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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8일 09시 53분 등록


강의


10기 김정은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신영복, 돌베개, 2004


 


1. 저자에 대하여


 


신영복 (1941~)


대한민국의 작가, 대학교수이며 진보적 학자이다. 호는 쇠귀이다.


 


"공부를 한자로工夫라고 써요. 글자를 풀어보면 하늘과 따’, 즉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게 공부예요. 즉 이 세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게 공부죠. 그런데 하늘과 땅을 통합하고 연결하는 건 바로 사람입니다. 해서 천, , , 이걸 다 아우르는 게 공부고, 사람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야말로 공부의 가장 핵심이고 정점입니다.”


 


신영복은 1941년 경상남도에서 태어났다. 고향은 밀양이지만, 출생지는 의령이었다. 아버지는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경상북도에서 교사로 근무했는데 일본인 교장의 조선 학생 차별에 항의하다가 파면됐다. 몇 년 지난 뒤에 아버지께서 교사 한 명뿐인 간이학교의교장으로 의령에서 근무하실 때 신영복은 교장 사택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부산으로 유학을 떠날 때까지 어린 신영복은 교장 선생님의 아들로 밀양 등지의 사택에서 자라게 된다.


 


다섯 살 어린 신영복의 머리에도 해방의 그날은 기억이 또렷하다. 그리고 전쟁은 그가 열 살 때 터졌다. 전쟁의 기억은 끔찍했다. 밀양군 교육감이 되신 아버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하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그는 자형이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부산상고로 진학하게 되었다. 시인으로 5·16 군사반란 뒤 교원노조 운동으로 구속된 살뫼 김태홍 선생이 당시 국어 선생님이었는데, 그분의 권유로 한국은행 면접시험 대신 서울 상대 경제학과에 시험을 쳐 합격한 것이 1959년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지 꼭 1년 만에 4·19가 일어났다. 그것은 엄청난 감동이자 충격이었다. 처음에는부정선거 다시 해라’ ‘자유당 정권 물러가라정도에 약간의 민족주의적 감정이 가미된 정도였지만, 세상이 바뀐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큰 감동이었다. 4·19에서 5·16까지 비록 1년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푸른 하늘을 보았다는 것은, 그것을 직접 보았을 때의 그 감동은 지금까지 그를 지탱시켜준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4·19는 그야말로총탄이 이마를 뚫고 지나간 혁명이었다. 비록 독일어 원어를 교재로 썼지만, <자본론> 강독이 정식 과목으로 개설되기도 했고, 학생들은공산당 선언같은 문건을 번역해서 세미나를 시작했다.


 


그리고 5·16이 왔다. 배후에는 미국이라는 외세가 있었다. 그 거대한 힘이 4·19를 누르고 있었다. 4·19의 감동 속에 총알은 우리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고 진보적 청년들은 생각했지만, 5·16의 현실 속에서 그들은 다시 깨달았다. 총알은 모자만 뚫고 지나갔다고! 5·16이 무너뜨린 것은 무능한 정권뿐만이 아니라 4·19 이후 돋아나기 시작한 통일운동, 노동운동 등 각 부문 운동의 새싹이었다.


 


1·2학년 때까지 가정교사 하느라 학교 공부만 따라가기 바빴던 신영복은 5·16이 일어난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후배들의 세미나 지도를 시작하는 등 학생운동에 몰두하게 된다. 그는 군사정권이 들어선 현실에서 장기적인 학생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서울 상대에 본격적인 독서 동아리를 만들게 된다. 마오쩌둥의모순론이나신민주주의론같은 논문도 번역해서 대학노트에 베껴 적어 돌려 읽고, 고리키의 소설 <어머니>도 영문판을 구해 대학노트 4권에 깨알같이 번역해서 돌려 읽곤 했는데, 나중에 통혁당 사건이 터지면서 모두 중앙정보부에 압수됐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는 주로 다른 대학이나 연합 동아리 지도에 주력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숙명여대에 강사로 나가던 시절, 아마 1965 2학기나 1966년 초에 <청맥>이라는 잡지의 예비 필자 모임인 새문화연구회 모임에 안병직 등 선배들을 따라나가게 되었는데, 여기서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의 김질락을 만나게 되었다. 김질락은 신영복보다는 67년 선배였다. 김질락과 그의 후배 이진영 등은 신영복이 학생운동에 깊이 간여하고 있는 것을 알고 그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접근했고, 어느 날 김질락이 정색하고 혁명을 지지하느냐고 물어왔고, 신영복이 그렇다고 하자 그날부터 김질락, 이진영과는 따로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나중에 통혁당 산하의 민족해방전선으로 발표된 모임이다. 통혁당 사건으로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 등이 사형됐으니,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신영복은 살아 있는 사건 관련자 중에서 가장 핵심 인물이 된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감옥에서 밑바닥을 살아온 기층민중과 24시간을 맨 살을 부대끼며 자신이 지식청년으로서 가지고 있던 창백한 엘리트주의적 관념성과 '먹물성'을 비판하고 반성을 하게 된다. 감옥에서의 삶은 한방에서 맨 살로 부대끼며 살다 보니 서로의 과거와 생각을 공유하게 되고 자신의 삶과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번은 목수출신이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지 않고 주춧돌부터 그리는 것을 보고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책이나 이론으로 배운 세계가 현실과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생각에 그간의 인식 틀을 깨부순 것이다.


 


무엇보다 10여 년간 교도소에서 노동을 하면서 목공, 영선, 제화공, 재단사 등으로 직접 노동자 생활을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며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자신의 인간 개조론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특히, 감옥에서의 비전향 장기수들과의 만남은 이후 그의 사상과 인생관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막연하게 책에서나 보아온 분단과 전쟁의 피투성이 현대사의 이야기를 직접 이를 경험한 빨치산과 투사들을 통해 생생히 들음으로써 '피가 통하고 숨결이 이는 화석'처럼, 살아있는 역사체험을 한다. 또한, 한학자 출신의 사상장기수로부터 동양고전과 철학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서구사상에 매몰된 현실에 대한 자각과 자존을 깨닫고 고전학습에 몰입하기도 했다.


 


 2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출소 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나눔과 소통을 하고 있다


 


참조


신영복의 60년을 사색한다 한홍구 칼럼 20060511일 제609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1988)


《나무야 나무야》, (돌베개, 1996)


《더불어 숲》, (2003)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2004)


《처음처럼》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청구회 추억》 (돌베개, 2008)


《느티아래강의실》 (한울, 2009)


《신영복-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0)


 


2.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장 서론


 


22


이 시기는 흔히 축의 시대라고 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상의 백화제방 시대입니다. 처음으로 고대국가가 건설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최대한의 담론이 쏟아져 나왔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도 이 시대의 사상가임은 물론입니다. 한마디로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근본 담론의 시대 그리고 거대 담론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특히 그것이 관철하고자 하는 세계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춘추전국시대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부국강병이 최고의 목표가 되고 있는 무한 경쟁 체제라는 점에서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시의 담론을 통하여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전망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사회 생활에 지친 아버지들은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자녀들에게 강해야 살아남는다의 메시지를 주입하게 된다. ‘강해야 살아남는다’, ‘무한경쟁’, ‘경쟁적 자아실현에서 함께 살자’, ‘협력적 자아 실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23


유럽 근대사의 구성원리가 근본에 있어서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관계론 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존재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 증식을 운동 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입니다.


 


26~27


하루 종일 걸려서 그제야 깨닫는 그런 비능률적인 방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매우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음에 드는 고전 구문을 선택해서 암기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의 할아버님께서는 누님들의 영어 교과서를 가져오라고 해서 그 뜻을 물어보시고는 길게 탄식하셨지요. 천지현황.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천지와 우주의 원리를 천명하는 교과서와는 그 정신세계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를 자주 바라보게 되듯이 좋은 문장을 발견하기만 하면 어학은 자연스럽게 습득되리라고 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암기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원문을 해독하고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정도면 금상첨화지요. 그러나 일단은 고전에 담겨 있는 내용을 이해하고 그 뜻을 재조명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교과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교과서의 내용에 의해 사고체계가 잡혀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천지현황을 다루는 교과서와 ‘I am a dog’을 다루는 교과서는 천지 차이일 것이다. 어학이건, 고전이건 좋은 문장을 만나는 것은 중요하다.


 


28~29


무엇과 무엇의 차이를 비교하는 방식의 접근 방식을 나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시각 즉 비교하고 그 차이를 드러내는 관점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러한 관점은 가장 본질적인 것, 핵심적인 것을 놓치기 싶습니다. 물론 본질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만 그러한 경우보다는 그 형식에 있어서나 그 표현에 있어서의 차이, 즉 지엽적인 부분이 비교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본질적인 차이가 지적된다 하더라도 이른바 차이라는 개념으로 그것의 본질 부분을 설명하거나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지금 여러분 가운데 두 사람을 일어서게 하고 두 사람의 차이에 주목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본질적인 것이 드러날 것 같습니까? 우리가 어떤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먼저 그것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최대한으로 수용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대등한 비교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교나 차이는 원천적으로 비대칭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차이를 보려는 시각은 결국 한 쪽을 부당하게 왜곡하는 것이 아닐 수 없으며, 기껏해야 지엽적인 것이나 표면에 국한된 것을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지요. 차이에 주목한다는 것은 결국 차별화로 귀착되는 것이지요. 반대의 논리도 없지 않습니다. 일단 차이를 인식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통합과 공존을 모색한다는 논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진정한 공존은 차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는 것이지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공존이 필요한 것이지요. 어떠한 경우든 차별화는 본질을 왜곡하게 마련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 점을 특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수많은 관계 그리고 수많은 시공으로 열려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입니다. 우리가 고전 강독의 화두로 걸어놓은 것입니다. 여기서 동양 문화가 서양 문화를 비교하려는 것은 우리의 고전 강독의 화두인 관계론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차별을 불러온다. 진정한 공존은 차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관계론에 대한 이해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33


우리는 이 대목에서 신중해야 합니다. 최근 동양학에 대한 서구의 관심은 이와 같은 성찰적 동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양적 구성 원리가 인문주의인 것은 사실이며 과학과 종교의 모순이 없는 구조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양에 대한 관심은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신대륙에 대한 콜럼버스의 관심입니다. 과도하게 축적된 초국적 자본이 자본주의 시장권에서 분리되어 있던 동구권과 러시아 대륙에 이어서 다시 광범한 중국 시장에 쏟는 관심, 이것이 주된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일면성을 띠지 않는 시각이나 관점은 없습니다. 모든 관점은 일정하게 당파성을 띱니다. 그렇게 때문에 객관성과 중립성을 주장하는 반론이 끊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실천적 관점입니다. 동양학에 대한 관점을 바로 이 지점에 세우는 작업이야말로 실천적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점을 참여점으로 하는 고전 독법이 진정한 의미에서 고전을 새롭게 재조명하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동양에 대한 관심은 기본적으로 신대륙에 대한 콜럼버스의 관심!.


 


36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현실이 곧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37


진리란 이미 기성의 형태로 우리의 삶의 저편에 또는 높은 차원에 마치 밤하늘의 아득한 별처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사랑하고 관조하는 구도 속에 진리는 존재합니다.


 


진리가 서양에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학적 문제임에 반하여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입니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동양적 사고는 삶의 결과를 간추리고 정리한 경험 과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양 사상이 윤리적 수준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비종교적이며 과학과의 모순이 없습니다.


동양 사상의 특징


 


40


생기의 장으로서의 자연 개념은 현실적인 삶에서 욕망의 절제로 나타납니다. 절용휼물, 안빈낙도하는 삶의 철학으로 나타납니다. “봄여름에는 도끼와 낫을 들고 산에 들어가 나무를 베지 않고 촘촘한 그물로 하천에서 고기를 잡지 않는맹자 것이지요. 동양 사상의 현실주의란 이러한 자연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인간과 인간관계를 두루 포괄하는 사회적 내용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1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동양 사상의 핵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42


인성이란 개념은 어떤 개체나 존재의 속성으로 환원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인이 더불어 만들어내는 장의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동양적 인간주의는 이처럼 철저하게 관계론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키우는 순서입니다.


 


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 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 나의 노인과 남의 노인을 함께 생각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는 것을 인이라 합니다.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론이 확대되면 그것이 곧 사회적인 것이 됩니다. 동양 사상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거론되는 화해의 사상 역시 그렇습니다. 화는 쌀을 함께 먹는 공동체의 의미이며, 해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민주주의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성의 고양이 곧 사회성의 고양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43


동양 사상은 가치를 인간의 외부에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종교적이고, 개인의 내부에 두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이 아닙니다. 동양학의 인간주의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인간을 배타적 존재로 상정하거나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두는 인본주의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천지인 산재의 하나이며 그 자체가 어떤 질서와 장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입니다. 그리고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로 인식하는 경우에도 인간을 관계론의 맥락에서 파악함으로써 개인주의의 좁은 틀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동양적 구성 원리에는 과학과 종교 간에 나타나는 그러한 모순이 없다고 했지만 이것은 동양 사상의 내부에 모순 구조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동양적 구성 원리에서는 그러한 모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장 오래된 시와 언 『시경』詩經 『서경』書經 『초사』楚辭


 


55


정의가 언이 되고 언이 부족하여 가가 되고 가가 부족하여 무가 더해진다고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말로는 부족하고 노래로도 부족하여 춤까지 더해 그 깊은 정한의 일단이나마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조르바가 생각난다. 조르바의 춤, 조르바의 산투르


 


56


거짓 없는 생각이 시의 정신입니다.


 


62


사실이란 진실의 조각 그림입니다. 사실과 전설 가운데서 어느 것이 더 진실한가를 우리는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사실보다 전설 쪽이 더 진실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의 내면을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어떤 혼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시경의 시가 바로 이러한 진실을 창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이란 결국 진실을 구성하는 조각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의 조합에 의하여 비로소 진실이 창조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문학의 세계이고 시의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64


시경에는 위에서 소개한 것과 같은 저항시와 노동요가 대단히 많이 실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풍영월이 시의 본령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편향된 여과 장치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전통과 선입관 때문에 우리는 매우 귀중한 정신세계가 왜곡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시의 세계와 시적 정서, 나아가 시적 관점은 최고의 정신적 경지라고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64-65


시적 관점은 우선 대상을 여러 시각에서 바로 보게 합니다. 동서남북의 각각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춘하추동의 각각 다른 시간에서 그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결코 즉물적이지 않습니다. 시적 관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자유로운 관점은 사물과 사물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한마디로 시적 관점은 사물이 맺고 있는 광범한 관계망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를 읽고 시적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66


누가 누구를 모방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개인적 세계를 열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자기의 좁은 체험의 세계를 부단히 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지요. ‘시경의 세계는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거짓 없는 애환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 매몰되고 있는 허구성입니다. 미적 정서의 허구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71


1957년과 1980년대에 대대적으로 실시되었던 하방 운동의 사상적 근거가 바로 이 무일 사상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하방 운동은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당 간부, 정부 관료들을 농촌이나 공장에 내려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군 간부들을 병사들과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게 함으로써 현장을 체험하게 하는 운동이었지요. 간부들의 주관주의와 관료주의를 배격하는 지식인 개조 운동으로, 문화혁명 기간 동안 1천만 명이 넘는 인원이 하방 운동에 동원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72


신세대 정서로는 그러리라고 생각됩니다. 한마디로 무일은 불편함이고 불편은 고통이고 불행일 뿐이지요.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74


미래는 과거로부터 옵니다.


 


75


레닌은우리는 어떤 유산을 거부해야 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역사 공부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계승할 것인지를 준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을 피력했지요. 나는 이무일편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역사를 읽으면서 무엇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고전 독법은 물론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당대 사회의 문제의식으로 역사를 재조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무일편이 무엇보다 먼저 효율성과 소비문화를 반성하는 화두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 노르웨이의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를 저장하는 탱크 속에 반드시 천적인 메기를 넣는 것이 관습이라고 합니다. 천적을 만난 불편함이 정어리를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이지요.


 


76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과거의 지식이 빨리 폐기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노인들의 위상이 급격하게 추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하는 것은 이것은 사회가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조로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낭비이면서 역사 경험의 낭비입니다.


 


77


인류의 정신사는 어느 시대에나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모색하게 마련입니다. 농본사회에 있어서 노인의 존재는 그 마을에 도서관이 하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노인 세대의 비율이 급증한 시기는 바로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있었던 시기였으며 인류가 장신구를 사용하고 동굴벽화를 그리고 장례 행위를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 오기 때문입니다.


 


78


 시경이 사실적이고 노동과 삶과 보행의 정서로 이루어진 시 세계임에 비하여초사의 세계는 자유분방, 정열, 상상력, 신비, 환상 등 낭만적이고 서정적입니다. ... 굴원이 중국 시인의 대표인 것도 처음으로 그 이름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굴원의 <이소>


 


80


굴원이 밝힌 유배의 이유는 다소 엉뚱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다 부패했는데 자기 혼자만 깨끗했기 때문에 추방당했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술에 취해 있는데 자기 혼자만 깨끗했기 때문에 추방당했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술에 취해 있는데 자기 혼자만 맑은 정신이어서 추방당했다는 것입니다.


 


81


청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82


비타협적 엘리트주의와 현실 타협주의를 다 같이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 제가 감옥에서 만난 노선배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위해


이론은 좌경적 비타협적인 원칙의 고수


실천은 우경적 현실주의와 대중노선  


 


83


낭만주의가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인식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을 구속하는 억압에 대한 원천적 저항과 비판 의식을 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응 방식의 개인주의적 성격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소아병적 인식의 협소함 때문에, 그리고 도피 또는 복고적이라는 실천의 허약함 때문에 그것의 긍정적 의미가 크게 훼손되어왔기 때문입니다.


 


84


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과 대담함이 곧 낭만주의의 일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넓고 긴 안목이 비록초사의 세계나 남방적 낭만주의와 무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가 처하고 있는 공고한 체계적 억압과 이데올로기적 포섭 기제를 드러내야 하는 당면의 과제와 한 번쯤 연결시켜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굴원은 동정호 남쪽에서 방황하다 기원전 295 5 5일 멱라수에 돌을 안고 투신하여 59세로 일생을 마칩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단오절인 이 날을 시인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3장 『주역』의 관계론 『주역』周易


 


87


주역의 관계론에 초점을 두기로 합니다. ‘주역에 담겨 있는 판단 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을 중심으로 읽기로 하겠습니다. 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이란 쉽게 이야기한다면 물을 긷는 그릇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바다로부터 물을 긷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름의 인식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그릇이 집집마다 있었지요. 여러분도 물 긷는 그릇을 한 개씩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서로 비슷한 그릇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주역에 담겨 있는 사상이란 말하자면 손때 묻은 오래된 그릇입니다.


 


89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이나 귀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90


의난이 있을 경우 임금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묻고, 그 다음 조정 대신에게 묻고 그 다음 백성들에게 묻는다 하였습니다. 그래도 의난이 풀리지 않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비로소 복서에 묻는다, 즉 점을 친다고 하였습니다.


 


91


텍스트로서 경은 오랜 경험의 축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지혜라고 하였지요. 유구한 삶의 역사적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코 시민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것을 점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내고 해석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자의성을 지적하여 미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괘의 구성과 쾌사, 효사에 동양적 사고의 원형이 담겨 있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공자학파의 철학적 해석 방식뿐만 아니라 경 속에 담겨 있는 관계론에 주목해야 하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92


주역을 읽고자 할 때는 십익을 먼저 읽는 것이 좋습니다. 십익은 해설서기 때문에주역의 전체 구성과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주역은 춘추전국시대의 산물이라고도 합니다. 춘추전국시대 550년은 기존의 모든 가치가 무너지고 모든 국가들은 부국강병이라는 유일한 국정 목표를 위하여 사활을 건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신자유주의 시기였습니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수립되기 이전의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할수록 불변의 진리에 대한 탐구가 절실해지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 시기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 이론에 대한 근본적 담론이 가장 왕성하게 개진되었던 시기였음은 전에 이야기했습니다. 한마디로주역은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 절실하게 요청되던 시기의 시대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102


여담이었습니다만 자기의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동양학에서는 그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않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주역의 사상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의 길흉화복이 그 사물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주역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득위와 실위의 개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서구의 존재론과는 다른 동양학의 관계론입니다.


 


107


주역은 변화에 관한 사상이고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주역의 관계론적 철학사상이 이러한 사회 역사적 지반 위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상이란 어느 천재의 창작인 경우는 없습니다. 어느 천재 사상가가 집대성하는 경우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상이란 장구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입니다.


 


131


주역은 변화의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변화를 사전에 읽어냄으로써 대응할 수 있고, 또 변화 그 자체를 조직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절제란 바로 이 변화의 조직, 구성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 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법이 로마 이외에는 통하지 않는 것을 잊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133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더니 /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4장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논어』論語


 


140


춘추전국시대의 사회 경제적 특징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사회 경제적 배경은 사상사의 이해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상도 사회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41


공자의 인간 이해를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인권사상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서의 노예관을 이유로 들어 그를 반인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사상가로 매도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전 독법은 그 시제를 혼동하지 않음으로써 인에 대한 담론이든 민에 대한 담론이든 그것을 보편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147


생각하면 과거에 대한 우리의 관념만큼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영원히 지나가고 다시 오지 않는 과거는 없습니다. 몇 천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고분의 주인공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까맣게 잊었던 과거의 아픔 때문에 다시 고통 받기도 하고, 반대로 작은 등불처럼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옛 친구를 10년이 훨씬 지난 후에나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147


시간을 객관적인 실재로 인식한다는 점이 그렇다. 시간이란 실재가 아니라 실재의 존재 형식일 따름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기의 나이를 200, 300살이라고 대답한다. 나무가 변하지 않고 사막이 변하지 않고 하늘마저 변하지 않는 아프리카의 대지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나이에 대한 그들의 무지는 당연한 것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마저도 변화가 아니라 반복이다. 아프리카의 오지에 1년을 365개의 숫자로 나눈 캘린더는 없다. 시간은 실재의 변화가 걸치는 옷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148


강물이 흘러가는 방향은 반대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거로부터 흘러와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라는 형식에 담긴 실재의 변화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150


스승이란 단지 정보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지요. 더구나 과거지사를 전하는 것만으로는 스승이 될 수는 없지요. 스승이란 비판적 창조자여야 하는 것이지요.


 


151


베버가 강조하는 직업윤리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전문성에 대한 거부가 동양 사회의 비합리성으로 통한다는 것이 베버의 논리입니다. ‘군자불기를 전문성과 직업적 윤리의 거부로 이해했습니다. 분업을 거부하였고, 뷰로크라시를 거부하였고, 이윤 추구를 위한 경제학적 훈련을 거부하였다고 이해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양 사회가 비합리적이며 근대사회 형성에서 낙후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읽은 사람이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을 동력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 오늘날도 전문성을 강조하기는 막스 베버와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성은 바로 효율성 논리이며 경쟁 논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효율과 경쟁을 강조하는 자본가는 전문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전문화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자본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는 것이지요.


 


153


춘추전국시대는 법가에 의해 통일됩니다. 춘추전국시대 같은 총체적 난국에서는 단호한 법가적 강제력이 사회의 최소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덕치가 평화로운 시대 즉 치세의 학이라고 한다면 행정명령과 형벌에 의한 규제를 중심에 두는 법치는 난세의 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4


첫째는 형과 예를 인간관계라는 관점에서 조명해보는 것입니다. ... 사회의 지배 계층은 예로 다스리고 피지배계층은 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주나라 이래의 사법원칙이었습니다. 형불상대부 예불하서인이지요. 형은 위로 대부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예는 아래로 서인에게까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예와 형의 가장 큰 차이는 그것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의 차이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형은 최소한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에 비하여 예는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세우려는 우회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5


둘째로 부끄러움에 관한 것입니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되지만, 정형으로 다스리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할 뿐이며 설사 법을 어기더라도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교통순경이 교통법규 위반 차량 네다섯 대중에서 한두 대만 끊자 적발된 차량 운전자가 당연히 항의를 하였지요. 저 애도 위반이라는 것이지요. 교통순경의 답변이 압권이지요.


어부가 바닷고기를 다 잡을 수 있나요?” 처벌받은 사람은 법을 어긴 사람이 아니라 다만 운이 나쁜 사람인 것이지요.


 


156


타인의 부정과 추락에 대하여, 그것도 사회 유명인의 그것에 대하여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단계가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라는 것이지요. 타인의 부정이 오히려 자신의 부정을 합리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지요.


 


부끄러움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그 다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회란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성 자체가 붕괴된 상태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158


미인은 대체로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 일익을 담당하려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소위 꽃으로존재하려는 경향이 우세합니다. 미인이라는 자의식이 없는 사람이 열심히 일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에 비해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지요. 존재론과 관계론의 차이입니다.


 


161


그러나 인간의 의식이란 어차피 부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에 대한 일차적 인식으로서의 이른바 감성적 인식은 부분적 인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체로부터 유리될 수 밖에 없는 것임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162


'논어의 화동론은 근대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와 동은 철저하게 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논어의 화동론


-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 관용과 공존의 논리.


-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


 


163


군자화이부동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소인동이불화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입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164


중국의 중화주의는 철저히 문화적인 것이며 결코 패권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설령 그러한 주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문화주의란 군사적 강제나 정치적, 경제적 강제를 배제한다는 의미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다른 문화, 다른 가치, 그리고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관용과 공존을 존중한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근본에 있어서 얼마든지 또 하나의 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극좌와 극우가 다 같이 동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라는 극우 논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극좌 논리는 둘 다 강철의 논리이며 존재론적 구조이며 결국 동의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극좌와 극우는 그 근본적인 구성 원리에 있어서 상통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새로운 문명은 이 동의 논리와 결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166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는 중국과 같은 대륙적 소화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불교, 유학, 마르크시즘, 자본주의 등 어느 경우든 더욱 교조화 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동의 논리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화의 논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67


신체가 건강한 것보다는 마음 좋은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루쉰이 의사 되기를 포기하고 문학으로 진로를 바꾼 이유가 그렇습니다. ....우매한 대중의 각성이 더욱 시급한 중국의 과제라고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삶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무쇠 방에 갇혀 죽어가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는중국인의 각성을 위하여 치열한 일생을 살아갑니다.


 


169


변혁기의 수많은 실천가들이 한결같이 경구로 삼았던 금언이 있습니다.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는 것이었어요. 운동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것은 인간관계로서의 덕이 사업 수행에 뛰어난 방법론으로서 검증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이며 가치이기 때문에 귀중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170


자공이 정치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정치란 경제, 군사 그리고 백성들의 신뢰이다.” 자공이 묻기를, “만약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는 것을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 “군사를 버려라” “만약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리지 않을 수 없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경제를 버려라. 예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었지만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다.”


 


172


정치란 그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잠재력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적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적 잠재력의 극대화는인간성의 최대한의 실현이 그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 잠재력과 인간성이 바로 인간관계의 소산인 것은 다시 부연할 필요가 없지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정치란 신뢰이며 신뢰를 중심으로 한 역량의 결집이라는 사실입니다.


 


번지가 인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인이란 애인이다.” 이어서 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지란 지인이다."


 


173


각각 다른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안연에게는 인이란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답변하였고 중궁에게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사마우에게는 인이란 말을 더듬는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173


자기가 한 말을 실천하기가 어려우니 어찌 말을 더듬지 않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말은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라는 뜻입니다. 이 역시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4


내가 알려고 하는 그 사람이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그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연의 대상물과 달리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나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쌍방향으로 열려 있어야 합니다. 나와 관계가 있어야 하고 나를 사랑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기를 보여주지 않는 법이지요.


 


175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사람이팔기 위해서진력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모든 것을 파는 사회이며 팔리지 않는 것은 가차없이 폐기되고 오로지 팔리는 것에만 몰두하는 사회입니다. 상품 가치와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체제에서 추구하는 지식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는 한 점의 인연도 없습니다. 지는 지인이라는 의미를 칼같이 읽는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는 무지한 사회입니다. 무지막지한 사회일 뿐입니다.


 


176


부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그것을 누리지 않으며, 빈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이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180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요지는 적어도 사가 관념적 사고의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학이 보편적 사고라면 사는 분명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의 실천이나 그 기억 또는 주관적 관점을 뜻하는 것이라고 읽어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181


반대로 자기 경험을 유일한 잣대로 삼거나 보편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일을 처리하면 위험한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자신의 경험에서 이론을 이끌어내는 사람들, 즉 대부분의 현장 활동가들은 대단히 완고합니다. 자기 경험만을 고집합니다. .. 경험적 지식은 매우 완고합니다. 따라서 경험주의 주관주의라고 합니다.


 


182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주관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세상이란 참으로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동은 멀고 소이는 가깝지요. 자기의 처지에 눈이 달려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시각과 이해관계에 매몰되기 쉽지요. 따라서 사회적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학과 사를 적절히 배합하는 자세를 키워가야 합니다.


 


183


그가 부럽다고 하는 이유는 선생에게는 방학이 있다거나 칠판에 쓰는 것이 전기배선 작업보다 힘이 덜 든다는 것도 아니었어요. “책상에서는 한 가지이지만 실제로 일해보면 열 가지도 넘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어요. 교실보다는 현실이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지요.


 


184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 형태입니다.


 


187


맹지반은 자랑하지 않는다. 퇴각할 때는 가장 위험한 후미를 맡았다. 그러나 막상 성문에 들어올 때는 화살을 뽑아 말에 채찍질하면서내가 감히 후미를 맡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말이 나아가지 않아서 뒤처졌다고 하였다.


 


188


공을 숨기도 겸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욕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욕심이 없어야 겸손할 수 있으며 욕심이 없어야 지혜가 밝아질 수 있는 것이지요.


 


192


사랑은 분별이기 때문에 맹목적이지 않으며, 사랑은 희생이기 때문에 무한할 수도 없습니다. 징역을 살 만큼 살아본 사람의 경우가 아마 가장 철저하리라고 생각되는데마을의 모든 사람에 대한 허망한 사랑을 가지고 있거나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은증오에 대하여 알 만큼 알고 있기때문이라 믿습니다.


 


193


과거의 사상을 비판할 경우 우리가 가장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 바로 비판의 시제입니다. 고대 사상을 오늘의 시제에서 평가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것이 당시의 사회적 조건에서 어떠한 의미로 진술된 것인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모든 사상은 역사적 산물입니다.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태어나고 묻히는 것이지요. 당시의 가치, 당시의 언어로 읽는 것은 해석학의 기본입니다.


 


194


바탕이 문채보다 승하며 거칠고 문채가 바탕보다 승하면 사치스럽다. 형식과 내용이 고루 어울린 후라야 군자이다.


 


 195


우리의 삶과 우리 시대의 문화를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광고 카피의 문장과 표현이 도달하고 있는 그 형식에 있어서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누구나 감탄하고 있는 일이지만 광고 내용을 그대로 신뢰하는 소비자는 없습니다. 그런 경우 사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사회운동 단체의 성명서처럼 도덕성과 정당성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서 주장을 전개하는 형식이 다듬어지지 않은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 언어를 적절히 절제함으로써 훨씬 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격을 떨어트려놓아 아쉬움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지요. 질이 승하여 야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199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200


그리고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일감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그러한 것인데 즐거움은 놀이이고 궁리는 학습이며 만들어내는 행위는 노동이 되는 것이지요.


 


201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는 동적이고 인자는 정적이다. 지자는 즐겁게 살고 인자는 오래 산다.


 


지자는 눈빛도 총명하고 사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며 특히 사물의 변화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자는 일단 앉아 있는 사람으로 형상화됩니다.


 


5장 맹자의 의 『맹자』孟子


 


211


공자는 춘추시대 사람이라면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입니다. 춘추시대의 군주는 지배 영역도 협소하고 전통의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특히 군주 권력이 귀족 세력들이 제어를 받는 제한 군주였습니다. 이에 비하여 전국 시대의 군주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절대 군주였습니다. 춘추시대에 비하여 국가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212


공자의 맹자에 의해서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심 사상이 인에서 의로 이동했다는 것이지요. .. 한마디로 의는 인의 사회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13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에 비하여 사회성이 많이 담긴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만약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득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하시면, 대부들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야 내 영지에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이고, 사인이나 서민들까지도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 하는 것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위 아래가 서로 다투어 이를 추구하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217


맹자의 민본 사상의 핵심입니다. 임금과 사직을 두는 목적이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임금을 몰아내고 현인을 세 임금으로 세울 수 있음은 물론이고 사직단도 헐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직단은, 비유한다면 로마교황청입니다. 그로부터 임금의 권력이 나오는, 당시 최고의 종교적 권위입니다. 그러한 권위와 성역마저도 가차 없이 헐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맹자의 민본 사상입니다.


 


219


오늘날의 일반적 정서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과 닮는 것을 피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성에 가치를 두려고 하지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개인적 정서의 만족을 낙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이 얼마나 한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222


우선 맹자의 논리 전개 방식과 그 비유의 적절함이 어떻습니까? 문장의 간결함, 흐름의 유려함, 대비의 명쾌함, 그리고 한문 특유의 농축미가 서로 어울려 이루어내는 격조를 나로서는 생생하게 살려낼 방법이 없습니다.


 


230


화살 만드는 사람은 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상할까 봐 걱정한다. 무당과 장인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기술기술의 선택은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232


부중했을 경우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반구제기의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삶의 자세와 철학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실패에 직면하여 그 실패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가 아니면 외부에서 찾는가의 차이는 대단히 큽니다. 이것은 모든 운동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가 아니면 내부에서 찾는가 하는 세계관의 차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세계는 끊임없는 운동의 실체이며, 그 운동의 원인이 내부에 있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 문제입니다. 반대로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결국 초월적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 논리로 초월적 존재를 만든 어떤 존재를 또다시 외부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237


소를 양으로 바꾼 까닭은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본다는 사실입니다. 본다는 것은만난다는 것입니다. 보고, 만나고, 서로 안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이유가 바로 이만남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만남이 없는 사회에불인인지심이 있을 리 없는 것이지요. 식품에 유해 색소를 넣을 수 있는 것은 생산자가 소비자를 만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239


나는 사회의 본질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맹자가 사단의 하나로 수오지심, 즉 치를 들었습니다만 나는 이 부끄러움은 관계가 지속적일 때 형성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243


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그 물결을 바라보아야 한다. 깊은 물은 높은 물결을, 얕은 물은 낮은 물결을 일으키는 법이다. 일월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비추는 법이며,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가지 않는 법이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 공자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고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는 것이다. ....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


 


6장 노자의 도와 자연 『노자』老子


 


253


유가 사상은 서구 사상과 마찬가지로 진의 사상입니다. 인문 세계의 창조와 지속적 성장이 진의 내용이 됩니다. 인문주의, 인간주의, 인간중심주의라 할 수 있지요. 그에 비하여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입니다. 노자의 귀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이란 문명에 대한 야만의 개념이 아님은 물론이고 산천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254


자연을 카오스로 인식하는 여타 제자백가들과는 반대로 자연을 최고의 질서 즉 코스모스로 인식합니다.


 


256


일체의 인위적 규제를 재앙으로 규정하고, 자연이라는 근본적 질서를 회복할 것과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주창하는 노자의 반문화 사상이 지배 사상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비판 담론뿐만 아니라 나아가 저항 담론과 대안 담론으로서 그 지반을 넓혀가게 됩니다.


 


257


다른 한편으로 문화와 의식구조에 있어서 엄청난 허구와 비인간적 논리가 구축됩니다. 이러한 허위의식은 물리적 강제를 은폐하고 유화하기 위한 것임은 물론입니다. 바로 이점에 있어서 현대 자본주의는 그 어떤 체제보다도 강력한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습니다. 고도의 대중 조작 체계를 장악하고 이성의 포섭뿐만 아니라 감성의 포섭까지 완성해놓고 있습니다. ... 이런 맥락에서 해체주의자로서의 노자가 생환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264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닙니다


노자 철학에 있어서 무는제로’0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다는 의미의 무입니다.


 


개념이라는 그릇은 작은 것이지요. 그릇으로 바닷물을 뜨면 그것은 이미 바다가 아닙니다. ....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고 하지만 노자의 경우 이것은 폭력적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어는 존재가 거주할 진정한 집이 못 되는 것이지요.


 


270-271


<노자>의 제1장은 무와 유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관계론의 선언입니다. 무와 유는 그것에 접근하는 접근로에 따라서 구분될 수 있는 개념상의 차이일 뿐입니다. 따라서 노자의 무는제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을 초월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무입니다. 우리의 인식에 있어서 무라는 것이지요. 도는 천지 만물의 생성과 변화 그 자체를 의미하며 그런 의미에서 근원적 법칙성입니다. 인간의 인식이 그것을 담아낼 수 없지요. 도리어 인간의 인식이 그것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노자의 철학적 체계입니다. 도가 작용하여 만물이 생성 변화 발전하는 것 그것이 유입니다. 형이상학적 체는 무이지만 형이하학적 용은 유라는 것이지요. ‘도무수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도는 없고 물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무형인 도체가 유형인 도용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자 철학을 물의 철학이라고 하는 까닭은 보이는 것 중에서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물이기 때문에 물의 비유로써 도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272-273


무위의 사상과 상대주의 사상입니다. 무위란 작위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개입하거나 자연적인 질서를 깨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주의는 가치판단의 상대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판단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작위이고 그것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지요.


 


277


노자는 이 장에서, 먼저 잘못된 인식을 반성한 다음 올바른 방식으로 실천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말없이 실천하고, 자랑하지 말고, 개입하지 말고, 유유하고 자연스럽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 실천론의 요지입니다. 그렇게 할 때만이 그 성과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284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가 됩니다 도는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 가운데 가장 도에 가까운 것이 바로 물이라는 것이지요.


 


다투어야 마땅한 일을 두고도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도피주의나 투항주의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285


물은 결코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산이 가로막으면 멀리 돌아서 갑니다.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비켜갑니다. 곡류曲流하기도 하고 할수割水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가파른 계곡을 만나 숨 가쁘게 달리기도 하고 아스라한 절벽을 만나면 용사처럼 뛰어내리기도 합니다. 깊은 분지를 만나면 그 큰 공간을 차곡차곡 남김없이 채운 다음 뒷물을 기다려 비로소 나아갑니다. 너른 평지를 만나면 거울 같은 수평을 이루어 유유히 하늘을 담고 구름을 보내기도 합니다.


 


286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 낮다는 것은 반드시 그 위치가 낮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비천한 곳, 소외된 곳, 억압받는 곳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288


다수 그 자체가 곧 힘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수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흐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강한 것을 공격하기에 물보다 나은 것이 없는 까닭은 물은 쉬지 않고 흐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낙수가 댓돌을 뚫는 이치가 바로 그렇습니다.


 


289


약한 사람이 이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다수이기 때문이며 다수가 바로 현실이며 정의라는 것이지요


 


289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바다입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입니다.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바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지요. 큰 강이든 작은 실개천이든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임으로써 그 큼을 이룩하는 것이지요.


 


293


그 자명한 사실의 배후를 드러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즉 유의 배후로서의 무를 드러내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고 이 장의 의미입니다. 현상을 있게 하는 본질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상과 본질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296


백성들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임금을 믿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이지요.


 


297


분명히 변화합니다. 변화하는 이유는생활이 그대를 가르치기때문입니다. 삶의 골목에서 이러저러한 충돌을 통해서 현실의 벽을 몸으로 터득해가기 때문이지요.


 


301


가장 중요한 원칙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구태여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 매달리고 그 곧음을 겉으로 드러내게 마련이지요. 어떤 분야든 최고 단계는 특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좁은 틀을 시원하게 벗어나 있게 마련이지요.


 


7장 장자의 소요 『장자』莊子


 


309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 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310


제도개혁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이른바 장자의 자유주의 철학입니다. 개인을 지도, 감독, 보호하려는 일체의 행정적 또는 이념적 규제를인위적 재앙으로 파악하였습니다.


 


310


문제는 우리의장자독법입니다. ... 결론을 먼저 이야기한다면 혹시 나 자신도 우물 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를 반성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입니다. 과도기는 언제나 백화제방의 시대입니다. 오늘날도 예외는 아닙니다. 수많은 담론의 와중에서 우리가 골몰하고 있는 것이 결국은 패권 경쟁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장자독법의 핵심적 과제라고 생각하지요.


 


311


장자의 소요유는궁극적인 자유’, 또는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입니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소요유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 사상의 핵심입니다.


 


313


당신이 그 거북의 입장이라면, 죽어서 뼈만 남기어 존귀하게 되고 싶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고 싶겠소? 하여 돌려보냈다는 일화입니다.


 


314


노자는 도의 존재성을 전제합니다. 도를 모든 유의 근원적 존재로 상정하고 이 도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장자는 도를 무궁한 생성 변화 그 자체로 파악하고 그 도와 함께 소요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지요.


 


316


그 사람의 절실한 현실인과 장자의 고답적인 사상인무시비관을 극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장자 철학의 관념성을 드러냅니다. 이 작품의 정점은 장자기 미친 듯이 호루라기를 불어 순경을 부르고 순경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대목입니다. 루쉰의 대가적 면모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장자와 호루라기라는 극적 대비를 통하여 장자의 허구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장자의 무시비란 결국 통치자에게 유리한 논리임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호루라기는 권력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19


장자가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안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장자가 우리들에게 펼쳐 보이는 드넓은 스케일과 드높은 관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한 스케일과 관점은 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깨달음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창조적 공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바라보는 것이지요.


 


320


장자는 약소국의 가혹한 현실에서 자신의 사상을 키워낸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부자유와 억압의 극한 상황에서 그의 사상 세계를 구성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그가 생각한 1차적 가치는생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 없는 질서보다는생명 있는 무질서를 존중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반생명적인, 반자연적인 그리고 반인간적인 모든 구축적 질서를 해체하려는 것이 장자 사상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차적으로 정신의 자유입니다. ‘우물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326


그렇기 때문에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늘여주면 우환이 생기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다고 하더라도 자르면 아픔이 된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잘라서는 안 되며 본래 짧은 것은 늘여서도 안 된다. 그런다고 해서 우환이 없어질 까닭이 없다. 생각건대 인의가 사람이 본성일 리 있겠는가! 갖춘 자들이 얼마나 근심이 많겠는가.


 


328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자연을 피하려는 둔천의 형벌이다. 천인합일의 도를 얻음으로써 천제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 못하다. 아내가 죽었을 때 장자는 술독을 안고 노래했다는 일화가 수긍이 갑니다. 인간의 상대적인 행복은 본성의 자유로운 발휘로써 얻을 수 있지만 절대적인 행복은 사물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 그러나 장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의 필연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즉 도의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과의 합일입니다. ... 도의 이치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합일하여 소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밭일을 하던 노인은 불끈 낯빛을 붉혔다가 곧 웃음을 띠고 말했다. "내가 스승에게 들은 것이지만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이 있게 마련이네.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네. 본성을 보전하지 못하게 되면 생력이 자리를 잃고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가 깃들지 못하는 법이네. 내가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네."


 


노동은 그 자체가 삶입니다. 삶의 지출이 노동이지요. 지출이란 단어를 사용하자니 좀 이상합니다. 삶의 '실현'이라고 하지요. 지출보다는 실현이 더 적절한 어휘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이 삶 그 자체, 삶의 실현임에도 불구하고 기계로 말미암아 노동이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전락되는 것이지요. 노동을 그 본연의 지위로부터 끌어내리는 일을 기계가 하지요.


 


337


... 윤편이 말했다. "....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 그것은 말로 깨우쳐 줄 수가 없고 제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그것을 전수 받을 수가 없습니다. .... 옛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하지 못하고 글로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 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책의 한계에 대해서 이보다 더 명쾌한 비판이 있을 수 없습니다.


 


338


세상에는 도를 얻기 위하여 책을 소중히 여기지만 책은 말에 불과하다. 말이 소중하다는 것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뜻이 소중한 것은 가리키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은 그 뜻이 가리키는 바를 전할 수가 없다. 도대체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형과 색이요 귀로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은 명과 성일 뿐이다.


 


340


쓸모라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의 하위개념입니다. 다른 것을 만드는 데 유용한가 유용하지 않은가 하는 수준의 것이지요.


 


342


나는 쓸모 없기를 바란지가 오래다.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야 뜻대로 되어 쓸모 없음이 나의 큰 쓸모가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어찌 이렇게 커질 수 있었겠는가? 그대와 나는 다 같이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하여 서로를 하찮은 것이라고 헐뜯을 수 있겠는가? 그대처럼 죽을 날이 멀지 않은 쓸모 없는 사람이 어찌 쓸모 없는 나무를 알 수가 있겠는가?


 


343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 내려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비록 성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비키라고 소리친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치고 두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친다. 세 번째는 욕설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을 화내는 까닭은 아까는 빈 배였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헤칠 수 있겠는가?


 


345


어느 날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조금 전에는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고 꿈에서 깬 지금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를 일컬어 물화라 한다.


 


345


장자 사상을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나비 꿈은 인생의 허무함이나 무상함을 이야기하는 일장춘몽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장자의나비 꿈은 두 개의 사실과 두 개의 꿈이 서로 중첩되어 있는 매우 함축적인 이야기입니다.


 


350


지식이란 의거하는 표준이 있은 연후에 그 정당성이 검증되는 법인데 문제는 그 의거해야 하는 표준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 인위적인 것은 아닌지 그리고 내가 인위적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자연이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8장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묵자』墨子


 


363


누구의 사상이기에 앞서 반드시 무엇에 관한 사상이게 마련입니다. 사상이란 일정한 사회적 조건에서 생성되는 것이지만 그 사회적 조건이 변화하면 사상도 사상사의 장으로 물러납니다. .... 사상이란 독자성에 앞서 시대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경우든 시대가 사상을 낳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음은 물론입니다.


 


365


묵가란 형벌을 받은 죄인들의 집단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묵은 성씨라기 보다 학파의 집단적인 이름이라는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묵자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백성이 국가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당시는 혁명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혁명적 상황에서 묵가는 통치 권력의 정당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좌파 조직의 좌파 사상이었으며 묵적이란 이름은 그것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370


공자와 묵자는 다 같이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적 상황을사회적 위기로 파악했습니다. 무도하고, 불인하고, 불의한, 이기적이고 파멸적인 시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자와 묵자는 현실 인식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묵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세 가지의 고통을 받고 있는 바, 주린 자는 먹을 것이 없고, 추운 자는 입을 것이 없고, 일하는 자는 쉴 틈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보더라도 묵자가 기층 민중의 고통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묵자는 겸애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라는 상생 이론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을 지침으로 하여 연대라는 실천적 과제로서 반전 평화의 기치를 내걸고 헌신적으로 방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겸애와 반전 평화를 묵자 사상의 핵심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371


묵가는 그 사회적 기반이 와해되면서 함께 소멸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기층 민중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그들을 조직하여 세습 귀족 중심의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최초의 좌파 사상과 좌파 운동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지배 집단의 등장과 때를 같이하여 소멸하게 됩니다. 그리고 2천년이 지난 후인 19세기 말에 와서야 비로소 유교사회의 붕괴와 때를 같이하여 재조명됩니다. 그래서 2천년만의 복권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지요. 묵자의 기구한 운명은 민중들의 그것만큼이나 장구한 흑암의 세월을 견뎌온 셈입니다.


 


379


사람을 죽이는 것은 복숭아를 훔치는 것보다 죄가 더 무겁다.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크게 나라를 공격하면 그 그릇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칭송하면서 의로움이라고 한다. 이러고서도 의와 불의의 분별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383


1929년의 세계공항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케인스의 처방 때문이 아니라 2차 대전이라는 전시경제 덕분이었다는 것이지요. 2차 세계대전의 엄청난 파괴가 최대의 은인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입니다. 마치 소비가 미덕이듯이 전쟁이 미덕이 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 대체로 10년 주기로 경제공항이 반복되어왔으며 대규모 전쟁 역시 10년을 주기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의 전쟁사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385


"내게는 선생을 이기는 방법이 있으나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초왕이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은 공수반이 아니라 묵자가 했습니다.


공수반의 말은 나를 이 자리에서 죽이면 송나라를 공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저의 제자들은 금활리 이하 300명이 이미 저의 방성 기구를 가지고 송나라의 성 위에서 초나라 군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록 저를 죽인다 하더라도 이길 수 없습니다.


 


386


묵자가 송나라를 지날 때 비가 내려서 마을 여각에서 비를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문지기가 그를 들이지 않았다.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드러내놓고 싸우는 사람은 알아준다.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인 셈이지요. 개선장군에 대한 환호가 그러한 것입니다.


 


387


묵자가 반전평화론을 전개하면서 부딪친 가장 힘든 장애가 당시 만연하고 있던 사회적 관념이었습니다. 부국강병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쟁이라는 패권 시대의 관념이 최대의 장애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391


묵가를 설명하면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묵자 사상의 철학적 방법론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묵가의 조직과 실천에 관한 것입니다.


 


393


묵자 사상은 인간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성을 철학적 토대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철학적 입장에 있어서 어느 학파의 사상보다도 관계론에 철저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입장이 겸애와 교리라는 사회적 가치로 구현되고 다시 이 겸애와 교리가 당대의 사회적 조건에서 반전 평화, 절용이라는 실천적 과제와 통합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95


비명이란 하늘이 정한 운명과 숙명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화복은 인간이 자초하는 것이며 결코 하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묵자는 은나라와 하나라의 시를 인용하여천명이란 폭군이 만들어 낸 것이다”... 하늘의 뜻은 상애상리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것이 곧 하늘의 뜻이라는 형식으로 그의 사상을 개진하고 있는 것이지요.


 


9장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순자』荀子


 


404


일반적으로 유학은 객관파와 주관파로 나누어집니다. 사회질서와 제도를 강조하는 순자 계통의 객관파로 분류되고, 반대로 개인의 행위를 천리에 합치시키고자 하는, 다시 말하자면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맹자 계통이 주관파로 분류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후에 기학파와 이학파로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405


순자의 천은 물리적 천입니다. 순자의 하늘은 그냥 하늘일 뿐입니다. 인간 세상은 하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 천과 인은 서로 감응하지 않는 별개의 존재입니다. 천은 자연이며 음양일 뿐입니다.


 


406


별이 떨어지고 나무가 울면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이 무슨 일인가 한다.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은 천지와 음양의 변화이며 드물게 나타나는 사물의 변화일 뿐이다. 괴상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두려울 것은 없다.


 


408


순자의능참실천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제어하여 활용할 것을 강조합니다. ‘자연은 만물을 만들었지만 다스리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순자의 인본주의적 관점입니다.


 


409


인간의 적극 의지와 능동적 실천에 근거하여 인문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연의 질서와 도로 돌아갈 것을 설파했던 노장과는 반대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지요.


 


410


따라서 여러분은천론천명론의 차이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순자가 천명론에서 명을 제거함으로써 인을 제자리에 놓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421


순자의 예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를 곧 법과 제도의 의미로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순자의 인문철학이 이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란사람의 욕구를 기르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되, 욕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양자가 균형있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대목입니다.


 


423


순자가 교육론을 전개하는 것은 첫째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자기의 욕구 충족이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성악적 측면이 순자의 교육론의 출발점이 되고 있으며, 성인이나 폭군이나 군자나 소인이나 그 본성은 같은 것이며,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인간관이 되고 있습니다.


 


10장 법가와 천하통일 『한비자』韓非子


 


449


우리가 법가사상에서 적극적 의미로 읽어야 하는 것은 개혁성과 법치주의입니다. 법가의 개혁성은 구사회 종법 구조가 이완되고 보수적 저항성이 약화됨으로써 형성된 새로운 공간을 충분히 향유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공간은 일차적으로 과거의 관념적 제약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미래사관과 변화사관이 그것입니다. 법가의 개혁성은 이 과거의 구조가 해체되고 새로운 구조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구성되는 개념입니다. 법치주의는 이러한 개혁성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가의 법치주의는 먼저 성문법의 제정과 신상필벌 원칙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서 대단한 발전입니다. 군주의 자의적 폭력에 대한 제도적 규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사회적 예측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나라는 작은 데 대부의 영지는 크고, 임금의 권세는 가벼운데 시하의 세도가 심하면 나라는 망한다. 법령을 완비하지 않고 지모와 꾀로써 일을 처리하거나, 나라를 황폐한 채로 버려두고 동맹국의 도움만 믿고 있으면 망한다. 신하들이 공리공담을 좇고, 대부의 자제들이 변론을 일삼으며, 상인들이 그 재물을 다른 나라에 쌓아놓고, 백성들이 곤궁하면 나라는 망한다. 궁전과 누각과 정원을 꾸미고, 수레, 의복, 가구들을 호사스럽게 하며, 백성들을 피폐하게 하고 재화를 낭비하며 나라는 망한다. 날짜를 받아 귀신을 섬기고, 점괘를 믿으며 제사를 좋아하면 나라는 망한다.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만 따르고 많은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한 사람만을 요직에 앉히면 나라는 망한다.


 


11장 강의를 마치며 불교佛敎, 신유학新儒學, 『대학』大學, 『중용』中庸, 양명학陽明學


 


504


모든 사회적 변화는 사상 투쟁에 의하여 시작되는 것이며 사회적 변화는 사상 체계의 완성으로 일단락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연속과 단절, 계승과 비판이라는 중층적 과정을 경과하는 것이 사상사의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지만 이처럼 복잡한 전개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체적 입장과 실천적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창신의 자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모든 지적 관심은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실천적 과제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508


고전강독을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과제로 남기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창신과 관련된 것입니다. .. 창신은 재조명과는 다른 창의적 사고가 요구됩니다. 창의적 사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입니다. 갇히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입니다. 따라서 창신의 장에서는 개념과 논리가 아닌가슴의 이야기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이야기가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509


사상은 감성의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합니다. 사상은 이성적 논리가 아니라 감성적 정서에 담겨야 하고 인격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말이나 글로서 주장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사상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의 사상이 아닌 것도 얼마든지 주장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10


사상의 최고 형태는 감성의 형태로가슴에 갈무리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성은 외계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일차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이며 그런 점에서 사고 이전의 가장 정직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성적 대응은 사명감이나 정의감 같은 이성적 대응과는 달리,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시서화의 정신은 무엇보다 상상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단지 작게 나타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상상력입니다. 하나의 사물이 맺고 있는 거대한 관계망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며 그것이 바로 시서화의 정신입니다.


 


511


'‘그림그리워함입니다. 그리움이 있어야 그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린다는 것은 그림의 대상과 그리는 사람이 일체가 되는 행위입니다. 대단히 역동적인 관계성의 표현입니다. 나아가 그림은 우리 사회가 그리워하는 것, 우리 시대가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515


나무의 천성을 따라서 그 본성이 잘 발휘되게 할 뿐이다. 무릇 나무의 본성이란 그 뿌리는 펴지기를 원하며, 평평하게 흙을 북돋아주기를 원하며, 원래의 흙을 원하며, 단단하게 다져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심고 난 후에는 움직이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말 일이다. 가고 난 다음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심기는 자식처럼 하고 두기는 버린 듯이 해야 한다.


 


3. 내가 저자라면


 


저자의 성찰의 깊이가 느껴지는 문장은 감동이었다. 반성하며 읽느라 평소 책을 읽는 속도에 비해 다섯 배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진리란 무엇일까. 신영복의 <강의>를 읽고 난 후 내리는 진리에 대한 나의 정의는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구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위해 이론은 좌경적(비타협적인 원칙의 고수), 실천은 우경적 (현실주의와 대중노선)으로 하라는 저자의 견해가 마음에 남았다.  


 


목차와 구성


 


1장 서론


2장 오래된 시와 언 『시경』詩經 『서경』書經 『초사』楚辭


3장 『주역』의 관계론 『주역』周易


4장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논어』論語


5장 맹자의 의 『맹자』孟子


6장 노자의 도와 자연 『노자』老子


7장 장자의 소요 『장자』莊子


8장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묵자』墨子


9장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순자』荀子


10장 법가와 천하통일 『한비자』韓非子


11장 강의를 마치며 불교佛敎, 신유학新儒學, 『대학』大學, 『중용』中庸, 양명학陽明學


 


저자는 서론에서 진리에 대해 시적인 설명으로 시작한다. 진리는 이미 기성의 형태로 우리의 삶의 저편에 또는 높은 차원에 마치 밤하늘의 아득한 별처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사랑하고 관조하는 구도 속에 진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진리가 서양에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학적 문제임에 반하여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이다. 동양적 사고는 삶의 결과를 간추리고 정리한 경험 과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동양 사상은 비종교적이며 과학과의 모순이 없다. 동양적 가치는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로써 동양 사상의 핵심적 개념은 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2장 오래된 시와 언 『시경』詩經 『서경』書經 『초사』楚辭에서는 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과 대담함이 곧 낭만주의, 그 일면에 대해, 3장 『주역』의 관계론 『주역』周易 주역의 관계론에 초점을 둔다. ‘주역은 변화의 철학으로 변화를 사전에 읽어냄으로써 대응할 수 있고, 또 변화 그 자체를 조직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4장 『논어』, 간관계론의 보고 『논어』論語 와 5장 맹자의 의 『맹자』孟子 에서는 공자의 仁과 맹자의 義에 대해 다룬다.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의는 인에 비하여 사회성이 많이 담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6노자의 도와 자연 『노자』老子에서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노자 사상의 핵심을 다룬다.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으로 노자의 귀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이란 문명에 대한 야만의 개념이 아님은 물론이고 산천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이다. 7장 장자의 소요 『장자』莊子에서는 제도개혁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장자의 주장을 다룬다장자는 자유주의 철학자이다. 장자는 개인을 지도, 감독, 보호하려는 일체의 행정적 또는 이념적 규제를인위적 재앙으로 파악하였다. 장자의 소요유는궁극적인 자유’, 또는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으로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로 장자 사상의 핵심이다. 8장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묵자』墨子에서는 혁명적 상황에서 통치 권력의 정당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최초의 좌파 조직의 좌파 사상가 묵자에 대해 다룬다. 묵자는 백성들은 세 가지의 고통을 받고 있는 바, 주린 자는 먹을 것이 없고, 추운 자는 입을 것이 없고, 일하는 자는 쉴 틈이 없다고 했다. 묵자는 겸애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라는 상생 이론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을 지침으로 하여 연대라는 실천적 과제로서 반전 평화의 기치를 내걸고 헌신적으로 방어 전쟁에 참여했다. 겸애와 반전 평화를 묵자 사상의 핵심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9장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순자』荀子에서는 순자는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제어하여 활용할 것을 강조했다. ‘자연은 만물을 만들었지만 다스리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순자는 인본주의 철학자이다. 10장 법가와 천하통일 『한비자』韓非子에서는 법가사상에서 적극적 의미로 읽어야 하는 것은 개혁성과 법치주의에 대해 다룬다.


 


11장 강의를 마치며 에서는 고전강독을 마치면서 독자에게 과제로 남긴다. 바로 창신이다. 창신은 재조명과는 다른 창의적 사고가 요구한다. 창의적 사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 갇히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다. 개념과 논리가 아닌가슴의 이야기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이야기를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감동적인 장절


 


28~29


무엇과 무엇의 차이를 비교하는 방식의 접근 방식을 나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시각 즉 비교하고 그 차이를 드러내는 관점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러한 관점은 가장 본질적인 것, 핵심적인 것을 놓치기 싶습니다. 물론 본질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만 그러한 경우보다는 그 형식에 있어서나 그 표현에 있어서의 차이, 즉 지엽적인 부분이 비교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본질적인 차이가 지적된다 하더라도 이른바 차이라는 개념으로 그것의 본질 부분을 설명하거나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지금 여러분 가운데 두 사람을 일어서게 하고 두 사람의 차이에 주목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본질적인 것이 드러날 것 같습니까? 우리가 어떤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먼저 그것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최대한으로 수용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대등한 비교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교나 차이는 원천적으로 비대칭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차이를 보려는 시각은 결국 한 쪽을 부당하게 왜곡하는 것이 아닐 수 없으며, 기껏해야 지엽적인 것이나 표면에 국한된 것을 드러내는 것일 수밖에 없지요. 차이에 주목한다는 것은 결국 차별화로 귀착되는 것이지요. 반대의 논리도 없지 않습니다. 일단 차이를 인식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통합과 공존을 모색한다는 논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진정한 공존은 차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는 것이지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공존이 필요한 것이지요. 어떠한 경우든 차별화는 본질을 왜곡하게 마련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 점을 특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수많은 관계 그리고 수많은 시공으로 열려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입니다. 우리가 고전 강독의 화두로 걸어놓은 것입니다. 여기서 동양 문화가 서양 문화를 비교하려는 것은 우리의 고전 강독의 화두인 관계론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6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현실이 곧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42


인성이란 개념은 어떤 개체나 존재의 속성으로 환원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인이 더불어 만들어내는 장의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동양적 인간주의는 이처럼 철저하게 관계론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키우는 순서입니다.


 


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 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 나의 노인과 남의 노인을 함께 생각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는 것을 인이라 합니다.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론이 확대되면 그것이 곧 사회적인 것이 됩니다. 동양 사상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거론되는 화해의 사상 역시 그렇습니다. 화는 쌀을 함께 먹는 공동체의 의미이며, 해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민주주의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인성의 고양이 곧 사회성의 고양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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