 인정받는 것과 상관없이 평가하는 것, 가축떼적 입법이 금지하고 있는 것을 행하는 것, 요컨대 르네상스의 덕이라고 말한다.

89. 중력이나 전자기력처럼 덕도 사람을 당기고 밀치면서 행사되는 실재적 힘인 것이다.

89. 자신의 신체 상태를 잘 아는 일, 그리고 그것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이 점에서 악이란 해로운 만남에 불과하며, 일조으이 소화불량 같은 것이라고본 스피노자야말로 탁월한 사상가였다

90. 선악과라고 불렸다는 사실은 인간의 유치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스피노자는 신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을 때, 그 과일이 원래 악한 존재라고 말했던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모든 것은 아담의 무능력에서 기인한다. 신은 아담의 능력에 맞추어, 그 과일은 다른 짐승에게는 좋은 과일일 수 있지만 지금 아담의 몸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말한 셈이다. 그러나 아담은 어린애처럼 이것을 도덕적 금지로 이해했던 것이다.

93. 헤르메스의 해석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이중의 해석을 거쳐야 한다.

94. 헤르메스는 상업과 부귀의 신이기도 했다. 어떤 그럴듯한 변명을 갖다 붙인다고 해도 재산이란 결국 도둑질의 결과라는 프루동의 말처럼, 상업과 부귀는 거짓말과 도둑질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리스인들도 이해했던 걸까?

97. 세계 속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이해한 것처럼, 가다머도 인간이란 세계라는 근본적 제약 구조 속에 내던져진 존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 과학주의는 인간의 유한성을 자각하지 못한 오만의 결과물일 뿐이다.

98. 객관적 이해라는 말은 지적인 오만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가다머는 객관적 이해를 위해 제거하고자 했던 선입견이야말로 우리의 소중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98. 과거는 그 자체로 인정되어야 한다. 과거를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고는 우리가 딛고 설 지반을 가질 수 없다.

98. 과거의 우위를 인정하고 그 것을 그 자체로 보존해야만 할 것으로 승인함으로써이다. 101. 우리들 각자에 특수한 것을 승인함으로써 우리는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102. 공동체 안에서의 차이의 억압이나 고정된 정체성이 가하는 폭력을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령, 이슬람에서의 여성문제)이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그는 공허한 열망을 가진 낭만주의자들 정도로 간주한다.

103. 다양한 종류의 눈이있다. 스핑크스도 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진리가 있고, 따라서 어떠한 진리도 없다.

104. 사실은 없으며 있는 것은 오직 해석뿐이라고.

104. 연속적인 흐름들을 끊고 그것들으 고립시켜 사실들

104. 활동고 활동하는 주체는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

105. 수많은 건강 상태를 가지며, 그러한 건강 상태만큼이나 다양한 철학이 존재한다.

105. 지속이나 자기 동등성, 존재등은 이제 주체에도 객체에도 속하지 않게 된다. 그것들은 사건의 복합체이며, 이는 사건의 템포에 있어서의 차이정도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다. ...모두 하나의 퍼스펙티브의 지위로 내려앉는다.

06. 니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때 표현되고 있는 의지다. 왜 그들은 하나의 퍼스펙티브를 전체화하려고 하는가?

107. 차이에 대한 동등화의 의지... 진리란 하나의 신앙이며 가치 평가이다. .. 보존을 위한 하나의 투시법이라는 사실을 망각함으로써 하나로 만드는 것...차이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그것을 특정 방향으로 모으려고만 하는 것이 그들의 병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간의 행복, 인간의 인생이 꼭 결혼을 통해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은 시작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고도 어렵게 서로가 서로를 맞추어 가야만 한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 사람들이 너무 관대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숙녀의 나이를 물어보는 것처럼 실례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틀은 자신에게만 적용해야 한다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107. 다양한 시선을 특정 방향에로 향하게 하는 일종의 훈련이다. 니체는 이것을 광학의지라고 부른다. .. 하나의 의무이며 명령이다.

107.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자아를 만나야 한다. 그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자신만의 인생을 살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형성된다.

108.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 “항변할 수 없다는 것, 그때 증명된 것은 진리가 아니라 무능력이다.”

 

109. “다양한 종류의 눈이 있다. 스핑크스도 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세계에는 다양한 종류의 진리가 있다. 따라서 세계에는 아무런 진리도 없다.”

 

109-110. 진리의 과잉은 진리의 소멸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소멸은 부재나 결핍이 아니라 넘침과 과잉이다. 카오스나 미로야말로 니체에겐 즐거움의 대상이다. 길의 과잉이 카오스이며, 끝없는 길이 미로가 아니겠는가. 세계의 카오스적 성격을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몰락의 징후이다. “모든 해석이 생장의 징후이거나 몰락의 징후이다. 통일성을 주장하는 것은 타성의 욕구이며, 다수성이야말로 힘의 징후이다.”

 

110. “오히려 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거나 힘의 편이 되었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다.”

 

111. 언제까지나 학생으로 남아 있다면 스승에게 잘못 보답하는 것이다.

 

112. 니체에게 해석은 무엇보다도 창조와 생성의 문제다. 해석 행위는 모든 차이를 아우르는 진리를 찾아 나서는 일도 아니고

112. 그들은 해석을 통해 하나의 가치를 창조하고 생성한다.

112. “모든 생성을 거부하고, 모든 새로운 것들은 과거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생각…”

 

114. 그의 주제 이탈은 동시에 그 이야기의 연속이고 전개이다.

 

118. 니체는 자기 책에 대한 평가로서 다시 책을 내놓았다. 니체 자신이 자신의 작품을 해설하는 헤르메스다.

 

119. 니체로 혁명하는 사람.

119. 재치와 배짱의 신 헤르메스 헤르메스는 전령이기 이전에 해석자이다. 그는 메시지를 해석하는 자이고, 창조하는 자이다. 헤르메스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고통으로 여겨지는 한 해석학자들은 창조하는 해석의 즐거움을 모른다.

 

119-120. 공공영역에서 차이들이 생성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던 그리스인들의 태도는 아직도 우리에게 이해되고 있지 않다. 다양성이 건강을 증명한다는 자연의 생태주의적 가르침도 우리에게는 이해되고 있지 않다.

 

123. 한 사회가 자신의 미래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커다란 위기이다. 교육의 목표가 미래 주체를 양성하는 것에 있다면 정치의 목표는 그들이 살아갈 미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미래를 낳을 능력을 상실한 근대 유럽 문명을허무주의(nihilism)’라고 명명했을 때, 그것은 철학적 용어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용어이다.

123. 국민들이 더 이상 군주적 본능을 가지지 못할 때, 다시 말해 주권자, 입법자, 가치의 창안자이기를 그칠 때, 정치 영역은 위축되고 만다.

 

125.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형이상학이 보여준 폭력성이 정치적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차이를 억압하는동일성의 정치가 된다.

 

126-127. 정치의 과제를 가치의 창조와 평가가 아니라 안정성의 유지로서 설정하면, 정치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거나 평가하기보다는 기존에 설립되어 있던 가치를 내면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127. “예속적 계층에 속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다만 타인들이 평가하는 대로 존재하는 인간들에 불과하다. 그 안에서 인정되었던 것, 또는 그들로 하여금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 이외에 어떤 다른 가치도 찾아내지 못한다.”

127. 가치 창조와 평가… ‘길들이기길러내기라는 표현은 가치의 습속화를 통한

 

131. 고대의 국가가 전쟁에서 기원한다면 근대의 국가는 전쟁에 대한 피로감에서 등장한다.

131. 너희가 국가, 그 새로운 거짓 신을 숭배

 

141.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항상계산 가능한 것’, ‘계획된 것으로 만들었다.

 

141-142. “비윤리적이라고 비난받는 것들은 개인적인 것, 자유로운 것, 제멋 대로인 것, 길들여지지 않은 것, 예측되지 않은 것, 계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런 점에서 훈육의 대상으로 삼았던 비합리적 힘으로서의 신체는 단순히(flesh)’의 의미로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충동이나 욕망처럼 잘 길들여지지 않고, 예측되지 않으며, 계산을 방해하는 힘을 가리키는 것이며, 사회체 안에 존재하는 계산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은 세력들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142. 니체는 이러한 비윤리적인 힘들은 다스리는 훌륭한 수단 중의 하나가 노동이라고 말한다.

142. 사회는 노동을 통해 보다 안전해질 것이다.

 

147. 그리스인들은 동시대인들과 경쟁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죽은 사람, 즉 자신의 선조들과도 경쟁했다. 특이하게도 아곤적 문화에서는 자신이 지나치게 성공하는 것을,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발전하지 못하고 자신과 경쟁할 만한 존재가 사라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150. 주변국가들과 함께 경쟁하고 발전할 수 없게 되자마자 밖을 향했던 에너지는 안을 향하게 되고, 아곤은 무너지고 안타곤의 사회가 된 것이다. 니체는 이때부터 그리스 국가가 초월적으로 군림하기 시작하며 잔인해졌고, 그리스인들과 함께 타락했다고 주장한다.

 

153. “나는 이 통찰을 길 위에서 얻었다. 그것이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황급히 손을 뻗어 서투른 말(언어)을 사용해서 잡았다. 그러자 통찰력은 말라비틀어져 말에 매달리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응시하면서 내가 이 새를 잡았을 때 왜 행복한 느낌이 들었는지를 이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155. 니체는 원자론을 이렇게 비꼬았다. “저울에 달아보아 차이를 확인할 수 없게 되자”, “다이아몬드와 흑연과 석탄이 동일하다고 주장하기 위해동일한 어떤 것, 불변의 어떤 것을 공상해야 했던 것 아닌가?

161.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거대한 힘, 증대하는 일도 감소하는 일도 없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청동과 같이 확고한 양을 가졌으면서도여러 힘과 힘의 파랑의 유희로서 하나인 동시에 다수이고, 여기에 모이는가 싶으면 저기서 감소하는힘들의 바다. 그것이세계 그 자체이다.

166. 강함은 무엇보다도먼저 시작하는 것’, ‘창조하는 것’, ‘자율적인 것’, ‘넘치는 것’, ‘선사하는 것’, ‘공격하는 것등으로 그려진다.

>> 예전에는 약함이나, 약점 같은 구절들을 열심히 읽고 나와 맞춰보았다. 이제는 강함에 눈이 먼저 간다. 나는 얼마나 강한 사람일까? 나는 얼마나 시작하는 사람일까? 창조하는 사람일까? 자율적일까? 무엇보다 무엇으로 흘러 넘치고 있을까?

168. 능동은반동을 뒤로 밀거나그것에무관심한 듯자기 능력의 한계까지 나아간다.

168. 더 많은 것들을 생성시키는 것, 더 많은 거리들을 생산하는 것, 하나의 생성을 다음의 또다른 생성의 디딤돌로 삼는 것.

168. 능동적 힘으로부터 그 능력을 박탈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많은 힘들(수단들)이 능력의 확장을 위해 다시 사용된다.

168. 즉 부정을 겨냥하는 의도를 강화를 겨냥하는 의도가 대신한다.

 

172-173. 욕망은결핍이 아니라넘침이다.

 

175. 긍정은 디오니소스의 정신이며, 그리스 예술의 정수이고, 예수가 전하는 복음의 본질

 

176. 어떤 일이든 행하도록 촉진시키고, 반복해서 행하도록 자극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하도록, 밤은 밤대로 꿈꿀 수 있도록 재촉하며, 이것을 잘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것이다.

 

181. 생성과 소멸의 반복에 대해한 번 더!”라고 말하겠지만

>> 생성과 소멸의 반복을 멀리서 보면 그것은 시시포스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그것은 매일 조금씩 다르다. 내가 느끼는 것도 다르다. 그 차이를 포착하는 것이 즐거움이다.

188. 어떤 포만이나 권태, 피로도 모르는 생성으로서, 자기 자신을 축복하고 있는 것. 영원한 자기 창조와 영원한 자기 파괴의 디오니소스적 세계.

 

197. 모든 순간들 속에 다른 시간과 공존하며 경쟁하고 있는 시간이다.

 

200. 영원회귀는 세계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라 세계를 바꾸는 실천(praise)이다.

208. 세 번째 차원은 우연이다. 우연이란 차이가 모든 것 속에 분포된 상황이다. 필연적인 법칙으로부터 일탈하는 흐름이 우발적 사건을 만들어 낸다. 우연은 창조적 힘이다. 우연은 카오스와 미로를 즐기는 정신이다. 미로나 카오스는 길이 없음이 아니라 길의 넘치이다. 이로써 생성의 공간이 열린다.

216. 초인은 인간을 넘어선 존재, 인간의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다.

>> 인간 중에는 나올 수가 없다. 엘리자베트가 말한 것처럼 히틀러 같은 한 개인이 될 수가 없는 개념이다! 동생이 난독증, 이건 거의 팀킬 수준이다.

217. 인간이 진화한 결과라면, 초인은 인간의 철저한 몰락으로부터만 출현한다. 초인은 결코 인간이 진화한 종이 아니다.

>> 

222. 천국이란 새로운 삶의 방식이고 실천이라는 것이다.

>> 맹목적 믿음의 대상으로 종교를 선택하는 것은 비극이다. 마치 자신보다 커다란 존재에 묻어가려는 편리한 마음에서 시작되는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이상향이란, 스스로의 삶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은 굉장히 실천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한 그런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가톨릭 교리 중에 예수의 위치가 중요해진다고 판단된다.

223. 인간이 신의 실수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신이 인간의 실수에 불과한 것일까? 인간은 혹시 자신의 피조물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루터는 신 그자신이 현명한 인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니체는 그가 정작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신은 우매한 인간 없이는 더더욱 존재할 수 없다는 것

224. 신이 시체로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도 새로운 삶의 생성 없이 살아갈 수 있다.

228. 그림자는 방랑자이며 목표를 잃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떠돌이다. 여행을 많이 했지만 여행에 지쳐있는 자, 그래서 결구엔 감옥까지도 행복하게 여기는 자이다.

228. 모든 것을 본 신, 심지어 인간까지도 본 신. 이 신은 죽어야 했다! 인간은 그러한 목격자가 살아 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다.

229. 차라투스트라여 뭔가 예배 드릴 것이 남아 있다는 것에 나의 늙은 가슴은 뛰어오른다.

231. 너 자신을 네 스스로의 불길로 태우고자 해야 한다. 먼저 재가 되지 못할 때 네가 어떻게 새로워지길 바라겠는가?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 자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한번 더 라고 말하는 것이다.

>> 한번 더! 한 번 더 놀자. 한 번만 더하자. 그렇게 말했던 게 뭐가 있더라? 의도적으로 중독되는 것들을 피해 자라온 나의 인생에서 그런 것들이 매우 적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232. 세 가지, 즉 놀이와 웃음과 춤을 몰랐다.

>> 아이들과 놀다보면 세 가지를 남용하는 법을 배운다. 놀이와 웃음과 춤이 흘러 넘친다. 예전에 조카의 사촌 아이들이 우리집에 놀러 온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제일 어렸던 조카를 재우며 우쿨렐레를 치고 서재를 인디언처럼 빙글빙글 돌았던 일이 있었다. 아기를 달래 재우는 귀찮고 어려운 일을 우리는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방법으로 해냈다.

232. 그대들 자신을 넘어서 웃는 법을 배우라! 그대들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배워라, 웃는 것을

232. 그들은 춤추는 법도 모른다. 차라투스트라는 춤추는 자이고 가벼운 자이다.

23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춤추는 것을 이해하는 신만을 믿겠다. 차라투스트라의 신은 디오니소스다. 초인을 의욕하는 자 차라투스트라가 영웅의 모델이라면, 초인으로 존재하는 자 디오니소스는 생성의 신이다. 차라투스트라가 놀고 싶어하는 자이고, 웃고 싶어하는 자이고, 춤추고 싶어하는 자라면, 디오니소스는 놀이 속에 존재하는 자이고, 웃음으로 존재하는 자이고, 춤으로 존재하는 자이다. 디오니소스는 생성 속으로 뛰어든 존재의 혼

>> 살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성하는 것만이 자신의 존재를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 말이 타당하게 들린다. 또한 그 창조라는 것은 주로 아주 재미있는 부분들 중 하나다.

233. 변신을 경험한다.

233. 디오니소스는 가벼움과 기쁨 자체이다. 그의 춤은 생성과 생성의 존재에 대한 긍정이고, 웃음은 다수성과 다수성의 단일성에 대한 긍정이며, 주사위 놀이는 우연과 우연의 필연에 대한 긍정이다.

>> 나는 신나는 것이 좋다. 마음껏 사지와 근육과 살들을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좋다. 디오니소스가 글에 나오면 그래서 반갑다.

234. 새로운 느낌 방식

236. 사실 이름은 신체의 변신을 이해함에 있어 큰 방해물이다. …이름은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해서 그 사회의 주체로 거듭나게 만드는 핵심적인 기제이다. 이름이야말로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을 가장 오해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237. 오해와 착각이란 다른 이름을 쓰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신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이름을 쓰는 데서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237. 사람들은 저자의 생애를 모든 작품들의 근원으로 이해하지만 니체는 그것 역시 하나의 작품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238. 개인은 계속되는 변화를 통해 자신의 주어진 정체성을 잃어버림으로써만 자기를 생성시킬 수 있다.

>>나는 이 말에 매우 동의한다. 정체성이란 것이 상당히 드러나지 않던 나의 경우, 일련의 나의 특징들을 알고 받아들이게 되면 또 새로운 내가 버섯처럼 올라온다. 시간이 상당히 흐르고 뒤돌아보면 나는 조금 다른 나로 변화하게 마련이다. 거기엔 긍정적 변화나 부정적인 변화라는 것은 없다. 그저 좀 더 직선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238. 진정한 얼굴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면만이 진정한 얼굴이며, 가면 뒤에는 다른 가면이 있을 뿐이다.

239. 책 사이를 걷고 뛰고 오르고 춤추는 자, 문 밖에서 생각하는 자가 독자로 적당하다. …즐거운 소화작용이 필요하다.

>> 해보니 무척 즐겁다. 특히 요즘 약간 지겨웠던 저자에 대하여를 내가 바라는 시간과 장소와 텍스트로 작성해보니, 이게 아주 즐겁다. 언젠가 칼럼까지도 도전해보고 싶다.

240. 니체, 그는 우리에게 변신의 힘, 그리고 변신하는 힘으로 불린다

242. 비견할 수 없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생의 즐거움과 명랑성을 잃지 않았던 위대한 정신이 숨쉬고 있으며, 공포와 연민을 초월한 생성이라는 테마가 은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243. 헤겔이 당대의 독일에 만족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려 했다면 쇼펜하우어는 당대의 흉측한 측면을 이해했고, 따라서 현존에 지독한 부정을 가했던 것이다.

243. 바그너 음악이 사람들을 하나의 무리들로, 아무런 개성도 없는 평준화된 무리들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244. 참을 수 없는 압박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마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바그너를 필요로 했다. 바그너는 탁월하다고 하는 모든 독일적인 것에 대한 해독제였다. 나는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도 하나의 독이다.

244. 떠나야 할 곳을 알지만 도달할 곳을 모르는 배를 타고 있다. … 우리는 이미 배를 불태워 버렸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용감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245. 서광과 1882년의 즐거운 지식, 자기 개념을 창조하는 자라면 이 두 저서가 정확히 그것에 해당한다.

246. 차라투스트라의 메시지도 분명하다. 제국적인 것에 대한 반대, 국가와 교회라는 우상에 대한 반대!

247. 그러면서도 부정과 창조는 과거를 구제하는 긍정의 정신 속에 자리하고 있다.

247. 반대로 전형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 병을 인생을 사는 데, 아니 풍요로운 생을 살기 위한 활동적인 자극으로 수용할 수 있다.

247. 치료하는 힘이란 우리가 입는 상처에도 있는 법이다. … 상처에 의해 정신이 강해지고 힘이 회복된다.

>>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자신의 상처를 악용해 누군가를 가해자로 만들지 말자.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지 말자. 상쳐 속에도 치료하는 힘이 있다. 인간은 나약하지 않다.

250. 삶을 사랑하라. 차라투스트라는 그의 여행 기록이다. 그리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제 2권에 등장하는 방랑자가 바로 그 자신이다.

251. 이제 나는 너희에게 명한다. 나를 잃어버리고 너 스스로를 찾으라. 너희가 나를 완전히 부정하였을 때 나는 너희에게 다시 돌아가리니, 프리드리히 니체

251. 이주민의 정착은 파멸이다. 여행자가 여행을 멈춘다면 그는 더 이상 여행자로 불릴 수 없다.

252. 니체의 사상은 유목적 사상이다. 유목민이란 여행자이며 외부자이다. 그러나 니체의 여행자가 떠난다고 했을 때, 그는 공간적으로 떠나는 게 아니다. 그가 떠나는 것은 지배적인 질서이며 지배자의 코드이다.

242. 가면 놀이는 멈출줄 모르고, 변신은 영원성을 획득한다.

242. 가치 전환의 실험, 목소리는 전쟁을 시작하는 나팔수의 나팔처럼 시끄럽지 않다.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가장 조용한 말이다.

253. 모든 금지된 것들을 찾아 나서는 여행이 아니던가.

253. 금지의 영역에는 새로운 것들이 널려 있다. Nitimur in vetitum! 철학자는 금단의 영토에 발을 들여놓은 여행자다!

>> 저 라틴어 문구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we try to get what has been forbidden for us, and we always want whatever we have been refused' 그동안 우리에게 금지되었던 것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거절받았던 것을 원한다!

 

모든 것들이 다 익었으니, 떠날 때가 되었도다!

 

 

3. 내가 저자라면

책머리에

 

서장 -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서장]

천개의 눈, 천개의 길

1. 천개의 눈

2. 천개의 길

3. 천 개의 기원

4. 천 개의 젖가슴

5. 천 개의 주사위

6. 천 개의 화살

7. 천 개의 가면

8. 천 개의 이야기

 

[1]

1. 아모르 파티 : 삶을 사랑하는 철학 - 니체와 철학 사이에서

1. 삶에 대한 철학의 공과

2. 거인들의 웃음소리와 신들의 한탄

3. 세 개의 죽음 - 디오니소스와 그리스도, 소크라테스의 경우

4. 비극이 상연되는 극장과 심판의 법정

5. 미래의 철학자

6. '사랑'의 의미

 

2. 강한 자와 선한 자- 니체의 계보학

1. 계보학 1 - 비판

2. 계보학 2 - 탐사

3. 도덕의 자연사

4. 강한 자와 선한 자

5. 약자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

6. 도덕이라는 동물원

7. 선악을 넘어서

 

3. 투시주의와 광학의지 - 니체의 해석학과 니체에 대한 해석학

1. 헤르메스가 전하는 메세지

2. 진리의 해석학

3. 스핑크스의 눈

4. 가치의 발명

5. 니체에 대한 해석학 - 방법과 스타일의 문제

6. 헤르메스는 해석자였다

 

4. 우상의 몰락과 위대한 정치 - 니체의 근대정치체제에 대한 비판

1. 작은 정치의 시대

2. 새로운 우상의 탄생과 몰락

3. 새로운 우상의 탄생과 몰락2

4. 길들이기

5. 아곤의 정치

 

5. 권력의지와 영원회귀 1 - 자연학 + 윤리학

1. 초월적인 것의 죽음과 우주론 - 원자론의 경우

2. 왜 원자가 아니라 힘인가

3. 힘의 질 - 능동과 반동

4. 권력의지에 대한 오해

5. 권력의지의 윤리학과 권력 느낌

 

6. 권력의지와 영원회귀 2 - 자연학 + 윤리학

1.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세계

2.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

3. 반복의 두 경우

4. 긍정을 부르는 긍정

5. 차이의 놀이와 회귀의 비밀

 

7. 인간 - 원숭이와 초인 사이에 걸려 있는 밧줄

1. ''

2. 진화와 변신

3. 진희 죽음과 인간의 몰락

4. 보다 높은 인간들

5. 높이와 웃음, 그리고 춤

 

8. N개의 얼굴, N개의 철학 - 니체는 자신을 어떻게 변신시켰는가

1. 가면의 철학

2. 비극의 시대에서 냉소의 시대로

3. 화약 냄새가 사라진 전투

4. 모든 가치의 전환

5. 다시 떠나는 여행자

 

[2]

베버 - 근대 허무주의 비판의 딜레마

1. 근대라는 탈주술화된 주술

2. 근대인의 탄생

3. 관료제 기계

4. 신체 길들이기, 신체 길러내기

5. 베버의 정치학

6. 베버 전략의 딜레마

 

차이에 대한 회피와 포섭의 정치학 - 자유주의자와 공동체주의자의 논쟁을 중심으로

1. 문제제기

2. 근대 국가의 두 얼굴

3. 자유주의와 차이의 문제

4. 공동체주의와 차이의 문제

5. 차이의 아상블라주를 향한 전망

 

니체의 방대한 저서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오해하기도 쉽고, 그 동안 다양하게 해석되왔던 터라 그의 본심이 무엇이었는지 잘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 책 한 권을 통해 권력의지랄지, 욕망, 영원회귀, 놀이 등을 본래의 의도로 잘 읽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또한 니체 본연의 강렬한 건강한 삶이라는 목적으로 나의 의지도 새로워짐을 느낄 수 있다. 한 마디로 이 짧은 책은 니체를 아주 잘 보여주었다. 완전히 니체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내가 만약 저자라면, 나는 니체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서 뒷부분의 국가와의 관계 등의 부분들, 철학적 요소들의 과잉은 오히려 책을 멀어지게 만든다. 대중들은 니체라는 그의 이름 앞에서도 철학의 어지럼증을 호소한다. 나 또한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일개 20대로 본격적인 니체 정리 작업에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주석과 해석과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로 구성된 그의 철학에서, 나는 순살만 발라내어 나의 삶에 적용시키고 싶다.

 

 나는 니체의 통쾌함이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주입한 선악이 아닌, 스스로 판단을 내릴수 있는 좋고 나쁨으로 나의 세계를 스스로 일구어 나가는 진취적인 인간의 모습을 나는 니체를 통해서 확인한다. 소크라테스 이후에 니체는 처음으로 인간에게 인간을 되돌려주었다. 그것은 보편적인 진리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바로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지독하게 괴로울지라도.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그 것을 보여주었다. 무사의 갑옷을 입고 있는 소녀의 영혼. 약하고 병든 존재 위에 쏟아지는 억압을 막아주고 싶어하는 연민. 스스로의 욕망을 긍정해 귀족이 되도록 촉구하는 그의 철학. 나는 그가 자신의 삶에서 일구어낸 아름다운 철학을 통해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를 구하는 방법을 찾는다.

 

 안타까운 것은, 마지막 2부가 앞쪽에서 보여주었던 니체 철학의 찬란함과 너무 비교가 되는 점이었다. 줄을 치기 위해 펜을 들고 필사적으로 페이지를 헤매고 다녔지만, 나는 마음을 무찔러 들어오는 경구를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베버로 대표된 이 짧은 글은 집단의 입장에서 니체 철학이 어떻게 흘러 들어오는지 그 현상을 관찰하고, 이후 우리 삶이 어떻게 타협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성공한 사례를 보고 싶다. 그러나 집단, 정치의 영역에 들어갔을 때 니체 철학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혹은 니체의 차이에 대한 관용정신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얼마나 사회가 쉽게 변질되는지를 보여준 것 같다. 혹은 니체의 철학이 필요한 우리 현실에 대한 부연설명이라고 생각되는데, 상당히 불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안다.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이 책은 니체를 보다 자세히 파고들어가 정리하고, 근대철학의 시작을 맛보게 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설명된 것들이 어떻게 실제에 녹아들어가는지 그 예시를 꼽는 과정에서 놀라운 아우라가 사라져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말하자면, 내가 앞에 1부를 읽으면서 받았던 감동이 전부 아무것도 아닌 흑연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느낌이다. 그렇게 둘 필요가 있었나? 그렇게 두면 인간이 변하는가? 나는 책이 읽기전의 독자와 읽은 후의 독자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재미있는 역사책이 아니라, 내가 니체 철학의 펄덕거림을 삶 속에서 실험해볼 수 있도록 장려해주는 책으로 남았다면 더 좋았을 것인데, 아쉽다.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

7.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는 자는 춤을 춘다.

 

18.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천 가지 방식이 남았다. 갈 길을 못 찾았다고? 그러나 길은 없어진 게 아니라 넘쳐나고 있다.

 

77. 귀족은 자신을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노예는 타자에 대한 부정과 비난에서 시작하고 있다. 긍정과 부정은 귀족적인 것과 노예적인 것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77. 강한 자는 선한 자가 아니다. 강한 자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이다. 그러나 선한자는 억압하지 않는 자, 공격하지 않는 자, 보복하지 않고 그것을 신에게 맡기는 자, 자신을 숨기는 자, 인내심이 강하며 겸손한자이다. 선한 자야말로 약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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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08:32:59 *.218.180.133

어니언의 글에서 니체가 더 많이 보이는데.

인터뷰...아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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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6 09:10:53 *.50.21.20

ㅎㅎㅎ 나한테 재밌는게 남도 재밌는건 진리인듯! 

언니의 오프 과제에서 힌트를 얻어서 적용해보았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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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4:23:24 *.104.9.216
다시 읽고 싶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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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6 09:11:30 *.50.21.20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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