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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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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일 12시 00분 등록

 

 

희동이 오디세우스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시칠리아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변경연 8기 연구원 여름 여행은 대부와 시네마천국을 촬영한 섬,이탈리아 시칠리 일주였다. 시칠리아에서 나오는 페리에 두고 내리면서 마음이 뭉치던 가방들을 그가 끌고 지고 있었다. 그는 이후 여행 일정 동안 그 가방들을 맡아주었다. 많이 고마왔다. 그에게 언젠가 시원한 수박을 대접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4월 신화수업 후기에서 희동이씨는 오리무중이었다. 그는 오디세우스를 자신의 신화로 꼽았다. 오선배는 그에게 제우스를 탐색해보라고 했다. 나는 갸우뚱거리다 돌아왔다. 길을 잃었을 때 좌표를 찾기 위해서는 원점으로 회귀해야 한다. 신화에 대한 나의 출발지이자 밑알인 <우리 속에 있는 남신들> 책에게 파고들었다. 정신과의사이고 융 분석가였던 진 시노다 볼린은 그리스 남신을 가지고 남성 이해를 시도했다. 그녀는 아버지 남신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 아들 남신 아폴론, 헤르메스, 헤파이스투스, 아레스, 디오니수스를 가지고 현대 남성 안의 원형을 분석했다. 아폴론이 그와 비슷하다고 나는 추측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은 사냥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쌍둥이 남매다. 누이와 더불어 궁수였던 그는 입법, 정제된 음악과 의술의 신이기도 했다. 그는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목표지향적으로 움직인다. 궁수이므로 목표물을 명중한다. 가슴보다는 이성으로 움직인다. 어느 정도는 멀리로 사라져 버린다. 델피의 신전에서 모호한 신탁을 내린다. 다비드상처럼 멋진 외모를 가졌다. 그는 제우스의 의지를 실현한다. 연애에서는 운이 없었다. 다프네는 월계수가 될 지 언정 그의 연인이길 거절했다. 그의 아들을 임신한 여자는 다른 남자와 잤다.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힌 그가 날린 백발백중의 활은 코로니스를 명중했다. 절박 제왕절개를 통해 그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신생아집중치료실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초저체중 미숙아로 구조되어 켄타우로스인 케이론에게 보내 길러졌다. 그로 인해 예언자가 된 두 여자 시빌레와 카산드라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시빌레는 그에게 빌어 영원히 죽지 않게는 되었지만 젊음을 주문하는 걸 깜빡했다. 그는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도록 설득하는 힘을 빼앗아 복수했다. 사랑을 어떤 일의 보상이라고 생각하거나, 이성의 신이므로 가슴으로 하는 사랑에서는 서툴렀기 때문이라고 그의 경량급 연애를 설명하곤 한다. 나도 그렇지만 왜 사람들은 완벽한 아폴론의 완벽함보다 연애의 흑역사를 더 즐겨 말하는 걸까?

 

희동이씨를 아폴론으로 추정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잘 생기고 풍채가 좋다. 기분이 좋으려나? 다행이다. 둘째는 학업과정에서 성공했음을 알려주는 그의 박사학위다. 이성적으로 장단기 목표를 세우고 단계적으로 집중해야만 달성가능한 목표이다. 셋째는 그의 시다. 신탁같이 모호했다. 연극치료 세션 중 그의 시선은 묘하게 비껴 있다. 아르테미스가 황야로 사라지듯 아폴론도 서방정토 어딘가로 일정 기간 잠적하곤 한다. 그 기간에는 델피의 아폴론 신전을 디오니수스신이 거한다. 네째는 그는 자신의 욕망을 이제 막 탐색하기 시작하는 듯 했다. 제우스는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안다. 비나 백조, 황소로 변신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여성을 차지하고야 마는 동력이다. 알머리에 올챙이배를 가졌더라도 제우스는 서슴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이제 욕망을 알아가기 시작한다고 느낀 건 발표를 듣고서다. 작가도 되고, 자기 사업체도 꾸리고, 지금 일하는 대기업에서 계속 승진하겠다고 했다. 저 세 가지 목표가 중첩될 수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수업을 했던 사무실에 계시던 8기 웨버님이 그가 꿈꾸는 비젼을 실현해 가는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박사고, 대기업 임원으로 살아 남았고, 책쓰기 수업을 들었고, 퇴직후 자신의 업체를 일구고 싶어한다. 그는 일단 대기업에서 일하는 걸 선택했다. 대기업 임원이 책을 내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일 듯 하다. 책을 낸다면 그 직위의 소임이 끝난 다음이 될 거다. 사부님은 20년 다닌 IBM을 떠나기 위해 책을 썼다. 8기 웨버님은 아폴론을 꼽았다. 그리고 다프네와 같은 자신의 가슴을 찾아보는 탐색을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희동이씨를 아폴론이 아닐까 추정했다. 추정은 언제나 틀리다.

 

나는 5월에 <그리스인 이야기> <신화의 힘><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이어서 읽었다. 프로메테우스, 페르세우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아이네이아스를 10기 연구원 누군가를 떠올리며 읽었다. 이런 공부방식이 나에게 맞는 것 같다. 구체적인 사람을 상정하면 책으로만 읽을 때 알지 못하던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내가 읽은 책 여기저기에서 인용되었다. 이 그리스 남자는 두 편의 장편영웅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넘나든다. 희동이씨의 신화는 무엇일까에 대한 궁리가 계속되었다. 풀지 못한 문제인데 매우 매력적인 난제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그가 오디세우스를 꼽았다면 본인이 지목하는 오디세우스 신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희동이씨가 오디세우스를 닮았다면 오디세우스는 그에게 네비게이터가 되어 줄 지도 모른다. 오래된 신화는 본, 지도 역할을 하리라.

 

이따금 나는 오디세우스 신화 속으로 들어간다. 내가 즐겨찾는 곳은 사이렌의 협곡이다. 내 안의 출렁거림을 감당하길 버거워하며 돛대에 달려 몸부림친다. 귀마개를 하고 부지런히 노를 젓는 노꾼, 자신이 다른 명령을 내리더라도 무시하고 갈 곳으로 가라고 미리 언질을 둔 부함장 덕분에 오디세우스의 일행은 배를 부수지 않으면서 그 협곡을 지나간다. 나 역시 내 안의 노꾼과 부함장에게 나를 의탁한다. 출렁거리더라도 어떤 부분은 부지런히 할 일을 해야 내 배를 부수지 않을 수 있다고 신탁을 얻는다. 그러곤 꾸역꾸역 모닝페이지를 하고 절을 하고, 출근을 했을 거다.   

 

몇 가지 질문이 내게서 솟아올랐다. 희동이 오디세우스가 오디세우스 여정 중, 지금 어디에 있는 지에 대한 것이었다. 

 

1.     전쟁 중인가? 귀향길인가?

2.     마흔 즈음에 찾아온 갑상선암은 그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3.     해먹을 걸고 싶은 섬은 어디인가?

4.     그의 이타카는 어디인가?

 

 

1.    전쟁 중인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가?

 

희동이 오디세우스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트로이 전쟁 중의 오디세우스일까? 귀행길의 오디세우스일까?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의 9년부터 종지부까지를 다룬다. 오디세우스는 빛나기는 하나, 헬레네, 아가멤논, 클뤼타임네스트라, 헥토르, 안드로마케, 아킬레우스 등 수많은 전쟁 주연 사이의 조연이었다. 오디세우스가 교활하고 약삭빠른 해적질 시대의 아테네인을 대유한다는 건 앙드레 보나르와 윌 듀런트의 공통의견이었다. 전쟁 전과 전쟁 중을 지략가로 종횡무진했다. 헬레네의 수많은 구혼자 중 한 명이 신랑으로 간택되면 나머지 사람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 그를 돕기로 약속하게 했다. 그리스연합의 근거가 되었다. 개인적인 치정사에 끼고 싶지 않았던 그는 심신허약자 코스프레를 해서 참전을 피하려고 했다. 밭갈이 하는 보습 앞에 갖다둔 돌쟁이 아들을 피해 갔다. 그 바람에 미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할 수 없이 징집되었다. 그는 아킬레우스를 출전시켰다. 신탁은 아킬레우스 없이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했었다. 아들의 단명을 막으려는 테트스여신은 아킬레우스를 소녀로 숨겨 키우고 있었다. 방물장수로 찾아가 검을 만지게 함으로써 빨강머리 여장남자 안의 전사 본능을 일깨운다. 트로이성을 멸망시킨 결정적인 트릭 트로이의 목마에 대한 꾀를 냈다. 아킬레우스 사후에는 그의 무구를 현란한 변론을 통해 획득한다.

 

귀향길 10년의 모험이 <오디세이아>의 내용이다. 10년이 걸렸던 트로이전쟁에서의 피와 폭력으로 거칠어진 마음을 씻기 위해 10년의 방랑이 필요했다고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의 시인은 노래했다. 귀향길에 있다면 희동이 오디세우스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트로이를 출항하자 마자 도시를 약탈하고 여자와 재산을 분배하는 섬인가? 기억을 잃어버리는 망각의 로투스를 먹는 섬인가? 외눈박이 양치기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찔러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는 키클롭스의 섬인가? 부하들이 금이 든 줄 알고 황소 가죽 푸대의 바람을 버리는 통에 회귀하게 된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섬인가? 마법의 술을 주어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어버리는 마녀 키르케를 정복하고 그녀와 1년 살던 섬인가? 키르케의 주선으로 지하로 내려가 남자와 여자를 모두 경험한 데이레이시아스와 다른 이들을 만나고, 예언자로부터 집으로 가는 길을 듣는 하데스인가? 싸이렌의 노래를 들으며 간신히 저어가는 협곡인가? 배회하는 바위,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의 길을 지나며 절반의 선원을 잃는 중인가? 부하들이 결국엔 황소를 잡아먹고 버려서, 단신으로 귀향하리라는 신탁을 듣는 태양신 헤시오도스의 섬인가? 자유 빼고는 모든 걸 주던 칼립소여신과 여러 아이들을 낳으며 7년 이상 살던 나른한 섬인가? 난파당한 채 혼자 살아난 나우시카의 바닷가인가? 무용담을 털어놓고 아레카 왕비로부터 식량과 배를 얻어 몰래 이타카로 돌아오고 있는가? 변장을 하고서, 장성한 텔레마코스와 만나는 충실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의 오두막인가? 화살을 걸어 12개의 도끼를 꿰고 내 집을 어지럽히던 무리를 일망타진하는 중인가? 아장아장 걷던 첫아이가 스무살이 되도록 자신만을 기다려온 아내 페넬로페이아와 재회의 몸짓을 나누는 올리브나무 침상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가 여전히 전쟁 중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의 유일한 개인적 목표는 살아남기’, ‘생존이다. 오랜 전쟁을 겪은 나라와 사람처럼 그도 지쳐있다. 그의 전쟁은 언제 발발했을까? 대학입시, 성년이 된 뒤, 대학을 졸업한 뒤, 또는 취직한 뒤, 결혼 한 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8살 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장남의 경우 누가 시킨 것도 아니데, 호주 승계를 하는 어른 어머니가 버젓이 있음에도 니가 아버지 대신이다’, ‘인제 장남인 니가 가장이다.’ 는 요구를 안팎에서 받는 듯 하다. 만약 그 말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그 사내아이의 어린 시절은 고작 8살에 끝장이 났을 거다. 부모 그늘에서 아무런 근심없이, 뛰어 놀고, 까불고, 보호받아야 할 어린아이가 단종도 아니면서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을 어린애한테 그런 짐 좀 지우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이는 그냥 아이로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의 딸은 지금 8살이라고 했다. 그가 아버지를 잃었던 나이. 지붕이 없어져 버린 나이. 얼마나 어릴 때였는지 그는 아이를 보면서 실감할 것 같다. 43세라는 그에게는 거의 35년을 끌어온 전쟁이 아닌가?

 

10살 미만의 어린아이에게 가장 큰 사건은 육친을 죽음으로 이별한 사건이었을 거다. 그의 어릴 적 유일한 장래희망이었던  자식을 건사하는 아버지, 멋진 노인은 학위를 따고, 좋은 차를 갖고, 월 몇 백 이상 월급을 집에 갖다 주는 아버지가 아니었을 거다. 아버지의 성취보담 아버지가 부재하지 않는 것자식 옆에서 살아있길 바라는 것으로 나는 읽었다. 4월 장례식 때 딸에게 너도 아비가 아버지를 잃었던 나이에 아버지를 잃는구나말하며 그는 목이 메었다. 나도 목이 메었다. 그가 몇 살까지 살아남으면 자식이,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커다란 상처를 갖는 걸 재발 방지할 수 있을까? 성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결혼했을 때? 나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으로 그가 어릴 때 꿈꾸었던 아버지가 되어 줄 때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건사하는 아버지, 멋진 노인으로 살아있어 주는 아버지는 그가 새로 쓰는 역사이며 꿈을 실현하는 일이다. 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에 나오는 시가 있다.

 

사람은 죽어도 죽지 않아.

오직 마음에서 잊힐 때 죽게 되지.

누군가에 대한 사랑은

그 사랑을 품은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살아 있는 것이니 10년 동안, 20년 동안, 어쩌면 더 오래 (310)

 

먼저 가 기다리는 정든 사람이 있으니

저승을 무작정 무서워 피할 일은 아니다.

이 세상에 올 때도 먼저 와 기다려주었고

저 세상으로 갈 때도 먼저 가 기다려주니

부모와 자식, 신이 손수 자은 운명의 줄 (333)

 

 

2.    마흔 즈음에 찾아온 갑상선암은 그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희동이 오디세우스가 귀향 중이라면 지금 어디에 있을까? 두 군데에 눈이 간다. 하나는 하데스다. 또 하나는 해먹을 걸어놓고 쉬고 싶은 섬이다. 끝나지 않은 전쟁과 귀향이 동시에 진행되는 게 이상하지 않다.

 

마흔 즈음은 매우 계몽적인 시절이다. 인디언썸머 같다. 사춘기와 더불어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자기 안의 자기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여지가 그 시기의 혼란 속에 있다고 믿는다. 43살인 그는 제 2의 스무살 시즌에 있다. 또 모든 종류의 암은 대학병원의 교수님 앞으로만 우릴 데려가는 게 아니라 죽음 근처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과 질문으로 안내한다. 그래서 나는 하데스가 아닐까 추정한다. 희동이 오디세우스가 어떤 지는 그만 알거고, 나는 이참에 신화 속 오디세우스를 따라 하데스에 따라 내려가 볼 작정이다. 여기서 오디세우스가 만나는 인물들은 모두 오디세우스와 관련된 인연일 거다.

 

키르케의 도움으로 집으로 가는 길을 묻기 위해 오디세우스는 데이레이시아스를 만나러 하데스에 내려간다. 데이레이시아스는 남성과 여성을 모두 경험한 예언자였다. 오이디푸스가 불러서 라이오스왕의 살해자를 물었던 것도 그였고, 헤라와 제우스에게 사랑에 빠지면, 여자가 여덟 배는 더 좋아한다고 했던 이도 그다. 제물로 마련한 가축을 싣고, 아케론이 흐르는 저승 입구에 도착했다. 가지고 간 양의 검은 피를 데이레이시아스의 혼령이 마시게 해야 한다.

 

데이레이시아스는 태양신 헤시오도스의 황소를 잡아먹지 말고, 세이렌의 협곡을 통과하는 법, 그리고 배회하는 바위 쪽으로 가지 말 것, 그리고 물맴돌이 카리브디스가 아니라 허리에 개머리들이 달린 바다괴물 스퀼라 쪽으로 항로를 잡으면 선원 중 절반은 잃더라도 통과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태양신의 섬에 머무는 것에 대해 조셉 캠벨은 영웅이 귀환하지 않고 만족감 안에서 머무는 걸로 설명했다. 세이렌의 협곡은 감정적인 출렁거림을 지켜보는 명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나는 읽는다. 배회하는 바위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탈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스퀼라 쪽 항로는 때로는 차선이 없으면 차악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임을 말하고 있다. 이건 나에게 닥쳐온 뜻이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바다 다를 것 같다.  

 

데이레이시아스를 만나기 전에 수많은 혼령들이 오디세우스에게로 온다. 오디세우스가 하데스에서 만나는 인물들의 면면이 흥미롭다. 그들은 어떤 것을 상징할까? 오디세우스에게 던지는 질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게 즐겁다.  

 

먼저 아가멤논, 아킬레우스를 만난다. 두 사람은 모두 전쟁영웅이었다. 한 사람은 사령관이었고, 한 사람은 결정적인 공을 세우고 전사했다. 그리스연합 사령관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가멤논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내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아내는 그리스연합이 트로이로 출항하기 전 남편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것에 대한 원한을 갖고 있었다. 아가멤논 집안의 흉사를 나는 여성성‘’균형두 가지 키워드로 읽는다. 아가멤논은 출정을 위해 어린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쳤다. 자신의 어린 여성성을 희생시킨 것에 대한 대가를 복수로 받는 듯 하다. 인간은 내부에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두 갖고 있다고 한 건 융이다. 남성은 안에 약한 여성성(아니마)를 갖고 있고, 여성은 안에 약한 남성성(아니무스)를 갖고 있다. 내 안의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키는 건 부드럽고, 감정과 몸, 영혼에 대한 부분을 희생시킨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균형이다. 손에 들고 노는 여러 개의 공 중에 땅바닥에 떨어뜨리면 회복탄력성을 갖고 튀어오르는 고무공이 아니라 유리공이어서 깨어져 버리는 건 건강과 가정, 또는 관계라고 읽었다. 아킬레우스는 전쟁영웅이면서 전사자다. 이런 전사자들은 쉽게 볼 수 있다. 승진에는 성공했고, 가족에게 액수가 큰 생명보험금을 남겼지만 과로사한 이들. 동굴에 즐비한 해골들이다.

 

희동이 오디세우스들이 다른 것을 뒤로 젖히고 직장에서 총력집중할 때 성공한다면 두 가지 모습일거다. 하나는 아가멤논이고, 하나는 아킬레우스. 사령관으로 승리하는 것, 그리고 전쟁영웅으로 전사하는 것.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는 질문한다. 무엇이 네가 원하는, 살고 싶어하는 삶의 모습이냐고, 그리고 그걸 이루었을 때 어떨 것 같냐고. 그리고 삶의 여러 영역 사이의 균형과 내 영혼 안의 균형에 대해.  

 

탄달로스를 만난다.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음식과 물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는 기아에 허덕인다. 맑은 물이 턱 밑까지 닿아 있지만 그가 물을 마시려 열망하여 허리를 구부릴 때마다 물이 뒤로 물러난다. 그의 머리 위에는 배나무, 석류나무, 탐스러운 사과나무, 달콤한 무화과나무, 올리브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노인이 열매를 따려고 할 때마다 바람이 열매를 구름 위로 쳐 올렸다. 탄달로스는 불교의 지옥에 있는 아귀를 연상시킨다. 배는 산과 대양처럼 큰데 목구멍은 바늘 구멍 만하다고 했다. 매우 배고프고 목이 마른데 먹고 마실 수가 없다. 먹으면 목구멍에서 불이 난다. 그는 풍요 속의 빈곤 벌을 받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그가 신에 대한 불경죄를 지었다고 하고, 죽어서 아귀가 되는 건 살았을 때의 지나친 욕심 때문이라고 한다. 탄달로스는  무엇의 상징일까? 아귀에게서 결핍을 떠올린다. 탄탈로스가 묻는다. 사랑, 인정의 결핍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그리고 내가 갈망하는 것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지금 하는 일은 그 목적에 맞는 일인가?   

 

시시포스는 무척 재미난 인물이다. 시시포스를 읽다가 이 남자가 신화 속 인물 중 오디세우스를 가장 많이 닮은 양반임을 알겠다. 시시포스는 봉이 김선달과다. 시시포스는 하데스도 골려먹고 헤르메스, 심지어 제우스도 골려먹었다. 태어난 날, 헤르메스가 형 아폴론의 소떼를 훔쳐 구워 먹고 마이아의 요람으로 돌아와 천역덕스럽게 기저귀를 차고 누웠을 때 아폴론에게 소떼의 행방을 고자질한다. 그리고 제우스가 요정 아이기나를 훔쳐 취하려 할 때 처녀 아버지에게 정보제공 대가를 받고 제우스를 일러바쳤다. 한번 죽은 자는 다시 죽일 수 없다는 내부 규정을 이용해 하데스에서 되살아났다. 재기발랄하고 신출귀몰하다. 그런 그가 굴려 올리면 다시 떨어져서 또 다시 바위를 굴러올려야 하는 단순반복의 일을 해야 하는 건 최고의 형벌일거다. 단순반복적인 노동을 하고 있는 게 그에게 지옥일거라는 건 가히 제우스나 생각해낼 수 있는 통찰이다. 희동이 오디세우스가 오디세우스를 따른다면 지옥에 갖힌 후의 시시포스가 아니라 갖히기 전의 시시포스와 같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뭔가 좀 더 신나는 것이 필요한 듯 하다. 뭘 하면 그는 신이 나고 재미가 클까?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시시포스는 질문한다.  

 

어머니를 만난다. 어머니에게 이타카의 모습을 묻는다. 나는 오디세우스의 나이면 아버지도 분명돌아가신 후인데 아버지는 만나지 않고 어머니만 만나서 의아했다. 더 끌리는 육친이 있는 것 같다. 희동이 오디세우스가 만나는 육친은 누구일까? 누구든 그()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듣는 것, ()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건 집으로 가는 길을 아는 데 매우 중요할 것 같다.

 

 

3.    그가 해먹을 걸고 싶은 섬은 어디인가?  

 

오디세이아를 읽다 보면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그건 중간 중간에 여자가 끼는 거다. 키르케의 섬이든, 자유 말고 모든 게 허용되는 칼립소의 섬이든, 이제 막 처녀가 되려는 나우시카의 바닷가든. 다음 도전할 의욕과 힘이 생길 때까지 그는 여자가 주인인 섬에서 쉰다.

 

오디세우스에게는 세 종류의 여성()이 얽혀 있다. 첫번재는 아테나여신이다. 두번째는 귀향길에 만나는 칼립소, 키르케, 나우시카로 표현되는 섬의 주인인 여자들, 세번째는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페넬로페이아다. 나는 이걸 여성성과 남성성의 관점에서 읽었다. 아테나 여신은 일을 하고 모험을 할 때 현실적인 조언과 도움을 주는 동료이면서 중성적인 여성성인 듯 하다. 키르케, 칼립소, 나우시카는 쉴 수 있는 상대다. 키르케는 약간의 경쟁과 승복의 절차를 통해 획득하게 되는 섹시한 여성성이다. 키르케의 간장감 있는 연애는 사냥꾼의 본능을 만족시키는 싱싱한 연애가 아닌가? 칼립소는 무조건적으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무한 공급한다. 가장 긴 시간 오디세우스와 함께 살았다. 나우시카는 키다리아저씨처럼 나를 숭상하는 어린 여성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길 위에 있는 여성성이라는 거다. 그들에게서 쉰 후 필요한 뗏목과 식량 또는 지혜를 얻은 뒤 떠난다. 페넬로페이아는 내 집과 아이를 지키는 여성이다. 고단한 전장터에서 돌아왔을 때, ‘수고하셨어요라고 말하며 냉장고에서 시원한 수박을 썰어서 내오는 사람. 안온한 이 되어주는 사람. 제임스 조이스는 소설 <율리시스>에서 한 여자 안에서 칼립소와 페넬로페이아를 모두 보았다. 한 여자가 닻일 때도 발목의 족쇄일 때도 있나 보다.    

 

나는 그가 좀 쉬고 싶어한다고 느낀다. 지금 너무 고단한 것 같다. 나라면 해먹을 칼립소, 키르케, 나우시카가 있는 어딘가에 걸고 싶을 것 같다. 전쟁에서 생존하기, 승리하기만 골목할 제우스, 아네나, 헤르메스가 아니라 그를 쉴 수 있게 하는 섬에 해먹을 거는 건 인지상정일 것 같다. 이건  연애하라는 이야기일까?  

 

신화에 등장하는 연애에 대해서, 로버트 A. 존슨은 <WE : 낭만적 사랑에 대한 융 심리학적 이해>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를 분석하면서 남성 안의 아니마의 입장에서 설명했다. 낭만적 사랑은 남성 안의 아니마를 실제 여성에게 투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 자체와 사랑에 빠진 상태이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사랑하는 진짜 사랑은 아니라고 했다. 존슨은 남성이 필요로 하는 내부의 영혼인 여성성을 외부 실제 여성에게서 구하려 한다면 3년의 사랑의 묘약 기간이 끝나면 투사를 다른 여성에게 옮겨야 한다고 한다고 보았다.

 

칼립소와 키르케와 나우시카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이미 그의 안에 존재하는 그녀들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건가? 존슨의 말대로 하면 그의 안에 구축되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그건 모른다. 나는 그런 여성성이 필요한 것 같다는 것에서 멈추려 한다. 그리고 나에게도 오디세우스의 연애를 훔쳐보는 관음증이 꽤나 즐거웠고, 오디세우스 신화를 읽는 뭍 남성들에도 이런 기대가 있을텐데 이렇게 야멸차게 말해도 되나, 좀 거시기 하다.  

 

남성성과 관련해서는 희동이 오디세우스가 자신에게 있는 다른 모습을 찾아내야 하는 것 같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혀져 길면 잘리고, 모자라면 늘려지는게 적응을 하기 위해, 표준남성성에 맞추기 위해 남성들이 치뤘던 희생이었다. 오디세우스에게는 3명의 수호신이 따라다닌다. 하나는 영웅의 뒤에 서길 좋아했던 아테나여신이고 또 하나는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다. 또 제우스도 그를 수호한다. 수업에서 오선배는 그가제우스가 아닐까 했다. 그가 잘 수행해올 수 있었다면 전략적 사고를 하는 야전사령관 아테나, 헤르메스, 제우스는 이미 그의 안에 있을 거다. 연구원 정진을 통해 글로 하는 의사소통 훈련을 갖는다면 헤르메스가 더 강화될 것 같다. 나는 하데스에 오기 전의 시시포스, 그리고 오디세우스가 등장하는 여러 모험담이 그에게 잘 길든 남성이 아닌,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전의 그에 대해 단서를 줄 것 같다. 또 하나 혹시라도 그의 올림포스에서  아폴론의 모습이 많이 얼쩡거린다면 아폴론이 서방정토로 가버렸을 때 디오니수스 신에게 델포이의 아폴론신전을 내어주었던 게 힌트가 될 지도 모른다.

 

 

4.    이타카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수업 때 했었다. 연구원 수업 때 들은 말, 또는 질문의 답이 금방 구해지지는 않는 것 같다. 화두처럼 작용하는 듯 하다.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기억되는 질문들이 중요했다. 우리가 연구원 과정에서 읽는 책들이 1, 1년간 읽고 말 것들이 아닌 것과 같다. 대를 물려도 좋을 책들이지 않은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책들. '나의 사명선언서'를 쓰고, '10대 풍광'을 그리는 활동들이 목적지인 이타카를 구하려는 도구들인 것 같다이타카가 분명하고, 이타카로 가려는 마음이 분명하다면 바닷길이 어떻게 꼬이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결국에는 이타카로 가게 된다고 신화는 말한다.  

 

안 그러려고 했는데 또 길어졌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1.     딸에게 자식을 건사하는 아버지, 멋지게 늙은 노인이 된 아버지를 선물하실 랍니까?  

2.     하데스에서 만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어떨까요? .

3.     지쳐있다. 잘 쉬시길 바랍니다. 여성성에 대해 탐색해보셨으면 좋겠어요.

4.     이타카로 무사귀환 하길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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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1 14:18:24 *.50.21.20

섬세한 관찰과 다정한 문체가 콩두언니의 장점이군요.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글이 얼마나 편안한지 느껴져요.

게다가 이렇게 읽고나니 희동님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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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8 21:20:20 *.175.14.49

그런 장점이 있던가요? 피드백 고마워요. 어니언. 내 안에 있다고 내가 알지 못하던 걸 알려주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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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2 19:41:49 *.209.19.41

신화의 여신 


콩두 선배님의 글을 볼때마다 한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해석과 섬세한 필체가 가능한지 글을 볼때 마다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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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8 21:21:13 *.175.14.49

찰나님 댓글 감사합니다. 올려놓고 안달복달하고 있었어요. 야매에 엉터리인 이런 걸 써도 되나 하구요. 용기 얻어서 견딜 수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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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1 13:14:41 *.201.146.145

몇 번 읽었습니다.

저도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관찰의 디테일은 가히 ...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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