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어니언
  • 조회 수 1970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14년 6월 30일 00시 37분 등록

깊은 밤, 아름다운 왕궁으로 나는 잡혀왔다.

분노한 왕을 달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그의 마음을 끌어, 나는 천일 동안 그에게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기로 약속했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공주였는데, 그 동안 아무도 내가 가진 재능을 알아봐주지 않았다. 그러나 죽음을 눈앞에 둔 그 장소에서 나는 나의 지혜로 삶의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곱슬거리는 숱 많은 머리카락을 곱게 빗고, 왼손으로 빗을 내려놓았다. 그 후 정원으로 가 왼손으로 깃털 펜을 잡고 신비한 문양이 새겨진 벽과 야자나무와 꽃으로 아름답게 가꾼 정원을 둘러보았다. 그곳에서 나는 천 가지의 이야기를 지어내었다

 

나의 방에는 아름다운 무늬의 접시들이 걸려있었고,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무에진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나며, 볕이 잘 드는 커다란 창문이 있는 곳이었다테두리에 수를 놓은 선명한 주황색 비단으로 짠 옷을 입고,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팔찌와 귀걸이, 모자를 쓴 시녀들이 나의 시중을 들었다. 식사 때마다 생강과 모스카다콩, 계피와 커민, 장미꽃봉오리와 아니스 줄기, 실란트로와 샤프란으로 맛을 낸 진귀한 음식들과 아름답게 빛나는 석류와 무화과가 나왔다.

 

 우리가 살아남은 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 재능의 뿌리는 나의 왼손이라는 것을. 그러나 글씨를 쓸 때엔 오른손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왼손과 오른손을 나의 쌍둥이 아들들처럼 대했다. 마치 두 개의 저울처럼 나는 두 손을 골고루 사용하려고 노력해왔다. 왼손과 오른손은 서로 티격태격하곤 했다.  서로의 분업에 불만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손으로 글을 쓰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오른손은 훨씬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른손은 문명화된 손이었다. 왼손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그러다 왕의 관문을 통해 나는 나의 본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왼손은 여전히 자연의 힘을 간직하고 있었다나의 맨목소리와 욕망은 왼손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었다나는 왼손으로 나에게 편지를 썼다아주 어렸을 때의 내가 되어아직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만을 알고 있던 시절의 나로 돌아갔다나는 그 먼 중심에서 온 편지를 나의 왼손을 통해 받았다그리고 펜을 옮겨 받은 오른손은 그 편지의 답장을 썼다왼손은 화가 나있었다그녀는 울기도 했다그러나 필담을 통해 그녀는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우리는 화해하기로 했다그녀는 나에게 힘을 빌려주었다. 우리는 더욱 강력해졌다. 

 

왕은 1000일이 지났을 때, 나에게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해내는지 물었다. 나는 나의 충실한 두 개의 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속에서부터 피어나는 자연스러운 영감과 이것을 이야기로 짜내는 두 개의 재능을 겸비해야 가능함을 보여주었다두 개의 손을 되찾은 그 날, 나는 더 이상 의무의 주문이 끝없이 씌여 있는 궁궐 안에 갇혀 살던 불쌍한 공주가 아니었다. 그 날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짓는 공주'라는 나의 이름을 되찾았다


그 후로부터 위기의 순간에 나는 늘 내 안에 있는 어린 현자를 찾아간다. 그녀는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문제의 해법을 가르쳐준다. 물론 맨입으로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그녀는 낯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평소에 잘 보듬어주어야 한다. 그러니 이미 지나간 문제라도, 오늘의 나로서 과거의 나와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내 안의 자연과 문명, 왼손과 오른손을 화해시키자. 그 처음은 있는 그대로의 나, 원초적 욕망상태의 나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변방과 왼손과 자연으로 대표되는 곳, 그곳을 회복하는 것으로 우리의 존재는 무한한 긍정 속으로 편입된다.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더이상 호락호락한 상태가 아니며 스스로를 실시간으로 따라잡을 수 있게 된다. 나는 나의 앞날이 또다시 끝없는 모험으로 가득하길 바란다. 그 변화무쌍한 얼굴을 나는 사랑한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IP *.160.33.100

프로필 이미지
2014.06.30 10:23:12 *.104.9.216
난 아직 나 다운게 뭔지 내안에 또 어떤 내가 있는지 답답할만치 궁금하답니다.

오목조목한 해언이 많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프로필 이미지
2014.06.30 11:42:41 *.50.21.20

저번에 우리 연극치료를 했을 때처럼 가까이에서 오래 들여다보아야 예쁜 점을 찾을 수 있는 거 같아요. 

이제부터 바라보기 시작했으니, sooner or later 찾게 될거라 생각합니다. 화이팅! 

프로필 이미지
2014.06.30 11:21:06 *.218.177.192

자신을 잘 아는 친구...멋쟁이!

프로필 이미지
2014.06.30 11:43:16 *.50.21.20

ㅎㅎㅎ 저에게 이런 날이 올줄은 몰랐어요!! 

프로필 이미지
2014.06.30 12:39:20 *.94.41.89

곧 날으는 양탄자를 탄 왕자가 오겠죠!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