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2014년 7월 21일 10시 51분 등록

율리시스_구달리뷰#15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성숙 옮김

동서문화사

 

1. 저자에 대해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 2. 2 ~ 1941. 1.13)

 

1) 제임스 조이스의 일생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브라이튼 스퀘어 41번지에서 태어났다. 그 곳은 라드(Rathgar)가 변두리에 있는 조용하고 외딴 빅토리아풍의 붉은 벽돌집이었다. 초기 가정형편은 괜찮은 편이었으며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은 교양 있는 집안이었다. 양부모 모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오페라에 흥미가 있었다.

 

어머니는 메리 제인 머레이는 포도주 상인의 딸로서 상냥하고 품위 있는 성품을 지닌 조용하고 얌전한 여성이었다. 아버지 존 스태니슬로스 조이스는 지방 정부의 세금징수원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이야기를 지어내어 들려주곤 했다. 그러나 부친은 술과 정치에 빠졌고 그 결과 집안의 가세는 기울기 시작한다.

 

그는 주정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도리어 이해하게 되고, 아버지를 무한한 인내심으로 참아내는 어머니의 신앙심에 대한 반발감을 갖게 된다. 조이스는 아버지를 죄인으로서 자신과 동일시하고 어머니는 억압적인 교회와 동일시하면서 종교가 어머니를 희생자로 만들고 있다고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부친은『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의과 대학생, 테너가수, 아마츄어 배우, 시끄러운 정치가, 소지주, 술주정뱅이, 민담가, 양조장 일꾼, 호인, 재담가, 세금 징수원, 파산가 그리고 현재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숭배자’로 묘사된다. 부친은 21번째 생일에 조부인 존 오코넬(19세기 대 정치가 다니엘 오코넬의 사촌)로부터 상당의 거액을 상속받으나 잇달은 사업실패와 낭비로 가산을 탕진하게 된다. . 그가 낳은 13명의 자녀 중 살아남은 자녀는 10명이었다.

 

1891년 아버지가 실직하게 되면서 조이스의 가계는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가난과 추락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의 음주과 폭력, 아일랜드 남성 특유의 체면 치레와 남성우월주의적 태도 등은 소설 <더블린 사람들>에서 잘 읽을 수 있다.

결국 클롱고스우드를 자퇴한 조이스는 기독교 형제 학교에 입학했으며 그곳에서 폭넓은 독서를 시작했다. 작문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조이스는 글쓰기 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하는 등 문장력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더블린에 있는 유니버시티 칼리지에 입학한 조이스는 영어와 이탈리아어, 불어를 공부하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902년 유니버시티 칼리지를 졸업한 조이스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프랑스 파리로 간다. 영어를 가르치면서 파리에서 지내던 조이스는 1903년 봄 어머니가 암 말기에 이르렀다는 전보를 받고 더블린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그해 8월 세상을 떠난다.

 

학문적 우수성 외에도 성()적인 조숙함을 보였던 조이스는 10대 초기부터 창녀들과 접촉하게 된다. 성에 대한 초기 경험은 카톨릭으로부터 그를 멀어지도록 만든 주요 요인이된다. 이러한 체험은 자신의 작품『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반영되는데 신앙심 깊은 주인공 소년은 이제 체험을 통해 교회의 도덕 규준은 인간의 성()에 있어 현실적인 면을 다루는데 부적합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고민을 되풀이하던 조이스는 벨베디어 칼리즈를 다니던 마지막 해에 신앙을 버리고 반역이자 유형이라고 생각한 문학적 사명에 헌신하기로 작정한다.

 

1903년부터 1904년까지의 기간은 조이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전환점이 되는 시기다.

 

첫째는 조이스가 이 기간 동안 자전소설 <스티븐 히어로(Stephen Hero)>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스티븐 히어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토대가 된 작품이다.

 

두 번째는 1904 노라 바너클이란 여성을 만나게 된 것. 노라는 조이스가 평생을 함께 한 여인이다. 노라는 집에서 도망쳐 나와 더블린의 한 호텔에서 하녀로 일하던 스무 살 난 여성이었다. 조이스와 노라는 1904년 조이스의 천재성을 받아들이지도 후원하지도 못하는 아일랜드를 떠나 유럽 대륙으로 건너간다. 조이스는 취리히와 트리에스테를 옮겨 다니며 영어를 가르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1905년 아들 조지오가 태어났고 1906 <더블린 사람들>이 완성됐다. 이어 <스티븐 히어로> <젊은 예술가의 초상>으로 개작하기 시작했으며 1907년 딸 루시아가 태어났다. 그 후 1909년과 1914년 사이에 조이스는 유럽 대륙과 더블린을 오가면서 집필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발표된 <더블린 사람들>은 실제 더블린 사람들로부터 많은 항의와 삭제요구를 받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당사자들로부터 끊임없는 소송 제기 위협을 받은 <더블린 사람들>은 완성된 지 8년이나 지난 1914년에 이르러서야 온전하게 출판될 수 있었다.

 

1914년은 조이스 문학이 정점을 이룬 시기다. <더블린 사람들>이 출간되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연재를 시작하고, <율리시스> 집필을 시작한 해가 1914년이다. 이른바 ‘더블린 3부작’ 1914년에 모두 어떤 식으로든 결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1914년부터 <에고이스트>지에 연재되기 시작한 <젊은 예술가의 초상> 1916년 출간됐다.

 

그러나 조이스와 조국의 불화가 1914년 극점에 이르렀다. 계속되는 항의와 무시, 소송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문학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불만 때문에 조이스는 1915년 아일랜드를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옮겼고 다시는 아일랜드로 돌아오지 않았다.

 

조이스의 건강은 계속 악화되었다. 녹내장으로 시력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관절염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또 이가 모두 빠져 의치를 해 넣기도 했다. 그런 속에서 조이스는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를 쓰기 시작했다.

 

1931년 노라와 프랑스 파리에서 뒤늦은 결혼식을 올린 조이스는 이듬해인 1932년 딸 루시아가 정신분열증 판정을 받고 숨을 거두는 등 불행을 겪는다. <피네간의 경야> 1939년 출간됐으나 독자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평단에서도 난해하다는 평가를 주로 받았다. 결국 59세의 일기로 1941 1 13일 십이지장 수술 후 생긴 합병증에 의해 스위스 취리히에서 사망했다.

 

2) 율리시스는 어떤 작품인가?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구성과 주요인물을 빌려, 현대인과 고전 속 인물을 대응시켜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작품이다.

 

조이스의 작품은 전체가 하나의 연작처럼 읽힌다. 더블린 3부작’이라고 평가 받는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같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같은 장면이 계속되기도 한다. 특히 스티븐 디덜러스(<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가 레오폴드 블룸을 만나는 과정은 <율리시스>의 중심 에피소드다.

 

<율리시스>는 더블린의 세 사람이 보낸 1904 6 16일 하루를 묘사한 작품이다. 스티븐 디댈러스는 조이스의 대역이다. 사도시대의 순교자 스테반의 이름을 붙인 것은 자신이 더블린 시대의 순교자라는 뜻이리라.

 

젊은 지식인 스티븐 디덜러스와 신문광고 모집인 레오폴드 블룸, 블룸의 부인 마리언 블룸이 주인공이다. 조이스의 부인 노라 바테클을 만나 처음 데이트 했던 날을 소설의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다고 한다.

 

소설은 세 사람의 내면과 무의식의 흐름을 쫓아간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형식을 따라 배열된 18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블룸의 비밀스러우면서도 관음증적인 성욕이 다양하게 묘사된 부분이 많다.

 

<율리시스> 언어유희의 대성당이라 할 정도로 다 언어적이다. 국어는 아일랜드어, 정치적 문화적 강제에 따라 쓰이는 영어, 교회 언어인 라틴어, 오페라 언어인 이탈리어어 등이 깔려있다. 조이스는 이 조건을 완벽하게 이용해서 기존 소설기법에서 과감하게 탈피한 조이스의 재능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재치 있는 농담“을 끊임없이 사용한다.

둘째, ‘합성어’ 및 ‘조어’를 만든다.

셋째, ‘패러디’와 ‘모방’으로 놀이를 한다.

넷째, ‘농담‘이다.

다섯째, ‘외설’도 농담과 비슷한데,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바닷가에서 노출 중 소녀와 자위하는 중년남자가 만들어내는 기괴한 이중주 (에피소드 13)는 아주 새로운 미의 형태로, 매혹적인 퇴폐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여섯째, ‘가사인용’이다. 가수가 될지 작가가 될지 진지하게 고민했고, 늙어서도 술을 마시면 반드시 노래를 불렀다는 조이스의 취미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조이스는 음악이 들어 있는 소설이라는 참신한 놀이를 발명했다. 모든 예술은 음악 상태를 동경한다는 페이터의 예언을 실현했다. 이와 더불어 그가 가사를 인용함으로써 말의 또 다른 기능, 곧 읽고 쓰고 말하기가 아닌 노래를 끌어들였다는 점도 아주 중요하다.

 

조이스의 언어에 대한 집착은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며 철저하다. 그의 어휘는 전문어와 학술어부터 속된 말, 상말, 천한 말, 유아어, , 의성어까지 아주 다양하다. 인간의 언어생활은 속담, 이름 붙이가. 잘못 말하고, 잘못 듣고, 잘못 쓰고, 잘못 읽고, 머뭇거리며, 거짓말, 허풍, 과장, 인용, 오류, 사투리, 외국어, 엉터리 외국어 등으로 온통 뒤덮여 있다.

 

일곱째, 언어의 다양성에 대한 그의 집착은 장편소설을 ‘사전과 경쟁’하게 만든다. 이러한 계획 또한 뚜렷이 어떤 언어유희이며, 이 놀이는 당연히 ‘백과사전과 경쟁’, ‘역사사전과 경쟁’, ‘지명사전과 경쟁’ 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조이스가 <브리태니커 백과서전>을 참조한 사실은 유명하지만, 그냥 참조한 것이 아니라 아주 뛰어나게 승화시켰다.

 

<율리시스>는 진지한 신학=예술론의 바로 위아래에 장난기가 가득한 놀이가 있기 때문에, 이 이중구조를 간과하면 <율리시스>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먼저, 장난의 명수이자 언어에 능한 작가가 매우 화려한 잡담의 장대한 조합으로 독자를 놀라게 하기 때문이다.

 

조이스는 장편소설에 의한 지적 탐구 범위를 더욱 넓히려고 했다. 그 결실이 바로 블룸의 지레짐작과 어설픈 잡학과 인생관이며, 거기서 드러나는 골계적인 맛과 매력 있는 면과 건전함과 서글픔 등은 지식인이 아닌 사람의 지적 생활 연구로서 소설사에 한 획을 긋게 되었다.

 

이 소설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은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다. 독백은 스티븐 디댈러스의 경우에는 꽤 정신적이지만, 블룸의 경우에는 육감적이고 세속적이다. 이러한 문장법에 따라, 여느 소설과 같은 외형 묘사가 아니라 내면 묘사를 과감하게 많이 한 점이 이 작품의 특색이다. 아울러 이것이 이 소설을 읽기 힘들고 복잡하게 만드는 밑뿌리이다.

 

<율리시스>에 앞서 쓴 <젊은 예술가의 초상>도 이미 ‘의식의 흐름’에 가까운 독백 방법을 쓰고 있다. 논자에 따라서는 <햄릿>에서 햄릿의 독백이 의식의 흐름에 가까운 묘사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율리시스>에서 대대적으로 쓰인 이 기법은, 심리적인 현실 추구에 따라야 리얼리즘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는 20세기 첫 무렵 유럽 문학 전체의 새로운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조이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표류 부분을 뼈대로 삼음으로써 고전의 튼튼한 골격 위에 그에 맞추어 구성을 되도록 변형시킴으로써 각 장마다 독립된 맛과 재미를 만들어 냈다.

근대의 육감 넘치는 인식을 정착시킨 데에 이 작품의 근본적인 강점이 있으며, 구조의 재미와 각 세부를 살린 데에 이 작품의 생명이 있는 까닭이다.

 

<율리시스>를 두고서 이전의 모든 설화예술이 그곳으로 흘러 들고 이후의 모든 작품이 그곳에서 흘러나온다고 평가한다면, 이는 인류의 소설사 전체를 커다란 모래시계에 비유한다면 조이스의 작품은 그 잘록한 허리에 해당된다. 언어라는 알갱이가 시간과 함께 잠시 멈추어서 모든 것을 함축하는 그곳, 문학과 삶이 하나로 응결되는 그곳이 조이스의 문학 세계이다.

 

1914~1918, 4년에 걸려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완성했다. 1918년에 헤리엇 쇼 위버와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도움으로 <리틀 리뷰>지에 연재할 수 있었다. 연재를 시작한 <율리시스>는 결국 1921 2월 미국 뉴욕에서 재판 결과 음란 출판물로 판정 받아서 연재가 중단됐다. 미국에서는 1933년에 이르러서야 음란 출판물 판정이 해제됐다. 1934년에야 미국에서 출간될 수 있었고 영국에서는 1936년에 출간됐다.

 

계속되는 검열과 재판, 음란물 판정 시비 속에서도 조이스는 1921년 친구인 프랭크 버젠에게 보낸 편지에서 <율리시스> 집필을 마쳤다고 밝히며 소설을 완성했다. <율리시스> 1922 2 2일 프랑스 파리에서 실비아 비치가 자신의 서점인 ‘세익스피어 & 컴퍼니’ 이름으로 <율리시스>를 출간했다. 이후 <율리시스>는 영국에서도 출간됐지만 1923 영국 포크스톤 풍속협회에 의해 압수됐으며 출판이 금지됐다.

 

1936년 보들리헤드 출판사에서 한정판으로 출간될 때까지 출판금지는 계속됐다.

영국에서는 1970년대가 되어서야 공공도서관에서 <율리시스>를 비치할 수 있었다. 이것도 소설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란 이유로 일반 서가에는 비치되지 못하고 사서들만 작품을 열람할 수 있었다.

 

<율리시스>에서 조이스는 호메로스와 호메로스 이후의 전설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을 사용하고 있다. 스티븐은 데덜로스일뿐만 아니라 이카루스, 햄릿, 셰익스피어, 루시퍼이기도 하다. <율리시스>라는 제목을 붙인 연유를 묻자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오”라고 조이스는 대답했다. 이 소설의 중요한 과제는 가톨릭 사회에서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이교도 주인공을 발견하는 것. 율리시스를 더블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 서사시적 이야기의 조이스판은 평화주의적이다. 조이스는 호메로스가 유별나게 강조하지는 않았던 이 그리스 서사시의 측면, 즉 율리시스는 그리스의 전사 중 유일하게 지성적인 사람이었다는 점을 발전시켰다. 아킬레스와 아이아스와 나머지 건장한 사내들은 육체적인 힘에 의존하지만 율리시스는 훨씬 밝으며 절대 당황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호메로스도 물론 율리시스를 지성적인 전사로 묘사한다. 조이스는 현대의 율리시스를 육체적인 투사가 아닌 불굴의 정신을 지닌 자로 묘사한다. 조이스의 작품 전체에 만연해 있는 육체성에도 불구하고 블룸의 승리는 정신적이다.

 

작품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에 없는 여행 즉 왕성한 지식욕을 표출하는 여행을 한다. 블룸은 율리시스의 욕망에 대한 중산 계급적인 상관물인 끈덕지고 반추적인 호기심으로 그의 상념 속에서 스티븐보다 훨씬 더 많은 인생과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동시에 블룸은 자신의 보기 드문 개성을 주장한다. 경험에 대한 그의 반응은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지만 더 광범위하고 현명하다. 율리시스만큼 인정된 명성은 누리지 못해도 율리시스만큼 존경 받을만한 인물이다. 조이스는 그를 치켜세우지는 않지만 특별한 인간으로 내세운다.

 

블룸은 하찮은 인간-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생활에도 실질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광고 외무원-이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이스는 신이라는 말로써 그리스도교를 얘기하지 않는다. 조이스는 개인적인 신의 개념에도 관심이 없다. 블룸의 신성한 부분은 자신과 다른 피조물 간에 유대성이 있다는 그의 가정, 단지 그의 인간성일 뿐이다.

 

이 블룸이라는 이름은 흔한 유대인 이름이지만, 이 이름은 꽃을 의미하기도 하며 블룸은 꽃처럼 완전체이다. 블룸은 편협한 의미에 속하지 않음으로써 또한 민족적 생활의 제한을 무시함으로써 이러한 차별성을 성취한다. 그는 아일랜드인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인 것이다.

 

블룸이 존경 받아야 한다는 소망으로 조이스는 평범한 것에 비범함을 불어넣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블룸에게 부여한다. 블룸의 독백은 놀랍게도 강렬한 어구가 넘치는 끊임없는 시다. 

조이스가 블룸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지, 블룸의 사고방식이 아니다. 몰리의 시야는 한계가 있고, 스티븐은 의식과잉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화술을 갖고 있다. 

 

<율리시스>의 사실성은 너무 그럴싸해서 조이스는 창조자보다는 모방자로 취급되어왔다. <율리시스>의 표면상의 사실주의는 많은 복잡한 사실에 의해 뒷받침 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선명치 않은 난외 사항이다. 조이스가 설명할 의도가 없는 재료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인생처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이 엉켜 있다는 인상을 준다. 

 

조이스는 1904 6 16일을 <율리시스>의 날로 정했는데, 이날이 노라 바나클과 처음으로 같이 걸었던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더블린에 갔을 때 그는 이날의 신문을 입수할 수 있었다. 작품 속에서 블룸이 가장 좋아하는 추억은 호우드의 철쭉 속에서 사랑의 언약을 하던 때이고, 블룸 부인도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은 그때에 대한 그녀의 회상으로 끝난다. 이런 의미에서 <율리시스>는 결혼 축가이다. 사랑이 이 작품의 동기이다.

 

<율리시스>의 테마는 단순하며 조이스는 블룸, 몰리, 스티븐을 통해서 그 테마를 완성한다. 우연한 친절이 부당한 힘을 압도한다. 더블린의 모든 세세한 것들과 트리에스테의 많은 것들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수집되어야 했다. 그의 예술에서 조이스는 자신의 인생의 지배적인 특징으로 여겨왔던 불운과 좌절을 극복하고, 공포와 잔혹의 부정이라는 그의 유일한 신앙을 인류의 이름으로 희극적 방법으로 표현했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통하여 자신에게 불어 닥치는 어떤 불행, 불운, 고난, 좌절도 자신의 예술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조이스의 인간승리이다.

 

문체의 박물관, 인간심리 백과사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탁월한 언어미학과 혁신적인 소설기법으로 현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손꼽힌다. 또한《율리시스》가 후대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작품의 일부가 연재된 영국 잡지《에고이스트》의 편집 보조를 맡고 있던 T. S. 엘리엇이 《황무지를 쓸 때 《율리시스》가 큰 자극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버지니아 울프와 윌리엄 포크너 등이 작품 속 인물들의 내적 심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도 《율리시스》가 전범 구실을 했다.

 

《율리시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더블린 사람들》과 더불어 조이스의 더블린 3부작을 구성한다. 현대도시 더블린의 일상이 신화적 알레고리 및 상징과 자연스럽게 결합된 이 작품은 ‘진지한 신학’과 ‘놀이’가 공존하는 이중구조를 띤다.

 

예술론과 광고문구가, 현란한 언어유희와 시적 추상이, 유머와 절망이, 축제와 장례식이 하나로 어우러져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룬다. 이와 같은 서로 다른 색체의 조합은 조이스의 문학적 개성인 동시에, 아일랜드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아일랜드의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해 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또한 《율리시스》는 탁월한 언어적 감수성이 빛나는 언어유희의 전당이라 할 수 있다. 다층적 상징, 조어와 합성어가 절묘하게 구사되며, 온갖 문체실험이 이루어진다. 현학적 요설과 시적 순간이 탁월한 미학적 균형 감각을 통해 결합된다. 변화무쌍하면서도 통일성을 잃지 않는 견고한 문체미학은 창조적 요소와 파괴적 요소가 공존하는, 혼돈과 소용돌이로써의 세계를 그려내는 조이스 문학의 본질과 그 맥을 같이 한다.

 

‘공허하고 혼란스러운 현대사라는 광대한 공간에 교향악과 같은 질서와 의미, 형태를 부여하는 수단’으로서 조이스 문학이 이룬 위대한 성취인 《율리시스》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더불어 ‘진정한 20세기의 시작’이자 ‘위대한 문학 실험’으로 평가 받고 있다.

 

3) 제임스 조이스에 대한 평

   

예술가의 인생, 특히 조이스의 인생은, 나날의 사건이 그의 현재의 관심을 지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결국에 가서는 예술적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 보통사람의 인생과는 다르다.

  

제임스는 자신을 나쁘게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의 아이러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쁘게 말한 사람들은 용서를 받아야 할 것이다. 조이스만큼 천재로 인정받으면서도 그렇게 많은 불만과 비난을 불러일으킨 작가도 흔치 않다.  그는 그의 동포인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외설적이고 거의 미친 작가였다. <율리시스>의 판금을 가장 마지막에 푼 것도 이 민족이었다. 영국사람들에게 그는 괴짜이자 아일랜드적인 작가였다.

  

조이스는 시대의 변두리에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지만 의외로 그는 중심에 있었다. 그의 작품은 하찮은 서정시로 시작해서 방대한 백과사전으로 끝난다. 유아기에서 노년기, 탄생에서의 죽음, 문을 두드리는 젊은이들에서 문을 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풍경을 그는 관찰한다. 쾌활, 침울, 신뢰, 의심, 아내사랑, 여자혐오 등 그는 여러 가지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었다. 사실상 그는 너무나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의 대작가들과 무차별적으로 비교당해왔다.

  

조이스의 저작에서 첫째가는 결정적인 판결은 평범한 것의 정당화이다. 다른 작가들도 그것을 그리기 위해 무던히 애써왔다. 그러나 조이스가 그것을 쓰기 전까지는 아무도 평범한 것이 진정 무엇인지 몰랐다. 톨스토이의 작품에는 조이스의 평범함이 없다. 톨스토이의 인물들은 아무리 비천한 인물이라 해도 극적으로 살면서 서로 지혜를 나누기도 하고, 비극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찮은 도시인에게 영웅의 무게를 실어준 것은 조이스가 처음이었다. 그의 의도는 오랫동안 오해 받았다. 모두들 그가 풍자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층중산 계급에 대한 그 같은 열정적인 관심을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정당화할 수 있었겠는가?

  

 

<율리시스>  블룸은 여러가지 면에서 인상적인 인물은 못 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최선의 품성을 흠집없이 간직하고 이를 전달하도록 선택된 겸손한 인간이다. 조이스의 발견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평범한 것이 바로 비범한 것이라는 문맥 없이 드러냈다면 조이스도 당혹했을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조이스는 다른 작가들이 분리해서 생각했던 것을 결합해서 보아야 했다. 즉 인생이란 드러내기 어렵고 있는 그대로 들추어내야 한다는 견해와 인생이란 표현하기 어렵고 추출해야 한다는 견해를 결부해서 생각해야만 했다.

  

자연은 가공할 문서 또는 은밀한 계시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동물적 육체 속에 또는 정신과 지적 요소 속에 용해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이스는 이 대척지 사이에, 그리고 그것을 초월해 살았다. 그의 야수성은 놀랄만한 사고력을 보여주고, 그의 순수한 정신은 육체가 가차없이 정신에 달라붙는 것을 발견했다. 조이스의 작품을 읽어보면 판에 박은 구분의 단순성이 박탈된 현실을 볼 수 있다.

  

그의 예기치 않은 융합 중 하나가 미()와 추() 사이에서 일어난다. 더블린은 사랑스러운 곳이기도 하고 더러운 곳이기도 하다. 정신과 육체도 똑같다. 사람들은 이론상으로는 이 결합을 인정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분리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조이스는 다르다.

  

조이스는 독자가 찬미하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형제애의 사도로 생각하는 순간 그는 격렬하게 싸움질하는 형제를 보여준다. 그를 가정의 옹호자로 생각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중심인물을 오쟁이 진 남편으로 묘사한다. 우리가 그에게 고독한 인간의 찬미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면 그는 고독이 그를 침울하고 무방비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삶의 대변자를 구하면 그는 우리를 죽은 자에게로 인도한다. 양자를 융화하는 요소는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기지를 통해 작용하여 정신에 반대되는 양끝을 결합시킴으로써 겉보기에는 닮지 않은 것들을 갑자기 동종으로 만들어버린다.

  

조이스는 가시가 있는 작가였다. 주인공들은 모두 어딘지 토라져 있다. 어처구니없는 젊은이, 수동적인 어른, 술주정꾼 노인, 그들을 좋아하기는 힘들고 존경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조이스는 그러고 싶어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공감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존중하는 것을 박탈해버린 후에 공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우리는 자신의 허식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음으로써 그에게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조이스의 주인공을 좋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의 작품을 읽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우리를 정복하려고 하지 않으며, 우리가 자신을 정복해주기를 바란다.

  

조이스는 융에게 자신을 “낭비벽과 음주벽이 있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를 치켜세우기 좋아하는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인 루이 질레에게 그는나를 영웅으로 만들지 마세요. 나는 그저 중산계급의 인간일 뿐이오.”라고 말했다. 그는 웨이터, 재단사, 과일장수, 호텔의 짐꾼, 관리인, 은행원 등 거의 무명의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반면에 프루스는 후작이나 후작부인이 기질에 맞았던 것처럼, 조이스의 기질에는 이런 사람들이 불가결했다. 시간을 낭비한다고 충고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나는 한번도 따분한 사람을 만난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조이스 자신도 말했듯이, 세상은 그를 처음에는 악동, 마지막에는 괴짜노인으로 바라보았다. 돈에 대한 무관심, 알코올에 대한 관심, 위엄이나 기품이 결여된 그 밖의 행동 등 그에게는 비난 받아야 할 것이 많다. “누가 훌륭한 인간인가?”라고 조이스는 자못 예언적으로 말했다.

  

그의 주인공들이 고결함을 통해 점점 자신들의 불명예를 극복하는 것처럼, 이 고집 센 장인은 우아함을 잃지 않고 거처 왔던 방랑과 빚에 찌든 인생을,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면서 점차 극복해 나간다. 그의 작품에는 위대함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광채를 발하는 위대함이 아니라 대대로 언어나 행동의 표면에 도달하는 잠복해 있는 것의 위대함이다. 약점 때문에 가려졌지만, 그의 인생에서도 그와 같은 위대함을 감지할 수 있다. 편협하고 별나며 무책임하고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고 무정하고 당당한 것. 이것이 바로 조이스 다운 위대함이다.

 

2. 내가 저자라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생각을 따라잡기도 힘든데, 제임스 조이스는 이런 의식의 흐름을 소설의 한 방식으로 택하여 <율리시스>라는 12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몇 년 간에 걸쳐 완성시켰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실험적인 소설을 쓴 제임스 조이스의 역량은 천재적이라고 이미 소문이 나있지만, 문장 구석구석마다 단어 하나마다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그 배경을 찾아서 주석을 달아 준 <율리시스>의 번역자에게도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이 소설을 이루고 있는 근본 바탕은 ‘의식의 흐름’이다. 한 인물의 행동이나 대화 바로 뒤에 그의 독백이 이어진다. 이 독백은 스티븐 디댈로스의 경우에는 꽤 정신적이지만, 블룸의 경우에는 육감적이고 세속적이다. 이러한 문장법에 따라 어느 소설과 같은 외형 묘사가 아니라 내면묘사를 과감하게 많이 한 것이 <율리시스>의 특색이다.

 

또 이 소설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외설적인 소설이라 하여 판매금지 처분을 당하기도 했고, 조국인 아일랜드로부터 ‘포르노작가’라는 오명과 함께 외면당하기도 했다. 나는 2권 마지막 에피소드 18 페넬로페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그의 인생과 문학에 대한 사전 공부가 없었다면 나 또한 조이스를 포르노 작가로 오인할 뻔 했다. 책 읽기의 쉽지 않은 부분을 정통으로 만난 것 같았다.

 

<율리시스>를 읽으면서 눈이 꽂힌 곳은 감각적인 단어 선택과 탁월한 언어의 감수성이었다. 조이스의 풍부한 어휘력은 그의 손에 의해 수많은 아름다운 문장을 탄생시켰으니, <율리시스>를 두고 ‘언어유희의 전당’이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시간을 두고 전권을 통독하면서 말 놀이의 재미에 험뻑 젖어보고 싶다.

   

평생을 함께한 부인 노라는 남편 조이스를 두고 “나의 남편이 천재인가의 여부는 나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분과 비슷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자기만의 어휘를 창조하는 등 끊임없이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갇히지 않았던 조이스는 평범한 것을 참지 못한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그가 늘 마지막으로 깊이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뭔가, 다른 것과는 절대 비교되지 않는 광고. “지나가는 사람이 놀라서 결음을 멈출 정도의 참신한 포스터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모두 없애고 가장 단순하고 가장 효과적인 말로 요약하여 힐끗 보아도 한눈에 완전히 파악할 수 있어서 현대 생활의 속도에 알맞은 것.” 조이스는 자신의 글에 대해서도 절대 비교되지 않는 글을 쓰고 싶었을 게다. 그래서 그가 남긴 소설들은 신선하고 난해한 글로 정평이 나 있다.

 

지금의 명성에 비해 제임스조이스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고, 사랑하는 딸의 정신질환으로 그는 우울했고, 인세로 번 돈은 딸의 정신병 치료에 고스란히 쓰여졌다. 작품을 쓸 때는 누구보다도 긴장하여 썼겠지만 술을 좋아하여 마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가 술에 빠져드는 일이 너무 잦아지자 그의 아내는 두 번씩이나 그에게서 떠났지만, 그녀는 이 무력한 광인을 사랑했으므로 그때마다 다시 돌아왔다. 술로 인해 눈에 대한 수술을 여섯 번이나 했으며 한동안은 장님으로 살았다. 술이 아니면 미쳐서 살 수 없을 정도로 조이스의 주변 환경은 그를 압박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피 내림이라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일까?

  

의식의 흐름이란 생각의 연속을 말하는 것이다. 내 의식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생각이라는 것이 끝없이 확장되어 흘러 가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변화의 연속이다. 다음은 <율리시스>에피소드 4 칼립소’에 나오는 한 대목으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써 내려간 탁월한 문장이다.

 

“그 밝은 색 양복을 입고 갈 수도 없지. 소풍 가는 느낌이 된다. 그가 행복한 온기 속을 걸어가고 있을 때 그의 눈까풀은 몇 번이고 조용히 내려왔다. 볼랜드 가게의 빵 배달차는 그날그날의 빵을 쟁반에 담아 배달하지만 그녀는 전날 빵, 바삭바삭하는 껍질을 뜨겁게 구운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현재를 묘사하다 갑자기 자신의 상상 혹은 생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것을 씹으면 젊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동방 어딘가의 나라에서 아침 일찍, 날이 새자마자 출발해서 태양보다 앞서 여행하면 하루의 진행을 단축시킨다. 영원히 그것을 계속하면 이론적으로는 나이를 조금도 먹지 않는다. 해변 낯선 땅을 걸어 도시의 성문에 도착한다. 거기에 보초가 있다. 그 또한 나이든 졸병출신. 나이든 트위디와 똑같은 커다란 콧수염을 기른 사나이가 긴 창에 기대고 있다. 그곳의 차양을 친 도로를 걸어간다. 터번을 감은 얼굴이 지나간다. 어두운 동굴 같은 융단 가게들. 쾌걸 터코와 같은 사나이가 편히 앉아서 나선형으로 감은 물부리를 피우고 있다. 거리에는 상인들의 호객소리. 회향을 탄 물, 셔벗을 마신다. 온종일 헤매고 돌아다닌다. 도둑 한둘을 만날지도 모른다.

 

 빵 배달차를 본 그의 의식은 이렇게 동방의 먼 나라로 흘러간다. ‘터번을 두른 남자, 물부리 담배를 피우는 남자, 카펫가게, 이슬람사원’ 등으로 의식이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몰리의 새로 맞춘 보라색 가터벨트, 소녀의 현악기 연주소리’ 등을 생각하면서 현실로 돌아온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써 내려간 이 대목은 너무 감각적이고, 조이스의 상상력에 매혹된다.”

 

조이스는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를 남김없이 몽땅 불태웠다고 생각했을까 언어의 연금술사인 조이스도 생명의 스러짐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허약하고 류머티즘에 걸려있고 좌골 신경에 고통을 겪으면서 교회와 국가를 상대로 싸우고 사전들을 훼손시키면서 깡으로 악다구니로 버티어 온 그의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이스는 주인공 블룸을 통하여 자신의 소망을 이룬다.

 

“블룸은 하찮은 인간-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생활에도 실질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광고 외무원-이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신이란 우리가 말하는 그런 신이 아니라 조이스가 설정한 신, 즉 다른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관계맺기이며, 소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블룸의 신성한 부분이며 조이스가 인정한 인간성인 것이다. 조이스는 ‘블룸이 존경받아야 마땅하다’는 소망으로 평범한 것에 비범함을 불어넣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블룸에게 부여한다.

  

 호스곶은 조금 전에는 자수정 빛이 없다. 반사하는 유리. 무슨 무슨 이름인가의 그 현자가 유리로 불을 일으킨 방식과 같다. 야생화 언덕이 불탄다. 관광객의 성냥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바람 부는 쨍쨍한 날 마른가지들이 서로 마찰을 일으킨 탓이겠지. 그렇지 않았으면 금작화 곁에 버려진 깨진 병에 햇볕이 닿아 확대경과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 유레카! 나의 기억력도 그렇게 나쁘지 않군.”

 

조이스의 의식을 따라 잡기는 정말 힘들다. <율리시스>는 뚜렷한 줄거리 없이 혹은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여진 소설이다. 얼핏 생각하면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등장인물의 성격에 맞게끔 의식의 흐름을 정리한 것이다.

 

줄거리도 없고 관통하는 주제도 없는 소설이 소설이 될 수 있는가? 과연 조이스는 전혀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창작하여 선보였다. 무의식이나 정신분야의 내면세계를 의식의 흐름의 물결에 따라 그렸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장르를 개척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로 인하여 우리는 인간의 내면세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인간성의 탐구 방향을 외부에서 내부로 돌리게 된 것이다.

 

3.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에피소드 4 칼립소

 

100

블룸은 자기에게 과분할 정도로 아름다운 예술가 아내에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없다. 그 뒤로 오후에 보일런이 집으로 와서 아내와 밀회한다는 상상으로 그는 온종일 어디에 가든 고민에 싸인다.

 

=> 주인공의 처량한 신세가 가슴에 사무친다. 이게 도데체 말이 되는 소린가? 버젓이 알면서도 말도 못하고 아내를 딴 놈에게 내주고 전전긍긍 고민에 휩싸이는 우리의 주인공 블룸, 에라이 밥 팔아서 똥 사먹을 친구 같으니라구!

 

102

엷은 오줌 냄새가 그의 미각을 미묘하게 자극해 준다.

 

=> 양 콩팥을 안 먹어봐서 모르겠지만 별난 미식가란 생각이 든다.

 

103

고양이는 머리가 나쁘다고 모두들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고양이를 이해하는 것보다도 고양이가 우리 말을 더 잘 이해하는 법이다. 이 녀석은 자기가 이해하고 싶은 것은 모두 이해한다.

 

106

동방 어딘가의 나라에서 아침 일찍 날이 새자마자 출발해서 태양보다 앞서 여행하면 하루의 진행을 단축시킨다. 영원히 그것을 계속하면 이론적으로는 나이를 조금도 먹지 않는다.

 

온종일 헤매고 돌아다닌다. 도둑 한둘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것도 좋겠지. 걸어 다니다가 해가 진다. 기둥을 따라 이슬람 사원의 그림자. 감은 두루마리를 겨드랑에 낀 사제들. 나무들이 몸을 떨고 있다. 그것이 신호다. 신호, 저녁 바람이다. 나는 지나간다. 저물어가는 금빛 하늘. 한 어머니가 혼자 문간에서 바라보고 있다.

 

109

선술집을 한 번도 스치지 않고 더블린을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라고 하는 것은 큰 무리일 것이다. 선술집 없이는 해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 더블린에 가면 꼭 이 선술집 거리를 걸어봐야겠다. 통상 부둣가에 선술집들이 즐비한데 어떤 모습일지? 해는 지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질 무렵의 선창가 선술집의 풍경에 유혹당하지 않을 자는 드물 것이다.

 

113

거기는 가장 오랜, 최초의 인종을 낳은 곳이다. 캐시디 술집에서 허리 굽은 노파가 1/4파인트짜리 병의 목을 쥐고 걸어오고 있다. 가장 오래된 민족. 온 세계를 훨씬 멀리까지 헤매어 포로에서 포로로, 늘어나고, 죽고, 그리고 어디에서나 태어나면서. 그것은 조금도 거기에 누워 있다. 이제 그것은 낳을 수가 없다. 죽었다. 노파의. 흰털이 되어 시든 세계의 음부 황폐다

 

거실 창문에 더덕더덕 붙은 전단. 눈병 난 눈에 바른 고약 같다. 차의 부드러운 김과 냄비에서 끊는 버터의 냄새. 그녀의 풍만한, 침대에서 따뜻해진 육체 가까이 온 것이다. 그렇다, 그렇다.

 

117

그는 그녀의 풍만한 몸집을 느긋하게 내려다 본다. 나치트드레스 안에서 산양의 젖처럼 솟은 크고 부드러운 유방 사이를 바라보았다. 누웠던 여체의 온기가 공중으로 솟아, 그녀가 따른 홍차의 향기와 섞였다.

 

=> 마치 르느와르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다. 나른한 휴일 오전, 햇살과 뒤섞인 풍만한 여체가 눈에 잡힐 듯 펼쳐진다.

 

123

소녀의 달콤하고 가벼운 입술. 그 입술에도 일어나겠지. 그는 척추를 흐르는 구토 기운이 전신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간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다. 키스를 받는 입술, 키스하면서 키스를 받는다. 푹신하게 달라붙은 여자의 입술

 

126

보일런은 부유한가? 부자예요. ? 춤출 때 그사람 숨결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럼 잔소리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에피소드 13 나우시카

 

572

쌍둥이가 가지고 놀던 공이 블룸에게로 날아오자, 그는 그것을 다시 던져준다. 그것이 거티 옆에 떨어져 그녀와 블룸은 서로 시선을 나눈다. 거티의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움에 블룸은 매혹되고 결혼상대로는 중년 남자가 좋지 않을까 몽상하던 참인 거티도 블룸에게 마음이 끌린다.

 

무릎을 든 자세가 된 거티의 속옷이 블룸에게 보이고, 블룸은 자극을 받아 자위행위를 한다. 의식적으로 노출한 거티도 이를 알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까이 다가서거나 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는 불꽃과 자위가 비슷하게 묘사된다.

 

573

나우시카와 오디세우스가 서로 사랑을 느끼면서도 맺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블룸과 거티의 접촉 없이도 사랑을 나눈 방법을 반영한다.

 

578

밀랍처럼 창백한 그녀의 얼굴은 상아처럼 순수하고 어떤 영적인 기품까지 느껴지게 하는 데 비해, 장미꽃 봉오리를 연상시키는 입술은 고대 그리스적인 완벽함을 지닌 큐피드의 활과 같았다. 정맥이 투명하게 비치는 그년의 손은 설화석고처럼 희고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에 이따금 떠오르는 어떤 의미를 숨긴 듯한 긴장된 표정, 그리고 그러한 표정이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 부여하는 어떤 낯선 갈망의 빛깔, 저항하기 힘든 그 신비로운 매력은 아마도 그녀가 그 동안 경험할 수도 있었을 사랑에 대한 동경이 그 원인인지도 몰랐다.

 

583

그는 아직 어려서 이해하지 못한다. 여성의 타고난 권리인 사랑을 그는 믿지 않는다.

그녀가 그리는 이상적인 사랑은 그녀의 발아래 진기하고 불가사의한 애정을 바치는 왕자의 매력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강하고, 과묵한 얼굴의 이제까지 이상적인 여성을 만난 일이 없는 아마도 머리에는 약간 백발이 섞인 남자다운 남자다. 힘에 자신을 가지고 비가 오건 바람이 불건 상관하지 않고 두 눈을 번쩍번쩍 타오르는 듯하며 암소들과 양 떼에게 혹은 들의 사슴에게 덮쳐 드는 것과도 같았다.

 

584

왜 인간은 제비꽃이나 장미꽃 같은 시적인 것을 먹을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589

저편에서 보고 있는 신사의 주의를 끌기 위해 일부러 한 일이었다. 그녀는 따뜻한 홍조가 거티 맥도웰, 그녀에게는 늘 위험한 신호인 그 붉은빛이 자신의 뺨으로 올라와 후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 때까지는 무심히 스쳐 지나듯 신사와 시선을 마주친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번엔 모자 챙 아래로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황혼 속에, 그녀가 바라본 그 신사의 얼굴은 창백하고 묘하게 굳어져 있어, 그녀가 이제까지 본 얼굴 가운데 가장 슬프게 보이는 듯했다.

 

590

호스곶의 베일리 등대엔 불이 켜진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교회의 노랫소리, 그리고 교회에서 태우는 향냄새, 이 모든 것이 처량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응시하는 동안, 그녀의 가슴은 두근두근 고통치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 신사가 보고 있는 것은 그녀였고 그의 시선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다. 마치 그녀의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그녀의 영혼 자체를 읽어내기라도 할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의미심장한 놀랄 만한 눈이었다.

 

592

그가 자신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그의 지난 사랑의 기억들, 추억들조차 모두 용서할 것이며 그 사람 역시 그 모두를 잊게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참다운 사내로서,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포근히 껴안으리라, 사랑해주리라, 그만의 소녀, 오직 하나뿐인 그만의 그녀를.

 

593

그 바람에 신사는 그녀의 스커트 끝과 속치마 자락이 한껏 말려 올라가면서 드러나는 그녀의 날씬한 정강이를 볼 수 있었다. 그녀가 키를 더 커 보이게 하려고 신은 프랑스제 굽 높은 구두가 무엇에라도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더욱 볼만할 것이다. , 생각만 해도! 그런 신사에게 이는 얼마나 매력적인 노출이겠는가.

 

593

그녀는 어떤 감동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근처의 느낌과 코르셋이 닿는 곳의 초조한 느낌으로 그것(생리)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가장 최근에 그것이 있었던 날은 초승달이 뜨던 그래서 머리를 잘랐던 그날인데 그때의 느낌을 잘 기억해두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또다시 그의 검은 눈은 마치 그녀의 윤곽 전체를 빨아들일 것처럼, 여신의 신전에서 경배하는 사람처럼,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남자의 정열적인 응시에 거짓 없는 숭배의 마음이 드러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 이 남자의 얼굴에서 그것을 볼 수 있으리라. 그것은 너 때문이다, 거트루드 맥도웰이여, 그리고 너는 그것을 알고 있다.

 

602

그때 하늘로 치솟은 폭죽이 펑 하고 터지며 사방을 눈부시게 비췄고, ! 하는 탄성, 이어서 원통형 꽃불이 터지고, 다시 오!, 모두가 오! ! 하고 기쁨에 차 소리치고, 그때 금빛 빛 줄기가 하늘로 소나기처럼 쏟아진, ! 그것은 황금빛에 녹색 빛이 도는 이슬 젖은 별들이어라, 오 너무도 생생한 오 너무나 부드럽고, 달콤하게, 오 너무나 부드럽게!

 

626

! 그 아가씨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나도 이제 그리 젊지가 않아. 그녀는 내일 여기에 올까? 그녀를 위해 어딘가에서 언제까지고 기다리는 거다. 반드시 또 한 번 올 것이다. 살인범이 그렇다. 나는?

627

우연이야, 이제 다시는 만날 일 없겠지. 하지만 정말 좋았어. 안녕, 소녀여. 고마워. 다시 젊어진 기분을 느끼게 해줘서..

 

에피소드 18 페넬로페

 

1218

그저께도 내가 신문에 난 디그넘의 사망 광고를 그이에게 보이려고 무심코 응접실에 들어갔을 때 그이는 편진지 몬지를 갈겨쓰고 있더니만 압지(押紙)로 얼른 그것을 가리고 마치 사업에 관한 일이라도 생각하는 척 하듯이 보였다니까 필경 그건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였을 거야 그이의 나이쯤 되면 특히 마흔 살쯤 되면 사내들이란 저렇게 모두들 날뛰기 때문에 계집은 저이야말로 정말 멍청이 같은 사내라고 생각하고 되 수만 있다면 그에게서 많은 돈을 핥아 내려고 하는 거지 나이 먹고 건들거리는 바보보다 더한 자는 없어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내 엉덩이에 키스를 하는 것을 감추려고 하는 짓이지 나는 그이가 누구하고 관계하든 또는 그전에 누구와 잤든 이제 조금도 개의치 않지만 저 개망나니 계집애 메리와의 경우처럼 저물도록 둘이서 내 코 끝에 달라 붙어 있지 않게 하려면 정말이지 정신차려 살펴봐야 해

 

1220

어떤 점에서는 그이도 기분전환을 해야만 해 언제나 똑같은 헐어빠진 모자를 쓰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하기야 어떤 잘생긴 소년에게 내가 돈을 주고 그렇게 해달라고 시킨다면 몰라도 왜냐하면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까 젊은 소년은 날 참 좋아할 거야 혹시 우리가 단둘이 있게 되면 그를 가슴이 두근두근 뛰게 만들어 주어야지 내 새 양말대님 있는 데까지 보여 주어 그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게 해줘야지 빤히 쳐다보며 유혹하는 거야 뺨에는 뽀얀 털이 나가지고 언제나 그 물건을 꺼내 장난질만 한고 있는 저런 소년들은 어떤 기분을 내는지 나는 알고 있어 물어 보던지 대답을 하는 거야 당신은 이렇게 저렇게 그 밖에 달리 하고 싶지 않으세요 석탄 장수하고도 그래요 주교님하고 정말이지 하고 싶고 말고 왜냐하면 언젠가 내가 유태인 사원 마당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을 때 내 곁에 앉아 있던 어떤 수석 사제인지 주교인지에 관해서 그이에게 이야기했기 때문이지 그이는 더블린에 처음 온 낯선 사람 같았어 여기는 어떤 곳이었지요 라는 등 기념비와 여러 가지 조각들에 관한 이야기로 그이는 나를 귀찮게 했었지 그이를 몹시 심하게 추어주며 마음대로 내버려두자 자 당신 마음속에 있는 분은 누구지요 말해 보오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 거요 누군지 그의 이름을 말해 보구려 독일황제쯤 됩니까 자 내가 바로 그분이라 상상하고 그분에 관해 생각해 보구려 하고 말했지 하지만 그이는 나를 매음녀 취급을 하려고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그이 정도의 나이라면 그 따위 짓은 안 하는 게 나아 어떤 여자고 단지 파멸로 이끌 뿐이니까 거기엔 만족이 있을 리 만무해 그이는 끝마칠 때 까지 아주 흡족한 체했었지 그리고 나 자신도 여하튼 일을 치르고 말았어 그러자 그이는 입술까지 새파래지고 마는 거야 하여간 하 번으로 이제 일단락 지어진 거지 세상 사람들이 그 짓에 대해서 뭐라 하든 우선 중요한 것은 처음뿐이고 지나고 나면 전혀 아무 것도 아닌 양 그 따위는 더 이상 생각지도 않지 결혼하지 않고는 왜 남자에게 먼저 키스할 수 없담 때때로 온몸이 타는 듯 하거든 기분이 좋아질 때는 미친 듯이 참을 수가 없어 어떤 남자든지 내 곁에 있어서 나를 양팔로 끌어안고 키스해 주었으면 좋겠어 길고 열렬한 키스에 비할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그것을 영혼까지 거의 마비시킬 지경이지

 

1228

남자란 계집과 관계가 있는 일이라면 자기들이 좋아하는 짓은 무슨 일이라도 어디든지 쫓아가지 하지만 따지고 물어서는 절대로 안 돼 그렇지만 그들은 우리들이 어디에 가 있는지 어디에 가는 것인지를 알고 싶어하지 나는 그이가 내 뒤에서 살금살금 뒤쫓아 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 눈을 내 목에다 바싹 붙인 채 말이야 그이는 우리 집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지 몹시 마음이 타는 듯 했어 그래서 나는 반쯤 몸을 돌이키며 발걸음을 멈추었지 그러자 나더러 그러세요 하고 말하도록 나를 못살게 굴었어 드디어 내가 그이를 천천히 살펴보면서 장갑을 벗었지 그이는 나의 널따란 소맷부리가 미오는 날에는 너무 춥겠다고 말했어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손을 내 몸 가까이 가져오려는 구실로서 말이에요 그 동안 노상 속옷 속옷 타령이었지 마침내 나는 그이가 조끼 호주머니에다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내 인형에서 그걸 벗겨다 준다고 약속했지 오 성스러운 마리아여 그이는 몸집이 커다란 바보가 빗속을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어 나는 그이의 멋진 치열을 보자 다시 보고 싶어 정말 견딜 수가 없었어 그리고 아무도 보는 이가 없으니 내가 입고 있던 행살 형의 주름 잡힌 오렌지색 속치마를 걷어 올리도록 애원했던 거야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흙탕 속에 무릎을 꿇겠다고 했지 또 정말로 끈기가 대단했어요

 

1246

그 간호원이 뒤쫓아 다니던 홀레스가의 저 의학생 내가 외출하는 것을 알료 주려고 창가에서 모자를 썼다 장갑을 꼈다 해도 내가 뜻하는 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니 말이야 커다란 포스터에다 인쇄를 해서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으니 더욱이 왼손을 두 번이나 흔들었어도 모르는 걸 뭐 내가 웨스틀랜드 로우 성당 바깥에서 그에게 윙크를 했을 때에도 말이야 그네들의 위대한 지혜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 그들은 회백질을 꼬리에다 두고 다니는지 만일 그대가 내게 물으면 말씀이야 시티 암즈 호텔에 유숙하고 있던 저 시골뜨기 목축업자들의 지혜 그들은 자신들이 고기를 팔고 있는 소들의 그것보다 경치게도 못한 걸 가졌어

 

1252

저 늙은 주교는 꽤 기다란 설교를 재단에서 했었어 여인의 보다 높은 임무에 관해서 최근 자전거를 타거나 뾰족한 삼각모를 쓰고 다니는 소녀들 그리고 새로운 여성 블루머즈에 관해서 말씀이야 하느님 저이에게 지각(知覺)을 긜고 저에게 더 많은 돈을 주옵소서

 

1259

지금은 밀리도 없잖아 사진술을 배우게 하려고 계집애를 그런 곳으로 보내다니 그이의 생각은 정말 주부 때문이지 그 대신 스케리 학원에나 보내는 게 나아 그러면 거기서 그 애는 나와 달라서 학교에서 뭐든지 일등으로 배우게 될 텐데 단지 그이는 나와 보이런 때문에 그와 같은 짓을 언제나 했을 거야 바로 그 때문이야 확실히 그런 것이 그이가 만사를 음모하고 계획하는 식이라니까 요사이 그 애가 있었다면 나는 이것에서 아무런 짓도 할 수 없었을 거야 우선 문에 빗장을 지르지 않는 한 나는 불안하게 했지 먼저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오다니 내가 문에다 의자를 버텨 놓고 장갑을 끼고 거기를 씻고 있을 때 말이야 정말 신경질 나게 하거든 그렇잖으면 하루 종일 로봇처럼 그 애를 유리 케이스 속에 넣어 언제나 둘이서 바라보고 있는 게 좋을 거야

 

1261

나중에 혼자 생각한 일이지만 남자가 여자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데도 그의 생( )을 포기할 지경이면 그것은 진실한 사랑임에 틀림없어 그런 남자란 요즘엔 드물 거야 그리고 그런 일은 좀처럼 믿기 어려워 만일 그것이 정령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닌 한

 

1269

그이는 또 태어날 때부터 거짓말쟁이야 아니 남의 기혼녀에게 손을 내밀 정도의 용기를 결 코 가지고 있지는 않을 거야 그것이 그이가 나와 보일런을 원하는 이유지

 

1274

저따위 남자와 자는 것보다는 뭐랄까 사자와 같이 자는 것이 좋을 거야 정말이지 분명히 그이도 자신을 위해 좀더 약은 행동을 할 수 있으련만 나이 먹은 사자라면 말씀이야 오 하지만 상상컨대 그것은 내 짧은 페티코트 속에 감춰져 있던 유방이 그토록 통통하고 매혹적이었지 때문일 거야 그이는 억제할 수가 없었지 나 자신도 때때로 흥분하는 걸 뭐 남자들이 여자의 몸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향락을 끌어내는 것은 좋아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둥글고 하얗게 보이거든 나 자신도 남자가 한번 돼봤으면 하고 언젠가 바랐지 기분전환으로 말이야 남자들이 부풀게 하여 여자들에게 달려드는 그와 같은 것을 가지고 잠깐 시험해 봤으면 그렇게도 단단하고 동시에 그렇게도 부드러운 것으로 말이야

 

1283

그렇지 내가 저 안달루시아 소녀들이 항상 그러하듯 머리에다 장미를 꽂았을 때 혹은 난 붉은 걸로 달까 봐 그렇지 그리고 그이는 내게 무어의 성벽 밑에서 어떻게 키스했던가 그리고 나는 그이를 당연 다른 사람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했지 그런 다음 나는 그이에게로 눈으로 요구했지 다시 한 번 내게 요구하도록 말이야 그래 그러자 그이는 내게 요구 했어 내가 그러세요 라고 말하겠는가고 그래요 나의 야산의 꽃이여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나의 팔로 그이의 몸을 감았지 그렇지 그리고 그이를 나에게 끌어당겼어 그이가 온갖 향내를 풍기는 나의 앞가슴을 감촉할 수 있도록 그래 그러자 그이의 심장이 미칠 듯이 팔딱거렸어 그리하여 그렇지 아는 그러세요 하고 말했어 그렇게 하겠어요 네.

 

조이스의 삶

언어감각이 뛰어난 작가로 세계문학의 판도를 바꿔놓은 제임스조이스는 1882 2 2,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존 조이스와 메리마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이스는 더블린시에서 가까운 클론고우스 우드 칼리지 초등학교과정을 거쳤으며, 이어 더블린의 벨베디어 칼리지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더블린 로열유니버시티를 졸업했다. 이들 학교는 모두 가톨릭 예수회 계열이었다.

 

학교 측은 학업성적이 우수한 조이스가 졸업 뒤에도 그곳에 남아 주길 바랐고, 그의 어머니 또한 그러기를 원했다. 이는 대학교수가 되는 동시에 가톨릭에 평생 바침을 뜻했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엔 종교규율을 온전히 지키도록 노력하며 나날을 경건하게 보낸 모범생 이었다. 그러다 열여섯 낫부터는 그런 삶에 점점 회의를 느꼈다.

  

19세기 첫 무렵 더블린에서는 예이츠와 그레고리여사, 러셀, 싱이 중심이 되어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을 활발하게 일으키고 있었다조이스는 직간접으로 이 문학운동의 영향을 받게 된다. 또 친구들이 추구했던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정치운동의 입김도 어느 정도 그에게 미쳤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것은 19세기 끝 무렵 유럽문학에 나타난 자유사상이었다. 조이스는 <인형의 집>, <브랜드>, <헤더 가브렐> 등을 쓴 입센에 심취하여 그의 작품을 원어로 읽기 위해 노르웨이어를 공부했을 정도였다. 또한 독일의 하우프트만도 마음속 깊이 존경했다.

  

해방사상을 품은 이들 극작가에게 조이스가 감동한 까닭은 무엇일까? 영국이나 프랑스에 뒤진 낡은 전통에 묶여 고민하는 아일랜드 청년에게 그들이 호소력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나 독일은 상대적으로 아일랜드와 상황이 비슷했다.

  한편 조이스가 가톨릭도 민족해방운동도 따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아해방을 바랐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을 즐겨 읽은 그는 가톨릭을 이론상으로는 부정을 할 수 없었으나 그 신앙은 포기했다. 이것은 <율리시스>를 관통하는 사상적인 주제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사람은 ‘타고 갈 전차를 착각하는 바람에 북쪽으로 가버린 스위스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을 처음 주장한 것은 조이스와 같은 세대의 에스파냐 사람, 살바도르 데 마다리아가이로호이다. 웬지 농담 같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을 포함한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외교관, 역사가, 망명자 등 여러 처지에서 유럽과 미국의 문화 풍토를 세심하게 접한 그의 말이므로 그 속에는 귀중한 직접체험이나 연구성과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다.

 

살바도르 데 마다리아가이로호의 지적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일랜드 사람과 에스파냐 사람의 기본적인 공통점이다. 그것은 ‘부조리와 친근감’이다. 문학 세계에서 이 감각의 대표자는 에스파냐에서는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 아일랜드에서는 <걸리버 여행기>의 스위프트, <피네건의 밤샘>의 조이스, <고도를 기다리며>의 베케트일 것이다. 오스카와일드나 버나드 쇼를 비롯해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는 대부분 사람의 허를 찌르는데 명수였다. 와일드의 경구 ‘자연은 예술을 모방한다’도 그 하나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들은 부조리나 역설을 이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살바도르 데 마다리아가이로호의 견해에 따르면 그 부리에는 라틴적인 개인 중심주의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앵글로 색슨적인 사회의식이나 객관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에스파냐 사람이나 아일랜드 사람도 자신의 마음 바깥에 있는 사회나 현실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과 충돌이 생겼을 때 틀린 것은 자신이 아니라 바깥세계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대항하는 데 논리하든가 정공법, 상식 등 평범하고 진부한 것이 도움이 될 리 없다. 그러므로 아이리시 불(Irish bull)은 제멋대로 행동을 무기로, 끊임없이 신출귀몰한 게릴라전을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예수회학교에 갔던 만큼 숭배하는 인간상은 처음부터 가톨릭 성자와 독립운동 투사였다. 성실한 그는 그쪽으로 조금이라도 다가가려고 마치 장난감 군대처럼 우스꽝스러운 노력을 한다. 그러나 청년시절에 종교나 정치에 대한 회의가 싹트고 단념이나 타협을 할 수 없는 기질인 만큼 누구와도 충돌을 일삼았다.

 

조이스의 일생과 문학세계

스무살에 가까워 질 무렵 조이스의 포부는 문학청년이라기 보다 오히려 혁명가나 성자에 가까웠다. 좋든 나쁘든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란 그로서는 자신의 사명에 대한 순교 말고는 인간이 목표로 할 가치가 없다고 믿었으리라. 그는 문학에 대해서도 고집불통이었다. 예를 들면 유행하는 아이리시 르네상스(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에도 따르지 않았다.

 

조이스는 스물두세 살이 되었을 무렵 싱이나 예이츠, 러셀의 모임에 참여했다. 그러나 민족주의 문학운동에는 따르지 않고 보다 더 자유롭게 국제적인 시각에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미 열일곱 살 때 입센에 대한 에세이를 <포트나이틀리 리뷰>에 발표하고, 예이츠 등이 이들 대륙 작가의 희곡을 애비극장에서 상연하지 않는다고 공격한 조이스이다. 그런 뜻에서 애당초 그는 민족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단지 아일랜드 작가로 머물 인물이 아니었다. 어학에 뛰어난 조이스는 뒷날 트리에스테로 옮기고 나서 싱의 <바다로 나가는 사람>, 예이츠의 <캐슬린 백작부인>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고 하우프트만의 <해 뜨기 전에>를 영역했다. 조이스는 가톨릭 신학의 큰 흐름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즐겨 읽었을 뿐만 아니라 단테,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등 유럽고전문학을 섭렵했다. 또 플로베르의 여러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02년 조이스는 파리로 갔다. 파리는 해방적인 분위기를 그리워해 이곳 저곳에서 망명자나 예술청년이 모여든 곳이었다. 조이스는 그 뒤 아일랜드에는 잠시 머물렀을 뿐 계속 외국에서만 살았다.

  

조이스와 아일랜드의 관계에 대해서 가장 시사가 많은 작품은 <더블린 사람들> 연작 마지막 단편인 ‘죽은 사람들’일 것이다. 거기에는 도회지와 대륙에 물든 더불린 사람이 등장하는데 게일 문화의 고향인 서부의 매력을 비로소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것은 조이스 자신의 체험이라 생각해도 좋으리라. 세 번째 파리에 갔을 때, 그는 일부러 서부 끝 항구도시 골웨이 출신 시골처녀(노라)를 데리고 떠났다. 반대행동이라 할 만하지만, 왼쪽으로 가려고 오른쪽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한편 조이스는 파리에서 성악가로 자립할 생각도 했다. 성량 풍부한 테너 목소리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그는 더블린에 있었을 때도 테너로서 여러 차례 경연에 나간 경험이 있었다.

 

1904년 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파리에서 돌아와 잠깐 더블린에 머물렀다. 그동안에 <더블린 사람들>에 수록된 여러 단편을 지역 신문과 잡지에 투고했다. 또 대학시절부터 이 시기에 걸쳐서 시도 썼다. ‘노라 바너클’과 결혼하여 대륙으로 돌아간 것도 이때이다. 이 무렵 생활이 궁핍하여 그는 오스트리아령 트리에스테에 살며 상업학교 영어교사로 살림을 꾸려갔다.

1907년 시집 <실내악>을 출판했다.

1909년 더불린으로 돌아가서 그곳 최초의 영화관 ‘볼터’를 경영했으나 곧 실패했고, 신문발간도 계획했으나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는 다시 트리에스테로 돌아갔다.

 

1904년 무렵에 쓴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은 오랫동안 더블린과 런던 출판사에서 출간 이야기가 오갔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책 속의 상점이나 인물이 더블린에 실제로 있어서 여러 가지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영국 왕실에 대해 너무도 무례하게 썼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조이스는 이것을 절대로 고치지 않았다. <더블린 사람들.에 나오는 인물들이 <율리시스>에도 그대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조이스의 성격이 여간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한지 10년 만인 1914년에 런던의 그랜드 리처즈를 통해 발간되었다.

이 책이 출판된 무렵, 그가 <더블린 사람들>에 이어서 10년에 걸쳐 집필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에즈라 파운드가 편집장으로 있던 영국 잡지 <에고이스트>에 연재되었다. 그리고 1916년에 뉴욕의 ‘휴 부시’서점에서 출판되었다.

 

1914년에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 대문에 트리에스테에 더 머물 수 없게 되자 조이스는 스위스 취리히로 거처를 옮겼다. 거기서 영국인들과 연극 활동을 하며 희곡 <망명자들>을 쓰는 동시에 <율리시스>집필을 시작했다. 그 일부분이 마가렛 앤더슨이 편집한 미국 문예잡지 <리틀 리뷰> 1918 3월부터 1920 8월까지 발표되었는데, 에피소드 13이 풍속을 헤친다고 고소되어 앤더슨은 벌금형을 받았다.

 

1919년 전쟁이 끝나자 조이스는 파리에 살면서 거기에 모인 영미계 문인들과 사귀며 중심인물이 되었다. 1922년 실비아 비치라는 여성이 경영하는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율리시스>가 출판되었다. 초판 1000부 가운데 미국으로 보낸 것은 대부분 불태워지고 영국에 보낸 것도 세관에 몰수되었다.

 

1923년 조이스는 <율리시스>에 이은 야심작 <진행 중인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1939년 단행본 <피네건의 밤샘>으로 출판될 때까지 여러 잡지에 부분적으로 실렸는데, 무의식을 끌어들인 방식 때문에 극단적인 호평과 악평 사이에 놓였다.

  

미국에서 <율리시스>는 오랫동안 관세법에 따라 외설문서로서 수입 금지 도서였다. 그러나 1933년 울지 판사가, 이 책은 외설문서가 아니라 ‘새로운 문학분야에서 이루어진 진지한 실험’이라는 판정을 내려 수입금지가 해제되고 그 해에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조이스는 제 1차 세계대전 뒤 파리에서 머물렀는데, <율리시스>를 쓰는 동안 홍채염에 걸려 점차 집필이 힘들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다시 스위스 취리히로 옮겼다. 이 때에도 그의 생활은 아직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스위스 입국 무렵 미국문학가들이 힘을 모아 그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조이스는 1941 1 13일 영원으로의 길을 떠난다. 1 10일 극심한 복통에 시달렸고, 다음 날 아침 적십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십이지장궤양천공(십이지장에 구멍이 난 것)으로 진단 받고 수술하여 회복되는 것 같이 보였으나 13일 오전에 숨졌다. 그는 취리히의 플룬테른 묘지에 묻혔다.

 

<율리스시> <피네건의 밤샘> 같은 작품이 20세기 전반의 가장 큰 문학적 실험이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있을까. 특히 <율리시스>의 일부가 잡지에 발표된 시점부터 유럽문학의 개념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이다. 처음에 발레리 라르보를 비롯한 프랑스 문인들이 이 작품을 논했고, 이어 영국과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율리시스>를 참다운 20세기 문학이 시작되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실제로 20세기 소설 작법은 이 작품이 나온 뒤부터 변해갔다. 버지니아 울프, 그레이엄 그린, 월리엄 포크너, 도스 패소스, 노넘 메일러 등 수많은 작가에게 조이스가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

 

1220

<율리시스>의 배경과 그 이야기 

조이스는 <오디세이아>의 애독자였다. 1차 세계대전 무렵 스위스에 머물면서 <율리시스>를 집필하던 그는 친구 버젠에게 오디세우스의 다면적인 성격이 이 고전의 재미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괴테도, 세익스피어도 단테도 발자크도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 같은 다면적 인격의 인간을 그린 적이 없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와 전쟁에 나가는 게 싫어 미친 척했지. 그는 평화주의자였어. 그러나 거짓말이 들통 나 전쟁에 참가하자 철저한 항전주의자가 되었네. 그는 전황이 불리할 때도 전군을 고취시켜 승리의 희망을 불어넣었으며, 커다란 목마를 만들고 그 안에 숨어서 트로이 성을 함락시켰네. 그는 술이나 씨름, 경주 따위의 무예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연합군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인정받았지. 목마라는 새로운 병기를 만든 점에서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처음으로 탱크와 같은 것을 이미 고대에 만든 무기 제작자이기도 하네.

 

또한 그는 키르케의 애인이었고, 그 다음에는 칼립소의 연인이었으므로 곧 연애의 순례자였지. 그 동안에도 줄곧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를 만나길 바랐으므로 충실한 남편이자 아버지이기도 했고, 그는 문학에 그려진 최초의 신사이기도 했어, 스케리아 섬에 표착했을 때는 알몸이었으나 왕녀 나우시카에게 가까이 갈 때는 나뭇가지로라도 몸의 일부를 가리지 않았는가. 이런 다면적인 인간을 그린 사람이 호메로스 이후에 도 누가 있는가.

이렇게 인간의 모든 성격을 갖춘 오디세우스를 현대인으로 재창조하는데 조이스는 블룸이라는 인물을 설정한 것이다.

 

 

IP *.196.54.42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