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로맨틱 러브에 대한 융심리학적 이해> 로버트 A. 존슨, 고혜경 옮김, 동연

 

1.   저자에 대하여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융연구소에서 수학한 미국의 정신분석가이다. 그는 우리 시대 융 심리학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해석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융과 함께 연구한 몇 안 되는 융 학파 연구자이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강연자이자 수많은 책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존슨은 꿈과 신화의 세계를 존중하고 무의식의 메시지를 따르는 삶이 얼마나 경이와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게 되는 지, 그리고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영성적인 자세로 산다는 것이 어떤 지를 전 생애로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저서와 한국어로 번역된 책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HE>, <HE, 신화로 읽는 남성성> 동연, 고혜경 옮김

<SHE>, <SHE ,신화로 읽는 여성성> 동연, 고혜경 옮김

<WE>,<WE, 로맨틱 러브에 대한 융심리학적 이해> 동연, 고혜경 옮김

<Inner Work>, <내면작업, 꿈과 적극적 명상을 통한 자기 탐색> 고헤경, 이정규 옮김

<Owning One’s Own Shadow>,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고혜경 옮김, 에코의 서재

<Inner Gold>, <내면의 황금, 심리적 투사의 이해> 박종일 역, 인간사랑

<Living Your Unlived Life> <내 그림자에게 말걸기:내 안의 접힌 나를 일깨우는 마음여행>

<Ecstasy>

<Femininity Lost and Regained>

<Transformation>

<Lying with the Heavenly Woman>

<Balancing Heaven and Earth>

<Contentment>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 및 목차

 

현대와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시작된 12세기의 신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부분부분으로 나누어 들여다본다. 로버트 A. 존슨의 이전 책들과 마찬가지로 전체 신화를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순서에 따라 하나씩 해설한다. 소제목은 키워드다. 키워드가 19개가 되자 4부분으로 나누었다. 이건 낭만적 사랑의 진행 진도라고 불 수 있을라나? 목차만 봐서는 각 꼭지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다.

 

들어가는 말 신화의 번역과 원전에 관한 주석 여성들을 위한 주석 신화에 관하여   1부  신화이야기 1 : 트리스탄, 탄생부터 위대한 기사로 자라기까지 1.     블랑시 플레르 2.     슬픔의 아들 3.     의식의 섬, 신의 바다 4.     검과 하프 2부  신화이야기 2 : 사랑의 와인에 취한 트리스탄 5.     사랑의 묘약을 맛보다 6.     마법의 와인 7.     아름다운 이졸데 8.     사랑의 묘약과 그 역사 9.     기만과 힘 3부  신화이야기 3 ; 마법의 과수원을 헤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10.   내면세계의 여왕 11.   소나무 아래의 속임수 12.   모로이스에서 사년 째 되던 해 4부  신화이야기 4 : 흰 손의 이졸데를 발견한 트리스탄, 사랑과 죽음은 어떻게 뒤섞이나? 13.   수수께끼와 역설 14.   지상의 이졸데 15.   고통과 죽음 16.   이졸데 – 마야 : 환상의 춤 5부  마무리 17. 하얀 들소 영의 여인 18. 성모 마리아의 종에 관한 꿈 19. 인간적인 사랑에 대하여   옮긴이의 글 용어해설

 

2)   장점 및 보완점

 

로맨틱러브를 융심리학적 입장에서 분석하는데, 12세기에 만들어진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를 갖고 다룬다. 이런 식의 저술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신화를 가지고 사람에게 중요한 특정 주제를 다루다니. 신화의 쓰임은 참 다양도 하다. 존슨은 로맨틱 러브가 서양문화에서 가장 에너지가 많이 모이는 곳이라 본다. 그는 로맨틱 러브를 ‘코틀리 러브’ 와 로마 카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처리된 12세기 종교적 영성운동의 하나인 알바시니안의 움직임에서 연유했다고 본다. 그건 섹스, 혼인과 연루되지 않는 이성간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고양시키는 영적 수련의 방편이었다.

 

존슨은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 역시 남성신화로 보고 있다. 융심리학을 배경으로 한 저술가인그는 로맨틱 러브를 남성 내면의 아니마와의 관계에서 설명했다. 아니마는 남성의 내면에서 영혼, 관계, 정서에 대한 부분을 담당한다. 존슨은 중세가 끝나면서 근대, 현대가 시작되었고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를 통해 현대인이 자라고 있다고 했다. 현대인은 트리스탄의 슬픔을 갖고 있으며 트리스탄의 과제 또한 가지고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존슨은 아니마를 투사하는 걸 거두어 들여 내면작업을 따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재 내 옆에 있는 여성을 투사없이 그 여성 자체로 사랑하라고 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이졸데’는 내면의 여성으로서 그 자리에 둔 채 그녀와 혼인을 하고 ‘흰손의 이졸데’는 현실적인 아내나 연인으로서 혼인을 해야한다고, 그러니까 2개의 혼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로맨틱 러브에서는 현대인의 기대가 거대해진 건 내면생활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어떻게 기성 종교에 새신자 가입을 하라는 게 아니라 존슨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생활의 영역을 확보하라고 말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는 남성신화다. 그러나 현재는 여성성에 대한 상실이 있는 시대이고, 생물학적 여성조차 남성화 되어 있어 여성성의 회복이 절실한 때다. 트리스탄은 블랑시 플레어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마크왕의 여동생이었는데 동맹국의 왕에게 시집보내어졌다. 남편이 전쟁터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그녀는 슬픔 속에서 아들 트리스탄을 낳고 죽는다. 슬픔의 아들 트리스탄은 가부장제 안에서 일어난 여성성의 상실을 지닌 남성성을 가진 남성, 현대인을 상징한다.

 

마크왕의 아내를 구하러 가기 위해 전령을 자처한 트리스탄은 이졸데의 마음을 얻는다. 그러나 그녀는 마크왕에게 데려간다. 돌아가는 배 안에서 이들은 이졸데의 어머니 마법사가 만든 사랑의 와인을 실수로 마신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이 마법의 와인은 3년이 유효하며 첫날밤에 신랑신부가 마시도록 준비된 것이었다. 마크왕과 결혼해 여왕이 되었지만 이졸데와 트리스탄은 밀회를 계속한다. 그러다 발각되어 진노한 오아은 이졸데를 문둥이들에게 겁탈당하게 주고, 트리스탄에게는 사형을 선고한다. 둘은 탈출해 모로이스 숲에서 거지꼴로 3년을 지낸다. 4년째 되는 날 궁으로 돌아온다. 트리스탄은 길을 떠나 기사 노릇을 해주고 ‘흰 손의 이졸데’ 공주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녀와 첫날밤 육체관계 맺는 걸 거부한다. 다시 찾아가 여왕을 만나자 여왕은 그를 내쫒는다. 트리스탄은 돌아와 죽는다. 아름다운 이졸데가 찾아와 트리스탄 옆에서 절명한다. 마크왕이 둘을 교회 묘지에 나란히 묻어주었다.     

 

단일 신화를 갖고 현대인의 커다란 주제인 로맨틱 러브를 분석하고 있다. 옮긴이의 말대로 그의 말은 시적이고 깊고 군더더기가 없고, 지나친 해석과 분석 인용도서로 신화 본래의 향취를 흐리지 않는다.

 

과연 로맨틱 러브를 ‘아니마/ 아니무스’의 투사로만 봐도 되는 걸까? 살아있은 느낌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사랑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로맨틱 러브에 대한 융심리학적인 존슨의 견해’는 들어봄직하다. 영양가 있다.

 

 

3)   감동적인 장절

 

추후에 보충

 

3.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들어가는 말

 

8 서구인들의 정신에서 가장 커다란 에너지 체계를 지니는 것이 로맨틱 러브이다. 오늘날 서구 문화에서 로맨틱 러브가 삶의 의미나 초월성, 온전성, 그리고 황홀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종교를 대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8 대중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로맨틱 러브는 서양에서만 관찰되는 독특한 것이다. 오로지 로맨틱 러브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8 동양인들은 서양인들과는 달리 관계에 있어서 각자가 지니는 이상을 상대에게 부과하지 않을 뿐더러 서양인들 같은 요구나 기대를 상대방에게 하지 않는다.

과연?

 

9 로맨틱 러브는 단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랑에 빠져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심리학적 현상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의미가 상대를 통해서 드러났다고 믿는다. 갑자기 평범하던 삶이 높이 고양되어서 완전해진 듯 하다. 초인적인 강렬함도 맛본다. 이러한 느낌이 들 때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우리가 지닌 심리학적 꾸러미 속에는 사랑하는 연인이나 배우자는 언제나 이런 황홀경과 열렬함을 제공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요구도 포함되어 있다.

 

11 로맨틱 러브는 여러 문화권에서 존재했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 그리고 고대 페르시아, 봉건적인 일본의 문학작품에서 로맨틱 러브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현재의 서구 사회만이 유일하게 로맨틱 러브를 대중문화 현상으로 경험하고 있다. 로맨스를 모든 결혼과 사랑하는 관계의 토대로 삼고, ‘진정한 사랑’이라는 문화적 이상으로 간주하는 유일한 사회가 바로 현대의 서구 사회이다.

 

11 로맨틱 러브에 대한 이상은 중세 서양에서 탄생했다. 맨 처음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신화로 서구 문학에 등장하게 되었다. 뒤를 이어 음유시인들이 연시나 노래로 발전시켰다. 흔히 말하는 코틀리 러브가 바로 그것이다.

*코틀리 러브 : 중세 기사들이 이상적인 여인을 자신의 영적인 영감과 완전함과 미의 상징으로 숭배한 사랑의 형태. 로맨틱 러브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으며, 흠모하는 여인과 영성적 사랑을 추구하였을 뿐 섹스나 혼인은 연류되지 않았다.

 

12 현대에는 코틀리 러브, 섹스, 혼인이 뒤죽박죽되었다.

 

12 융박사는 거대한 심리학적 현상이 갑자기 개인의 삶에 등장할 때 이는 무의식의 엄청난 잠재력이 의식으로 탄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밝혀 주었다.

 

12 남성과 여성이 로맨틱 러브의 이면에 있는 심리학적 동력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의식적으로 로맨틱 러브를 다루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면 관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게 될 것이다. 이는 상대방과의 관계만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포함한다.

 

13 이 책에서는 융 심리학의 원칙을 적용해서 신화의 상징을 해석하려 한다. 로맨틱 러브의 기원과 특질과 의미에 관해 신화가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바를 배우게 될 것이다.

 

13 파르시팔처럼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는 남성신화다.

 

13 이 신화는 남성 개개인의 의식 발달과정에 대한 생생한 그림을 드러내 주는 상징적인 태피스트리다. 한 남성이 먼저 남성성을 얻기 위해 분투하고, 여성성을 의식화하려 애쓰고, 사랑과 관계를 다루고자 고뇌한다.

 

 13 여성들에게도 이 신화는 커다란 가치와 흥미를 유발한다. 왜냐하면 트리스탄이 남성과 여성 둘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로맨틱 러브의 보편적인 동력을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13 여성들이 일생 동안 만나게 되는 남성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녀 자신 안에 작용하는 신비로운 힘을 더욱 명확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신화의 번역과 원전에 관한 주석

 

15 이 책은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의 융심리학적 해석이다. 신화를 문학작품으로서 학술적으로 연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신화를 통해 심리학적 통찰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특히 신화 가운데에서도 상징에 초점을 맞추었다.

 

15 책 읽기의 부드러운 흐름을 유지하기 위하여 원전을 명확히 밝히려고 사용하는 각주를 피하였다. 중세 문학을 탐구하는 학생들이나 학자들은 이미 원전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고, 이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학술적인 양식을 모방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이 책을 쓴 진정한 목적에 부합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화에 대한 전문가이면서도 이런 식의 대중을 위한 글을 썼다.

 

16 신화 판본은 잘 알려진 베디어 bedier의 채록을 주로 사용했다. 힐라이어 벨록과 폴 로젠펠드가 영어로 번역했다.

 

16 전공자이든 아니든 이 장엄한 신화번역의 전문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번역본은 진귀한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6 이 책에서 신화의 한 대목을 베디어의 채록에서 옮겨온 것과 함께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를 맨 처음 노래한 시인 베로울의 판본도 이용했는데 그 부분은 ‘사라의 묘약’의 마술적인 힘이 두 연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삼 년간을 기술하는 대목이다. 베로울의 판본을 사용한 이유는 그것이 맨 처음에 신화가 움튼, 흔히 말하는 ‘원형적인 토양’에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성들을 위한 주석

 

18 이 신화는 남성 심리에서 일어나는 로맨틱 러브의 동력을 기록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문화에 있는 여성성의 운명도 함께 반영하고 있다. 이 신화는 가부장적 사고체계로 인해 여성성의 가치인 감정과 관계성과 영혼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우리 문화에서 폐기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이 신화를 통해서 여성들이 얻을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통찰 하나를 들자면 대다수 남성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이 잃어버린 여성성을 찾으며, 삶 안에서 여성성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여기서 놓칠 수 없는 점은 남성들이 실현하지 못한 자신의 여성성을 상대방 여성에게서 발견하려 든다는 것이다.

 

18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남성들에게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여성들도 여성성을 대가로 지불하며 남성성의 가치만을 이상화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18 서양 여성들은 자기들이 서양 남성과 같은 심리학적인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여성들이 여성성을 대가로 지불하면서 편향적으로 남성성의 특질만을 경쟁적으로 숙련해 온 데에서 기인한다.

 

20 로맨틱 러브에 빠져 있을 때 여성은 남성과 다른 방식으로 이를 경험한다.

 

20 대다수의 여성은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려고, 또 거의 이해할 수 없어 보이는 남성의 감정이나 견해나 반응을 다루려고 엄청난 에너지를 허비한다.   

 

 

신화에 관하여

 

22 역사를 통틀어 인류가 지닌 가장 위대한 신화 중 하나가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다. 이 신화는 길가메시, 메어울프,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민담에 버금가는 힘과 위엄을 지니고 있다.

 

22 신화는 진실을 말하나 그 진실은 외부세계 즉 물리적인 감각으로는 진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신화는 심리학적 상황이나 내적인 정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진실을 말해 준다.

 

23 칼 융은 신화도 무의식의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꿈은 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동력을 표현하는 데 반해, 신화는 전체 사회, 문화, 민족의 집단적인 동력을 표현한다. 신화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기에 민족 전체가 꾸는 집단적인 꿈이다.

 

24 이 신화는 서구인들의 정신이 진화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로맨틱 러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다. 로맨틱 러브를 의식적으로 살아내는 법을 배울 때만 의식 진화의 한 단계를 넘어가게 될 것이고, 온전성을 획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심리학적으로 로맨틱 러브가 제공하려는 교훈이자 힘이다.

 

25 의식의 진화에서는 우리를 가장 머리 아프게 만드는 것이 언제나 최고로 풍요로운 기회가 된다. 선불교에서는 내적 성장은 항상 ‘뜨겁게 달군 석탄을 목구멍으로 삼키는’ 경험을 수반한다고 가르친다.

 

25 융은 인간의 정신은 언제나 전일성을 향해 매진하고, 의식을 더 크게 확장하려 하고, 이를 완성하려 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무의식은 그 안에 담긴 내용물들을 의식으로 이동시키기를 추구하는데, 무의식의 내용물들이 의식에서 훨씬 완전하고, 의식적인 개성으로 동화됨으로써 실질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7 위대한 신화는 모든 사람의 삶에서 진행되고 있는 단계별 성장에 대한 상징적 기록이다.

 

27 트리스탄과 이졸데 신화는 심리학적 발달단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는 서양정신의 상징적 청사진이다. 이 신화는 상황에 내재되어 있는 갈등이나 환상 뿐 아니라 잠재력까지 드러내 준다.

 

 

1부 신화이야기 1 : 트리스탄, 탄생부터 위대한 기사로 자라기까지

 

각 부분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신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각 키워드에 대한 존슨의 해석이 뒤따른다.

 

1.     블랑시 플레르

 

43 트리스탄의 탄생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트리스탄의 어머니는 트리스탄이 지상에서 삶을 시작하던 첫날 유명을 달리한다.

 

43 트리스탄은 현대 서양 남성의 원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니를 잃은 트리스탄의 경험은 트리스탄이라는 한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트리스탄의 상실은 우리 현대인의 상실을 뜻한다.

 

44 심리학적으로 현대는 트리스탄이 탄생한 또 이 신화가 탄생한 12세기에서 비롯된다. 인류 역사상 12세기는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44 한 그루의 나무가 거목이 되려면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조금씩 자라야 하듯, 집단의 심리도 세기를 거듭하는 동안 서서히 성장한다. 괄목하리만치 진화하는 집단의 정신을 이야기할 때, 천 년이란 세월은 과히 긴 시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

 

44 트리스탄은 인류역사에 새롭게 탄생한 신인간이다.  중세에 태어나 현대 서양인으로 자라기까지 대략 천 년이 걸렸다. 

 

44 트리스탄의 부모인 블랑시 플레르와 리바론 왕이 상징하는 바는 구질서와 고대 유럽의 정신이다.

 

44 블랑시 프레르의 비극적인 죽음은 트리스탄에게 슬프고도 왜곡된 세계를 남긴다. 그에게서 여성성의 흔적을 깡그리 앗아가 버린 것이다. 블랑시 플레르는 또 내면의 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현대인에게도 트리스탄과 마찬가지로 이 왜곡된 세계가 상속되었다.

 

45 역사적인 차원에서 블랑시플레르가 죽은 날에 대한 깊은 애도가 필요하다. 이날은 가부장저인 가치관으로 인해 개개인의 심리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에서 여성성이 완전히 근절된 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45 트리스탄의 세계는 삶에서 남성성적인 측면에서만 그 중심을 두고 있다.

 

45 트리스탄에게 명백하게 드러나는 이런 경향이 이 시기의 사회문화 전반에 팽배해 있는데, 집단을 대표하는 왕도 예외는 아니다. 마크 왕에게는 왕비가 없고, 하나뿐인 여동생 블랑시플레르도 죽어버린다. 이 말은 삶에서 여성성을 대변하는 사랑, 정서적인 관계, 내면화, 직관, 서정적인 경험이 소멸되었다는 뜻이다. 콘월에서도 리오네스에서도 여성성을 대변하는 측면은 찾아볼 수 없다. 트리스탄에게 남아 있는 것 중에서 유일하게 여성성적 측면을 대변하는 것이 하프이다.

 

49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여성성의 특질이다.

 

49 오늘날 블랑시플레르르 의식으로 다시 부러내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려 하고, 애정을 표현하고 직관적인 면을 일깨우려 한다.

 

49 왜 블랑시 플레르가 죽었을까? 왜 서양인들은 사랑하고 느끼고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이 지경이 되도록 상실해 버렸을까? 블랑시 플레르를 보라, 그녀의 온 사방이 전쟁으로 에워싸여 있다. 전쟁을 도와주었던 동맹국의 왕과 혼인을 하고, 남편은 다른 전쟁으로 삶을 소진하다가 결국 전쟁터에서 살해된다. 우리 문화에서 무일 내면세계의 여성의 운명도 블랑시플레르와 비슷하다. 우리 내면의 여성도 언제나 군영을 따라 이동한다.

 

2.     슬픔의 아들

 

51 마크왕과 리바론 왕, 그리고 몰간 공작의 세계가 상징하는 바는 명백히 가부장적 가치관이다.

 

52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슬픔은 우리가 훼손했고 집단적으로 배격해 왔던 여성성의 가치를 상실한 데서 비롯된다.

 

53 마크왕은 여동생을 사랑하긴 하지만 영토를 수호하는데 도움이 된 자에게 보답하고, 그와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여동생을 내준다. 이는 필요에 따른 거래다. 블랑시플레르는 일종의 재산인 것이다. 남성성의 자아가 힘을 추구하는 욕구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이용한다.

 

54 몰간 공작은 정신의 반쪽인 남성성만 있는 인물이다. 내면의 여성성과의 접촉을 완전히 실패했다. 내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랑과 감정과 인간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힘을 추구하느라고 인간적이고 부드러운 것은 모조리 파괴하는 잔인함밖에 남지 않은 안타까운 인간이다. 우리가 자신에게 솔직하다면 우리 내면세계에서도 몰간 공작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

인간성상실, 공동체 붕괴, 자연환경 파괴라는 현대 문명의 폐해가 여성성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무시한 결과와 관련이 되는구나.

 

55 남성성의 마음이 여성성이라는 다른 대극없이 살아보려 애쓴다면 이런 남성은 균형을 잃는다. 병이 들어 결국은 괴물같이 변할 것이다. 사랑 없는 힘에는 잔인함만 남는다. 역으로 남성성의 힘이 없는 감정은 야만적인 감상주의가 된다. 편향적인 특질을 지닌 채 다른 쪽과 조화를 이루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는 자기 영혼에 대한 독재를 하는 것이다. 몰간 공작이 바로 이런 인물이다.

 

55 인간 정신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부분이 완전함과 전일성과 균형을 추구하려는 욕구이다.

 

56 트리스탄은 분명 영웅이다. 몰간 공작과 대적해서 그를 물리치고 생득권을 재탈환한다. 그리고 이졸데를 찾아내서 블랑시플레르가 부활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 현대인은 모두 트리스탄인데 우리 각자의 내면에 트리스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트리스탄의 슬픔, 트리스탄의 도전과 희망 또한 지니고 있다.

 

 

3.     의식의 섬, 신의 바다

 

58 우리 시대에는 다른 신화, 다른 상징을 가지고 있는데 우주인과 우주선이 선조들의 아일랜드와 인도를 대신한다. 다른 행성이나 다른 은하에 사는 인류보다 훨씬 문명화되고 지적인 외계인이 우주선을 타고 와서 지구인에게 새로운 지식과 놀라운 것들을 가르친다. 이런 신화적 지도는 각각 인간 정신을 묘사한다. 자아는 콘월이라는 작은 섬에 있다.

 

59 자아가 전일성을 향해 여정을 시작하려 할 때는 이상하고 역설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마구 일어나게 된다. 운명이 이상야릇한 밀사를 고용해서 트리스탄을 이 방향으로 몰아붙인다.

 

60 소년 삼백 명과 소녀 삼백 명을 바치는 조공이란 실로 끔찍하고 잔인한 것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지배적인 가부장적 태도에만 매달려 내면의 여성과 평화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내면의 여성은 조공을 요구한다.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강력한 잠재력을 의식적으로 통합하길 거부할 때 무의식은 어떻게든 조공을 바치게 만드는데, 조공의 형태는 신경증이나 강박적 무드, 우울증, 강박관념, 상상의 각종 질병, 마비성 우울증 등으로 나타난다.

 

61 우리 대다수는 충동적이고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삶에서 여성성의 면을 살아내려 애쓴다. 만일 우리가 훨씬 의식적으로 여성성의 측면을 살아낸다면 아스피린의 판매량은 현격히 떨어질 것이다.

 

 

4.     검과 하프

 

64 영웅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는 칼이요, 다른 하나는 하프이다. 트리스탄은 싸우기 위해 검이 필요하다. 내적인 차원에서 검이란 분할하고, 분석하고, 구분하는 지성이다. 그렇지만 몰홀트와 싸우다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트리스탄에게 검은 무용지물이다. 이때는 검 대신에 하프를 잡는데 물 위의 여정을 바로 하프의 힘으로 하게 된다. 하프는 음유적, 감정적 측면을 나타내고 내면의 여성과 조응한다. 트리스탄이 가지고 있는 하프의 힘이 그에게 정서를 드러내고, 사랑을 표현하고 관계를 맺도록 한다. 하프는 삶의 가치에 대한 감각을 계발하는 힘을 나타낸다.

 

65 완전한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두 가지를 겸비해야 한다. 칼 없는 하프는 무력하다. 그렇지만 하프 없는 칼은 자아가 지배하는 잔혹한 힘으로 둔갑한다.

 

65 칼로는 관계를 만들어가지 못한다. 칼은 자르고 쪼개기만 한다. 만일 기존의 체계를 치유하려 하거나 새로이 관계를 형성하려 한다면, 반드시 하프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사랑, 감정이나 헌신을 서로 표현함으로써 타인과의 관계를 굳건히 할 수 있는데 이는 절대불변의 법칙이다.

 

66 반대 극으로의 전환. 대단히 편향된 가부장적 태도가 똑 같은 정도로 균형을 상실한 극단적인 여성성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이런 반전을 여성성과 남성성의 통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가부장제의 반대쪽 극인 여성성의 통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며 무의식적 여성의 노예상태로 전락하는 것이다. 만일 남성이 이 싸움에 패배해서 조공을 바치거나 몰홀트와의 전투에서 자아가 파괴되어 버린다면 이 남성은 자신의 남성성을 잃어버리고 여성성의 노예가 된다.

 

67 남성의 자아는 여성성과 평화를 유지하기 전에 그리고 여성성과 남성성이 혼인을 하기 전에, 먼저 몰홀트와 전투부터 해야 한다. 남성은 먼저 내면의 여성이 일으키는 원시적인 힘에 대항해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남성성의 자아를 충분히 계발하고 나서야 강력한 내면의 여성성에 접근할 수 있다.

 

68 영웅의 첫번째 임무는 자신의 남성성부터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남성이 칼을 바르게 사용하는 길이다. 남성은 의식적인 삶을 방어할 칼의 힘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또 무의식적 여정을 행할 하프의 힘도 지녀야 한다.

 

69 독가시는 결국 내면의 여성과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독은 남성으로 하여금 자만에 빠지지 못하도록 하고, 자발적으로 여성성을 향해 다가가도록 만든다.

 

69 ‘어떤 땅이든 상관없어. 그저 나의 상처를 치유하기만 한다면……’ 트리스탄은 자신을 무의식에 온전히 내맡기고 새로운 의식의 섬을 발견할 때까지 그저 표류한다.

 

70 내면의 여성이 갖는 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들라면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힘이다. 상황이나 사람을 조정하려던 시도를 중단하고 자아가 하려는 통제도 포기한다. 운명이 상황을 이끌어 가도록 맡기고 우주의 순리를 기다리는 능력이다. 돛과 노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신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다.

 

70 칼을 놓는 대신 하프를 취하는 의미는 안내하고 기다리면서 부드러운 내면의 음성에 귀 기울인다는 뜻인데, 진정한 지혜는 논리나 행위를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나 직관 같은 비이성적이고 서정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2부 신화이야기 2 : 사랑의 와인에 취한 트리스탄

 

75 어느날 창가로 제비 두 마리가 날아든다. 새들이 금발 머리카락 몇 가닥을 물고 왔다. 마크 왕은 신하들을 불러 자신은 오직 이 머리카락 주인하고만 혼인하겠다고 선포한다….트리스탄은 자신이 왕위를 탐내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왕 앞에 나서서 무릎을 꿇으며 자신이 금발 머리카락의 주인을 찾아오겠노라고 맹세했다.

 

76 어느날 잔인한 용 한 마리가 해안에 나타나서 아일랜드의 해안 도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아일랜드 여왕이 전국에 선포하기를, 용을 물리치는 자가 있다면 자신의 딸 아름다운 이졸데와 혼인을 맺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78 아름다운 이졸데는 남몰래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치를 떤다. 트리스탄은 이졸데를 얻었으나 그녀를 모욕했다. 새가 물어다 준 황금 머리카락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거짓이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 그녀를 바치기 위한 계략이다. 트리스탄은 마크 왕에 대한 사랑 때문에 속임수를 쓰고 아름다운 이졸데를 힘으로 정복한 것이다. 트리스탄은 아일랜드로 왔다. 그리고 그는 파괴자가 된다. 속임수를 써서 아름다운 이졸데를 그의 어머니에게서 또 모국에서 떼어 놓는다. 사랑을 위해 이졸데와의 관계를 시도한 것이 아니라 이졸데를 전리품으로 적국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78 마법사 여왕은 아일랜드 산천에서 채취한 특별한 꽃과 잎사귀와 뿌리를 모아 포도주에 담근 후 주문을 외운다. 누구든 이것을 함께 마시면 온 감각과 온 생각이 상대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 사랑의 묘약의 힘은 삼 년 간 지속되면 삼년이 지나면 서서히 약해진다.

 

5.     사랑의 묘약을 맛보다

 

83 현대인들은 로맨틱 러브만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사랑한다면 당연히 로맨스여야 하고 로맨스가 있으면 관계는 곧 사랑이라고 추측한다.

 

84 로맨스가 사라진 뒤에도 사랑이 존재하는가? 이런 것을 상상한다는 게 현대인에게는 쉽지 앟다. 그렇지만 종종 로맨틱한 관계에서는 결핍된 무언가가 있을 수 있는데 사랑, 관계, 안정감, 약속 같은 단어들이다.

 

85 로맨틱 러브에 관한 서양인들의 이상은 12세기에 등장하는데, 이때가 트리스탄이 사라으이 묘약을 들이킨 시점이다. 처음에는 이런 문화적 현상을 코르테지아, 영어로는 코틀리 러브라고 불렀다. 코틀리 러브는 사랑 자체나 사랑하는 관계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관점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는 종교적 이상의 여향을 받아서 남녀 간의 사랑이 영성적인 관계로 이상화되었다. 트리스탄의 세계에서는 코틀리 러브가 가부장적 태도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했다. 이는 여성성을 이상화하는 것으로써, 실제 트리스탄 같은 거친 기사들에게 자신이 섬기고 숭배하는 아름다운 여성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우주적 여성을 숭배하도록 가르쳤다. 마법의 와인을 마시자 마자 트리스탄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숭배이다.

 

86 코틀리 러브의 규칙에 따라 개개의 기사들은 사랑에 관한한 모든 면에서 상대 여성에게 복종한다. 사랑과 관계, 예의와 기호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상대여성 쪽에서는 자신이 남성의 불멸의 연인이자 한 남자의 여왕이 된다.

코틀리 러브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기사와 상대 여성은 절대 성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 관계는 영성적인 것으로 이상화되어, 정제된 감정과 영성을 키우기 위해 고안된 것을써 관련된 두 사람 다 육체적인 측면을 넘어 그 이상의 차원으로 고양되어야 한다.

둘째, 서로 혼인을 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 기사들의 연인들은 이미 혼인을 한 상태이다. 기사는 상대 여성을 숭배하고 여성에게 봉사한다. 관계의 초점은 영성적 영감과 이상으로 상대 여성을 간주하는 것이지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것이 아니다. 친밀해지려면 상대를 평범한 인간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코틀리 러브에서는 상대 여성을 신격화한다. 상대 여성은 남성의 영혼 안에 거주하는 영원한 여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코틀리 러브에 연루된 두 사람은 타오르는 열정을 상대가 꺼뜨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자연히 이들은 서로를 항햔 강렬한 욕망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그렇지만 상대 여성을 원형 세계의 신적인 존재로 바라보기에 절대 결혼이나 섹스가 연관된 평범한 관계로 축소시키지 않는다.

 

87 남성들에게 이 여인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이 여인은 블랑시플레르이고 아름다운 이졸데고, 프시케이고 베아트리체이고 줄리엣이다. 신성을 지닌 원형적 인간이다.

 

88 성의 혁명에도 불구하고 모든 남녀관계를 성적으로 규정하려 드는 현대인들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로망스의 근본적인 심리학적 패턴을 갈구하고 있다. 상대 여성에게서 그 여성보다 훨씬 크고 완전하고 신적인 어떤 상징을 바라고 잇는 것이다. 육체적인 매력과 일상의 사랑을 넘어 모든 열정의 영감이 되는 숭배의 대상이기를 꿈꾼다. 로맨스에서는 영성적인 세계의 열렬함과 경이감 그리고 감내하기 어려운 찢기는 이별의 아픔을 추구한다. 마치 중세의 기사라도 된 양, 사랑을 통해 우리를 고양하고 세련되게 만들어 주고, 삶에 새롭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독특한 느낌을 기대한다. 블랑시플레르가 떠났을 때 상실했던 의미를 아름다운 이졸데의 등장으로 다시 염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혼외의 사랑을 꿈꾸어 볼 수도 있다. 혼외에서 일어나는 열정적인 관계를 부추기고 거기서 영속적이고 초인적인 강도를 지닌 영성적인 관계를 추구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결혼 관계를 대단히 취약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인간관계라는 측면에서도 대단히 위험한 접근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구애를 하거나 혼인을 할 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이상이 바로 로맨스다. 이런 이상이 우리로 하여금 절대 찾을 수 없는 완전함에 대해 목매게 만들어 끊임없는 불만족 상태로 남겨지도록 하는 씨를 뿌리게 된다. 이 불만족이 현대의 거의 모든 관계에 잿빛을 드리우며 신기루처럼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세계를 잡으려고 애타게 만든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를 ‘지금 이 자리’의 세계에서 취할 수 있는 기쁨과 아름다움에 대해 영구적으로 눈멀게 만든다. 이런 거대하고 끔찍한 문화적 신념체계가 우리에게 상속된 것이다.

코틀리 러브와 로맨틱 러브에 대한 기대에 대한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91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하나를 들라면, 인간관계의 토대가 되는 인간들 사이의 사랑과 내면세계로의 여정인 로맨틱 러브의 차이를 배우는 것이다. 사랑과 로맨스의 차이를 구분함으로써 사랑이 오히려 다른 차원으로 고양된다.

 

91 과거에 융은 중세 연금술을 인용하면서 ‘일단 분리된 것들만이 적절히 결합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6.     마법의 와인

 

93 당신은 언제나 내 존재의 이유였습니다.

당신을 흠모하는 것이 내게는 종교였습니다… 칼로스 알마란 <사랑 이야기>

 

94 기존의 트리스탄의 세계는 완전히 전복된다.

 

95 당신은 나의 주인이고 정복자라는 걸 모르세요? 저는 당신의 노예랍니다.

 

95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분명 ‘사랑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상대방과 사랑에 빠진 것인가? 그 둘은 지금 트랜스 상태다. 이 둘의 사랑은 상대를 알아가면서 서서히 찾아오는 평범한 인간들의 사랑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들은 마법적이고 초자연적인 단계의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 사랑은 개인적이지도 않고 자의적이지도 않다. ‘사랑과 사랑에 빠져있다.’

 

96 사랑에 빠져있을 때 우리는 마치 잃어버린 반쪽을 되찾은 듯 완전해지는 느낌을 받는다…삶이 한층 고양된 느낌을 받는다…강렬하고 초월적이고 장엄하다. 황홀경도 맛본다. 로맨틱 러브에서 우리는 사랑의 노예가 되고 사랑하는 사람 안에서 삶의 궁극적 의미와 충만함을 찾기를 갈망한다. 결국 사랑을 통해 온전함을 체험하기를 소망하게 된다. 우리가 말하는 이런 면들은 종교적 체험과 너무나 유사하다.

 

97 로맨틱 러브가 영성적인 영감과 연결되어 잇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수세기 전 코틀리 러브 초기에는 로맨틱 러브를 영성적인 사랑으로 간주했다.

 

97 로맨틱 러브의 환상 이면에는 인간적 사랑 너머의 무언가가 더 있다.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던 영적 체험, 곧 온전함의 비전이 사랑의 묘약 안에 마법과 요술과 초인적인 의미로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98 자아를 넘어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종교적 체험과 다르지 않다. 종교적인 목마름과 영성적인 영감은 바로 우리 삶의 전체성 즉 온전한 자기에 대한 갈망을 뜻하는데 이는 자아세계를 넘어선 광활한 무의식과 상징체계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상징들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로맨틱 러브의 신비를 여는 비밀의 열쇠 또한 이것이다.

 

99 불가해하게도 로맨틱 러브는 언제나 영성적인 영감과 연결되어 있다.

 

101 서양의 남성이 로맨틱 러브에서 무의식적이고 비자발적으로 추구하는 진실은 바로 자기 자신의 영혼에 있는 내면의 진실이었다.

 

101 실제 서양 남성은 로맨틱 러브라는 렌즈를 통해 자기 탐색과 비전을 상대 여성의 이미지에서 찾으려 자기 자신을 투사했던 것이다.

 

102 우리 문화에서는 현대인들의 종교 본능이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또 다른 양식으로도 표출될 길이 없어서 이런 것이 허용되는 장소로 옮겨온 것이다. 이 롬겨온 자리가 바로 로맨틱 러브이다. 자연히 사랑에 빠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삶이 온전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문화에서 심리학적인 에너지가 가장 많이 집적된 단일한 곳이 바로 로맨틱 러브인 것이다.

 

103 지혜를 얻기 위해 신화를 탐구한다는 말은 우리 정신의 근원적 토대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꿈과 신화에 등장하는 모든 상징들은 우리에게 역설을 받아들이도록 충격타를 가한다. 신화의 목적과 심리학적 역할은 기존에 의식하고 있던 ‘사실’에 충격을 가하여 무의식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것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상징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또 다시 확인하려고 무의식으로부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아직 우리가 배우지 못한 무언가를 말해 주려고 오기 때문이다. 

 

105 누군가와 압도적이고 황홀한 사랑에 빠지는 것은 깊은 무의식의 정신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105 로맨틱 러브는 이해나 통제의 범위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삶을 통제하려는 우리의 환상을 깨부수는 힘 가운데 하나이다. 반면 기존의 종교나 교회는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있다는 환상을 파괴하려는 노력을 중단한 지 오래다.

 

108 융은 종교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과 무의식의 깊은 곳을 탐구하는 것은 같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109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가부장적 가치관은 내재적으로 전체가 아니라 부분이다. 인간 본성 중 남성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여성성을 대가로 지불했고, 자연히 온전함을 잃어버리는 대가를 치렀다. 이 편협함은 무의식과 감정, 여성성과 우리의 영혼에 등돌린 삶을 살아온 증거이기도 하다. 이렇게 남성성만으로 쌓아올린 고립된 마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에게 유일하게 취약한 곳, 즉 우리 영혼의 무장을 뚫고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로맨틱 러브이다.

 

109 우리의 온전함을 향향 본능을 완전한 사랑에 투사한 것이 로맨틱 러브이다.

 

 

7.     아름다운 이졸데

 

113 이졸데는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영원한 여성성의 상징이며, 남성의 정신에 거주하는 여신으로서 남성에게 삶의 의미에 대한 감각을 자극하는 아름다움과 완전함의 이미지를 체현하는 존재다. 융은 우리 정신에서 이런 측면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름이 아니마다. 아니마는 ‘영혼’을 뜻하는 라틴어다. 아니마는 남성을 어던 특별한 종류의 관계로 이끄는데 내면의 자신, 내적세계 즉 무의식의 세계와 자신의 내적 영역과 관계를 맺는 능력을 체현한다.

 

114 남성과 여성에게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로맨틱 러브를 할 때 항상 남녀 모두 영혼의 이미지를 서로에게 투사한다는 점이다.

 

115 모든 어머니와 사랑하는 여인들은 시대를 초월해 편재해 있는 이 이미지를 체현하기를 강요받을 뿐만 아니라, 이런 이미지의 보유자이기를 강요당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투사되고 있는 이 이미지는 남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심오한 실체와 일치한다.

 

116 융 심리학에서 영혼은 확고한 실체이다. 영혼에 대해 융은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영혼은 말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허구는 아니다. 영혼은 심리학적 실체이고 정신의 기관이다. 영혼은 자아를 넘어 무의식의 영역에 있으면서 무의식과 자아 사이를 중재한다. 융 박사는 영혼은 ‘수신자이자 전달자’라고 말했다.

둘째 여혼이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거나 무의식을 표현할 때는 상징의 형태로 등장하는데 꿈, 비전, 판타지 등 어떤 식으로든 무의식으로부터 상상의 형태로 흘러나온다.

셋째, 남성들에게 영혼의 상징은 여성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만일 남성이 이 사실을 깨달아 꿈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영혼의 상징으로 간주한다면 비로소 남성 내면에 존재하는 영혼의 소리에 따라 살 수 잇고, 상징으로써 이미지와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울 수 있다.

 

118 개개의 남성은 외부세계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상황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 자기 자신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후자가 훨씬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119 자기 내면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여신의 비전을 이졸데에게서 보게 된다. 트리스탄의 영혼에 몸이 주어진 것이 바로 이졸데이고 이졸데는 그의 영혼의 이미지이자 영혼의 상징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보게 되는 이런투사된 진실 속에 로맨틱 러브의 아름답고 좋은 면들이 들어있다.

 

120 정작 남자들은 자기 아내나 여자친구가 여신이 되기를 기대한다. 상대 여성이 바로 자신의 영혼이므로 영속적으로 완전함이나 황홀경의 비전을 상대가 제공해 주길 요구한다. 남성은 만나고 있는 여성에게서 자신의 영혼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럴 때 남성은 대체로 내면세계의 이상을 상대 여성에게 투사하느라 바빠서 실제 자기와 함께 하는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나 가치는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남성이 투사하던 것이 갑자기 증발해 버리면 더 이상 로맨틱한 감각으로 사랑에 빠져 있을 수가 없다. 이런 경우 대부분 다른 여성에게로 투사가 옮겨진다.

 

 

8.     사랑의 묘약과 그 역사

 

 

125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일어난 가장 강력한 흐름 중 하나를 들자면 마니키안 운동이다. 이 름이 유럽에서 카탈리즘으로 확산되엇다. 신도들이 스스로를 순수하다는 의미의 카탈이라고 부른 데에서 기인한다. 이들 사이에 바탕이 되는 믿음 중 하나는 ‘진정한 사랑’이었다. 이는 부부간에 존재하는 평범한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는 구원의 여성상을 숭배하는 사랑이었다. 카탈의 믿음에 의하면 여성을 향한 남성의 사랑은 하늘의 여왕을 위한 영적 사랑에 대한 지상적 비유라는 것이다.

 

126 이들은 종교에서 여성성을 되찾았다. 숭배의 초점은 구원의 여신에게 있었다. 여신은 순수한 빛 그 자체로 우리를 신의 현존으로 안내하기 위해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다. 카탈에 속하는 남성이 육체에서 해방되는 연습을 하자면 여성을 아내나 인간적인 동반자나 성적인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구원자와 같은 이미지로 보아야 한다. 여성을 열렬히 흠모는 하되 항상 상징으로 그리고 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순수함과 빛을 상기시키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 

 

127 교황이 카탈리즘을 이단으로 선언함으로써 클레보의 성 버나드가 이를 혹독한 성전으로 간주하고 지하로 옮겨갔다. 그러나 어둠 속에 살아 있는 모든 강렬한 아이디어들이 그러하듯 이 에너지는 다른 형태 즉 세속적인 형태로 되돌아왔다. 카탈의 가르침과 아이디어는 갑자기 코틀리 러브로, 로맨스로, 음유시인의 시와 노래로 되살아났다. 일부 문화적 역사가들은 코틀리 러브는 심사숙고하여 등장한 세속적 카탈리즘의 연장이었다고 믿는다.

 

128 여성이 남성 내면의 아니마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세의 이면에는 남성들은 여전히 가부장적 태도에 사로잡혀 있다. 여성을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부드러움과 연약함으리 소유자로 보았다. 그렇지만 이런 것이 여성 본래의 특질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남성 자신의 여성성을 더 잘 드러낸 것이다. 남성들은 아직까지 여성을 어떤 상징으로 바라보기를 멈춘 적이 없다. 여성을 단순히 여성이나 인간 자체로 보지 못하는데 이는 남성들이 자기 내면의 여성을 향해 느끼는 애매모호함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129 초창기의 코틀리 러브를 하던 선조들과는 달리 섹스나 혼인과 이런 흠모를 뒤섞은 우리는 이상화된 여인이 밥상을 차리고 공과금을 내고 자녀를 잘 돌보기도 해야 하므로, 개인적인 삶과 이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131 카탈의 종교와 그 종교의 자손인 코틀리 러브는 서양인들의 마음에 가장 장엄한 판타지를 불러일으켰는데 이런 판타지가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는 로맨틱 러브에 관한 판타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9.     기만과 힘

 

134 그가 진정으로 뜻하는 바는 신하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졸데를 볼모로 이용하려는 것이다. 트리스탄이 이졸데를 데려오려는 의도는 트로피처럼 자기의 남자다움을 과시하고 자랑거리로 삼으려는 것이다.

 

135 마크왕이 혼인을 거부한다는 것은 불길한 상징이다. 신화나 꿈에서 왕이 여왕을 맞아 계승자를 생산하는데 실패한다는 의미는 온전해지길 거부한다는 뜻이다. 성장을 거부하고 태어날 아기의 형태로 올 새로운 운명을 거절하는 것이다.

나는 태어날 아이의 형태로 올 새로운 운명에 동의합니다.

 

136 정신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왕과 왕비는 온전한 자기로의 진화를 상징한다. 새로 태어난 왕권 계승자는 우리에게 잠재력으로 머물러 있던 새로운 의식이나 새로운 힘의 탄생을 상징한다.

 

136 왕권에 관한 각자의 태도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 개개인의 내면에는 원형적인 왕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왕과 왕비의 혼인이 뜻하는 바는 이곳에 남성성의 가치와 여성성의 가치가 통합될 잠재력이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136 마크왕이 여왕을 맞기를 거절한다는 것은 서양 남성이 여성성을 이미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성을 회복하는 데도 관심이 없다, 이는 왕이 자기 자신을 상실했다는 인식조차 못하는 상태라는 뜻이다.

 

138 이졸데를 남성 자아와 동맹을 승인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트리스탄의 태도가 우리에게도 빈번히 관찰된다.

 

140 손에 칼을 든 상태의 아니마는 위험한 존재이고 파괴의 여정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아니마는 이졸데처럼 평화를 선사한다.

 

141 트리스탄은 자신의 의식적인 동기 아래에 이졸데를 향하는 무의식적 끌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영혼은 어리석지 않다. 이졸데가 트리스탄을 믿는 이유는 이졸데는 트리스탄의 거짓말 아래에 감추어져 있는 내면의 진실을 듣기 때문이다.

 

 

3부 신화이야기 3 ; 마법의 과수원을 헤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147 첫날밤 이졸데는 브랑긴을 왕의 침소에 들여보낸다. 최상의 옷을 입히고 화려하게 치장하여서 마법을 건다. 왕이 완벽하게 속아 넘어가도록 한 것이다. 의도대로 왕은 아무 눈치도 못챈다. 콘윌의 해안에 발을 들여놓기 전, 여왕이 사랑하는 조카의 품에 순결을 바쳤다는 사실을 절대 눈치 채지 못한다.

 

149 둘 사이에 교환되는 눈빛이 바로 이런 것이다. 눈이 어두운 사람들조차 이들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150 증거가 너무 명백해서 왕은 상처입은 멧돼지처럼 진노하고 둘을 태워 죽이라고 명한다. 화형장으로 가는 길에 트리스탄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의 조그마한 예배당으로 안내된다.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다. 강한 바람이 그의 외투를 낚아채 낙하산 구실을 하게 만든다.

 

151 분노로 들끓는 왕은 이졸데를 문둥이들에게 주어 버린다. 이들이 이졸데를 겁탈하게 만들어 이졸데가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고통받으면서 죽어가게 내버려 두려는 것이다. 그러나 트리스탄이 문둥이들에게 돌진해서 이들을 찔러 죽이고 이졸데를 낚아채 그녀와 함께 야생의 땅, 모로이스 숲으로 달아난다.  

 

151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은 삼 년 간 이 야생의 숲에서 지낸다. 이들은 풀뿌리로 연명하면서 짐승을 잡아먹고 산다. 살가죽이 여읜 몸에 달라붙어 융기도 빠지고 점점 핼쑥해져 간다. 옷은 이미 누더기로 변했다. 그러나 둘은 서로를 응시하고 있고 사랑의 묘약은 이들의 몸 안에 흐르고 있다. 이들은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153 연인들이 눈에 뜨인다. 이들은 옷은 입은 채 땅바닥에 누워 있는데 트리스탄의 검이 그 둘 사이에 놓여 있다. 둘은 순결하고 정직한 얼굴이다.

 

153 서로를 향한 광적인 사랑으로 숲에서 함께 살아온 이 오랜 세월동안 둘은 검을 가운데 놓고 지내왔었는지요? 칼집에서 빠진 칼이 두 몸 사이를 가르며 놓여 있을 때  이것이 순결을 지키는 증거라는 사실을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지 않은지요?...마크왕은 자기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이졸데에게 끼워준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놓인 트리스탄의 검을 거두고 그 자리에 자기의 검을 놓는다. 용서와 화해의 증표를 남기고 왕은 그 자리를 떠난다.

 

156 이졸데는 자신의 권리이기도 한 ‘신의 심판’을 치르게 해 줄 것을 왕에게 청한다. 이 심판의 절차는 먼저 쇠막대기를 벌겋게 달군 후 이졸데가 성인들의 유품을 걸고 진실을 맹세하고 뜨거운 쇠막대기를 맨손으로 들어올리는 것이다. 이때 이졸데가 진실을 말했다면 신이 이졸데의 손을 데이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졸데가 거짓을 말하면 자신을 반역했다는 증거로 손이 타들어 갈 것이다.

 

157 이졸데는 은밀히 이 계획을 트리스탄에게 기별하여 도움을 청한다. 가난한 순례자로 가장한 트리스탄의 옷은 완전히 누더기다.

“저 가난한 순례자에게 나를 데려다다오. 저 자의 도움을 받아 내가 이 진흙길을 건너고 백성들 앞에 더러워지자 않는 모습으로 설 것이다.”

트리스탄은 물이 얕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 배에서 여왕을 안아 올려 마른 땅에 내려준다.

 

158 “내 남편 마크 왕과 나를 배에서 내려 준 저 가난한 순례자를 제외하고는 어떤 인간도 여태껏 나를 품에 안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모든 성인들에게 맹세하노라.”

 

158 이 사건 이후 트리스탄은 콘월을 떠나지 않는다. 이들은 어둠을 틈타 밤마다 만나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나 염탐꾼들과 악한들이 규합하여 여왕을 감시한다. 마침내 트리스탄은 떠날 결심을 한다. 

 

10.   내면세계의 여왕

 

160 아름다운 이졸데와 콘월의 마크왕이 혼인을 한다는 사실은 아니마가 내면의 왕국으로 돌아와서 여성성과 남성성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자기가 완성되고 온전해진다는 의미다.

 

161 왕의 혼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아니마는 내면의 왕과 결합하는 것이 옳다는 사실이다. 이졸데는 내면의 여왕이다. 운명적으로 이졸데의 자리는 오직 한 곳뿐이다. 내면의 왕 마크왕 왕좌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여왕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한다면 트리스탄이 마크 왕을 배반하는 행위는 결국 왕국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졸데가 마크왕과 결혼을 했을 때 치유의 기쁨이 전 영토에 넘쳤다.

 

162 이 신화의 딜레마인 모드 갈등과 혼란과 고통의 근원은 단순하게 하나로 귀결된다. 트리스탄이 여왕을 자기 혼자 소유하기 위한 권리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체 왕국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여왕을 한 개인이 훔치는 것이다. 자아가 자기에 속하는 것을 횡령하는 행위이다.

 

162 우리는 아니마를 내면세계의 여왕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외부에 존재하는 육체적인 여성으로 만들려고 한다. 바로 투사를 통해 이러한 행위를 하고 있다. 이것은 자아의 방식으로 아니마를 소유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이고 그리하여 아니마를 육체를 가진 인간 속에 감금해서 개인적 차원으로, 외부세계의 존재로 그리고 육체적인 존재로 경험하려 드는 것이다.

 

162 아니마를 내면세계의 여왕으로 그녀의 심리학적인 역할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한 가지 구체적인 것이 요청되나. 남성은 기꺼이 외부세계에서 자기 연이에게 하고 있는 투사를 거두어들이려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남성 내면에서 아니마가 바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만이 남성으로 하여금 상대 여성을 그 사람 자체로 바라보게 만들고, 그녀로 하여금 남성 자신이 투사하는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하는 길이다.

 

163 아니마의 바른 자리가 어디인가? 자아와 무의식 사이에서 기능하면서 남성의 내면세계 즉 남성의 상상력 안에 존재하며 내면에서 그 남성에 게 영감을 제공한다.

 

164 아니마를 인간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우리는 영혼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다. 반면 여성을 신적인 존재로 만듦으로써 그들의 인간성은 보지 못하고 이들에게서 여성다움을 강탈해 버린다.

 

164 이졸데가 왕실의 혼인을 하고 여왕으로 즉위하는 이미지는 이졸데는 항상 내면세계의 여왕으로 남아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165 만일 트리스탄이 의식적으로 희생을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여왕을 왕좌로 돌려보내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이해했더라면, 그의 운명이 이 신화에서 전개되듯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165 외부세계에서는 다른 여인과 자유롭게 인간적인 사랑을 경험하고 내면의 여왕은 응당 그러하여야 하듯 자신의 권리로써 열렬히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11.   소나무 아래의 속임수

 

166 자신은 마법의 묘약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던 기존의 법으로 다룰 상태 이상으로 고양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168 이들은 정직하다. 이들은 가슴으로 순수하다. 엄청난 힘과 진실 앞에 노출된 이들은 기존의 삶의 태도를 상실한다. 이들은 다른 세계와 공명하고 있고 존재의 다른 차원을 경험하고 있다. 이 세계에서는 보통 인간 세상의 모든 준거에 반하는 것들이 있다.

 

169 마법의 과수원은 내면의 세계다. 외부세계의 시공간에만 익숙한 사람들은 아직까지 탐험해 본 적이 없는 세계다. 트리스탄이 사랑의 묘약을 마시기 전에는 존재하는 지도 몰랐다.

 

170 소나무 아래의 장면에서 사랑의 묘약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감잡을 수 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모든 감각까지 지워버린다. 게다가 삶을 유지하게 해 주는 것들, 즉 지상의 삶에서 절대 손상되어서는 안될 충성과 언약과 신의도 저버리게 만든다.

 

171 코틀리러브로 인해 새로운 가치들이 우리 문화로 유입되었다. 우리는 로맨스라는 가장 순수한 하나만을 추구하게 되는 게 이것은 열정이다. 열정을 위해서 우리는 모든 의무, 임무, 관계, 언약도 희생할 수 있다. 코틀리러브로 인해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로맨틱한 투사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찾는 것이라고 믿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식으로는 영혼을 찾을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곧 로맨스의 이상으로부터 배운 것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사랑에 빠지는’ 방식을 통해 궁극적인 황홀경을 추구하고 마법의 과수원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172 열정이란 잃어버린 신의 세계를 향해 뚫려 있는 일차선 도로인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통해 우리는 옳고 그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초래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옳다. 내 열정에 불을 붙이는 것이면 무엇이든 옳은 것이다.

 

172 전에 맺은 관계를 깨뜨리든 말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든 말든, 무의식적으로 열정을 최상의 선으로 간주하고 열정을 삶의 주요한 목표로 삼는다. 삶의 다른 가치는 열정 앞에서 희생된다.

 

172 현대 남성의 경우 자신의 영혼의 이미지를 아내에게 투사하면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전형적일 것이다. 따라서 투사가 사라지기 시작해야 남성은 자기 아내를 고유한 한 여성으로 알아가게 된다. 이럴 때 남성은 아내를 그 자체로 사랑하고 소중함을 인식하게 되고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173 남성은 자신의 아니마를 새로운 여성에게 투사한다. 아니마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면 이 남자가 느끼는 전부는 새로 등장한 눈앞의 여성이 완전함의 정수라는 느낌뿐이다. 황금빛이 그녀를 감싸고 있고 그녀와 함께 있으면 삶이 흥분되고 의미로 가득해짐을 느낀다.

 

173 바로 이 순간 정신에서는 서로 반목하는 두 팀이 칼날을 치켜세우고 내면의 전쟁에 돌입한다.  서로 다른 두 가지 도덕이 충돌한다. 자양분을 얻는 지속적인 사랑과 아내와그동안 쌓아올린 안정감과 상호신뢰를 소중히 여기라는 인간적인 도덕. 다른 쪽은 로맨스의 도덕이다. 남성의 삶은 아니마를 따를 때만 의미를 찾을 수 있고 특히 몸을 지닌 다른 여성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찾아야만 한다고 속삭인다. 다른 방식으로는 영혼을 찾을 길이 없다고 열정이 세상의 전부라고 말한다.

 

174 고대의 목소리인 카탈과 궁정의 모든 기사와 숙녀가 한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인다. 진정한 사랑이란 결혼 생활이나 보통의 관계에서는 찾을 수 없고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평범한 여성이 아니라 여신의 이미지를 지니는 여성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속삭인다.

 

174 후자의 도덕이 트리스탄을 사로잡았다.

 

175 열정에 대한 책임을 인간에 대한 책임의 대용물로 간주할 수 없다.

 

175 관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책임의 수반’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게 로맨스다. 그러나 관계를 위해 본질적인 것은 애정과 책임이다.  

 

175 남성이 한 여성과 결합되었을 때 언약을 한다. 그가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때, 심지어 열정의 불길이 더 이상 타오르지 않을 때조차도 그리고 더 이상 그 여성을 자기 영혼의 반영이나 완전함의 이상으로 보지 않을 때에라도, 그녀와 함께 하리라는 내적 확신이 있을 때 언약을 한다. 이 남성에게는 내면의 전투가 예고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177 키 큰 소나무 아래에서 두 개의 도덕이 노출되었다. 하나는 로맨스의 도덕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책임의 도덕이다. 

 

 

12.   모로이스에서 사년 째 되던 해

 

179 이졸데의 어머니 마법사 여왕은 삼년 간의 사랑을 위해 묘약을 만들었다. 주술이 삼 년 간 지속된다는 것은 그저 하다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사 년 째 되던 해 모로이스 숲을 떠나는 것도 우연한 사건은 아니다.

 

179 꿈과 신화에서 숫자 4가 등장하는 경우는, 물건이 넷이든 네 명의 사람이든 혹은 네 구획으로 나누어진 시간이든 무엇이든 간에 통합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181 삼 년이 지나자 갑자기 주문이 사라진다. 트리스탄이 꿈에서 깨어난다. 삼 년간의 긴 꿈이다.

삼 년이 되기 전에 다른 차원으로 진행해 가면 좋겠다. 부모로서. 희망사항.

 

183 이 순간이 정확하게 투사를 철회할 기회다. 진정한 관계를 시작할 기회의 순간이기도 하다. 만일 이를 볼 수 있고, 수용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숫자 4로 상징되는 진화이다.

 

183 사랑의 묘약이 지닌 힘에서 벗어나면 남성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과 자기가 그녀에게 투사한 것이 다른 두 실체라는 것을 볼 기회를 얻는다.

투사를 연장하려고 하지 말 것,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볼 것,

 

184 이상하게도 대다수 남성은 로맨틱 러브의 이 단계, 즉 주술이 깨지는 순간을 마치 커다란 불행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진화에 결정적인 때이고 경이로운 가능성이 펼쳐질 시점이다.

 

184 상대여성이 자신의 판타지를 체헌하는 존재가 아니라 단순한 인간이란 사실을 알고는 실망한다. 마치 상대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듯 행동한다.’

어이없다. 나는 그런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데

 

185 내면의 왕에게 영혼을 돌려준다는 의미는 바로 정확하게 이것이다. 자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여성에게 위임하는 대신에 자신의 영적인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이슈는 현대 남성들에게 언제나 고통스럽다. 남성들은 상대 여성을 통해 자신이 살아내지 못한 부분을 사는 패턴에 너무 익숙해져 잇어서 이 패턴을 포기한다는 게 커다란 비극처럼 다가온다.

 

185 남성들이 자신의 아니마를 여성에게 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추해 볼 정도로 객관적인 여성은 많지 않다.

 

186 우리 문화는 여성이 인간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가르치는 게 아니라, 남성의 이상이나 판타지를 투사하는 거울 역할을 하도록 훈련시킨다. 대다수 여성들은 이런 역할에 너무 익숙해져서 기존의 질서가 변화되는 데 저항을 한다. 이런 여성은 한 인간이기 보다는 계속 남성을 위한 여신 역할을 하려 든다. 분명 어떤 매력이 있다. 그러나 지불해야 할 대가도 있다. 자신을 여신으로 바라보는 남자와는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남성은 단지 자신의 투사, 즉 자기 내면의 신성과 관계를 맺을 뿐 상대 여성과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그러다 투사가 철회되거나 다른 여성에게 투사를 옮겨 갈 때는 숭배도 흠모고 함께 옮겨간다. 대다수는 이를 감지한다. 그래서 투사가 지속되도록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데, 관계에 판타지적 요소가 살아 있도록 해서 초인간적인 감정에 매달릴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애쓴다. 관계의 유일한 토대는 투사라는 전제가 들어있다. 투사가 걷히면 관계나 결혼의 토대가 사라지므로 결혼을 구하려고 투사를 조작하고, 투사를 지속하는 기술을 계발하려고 매진한다.

 

187 정말로 필요한 것은 투사의 증발이다. 궁극적으로 지속되는 관계란 서로를 평범하고 불완전한 인간 자체로 바라보면서 환상이나 과장된 기대없이 서로를 사랑하는 커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189 진화 단계에서 우리의 가능성이 가장 풍요롭게 드러나는 순간이 정확히 이 지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다수 사람들은 기회를 상실한다. 모로이스에서의 졸업을 거절하고 숲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는데 이 길은 투사의 숲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한다.

 

190 결혼이냐, 개성화냐 이것 아니면 저것 식으로 나눌 필요도 없다. 지금가지 이러한 것들을 하지 못한 이유가 결혼했기 때문도 아니고 더욱이 아내가 방해했기 때문도 아니다. 진정한 이유는 스스로 이런 것을 할 정도의 자제력과 상상력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가 그를 위해서 자신이 살지 않는 삶을 대신 살아주기를 기대했고 자신을 가꾸지 않으면서 온전해지기만을 바랐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닫는다. 대개는 노력없이 자기 문제를 해결해주고 자신의 삶을 완전하게 만들어줄 다른 여성을 찾게 된다. 여성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살아보려는 다람쥐 쳇바튀를 돌리는 것이다.

 

191 트리스탄에게 희생이 요구된다. 그에게 요청되는 희생은 아니마에 접근하는 방법과 여성에게 접근하는 방식의 구분이다.

 

192 트리스탄의 풍요로움은 두 배가 될 것이다. 한 이졸데는 트리스탄 영혼의 이미지로 관계하고 다른 한 이졸데는 평범한 여성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4부 신화이야기 4 : 흰 손의 이졸데를 발견한 트리스탄, 사랑과 죽음은 어떻게 뒤섞이나?

 

201 트리스탄은 흰 손의 이졸데가 선하고 아름다워 그녀를 사랑한다. 트리스탄은 캐헐딘도 사랑하고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기품 있는 기사로 행동한다.

 

202 트리스탄이 이야기를 꾸며낸다. 과거에 용과 싸우다 치명적인 상처를입고 죽어갈 때 여신이 자신을 치유해서 살려만 준다면 자기가 혼인하고 1년 동안 아내와 키스를 하거나 기쁨을 맛보지 않기로 맹세했다고 말한다.

 

203 사실을 듣게된 오빠는 트리스탄이 육체적으로는 아직 자기 동생과 혼인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엔 놀라기만 하던 캐헐딘에게 점차 분노가 치민다.

 

203 이제껏 은둔자 오그린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을 털어놓는다.

 

204 함께 틴타겔로 여행하자.

 

205 여왕은 트리스탄이 흰 손의 이졸데와 혼인했다는 소식을 이미 알고 있다. 여왕은 트리스탄이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를 자기보다 훨씬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지를 받으면 만나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았던가? 시종들을 시켜 트리스탄을 때려 내쫒으라고 명한다.

 

207 트리스탄이 칼학스로 돌아온다. 여전히 흰 손의 이졸데에게 손끝 하나 대기를 거부한다. 그의 얼굴에는 인간적인 행복의 빛이나 기쁨이 완전히 사라진다.

 

209 그 순간 아름다운 이졸데를 향한 복수심이 불타오른다. 조용히 남편에게 돌아와 말한다. “검은 돛이요” 트리스탄은 이졸데의 이름을 네 차례나 부르며 숨을 거둔다.

 

210 트리스탄의 주검 곁에는 흰 손의 이졸데가 웅크리고 있다. 자신이 저지른 사악한 행위로 인해 거의 반 미친 상태로 죽은 이를 부르며 애통해한다. 마침내 다른 이졸데가 들어와서 흰 손의 이졸데에게 말한다. “여인이여 일어나서 그 사람 곁에 내가 있도록 해 주세요. 내가 당신보다 더 그의 죽음을 애도할 이유가 많답니다. 부디 제 말을 믿어 주세요.”

흰 손의 이졸데가 동쪽을 향해서 신께 기도드릴 때, 아름다운 이졸데가 트리스탄의 주검을 조금 움직여 그의 시체 곁에 앉는다. 아름다운 이졸데가 트리스탄에게 입맞춤을 하고 그의 몸을 꼭 껴안은 채, 자신의 영혼을 포기한다. 트리스탄의 주검 곁에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슬픔으로 숨을 거둔다.

이 말이 마크왕의 귀에까지 전해진다. 왕은 바다를 건너와 둘의 시체를 콘윌의 집으로 데려간다. 예배당의 좌우에 좋은 자리를 찾아 나란히 무덤을 만들어준다. 어느 날 트리스탄의 무덤에서 장미 덩굴이 자라난다. 장미가 빠르게 자라나 교회를 타고 넘어 이졸데의 무덤으로 덩굴을 뻗어 뿌리를 내린다. 여러 세대가 지났지만 장미는 강하고 사랑스럽고 향기롭게 자라고 있다.

 

 

13.   수수께끼와 역설

 

214 대다수의 남성이 여전히 트리스탄의 패턴을 따르고 있다. 몸과 피를 지닌 여성이 남성의 삶에 등장해서 사랑을 하고 관계를 맺으려 할 때 종종 남성은 이런 여성을 거절하는 것으로 결말을 내리는데 이유는 자기 삶에 나타난 이 여성이 아름다운 이졸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남성 내면의 여성이 지닌 이상화된 완전함에 미치지 못한다.

 

215 만일 트리스탄이 이졸데를 끔찍이 사랑한다면, 왜 이졸데가 남편과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는 사랑하는 이의 행복이 아니라 고통을 바란다.

 

216 아름다운 이졸데의 사랑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트리스탄이 다른 여성과 혼인을 했다는 이류로 트리스탄을 경멸하는 이 사랑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름다운 이졸데는 마크왕과 혼인해서 왕과 함께 산다. 그런데도 트리스탄은 혼인을 하면 안되고 다른 여성을 사랑해서도 안된다. 이 이상한 기준들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트리스탄이 행복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216 서로 상대에게 신의를 지키는 길이 결국 이졸데의 남편인 마크왕과 트리스탄의 아내인 흰 손의 이졸데를 배신하는 길이다. 이 둘은 함께 가정을 꾸리길 거부하고 삶을 함께하길 거부하지만 상대가 정상적인 인간의 열정으로 다른 사람과 살아가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217 로맨틱러브는 신성한 두 가지의 사랑이 세속적으로 뒤섞여 혼란을 일으키는 상태다. 하나는 신적인 사랑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사랑이다.

 

218 최상의 낭만주의나 최선의 로맨틱 러브는 잃어버린 서양의 의식을 회복하려는 타당한 시도이다.

 

218 트리스탄과 아름다운 이졸데가 보여주는 끔찍한 비극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로맨틱 러브가 심리학적 진화에 필요한 단계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진화의 여정에서 반드시 로맨틱 러브를 거쳐야만 한다. 두 가지 사랑의 묘약을 뒤섞어 놓아 발생하는 혼란은 우리가 거쳐야만 하는 진화의 여정이다. 로맨틱 러브는 사랑의 터널 같은 것이다.

 

218 이 위대한 진화의 여정에 접촉하는 유일한 길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역설의 십자가에 매달려 배우고 있는 것이다.

 

219 우리의 과제는 로맨틱 러브를 의식화의 한 과정, 즉 의식을 확장하는 방편으로 삼아 정직하게 역설을 살아서 로맨틱 러브에 내포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트리스탄이 그토록 추구하는 아름다운 이졸데가 속한 신적인 세계와, 트리스탄이 무조건 거부하는 흰 손의 이졸데가 사는 인간적인 세게, 이 두 세계를 모두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14.   지상의 이졸데

 

220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그 모든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천상적인 사랑에서 인간적인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는 전환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220 로맨틱 러브의 커다란 역설 중 하나는 영원히 하나됨을 추구하지만 연루된 두 사람은 결코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221 서로를 사랑하기 보다 사랑 자체를 사랑하는 한, 육체를 지닌 인간의 관계로는 절대 정착하지 못하는 듯 하다.

 

221 간단히 말하면 아름다운 이졸데는 아니마다. 트리스탄이 이졸데에게서 추구하는 것은 신적인 사랑이다.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트리스탄은 내면세계로 향한 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이졸데가 그의 아니마이기 때문에 그녀는 내면의 이간 즉 상징으로 체험해야 하는 존재이다.

 

222 단순함은 자연스럽고 작고 덜 극적인 것에서 의미와 기쁨을 찾는 예술이다.

 

224 흰 손의 이졸데는 일상의 실질적인 일에도 능숙하다. 평범하고 인간적이고 지상적인 삶에서 기쁨을 느낀다. 그녀는 왕실 혈통을 이어받은 여성이지만 임신하고 아이를 키우며 요리를 하는 등 인간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일상의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녀는 지상의 여성이다. 이 여성이 남성으로 하여금 물질적인 세계와 관계를 맺도록 하고, 남성이 사람들과 일상의 삶을 나누게 하고 그리고 필요와 헌신과 의무와 시간과 공간에 속하는 인간적인 영역에서 구체화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물질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삶, 그리고 평범한 인간다움에 담긴 아름다움, 가치, 신성을 개개의 남성 내면에서 찾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225 흰 손의 이졸데는 삶에 관심이 있다. 마법의 과수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조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지상에서 함께 하는 동안 즉 칼학스에 사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트리스탄과 일생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트리스탄이 그녀를 사랑하기를 원한다.

 

226 아름다운 이졸데는 마법사다. 여신이다.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다.

 

226 아니마는 내적으로만 살아낼 수 있다. 외적으로 경험하려 든다면 문두이들이 함께 사는 위험한 모로이스의 숲 같은 곳에서나 가능하다. 절대로 그녀를 한시적이고 평범하며 단순한 인간관계나 의무에 묶어 둘 수 없다.

 

226 아니마의 욕구는 항상 우리를 내면의 세계로 데려가, 가없고 무한한 무의식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228 로맨틱 러브 전체에 깔려 있는 비극이 바로 이 잘못된 판단을 토대로 한 이상적인 목표 설정과 그에 따르는 맹세이다. 트리스탄은 단 하나만의 사랑을 지키겠다고 맹세한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이 단 하나의 사랑은 신적인 사랑이고 우리 각자의 내면세계로 인도하는 사랑이다. 그러나 트리스탄이 오로지 아니마를 향한 신적인 사랑만을 하겠다고 맹세한 순간, 그는 인간의 사랑을 포기하고 인간관계도 거부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 누릴 위대한 사랑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인간이 영위해야 할 위대한 세계도 둘이다. 트리스탄이 섬겨야 할 이졸데는 바로 둘 인 것이다. 로맨틱 러브의 커다란 오점을 하나 들자면 하나를 추구하면서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228 남성이 혼인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 하나를 지적하자면 혼인을 자기 내면에 있는 아니마와 관계를 맺는 시도로 이용하려 드는 것이다.

 

229 더 이상 현대인은 절이나 사원에서 명상을 하지 않으며, 그 대신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229 트리스탄이 혼인을 하고 아내를 거부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낭만주의의 커다란 결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결점은 부분적이라는 데 있다. 낭만주의는 서양인의 정신에서 편향성을 극복하고 신 체험 즉 내면세계나 신비, 신적인 사랑을 회복하려 든다. 그러나 균형을 유지하려는 모든 집단적인 시도가 그러하듯 대극을 편파적으로 다룬다. 황홀한 신적 세계라는 한쪽 극은 수용해서 이상화하는 반면 일상의 인간다움을 위한 다른 한쪽 극은 남겨두지 않는다. 로맨틱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의 의무와 엮임, 헌신과 한계성, 그리고 평범한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일상의 인간적 삶은 지나치게 땅적으로 여겨진다.

 

230 흰 손의 이졸데는 트리스탄의 영혼이 아니다.

 

230 혼인을 완전하게 만들기를 거절한다는 것은 트리스탄의 마음이 내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는 환상과 열정적인 비전에만 가 있어 평범한 여성과의 인간관계는 거절한다는 뜻이 된다.

 

232 흰 손의 이졸데가 상징하는 소위 인간의 사랑은 말 그대로 ‘사랑에 빠지는’ 경험과는 다르다. 남성을 위해 지상에 있는 여성을 인간의 방식으로 사랑한다는 의미는 남성이 투사하는 이상화된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233 사랑에 빠질 때는 상대 여성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이상인 아니마를 향한다. 나멍 내면에 존재하는 자신의 꿈, 환상, 희망, 기대, 열정을 외부 여성에게 부가하는 것이다.

 

233 트리스탄은 아름다운 이졸데가 고통스럽길 바라고 불행한 그의 삶에 동참하기를 원한다. 트리스탄의 사랑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이졸데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트리스탄의 관심은 오로지 아름다운 이졸데를 향한 자기 투사와 자기 열정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이 열정에 관해 트리스탄은 사랑의 묘약을 비난하지만 사실은 아름다운 이졸데에게 되돌아오는 여행을 열심히 반복하면서 삶의 자양분을 얻고 있는 것이다.

 

234 둘 다 상대방의 행복과 안녕보다는 오로지 둘 사이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하고 언젠가 둘이 함께 마법의 장소로 가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사실 이 둘은 열렬한 드라마가 유지되도록 서로를 이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34 이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추구하는 강렬하고 열정적인 경험을 위한 방편으로 상대들 이용할 뿐이다.

 

235 트리스탄이 꼭 해야 하는 혼인은 두 번이다. 첫 번째는 자신의 영혼, 즉 아름다운 이졸데와 내면의 혼인을 하는 것이다. 이 혼인은 내면세계로의 여정과 영성수련, 내면작업, 그리고 내면세계의 신들, 여신들과 함께 하는 삶으로 이루어진다. 두 번째 혼인은 흰 손의 이졸데와 하는 것이다. 이 혼인은 다른 존재와의 화합을 뜻하며, 타인을 인간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이 두 번의 혼인은 인간이 결속되는 두 가지의 특질을 반영한다. 하나는 인간과의 결합을, 다른 하나는 신과의 결합을 의미한다.

 

236 신저인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 이 두 가지의 사랑이 모두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므로 우리는 이 둘 사이의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237 로맨틱 러브의 문화적 뿌리 중 하나가 알비젠시안 이단으로, 12세기 서유럽에 존재했던 마니키안 이중성이라고 배웠다. 이 종교는 실체에서 신적인 절반은 절대 선이고 나머지 절반인 인간적인 삶은 절대 악이라고 가르친다. 알비젠시안들에게 유일한 선은 영성적인 영역에서만 존재하므로 ‘천상’에서만 찾을 수 있다. 육체적인 인간 존재나 평범한 인간의 삶, 성과 성적인 사랑 등의 물질적 세계 전체는 악으로 간주되고, 이미 부패했고 어둠의 구렁텅이라고 인식된다. 이 신학적인 표현을 트리스탄은 로맨스의 언어를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단 하나의 사랑을 섬기기로 한 나의 맹세를 상기하라.” 알비젠시안 이중성, 그리스도교의 이원론, 로맨틱한 이상주의, 이 모두가 신적인 사랑만을 섬겨야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238 흰 손의 이졸데 이야기는 트리스탄이 상시한 기회의 이야기다. 삶에는 두 가지 사랑이 있고 두 가지 다른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기회를 트리스탄은 놓쳤다. 만일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흰 손의 이졸데를 거절하지 않고 그녀를 통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트리스탄은 삶의 의미는 내면의 이상을 추구하는 데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칼학스의 성에 사는 육체를 지닌 여성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15.   고통과 죽음

 

242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미오와 줄리엣, 로맨스 문학은 전부 죽음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너무나 강렬해서 지상에서의 불완전한 삶을 받아들이기보단 다른 세계에 대한 희망을 품은 채 죽음을 택하게 만드는 이 강력한 이상주의가 도대체 무엇인가?

 

243 트리스탄은 아름다운 이졸데로 대변되는 내면세계의 이상에 진실하기 위해 아내를 거부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는 곧 삶 자체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곁에 있는 아내는 또 얼마나 가엾게 되는가?

 

247 ‘죽음의 땅’은 영혼의 세계, 내면의 세계이다. 무의식적인 깊이로 경험할 때, 죽음이 상징하는 가장 심오한 의미는 전환이다. 죽음은 정신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자아의 전환이며, 영혼을 만나서 더욱 무한한 우주의 광활함을 살아가기 위해 협소한 자아의 왕국을 포기하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 ‘’

248 우리를 기다리는 죽음은 자아의 죽음이다. 전환에는 반드시 죽음이 내포되어 있다.

 

250 트리스탄은 내면세계로 접촉할 수 있는 길이 두 가지라고 믿었다. 먼저, 아름다운 이졸데와의 열정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엑스타시를 통하는 길이다. 그 다음으로는 문자 그대로의 죽음, 즉 물리적인 이 세계를 떠나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더 좁아졌다. 우리는 대다수 로맨틱 러브라는 오직 한 길을 톻해서만 내면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50 서양인들은 지상에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신과 영성적인 삶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야 하는 세계는 두 세계이다. 우리 각자의 내면 세계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바깥의 일상 세계이다.

 

255 우리가 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고통을 수용한다면 돌아오는 무언가가 있다. 이 길이 진정한 전환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의식적으로 고통을 감내한다는 말은 자아의 죽음을 견뎌 낸다는 뜻이다. 자기가 상대에게 투사하는 부분을 자발적으로 거두어 들여 상대방을 통해 신적인 세계를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는 것이다. 대신 심리학적이고 종교적인 행위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발견해야 한다. 이는 자기 자신의 온전성을 발견할 책임, 즉 무의식에 내재된 잠재력을 찾아낼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기존의 자기 삶의 패턴에 질문을 던지고 기꺼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다. 이는 겪고 싶지 않는 갈등상황을 직면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고 자기 안의 표리 부동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힘든 일이다.

 

256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올바로 죽는다면 새로운 삶으로 향한 발견의 여정이 주어질 것이다. 

 

 

16.   이졸데 – 마야 : 환상의 춤

 

257 로맨틱 러브의 양극단을 바르게 살면 삶에 도움이 되지만 잘못 살면 삶이 파괴된다. 이런 점은 아니마의 양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마는 내면세계의 여왕인 아름다운 이졸데로서 남성이 가장 심오한 내면의 자신을 찾는데 인도자가 될 수 있다. 반면. 환상의 여신 마야로 둔갑할 수 있다.

 

259 힌두 신화에서 마야는 환상의 춤을 추는 여신이다. 인성과 실체 사이에 미세한 천을 짜서 드리워놓아 사물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우리의 시야를 왜곡한다.

 

258 아니마를 본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길은 투사를 철회하는 길이다. 융

 

262 아니마가 마야로 되는 것은 아니마 자체에 어떤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아니마를 대하는 자세에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니마는 남성의 영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영혼은 연애편지나 쓰기 위해 발명된 개념이 아니다. 영혼은 심리적인 장기이다. 영혼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무한을 향하게 만든다. 여혼은 유한한 상황을 무한하게 만드는 것이 영혼이다. 영혼은 개인의 경험을 거대한 원형적인 주제나 영원한 질문들, 그리고 성스러운 탐색과 십자군 전쟁으로 전환시킨다.

 

264 아니마는 각자의 일상사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은행 잔고가 남아 있는 지, 사람들과의 관계가 명쾌한지, 꽃밭 손질은 했는지 등에는 관심을두지 않는다. 영혼은 우주의 구좌에 관심을 가지며 천칭자리의 균형을 맞추려 든다. 이곳의 유일한 관심거리는 우리 각자의 내면의 전일성이다. 아니마의 가치는 인간적인 가치에 있지 않고 우주적인 가치에 있다. 아니마는 우리 각자가 우리 안에 잠재된 모든 거룩한 주제를 살려내고 경험하는가에 유일한 관심을 두고 있다.

 

265 명상, 꿈작업, 적극적 명상을 통해 남성은 자신의 영혼을 카멜롯으로 떠나보내고 기사들과의 모험에 동참할 수 있다.

 

267 고전적으로 아니마가 제 모습을 드러낸 각각의 경우를 살펴보면 아니마는 인간이 아니거나 반만 인간이다.

 

270 이 시점에 이르러 트리스탄과 아름다운 이졸데가 탄 배와 사랑의 묘약으로 돌아가게 된다. 신의 광휘가 우리에게 돌아오긴 했는데 그것이 종교적인 생활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투사와 환상을 통해서 돌아왔는지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그 답은 충격적이다. 우리에게 종교적인 삶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교회가 있고 도그마와 교리가 있다. 각종 견해들과 그룹도 있고 회합도 있다. 그렇지만 종교적인 삶은 없다. 우리가 영혼이나 내면의 삶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271 삶의 다른 차원에서 아니마를 위한 자리를 확고하게 만들 때 결혼과 두 사람의 관계와 개인의 삶에서 아니마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271 서양인들에게 요청되는 내면작업은 각자의 종교성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71 이런 이미지들을 진지하게 수용하고 성찰한다면 자신 안에 있는 대단히 중요한 힘, 즉 자신의 영혼이 상징의 형태로 보내주는 영적인 영역의 거주자들을 이해하게 된다.

 

272 이것이 인간이 거쳐야 하는 진화이고 분화이고 의식화이다.

 

 

5부 마무리

 

17. 하얀 들소 영의 여인

 

275 신화가 우리를 반추해 볼 수 있게 해 주듯이 우리가 지닌 문제에 대한 처방도 신화나 꿈이 내려주어야 할 것이다.

 

276 수우국 인디언

어리석은 정찰병이 그녀에게 다가가자 갑자기 흰 구름이 몰려와 이들을 뒤덮어 버린다. 잠시 뒤 아름다운 여인이 구름 밖으로 나왔고 바람이 구름을 쓸어갔다. 정찰병의 몸은 구더기로 뒤덮였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279 어리석은 정찰병처럼 아니마를 외부의 누군가에게 투사해서 물리적인 존재로 만들려들면 그녀의 신성함은 사라진다. 그녀가 주는 선물을 받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280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갈망하고 탐색하는데 써버린다. 무엇을 위한 갈망과 탐색인지 우리 자신도 모른다.

 

281 신성함은 감정이다. 특별히 삶의 가장 중심heart에 가 닿는 감정이다. 신성함은 경외감이기도 하다. 신성하다고 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우주와 연결된다.

 

287 하얀 들소 영의 여인이 지닌 위대한 힘을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현명한 정찰병이 그녀가 신성한 존재임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합당한 예를 표했기 때문이다.

 

290 영토 한가운데 커다란 티피를 세운다는 의미는 삶의 중심에 아니마를 위한 자리, 즉 ‘신성함’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라는 뜻이다. 이는 무의식과 우리 정신을 탐험하는 데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라는 의미이다. 자아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우리가 누구이지 또 우리 존재가 과연 무엇인지 발견하라는 뜻이다. 신성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할 때 서양인들에게 맨 먼저 요청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18. 성모 마리아의 종에 관한 꿈

 

295 이 꿈이 선명하게 답하고 있다. ‘신성한 영역은 본래 자리인 대성당으로 되돌려주고 인간적인 영역은 본래 자리인 일상의 단순함 속에서 살라’ 로맨틱 러브에서 우리의 영혼을 되찾아 와서 내면의 자리인 대성당으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296 이 종을 간직할 만큼 크고 강한 구조물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이 대성당이다.

 

296 12세기에 트리스탄이 맨 먼저 성당에서 종을 갖고 나와,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그 에너지를 연인관계 안에서 보듬어 보려 분투했었다. 트리스탄처럼 현대의 서구인들도 온갖 안간힘을 쓰면서 이 종을 지고 가려고만 한다. 개인의 삶 속에서 또 결혼 생활에, 그리고 세상에 구축한 자신만의 세계에 그 종을 간직하려 드는 것이다.

 

287 종은 실제 서양 종굥서 드물게 남아 있는 디오니소스적 잔재이다. 우리는 종소리를 통해 음악과 성가와 춤과 감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죽음과 부활이라는 우주적인 드라마와 하나되는 체험을 한다. 종소리는 하느님 앞에서 춤을 추었던 다비드 왕을 윌 안에서 다시 일깨운다.

 

298 매디신 파이프와 함께 종은 내면의 왕국에 속한다.

 

298 대성당으로 종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건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집단적인 종교를 택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 진정한 의미는 외부세계에 속한 삶과 내면의 자기에 속한 것을 구분하라는 것이다.

 

299 아니마를 대성당으로 돌려보내려면 남성은 그의 자아적인 삶에서 무엇인가를 희생해야만 한다. 이 말은 더 이상 남성의 영혼을 다른 여성에게 투사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자아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순간은 죽음과 같다. 투사를 통해 상대 여성에게서 자신의 아니마를 살리던 것을 포기하면 상대 여성과의 관계에서 느끼던 인위적이 강렬함의 대부분을 사라지게 한다. 결과적으로 관계가 훨씬 평범하고 고요하게 변화한다. 남성의 영혼을 대성당에 돌려준 채 외부의 여성과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남녀 관계에서 한 차원을 완전히 제거하여 그 차원을 내면세계에 배치한다는 뜻이다.

 

302 융박사는 내담자에게 가능하면 빨리 자기 선조들이 믿어온 종교로 되돌아가라고 권했다.

 

303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바깥 세계에서 접할 수 있는 집단적 종교가 아니라 정신에서 표출되는 신성한 세계에 대한 내적인 체험이다.

 

 

19. 인간적인 사랑에 대하여

 

307 사랑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보다는 우리는 누구인가와 더 관련된 문제이다. 사랑은 어떤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314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은 모든 수련 중에서 가장 위대한 수련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알 때 비로소 신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318 남녀가 친구가 될 때, 이들은 연인이자 이웃이 된다. 이들의 관계는 그야말로 네 자신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른다. 로맨틱 러브의 명백한 모순이라면 많은 커플이 자기 배우자보다 주변 친구들을 더 친절히 대하고, 더 배려하며, 더욱 너그러이 용서한다는 점이다. 자기 반려자보다는 자기 친구에게 더 잘 하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319 힌두인들은 혼례식에서 신랑신부가 ‘당신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것입니다’ 라고 엄숙히 맹세한다. 우정으로 함께 하며 우정에서 드러나는 특질을 참조로 사랑에서 초래되는 혼돈을 헤처 냐가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옮긴이의 글

 

326 저자 로버트 A. 존슨은 현대의 신화 중 단일한 것으로 로맨틱 러브만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이 없다고 통찰한다.

 

329 이 책들이 눈을 안으로 돌려 내면세계를 탐구하려는 독자들에게 영적 지도가 되어 주길 바란다.

 

용어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