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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7일 14시 58분 등록

Book review – 강의

2014 7 26

강종희

 

 

  1. 저자 만나기

1963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다가 1968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8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놓았는데, 이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출소 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를 역임하였고 2006말에 정년 퇴임하였다. 퇴임 당시 소주 포장에 들어가는 붓글씨를 그려주고 받은 1억원을 모두 성공회대학교에 기부하였다.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나눔과 소통을 하고 있다.

1941년 경남 밀양 출생
1963
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졸업
1965
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1965
년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던 중
1968
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1988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1989
년 부터 현재까지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
2006
8월 정년퇴임
현재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석좌교수

신영복이 감옥에서 무기형을 선고 받은 때는 1968, 그는 육군 교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통혁당 사건을 계기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구형 받고 무기수로 그가 대학이라 지칭한 20년의 감옥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마침내, 그 고뇌와 사색은 20년내내 이어져 완전히 '인간성이 개조'되는 내적 자기혁명을 이루어 낸다. 신영복은 교장의 아들로 성장하여 민중의 삶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남다른 애착은 없었다. 그런데 감옥에서는 밑바닥을 살아온 기층민중과 24시간을 맨살을 부대끼며 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을 통해 자신이 지식청년으로서 가지고 있던 창백한 엘리트주의적 관념성과 '먹물성'을 통절히 비판하고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된다. 감옥에서의 삶은 서로가 알몸으로 부대끼며 가식없이 숨김없이 사는 탓에, 한방에서 오래 살다보니 서로의 과거와 생각을 공유하게 되고 자신의 삶과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번은 목수출신이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지 않고 주춧돌부터 그리는 것을 보고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책이나 이론으로 배운 세계가 현실과 완전히 다를 수있다는 생각에 그간의 인식틀을 깨부순 것이다. 무엇보다 10여 년간 교도소에서 노동을 하면서 목공, 영선, 제화공, 재단사등으로 직접 노동자 생활을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며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자신의 인간 개조론을 수긍하지 않을 수없게 한다.

특히, 감옥에서의 비전향 장기수들과의 만남은 이후 그의 사상과 인생관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막연하게 책에서나 보아온 분단과 전쟁의 피투성이 현대사의 이야기를 직접 이를 경험한 빨치산과 투사들을 통해 생생히 들음으로써 '피가 통하고 숨결이 이는 화석'처럼, 살아있는 역사체험을 한다. 또한, 한학자 출신의 사상장기수로부터 동양고전과 철학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서구사상에 매몰된 현실에 대한 자각과 자존을 깨닫고 고전학습에 몰입한 나머지 이후 성공회대에서 동양철학도 강의할 수 있게 된다. 신영복은 현재 서예가로도 명성이 높다. 이도 감옥에서 여러 장기수 선생으로부터 지도받은 결과라 한다. 한문 서체로 익힌 필법은 한글에도 응용해 민중 정서에 맞게 민체, 연대체, 어깨동무체라는 글씨체를 창안해 독특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는 감옥 20년의 삶이 완전히 인생을 바꾼 진정한'나의 대학시절'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그의 동무들은 그가 출소하자 ', 너 하나도 안 변했네'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의 삶의 철학과 신념은 변함없이 "더불어 숲"을 이루는 것이었기에.

「저서」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

  • 엽서(1993년)

  • 나무야 나무야 (1996년)

  • 더불어 숲 1 (1998 6월)

  • 더불어 숲 2 (1998 7월)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증보판 (1998 8월)

  • 더불어숲-개정판 합본 (2003 4월)

  • 신영복의 엽서 (2003 12월)

  •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2004 12월)

  • 처음처럼: 신영복 서화 에세이 (2007 1월)

  • 청구회 추억: Memories of Chung-Gu Hoe (2008 7월)

  • For the First Time: 처음처럼(영문판) (2008 8)

  • 신영복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2010 12)

  • 변방을 찾아서 (2012 5)

     

  1. 내 마음 속에 들어온 글

    서론

19. 노총선생님의 삶은 어느 하나 당대의 절절한 애환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의 한 가지를 예로 들자면 노촌 선생님을 검거한 형사가 일제 때 노촌 선생님을 검거했던 바로 그 형사였다는 사실이지요.

 

기가 막히다

 

22. 주왕실은 지도력을 잃고 수십 개의 도시국가가 춘추시대에는 12제후국으로, 전국시대에는 다시 7국으로 그리고 드디어 진나라로 통일되는 역사의 격동기입니다. 이 시기는 흔히 축의 시대(axial era)라고 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상의 백화제방(百花齊放) 시대입니다. 처음으로 고대국가가 건설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최대한의 담론이 쏟아져 나왔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도 이 시대의 사상가임은 물론입니다. 한마디로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근본 담론의 시대 그리고 거대담론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와 철학에는 익숙하지만, 같은 시기 동양의 사상에는 익숙치 않다. 조금이라도 접해봐야겠다. 생각해보니 그리스신화의 긴 이름들을 익히는 데는 아무 무리가 없는데, 한자는 들여다 볼 생각도 안하고 있다. 반성할 일인데, 이제 와서 한자를 익힐 자신은 없고. 이렇게 고수의 해석이라도 열심히 익혀보자.

 

25. 과거는 그것이 잘 된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우리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래를 향해 우리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지요.

 

36. 서양에서는 철학을 Philosophy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혜를 사랑하는것입니다. ()에 대한 애()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길은 삶의 한 가운데에 있고 길은 여러 사람이 밟아서 다져진 통로(beaten passage)입니다. () 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착()과 수()의 회의문자입니다. 착은 머리카락 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입니다. 수는 물로 사람의 머리 즉 생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도란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원이나 용례에서 확인하는 바와 같이 도는 것이 철학이든 도덕이든 어느 경우에나 도로와 길의 의미입니다. 도는 길처럼 일상적인 경험의 축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서양의 철학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걸어가며 생각하기역시 동양적 사고의 정의는 서양의 그것과는 다른 정서적인 환기가 있다. 그런 걸 아취라고 하나? 여튼 멋짐공감도 심하게 됨….

 

진리가 서양에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하적 문제임에 반하여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 입니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도재이(道在邇), 즉 도는 가까운 우리의 일상 속에 있는 것입니다. 동양적 사고는 삶의 결과를 간추리고 정리한 경험과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양 사상이 윤리적 수준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비종교적이며 과학과의 모순이 없습니다.

 

41. 논어에 덕불고 필유린이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입니다. 덕성이 곧 인성입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지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인간입니다. 이 사회성이 바로 인성의 중심 내용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그런 관계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동양 사상의 핵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인이 무엇인지는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인()+() 즉 이인(二人)의 의미입니다. 즉 인간관계입니다. 인간을 인간(人間) 즉 인과 인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동양적 구성 원리로서의 관계론에서는 관계가 존재입니다.

 

이거 참 맘에 든다. 관계는 중요하다. 관계가 모든 것은 아닐 지는 몰라도, 모든 것을 의미 있게 한다, 고 생각한다.

 

2장 오래된 시와 언

 

55. 송인(送人) – 정지상

 

비 개인 강둑에 풀빛 더욱 새로운데

남포에는 이별의 슬픈 노래 그칠 날 없구나

대동강물 언제 마르랴

해마다 이별의 눈물 물결 위에 뿌리는데

              

멋지다나이가 들면 한시의 운취에 눈 뜨는 건가보다. 아버지가 마흔 몇 되시던 해에 생일선물로 한시집을 선물해달라 하시던 것이 기억난다. 한시, 그 압축의 묘, 여백의 미와 그럼에도 길고 향기로운 여운.

 

58. 

당신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다면 치마 걷고 진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남자가 그대 뿐이랴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치마 걷고 유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내가 그대 뿐이랴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

 

운이 잘 맞는 재미있는 시.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라는 후렴이 귀에 착착 감긴다.  

 

65. 시인은 마땅히 당대 감수성의 절정에 도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개인적 경험 세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방 정국에서 대단한 문명을 떨친 임화라는 시인이 있었지요 네거리 순이’, ‘적기가등 많은 시가 애송되었습니다만, 임화는 항상 두보 시집을 가지고 다녔다고 전해지지요.

 

70. 서경

군자는 무일(無逸, 편안하지 않음) 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를 알게 된다. 

 

무일사상은 주나라 역사 경험의 충괄이라고 평가됩니다. 생산노동과 일하는 사람의 고토은 체험하고 그 어려움을 깨닫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무일 사상은 주나라 시대라는 고대사회의 정서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 문화와 중국 사상의 저변에 두터운 지층으로 자리잡고 있는 정서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끊임없는 육체의 편안함, 정신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나는 무성찰인 것인가. 그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깨닫고 성찰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잖은가. 불편이 곧 삶. 불편한 진실이다.

 

76.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과거의 지식이 빨리 폐기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노인들의 위상이 급속히 추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하는 것은 이것은 사회가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조로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낭비이면서 역사 경험의 낭비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정신사는 어느 시대에나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모색해가게 마련입니다. 농본 사회에 있어서 노인의 존재는 그 마을에 도서관이 하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노인들의 지혜와 희생이 역사 곳곳에 묻혀 있습니다.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이 그렇습니다. 할머니들은 자기의 자녀가 아니라 자기의 자녀가 낳은 자녀 즉 손자손녀를 돌보고 자녀 양육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가족 집단을 번창시켰다는 것이지요.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약 3만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그 이전의 네안데르탈인에 비하여 노년층의 비율이 무려 다섯 배나 증가했음을 밝혀낸 것이지요. 노인세대의 비율이 급증한 시기는 바로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있었던 시기였으며 인류가 장신구를 사용하고 동굴벽화를 그리고 장례 행위를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이 든 세대의 경험과 역할이 현생인류의 양적 팽창과 질적 발전을 가져온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피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젊은 조직. 조직 전체의 평균 연령 30대 초반이 되었음을 자랑하던 보스가 있었다.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닫는다. 젊은 조직이 업무 상 더 효율적인 곳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조직에 있어 조로화의 폐해는 되돌리기 힘든 것이다. 더 젊어서 덜 보수적일 거라 생각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나이가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보수화하는 것이다. 지킬 것은 나이가 많아서도 늘지만, 젊어도 가진 것이 많다고 스스로 여기는 순간, 그러므로 이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보수화하는 것이다. 조로화한 조직에서는 경험의 미비와 통찰의 부족을 숨기기 위한 더 많은 삽질이 횡행한다.

 

81.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 굴원

 

이상과 현실의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한다는 그것입니다. 좌경적이라는 의미는 신목자 필탄관 新沐者必彈冠 신욕자 필진의 新浴者必振衣처럼 비타협적인 원칙의 고수라 할 수 있습니다. 우경적이라는 의미는 맑은 물에는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는 발을 씻는다는 현실주의와 대중노선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것인가 하는 오래된 과제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03장 주역의 관계론


102.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의 능력은 그 개체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서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길흉화복이 그 사물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의 사상입니다.

 

능력이든 길흉화복이든 그 개체가 아니라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는 것은, 절망적이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하고이것 참 묘하다. 처지, 상황을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운명체념적인 시각과, 그런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을 받아들이고 다시 내일을 도모할 수 있는 수용의 시각을 다 가능하게 한다.

 

118. 는 인이 아니다. 군자가 올바름을 펴기에는 이롭지 못하다. 큰 것을 잃고 작은 것을 얻을 것이다. 천과 지는 서로 만나지 못하고 만물은 서로 통하지 못한다. 상하의 마음이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 천하에 나라가 없는 형국이다…. 이것은 내심은 유약하면서 겉으로는 강강함을 가장하는 것이다. 권력의 핵심은 소인들 차지가 되고 군자는 변두리로 밀려난다. 그리하여 소인의 도는 장성하고 군자의 도는 소멸한다. 

무방(无邦) , 즉 나라가 없다는 뜻은 나라를 공동체로 이해할 경우 약육강식의 패권적 질서가 판을 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습니다. 또는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뜻으로 읽어도 상관없습니다. 어느 경우든 불교(不交), 불통(不通) 이야말로 정의실현이나 공동체 건설에 결정적인 장애라고 보는 것이지요.

천지는 서로 교통하지 못하고 막혀있다. 군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유덕함을 숨김으로써 난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관록을 영광으로 생각하여 벼슬에 나아가서는 안 된다.

천지비괘는 한마디로 폐색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식민지 상황은 물론이고 해방 후의 현대사를 통하여 줄곧 이러한 상황을 경험했지요. 이러한 폐색의 상황에서는 지혜를 숨기고 어리석음을 가장하여 권이회지(卷而) 하는 것이 뜻 있는 사람들의 처세였습니다.  나아가기보다는 물러나 강호에 묻히는 것이 난세를 살아온 사람들의 처세였습니다. 이러한 처세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우직하게 직언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역사의 소용돌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희생당했지요.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초야에 묻히는 것이지요. 인적 자원의 재생산 구조가 복원되기 위해서는 삼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없지 않습니다. 제도권 전체가 그 사람들보다 못한 사람들로 채워진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는 것이지요.

통하지 못함, 나누지 못함의 해악은 이런 것이다. 인간이 단일개체로 살아가는 독존의 존재가 아닌 이상 communication의 중요성과 의미는 나날이 커질 뿐이다. 그러므로 들이 팔만한 가치가 있는 학문이고 실천임에 분명할진대, 나는 요즘 혼란스럽다. 사랑하다 재만 남는다고 했던가? 사랑하다 미움만 남았다고 했던가? 다시 켜볼 무언가가 남은 것인가? 내가 방향을 잘못 잡았던 것이겠지. 다시 시작한다면, 어떻게? 그걸 찾기 위해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변경연을 하고 생각도 안 했던 강의를 하며 이것 저것 다른 시도를 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 가볼래?

 

04장 논어의 인간관계

126. 다음으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꼬리를 적시고’, ‘이로울 바가 없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끝마치지 못한다는 일련의 사실입니다. 나는 이 사실이 너무나 당연한 서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실수와 실수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러한 실수가 있기에 그 실수를 거울삼아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끝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그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든 강물이든 생명이든 밤낮이든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마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세상에 완성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64개의 괘 중에서 제일 마지막에 이 미완성의 괘를 배치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128. 그리고 실패로 끝나는 미완성과 실패가 없는 완성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보편적 상황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실패가 있는 미완성은 반성이며, 새로운 출발이며, 가능성이며,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완성이 보편적 상황이라면 완성이나 달성이란 개념은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성이나 목표가 관념적인 것이라면 남는 것은 결국 과정이며 과정의 연속일 뿐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날 만연한 속도의 개념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속도와 효율성, 이것은 자연의 원리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자본의 논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도로의 속성을 반성하고 길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동안 그토록 헤메었구나. 온통 효율, ROI의 관점에서만 움직여서, 나는 자연에 반하고 내 깊은 욕구에 반하는 삶을 살아서 이렇게 왔다갔다 불안정한 삶을 살았구나. 돌아가는 일이 치욕인 줄 알고 속도가 느려지느니 뛰어내리는 오기로 살아서 이렇게 헛헛해진거야.

절제와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 형태

132. 주역 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추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진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사전에서 요약하고 있는 주역사상은 한마디로 변화입니다. 변화를 읽고 고난을 피하려는 피고취락의 현실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주역에는 사물의 변화를 해명하려는 철학적 구도가 있으며 그것이 사물과 사건과 사태에 대한 일종의 범주적(kategorie) 인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역을 언제 읽긴 읽어야겠구나. 변화관리, 위기관리의 개념을 주역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159.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아름다움입니다. 오래 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160.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따라서 군자화이부동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이불화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입니다. 동의 논리 아래에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화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168.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옛말에 쉰 살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 때까지 그가 맺어온 인간관계가 안전망이 되어 그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삶의 내용 자체를 인간적이고 덕성스럽게 영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

170. 공자가 말하기를, “정치란 경제, 군사, 그리고 백성이란 신뢰이다.” 자공이 묻기를, 만약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 “군사를 버려라”. “만약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리지 않을 수 없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경제를 버려라. 예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었지만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다.”

이러다 진짜 우리나라 망할 것 같다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하나도 믿기 힘든 지경에 와 있으니. 불과 이 년 만에 이토록 다양한 국가적 사기가 일어나고도 책임지는 일 없이 자리를 보전하는 사회라니. 그러고도 가만 있으라는 말이 먹히는 사회라니

171.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일화입니다….

개인의 능력은 그가 맺고 있는 인간 관계에 있으며 이 인간관계는 신뢰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이지요. 신은 그 글자의 구성에서 보듯이 () +()’의 회의로서 그 말을 신뢰함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까닭은 그것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서라고 합니다. 신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라고 풀이되고 있지만 언() 은 원래 신() 에게 고하는 자기 맹세이므로 신()이란 곧 신()에 대한 맹세로 보기도 합니다. 사람들 간의 믿음이라는 뜻은 후에 파생되었다고 보지요. 그만큼 신()의 의미는 엄격한 것이지요.

제갈공명의 명석한 판단은 무사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하를 도모하려는 사사로운 욕심이 없었음은 물론, ‘윗사람이 되려고 하는 욕심마저도 없었지요. 이처럼 무사하기 때문에 공평할 수 있고 공평하기 때문에 이치가 밝아질 수가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이해관계 집단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 주장과 논리가 결국은 사사로운 것이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자기의 공을 숨기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이 장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겸손함을 뒷받침하는 것이 무욕(無慾)과 무사(無私)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욕과 무사를 설파하는 것보다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과를 불문하고 아무리 교묘한 방법으로 그것을 치장하더라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학습과 놀이와 노동의 통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05장 맹자의 의

차마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

225. 측은해 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해 하는 마음은 인()의 싹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의()의 싹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싹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싹이다. 사람에게 이 네 가지 싹이 있음은 마치 사람에게 사지(四肢)가 있는 것과 같다.

236. 맹자: 그것이 곧 인의 실천입니다. 소는 보았으나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자가 금수를 대함에 있어서 그 살아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그 죽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그 비명 소리를 듣고 나서는 차마 그 고기를 못합니다. 군자가 푸줏간을 멀리 하는 까닭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본다는 사실입니다. 본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입니다. 보고, 만나고, 서로 안다는 것입니다. ,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 사회의 실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만남이 없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이유가 바로 이 만남의 부재(不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만남이 없는 사회에 불인인지심이 있을 리 없는 것이지요.

249. 맹자 이루상(離婁上)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노래가 있다. 공자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고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하셨다.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라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는 것이다. ‘서경’ ‘태갑편에 하늘이 내린 재앙을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06
장 노자의 도와 자연

빔이 쓰임이 됩니다.

292.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이는 바퀴통은 그 속이 비어 있음으로 해서 수레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 데 그 비어 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문과 창문을 내어 방을 만드는 데 그 비어 있음으로 해서 방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따라서 유가 이로운 것은 무가 용이 되기 때문이다.

296. 간섭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이 성취되는 것이 중요하고,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 구절인 백성개위 아자연입니다. 백성들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임금을 믿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이지요. 무언과 불간섭은 노자 철학의 전제입니다. 

301. 대변약눌(大辯若訥)최고의 웅변은 더듬는 듯 하다는 뜻입니다. 언은 항상 부족한 그릇입니다. 언어로는 그 뜻을 담아내기가 어렵습니다….언이 부족한 표현수단인 것은 잏가 가지만 어째서 눌변(訥辯)이 대변大辯 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소통의 수단입니다. 소통은 화자와 청자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따라서 맷돌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경험 세계의 소통 없이는 결코 전달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화자의 연상 세계와 청자의 그것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 정확한 의미의 소통은 차질을 빚게 됩니다.

말을 더듬고 느리게 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불일치를 조정할 시간적 여유가 새기는 것이지요. 화자가 청산유수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면 청자가 따라오지 못하게 되지요. 느리게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언어란 불충분한 표현수단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언어를 적게, 그리고 느리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말을 무기로 방패로 사용해야 하는 직업을 택한 관계로 어느 누구보다 말 잘하는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청산유수가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것은 비교적 오래 되었다. 첫 직장의 사수가 여러 리더들을 모셔놓고 일장 연설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모임이 파한 후 돌아가는 분들 중 한 분이 넌지시 내게 말했다. “상사께서 말을 참 잘 하시네요.” 그것이 칭찬이 아닌 비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눈치 없는 나라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표현에 있어 프로다운 감각으로 해치웠을 지 모르나, 진정성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내 상사의 언사는 많이 모자랐었나 보다. 그때부터 십 여 년이 지난 지금, 말을 잘 하는 리더, 진정으로 설득력을 가진 스피치가 결코 화려한 것이 아님을 몸으로 느낀다. 적게 말하되, 하는 말마다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힘. 그런 힘이 필요하고, 이는 그냥 말만 내뱉는다고 될 일이 아님을 너무 잘 알게 되었다. 말도 신뢰다. 신뢰를 전달하는 말이 진정 힘있는 말이다.

 

7장 장자의 소요

311.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입니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립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소요유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 사상의 핵심입니다. 사회적 규범 밖에서 자유를 추구하던 일민들의 경물중생 즉 개인주의적인 생명존중론이 양주학파에서 크게 고조되어 이 양주학파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장자라고 합니다. 철학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은 생명의 물리적 보존이나 생물학적 보존 뿐만이 아니라, ‘정신의 자유라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뜻입니다. 무한한 소요유의 추구를 표방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라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이 부분이 장자의 철학과 사회학의 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 , 멋지다! 이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진리다!

313. “내가 듣기로는 초나라에 신령스런 거북이가 있는데 죽은 지 이미 3천 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임금은 그것을 비단으로 싸고 상자에 넣어 묘당에 보관한다고 합니다. 당신의 그 거북의 입장이라면 죽어서 뼈만 남기어 존귀하게 되고 싶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겠소?”

327.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자연을 피하려는 둔천(遁天) 의 형벌이다. 천인합일의 도를 얻음으로써 천제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 못하다.”

아내가 죽었을 때 장자는 술독을 안고 노래했다는 일화가 수긍이 갑니다. 인간의 상대적인 행복은 본성의 자유로운 발휘로써 얻을 수 있지만 절대적인 행복은 사물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절대적 행복과 절대적 자유는 사물의 필연성을 이해하여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추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장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물의 필연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합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자의 이리화정(以理化情)입니다. 도의 이치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합일하여 소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도를 깨닫는 것은 이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서적 공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334. 불치병자가 밤중에 아기를 낳고 급히 불을 들어 살펴보았다. 급히 서두른 까닭은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였다.

엄정한 자기 성찰입니다. 천하가 길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자기가 불치병자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깨닫고 자식만이라도 자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이 참담할 정도로 가슴을 적십니다. 엄정한 자기 성찰과 냉철한 문명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342. “그대는 나를 어디에다 견주려는 것인가? 그대는 나를 좋은 재목에 견주려는 것인가? 아니면 돌배, , , 유자 등 과일나무에 견주려는 것인가? 과일나무는 과일이 열리면 따게 되고, 딸 적에는 욕을 당하게 된다.… 이들은 자기의 재능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것이지. 그래서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일찍 죽는 것이다.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세상만물이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쓸모 없기를 바란지가 오래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뜻대로 되어 쓸모없음이 나의 큰 쓸모가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 커질 수 있었겠는가?       

혼돈과 일곱구멍  

남해임금은 숙, 북해 임금은 홀, 중앙의 임금은 혼돈이었다.

숙과 홀이 자주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을 그들을 잘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길을 방도를 의논했다.

사람에기는 누구나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만 구멍이 없으니 시험 삼아 구멍을 뜷어 줍시다.”

날마다 구멍 한 개씩을 뜷어주었는데 칠 일만에 혼돈은 죽어 버렸다.

여기서 구멍을 뚫는 행위가 바로 통체적인 전체를 분하고 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누고 가르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그 전체적인 연관이 소멸되고 남는 것은 분별지와 분별상이며 개아로서의 존재들입니다. 혼돈은 이러한 분석과 분별 이전의 통체적 세계를 의미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혼돈이 죽어버린다는 것은 이러한 진정한 세계상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내가 이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장 의미심장한 문구가 아니었나 싶었다.  왠지 가슴이 철렁한 것을 보면….

08장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365. 백성이 국가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노자

379.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복숭아를 훔치는 것보다 죄가 무겁다.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라 한다. 그러나 지금 크게 나라를 공격하면 그 그릇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칭송하면서 의로움이라고 한다. 이러고서도 의와 불의의 구별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386.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인 것이지요. 

이러니까 위기관리하는 사람들이 대접을 못 받지. 심지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신경쓰게 만든다고 못살게 한단 말이죠, 이러니안전대책 같은 것이 제대로 계획되고 관리될리가 있나. 실행은 만무하고.

09장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425.
순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도와 인심입니다. 천도와 천심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순자의 도는 천지의 도가 아니라 사람의 도일뿐입니다. 순자의 이론에는 또한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그는 성인이라면 하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군자는 자기의 내부에 있는 것을 공경할 뿐이며, 하늘에 있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순자의 이와 같은 인간주의와 인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인간주의가 감상적으로 피력되지 않고 냉정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0장 법가와 천하통일

439. 당시의 법치란 무엇보다 권력의 자의성을 제한하고 서문법에 근거하여 통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상앙이 강조한 행제야천입니다. 법제를 행함에 있어서 사살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법가의 차별성을 개혁성에서만 찾는 것은 법가의 일면만을 부각시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법의 공개성이야말로 법가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43. 현재 우리 사회는 범죄와 불법 행위라는 두 개의 범죄관이 있습니다. 절도 강도 등은 범죄 행위라고 규정되고 선거사법, 경제사범, 조세사범 등 상류층의 범죄는 불법 행위로 규정됩니다.  전혀 다른 두 개의 범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범죄 행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매우 가혹한 것임에 반하여,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더없이 관대합니다.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그 인간 전체를 범죄시하여 범죄인으로 단죄하는 데 반하여,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그 사람과 그 행위를 분리하여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만 불법성을 인정하는 정도입니다. 이것은 주나라 이래의 관행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역설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내가 저자라면

신영복 선생은 착한 사람일 것 같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독한 사람일 것이다.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어쨌거나 20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온 사람이 저토록 다정한 관계의 글, 관계의 사상을 전파할 수 있다면, 그는 다정하고 착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20년의 수감 세월 동안 자신을 잃지 않고 더욱 더 벼려서 더 큰 사고를 하게 된 것을 보면 너무 너무 독한 사람일 것 같다. 한없이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일 것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자신은 다시 보지 않는다고 어떤 인터뷰에서 그랬다. 너무 힘들었기에, 다시 들여다 보기 싫다는 얘기다. 인간적이고, 지독하고, 착하고, 엄격한 기묘한 사람. 그의 책으로 먼지가 켜켜이 앉은 동양의 고전들이 따뜻한 인간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목차

01장 서론
02
장 오래된 시와 언
03
장 주역의 관계론
04
장 논어의 인간관계
05
장 맹자의 의
06
장 노자의 도와 자연
07
장 장자의 소요
08
장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09
장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10
장 법가와 천하통일
11
장 강의를 마치며

나는, 부끄럽지만 저 장대한 동양의 사상들을 하나도, 접해보지 못했다. 강의가 처음이었다. 한자와 너무 친하지 안았고, 동양 사상이란 여자들을 가축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남존여비의 면면한 계승일 뿐 일거란 의심 하에 동양사상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인 나 자신을 반성해본 적이 없었다. , 그까짓 한자, 중국에서 그것도 빌려와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비과학적인 문자. 당시의 내 생각은 이랬다. 신영복이란 분의 책이 이렇게 착하고 다정할 줄도 몰랐다. 거지 깡깽이 같이 온갖 철학 사조와 등등을 들먹이며 어마어마하게 재수없게 굴 줄만 알았다. 그래도 뭐, 나는 향후에 아주 일부라도 다시 기억하고 되새길만한 동양의 고전에 대한 참으로 자상한 안내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동양고전을 접함에 있어, 너무 진지연하게 똥폼을 잡지도 않고, 제대로 갖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안 그런 것이 없겠지만, 이제 동양의 고전을 한번 들여다 볼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충실한 기본안내서가 되어주는 책인 듯 하다. 감동적인 장절은, 많았다. 동양의 사상이 관계에 기본을 둔다는 주장에도 크게 공감하였다. 그게 아마도 지금 혼란스러운 우리들에게 어쩌면 유일하게 파고들 여지가 남은 희망의 패러다임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모자라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나 개선되어야 할만한 점이 있다면, 사실 잘 못 찾겠는데, 각각의 사상의 주창자의 초상이라든가 하는 부분이 소개되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이 책에 굳이 그것이 필요한가를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듯 했다. 우리는 사상가 개인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우긴 하지만, 이 강의를 인물전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아까울 뻔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처럼 삽화나 초상화 등으로 전체 텍스트를 너무 그 인물의 관점으로 끌어내리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신영복이라는 아직 건재한 석학이자 아마도, 부끄러움과 측은함을 아는 지식인을 만날 기회가 있기를. 나는 이렇게 살아온 인생만으로 타인을 감화할 수 있는 사람을 아직은 못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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