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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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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30일 11시 07분 등록

■칼럼9

푸른 수염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어디였을까

 

기억의 테이프를 되감기한다. 이미 열어본 찬장과 같기에 무엇이 튀어나올지 아는 지점에서 재생을 누른다. 기억하고 싶은 그 때를 만끽하도록 테이프는 기꺼이 너덜해진다. 기억이 축복인 순간을 너절해지도록 듣고 있노라면 고착화된 감정이 더 이상의 환희가 없음을 알린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당신은, 감정이 남는가. 사고가 남는가. 기억이 곰플레이어로 재생되는 동영상으로 오는가, 포토 뷰어로 되살리는 한 장의 그림으로 있는가. 당신이 기억하는 순간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한편의 비디오인가. 여러 파편들을 모아 붙인 짜깁기된 상황인가. 의례화된 환희는 사고일까. 감정일까. 당신이 기억하는 순간은 상황인가. 그리하여 다시 그 때와 마주하니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가. 당신이 기억하는 순간은 감정인가. 슬픔을 떠올리니 슬픔이라 생각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가.

 기억이란 어디든 되돌리고 싶지 않은 지점이 있어 끊임없이 stop을 외치고 빨리 감기를 해대지만 인생이란 것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멈칫 거릴 때면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억은 되감기 된다. 그러면 당신의 되감기는 멈추어선 안된다. 테이프의 완전한 처음으로 되돌아가선, 그보다 먼저 놓여질 새로운 테이프를 찾아야 한다.


No


 상처받은 아이에겐 위로가 필요하고 그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기억’이 필요하다. 나는 오래도록 감정이란 사고의 영역일 거라 생각했다. 슬프다고 생각하면 슬퍼지고 웃기다고 생각하면 웃기지 않는가. 마치 배우처럼 감정을 사고로 통제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웃을지도 모른다. 아니, 바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호라, 여기있구나. 인지적인 중독(cognitive addictions)의 사례가 바로 여기 있구나. 그것은 감정을 회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 상처로부터 멀어지지 말고 상처에 온 몸을 내맡겨라 할 것이다. 그렇게 감정을 붙들어 매고 있어 괴롭고 힘든 삶을 살고 있노니 제발 말하라, 너의 상처를 위로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같이 울어 줄 것이니 한마디만 하라, 그러면 다 될 것이다. 그럴 것이다. 아이가 잉태되는 순간을 기다리듯 잔뜩 ‘나’를 치유할 준비가 되어 대기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들이 그들이 바라는 바의 말과 행동이 나오지 않음으로 나의 치유를 중단하고 손을 털고 말한다. 언제든 치료받고 싶으면 네가 빠져 있는 그 잘못된 세계에서 나오라고.

 그리하여 나는 한마디로 말한다. No. 다시 말할까요. 아-니-오.

 성인아이가 그들의 진짜 고통을 회피하는 방법이 ‘머리에만 머무르는 것’이라 말하는 한 당신은 이것을 가늠할 수 없다.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독서하고,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것이 ‘머리에만 머무르는 것’이라 말한다. 말의 사이에는 휴지가 있고 글의 사이에는 행간이 있으니 우리를 비켜간 휴지와 행간 속에 공통의 이야기가 있는 지점이 있을 지도 모른다. 허나 표면적으로 우리의 글과 말들이 만나지 않았으니 대각선의 꼭지점이 현재 당신과 내가 서 있는 지점이다.

 ‘머리에만 머무르는 것’이 고통의 회피이며 감정의 회피일 수도 있겠다. 그래 그렇게 활용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살짝 고개를 까딱해보면 그것은 가장 극한의 고통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최상의 순간이다. 감정을 느끼기 위해선 당연 상황과 마주쳐야 하고 그 상황을 재생시키는 것은 ‘사고’이다. 한 장의 사진이 왜 찍혀져 있는지를 되감는 것을 강박이라 한다면, 그렇다고 치자.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치유인 것처럼 사고를 정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은 왜 치유가 아니고 강박이어야 하는가. 감정의 표출은 사고를 통해서도 즐길 수 있다. 사고를 통해 감정이 통제된다면 당연 통제를 푸는 역할도 사고가 지니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과 분석과 토론과 독서와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은 단지 그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을 유도하는 매개체이며 감정을 분출하는 출구이며 분출된 감정을 정리해주는 청소도구이다. 한 장의 사진을 보며 그때의 감정을 되살피며 울어도 좋다. 그 때의 그 감정이 그것이었다 생각할 수 있는 기저는 무엇인지. 그때 울지 못한 것을 지금 울어도 좋다. 하지만 나가 아닌 상대방이 되어 그의 역할로서의 나를 보는 것 또한 좋지 않은가. 나의 감정과 그의 감정이 한꺼번에 이해되며 그 때의 모든 상황까지도 이해되는 욕구가 올라오지 않는가. 이해하려는 의지가 솟지 않는가. 그러다 한편으로 이 모든 것들을 보다 완벽히 이해하고 떨쳐 내고픈 욕구가 스며들어 오지 않는가. 다양한 각도의 대본을 써놓고 다양한 역할의 배우가 되어 별별 감정을 연기하고 최상의 조합을 찾다 보면 마침내 찾아지는 최상의 대본이 만들어질 것이다. 당신의 한 장의 사진을 보며 그때의 감정을 기억할 것인가,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인가는 내 사고를 어디로 옮겨 놓는지에 달려 있다.


 당신은 이 아이를, 사랑합니까.

 왜 사랑해야 하는데요.


 오래도록 당연히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에 매달려 사랑받지 못한 아이의 사랑받지 못한 좌절된 욕망들이 퐁퐁퐁 솟아오르는가. 그때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해 주어야 했고, 당신은 어떤 말들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가. 그래서 지금 그 감정을 풀어야 하는가.

 그저 나는, 왜 엄마는 아이를 사랑해야 하는가. 그 당연을 뒤집으며 엄마는 엄마의 엄마로부터 사랑받았는지, 또 엄마의 엄마는 엄마의 엄마의 엄마로부터 사랑받았는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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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11:40:33 *.218.177.192

그러게 모르고 행해지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수레바퀴를....

누군가부터는 제대로 돌려야 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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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2 15:37:43 *.23.235.60

그러게요..시초가 중요하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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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11:59:00 *.201.146.138

감정을 많이 붙들어 매고 사는 사람이 여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파란수염'은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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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2 15:34:21 *.23.235.60

푸른 수염..마누라 죽인, 아이들 연쇄살인한 귀족남자 관련한 이야기에요. 

그에 관한 그림 형제판 동화도 있고 오페라도 있고....

푸른 수염 이야기를 적었다가 다 삭제했더니........

제목을 바꾸는 걸 잊어 먹었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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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18:01:41 *.94.41.89

그런 삶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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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2 15:30:02 *.23.235.60

삶은 다양하니...이런 생각할 때도 저런 생각할 때도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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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1 16:06:33 *.65.153.184

오~~ 에움스타일!! 나도 사고형이지만, 내가 어떻게든 감정형을 흉내내 볼려고 하는 것에 반해, 오히려 사고로 밀어붙이는 것도 좋네.

난 감정형이 되고 싶어서 <감정코칭>이란 책도 읽었는데, 감정형의 사람들에게는 에움의 <사고코칭>도 필요할 듯....


장정일 <라디오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최영미 <Personal Computer> 두 시가 동시에 떠오르는 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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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2 15:29:26 *.23.235.60

윽, Personal Computer!

워낙 맨 마지막 행이 강렬하여 그것만 생각남. 아 컴퓨터와 ~할 수 있다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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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2 19:36:54 *.209.19.41

우리는 얼마나 머리에만 머물러 있었는지 많이 돌아보는 시간들.

이제 머리에서 가슴으로, 엄마에서 나한테로, 나에서 내면아이로 다가가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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