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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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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30일 10시 56분 등록

여자가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이야기와 축구이야기라고 하는데 거기서 나는 예외다. 남자형제는 없지만 건축을 전공했기에, 6일 참석했던 술자리에서 어김없이 군대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웬만한 군대용어는 잘 알아듣는 편이다. 시도 때도 없이 피어나는 군대 무용담은 재미있기도 하고, 여자도 6개월 정도 군대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사람이다.

축구사랑 또한 여자치고 대단한 편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남자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아마 여자는 혼자였던 듯) 넘어져 오른쪽 무릎에 큰 부상을 입은 뒤 축구는 브라운관을 통해서만 시청을 해야 했다. 나의 축구 사랑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것은 84년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4강신화를 썼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경기를 보게 되었으리라. 하지만 그라운드를 사자처럼 질주하는 스피드와 파워에 반해버렸다. 새벽 3~4시에 일어나 전 경기를 다 보며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월드컵을 빼놓지 않고 보았으며,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 전에서 황보관선수의 30m 중거리 대포슛을, 94년 미국월드컵 스페인 전에서 홍명보선수의 중거리 슛으로 2-2 동점을 만든 상황, 98년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 전에서 하석주선수의 프리킥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2002년 도에 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월드컵이 한 나라에서 다시 열리려면 40~50년은 족히 걸린다고 했다. 그때 관람을 하지 않으면 다음 월드컵 개최 때는 나이가 70~80세가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사는 게 정신 없이 바쁜 시절이라 예매를 하지 못하였고, 월드컵 개최가 가까워 서야 표를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목표가 정확해지면 산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기질이 발동한다. 인터넷을 다 뒤져 드디어 우리나라의 첫 경기 부산에서 열리는 폴란드전의 VIP티켓을 두 장 구했다. 40~50년을 기다리는 시간에 비하면 장당 38만원은 나에게 전혀 비싼 가격이 아니었다. 붉은 티셔츠와 두건을 준비하고, 응원구호를 가는 기차 안에서 외우며 들뜬 마음으로 내려가 신나게 응원을 하고 온 기억이 난다. 황선홍선수의 선제골과 유상철선수의 추가골로 폴란드전에서 2-0 승리를 거두는 현장에서, 나도 붉은 악마가 되어 그들의 첫 승에 나의 함성을 보탠 기억이 있다.

2002년도처럼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을까? 그 해를 기점으로 붉은 악마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거리 응원 문화도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다. 디오니소스의 축제가 그런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온 나라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고, 경기 때마다 거리와 호프집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한 덕에 우리는 4강을 갈 수 있었고, 월드컵베이비라는 말까지 생겼으니, 한일 월드컵은 전국 방방 곡곡의 각 가정까지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대구에서 열리는 터키와의 3.4위전의 티켓도 끊어 놓았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제사에 얽매여 사는 인생은 매 한가지, 그 경기를 하는 동안 집안에서 전을 부치고 있었으니,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제사 음식을 분명히 개떡을 부쳐냈으리라.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첫 경기상대는 아프리카의 토고였다. 그때 미국에 있었는데 새벽에 호프집을 빌려 붉은 티를 준비해가서 응원을 펼친 덕에 2-1 승리를 거두었고, 밤낮으로 붉은 악마 머리띠를 하고 다니며 한국의 응원단임을 알렸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드디어 시청광장으로 갔다. 직접 가보니 자리싸움도 치열했고 체력도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덕에 그리스를 2-0으로 이겼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현장에 있었거나 거리응원을 간 곳에서는 반드시 승리의 여신 니케가 함께 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올해도 거리응원을 시도해볼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축구라는 단일종목으로 전세계를 4년마다 축제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축구를 통해 우리는 왜 흥분하며 열광하는가?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따도 시시해하면서 전세계에서 16위 안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전략과 전술을 내세우는 것은 정말이지 축구밖에 없을 것이다. 축구는 조직적으로 골을 몰아가서 상대방의 골문으로 집어넣는 행위다.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목표가 정해졌다는 점, 그렇게 해서 얻은 소득은 팀 전체에 돌아간다는 점이 인간이 수렵에 나섰을 때의 모양과 비슷하다. 그래서 축구는 사냥의 현대적 모습이라고도 한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성향으로 봐서 지독히도 본능에 충실한 사람임을 알겠다.

2014년도의 월드컵은 다른 해와 다르게 관심 밖의 영역이 되었다. 연구원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배제가 된듯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새벽잠을 설치며 일어나 봐주는 일이었다.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맞이하지 못했던 새벽을 축구라는 명목으로 맞이했으니, 사랑이 완전히 식은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3사의 해설경쟁도 치열했다. 왕년의 선수들을 해설위원으로 모시는 전략을 모두 썼기에 해설위원만으로도 팀 하나는 거뜬히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다. 나는 객관적으로 가장 약해 보였던 표스트라다무스의 해설을 제일 좋아한다. 축구사랑 30년이지만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영역을 그의 해설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으며, 분석하고 이해시키는 그의 능력은 축구 전도사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다. 이번에는 해설자들의 어록도 유난히 화제가 되고 있다. 나는 역시나 표스트라다무스의 어록이 마음에 새겨진다. “축구선수들에게 월드컵은 인생이다.”  간절함 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이것이 월드컵이다.”

축구선수들은 인생을 걸고 월드컵을 치른다. 월드컵 그라운드를 밟아보는 것이 평생 그들의 꿈이다. 그들의 열정적인 인생을 보며 나의 인생을 비추어본다. 내 인생에 월드컵은 무엇일까? 무엇에 내 인생을 걸 것인가? 축구가 조직력, 공격력, 수비력, 체력, 전략과 전술 등 모든 것이 구비가 되어야 제대로 된 경기를 치를 수 있듯이, 나는 나의 월드컵 준비에 충실하고 있는가? 실력도 좋아야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배어 나온다는 것을 안다. 나의 태도는 아름다운가? 올해는 성적이 저조한 그들의 모습을 질타하기에 앞서 내 모습을 먼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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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11:53:46 *.201.146.138

똥꼬가 찌릿하고

심장이 쫄깃해지는 대부분의 자극적인 것들을 싫어합니다.^^


축구도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정도이지요.

큰 공으로 하는 건 또 젠병이기도 합니다.


난 여운이 길고 정적인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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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12:59:01 *.218.177.192

전 남자로 태어났으면 축구선수했을 거에요.

여자 축구팀이 생겼을때는 제 나이가 너무 많았어여 흑흑

근데 운동신경은 별로라는 것.....

언제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일치를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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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12:51:19 *.94.41.89

표스트라무스의 예언만이 남은 월드컵이었죠. 손흥민과 이영표만 기억납니다.

축구보는 오프 수업도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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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12:59:33 *.218.177.192

오프때 할께 너무 많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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