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제주도에 갈 때 치자를 잘 챙기지 못해 덕천과 나를 사랑으로 연결해 준 치자가 말라 죽어버렸다. 서울에 돌아와 치자나무 두 개를 샀다. 아니 꽃 파는 남자 덕천의 지인인 정민님이 두 개를 선물해줬다. 처음 키운 치자가 말라 죽어서인지 덕천과 나는 유독 물주기에 민감했다.

그래서 처음 정민님이 치자를 선물해 줄 때,

"흙이 마를 때쯤 물을 주면 되요." 하고 했던 말은 까맣게 잊고, 이틀에 한 번씩 듬뿍 물을 줬다. 꽃봉오리들이 많이 있어, '이제 곧 꽃이 피겠구나.' 하고 기대했다. 그 중 가장 먼저 꽃을 피운 봉오리가 예뻐서 가까이 보기 위해 화분에 손을 살짝 댔는데 꽃봉오리가 '툭' 떨어졌다. 사실 이 때 이미 문제가 있음을 알아 차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우리는 다시 물을 듬뿍듬뿍 주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 꽃이 필 때가 한참 지나서 남은 봉오리들이 우두둑 한꺼번에 떨어져 버렸다. 덕천은 그늘 진 창가에 놓아 두어서 햇빛이 부족해 영양분이 부족한 것 아니냐며 햇빛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선원 3층 화단에 옮겨 심자는 얘기까지 했다. 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힘없이 떨어진 꽃봉오리들 사진을 찍어서 금요일 행사 때 만날 정민님에게 영양제를 부탁했다. 그런데 금요일 김일동 작가의 그림토크쇼에서 만난 정민님이 뜻 밖의 이야기를 전했다.

"아무래도 치자에게 물을 너무 많이 줘서 그런 것 같아요. 이제라도 흙이 완전히 마를 때 까지 기다렸다가 물을 줘 보세요."

아… 그러고 나서 집에 가 치자 나무에 깔아 둔 돌을 걷어내고 흙을 만졌더니, 이게 웬일! 정말 며칠간 물을 주지 않았는데 흙이 아주 촉촉했다. 이제 장마도 시작해서 비도 많이 오고, 햇빛은 더 잘 안 비출텐데 걱정이다. 이번만큼은 치자를 잘 키워보고 싶은데,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치자를 아프게 만들다니 가슴이 아팠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동물 키우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듯 하다. 소리를 못 낼 뿐-물론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소리라서 안 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생명이란 다 똑같은데 동물보다는 책임감도 덜하고, 쉽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착각이 만들어낸 결과다. 굶주린 길고양이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집에서 좋은 집사를 만나 살고 있는 고양이는 행운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사실 야생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환경이라면 집이 최고라고 얘기하는 것은 야생에서 먹을 게 없으니 동물원에서 사는 게 더 낫다는 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자연의 섭리, 인간의 몸이란 태어날 때부터 자연치유력을 가지고 태어 났지만 자연치유력을 그르치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잘못된 습관, 자세, 등등 따지면 정말 일상 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그르치는 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거다. 식물도 동물도 그 자연의 섭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 역시 현실이다. 내 몸 하나도 제대로 못 챙겨서 체력은 바닥이고, 가끔 골골대는 내가 식물을 키울 생각을 하게 되었다니,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에 강아지를 한 번 키운 적이 있다. 어렵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키운 흰 털이 복슬복슬한 귀여운 강아지였다. 2층 집의 2층이 집이었고, 1층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1층 대문이 고장난채로 늘 열려 있었다. 열려 있지 않아도, 강아지의 작은 몸이 언제든 빠져 나갈 수 있는 큰 틈이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강아지가 사라졌다. 아무리 불러도 소리도 들리지 않고, 결국 집이 빈 틈을 타서 이 녀석이 밖으로 나갔다가 길을 잃은 모양이라고 결론 지었다. 그 때 아빠가 얘기했다.

"앞으로 책임지지 못할 거면 키우지 마라!"

어쩌면 이 말이 뼛속 깊이 박혀있어서 생명이 있는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더 피해 왔는지도 모른다. 책임질 일을 만드는 것 자체가 내겐 사실 부담이다. 어떤 일이든. 그래서 책임 질 일 따위는 아예 뿌리부터 잘라 버리고, 안 만들려고 했던 것일지도. 내게 주어진 자유라는 녀석이 가지고 있는 무게만큼의 책임을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삶이다. 따지고 보면 연애도 책임의 맥락에서 계속 기피해왔다. 누군가와 감정을 교류하고,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조금씩 맞춰가야 하는 행위가 연애라고 한다면, 감정 교류하고 서로에게 맞춰가는 그 시간이 내겐 피곤한 일이었다.

'혼자 살면 편한데, 굳이 왜 그런 쓸데 없는데 힘을 써야 하는 거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어찌됐든 작년 내게 호감을 가진 누군가가 '사랑'의 매개로 치자나무를 선물했고, 혼자인 삶에 찾아 온 치자에게 물을 주며 사랑한다 얘기했다. 그러자 치자 이 녀석에게 내 사랑과 정성이 전해졌는지,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냈다. 그 꽃을 통해 내 마음도 선물한 이에게 전해졌고, 덕분에 지금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하나였던 치자나무가 두 개가 되었고, 치자나무 둘을 돌보는 사람도 하나-나-에서 덕천과 나 두 사람으로 늘어났다. 치자나무 둘, 사람 둘 이렇게 넷으로 늘어났다. 사랑하자 사랑하는 이들의 숫자는 두 배가 되었네. 그래서인지 조금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사랑하면 안 죽는다는 말도 이해가 될 것 같다. 어쨌든 이 글의 결론은, 사랑으로 치자나무를 잘 살려내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