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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8일 12시 49분 등록

살아있음의 황홀 결혼

 

신화는 결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신화가 가르쳐주는 바에 따르면, 결혼은 분리되어 있던 한 쌍의 재회랍니다. 결혼으로 재회한 둘은 원래 하나였어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둘로 존재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결혼이 무엇이냐 하면 결혼하는 두 사람 사이의 영적 동질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결혼은 연애 같은 것과는 달아요. 결혼은 경험이 지니는 또 하나의 신화적인 차원입니다. 이른바 연애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절망과 함께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영적인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삶을 온당하게 산 사람이라면, 이성(異性)을 웬만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마음의 소유자라면 온당한 남성 혹은 여성 대상자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아요. 제대로 된 상대와 결혼해야 우리는 육화(肉化))한 신의 이미지를 재건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게 바로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제대로된 상대를 고를 수 있는 것은 가슴이 말해 줍니다. 반드시. 자신의 내적 존재가 알아보는 것이지요. 이거다, 하고는 오는 게 있어요. 그러면 사람의 내면에 있는 어떤 존재가, 이게 바로 그것이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결혼이 자기자기와의 재회, 우리의 뿌리가 되는 남성과 여성과의 만남입니다. 결혼이 깨어지는 것은 그건 결혼이 아닙니다. 결혼으로 맺은 관계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계로 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혼을 아직 하지 못한 겁니다. 결혼은 원래 하나였던 것이 지어내는 둘의 관계, 둘이 하나의 육을 이루어내는 관계입니다. 어느 한쪽에서 시시각각으로 변덕을 부리는 대신, 결혼의 관계가 충분히 오래 계속되고, 그러한 관계에 묵시적으로 동의하게 되면 그걸(둘은 실제로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통해서 영속되는 결혼은 결혼의 필요한 기능이라고 여기는 것은 결혼의 첫 번째 단계, 자연이 부여한 불가사의한 충동에 따라 두 젊은이가 결혼하는 단계지요. 아이들이 가정을 졸업하게 되면 갈라서게 되는 부부를 종종 봅니다. 이들은 자기네 관계를 아이들을 통한 관계로 해석하면서도 그것이 실수를 범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제대로 된 관계를 지닌 사람이라면 자기네의 관계를 상호간의 인간적인 관계라는 측면에서 해석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요. 결혼은 관계지요. 우리는 대게 결혼을 통해서 한두 가지씩은 희생을 시킵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됩니다.

 

중극의 도()를 나타내는 이미지를 보면, 어두운 것과 밝은 것이 서로 꼬리를 물고 상호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음양(陰陽)의 관계, 남성의 원리와 여성의 원리가 지닌 관계를 의미합니다. 결혼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결혼을 하면 바로 이러한 관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결혼한 사람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결혼한 사람은 자신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지요.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 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 관계안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결혼한 사람의 자기라고 하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서의 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기야 말로 신화적 이미지입니다. 초월적인 선()의 영역에 들기 위해 희생시키는 가시적인 실재가 바로 그것이지요. 젊은이의 결혼은 어느 대목에 이르면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드는데 이것이 내가 바로 연금술적 관계라고 이름 붙인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이 단계에서 부부는 내가 앞서 말한 희생의 의미를 서로 아름답게 깨닫게 됩니다.

 

결혼은 사회적 계약이 아니라 영적인 수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 수련입니다.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해야 하는 것이고요. 사람은 사회를 섬겨야 하게 되어 있지가 않아요.

사회가 사람을 섬겨야 하지요. 사람이 사회를 섬기게 되면 우리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상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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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떤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한 상태에서, 나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무릎을 꿇는 남자가 있어 결혼했다. 남자가 나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것을 팍 느끼는 순간, 에로스의 화살을 맞았다. 모든 사랑이 사랑의 화살을 동시에 맞고  동시에 첫눈에 불 같은 사랑이 타오르면 얼마나 좋을까? 남자는 나보다 6개월 먼저 사랑의 화살을 맞고 매일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기다렸다.( 남자의 생애에서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기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그렇게 웃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남자는 원래 무표정한 사람이었다.)  나는 외면하고 노려보고 거절했다. 본래의 나의 모습보다 다 모질고 야속하게 대했다. 남자는 참다못해 분노하여 따귀를 한 대 때리고 돌아섰다. 뺨은 아팠지만 속은 후련했다. 찬바람을 일으키며 멀어져 가던 남자가 갑자기 되돌아와 무릎을 꿇었다. 이대로 갈 수가 없다고. 이대로 가면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지나가는 행인들에 창피해서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이 받아들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 순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남자의 사랑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  얄미운 에로스! 이렇게 넘어갈 거면 진작에 나에게도 화살을 날리지. 그러나 지금은 안다. 에로스의 지혜가 깃들어 있었다는 걸. 그 기간 동안 나는 남자를 길들였다. 나의 독한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평생 나에게 져주도록 남자의 의식에 프로그래밍화 했다. 현명한 에로스!

결혼 15년차. 이제 서서히 영적 동질성을 인정하는 단계로 들어서는 것 같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지만 느껴지고 서로 부족한 점 채워주고 마음 속 번잡함과 허허로움 헤아려줄 줄 아는, 영혼의 흐름을 맞춰줄 수 있는. 뭐 그런.

15년 동안 살면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캠벨이 말하는 결혼 관계의 시련에서 영적인 수련이 되었다면 이것이겠다. 수련은 끊임없는 노력이다.

결혼식을 앞두고 남자에게 말했다. “결혼은 혼자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혼자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하기 위해 결혼하는 거에요. 둘이 살아서 불행하다면 그 즉시 그만 둘 겁니다. 그러니 우리 서로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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