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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7일 19시 20분 등록

2014.07.27 이동희

 

장마철이 다가오고 집에 여름 과일이 많아지면 단 것이 발효되면 초가 되듯이 온 동네의 똥파리가 초파리로 발효되는 것 같다. 초파리는 이름처럼 시큼한 것들에 모여 그 때를 지워 산다. 초파리는 어떻게 생길까? 방충망을 일 년 내내 닫아 놓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한 마리만 생기면 100마리 천 마리는 일도 아니다. 이 놈들의 번식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만든 닭 강정과 구운 빵 와인이 식탁에 차려져 있고 아내는 입술이 빨갛다. 혹시 입술에 문신을 했는가 싶어 살짝 물어봤다. 오늘 여느 때보다 정말 입술이 빨갛네! 정말 빨갛네 하며 말이다. 아내는 와인을 몇 잔 마셔서 그렇다고 한다. 와인을 보니 5월 서울에서 가진 오프수업 때 공헌 물로 아내가 집에 사놓았던 와인을 가져갔었는데 바로 그 와인이었다.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다음에 또 자기가 사놓은 와인 사가면 죽음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내가 와인을 다 마시더니 침실로 자러 간다. 오랜만에 기분을 풀었나 보다. 정신 말짱한 죄로 식탁을 정리하고 이리 저리 치웠다. 그런데 돌아서다 부딪혔다. 무엇이지? 잉 초파리 ~~~

 

그렇다 집에 초파리가 전입하였다. 간혹 한 두 마리 생기면 잡곤 했는데 얼추 손에 꼽힐 정도로 보인다. 이런 음식물을 잘못 다루었나 보군! 나에게는 수 십 년간 연마한 파리와 모기 잡는 재주가 있는데, 요렇게 초파리가 겁도 없이 이리 저리 날라 다니면 나의 잠재워둔 무공이 기지개를 펴고 그 본색을 드러내고야 만다.

 

초파리를 잡는 무공은 몇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일단 초파리가 뭘 먹고 살고 있는지 근거지를 우선 파악하고 일거에 대량으로 처치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오늘을 아무리 찾아봐도 특별히 음식물 쓰레기를 노출해 놓은 곳은 없었다. . 어딜까?

 

두 번째 신공을 펼칠 차례다. 손뼉 신공인데 우선 나르는 초파리의 행동 반경을 파악하고 다음 도착지를 예측하여 박수 치듯 잡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고도의 공간 예측과 초파리 비행술에 익숙해야 가능하다. 초파리의 비행 범위는 비행 상황에 따라 다르다 장거리 비행 중일 때는 초당 1m이상도 갈 수 있으나 어딘가 앉고 싶을 때는 초당 50cm 정도 이하로 느려진다. 기회는 이렇게 속도가 느려지는 틈을 노려야 한다. 초파리는 일단 날던 놈들도 오래 날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들키면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내 어느 정도 날았다 싶으면 앉을 자리를 찾는데 이때 손뼉 신공을 펼칠 차례다.

 

세 번째는 날지 않는 초파리를 퇴치해야 한다. 초파리는 작기 때문에 어디에 앉아 있는지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부엌 지역의 틈새나 주위를 샅샅이 뒤진다. 그리고 벽에 기대어 벽 표면에 옆에서 관찰하면 벽에 붙어 있던 초파리가 그 형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잘 보이지 않는 것들도 이 면벽신공으로 찾아내어 박멸할 수 있다. 이때는 두 손을 사용할 수 없다. 오로지 오른손으로 원 샷 원 킬의 절대 신공을 펼쳐야 하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기를 모아 한 순간에 그 기를 펼쳐내는 순간 동작이 아주 중요하다. 만약 이때 약간의 시간차이로 놓칠 수가 있는데 이는 벽에 나의 손바닥이 모든 기로 부딪혔을 때 아픔이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면 마지막 0.5mm를 남기고 힘이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여지 없이 초파리를 놓치게 된다. 그러면 다시 손뼉 신공을 펼치며 공중전을 다시 펼치게 된다.

 

오늘은 이 같은 나의 모든 신공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초파리가 계속 나오는 것이다. 아니 어찌된 일인가? 벌써 한 시간째 이러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다 무심코 내 눈에 들어온 천도 복숭아. 아니 이 녀석은 아직도 이곳에 있었나? 그러고 들여다 보는 순간 두 개중 한 개에 초파리가 우르르 붙어 반상회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랩에 씌어져 있어서 무심했는데 자세히 보니 복숭아 아래가 물러져서 그 곳의 단물을 빨아 먹느라 초파리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오호 통재라 한 시간 동안의 내가 펼친 신공들은 본진을 격파하지 못하고 주변 척후병만을 상대하며 힘을 허비한 꼴이 되고 말았다.

 

후다닥 복숭아를 들고 싱크대로 옮겨 물로 가득 채웠다. 이 것은 그 동안 펼쳐보지 못한 새로운 비법이었는데 나의 잠재 의식 속에 선조들께서 남겨놓으신 천하에 나오지 않은 비법이었다. 물로 싹 씻고 복숭아는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놓고 주위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패잔병들이 방금 먹던 진수 성찬이 그리워 그들의 성이 있던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시간 나는 모든 초파리 패잔병들을 처치하고 다시 면벽 신공으로 최후의 한 마리까지 찾아내어 박멸하는 놀라움을 보이고 스스로 만족하였다.

 

초파리의 은신처가 되었던 천도 복숭아는 참 예뻤었다. 두 개가 빨갛게 부엌에 올려져 있었다. 뒤 이어 집에 들어온 다른 맛있는 과일에 밀려 늘 언제 제 구실을 하나 순서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덧 다른 주인을 찾아 그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아이 불쌍한 천도 복숭아는 주인을 잘 못 만나서 제대로 먹히지도 못하고 초파리의 알 밭이 되다가 쓰레기 통으로 가버렸다.

 

아내가 천도 복숭아를 6개 샀었다. 4개를 먹고 2개가 남았었다. 그 사이에 친구녀석이 딸애 다쳤다고 백도복숭아를 한 박스 사왔다. 물론 수박도 같이 그리고 자두와 바나나, 또 아이 친구 어머니가 아이 친구와 같이 들르면서 자두를 사왔다. 부엌에 있던 과일 등 중에서 천도 복숭아는 가족들에게 가장 선호도가 낮은 과일이다. 그 맛이 달지 않고 약간 시큼하면서 육질이 단단해서 와작와작 씹어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잘 익은 설탕 같은 백도가 한 박스 옆에 있는 상황에서는 천도 복숭아는 눈길 받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 천도 복숭아가 하루 이틀 천대를 받다가 어느덧 5일이 지났다. 어쩐 일인지 냉장고에도 넣지 않고 계속 부엌에 나와 있었다. 빨간 껍질에 노란 얼룩이 예쁘게 생긴 천도 복숭아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렇게 몇 일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구애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결국은 초파리에게 먹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가만가만 주위를 둘러보자. 천도 복숭아처럼 좋은 것들에 밀려 그 빛을 발하지 못한 것들은 없는가? 잘난 것들에 쌓여서 그 스스로도 잘났지만 그 잘난 것을 뽐낼 기회를 갖지 못한 것들. 아 나의 삶도 나의 시간도 그러한가? 누군가 필요에 의해 나를 쓰게 하니 나는 그것을 더 잘하게 되고 그러니 다른 사람은 그것을 더 찾게 된다. 하지만 그 필요는 나의 필요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인 것을. 그 필요가 끊기는 날. 나는 아무 소용이 없는 어찌 보면 기형이 되어 있는 볼썽사나운 괴물이 되어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천도 복숭아여 너는 그 곳에 있지 말았어야 했다. 얼른 먹혔어야 했다. 다른 과일들이 들어오기 전에 얼른 너를 뽐냈어야 했다. 먹어 치워달라고 말이다. 이런 변명을 뒤로 나의 소홀함과 입맛을 탓해야겠다. 많은 잘 보이는 것들 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홀히 한 것을 맛있는 것을 먼저 먹는 버릇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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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08:31:12 *.104.9.216
삼국지나 수호지 따위를 좋아합니다.

전쟁을 많이 하잖아요.
여기서 전 늘 이름없이 쓰러져가는 병정들을 봅니다. 초파리 같은 존재의 사람들 말입니다. 오로지 소모되는 사람들...개인과 조직에서의 그(그들)는 참 다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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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0:22:38 *.222.10.126

저도 삼국지 좋아합니다. 수호지는 만화로만 봤습니다. 사람은 초파리가 아닙니다. 처지가 바뀔 뿐 사람이라고 봅니다. 전장에서 쓰러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하지만 초파리는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이 세상안에서 불사르고 있습니다. 다만 선택지가 적어 대안이 없을 뿐입니다. 왜 그들은 선택지가 없냐고 물을 수 밖에 없지요. 그건 저희가 지구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 것일 뿐이지요. 좀 나아지려하면 다시 못해지는 것. 물이 들면 곧 나고, 났던 물이 다시 드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초파리는 초파리일 뿐입니다. 같이 살 수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은 처지가 바뀌면 언제든 같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안타깝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바꿀 수는 없지요. 바꾼다고 하지만 바꾼 다음 다시 빠궈야 하지요. 늘 차면 기울고 다시 차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높고 낮음이 늘 자연스러웠듯이 있고 없고 높고 낮음은 자연스럽되 그것이 처한 것은 선택할 수 없음이지요. 그러니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받아들이며 선택할 수 있는 것에 생을 불사르는 것이지요. 선택지가 좁아 어쩔 수 없었던 그 많은 생들은 생을 불살라 생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초파리 같은 삶은 아니라고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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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09:56:56 *.196.54.42

와우, 이렇게 초파리 잡는 신공이 많이 있을 줄은.... 덕분에 한 수 배웠슴다^^

우리집엔 천도복숭이 귀인 대접을 받던데요 ㅎㅎ  참외랑 섞어두니 천도복숭만 싹쓸이를 해요.

모든 게 상대적인 것 같슴다. 너무 먹을게 많은 것도 탈이고...

 

하여튼 초파리 잡이 신공 압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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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0:28:59 *.222.10.126

초등학교 2학년 때 무화과 나무에 앉은 파리를 잡을 궁리를 했습니다.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여러번 시도해 본 결과 파리는 꼬리 부분에서 머리 부분으로 휙하고 거머쥐듯이 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파리 눈에 잘 띄지도 않을 것이고 날아가는 방향에 맞게 손이 먼저 가니 잘 잡히는 것이지요. 그러고는 모기 잡는 것을 연마 했습니다. 모기는 불을 끄면 늘 앵하며 귓가를 맴돕니다. 혹은 몸 주의를 날아 다니죠. 그러면 불을 재빨리 켭니다. 그러면 당황해서 얼른 주위에 앉거나 어리둥절 날아 다닙니다. 그러면 일단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에 잡힙니다. 초파리는 이들보다는 쉽습니다. 그냥 보이면 잡으면 되니까요. 약간의 순발력만 있으면 되지요. 문제는 찾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면벽신공입니다. 벽을 정면에서 보지 않고 옆에서 보는 것이지요. 그러면 벽에 붙어 있는 놈은 도드라지게 마련이니 실체가 드러납니다. 가만히 보니 실체가 드러나면 모두 잡히는 것 같습니다. 저희의 생각도 실체가 드러나게 요리조리 들춰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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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3:10:31 *.94.41.89

저도 요즘 상한 과일과 초파리 만날 일이 종종 있는데- 이러한 사색은 미처 하지 못했네요 ^^

생활 속 소재로 한 칼럼들이 매주 기대가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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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0:34:27 *.222.10.126

탓하지는 않겠지만 남편은 좀 싫어할거에요. 특히 음식물이 냉장고에서 곯고 있으면 말입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머시마들은 다그런 것인지 대부분 처음에 냉장고병에 걸립니다. 냉장고가 마치 아내의 마음인 것 처럼 냉장고가 좀 지저분하면 아내의 마음도 그런 것인냥 막 나무랍니다. 사실 냉장고에 음식물이 곯고 있는 것은 남편의 문제입니다. 일단 집에서 밥을 잘 안먹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음식을 이 것 저 것 해서 먹을 기회가 없으니 당연 한번 상차린 재료에 남은 것들은 다시 쓰일 기회가 없어지는 일이 왕왕 발생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까워 냉장고에 넣어두면 그것은 곯아서 황천길로 가는 것이지요.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바람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소녀야? 정말 아무도 몰라줍니다. 그러니 곯 수 밖에요. 하지만 그걸 보는 남자는 그걸 모릅니다. 어린 애처럼 말하죠. 살림 이따위밖에 못해라고. 사실 찾는 이 없는 그 소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알고 보면 스스로 못하는 일에 스스로 자책하는 것인가 봅니다. 냉장고에 곯고 있는 무엇 무엇은 늘 저를 불끈하게 합니다. 지난 주말에서 솨라락 쓸어담아 버렸네요. 알죠. 그 때의 아까움을 하지만 미안함도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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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3:45:53 *.85.20.115

희동이 초파리잡는 무공 상상하다 깔깔거리고 웃었네요.

희동이 일상의 얘기가 편안하니 다가옵니다.

거품도 그렇고 초파리도 그렇고 좋네요~

복숭아, 저는 무지막지 좋아하는데.... 

우리 집에선 복숭아땜시 초파리 생길일도 없고 요런 글도 없었겠네요.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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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0:35:01 *.222.10.126

보여주까요? 같이 잡아볼래요? 내 복숭아 선물하리다. 에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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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6:55:20 *.213.28.79

우리집은 과일을 잘 먹지 않아서리....초파리 구경해본지 오래네.

초파리와 웨버의 덩치가 코믹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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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0:36:16 *.222.10.126

바지런 한 사람 주위에 그런 미물이 붙어 살 수 있겠는 감. 나 같은 사람 옆에는 초파리가 윙 윙 거린다네. 그러니 초파리 잡는 법도 날로 늘지. 이제 신공의 경지에 올랐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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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7:04:10 *.113.77.122

초파리를 잡기 위한 신공과 면벽신공 하는 웨버가 보이는데요. 

나중에 한수 가르쳐 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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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0:37:01 *.222.10.126

이~~야~ 합. 또로로로록. 그넘도 저 세상으로 갔다.

초파리야 잘가라. 아쉽지 않다. 빠이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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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10:05:52 *.50.21.20

구달님에게 달아준 무화과나무와 파리 댓글을 읽으면서 아, 이분! 역시 직업을 잘 고르셨어. 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했어요.

글이 너무 귀엽고 재미있네요. ㅎㅎ 

저희집도 요즘 사람이 별로 머물지를 않아서... 초파리들만 날립니다.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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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01:31:29 *.222.10.126

직업을 잘못골랐지 100여명의 석박사가 근무하는 Cesco로 갔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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