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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5일 00시 26분 등록

# -1


"내일 아침 열시에 신사역에서 케이크가 필요한데요. 혹시 9시쯤 준비 가능할까요?"
"저희 오픈이 열시라서 9시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손님."

"혹시 생일케이크 대신 사용할 커다란 타르트도 파시나요?"
"아니요, 저희는 작은 것 밖에 없어요."

"혹시 홀 케이크 있나요?"
"저희는 베이커리는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세 번째 가게 문을 나왔을 때, 나는 후회했다. 그냥 광화문에 아는 베이커리로 갈껄. 
서로 다른 집의 케이크 두 판을 사야하니 케익상자를 들고 바로 택시를 잡아탈 수도 없고 해서
경복궁역 근처에서 두 개를 끝낸다고 계획도 안세워놓고 왔다가 이렇게 되었구나. 
오늘 신은 높은 구두에 점점 발이 아파온다. 이제 한계다.
하는 수없다! 이렇게 되면 나의 비빌 언덕에 전화하는 수밖에. 

스마트폰 주소록을 열어 몇 년간 사용하지 않았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이 주소록은 특별하다. 그 동안의 맛집 탐방으로 엄선된 집들만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한참 신호가 가길래 불안하다. 혹시 오늘... 문 안연거 아니야? 
그러다 반가운 목소리가 전화를 받는다. 
홀 케이크로 된 타르트 있냐니까 조각을 열 개 붙여줄수 있다고 한다.
더 잘 되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맛있었던 타르트 순서대로 주문을 하고는 아홉 시에 가지러 간다고 했다. 
차를 가지고 나오면 될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작은 베이커리에서 사기로 했다.
평소에 과일 타르트나 크로와상 같은 작은 것만 먹다가 처음으로 케익을 고른다.
세 종류 뿐이지만 다들 고만고만해서 뭘 사야할지 잘 모르겠다. 
주인 언니가 케익 대신 살구 타르트를 강추하는데 케익을 사야해서 좀 미안했다.
아무리 그래도 타르트를 두 개나 사가고 싶지는 않아.
물론 두 집의 스타일이 전혀 다르지만... 그래도 웬지 내 맛집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얼그레이를 추천하길래 얼른 계산하고 나왔다. 더 이상 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것은 싫다.

겨우 집에 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엄마가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시계는 8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따가 9시에 삼청동을 가야 한다니 엄마가 놀란 얼굴로 묻는다. 누구 생일이니? 
"아무도 내 생일을 챙겨주지 않아서 내가 챙겨주려고 해. 상반기 생일파티야.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케이크를 두 개 하려고 해." 더 묻지 않으시고 다시 눈을 감으며 케익 찾으러 같이 가자고 말씀하신다. 

실내 바이크를 타면서,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텔레비전을 흘끗흘끗 본다. 
이것저것 같이 하니까 고전의 지루함이 좀 희석된다. 

8시 40분이 되었는데도 엄마가 자고 있어서 텔레비전을 끄고 책을 덮고 자전거에서 내려왔다. 아무래도 혼자 가야겠다. 가방에서 지갑과 핸드폰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엄마가 눈을 뜬다. 귀신같은 타이밍이다. 우리는 해가 진 도로를 달린다. 8시 30분이 넘어서 청와대길은 이용할 수 없다. 별 수 없이 광화문으로 나가 경복궁을 끼고 돌아 삼청동으로 들어간다. 늦은 시간임에도 금요일이라 그런지 차가 많다. 거리에 아이들과, 연인과, 친구와 나온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이 잠도 없다며 엄마가 한 마디 한다. 우리 조카도 좀 크면 저렇게 밤늦도록 함께 거리를 쏘다녀줄까? 그럼 멋진 밤거리를 많이 알려주어야지. 약간 낭만주의자인 이모도 가끔씩은 좋을거야.

총리관저 앞에 차를 잠시 정차시키는데 옆에 청와대로 통하는 좁은 길을 막고 있던 경찰이 한 마디 하려는지 다가오는 것 같다. 지갑을 챙겨들고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은채 타르트 집으로 종종 걸어간다. 뒷모습에 대고 엄마가 '시원한거 하나 사와봐-졸리다'하고 말한다.

1층 카운터에 갔는데 아가씨 두 명이 먼저 와서 메뉴를 고르고 있다. 엄마에게 뭘 사다줄까 고르다가 순서를 놓쳤다. 그녀들의 주문을 처리하는데 한 커플이 내려와 거의 마시지 않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지고온 텀블러를 한 번 씻어 담아줄 수 있냐고 묻는다. 어딘지 약간 색기가 느껴지는 도도한 주인 아가씨는 토실한 뺨을 움직이며 '그럴게요'라고 하더니 컵을 쓱싹 씻어 담아내준다. 텀블러를 받아든 커플은 가게 문을 나서더니 길거리에서 진한 포옹을 한다. 조금 걸어가다가 또 오래도록 포옹을 한다. 조금 더 걸어가서 또.. 아니 이 것들이! 그러고보니 남자쪽 얼굴과 목소리가 어디서 본 것 같다. 유명한 게임 BJ 대도서관을 닮았다. 얼마전에 여자친구가 생겼다던데 혹시?? 삼청동에서 데이트하는거야?? 고개를 갸웃갸웃해보지만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나로서는 얼굴을 구분할 수가 없다. 고창석씨처럼 인상이 진하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한다. 유희열씨나. 아 모르겠다. 그렇거나 말거나 내 남자도 아닌데 내가 꼭 알아야겠니.

그녀들은 손 많이 가는 주문을 많이도 했다. 위에 일행이 더 있나보다. 음료를 네 다섯잔을 주문했다. 전화 예약도 해놓았건만 나는 오래 기다려야 했다. 음료를 만드는데 또 한 커플이 내려왔다. 빈 접시와 반쯤 마신 커피잔이 담긴 쟁반을 주인 아가씨에게 내민다. 그녀는 차근차근 꾸준히 주문거리를 만들고 빈 그릇들을 정리한다. 보기 좋긴 한데, 슬슬 지친다. 

완전히 포기했을 때, 내 앞의 두 여인이 먹을거리를 들고 윗층으로 올라갔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타르트를 전화로 주문했어요."
작은 메모장을 훑어보다가 그녀가 내 이름을 묻는다. 이름을 말하니 곧 냉장고로 가 커다란 상자를 꺼내온다. 타르트 조각들을 세어보여준다. 주문을 확인하고는 곧 엄청나게 커다란 상자에 그것을 집어넣는다. 아, 여기 홀 타르트가 저렇게까지 컸던가? 아까 얼그레이 케익을 괜히 샀나? 
불안감을 해소해보려고 케익상자를 찍어 데카상스 단톡에 올렸다. 은시미언니, 앨리스언니가 엄청 좋아했다. 에움언니가 남은 건 다 치워주겠다고 해주어서 안심했다. 
엄마를 위한 요거트 스무디, 딸기로 한 잔을 같이 주문했다. 오 금액이 꽤 나왔다. 눈 딱 감고 샀다.
삼청동에서 돌아나오는데 뿌듯했다. 

역시, 축제는 빈 손으로 가는 게 아니야. 뭔가 가져가야 나도 신나게 즐길 수 있는거구나.


집에 와서 오프 과제를 손본다. 어린 해언에게 쓰는 편지는 회사에서 써두었다. 갑자기 feel이 와서 마침 좀 한산할 때 얼른 해치웠다. 어린 해언도 만족스러워 했다. 저번 오프모임을 기점으로 나는 내 인생에 즐거운 장면들이 무척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 있는 법이다. 나는 꽁한 것도 해결되었고, 나에 대한 자신감도 찾았고, 나를 어느 방향으로 쓸지도 알게 되었다. 다른 데카상스들 보다 배는 울었던 것 같은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많이 울면서 토로하는 것이 나만의 치료법이었던 모양이다. 

다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0
아침에 잠에서 깰락말락하는데 전화가 울린다. 머리맡을 더듬더듬거리다가 전화를 놓쳤다. 카톡이 두 개 왔다. 겨우 눈을 뜨고 확인하니, 엄마가 차를 가지고 나갔다가 9시 30분쯤 집에 온다는 내용이었다. 어..어잉? 나 오프 수업 10시에 신사역인데? 갈 수 있을까? 택시라도 타야 하나 하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어제 타르트를 차가 시원하다고 차 뒷자리에 두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안돼... 내 타르트... 
8시 30분쯤 일어나서 준비를 서두른다. 샤워도 하고 머리도 매만지고, 이 옷 저 옷 대보다가 수업이 길어질게 뻔해서 편안한 파란 원피스로 정했다. 
케이크 두 개를 싣고 가는데 아, 역시 좀 늦었다... 
엄마와 남산 1호 터널을 지났다. 평일에 어쩌다 내가 시간이 되어 아빠와 셋이서 차를 타고 터널 요금을 내지 않았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한남동을 지나 마포대교를 건너는데 엄마가 묻는다. 
_케익이 좀 많지 않니? 
_글쎄 좀 그렇지? 
_하나는 놓구 가. 내일 저녁 모임에서 쓰자.
_음.... 근데 이미 얼그레이 케이크도 가져간다고 이야기 해버렸어.. 
_ ㅎㅎ 그럼 케이크 오늘 많이 먹으니까 내일은 케익 먹지 말자?
_응응 나도 별로 안 먹고 싶을 것 같아. 

엄마는 국민연금 빌딩 앞에 나를 세워주었다. 창문을 열고 위태위태하게 케이크를 들고 문을 등으로 여는 나를 조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크게 인사하고 문 속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문은 자동문이 있길래 앞에 서보았는데 꿈쩍도 안한다. 이래서 공기업이란... 낑낑대면서 오른쪽 문을 연다.

찰나 언니가 어떻게 회의실로 오는지 알려주었던 것 같아서 케이크를 잠시 벤치위에 놓고 카톡을 열어보려는데, 경비 아저씨가 오른쪽 엘레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버튼을 누르고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아저씨가 무슨 회의냐고 묻는다. 어... 음.... 워크샵인데요... 그랬더니 본사에서 왔냐고 그런다. 아 네 맞아요. 이러고 도망치듯 엘레베이터로 탔다. 아저씨 본사는 무슨 ㅎㅎ 그런 사람 아닙니다. 속여서 미안했어요.

3층을 갔더니 사람들이 많이 와 있다. 시계를 보니 10분 지각이다. 양손에 바리바리 든 케이크가 이렇게 든든할데가 없다.
오늘은 술이 많다. 아, 술 좀 그만 마셔야 하는데.. 맛있겠다. 미경언니와 콩두언니도 와있다. 두 사람이 늘 고맙다. 후배가 생기면 나도 매번 같이 자리를 채워주는 선배가 되어 줘야지. 두 사람을 보며 생각한다. 

노트북을 연결하는데 한참 콘센트를 찾아 헤맸다. 간신히 연결했더니 충전이 되질 않는다. 이게 뭐야? 한참 노트북과 실랑이를 하다보니 화면이 멈춰있다는 걸 깨달았다. 재부팅 하니까 잘 돌아간다. 아 깜짝이야. 

오늘 수업은 승호 선배가 맡아 진행하기로 했다. 선배는 놋으로 만든 약국 절구 같은 것을 양 손에 들고 찰나적 깨달음과 그것을 계속 삶 속에 불러들이는 것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약국 절구는 제법 멋있는 소리를 냈다. 선배는 신부가 되려고 신학교에 갔다고 들었는데, 오늘 보니 스님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선배를 보면 지난 번 스페인 음악회에서 만났던 보나씨의 정 많은 하얀 얼굴이 같이 떠오른다. 보나 언니가 더 친근하지만 어쩐지 보나씨라고 부르게 된다. 여행에 가서는 언니라고 불러보아야겠다. 

오늘의 첫 타자는 승호 선배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참치 은시미였다. 나 이은심이야. 왜 이래? 라고 말하는 든든하고 단단한 참치도 속에 여린 아이를 담고 있었던 모양이다.  

두 번째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종종언니였다. 언니는 오늘 테니스 선수 같이 산뜻한 남색 원피스를 입었는데, 만화에서 튀어 나온 것처럼 옷에 하얀색 테두리가 있었다. 
언니의 과제를 듣는데 눈물이 나서 혼났다. 고개를 푹 숙이고 식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눈물을 가라앉혔다. 

찰나언니의 과제 발표를 듣는데, 내가 그녀에게 가지고 있던 약간의 의혹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녀는 확실히 성장하고 있다. 속도가 빨라서 누구든 알아차리게 된다. 

여기까지하고 점심을 먹었다. 시루떡과 김밥을 먹고 드디어 타르트와 케이크를 잘랐다. 생일자들이 모두 나와 함께 초를 불었다. 대성공이었다! 조금 많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수업시간내 모든 단 것들이 사라졌다. 아, 이거 사오는 보람이 있구만. 

피울의 발표를 들으며 종이 뒷장에 낙서를 했다. 어쩐지 섬뜩한 표정의 남자가 그려진다.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친다.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의 빛이 대비된다. 그의 과제는 스릴러가 담긴 성장소설 같은 구석이 있었다. 나는 그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역시 쉬고 나니 모두들 지친 것 같다. 

과제를 읽으면서 나는 어떤 이끌림 같은 것을 느꼈다. 사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내가 깨달았던 것은, 내 인생이 정말 누군가 책에 써둔 것처럼 차근차근 내가 가야할 곳으로 나를 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어딘가 나의 심연 깊은 곳에 있는 나의 중심이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연구원 과제, 칼럼을 쓰면서 그 인력을 깨닫는다. 나는 질문이 나올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빨리 끝내자는 의견이 많아 상대적으로 금방 끝날 것 같은 녕이 언니를 지목했다. 언니가 지지난 오프수업에서 한번 눈물을 보인 이후로 언니의 발표 때마다 나는 그녀의 도약을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녀는,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유순한 사람이다. 어딘지 고슴도치 같은 나와는 달리 그녀는 아주 결이 부드럽다. 

수업을 하면서 느끼는데, 창 선배의 커맨트가 아주 예리하다. 엉켜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멀리서 던진 창처럼 꿰뚫어주는 힘이 있다. 많이 고민했기에 제대로 질문하거나 적절한 코멘트를 해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의 직업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여간 든든하지 않다. 



#1

오늘은 수업이 예정대로 끝났다!! 와!! 수업을 끝내고 뒷정리까지 마치고 건물 입구로 나왔는데 아직도 해가 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 곳은 신사동이다! 
우리 일행이 신사동 분위기에 비해 좀 올드한 감이 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내 옷차림이며 등딱지 같은 커다란 배낭과 꽃쪼리가 너무 편한 감이 있지만 그다지 마음이 쓰이지 않는다. 수업이 끝났으니까.

저녁은 족발이라 해서 신이 났다. 멋지거나 이름이 알려진 여러 족발집을 지나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좋은 차들에 섞여 정말 신사동 같지 않은 허름한 정서를 가진 족발집으로 들어갔다. 주방을 지나니  콘크리트로 벽을 바른 뒷마당이 나타났다. 상당히 더웠다. 피부가 끈적끈적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온갖 종류의 술이 식탁위에 세팅되고 고기가 나왔다. 반찬이며 야채며 하는 것들을 잔뜩 먹었다. 낮에 김밥과 케이크를 잔뜩 먹고도 배가 너무 고팠다. 서기가 쉬운 일은 아닌가보다. 

우리 테이블에는 녕이 언니와 앨리스, 찰나, 에움, 희동님, 재경언니가 앉았다. 우리는 뭔가 공통적인 정서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데카메론에 나왔던 이야기들에 대해, 남자와 여자 입장에서 갑론을박 박장대소 하면서 엄청 웃어대고 술을 마셨다. 각자 사랑 이야기 같은 것도 슬쩍슬쩍 꺼냈다. 생각해보면 아직은 그렇게 많이 마신 것 같지 않았다. 후기 쓰는데 늦은 밤이라 그런지 또 먹고 싶다. 족발..나 되게 좋아하는데.. 

한바탕 이야기가 끝나고 이리저리 자리도 옮겨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엮는다. 데카상스는 편하다. 그 동안 몇 번 짧게 짧게 뒷풀이에서 이야기했을 뿐이데, 과제와 수업이 우리 사이의 담을 허물어 주었구나, 느낀다.

피울은 세 달만에 우리가 자발적으로 좋은 사진을 찍게 되었다고 신나서 말했다. 피울의 흑백 사진을 좋아한다. 내가 엄청 예쁘게 나온다. 나는 그렇게 나온 적이 없었는데. 선홍빛 잇몸이 선명하게 보이게 웃거나, 흰자를 희번뜩 거리거나 그런식인데 피울의 사진에는 제법 사랑스럽고 여성스럽고 장난끼도 좀 느껴지고, 참 나같이 나온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쌩얼이 되어 민낯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있었던 일, 후회되는 일 같은 걸 털어놓아도 별로 괴롭지 않다. 얼굴이 밝아진다. 임금님 귀를 보고 온 망건쟁이의 대나무 숲 같다. 

오늘 술자리에는 승완오빠, 요한 아저씨, 장소를 대여해주신 최현 선배도 같이 왔다. 승완오빠를 오랜만에 보았다. 커다란 검은 배낭을 메고 와서 뭔가 했는데 가방에서 책이 끝도 없이 나온다. 동탄의 메리포핀스인가. 각자 취향에 맞는 책을 하나씩 나눠가졌다. 요즘 왜 얼굴보기 어렵냐고 했더니 집에 있는게 좋단다. 10기 교육팀은 왜 안했냐고 물었더니 살롱9가 문을 닫을지 몰랐다고 한다. 아아, 뭐지 이 오빠 뭔가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은 스멜이 난다. 


#2 
뒷풀이가 끝나고 우리는 예정된 내면아이 코스를 모여서 하기로 한 오피스텔로 향했다. 그러다 승호선배와 교장샘의 조인으로 내면아이 대신 긴긴 2차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신사역에서 논현역까지 한 블럭 정도를 걸었는데,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병곤오빠와 가는데 10기를 운영하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건 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속으로 매우 반가웠다. 

레지던스 앞에서 아이스크림 내기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한참 가위바위보를 해도 사람이 많아서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간신히 병곤오빠가 보자기를, 나머지는 주먹을 냈는데, 누군가 이긴 사람이 쏘는거라고 말해 병곤오빠가 아이스크림을 쐈다. 지난번에 찰나언니가 천안역에서 뚝 잘라주었던 붕어 싸만코가 잊혀지지 않아 그 때부터 아이스크림이라고는 붕어 싸만코만 먹고 있다. 그날도 붕어 싸만코를 먹었다. 일단 올라가서 짐을 놓고 다시 편의점으로 내려와 술 안주 거리와 섞어 먹을 음료수를 샀다. 라면 두 개를 끓였는데, 승호 선배가 맛있다고 잘 먹었다. 승호 선배는 라면 두 개에 스프를 전부 털어넣은 좀 짠 라면을 좋아하는 듯 했다. 선배는 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튼다. 그걸 시작으로 각자 음악을 틀다가 승호 선배의 옛 이야기를 듣고, 또 한바탕 이야기가 돌고,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 잠들어 있었다. 아 또 잠들었구나. 시계를 보니 새벽 6시가 좀 안되었다.

#3
저녁 모임이 있어서 준비도 하고 좀 자려면 별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깨어있는 동기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집으로 돌아간다. 1박 2일만에 나는 다시 어려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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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5 00:48:41 *.218.178.5

그러고보니 레지던스 냉동실에 내 아이스크림 놓고 왔네...아깝다.


그렇게 고생해서 사온 타르트와 케익이라 더 맛있었구나. 고마워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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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5 13:06:00 *.50.21.20

축제는 당일보다 준비하는게 더 재미있다고,

케익 사면서 이런저런 우리 수업의 정경을 그려보는 일이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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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5 20:50:58 *.218.178.5

그 재미를 알았다니 기쁘군.

맞아, 주는 것이 훨씬 행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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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6 10:03:15 *.50.21.20

ㅇㅇ평소에 동네 탐색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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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5 00:51:41 *.182.55.90

내가 사는 동네에 오면 차원이 다른 족발을 먹을 수 있습니다.

족발을 미끼로 이 동네로 꼬셔보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족발보다는 새끈한 총각놈을 마련해 두는게 빠를까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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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5 13:05:15 *.50.21.20

음... 새끈한 총각놈보다는 족발이 좋네요. ㅎㅎ 

족발 미끼의 위력이 얼마나 되는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도록 하시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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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5 17:33:54 *.196.54.42

그날 어니언의 푸른 원피스, 아주 잘 어울렸어. 거기서 "푸르미"가 나왔지 ㅎㅎ

후기를 이로코럼 쓰니 이건 완전 드라만데... 음, 소설 쓸 생각은 없는가, 푸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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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5 17:48:57 *.50.21.20

인디언 이름 마음에 듭니다. 구달오빠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가 욕심나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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