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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8일 06시 42분 등록

시댁에 다녀왔습니다

10기 김정은

 

 

시댁에 다녀왔습니다. 주말에 제사가 있었습니다. 원래는 남편이 운전해서 다녀왔겠지만 이번에는 기차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차로 가는 것보다 기차로 가는 것이 더 좋은가 봅니다.

 

어머니, 아버님께서 반겨주십니다. 우리 아이들 어릴 때 키워주신 분들입니다.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이들을 무지 기다리셨던 것 같습니다. 한차례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연출됩니다. 어머니 표정을 살핍니다. 왠지 어머니 표정이 어둡습니다. 평소대로 아들이 운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며느리가 두 아이를 데리고 보따리 보따리 짊어지고 온 것이 마음에 걸리신 모양입니다.

 

남편의 직장에서는 한창 구조조정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7월 초, 부장급 이상은 이미 다수의 인원들이 강제퇴사 명령을 받았습니다. 8월말까지 차장급 이하의 대규모 명예 퇴직이 있을 예정입니다. 관련 법에 의하면 차장급 이하의 직원들에게 강제퇴사 명령을 내릴 수 없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예 퇴직을 받는 것인데요. 말이 명예 퇴직이지 회사에서는 무작위 면담을 실시해서 나가라, 나가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지난 일주일 사이,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두 명의 직원이 면담 도중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간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한 명의 직원은 임신 6주차에 접어든 여성 직원이고, 다른 한 명은 대리급의 남자 직원입니다. 처음에 임산부 직원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저는 분노에 떨었습니다. 그리고 대리급의 젊은 남자 직원이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간 소식을 듣고, 그 정도면 면담의 강도가 얼마나 센 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10년 전, 제가 다녔던 직장에서도 구조조정이 있었습니다. 그 때 임신 중이었던 여자 팀장님께서 베 속의 아이에게 그 많은 스트레스를 줄 수 없다며 자진해서 퇴사했던 일도 떠오릅니다. 그 때 줄줄이 퇴사했던 여성 동료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녀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10년 전에는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기 전에 여성들이 알아서 먼저 퇴사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지금은 여성들도 면담의 대상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걸로 근무 환경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대리급으로 직급이 낮은 직원들도 명예 퇴직 대상이 된다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이번 임산부 구급차 사건과 대리급 직원 구급차 사건으로 다시 노조들이 단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노조원들은 명예 퇴직은 회사의 이익만을 위한 조치이며 직원들에게는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직원 교육을 하고 있나 봅니다. 그리고 면담의 강도를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을 계속 들으면, 그 말이 맞고 맞지 않고를 떠나, 그 말을 꼭 들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수 차례 계속되는 면담의 효과는 상당합니다. ‘나는 회사의 암적인 존재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동안 회사를 위해 일했듯이, 이젠 회사를 위해 내가 먼저 나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며느리를 믿습니다. 지난 수년 간 고부간 신뢰가 쌓인 것 같습니다어머니는 사실과 진실을 공유하는 며느리 특유의 화법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꼭 며느리에게 물어 보십니다. 어른들도 무조건 괜찮다, 괜찮다하는 것보다는 문제에 직면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며느리는 지난 2012 7월부터 이어지는 아들의 회사 일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간략하게 브리핑 해드립니다. 그리고 최근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무작위 명예 퇴직 면담도 알려드립니다. 어머니는 어느 정도 짐작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사실과 진실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아픈 현실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또 설명해 드립니다. ‘변경연이야기가 빠질 리 없습니다. ‘시크릿가든에서 나누었던 피리 부는 사나이의 조언도 말씀 드립니다. 어머니의 안색도 어느새 밝아집니다.

 

우리 부부가 가진 것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어린 시절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가난했지만 사이 좋았던 제 부모님은 힘든 일이 생기면 두 분의 환상적인 파트너십으로 그 난관을 헤쳐 나가시곤 했습니다. ‘환상적인 파트너십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는 것’은 제가 가진 가장 큰 재산입니다. 저는 요즈음 남편을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뭘, 어떻게 할까 고민입니다. 제가 가진 재산을 써 먹을 때가 온 것입니다.


(제 마음을 다 잡는 두 편의 세트 자작시를 소개합니다.)


철가루들이 몰린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뭉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철가루들이 뭉친다

보이지 않는 자기력에 의해

 

N극인지 S극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다 강력한 쪽으로 들러붙는

치열한 철 가루들

 

N극끼리는 서로 갈라놓네

S극끼리는 서로 갈라놓네

보이지 않는 척력에 의해

갈팡질팡하는 철가루들

 

그러다 길 잃은

N극과 S극이 만나는 순간

일제히 나가 떨어지는 철가루들

 

힘의 법칙


- 김정은 <구조조정> -


그리하여
자기장의 교란은 시작될 것이다
철가루의 반격에 의해


그리하여
자석들은 힘을 잃을 것이다
지구자기장의 붕괴로 인해


모든 잊혀진 종족이 그러했듯
자석들은 멸망할 것이다
철가루의 시대는 도래할 것이다


그리하여
힘의 법칙을 따랐던 철 가루들은 우주로 사라질 것이다
만유인력의 붕괴로 인해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삽이 되어 땅을 일구고
펜이 되어 글을 쓸 수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철가루의 시대는 도래할 것이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대지에 오롯이 설 수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철가루의 시대는 도래할 것이다


- 김정은 <철가루의 시대>-



IP *.202.13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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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08:23:19 *.104.9.216
그대와 그대의 남편에게 조금 먼저 나온 사람으로써 형편도 모르고 한말씀 드리자면.

'징역과 회사는 나오는 맛' 이라는 제가 책 제목으로 쓸려고 아껴둔 말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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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08:59:18 *.202.136.71

그 길로 가는 중입니다...

<떠남과 만남>처럼 그 여정 또한 아름다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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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0:53:36 *.196.54.42

어차피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으로 가여 할 것인데,

 ‘환상적인 파트너십으로 난관 돌파'란 신공을 간직한 앨리스가 무엇이 두려울까요?

일산에도 시인부부가 있다더군요. 파주의 부부시인 작가의 출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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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8:23:28 *.65.152.173

구달님 걱정 끼쳐드린 건 아닌지요? ^^

부부시인까진 못되더라도 부부작가는 될 수 있도록 애써보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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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3:08:36 *.94.41.89

철가루 시는 듣고 또 들어도 기운이 팍팍 솟는 힘을 주는 듯 해요.

어떤 길이든 응원합니다 ^^ 환상적인 파트너십으로 헤쳐나가기! 정말 멋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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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8:25:03 *.65.152.173

세트 자작시 내가 너무 많이 써 먹었지? ㅋㅋ

데카상스에겐 이런 시 저런 시 다 오픈했지만 '변경연' 홈피엔 아직 조심스러워~~

응원녀 녕이의 응원으로 기운 팍팍 솟는 아침이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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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3:53:35 *.85.20.115

그대 부부를 보니 꽃다지의 노래만큼 좋은 세상이란 노래가 생각나네.


내 작은 목소리로 다른 이들을 노래하고

너와 나의 목소리로 세상을 노래하며

언젠간 이룰거야 노래만큼 좋은세상

우리 모두의 힘으로 우리가 만들 세상

내 영혼의 문을 두드리는 노래에 마음을 열고

나만의 좁디좁은 껍질을 깨고 날개를 펼치면


당신을 만나고 또 살아갈 힘이 되어

거친 이 세상속을 헤쳐나가리

그리고 소중한 모든 것 지켜갈 힘이 되어

내 맘에 지지 않는 별 하나로 뜨지


나는 앨리스를 믿으며

앨리스 부부를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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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7:09:44 *.113.77.122

역시 작가는 작가답게 멋진 시로 답을 하네


이 시도 너무 멋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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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8:26:57 *.65.152.173

오!! 노래도 내 스타일이네.... 내 스타일이 또 에움스타일이기도 하고^^

이심전심이네.... 그대의 믿음, 그대의 지지 항상 고마워하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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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7:09:15 *.113.77.122

앨리스의 환상적인 파트너십이 벌써 기대되는데. 

현실이 오히려 굳건한 토대가 되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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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8:28:21 *.65.152.173

그죠!! 인생이 순탄하기만 하면 무슨 재미.....

이 과정도 즐기며 잘 보내봐야지요~~~^^ 고마워요 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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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18:18:39 *.213.28.79

남편과 같이 고뇌하고 분개하는 아름달운 앨리스의 모습!

부부작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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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8:29:37 *.65.152.173

부부가 같이 분개하고 고민하면서 또 그만큼 성숙해지겠지요~~~

감사드려요~~~ 참치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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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8 23:25:46 *.222.10.126

부디 화내어 자기 몸 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고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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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08:33:28 *.65.152.173

환상적인 파트너십에 무슨 화낼일 있을라구요~~~^^

'임산부 구급차 사건' 같은 일에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분개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응원 감사드리구요~~~ 건강도 잘 챙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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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3 20:31:49 *.160.136.90

사십대 중반 나의 입장에서도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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