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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30일 11시 07분 등록

오마이싼_구달칼럼#12 (2014.06.30)

 

아들은 우리에게 커나 큰 선물이었다. 제 누나랑 10년 차가 나니 다들 그를 늦둥이라고 불렀다. 제 누나가 태어난 후 100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울어대는 통에 풋내기 우리 부부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아이는 하나만 낳기로 전격적으로 합의했었다.

 

그 후 십 년, 갑자기 아내가 도발했다.
"
이대론 나 못살겠어. 미칠 것만 같아." 
.............???
"
일을 다시 시작하던지, 애를 하나 더 낳던지 해야 내 숨통이 트이겠어"
"
그럼, 애 낳는 게 훨씬 쉽겠네"
아마 결혼 십 년 차에 아내의 권태가 목구멍에까지 차 올랐던가 싶다. 말이 씨가 된다고 아니면 신의 섭리인가? 다음 해 여름 아들 하림이가 세상에 나왔다.

 

그렇게 태어난 우리 아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란 뜻의 "하림"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우리는 이 아이를 신의 섭리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선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신의 섭리와 임재로 태어난 아들의 몽고반점이 유난히 컸다. 더욱이 그 푸른 반점이 달포가 지나면서 여기저기 자가분열을 하는 게 아닌가? 신촌 세브란스에서 밝혀진 병명은 혈우병이라고 했다. 출혈하면 지혈이 되지 않는 병이란다. 아직 치료약이 계발되지 않아 평생 주사약을 달고 살아야 한단다. 아니, 당장 정상적인 성장을 보장할 수가 없다고 했다. , 하나님 어찌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당시 교회에서 제자훈련 중이었던 나는 통성기도 대신 대성통곡을 했다. 온 교회가 하림이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하림이는 탈장 수술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무럭무럭 자랐다.

 

내부출혈이 잦아 주사약을 달고 살았지만 아이는 해맑고 달같이 훤한 모습으로 방싯거렸다. 자기 누나와는 딴판으로 하림이는 거의 울지 않았다. 오히려 자주 까르르 웃으며 재롱을 부려 오히려 부모인 우리가 더 위안을 받으며 그로 인하여 삶의 활력을 되찾게 했다.

 

서너 살 때는 개다리춤으로 가족과 친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눈을 하얗게 까뒤집고 한껏 혀를 내밀고 사지를 떨면서 춤을 출 때면 예인이 따로 없었다. 저 작은 몸 속에 끝없이 출렁이는 흥과 끼는 어디서 오는 걸까? 또한 그의 그림 속에는 우리가 꿈 속에 그리는 신화 같은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비록 혈우병으로 거의 하루 걸러 주사를 맞고 병원을 찾는 등 우리의 노고와 고통은 컸지만 우린 하림이로 인하여 하루 하루가 즐겁고 행복했다.

 

이런 놀라운 아들에게 상처가 되었을 법한 몇 가지 일이 생각난다.

 

아들이 3 살 때 명절 고향에 가던 날, 서울역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손잡고 가다가 상점에서 내가 뭔가 살려고 멈춰 섰는데 키 작은 아들은 지나가는 다른 남자를 아빠인 줄 알고 그를 따라가 버렸다. 거의 사생결단으로 아이를 찾던 우리 부부의 눈에 근처 롯데리아의 창문 너머로 무언가 새까만 머리 하나가 나풀나풀 무지 빠른 속도로 복도를 가로 지르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토끼 몰이하듯 출구들를 봉쇄하고 들어갔다. 나를 다시 찾은 하림이는 내 품에 안겨 거의 폭발하듯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부모를 잃어 당황한 아이가 그렇게 빠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단 몇 분 간이지만 하림이에게 이 일은 커나 큰 공포였을 것이다.

 

아들이 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그 무렵 아내와 딸이 보름간 해외여행을 가게 되어 아들이랑 둘이서 보내게 되었다. 부산의 하림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하림이를 데리고 대천 해수욕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게 되었다엄마와 누나가 함께 여행을 떠난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 여행인 셈이다. 그 동안 이렇게 오랜 기간을 엄마와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는데도 기특하게도 아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혼자서도 잘 지냈다.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아들이 운동화를 구겨 신고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어났다. 그 때문에 아슬아슬 넘어질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나는 여러 번 운동화를 바로 신으라고 아들에게 말했지만 그는 결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구겨 신은 운동화로 인하여 넘어져 무릎이 깨어지고 말았다. 아들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을 피우는 것에 나는 화가 났다.

너 이렇게 아빠 말 안 들으려면 이제부터 독립에서 너 혼자 네 마음대로 살아라. 그러면 네 일에 아빠는 더 이상 참견하지 않겠다. 너는 이제 아빠랑 상관없는 아이다.”

그 말을 듣자 아들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 소리 없이 울기 시작하더니 어디론가로 혼자 가버렸다. 제 할머니가 따라가서 아이를 달래어 데려왔지만 이후로도 아들을 결코 신발을 바로 신으려 하지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진 슬픔을 신발 구겨 신는 행동으로 표출하고 있었는데 미련한 아빠는 그걸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반항으로 보고 화를 냈던 것이다. 더욱이 버릇을 고쳐 놓겠다며 내뱉은 말은 실로 가혹했다. “이제 너는 아빠의 아들이 아니다란 말은 어린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을 것이다. 언제나 함께 있을 줄 알았던 엄마는 자기를 두고 떠나고, 믿었던 아빠는 자신을 아들이 아니라고 하니 그 마음이 오죽 했을까?

 

하림이가 어릴 때는 건강 말고는 그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자라 가면서 우리 부부의 욕심은 점점 더 커져 그가 공부 잘 하는 아이가 되도록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 때는 참으로 반짝이는 창조력과 호기심, 언제나 삶의 활기로 가득 찬 놀라운 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어느결에 모습을 감추고 아이는 점점 무미건조한 부모를 닮아가는 듯하여 가슴 아프다.

 

이러저러한 인생의 역경을 겪으면서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 이제 고1 청년기에 이르렀다. 이젠 아빠보다 불쑥 키가 더 큰 아이가 되어 아빠와 힘겨루기를 하곤한다. 일상이 공부와 시험으로 바뀌어 버린 아들이 안스럽다.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란 책을 읽으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새삼 깨우쳤다.

 

놀라운 아이”, 그 아이를 다시 찾는 법을 이제 알았으니 되었다.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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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11:36:20 *.218.177.192

하림이의 얘기가 드디어 나왔군요.

제 아들도 책 제목을 보더니 읽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가장 무서운 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폭력을 휘두르게 될까봐....

하지만 구달님을 통해 듣는 하림이는 누구보다도 건강한 아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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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12:03:18 *.201.146.138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내면아이'보다는 '제 아이'들이 더 생각나더군요.


저는 참 빵점짜리 애비입니다.

작은 놈이 늘 쿠사리를 줘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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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18:03:27 *.94.41.89

뒷굽이 꺽이지 않는 운동화가 있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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