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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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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일 18시 01분 등록

 

부모 자식 간이 애증의 관계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식처럼 조건없은 기쁨을 안겨주는 존재가 있는가. 보고 있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사랑하는 자식. 하지만 자식처럼 또 부모를 속 끓이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존재도 없다. 이놈의 자식때문에 짜증이 나고 울화가 치밀 때도 많다. 

 

나는 늦은 결혼을 하고 마흔 중반에 딸 하나를 얻었다. 어렵게 얻은 귀한 딸인데, 딸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어떻게 자식을 가르쳐야 할 지, 교육을 받아 본 적도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딸 아이가 이렇게 커 주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램은 있었지만, 아버지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다. 자식 교육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초등학생 때 기억이 많지 않다.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기억들은 주로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한동안 공부를 열심히 했던 기억도 있다.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교육열이 남다른 어머님의 영향으로 공부에 대한 부담감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딸 아이 교육에 관한 내 생각은 다분히 나의 경험을 기초로 한다.

 

초등학생 때는 공부에 너무 집착하기 보다 음악, 운동, 친구들과 놀기 등 과외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스스로 하겠다는 마음이 들면 그 때 해도 늦지 않다. 놀고 싶을 때 실컷 놀게 해주는 게 공부 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 일정 부분의 규율과 한계를 지키는 선에서 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과학고, 명문대에 간다고 학과 공부에 열을 올리는 부모들을 난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어떤 사람이건 '스스로 느껴야 움직인다' 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스스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기회를 제공하고, 체험해 보도록 유도하고, 느낌을 통해 행동이 나타나길 기다려 주는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엄마 생각은 다르다.  딸아이를 자신이 생각하는 일정 수준까지는 올려 놓으려 한다. 특히 공부에 관해선 그렇다. 어릴 때 공부습관을 들여야 하고, 초등학교 때 성적이 너무 처지면 나중에 따라가기 힘들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 벌써 아이의 장래가 상당부분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 수준이 될 때 까지 부모가 관심을 갖고 돌봐 줘야 하지만 직장 맘으로서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니 이 문제를 사교육으로 해결하려 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 아이는 친구들 간에 인기 있는 학생이 되고 싶어한다. 공부를 잘 하고 싶긴 하지만 아주 잘하는 우등생이 되고 싶은 욕심은 없다. 그럭저럭 공부를 따라 가면서 친구들과 놀고, 자기가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 보고, 좋아하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고 싶어한다. 딸 아이는 학교의 방과 후 수업을 포함해서 매일 한 가지씩 과외 활동을 한다.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시간은 오후 6시 반이 지나서다. 물론 그 후에도 1시간 정도 숙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과중한 스케쥴에 때론 힘들어 한다. 그렇다고 과외나 방과후 활동을 그만두겠다고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공부에 도움이 되고 그 시간을 통해 친구를 만날 수 있으니, 나름 유익한 활동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몇 년 전 아내와 딸 아이의 교육에 관해 심각하게 논의한 적이 있다. 딸 아이는 2, 3학년 까지 입이 짧아 밥을 잘 먹지 않았다. 밥 먹는 속도도 늦고, 양도 적었다. 우유도 좋아하지 않고 편식도 심한 편이었다. 그러다보니 키도 반에서 아주 작은 편에 속했다. 엄마는 그런 딸에게 밥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때론 밥을 먹여주고, 먹기 싫다는 아이를 밥 숟가락을 들고 쫓아 다니며 먹이곤 했다. 난 이런 행동이 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밥을 잘 먹지 않는 이유는 간식을 많이 먹던지 아니면 배가 고프지 않아서 인데, 먹기 싫다는 걸 쫓아다니며 먹이려 하면 버릇만 나빠진다. 밥을 안 먹으면 굶겨서 배고픈 걸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루만 굶겨 봐라. 배고픈게 어떤 건지 알면 자연스럽게 고쳐질 수 있는 습관이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 굶기는 걸 참아내지 못했다.

 

아내가 출장 갔을 때 내 방식을 시험해 보았다.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딴 짓을 하고 있는 딸에게 밥 숟가락 놓아라,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했다. 딸 아이는 억지로라도 먹어야 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되어 좋아라 했다. 하지만 나중에 배고파도 밥은 없다는 걸 분명히 얘기했다. 밤 10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더니, 배가 고파 잠이 안 온단다. 밥은 분명히 없다고 했으니, 물 한잔 마시고 그냥 참고 자라고 했다. 결국 물 한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12시가 넘어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딸 아이가 김치에 반찬 하나 놓고 선채로 밥을 먹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는다. 이 방법은 통하는 방법이었다. 한 두달만 이렇게 길들이면 아이의 밥먹는 습관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장에서 돌아온 아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앞으로 그리 하자며 내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아내는 밥 숟가락을 들고 딸아이를 쫓아 다녔다. 그 문제로 더 이상 아내와 충돌하기 싫어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이젠 밥 먹는 게 많이 좋아졌지만 좋은 교육 기회를 놓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두번째 의견이 달랐던 건 과외를 시키는 문제였다. 오후 3시반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내가 집에 올 때까지 누군가 애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방과후 수업과 과외 시간으로 이용하자는 게 아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방과후 수업 한 두개 만 하고 나머지 요일은 그냥 집에와서 쉬고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놔두자는 의견이었다. 아내는 아이를 혼자 놔두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운동하며 놀 수 있는 학원을 보내던지... 여하튼 공부에 너무 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내는 방과후 수업 이틀을 제외하고 다른 날은 과외 시키는 것을 선택했다. 

 

 

요즘은 딸 아이 교육에 관한 한 아내가 거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교육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고, 아내는 정보가 많다. 나는 이상을 이야기 하고, 아내는 현실을 이야기 한다. 학부모 모임의 주동자들은 엄마들이고, 아빠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아내가 가진 정보와 현실 감각은 주로 학부모들에게 얻어 들은 지식이 대부분이다.  과도하게 자녀 교육에 몰두하는 학부모들이 사교육 열풍을 주도하고 다른 부모들은 뒤질 수 없으니 마지 못해라도 따라 가는 게 현실인 것 같다. 옛날 내가 공부하던 시절,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 얘기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으로 치부된다. 현실을 무시한 이상은 힘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생이 스스로 알아서 무언가 제대로 하기를 바라는 건 과욕이다. 하지만 그다지 원하지도 않는 것을 먹기 싫은 음식 먹이듯 꾸역꾸역 시키려는 것도 바른 방법은 아니다. 나는 딸 아이에게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고,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다. 그리고 깨우쳐 주고 싶은 삶의 진실이 한 가지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는 사실이다.  딸 아이가 스스로 느껴서 행동하고, 자기 행동의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이런 교육을 시키기 위해 부모는 좀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헌데, 아내는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용기가 부족하고, 나는 아내를 설득해서 그런 방향으로 가게끔 하는 지혜가 부족하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우리 부부는 지혜와 용기를 좀 더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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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2 19:09:14 *.33.33.18

공감합니다.

자녀를 가진 사람이라면 고민하는 문제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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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8 21:28:56 *.175.14.49

아이 기를 때 엄마와 아빠가 저런 어려움을 겪는군요.

편식에 대해서는 정산 선배님과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보면, 잘 안 먹는 아이, 약한 아이는 따라다니며 먹이게 되더군요.

내가 마음 약한 줄 알고 아이는 그걸 이용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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