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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6일 20시 33분 등록

비와 두 바퀴_구달칼럼#16

 

새벽, 반가운 비 소리에 잠이 깨었다. 주황빛 등을 킨다. 얼마나 기다렸던 빗소리인가! 비가 오면 광야로 가고 싶다. 대지가 비의 축복을 흠씬 받아들여 해갈을 하듯 내 바싹 마른 마음 밭에 듬뿍 물을 주고 싶다. 야성을 사랑하나 야성을 살지 못한 내 안의 늑대가 부르짖고 있다.

 

요 며칠 푹푹 찌는 열대야의 고통 속에 호수공원 분수대를 찾아 돗자리 펴고 잠을 청하던 사람들에겐 이 비는 그야말로 하늘의 축복일 것이다. 비바람이 벗어 던진 몸을 뚫고 들어올 때의 그 상쾌함이란…! 빗속을 자전거로 달릴 때의 호쾌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때면 나는 마치 내가 유영하는 물고기가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물 만난 물고기가 다름아닌 비 만난 라이더인가?  맞아, 이건 그 느낌이야! 아침마다 탕에 들어 목욕할 때 느끼는 물의 부드러움, 이건 분명 본향의 느낌이다. 나란 씨앗이 발아하던 그 시절 어머니의 자궁, 양수 속을 유영할 때의 그 느낌이야. 그 땐 아무 걱정 없었지. 그저 존재만으로도 충만했지. 물과 내가 하나가 된 느낌. 그 때의 기억을 더듬어 나는 비 속을 그렇게 질주했는가 보다.

 

밤새 빗물을 듬뿍 흡수한 초목의 푸른 빛에 눈이 시리다.  자전거로 빗 속을 질주할 때면 몸에 푸른 물이 뚝뚝 듣는 것 같다. 물아일여(物我一如) 의 순간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비 맞고 걸으면 좀 청승스런 느낌이 들지만 자전거로 비 속을 달리면 마치 개선장군이 된 양 뿌듯함이 있다. 자전거가 말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힘차게 페달을 밟을 때면 귓전을 스치는 이힝하는 바람소리가 말 울음 소리로 들릴 때가 있다. 내 속에 기마민족의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선지 어떤 이는 그 시절이 그리워 자전거로 몽골초원을 달리다가 눈빛이 푸른 늑대를 만나 자전거야 날 살려라하고 시속 50킬로란 초유의 괴력을 발휘하여 위기를 탈출했다고 한다. 다행히 마음 좋은 늑대가 그를 살려주었다. 몽골 초원은 진짜 말로 달려야 제 맛이겠지만 그나 나처럼 심취하다 보면 간혹 자전거도 말로 보이는가 보다.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비 속을 자전거로 질주할 때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다. 비란 것이 묘해서 마음을 울리며 달래주는 치유의 효과가 있다. 외로운 라이더에게 비는 눈물처럼 소리 없이 가슴에 스며들어 머나 먼 나그네 길을 위로한다.

 

한 신실한 성도의 때 이른 소천으로 비 오는 날 장지에 간 적이 있는데, 옆에 썼던 한 장로님이 참으로 구슬프게 많이도 우셨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그의 눈은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별이 묘연한 액체를 쉼 없이 뿌렸다. 난 그때 남자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래서 그분께 “눈물의 블루스”라는 아름다운 별명을 붙여드렸다. 그 분은 평소 감성이 풍부하기로 소문난 분이었는데 그것이 눈물로 증명이 된 셈이다.

 

눈물과 빗물은 마음을 적시는 액체란 점에서는 둘이 동급이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진다. 어찌된 셈인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를 때가 늘어났다.  증상이 심해져서 병원을 찾았더니 눈물샘이 막혔다고 한다. 뚫으려면 수술해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그냥 그대로 살다 죽기로 마음 먹었다. 눈물 줄줄 흘리며 말이다. 여태껏 너무 눈물 흘리지 않고 산 죄값음이려니 했다. 그 동안 눈물 없이 각박하게 살아 왔으니 이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감성 풍부한 인간으로 거듭나야겠다. 여자들이 감성 풍부하고 서로 간에 소통을 잘 하는 것은 그네들이 눈물이 많기 때문으로 나는 믿고 있다. 웃음과 마찬가지로 눈물 또한 절실한 감정의 표현인데 남자들은 오줌을 누면서도 흘려서는 안 되는 눈물에 대한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피는 있지만 눈물은 없는 이상한 인간이 된 것이다.

 

눈을 들어 단비 뿌린 광야를 바라보니 내 가슴 속에 두 바퀴는 달리고…. 바람결에 어떤 시상이 스친다.  문득 몇 년 전에 인구에 회자하던 유명한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왜 하필 자전거일까? 이 감성적인 카피의 매개가 자전거란 것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당시 광고주가 빈폴이라는 20대 젊은이를 주 타깃으로 하는 패션업체란 점을 감안한다면 도심 속 자연주의같은 빈폴의 슬로건을 20대의 감성으로 재창조해 낸 것일 것이다.

 

카피라이터인 박웅현이 그림은 그리움이다와 비슷한 뉘앙스로 자전거를 떠올린 것 같다. 여기서 자전거란 사랑을 품은 가슴이나 자연과 여행에의 그리움같은 젊은이의 코드를 건드려 유혹한 것일 게다. 내가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자전거에서 우리가 느끼는 일반적인 감성이다. 박웅현이 카피로 쓰기 전에도 우리는 자전거를 보면 어딘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가?  어떤 그리움, 사랑을 찾아서 자연 속으로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나그네를 연상시키는 것이 자전거라는 말이다.

 

이렇게 좋은 비가 올 때, 우리 한 라이딩해 볼까요? 그리움과 사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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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7 09:17:07 *.104.9.216
저는 자전거가 바빠서 부담스럽던데 형님은 자전거에서 평화를 얻으니 우린 참 다른 듯 또 같은 것 같습니다.

잠시도 쉬지않고 펌프질을 해야 하니 게으른 저는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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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09:01:52 *.196.54.42

잠시도 쉬지않고 펌프질을 하는 건 심장 아닌가? 자전거도 가다가 쉬고 누워 잘 수도 있죠 ㅎㅎ

피우리가 게으른 건 절대 아니고... 부지런 떠는 방식이 다른 거 겠지.

가령 난 제일 먼저 댓글 단다거나, 매일 같이 보이차 끊여대는 것에서는 그대처럼 부지런할 수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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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2:33:24 *.85.20.115

자전거와 함께 하는 이야기 좋은데요.

고즈넉한 들길을  달리는 기분입니다. 상쾌하기도 좀 쓸쓸하기도 하고..

구달님 감성과 눈물 앞으로 쭈욱 뵈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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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3:12:24 *.94.41.89

저도 모르게 우중 라이딩 하고 싶어지는 글이예요 ^^* 그리움과 사랑을 찾아 오늘도 고고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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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6:47:35 *.213.28.79

그 느낌이군요. 우중 라이딩이....저도 처음에 수영을 배우러 들어간 물에서

자유로움이 느껴져 깜짝 놀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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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23:06:35 *.222.10.126

10대 초반에는 두발로 온 동네를

10대 후반에는 자전거로 온 시내를

20대 초반에는 오토바이로 온 도시를

20대 후반에는 자동차로 온 나라를

30대에는 비행기로 온 세상을

40대에는 책으로 당신 마음을

여행하는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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