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희동이
  • 조회 수 1832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7월 21일 11시 53분 등록

<율리시스>

2014.07.15 이동희

 

1. 저자에 대하여 :  제임스 조이스 (1882 – 1941)

 

더블린 출생. 20세기 문학에 커다란 변혁을 초래한 세계적인 작가이다. 예수회 계통의 학교에서 교육받고 유니버시티 칼리지를 졸업하였다. 그리스·라틴·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 각국어에 통달하였고, 일찍부터 입센, 셰익스피어, 단테, 엘리자베스왕조 시인, 플로베르 등의 작품을 탐독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 T.아퀴나스, 비코 등의 철학을 흡수하였다.

 

아일랜드의 문예부흥 기운에 반발하여 학교 졸업과 동시에 파리로 갔으며, 1904년 벌리츠학원의 영어교사로 러시아의 폴라,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 등지에서 살았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취리히로 피난, 1920년부터 파리로 옮겨 새로운 문학의 핵심적 존재가 되어, 주변에 각국의 시인 작가들이 모여들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침입을 받자 다시 취리히로 가던 도중 병으로 죽었다.

 

그는 고향 더블린을 버리고 37년간이나 망명인으로서 국외를 방랑하였다. 빈곤과 고독 속에서 눈병에 시달리면서, 전인미답의 문학작품을 계속 집필하였는데, 작품의 대부분이 아일랜드 ·더블린 ·더블린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젊었을 때 한때 신문발행과 영화관 경영을 계획한 적도 있었지만 둘 다 성공하지 못하였다.

 

1907년 고전적 아취를 지닌 연애시를 모은 시집 《실내악 Chamber Music》을 발표하고, 1914년에는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 Dubliners》을 출간하였다. 그 대부분은 이미 1905년경 이전 탈고로 발표된 것도 몇 가지 있었다. 그 후 1914∼1916년에 《에고이스트》지()에 연재된 자서전적 요소가 많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1917)의식의 흐름을 따른 청신한 심리묘사로 크게 주목받았다.

 

이어 3막의 희곡 《유인(流人)(1918)을 간행하는 한편, 1918년부터 《율리시스 Ulysses(1922) 일부를 미국의 잡지 《리틀리뷰》에 발표하여 풍기상 유해하다는 이유로 고소당하기도 하였으나, 조이스라는 이색작가의 존재를 널리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1922년 파리에서 대본업을 하던 미국인 여성 실비아 비치의 희생적 노력으로 《율리시스》가 간행되자,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의 작품에 대한 비평은 훼예포폄(毁譽褒貶)이 엇갈렸으나, 출중한 문학적 재능에는 한결같이 경탄을 금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은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되었고 연구 해설서도 잇달아 출간되었다.

 

마지막 작품 《피네간의 경야 Finnegan’s Wake(1939)는 진일보한 실험적 작품으로서 《율리시스》에서 사용된의식의 흐름의 수법이 종횡으로 구사되었다. 오늘날의 소설은 매스컴에 용해되어 있으나, 조이스는 그것을 거부할 수 있었던 최후의 예술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시인적 작가였다.

(두산 백과 인용)

 

작가 연보 (동서문화사 율리시스 인용)

연도

주요 사항

1882

2 2, 제임스 어거스틴 조이스 (James Augustine Joyce), 더블린 교외 남쪽 래스가에 있는 브라이튼 서부 스퀘어 41번지에서 태어남. 아버지 존 스태니슬로스 조이스 (1849 ~ 1931)는 코크에서 태어나, 퀸스 칼리지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더블린으로 와 시의 세무 공무원이 됨. 1880년 메리 머리 (1859 ~ 1903)와 결혼. 제임스는 10형제 (4 6)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남. 1884 12월에 태어난 차남 존 스태니슬로스와는 평생을 솀과 숀 (<피네건의 밤샘> 쌍둥이)을 떠올리는 미묘한 관계를 유지함.

* 원덤 루이스, 버지니아 울프, 스트라빈스키 탄생. 5월 더블린 피닉스 공원 영국 고관 암살사건.

1888 (6)

9 1, 예수회 부설 기숙학교 클론고우스 우드 칼리지 입학. 교장은 콘미 신부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에 등장). 여섯 살 반의 최연소 학생으로 별명은 여섯 시 반’. 재학시절 운동을 좋아하는 뛰어난 학생이었음

1891 (9)

견진 성사를 받고 알로이시오 (Aloysius)라는 이름을 선택함. 6월 자퇴 (세무조직 개편으로 아버지가 실직했기 때문). 파넬이 죽자, 그를 배반할 힐리를 탄핵하는 풍자시 <힐리, 너마저! (Et Tu Healy!)>를 씀. 열렬한 파넬 신봉자인 아버지는 이것을 인쇄해 친구에게 보내는데, 현재 남아 있지 않음.

*오셰이 부인과의 스캔들 (1889)을 계기로 실각한 파넬, 10 6일 브라이튼에서 객사. 예이츠, 런던에 아일랜드 문예협회설립

1893(11)

4 6, 콘미 신부의 노력으로 더블린 예수회 벨베디어 칼리지에 3학년으로 입학. 라틴어, 프랑스어 외 선택 외국어로 이탈리어를 배움.

*더글라스 하이드, 게일어동맹 창설

1894 (12)

이해부터 필수 교재가 된 찰스 램의 <율리시스의 모험>을 애독하고, ‘내가 좋아하는 영웅이라는 제목으로 율리시스에 관한 글을 지음. 또한 1992년 큰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율리시스> 최고의 입문서로서 이 책을 추천함

1896 (14)

처음으로 사창가를 감. 신앙의 동요와 함께 예술에 대한 마음이 깊어짐. 이 무렵 예이츠의 영향이 짙은 <정조 (Moods)>란 시를 쓰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음.

1898 (16)

9월 유니버시티 칼리지 입학. 존 프랜시스 반 (<젊은 예술가의 초상> 크랜리)과 가장 친해짐. 입센에 심취

1899 (17)

예이츠의 <캐슬린 백작부인>을 반아일랜드적이라고 비난하는 학생들의 서명운동에 조이스는 분명하게 반대함

* 더블린에 예이츠를 중심으로 한 아일랜드 문예극장설립. 아서 그리피스 신페인운동 벌임.

1900 (18)

1 20. 학교 내 문학 역사 협회에서 연극과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강연. 4 1, <우리들 죽은 자가 눈을 뜰 때>에 대해 논한 에세이 <입센의 신극 (Ibsen’s New Drama)> <포트나이틀리 리뷰>에 실리고, 영국 연극비평가 윌리엄 아처를 알게 되고, 학교 친구들의 경탄과 선망의 대상이 됨. 여름, 아버지와 멀링거를 여행 중 입센의 영향이 뚜렷한 4막으로 구성된 <화려한 경력 (A Brilliant Career)>을 씀 (이 원고는 1902년에 찢어버림). 이 무렵 <빛과 그림자(Shine and Dark)>라는 시를 쓰지만, 현재 일부분만 남아서 전함.

* 프로이트 <꿈의 해석> 출판.

1901 (19)

10, 아일랜드 문예극장의 지방성을 비난하는 <소요의 날 (The Day of the Rabblement)>을 쓰고, <두 개의 에세이>라는 제목을 붙인 85부를 인홰,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배포

* 빅토리아 여왕 서거

1902 (20)

2 15. 문학 역사 협회에서 아일랜드 시인 제임스 클래건스 맹건에 대해 강연. 여름, 조지 러셀의 소개로 예이츠와 그레고리 여사를 만남. 문단의 중심인물들은 조이스의 루시퍼 같은 거만함에 당황하면서도 그 문학적 재능에 감탄. 10 31, 졸업. 12 1일 더블린을 떠나, 런던에서 예이츠, 아서 시먼스 방문. 그리고 파리에 가나 자금이 끊겨 더블린으로 돌아옴. 더블린에서 마흔 살 중년의 친구, 트리니티 칼리지 의학생 올리버 고가티 (<율리시스> 벅 멀리건)를 만남. 이달부터 1년 동안 더블린 신간 <데일리익스프레스>에 서평 23편을 씀.

* 예이츠를 회장으로 아일랜드 국민극장 협회설립. 에밀졸라 사망. 드레퓌스 사건 (1894 ~ 1906) 1903년 아일랜드 리머릭의 유대 상인 보이콧 사건과 함께 조이스의 강한 관심을 끎

1903 (21)

1월 다시 파리 도착, 가난으로 고생. <바다로 나가는 사람> 집필을 막 끝낸 존 싱도 같은 여인숙에 있어서, 두 사람은 기묘한 경의와 적의를 느낌. 투르로 가는 도중에 역에서 에두아르 뒤자르댕 <월계수는 베어졌다> 구입. 4 10,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국. 8 13일 메리 조이스 사망 (44), 글래스네빈 묘지에 매장. 이 무렵부터 고가티의 영향이 더해져 술을 과하게 마시게 됨

1904 (22)

친구 존 이글린턴 (<율리시스>에 등장) <다나> 간행 기획을 듣고, 1 7일 약 2천 단어의 자전적 에세이 <예술가의 초상 (A Portrait of the Artist)>을 하루에 다 쓰는데, 편집자들의 거부에 부딪침. 2 2, 이 작품을 <스티븐 히어로 (Stephen Hero)>라는 제목의 장편소설로 고쳐 쓸 결심을 하고, 10일에 제 1장을 다 씀. 이 작품은 1907년 개정을 거쳐 1916 <젊은 예술가의 초상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으로 출판됨. 3월부터 6월까지 댈키에 있는 사립학교 클리프턴 스쿨 임시 보조교사로 근무. 6 10, 나소거리를 산책하던 노라 바너클 (20)을 만남. 16 (<율리시스> 배경, ‘블룸스데이’) 저녁 첫 데이트 이후 급속도로 친해짐. 조지 러셀의 권유로 단편 <자매>를 쓰고, 8 13 <아일랜드 홈스테드> 지에 스티븐 디댈러스라는 필명으로 실음. 이것은 1914년 간행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 (Dubliners)> 첫머리 작품이 됨. 9 <이블린>, 12 <경쟁 후>를 발표, 9 9, 샌디코브의 마텔로 탑에서 고가티와, 그의 옥스퍼드 친구 사무엘 트렌치 (<율리시스>의 헤인스)와 동거. 9 15일 고가티에게 깊은 원망을 품고 탑을 떠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감. 노라와 함께 대륙으로 갈 결심을 하고, 돈을 마련하려고 분주한 한편, 1902년 이후 쓴 시집 <실내악 (Chamber Music)> 초고를 런던 출판업자 그랜트 리처드에게 보냄. 스위스의 벌리츠 스쿨에 영어교사직을 얻어, 파리까지의 비용을 들고 10 8일 출발. 파리에서 빌린 돈으로 겨우 취리히에 도착. 실수로 직업을 잃고, 트리에스테 벌리츠 스쿨 책임자의 주선으로, 트리에스테에서 150마일 떨어진 이탈리아 영지 폴라 (현재는 풀라, 크로아티아 항구도시)에 부임

* 존 싱 <바다로 나가는 사람> 출판. 12월 더블린에서 애비 극장 개관.

1905 (23)

1904 8월에 쓴 풍자시 <종교 재판소 (The Holy Office)> 100부를 인쇄하고, 더블린의 친구나 지인에게 보냄 (이것은 예이츠에서 고가티에 이르기까지 더블린 문인 전부를 단죄한 결별장 또는 복수선언이다). 3, 트리에스테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영지. 현재는 이탈리아 동북부 항구도시) 벌리츠 스쿨로 전임. 5, 그랜트 리처드가 <실내악> 출판 거절. 7 27일 장남 조지오 탄생. 10, 학교에 빈자리가 나자 동생 스태니슬로스를 부름. 12 3 <더블린 사람들> 원고 제 12 (나중에 3두 한량’, ‘작은 구름 한 점’, ‘죽은 사람들추가)을 그랜트 리처드에게 보냄.

1906 (24)

3, 리처드가 <더블린 사람들> 출판계약서에 서명. 7, 신문 구인 광고에 응모해 로마 은행 무서과에 채용, 31일 로마 도착. 9 30일 스태니슬로스 앞으로 보낸 편지에, 더블린에 사는 유대인 헌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 율리시스에 대한 생각을 말함. 이것은 결국 제목만으로 끝났지만, 아내를 빼앗긴 유대인 남자라는 이미지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율리시스>로까지 발전함. 4월 이후 출판사 측 수정 요구를 둘러싸고 오고 간 격한 편지 끝에, 9월 말 리처드 앞으로 계약파기 편지가 도착함. 그 직후 <실내악>을 찰스 엘킨 매슈스에게 보냄

1907 (25)

2, 존 롱도 <더블린 사람들> 출판 거절. 같은 달, 존 싱의 <서방의 플레이보이> 상연을 둘러싼 애비 극장 소동에 강한 관심을 보임. 창작에서는 극도의 슬럼프에 빠진 끝에, 3 5일 은행을 그만두고, 직업도 없이 트리에스테로 되돌아감. 결국 벌리츠 스쿨에 복직. 그 고장의 <일 피콜로>지에 아일랜드 자치 문제 등에 대한 일련의 기사를 씀. 4월부터 아일랜드, 성자와 학자의 섬’ ‘제임스 클래런스 맹건등 제 목으로 연속 공개 강연. 5, <실내악>이 엘킨 매슈스를 통해 출판. 7월 류마티즘열로 한 달여 입원. 7 26일 장녀 루치아 탄생. 조이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개인교사가 되지만, 어려운 살림은 나아지지 않음. 이 무렵 마음속으로 끝낸 <율리시스> 구상을 다시 시작하고 더블린 판 페르귄트또는 아일랜드의 파우스트라는 착상과의 융합도 생각하지만, 구체화하지는 않음.

1908 (26)

3, 존 싱의 <바다로 나가는 사람>을 이탈리어로 번역. 소년 시절부터 약시였던 그는 특히 지난해 류마티즘열 이후 눈 상태가 나빠진 데다 과음도 빌미가 되어 5월 심한 홍채염을 앓음. 이 무렵 영어 학생 중 부유한 유대인 에토르 시치미 (필명 이탈로 스베보)가 있었는데, 조이스는 21살 연상인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함

1909 (27)

4, 더블린 출판사 몽셀에 <더블린 사람들> 원고를 보냈지만, 직접 협상과 모교에서의 교사 생활 (이탈리어어) 가능성 여부를 보기 위해 7월 조지오를 데리고 아버지 집으로 감. 에클즈거리 7번지 (<율리시스> 블룸의 집)에 사는 반과 옛정을 되살림. 친구 코스그레이브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 린치)의 말로 소녀시절 노라와 코스그레이브와의 관계를 의심하지만, 반의 조언으로 오해를 풂. 그동안 노라 앞으로 격한 감정을 드러낸 편지를 자주 보냄. 8, 몽셸 출판사 (영업담당 존 로버츠) <더블린 사람들> 출판계약 성림. 9, 동생 에바와 조지오를 데리고 더블린을 더나 드리에스테로 돌아감. 이 더블린 체류는 그 이후 작품, 특히 <망명자들> <율리시스>에 많은 소재를 줌. 에바의 말에 암시를 받아, 영화관 하나 없는 아일랜드에 영화관 개설 계획. 트리에스테의 실업가 그룹을 설득, 12 20일 더블린에 영화관 볼터개관.

* 존 싱 사망. 문예지 <신 프랑스 평론>지 창간. 마리네티 미래파선언’.

1910 (28)

1 2, 동생 아이린을 데리고 트리에스테로 돌아감. 홍채염 재발로 한 달여 휴양. 7, ‘볼터경영부진으로 파산. 5월 예정이었던 <더블린 사람들> 출판은, 에드워드 7세 언급 부분을 수정하라는 출판사 요청이 세 번 있었으나 조이스가 거부해 계속 미루어짐.

1911 (29)

2, 몽셸 출판사로부터 에드워드 7세에 관한 기술을 모두 삭제해 달라는 편지를 받음. 이 무렵 <더블린 사람들> 출판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자 순간 화가 나 <스티븐 히어로> 초고를 나로에 던지지만, 마침 거기에 있던 동생 아이린이 빼냄. 8 1, 에드워드 7세 문제로 영국왕실의 견해를 묻는 편지를 조지 5세 앞으로 보냄. 8 11, 비서관 답장(이런 문제에 대해 국왕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관례에 어긋난다) 받음.

1912 (30)

3, 디포와 블레이크에 대해 두 번에 걸친 강연. 5 <일피콜로>지에 <파넬의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글 실음. 7,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로 향하고, 노라의 고향 골웨이를 방문함. 8, 결국 몽셀 출판사 존 로버츠와의 계약 결렬, 9, 조판은 해체 교정쇄는 파기. 그날 밤 조이스는 더블린을 떠나 트리에스테로 돌아가면서 로버츠에 대한 분노를 담은 풍자시 <분화구로부터의 가스 (Gas from a Burner)>를 쓰고, 둘째 동생 찰스를 시켜 더블린 지인들에게 나눠주게 함. 그 뒤로 조이스는 두 번 다시 아일랜드 땅을 밟지 않음.

1913 (31)

레볼테라 고등상업학교 (나중에 트리에스테 대학)에서 가르치며 동시에 개인교사를 계속함. 이때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학생 마리아 포퍼 (아버지 레오폴드는 유대인 실업가)에게 일방적인 연애감정을 느끼고, ‘자코모 조이스라는 제목의 노트를 남김 (1968년 출판, 카사노바에서 유래한 자코모는 바람둥이라는 뜻). 11, 그랜트 리처드와 <더블린 사람들> 출판협상 다시 시작. 12, 예이츠의 소개로 알게 된 에즈라 파운드에게서 보낸 작품에 대한 편지를 받음.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데이비드 로렌스 <아들과 연인>.

1914 (32)

1, 그랜트 리처드가 <더블린 사람들> 출판에 동의, 615일 출판. 2, 파운드의 주선으로 <에고이스트>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실음. 초판 1250부 가운데 연말까지 499부가 팔리는데, 5백 부까지는 무인세 계약이어서 기대에 반해 조이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음. 1906년 이래 구상한 <율리시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속편으로 하려고 3월 다시 글을 쓰지만, 결국 중단, 희곡 <망명자들(Exiles)>을 씀. 12, 동생 스태니슬로스가 과격 이탈리아 민족통일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유로 오스트리아 관헌에게 체포,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감금

* 1차 세계대전 발발.

1915 (33)

1, 런던과 미국 출판업자들이 조이스에게 강한 관심을 보임. 9 <망명자들> 완성. 전쟁으로 조이스 가족은 6월 취리히로 이주, 조이스는 개인교사 일을 계속함. 파운드와 예이츠의 노력으로 영국왕실문학기금으로부터 보조금 75파운드를 받음

1916 (34)

<젊은 예술가의 초상> 출판에 관해 핑커를 통해 여러 회사와 협상하지만 난항을 겪음. 해리엇 위버의 집요한 노력으로 12 <더블린 사람들> 미국판 간행, 이어 12 29 <젊은 예술가의 초상> 출판. 파운드와 예이츠의 또 한 번의 노력으로 8월 영국 재무부기금 100파운드를 받음.

* 헨리 제임스 사망. 카프카 <변신>. 4 24일 더블린 부활절봉기, 같은 달 10일 진압.

1917 (35)

2 12, 해리엇 위버의 에고이스트 출판사 <젊은 예술가의 초상> 영국판 간행. 허버트 웰스가 <네이션> 2월호에 호의적인 서평 발표, 초판 750부가 여름까지 다 팔림. 이 무렵 예술에 조예가 깊은 뉴욕 변호사 존 퀸도 조이스에게 관심을 보임. 몇 개월 동안 녹내장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8월 수술. 10월부터 가족과 함께 로카르노에서 쉬며 연말에 <율리시스> 에피소드 3까지 끝내고 파운드에게 보냄.

* 폴 발레리 <젊은 파르크>

1918 (36)

1월 취리히로 돌아감. 파운드의 주선으로 미국 잡지 <리틀리뷰> 3월호에 <율리시스> 연재. 친구이자 본디 배우인 클로드 사익스와 극단 잉글리시 프레이어스 (English Players)’ 창립. 오스카 와일드의 <진지함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을 시작으로 쇼나 노래 등을 상연. 출연료 문제에서 시작된 극단원 카 (영국영사관 근무)와의 다툼이 재판으로까지 발전, 결국 승소. 5 25, <망명자들> 영국과 미국에서 출판. 슈테판 츠바이크가 강한 관심을 보임. 양쪽 눈에 홍채염이 걸려 고생. 12, 근처에 사는 말테 프리아시만과 교제. 이듬해 그녀의 보호자를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플라토닉한 관계는 끝나지만, <율리시스> 거티와 마사의 소재가 됨. <리틀 리뷰> <율리시스> 연재는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연말에는 에피소드 9 완성.

1919 (37)

6, 1917 5월 이래 익명으로 후원한 사람이 해리엇 위버였음이 밝혀짐 (그녀의 경제적 원조는 조이스 사후 장레식에 이르기까지 계속됨), 8 7, 슈테판 츠바이크의 주선으로 <망명자들> 뮌휀에서 상연하나 성공하지 못함. 9월까지 <율리시스> 에피소드 10, 11, 12 완성. 10월 트리에스테로 돌아가 레볼테라 고등상업학교에 복직.

1920 (38)

5월까지 에피소드 13, 14 완성. 파운드의 권유에 따라 파리이주를 결심. 7월 파리 도착, 서점을 경영하는 두 여성, 아드리엔느 모니에르 (라 메종 데자미 데 리브르)와 실비아 비치 (세익스피어 서점)를 알게 됨. 8 15, 토머스 엘리엇과 인덤 루이스를 방문. 12월 에피소드 15 완성, ‘이제까지 쓴 것 중에서 제일 잘된 것이라고 말함. 12 24, 비치와 모니에르의 준비로, 외국문학에 관해 파리 문단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발레리 라르보를 만남.

* 트리스탕 차라 다다이즘 선언’. 아일랜드 자치법안 통과.

1921 (39)

2 <율리시스> 미발표분을 읽은 라르보로부터 칭찬의 편지가 도착함. <율리시스>를 연재하고 있는 <리틀 리뷰>지가 뉴욕 악덕방지회로부터 외설문서 유포 혐의로 고소당함. 피고측 변호사는 존 퀸, 이듬해 유죄 판결을 받음 (에피소드 14에서 연재 중단). 4, 실비아 비치를 통해 <율리시스> 출판 계약. 1000부 예약 모집에 에이츠, 파운드, 지드, 헤밍웨이 등이 신청함. 5월 한 모임에서 마르셀 프루스트를 만남. 10, 에피소드 17 18 집필이 나란히 끝남으로써 <율리시스> 원고 완성 (에피소드 4는 출판되는 날까지 수정함). 11, 조이스는 <율리시스> 구성과 기법에 관한 세밀한 계획표를 발레리 라르보에게 보이고, ‘내적 독백창시자로서 에두아르 뒤자르댕의 공정을 분명히 밝힘.

1922 (40)

2 2일 생일, 셰익스피어 서점판 <율리시스> 첫 한 권을 실비아 비치에게서 건네받음 (구상한 지 16, 집필한 지 7년째). 엘리엇은 격찬하며 조이스는 19세기를 매장시켰다고 버지니아 울프에게 말함. 울프는 교양없고 수준 낮은 환경에서 자란사람의 작품이라고 비판. 에드먼드 고스는 문학적 사기꾼이라고 평함. 8, 조이스는 노라와 함께 런던으로 가서 처음으로 해리엇 위버와 만남. 눈병 악화로 9월 중순 서둘러 파리로 돌아감. 10, 위버를 통해 에고이스트 판 <율리시스> 출판. <피네건의 밤샘> 구상. 이 제목은 아내에게만 말했을 뿐 출판 때까지 감추어 둠.

* 엘리엇 <황무지> 발표. 1월 아일랜드자유국 성립.

1923 (41)

3 <피네건의 밤샘> 집필 착수. 4, 이를 몇 개 뽑은 뒤, 안과의사 보르시 박사에게 괄약근 수술을 받음. 장남 조지오는 은행을 그만두고 성악가(베이스)훈련에 전념.

* 엘리엇 <율리시스, 질서와 신화> 발표.

1924 (42)

3, 1920년 진행하던 <젊은 예술가의 초상> 프랑스어판 <디댈러스> 간행. <율리시스> <커머스>에 실림. <트랜스 어틀랜틱 리뷰> <피네건의 밤샘>의 단편 실림. 편집장 매독스 포드는 이것을 트리스탕 차라, 헤밍웨이 작품과 함께 <진행중인 작품 (Work in progress)>으로 묶어 문예부록으로 함 (조이스는 이것이 마음에 들어 <피네건의 밤샘> 출판 때까지 제목으로 씀). 4, 왼쪽 눈 결막에 이상이 생겨 의사가 일을 쉬라고 함. 6월 수술. 8월 변호사 존 퀸 사망. 11월 이모 조세핀 마리 사망. 특히 더블린의 정다운 정보원이었던 이모의 죽음으로 조이스는 깊은 슬픔에 빠짐. 11 28일 보르시 박사에게 왼쪽 눈을 6번째로 수술 받음.

* 버지니아 울프, 평론 <미스터 베넷과 미세스 브라운>에서 내명세계를 중신하는 새로운 문학 옹호.

1925 (43)

2 15일부터 열흘 동안 입원. 오른쪽 눈 통증으로 발광 직전이었음. 같은 달 뉴욕에서 <망명자들> 상연. 눈병과 치통에 괴로워하며 <진행 중인 작품> 일부를 손봐서 <크라이테리온> 7월호에 실음. 4월 왼쪽 눈 7번째 수술. 7월부터 9월까지 노르망디 여행. 눈이 보이는 한 돋보기와 큰 문자에 의지하여 집필 활동 계속. 12월 두 번에 걸친 왼쪽 눈 수술.

* 카프카 <심판>. 버지니아 울프 <델러웨이 부인>

1926 (44)

2 14, 5일 런던에서 <망명자들> 상연. 왼쪽 눈이 악화되어 10번째 수술을 받음. 지난해 9월부터 이해 9월까지 뉴욕의 잡지 <두 개의 세계> <진행 중인 작품>을 다섯 차례, <율리시스>를 한 차례 표절. 11, 위버와 파운드에게 <진행 중인 작품>의 난해함에 당혹스러워하는 편지를 받음.

1927 (45)

<율리시스> 표절에 대한 항의문을 만들어 여러 나라 작가들의 서명을 요청. 서명자는 크로체, 뒤아멜, 아인슈타인, 엘리엇, 지드, 헤밍웨이, 로렌스, 울프, 예이츠 등 167. 2 2일 날짜로 항의문 발송. 표절은 10월까지 이어지고, 뉴욕 최고재판소 표절금지령이 떨어진 것은 이듬해 12. 조이스 부부와 엘리엇 폴 편집의 <트랜지션> 창간호 (4) <진행중인 작품> 연재 시작 (38 5월까지 계속됨). 이때 아주 이해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진행 중인 작품>에 대한 비판을 들어 이 작품을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스티븐스에게 맡기려고 생각함. <진행 중인 작품> 비판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7 7일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시집 <한 푼짜리 시들 (Pomes Penyeach)>을 내지만 기대한 만큼 좋은 반응은 얻지 못함. 라인 펠락 출판사를 통해 <율리시스> 독일어 판 간행. 조이스가 번역에 불만을 나타내 다시 번역함.

*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1928 (46)

9월 이탈로 스베보 자동차 사고로 사망. 같은 달, 눈병 악화로 집필에 어려움을 겪음. 10 29, 뉴욕에서 <아나 리비아 프루라벨> 호화판 850부 간행. 1 8, 노라 암이 의심되어 첫 번째 수술.

1929 (47)

2, 라르보 등이 참여한 <율리시스> 프랑스어 번역판을 아드리엔느 모니에르가 출판. 같은 달 노라 자궁 절제 수술을 받으나 경과는 양호. 4월 장남 조지오 가수로 데뷔. 발레리나를 포기한 루치아는 이때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임. 5월 베케트, 버젠 등 12명을 통해 <피네건의 밤샘> 어폴로지아 간행. 8, <셈과 숀 이야기> (<피네건의 밤샘> 일부) 파리에서 출판. 7월부터 8월까지 길버트 부부와 영국에 머물며, 길버트의 <율리시스>론에 조언을 함. 11, 만일 실명하거나 완성할 기력이 없을 때를 대비해 제임스 스티븐스에게 <피네건의 밤샘> 구성을 1주일에 걸쳐 설명. 이 무렵 <트랜지션>이 경제적 이유로 잠시 휴간되자 창작 의욕을 잃음. 아일랜드 코크 출신 테너 가수 존 설리번을 알게 되어 그를 지나칠 정도로 열렬하게 후원함.

*포크너 <음향과 분노>

1930 (48)

시력이 감퇴하여, 5 10일 취리히에 가서 포크트 박사에게 11번재 왼쪽 눈 수술 받음. 6, 파리와 뉴욕에서 <어느 곳에나 어린이가 있다>(<피네건의 밤샘> 3 3장 묶음 부분) 출판. 라인 펠락 출판사가 독일어 번역판 <율리시스> 3판을 위해 융에게 머리글 의뢰. 9월 머리글 원고를 읽은 조이스는 이 남자는 한 번도 미소 짓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듯이라고 함. 출판사 머리글 단념. 1, 조이스 자신의 감독하에 <아나 리비아> 프랑스어 번역 진행. 번역가는 베케트, 페론, 레옹, 졸라스, , 수포, 12 10일 장남 조지오 결혼. 12월 조이스의 의뢰를 받은 하버드 고면이 그의 전기를 쓰기 시작 (출판은 40)

1931 (49)

<어느 곳에나 어린이가 있다> 페이버 앤드 페이버 출판사에서 간행. 7 4일 아버지 존 생일 때 노라와 런던 등기소에서 정식으로 결혼. 12 29, 아버지 존 더블린에서 사망 (82), 아내 메리와 같은 묘지에 잠듦. “내 작품의 수백 페이지와 등장인물들은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한 조이스의 슬픔이 깊어 <피네건의 밤샘> 집필을 포기하려고 했음.

* 에드먼드 윌슨 <액슬의 성> 간행, 조이스의 고전주의적, 상징주의적 요소 강조.

1932 (50)

베케트를 향한 짝사랑의 절망 등이 원인이 되어 2 2일 루치아가 미쳐서 발작을 일으킴. 정신병원에 옮겨져 정신분열증으로 진단받음. 루치아의 증세가 심해짐에 따라 조이스는 맹목적인 사랑을 쏟음. 의사를 바꾸어 가며 (34년 융은 스무 번째 의사), 장식문자 작업을 권하는 등 딸에게 맞는 방법으로 고치려고 노력함. 2 15, 손자 스티븐 제임스 조이스 탄생. 9, 예이츠로부터 아일랜드 문학 아카데미 창립 회원이 되라는 내용의 연락이 오나, 10 5일 거절 답장을 보냄. 12월 길버트가 교정에 참가하여 <율리시스> 오디세이판 간행. 4판 결정판이 됨. 12 <제임스와 존의 두 가지 이야기>(<피네건의 밤샘> 일부분) 페이버 앤드 페이버 출판사 간행. 이해에 아이젠슈타인이 조이스를 방문, <율리시스>를 영화로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함.

1933 (51)

1, 루앙에서 설리번의 노래를 듣고 돌아가는 도중에 배에 통증을 느낌. 불면, 복통, 루치아 정신분열증 악화 등으로 몸과 마음이 지침. 5월 취리히에 가서, 포크트 박사에게 완전 실명 위험이 있다고 경고를 받으나 <피네건의 밤샘> 집필을 계속함. 9, 파리에 돌아가 프랭크 버젠의 <제임스 조이스와 율리시스 창작> (출판 34)의 인쇄물을 읽고 만족함. 뒤자르뎅 <월계수는 베어졌다>를 번역 중인 길버트에게 조언함. 12 6일 뉴욕의 울지 판사 <율리시스>를 외설 문서가 아니라고 판결. 랜덤 하우스는 다시 활자 조판.

1934 (52)

1, 뉴욕의 랜덤 하우스가 미국 최초의 <율리시스> 100 (판권 확보를 위해) 출판, 2 2일 루치아가 조이스 생일 잔치에서 어머니를 때리고, 니온의 요양소에 수용됨. 6 <천사 마키엘, 악마 닉, 유혹하는 여자 매기의 무언극> (<피네건의 밤샘> 일부분) 헤이그에서 출판. 8월 조이스 부부는 루치아를 병문안 가서 곁에서 돌봄. 9 15일 루치아가 병실에 불을 냄, 같은 달 20일 취리히의 정신병원으로 옮겨짐. 같은 달 28, 융에게 루치아를 진찰하게 함. 12월 다시 복통이 오나 대장염이라고 스스로 진단함

1935 (53)

1월 루치아를 강제 퇴원시켜, 가족과 함께 파리로 돌아감. 조이스 여동생 아이린 보호 아래, 루치아가 원하는 대로 더블린 남쪽 브레이에 머물게 함. 7, 루치아는 더블린을 빠져나와 일주일 뒤 경찰에 잡힘. 그 사이 조이스는 환상과 악마에게 시달림

* 토머스 울프 <시간과 강에 대하여>

1936 (54)

파리로 돌아온 루치아는 3월 흉폭성 정신병자로 정신병원에 수용됨. 딸이 쾌유될 가능성을 혼자서 굳게 믿은 아버지의 인내와 노력으로, 4월 쾌적한 이브리 요양소로 옮김. 2년간 수입 (미국 판 <율리시스> 인세 포함) 4분의 3을 루치아를 위해 쓴 조이스는 돈을 다 쓰면 다시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말함. 7, 루치아가 4년 전에 쓴 장식 문자로 <초서 A.B.C>출판 (이것은 그녀의 스물아홉 번째 생일 선물이었다). 이즈음 <피네건의 밤샘> 전체 4분의 3을 끝냄. 이때부터는 글 쓰는 일이 잘될 것이라고 말함. 10월 존 레임을 통해 영국 판 <율리시스> 간행. 초판 1000, 37년 보급판 간행.

1937 (55)

지난해 7월 완성해 페이버 앤드 페이버 출판사에 보낸 <피네건의 밤샘> 1부 인쇄물이 3월 나오기 시작함. 일주일에 한번 루치아에게 병문안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피네건의 밤샘> 완성을 위해 노력함. 38 2 2 (자신의 생일)이나 늦어도 7 4 (아버지 생신)에 공개적으로 책을 낼 생각이었음. 10 <젊고 내성적인 스토리엘라> 런던에서 출판. <아나리비아> 이탈리아어 번역에 협력.

* 아일랜드 새 헌법제정

1938 (56)

9, 복부에 극심한 고통을 느껴 <피네건의 밤샘> 마무리에 전력을 쏟음. 조이스는 친구 폴 레옹에게 지칠 대로 지치고, 혈액은 한 방울도 남지 않고 머리에서 흘러나온 것 같았다. 나는 긴 시간 동안 벤치에 앉아 움직일 수도 없었다고 말함. 11 13 <피네건의 밤샘> 완성. 친구들을 동원하여 교정 진행, 12 31일 교정 완성.

1939 (57)

5 4 <피네건의 밤샘> 런던과 뉴욕에서 동시 간행. 7, 고먼이 쓴 자신의 전기를 훑어보고 교정함. 9, 루치아를 라 볼의 요양소로 피난시킴. 아들 조지오의 아내 헬렌의 신경증이 악화되어 입원, 손자 스티븐을 데려옴.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피네건의 밤샘> 반향도 거의 없음. 12월 복부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나 또다시 신경성이라고 스스로 진단. 크리스마스 이후, 생 제랑 르 퓌로 피난.

1940 (58)

교정을 계속하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짐. 9월부터 스위스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12 17일 밤 조이스 가족 (부부, 조지오, 스티븐) 취리히 도착. 루치아는 라 볼의 요양소에 머물렀고, 조지오의 아내 헬렌은 친정집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 있었음. 하버드 고먼 <제임스 조이스> 출판.

1941 (59)

1 10일 극심한 복통에 시달림. 다음 날 아침. 적십자 병원으로 운송됨. 십이지장궤양천공 (십이지장에 구멍이 난 것)으로 진단 받고 수술함.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13일 오전 2 15분 사망. 15일 추리히의 플룬테른 묘지에 잠듦. <런던 타임스>의 이해심 없는 조문에 화난 T.S. 엘리엇은 <물고기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제목의 항의문을 <호라이즌> 3월호에 발표. 버지니아 울프도 부고를 접하고 슬퍼함 (그녀는 3 24일 자살). 취리히에서는 지인들이 <제임스 조이스 추상>을 출판. 할리 레빈은 조이스의 모든 작품을 다룬 첫 연구서 <제임스 조이스>를 저술해 유럽 문학사에서 조이스의 위치를 다짐.

1944

<스티븐 히어로> 출판. 조지프 캠벨과 헨리 모튼 로빈슨의 선구자적 해설서 <피네건의 밤샘을 여는 곁쇠 (A Skeleton Key to Finnegans Wake)> 간행.

1947

뉴욕에서 제임스 조이스 협회결성.

 

나는 제임스 조이스의 연혁을 옮기면서 마음으로 울었다. 그의 고난과 그의 의지를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하지만 다가온 사랑에 솔직한 그래서 인간적인 그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1번이 넘는 눈 수술과 실명을 무릅쓰고 집필에 마지막 시간을 다한 것은 나로서 작가의 길을 가겠다고 하는 어줍잖은 생각을 그냥 콱 눌러버린다. 19세기와 20세기 초는 세상의 많은 사상들이 정리되는 듯 폭발한 시대라고 본다. 이전 세대의 모든 사상이 시험되었고 재검증 되었으며 문학 또한 이를 거쳐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제임스 조이스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말로는 그를 기점으로 문학이 갈린다는 것이다. 그 이전의 문학과 그 이후의 문학. 엘리엇이 말한 19세기 문학은 묻혔다고 한 말이 이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에피소드 4 칼립소

 

P117

찢은 봉투 조각이 베게 밑에 나와 있었다. 그는 방을 나가다가 멈춰 서서 침대 커버의 매무새를 고쳐 주었다. 어디서 온 편지야? 그는 물었다.

 

에피소드 13 나우시카

 

P526

그녀는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그가 자신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그의 지난 사랑의 기억들, 추억들조차 모두 용서할 것이며 그 사람 역시 그 모두를 잊게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참다운 사내로서,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포근히 껴안으리라, 사랑해주리라, 그만의 소녀, 오직 하나뿐인 그만의 그녀를

 

P594

거티는 머리를 매만지기 위해 잠시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더욱 우아한 밤색 머리가, 그 어떤 소녀의 어깨 위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아름다운 머리가 나타났다. 미칠 정도로 아름다운 머릿결이었다. 이 정도의 머리를 만나려면 적어도 수백 마일은 헤매다녀야 하리라. 그 아름다움에 감동한 그의 눈에 감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간 듯한 생각이 들어, 그녀는 전신에 전율을 느꼈다. 그녀는 챙 밑으로 훔쳐 볼 수 있도록 모자를 다시 썼다. 그 눈에 담긴 표정을 보았으므로 그녀는 전보다 빨라진 호흡에 맞추어 그녀의 버클 달린 구두를 흔들었다. 그는 뱀이 먹이를 바라보듯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여자로서의 본능이, 그녀가 그의 내면의 악마를 깨웠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년의 얼굴이 목에서부터 이마까지 화끈 달아오르면서 탐스러운 장밋빛으로 물들었다.

 

P596

그녀는 어떤 감동이 온몸에서 격렬하게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근처의 느낌과 코르셋이 닿는 곳의 초조한 느낌으로 그것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가장 최근에 그것이 있었던 날은 초승달이 뜨던, 그래서 머리를 잘랐던 그날인데, 그때의 느낌을 잘 기억해두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또다시 그의 검은 눈은 마치 그녀의 윤곽 전체를 빨아들일 것처럼, 여신의 신전에서 경배하는 사람처럼,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남자의 정렬적인 응시에 거짓 없는 숭배의 마음이 드러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 이 남자의 얼굴에서 그것을 볼 수 있으리라. 그것은 너 때문이다, 거트루드 맥도웰이여, 그리고 너는 그것을 알고 있다.

 

P599

그녀는 알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란 매우 다른 존재이므로. 오랫동안 동경하던 사랑이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하얀 손을 내밀고, 푸른, 호소하는 듯한 눈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애인이여! 그녀는 그녀의 사랑의 꿈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리라. 그는 어디까지나 그녀의 것이다. 온 세계에서 그가 그녀를 위한 유일한 남자라는 것을 알리는 그녀의 마음의 속삭임에 따르리라. 사랑만이 가장 위대한 안내자이므로. 그 밖의 그 무엇도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그녀는 분방하게,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우리라.

 

P602

그녀는 흐느낄 듯이, 그 하얀 가는 팔을 내밀며, 외치고 싶었다. 이리 와서 그 입술을 내 이마에 대어 달라고, 그녀는 갈구했다. 어린 소녀의 사랑의 외침, 가슴을 쥐어짜듯 토해내는 외침, 오랜 세월 거듭되어 온 그 외침으로. 그러자 그때 하늘로 치솟은 폭죽이 펑 하고 터지며 사방으로 눈부시게 비췄고, ! 하는 탄성, 이어서 원통형 꽃불이 터지고, 다시 오!, 모두가 오! ! 하고 기쁨에 차 소리치고, 그때 금빛 빛줄기가 하늘로 소나기처럼 쏟아지니, ! 그것은 황금빛에 녹색 빛이 도는 이슬 젖은 별들이어라, 오 너무나 생생한, 오 너무나 부드럽고, 달콤하게, 오 너무나 부드럽게!

 

P605

우선은 입힌다. 옷을 입히는 것은 그것을 이윽고 벗기기 위한 거다. 몰리. 내가 그녀에게 자줏빛 가터를 사준 것도 그 때문이다.

 

P606

그 재회가 어떨지 상상해 보라! 어머 누군가 했어! 오랜만이야. 잘 있었어? 지금은 어떻게 지내? 키스해 줘,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키스해 줘. 정말 기뻐. 그러면서 서로 상대의 옷차림에서 결점을 찾는다. 옷이 참 잘 어울리는 구나.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영혼들. 아이는 몇이야? 하지만 소금 한 줌 꾸어줄 생각은 없지.

 

P619

내 몸 안에서 남성적인 힘을 모두 빼앗아 갔어, 저 작은 마녀가. 그녀가 나에게 키스했다. 나의 젊음.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단 한 번 닥쳐올 뿐. 그녀의 젊음도 그렇지.

 

에피소드 18 페넬로페

 

P1135

가끔 온몸으로 아주 좋은 기분을 느낄 때에는 마음이 미칠 것 같아 사랑하고 싶어지는 거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나는 가끔 누구라도 좋으니 곁에 있는 남자가 나를 붙잡아 팔에 껴안고 키스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길고 열렬한 키스만큼 황홀한 게 또 있을까 그것은 영혼의 바닥까지 마비시킬 정도지 나는 참회 같은 건 정말 싫어

 

P1164

남자란 모두 자기들이 나온 곳에 도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지 그렇게 깊은 데까지는 결코 닿지 못하면서

 

P1196

내가 산에 피는 꽃과 같다고 그이는 말했어 그래 우리는 꽃이야 여자의 몸은 어디나 할 것 없이 꽃이지 그것이 그이가 이제껏 살면서 입 밖으로 낸 단 하나의 진실이었어

 

P1197

그래 그이는 무어인의 성벽 아래에서 나에게 강렬하게 키스했었어 그리고 나는 그이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그런 다음 나는 눈으로 그이에게 키스해 달라고 졸랐지 그래 그리고 그이는 내가 승낙한다면 네라고 말해 달라고 부탁했어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팔로 그의 몸을 감은 거야 그래 그리고 그이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어 그이가 내 향기로운 유방에 닿을 수 있도록 그래 그이의 심장은 미칠 것처럼 뛰었지 그리고 그래 나는 네라고 말했어 좋다고 말야

 

3. 내가 저자라면

 

3개의 에피소드만을 읽었다. 율리시스는 읽기에 좋았다. 흥미로웠다. 생각이 튀는 대로 쓰여 있는 듯하였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것들을 잡아다 놓은 듯 현실과 내면이 대화를 한다. 언제 기회가 되어 전체를 다 읽어볼 수 있을까? 지금이 율리시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인연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대덜러스에 마음이 갔다. 제임스 조이스는 사건을 사람을 내면을 기억을 상황을 묘사를 하나 하나 퍼즐처럼 기술자가 짜 맞추듯 소설로 역어 놓은 듯 하였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많고 생각에 꼬리를 물고 달려가는 엉뚱한 사람은 이 같은 구성에 희열을 느낄 것이고 질서 정연하게 결론으로 치달아 가야 하는 구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소 낯설 것 같다.

 

이 소설을 읽는 재미는 무엇을까? 세 에피소드를 읽은 바로는 사실 조이스와 숨바꼭질하는 것이리라. 무엇을 찾는 것일까? 나의 본성을? 사람들의 심리를? 적나라한 일상을? 눈에 불꽃이 튀는 만남을? 하루 동안을 글로 옮긴 것으로는 대단하다. 물론 24시라는 미드가 있어 낯설지 않은 구성이지만 말이다. 율리시스에서 24시의 구성이 나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의 소설을 몇 년씩 혹은 몇 십 년씩 붙들고 써내려 간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녹여 내는 작업일 것이다. 분명 조이스도 자신의 책에 많은 인물들이 자신이 직접 겪고 생활한 주변인 들에서 모티브를 따왔을 것이다. 아버지가 특히 그랬다. 이렇듯 작가의 쓰는 소설을 그 시대의 인물과 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다. 시대의 각성 혹은 한 개인의 각성이 소설의 인물로 그리고 성격으로 나타나 소설의 내용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할 것이다. 소설은 다른 글쓰기와 다르다. 묘사와 대화 생각과 느낌들이 하나의 text에 녹아져서 복잡 미묘한 느낌을 갖게 하고 극적 효과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40이 넘어서 소설을 읽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왠지 살아본 듯한 내용, 어디선가 마주쳤던 느낌들이 이제 소설들에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결국 그 소설들을 통해 다시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조이스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무엇을 한 것일까? 세상과 대화를 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과 대화를 한 것일까? 드러낸 것일까? 아니면 감춘 것일까? 율리시스를 보며 이 같은 의문만이 커지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는 다이달로스의 재능으로 그이 text를 아주 잘 맞춰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조이스를 만나고 다이달로스에 대해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글에도 다이달로스의 재능이 부과 되면 또 다른 읽기의 재미를 만들 수 있고 흥미를 갖고 책을 볼 수 있는 매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IP *.94.41.89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