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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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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5일 10시 39분 등록

■오프후기■

수다스러움



 텅 빈 방안에서 내 목소리는 필요치 않습니다. 듣는 이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너무 심하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일부러 소리를 내봅니다만, 완전히 목이 잠기어 버렸습니다. 지난 수업의 후유증입니다. 수업을 가슴으로 안하고 말로 했나 봅니다. 오프 수업에서 목소리를 잃고 무엇을 가지고 돌아왔나 생각해봅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부터 내내 눈물을 달고 왔습니다.

 요번 오프수업에 갈까 말까를 망설였습니다. 잠시 세상이 깜깜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깜깜함이었습니다. 과제를 작성하던 중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징조를 알려왔는데 외면했던 탓일 겁니다. 큰 일을 맞닥뜨리고서야 작은 징조를 외면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돌아와서 생각해봅니다. 깜깜하다고 골방에 갇혀 있을 건 아니야라고. 후유증은 큽니다. 몸의 회복력이 더딥니다.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온 세상을 떠돌다 돌아온 느낌입니다. 젊어지는 신비의 약을 먼저 먹여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봅니다. 앞으로는 수업 가기 전 꼭꼭 챙겨 먹어야겠습니다. 지금 상태를 보건데 돌아와서도 먹긴 해야 할 겁니다.

 서울의 복잡함이 싫긴 하지만 그 복잡함이 생동감으로 느껴지기도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을 갈 때면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치지만 알지 못하는 이들만 가득했는데 이제는 서울을 간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려지게 됩니다. 서울에 갈 때마다 내게 잠자리를 주며 외박을 권유하는 이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들이 이끌어준 서울의 거리와 장소에 대한 새로운 기억도 차곡차곡 쌓입니다. 더불어, 몸 속에 알콜도 쌓여갑니다. 술이 있으니 음식이 있고 음악이 있습니다. 그저 허기를 달래고 심심한 입을 달랠 먹을거리조차도 의미를 가집니다. 음식을 먹는 입, 말을 하는 입들이 조용해 질 수 있는 시간, 음악은 배경을 뒷받침하는 조연에서 주연으로 올라섭니다.

 이번 수업을 지배하던 음악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달리는 버스 안 어두운 창밖을 쳐다보니 먹먹함과 그리움의 불빛들이 뒤따라오는 듯도 하고 멀리로 사라지는 것도 같습니다. 내가 안녕하며 보낸 것들과 여전히 붙들고 있는 것들이겠죠. 다시 한번 먹먹함이 고개를 듭니다. 나는 누구인가는 늘 생각하고 생각해도 별로 달라지는 일 없는 나를 발견하는 물음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를 물어대고 있는 것은, 그것이 답이 아니기 때문이란 생각도 스칩니다. 나는 누구인가는 과거에 대한 물음일까요, 미래에 대한 물음일까요. 이 둘 사이의 현재는 늘 눈치를 살피며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합니다. 현재가 중심을 잡아야 나는 누구인지를 알아질 듯도 한데 현재는 힘을 쓰려 하지 않습니다.

 데카상스 까페를 편하게 들어가려고 카페앱을 만지작거리다가 오래 전 가입했던 또다른 까페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오래도록 활동도 없는 나를 굳이 탈퇴시키는 수고로움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MBTI 까페입니다. 몇 번의 검사를 하다 보니 같은 유형의 검사 결과가 나옵니다. 그래서 가입했던 10년도 더 된 까페를 다시 들어가봅니다. 이 까페의 왕성한 활동력은 정말 끝내줍니다. 매 초마다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며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들의 생각들이 하나 하나 어쩜 이렇게 익숙한 걸까요. 나는 혼자가 아닌 수많은 나를 만납니다. 까페를  옮깁니다. 역시 오래 전 가입한 나와 병명을 가진 이들이 모인 까페입니다. 이들의 증상은 또 어쩜 이렇게 익숙한 걸까요. 그들의 불안과 심지어 분노까지도 어떻게 이렇게 같을까요. 나는 또 혼자가 아닌 수많은 나를 만납니다. 다시 까페를 옮깁니다. 데카상스 까페입니다. 참 다른 이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나’를 보며 익숙함을 느낍니다. 과거는, 참 닮아 있습니다. 나는 또 혼자가 아닌 열 명의 나를 만납니다.

 차이를 발견하는 것만큼 같은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큽니다. 그래서 어떠한 일들은 혼자만 알고 경험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라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냥 그렇게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래서 좀더 가벼웁게 기억이나 사건들을 재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같은 것을 발견한 기쁨을 온통 누리며 수업의 여운들을 빠져 나오는 터미널에 들어서면, 그래도 같은 것 속에 차이를 좀 찾아봅니다. ‘앞으로의 나’가 좀 걱정이 되는 까닭입니다.

 지친 몸이 완전한 휴식을 원하는데도 새벽, 제 머리가 난리를 칩니다. 혼자 깨어 마구 글을 쓰고 있습니다. 머리속에서 나는 한편의 글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가속도가 붙듯이 마구 달려 나가자 몸을 이끌어 컴퓨터를 켭니다. 머리가 내뱉은 말들이 사라집니다. 문장들이 영원히 안녕을 고했습니다. 사라진 글들을 기억하려는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대로 있었다면 글의 완결이라도 느꼈을 텐데 아쉽습니다. 다시 또 생각해 봐야겠지요. 새벽녘 머릿속을 헤집고 간 그 수다의 주인공을 찾아야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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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5 12:08:27 *.218.178.5

나의 이번 오프 수업의 큰 발견은 에움이 정말 이쁘다는 것이다.

우는 모습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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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5 13:10:48 *.201.146.143

작두 타는 듯 그랬는데...라면도 그렇고 이 후기도 그렇고 그대처럼 폭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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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6 07:37:58 *.175.14.49

에움님. 사람들이 신혼여행 가기 전에 쇼핑을 하거든요. 스페인여행 가기 전에 쇼핑 할 때요, 입고 싶었던 옷들을 막 사서 입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좀 과감한 여자친구랑 같이 다녀야 하는데. 아, 스페인 가서 해도 되겠네요. 우리 때는 그 시기가 유럽의 세일 기간이어서요 비싼 걸 싸게 사는 분도 있었어요. 끈다리 원피스나 반바지에 쪼리일지도 모르죠. 사부님의 트레이드 마크는 주황색 하와이안 셔츠였어요. 그 셔츠를 여행갈때마다 입으셨거든요. 그 옷을 탐내는 이들이 많았어요. 이 글을 읽다가 저는요 에움씨의 예쁜 모습이 떠올라요. 예쁜 머리띠를 하고, 퍼머머리에 화려한 프린트가 든 좀 짧다싶은 원피스... 저의 상상이에요. 즐겁네요. 이런 상상.

 

체력 잘 회복하시구요.  멀리서 오시는 분들은 왕복 찻길에, 생활의 변화에, 또 날밤새는 분들은 그 일정의 휴유증으로 며칠 고단하다 하시대요. 깜깜해서 너무 놀라고 무서웠을 것 같아요. 지금은 괜찮으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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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6 08:54:13 *.218.178.5

저도 콩두님과 같은 생각했어요. 에움을 자유롭게, 과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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