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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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나 한잔
이흔복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법정 스님 입적하시고 외종형 바오로, 생의 긴 그림자 내려 놓았다. 밤이며, 삼경이면
좀처럼 잠도 없다. 거북이 털 토끼 뿔 소름 돋는 그게 그저 내내 여여(如如) 하고 하니 바오로여, 언젠가는 없을
나에게도 아름다운 이 세상 아니 온 듯 다녀가시면 나 울터이다.
이 시를 읽는 순간 이흔복이라는 시인이 궁금해졌다. ‘외종형 바오로’가 혹시 스승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시인처럼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말을 했었다. 김수환 추기경도 돌아가시고, 법정스님 돌아가시고, 떠나시니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어졌다고. 시인이 말하는 외종형 바오로가 스승님이라고 믿고 싶다.
이흔복의 시집 <나를 두고 내가 떠나간다>는 한 편 한편 읽을수록 육체를 이탈하게 된다. 영혼이 홀로 휘저어 다닌다. 현실에 얽매인 육체는 여기 있지만 영혼은 어디든지 떠다니는 듯하다. 순간 이상의 세계로 가는 길목에 선 듯하여 기쁘다. 그러나 제아무리 날고 긴들 육체가 없으면 실체가 될 수 없거늘.
그의 시 두 편을 읊어본다.
나를 두고 내가 떠나간다
이흔복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 산마루의 어우름이나 두드러진 곳에 나는야 숨어서 우는구나, 울고 있구나. 소나무 높은 곳에는 의당 학이 머물고 바람이 불어오고 또 가리라.
별까지 걸어가는 꿈이 꾸는 꿈속의 길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내 몸을 움직여서 갈 수 없는 강릉 등명락가사의 고욤나무는 그 어리숭하게만 생긴 둥근 맛의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내가 ‘나’이며, 다만 내가 ‘나’이며, 내가 ‘나’인 한
이흔복
나는 아직도 내가 낯설다. 나는 내가 낸 둥 만 둥 하다. 나는 나 자신의 슬픔이며 나 자신의 운명이리니 나는 영원
히 고독할 것이다. 나는 나를 꿈꾸면 좋을다. 집 떠나와 집에 이르러 보니 나는 원래 집을 나선 적이 없었다. 다만
봄이 멀지 않다, 나는 눈물진다.
*D.H. 로렌스 <아론의 지팡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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