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앨리스
  • 조회 수 1850
  • 댓글 수 7
  • 추천 수 0
2014년 7월 15일 10시 12분 등록

행복의 충격
10기 김정은



난 몸이 민감한 여자다. 7월 오프 수업이 다가오자 내 몸은 또 반응하기 시작했다. 복통이 시작된 것이다. 가스는 또 체세포 분열을 시작했다. 하지만 웬만해서 몸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넌 누구니?”라는 질문에 내 몸은 이토록 마음과 다르게 반응한다.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해 봐야 했다. ‘머리에 한 방의 총알을 맞고’ 글을 쓰게 되었다는 로알드 달이 떠올랐다. 로알드 달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석유회사를 다니다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쟁 중 머리에 기념비적인 한 방을 맞고 돌아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마틸다’ 등을 썼다. 10살 큰 딸과 6살 작은 딸이 사랑하는 마틸다! 우리 세 모녀는 ‘마틸다’를 한글로 읽고, 원서를 사다 영어 원문으로 읽고, 영화 ‘마틸다’를 서른 번은 본 것 같다. 마틸다가 엄마 아빠를 골려 주는 장면, 트렌치플 교장 선생님을 골려 주는 장면은 봐도 봐도 통쾌하다. 내 닉네임을 ‘앨리스’에서 ‘마틸다’로 바꾸고 싶을 정도다. ‘머리에 한 방의 총알을 맞고 작가가 된 사람’, 얼마나 멋진 정의인가? 나를 그렇게 정의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 한 줄 정의는 바로 “이상이 일상이 되도록”! 또 이상이다. 나는 늘상 이상이다. 왜 난 항상 이상 타령만 하고 있나? ‘이상이 일상이 되도록’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다. ‘의미’를 추구하려는 내 마음과, ‘재미’를 추구하려는 내 몸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이 복통이 멈출 것 같다.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서 머리에 총을 맞고도 재미있었던 사람, "가장 대담하고, 신나고, 뻔뻔스럽고, 재미있는 책"을 만든 작가로 평가 받는 로알드 달처럼 나도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해결되지 않는 복통을 동반하여 7월 오프 수업은 진행되었다. 내 옆 자리 교육팀 창선배가 앉으셨다. 한 명 한 명 발표할 때마다 무언가 열심히 써내려 가셨다. 미리 써 놓은 듯한 메모와 비교해 가며, 머리를 갸웃갸웃하며, 우리의 이전 모습과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을 왔다갔다 하며, 최적의 코멘트를 선물해 주시려는 것 같다. 작은 몸을 갈아서 코멘트를 만드는 느낌이었다. 순간,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내가 첫째를 낳던 그 날의 장면이다. 엄마와 언니는 제왕절개로 아이들을 낳았고 내 몸도 제왕절개에 적합했지만 나는 무리해서 자연분만을 선택했었다. 만삭이 되어 아이를 낳으러 친정에 갔지만 엄마도 언니도 진통이나 자연분만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어서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진통은 찾아왔고 병원에 갔다. 호흡법도 힘 주는 법도 몰랐던 나는 영 엉뚱한 곳에다 힘을 주고 있었다. 하루를 꼬박 엉뚱하게 힘을 쏟고 있는 나에게 의사는 이젠 아이가 위험할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제왕절개를 하자고 설득했다. 그 때 갑자기 20년 아이를 받았다는 수 간호사가 짠 하고 나타나 팔을 걷어 부치고 자신이 한번 해 보겠다고 나셨다. 아니, 내 배 속에 있는 아이를 그녀가 어떻게 낳아준단 말인가? 그녀는 나와 함께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을 때 힘 주는 방법은 달랐다. 엄마는 온 마음을 다해 배 속 아이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 아이는 엄마 배속을 나오기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또 힘들어서 쉬기를 반복한다. 그 아이가 잠깐 쉴 때 엄마가 힘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가 나오려고 하는 순간을 포착해서 엄마는 힘을 주어야 한다. 아이가 엄마 배 속을 나오기 위해서 아이와 엄마는 한 마음 한 몸이 되어 동시에 힘을 주어야 했다. 창선배를 보면 나와 함께 아이를 낳은 그 수간호사가 생각난다.


이 번 오프는 여태까지의 오프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도, 데카상스도 점차 업그레이드되어 가는 느낌이다. 교육팀 선배님들의 코멘트도 ‘그 분’이 오신 듯 날개를 단 듯 하다. 서로가 업그레이드 되는 이 만남에 점차 빠져들고 있다. 2차에서 정산 선배와 요한 선배가 진중한 모습을 보여 주셨다. 변경연을 받드는 든든한 기둥 같은 느낌이었다. 말씀을 많이 하진 않으셨지만, 열매도, 가지도, 밑동도 다 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올랐다.


분위기가 슬슬 무르익자 어디선가 거나하게 한 잔 한 듯한 승완선배가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예전에 재경선배가 내 글과 나란 사람이 매치가 안 되는 정도가 승완선배보다 더 심하다라고 코멘트를 준 적이 있다. 이후로 나는 화요일 승완선배의 마음 편지를 빼먹지 않고 보고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면, 무언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독되었는지 매주 화요일이면 그의 칼럼을 기다리게 된다. 실제로 보니 그는 글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느낌의 사람이었다. 나도 그런가? 피울님이 찍어주시는 내 사진을 보면 내 표정은 가관이다. 오버스럽기 그지 없는 내 표정들을 사진으로 보면서 민망해 하기도 했다. 진짜 난 승완선배보다 더한가 보다. 어쩌면 과장된 행동은 내면 슬픔의 역표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로알드 달처럼 그도 ‘머리에 한 방의 총알을 맞고’ 글을 쓴 것인가? 어쨌든 승완선배의 글은 참 좋다. 그는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열고 수많은 책들을 꺼냈다. 10년이나 까마득하지만 연배는 훨씬 더 들어 보이는, 부담스럽다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10기 후배들에게, 실제 나이보다 10년은 어려 보이는 동안을 한, 대 선배는 무언가 직접 코멘트를 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쨌든 그의 깜짝 책 선물은 데카상스 모두에게 감동이었다. 그가 꺼내놓은 수많은 책들 중에 나는 '행복의 충격'을 골랐다.


비공식적인 3차를 준비했던 데카상스의 일부 멤버들과 일부 선배들은 근처 레지던스로 향했다. 오늘따라 말씀이 유독 없으신 승호선배가 가장 먼저 털어놓았다. 나는 교육팀 선배들의 미스토리를 모른다. 승호선배가 교육팀 최초로 미스토리 한가지를 털어놓은 것이다. 승호선배를 볼 때마다 나는 거울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가 털어놓은 단 한가지 이야기로 나는 어쩌면, 그는 어쩌면, 우린 어쩌면, 뼛속까지 거울을 보듯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밀이라고 어디 가서 절대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그와의 약속은 꼭 지킬 것이다. 승호선배의 사랑스런 비밀 한 가지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오프가 있는 날은 언제나 그랬듯, 에움과 나는 우리만의 4차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파우스트>를 다 읽진 못했지만, 나는 에움이라는 신비스런 여인에게 그 어떤 고전보다 더 매료되어 있기 때문에, 그녀가 막차를 타기까지 함께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교장쌤께서 ‘피리부는 사나이’가 되어 피리를 불었다. 우린 비공식 4차를 언제 계획했었냐는 듯, 그 피리소리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곳은 ‘시크릿 가든’! 눈부신 하늘 아래, 푸른 잎사귀들이 사방을 두른 그 곳엔, 아주 오래된 나무를 베어서 만든 테이블이 있었다. 우리는 그 곳에 앉아 피리 부는 사나이가 권하는 신비스런 술을 마셨다. 이 술이 그 길라임이 마셨던 꽃술, 돌아가신 길라임 아버지가 ‘우리 딸 살릴 술’이라 명명했던 그 술 인가? 우리는 마치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자유를 느꼈고, 각자의 몸에 딱지로 남아 보기 흉했던 상처들에서 말끔한 새 살이 돋고 있음을 느꼈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계속 피리를 불었다. 우리가 상처의 등껍질을 다 벗겨낼 때까지. 통큰 참치 언나는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었고, 나는 난생 처음으로 짠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얼마나 짠지 눈에다 식초를 부었나 싶을 정도로 눈이 시큰거리고 따갑고 아팠다. 그 날 부암동에서의 기억은 내게 ‘머리에 맞은 한 방의 총알’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제 ‘대담하고, 신나고, 뻔뻔스럽고,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향기로운 비누는 행복의 충격이었다. 사고형을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사고형에 머물러 있는 나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물건이다. 포르투갈 비누의 양귀비 향을 맡으며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나는 ‘고디바’로 향했다. 퇴사하고 처음으로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났었다. 출장 중 여행이 아닌, 우리 가족이 작정해서 간 첫 순수 해외 여행이었다. 초콜렛을 사랑하는 두 딸들은 그 곳, 홍콩에서 먹은 고디바의 맛을 잊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후로 단 한번도 고디바를 사 준 적이 없다. 광화문 교보문고 맞은 편에 고디바가 떡하니 있는데도, 나의 사랑하는 두 딸들에게 고디바는 평생에 첫 해외여행지 홍콩에서나 한번 누릴 수 있었던 호사였던 것이다.


포르투갈 비누 향을 맡으며, 내 발길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듯 어느새 광화문 ‘고디바’에 와 있다. 그 비싼 초콜렛을 기쁜 마음으로 산다. 고디바를 받고 선 내 딸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녀들은 오늘 눈이 튀어나올 지도 모르겠다.


7월 오프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행복의 충격’이다. 난 그 날 머리에 ‘행복의 총알을 한 방’ 맞았다. 



P.S. 그 날 함께 해 주신 선배님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IP *.202.136.114

프로필 이미지
2014.07.15 12:18:23 *.218.178.5

피리부는 사나이가 안내한 씨크릿 가든.

그곳에서 같이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우!

프로필 이미지
2014.07.15 20:02:51 *.202.136.114

통큰 참치언니께 항상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드려요~~^^

프로필 이미지
2014.07.16 10:24:07 *.50.21.20

ㅎㅎ 앨리스의 눈물을 낳는데 1박 2일이 꼬박걸리는군요. 

행복의 충격은 축하받을 일이여요. 멋진 동화가 또 하나 탄생했네요!

프로필 이미지
2014.07.16 12:36:03 *.202.136.114

어니언의 타르트! 행복의 총알이었지!

고디바를 받으며 눈 튀어나온 내 딸들 또한 행복의 충격을 받았지.

행복의 충격은 또 행복의 충격을 낳는구나.

담번 오프 수비니어는 어니언의 행복 타르트로 결정!!^^

프로필 이미지
2014.07.16 16:39:51 *.113.77.122

우리아이들도 찰리와 초컬릿 공장을 좋아했었는데 난 한번도 보지 않았는데 이참에 한번 봐야 겠는데.

행복한 총알을 한방 맞은 앨리스의 그 다음 작품이 넘 기대되 ~~ 

프로필 이미지
2014.07.17 08:53:44 *.202.136.89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영화로 보시는 것 추천드려요~~

로알드 달, 팀 버튼, 조니 뎁!
이 세 명의 예술가들이 만든 환상의 조화~~

로알드 달 완소, 완사, 강추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4.07.20 22:06:20 *.217.6.52

에고~ 부끄러워라.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