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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8일 11시 53분 등록

<강의>

1 저자에 대하여 : 신영복(1941.08.23~생존)

2Q==

 

“20년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1941.08. 23 경남 밀양 출생. 부산 상업고등학교 졸업

*1963.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동대학원 졸업. 숙명여대,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강사

*1968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무기징역 선고받음.

*1988 특별가석방. 20 20일 만에 출소.

*출소 후 성공회대학 사회과학부 교수역임.

*2006 정년퇴임. 현 성공회대 석좌교수

아버지가 교장으로 근무했던 경상남도 의령의 간이학교 사택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이후 아버지의 고향인 밀양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부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 독서 서클을 만들어 활동했으며, 대학원 재학 시절에는 다른 대학이나 연합 동아리 지도에 주력했다.

1965년 숙명여자대학교 정경대학에서 경제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안병직 등을 따라 잡지 〈청맥〉의 예비 필자 모임인 '새문화연구원'에 참석하면서 훗날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김질락을 만나게 되었다. 〈청맥〉은 통일혁명당의 핵심인물들이 당의 합법 기관지로 설정한 잡지로, 종종 반미적인 논설이 실렸다. 1966년부터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과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에 잡혀 들어갔다. 이 사건으로 김종태·이문규·김질락은 사형을 당했고, 그는 여러 차례 재판 끝에 무기징역형을 받고 안양과 대전, 전주교도소에서 복역했다.

1988 8·15특별가석방으로 감옥에 잡혀간 지 20 20일 만에 출옥했으며, 옥중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서 같은 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이름으로 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89 3월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과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을 강의했다. 출소한 지 10년 만인 1998 3월 사면 복권되어 1998 5 1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가 2006 8월 정년 퇴임했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서예를 배우기도 했던 그는 대전교도소 복역 시절 남파공작원 출신 한학자 노촌, 이구영과 4년간 한 방을 쓰면서 한학과 서예를 익혔으며, 감옥에 서예반이 생기면서 만당 성주표와 정향 조병호에게 지도를 받으며 자신만의 서체를 완성했다. 성공회대학교 재직 시절 그의 글씨와 그림으로 학교 달력을 만들 정도로 그의 붓글씨는 획의 굵기와 리듬에 변화가 많아서 '신영복체'·'어깨동무체'·'협동체'·'연대체'로도 불린다. 성공회대학교 퇴임 무렵 두산에서 브랜드명과 상표 글씨체로 시 〈처음처럼〉의 제목과 글씨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수락하고 받은 1억 원을 성공회대학교에 기부했다. 서예 작품 〈처음처럼〉은 1995년 첫 개인 서예전에 출품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저서>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

  • 엽서(1993년)

  • 나무야 나무야 (1996년)

  • 더불어 숲 1 (1998 6월)

  • 더불어 숲 2 (1998 7월)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증보판 (1998 8월)

  • 더불어숲-개정판 합본 (2003 4월)

  • 신영복의 엽서 (2003 12월)

  •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2004 12월)

  • 처음처럼: 신영복 서화 에세이 (2007 1월)

  • 청구회 추억: Memories of Chung-Gu Hoe (2008 7월)

  • For the First Time: 처음처럼(영문판) (2008 8)

  • 신영복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2010 12)

  • 변방을 찾아서 (2012 5)

<역서>

  • 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년)

  • 사람아 아! 사람아(1991년)

  • 루쉰전(1992년)

  • 중국역대시가선집(1994년)

2 내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006 우리들이 고전을 읽는 이유가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점이기 때문에 지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을 지혜로 만드는 방법이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독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와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독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와의 대화를 선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이 책이 고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리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007 “남이 서놓은 책을 말만 바꾸어 내어놓는 데에도 참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쪼록 그분들의 연학에 진경이 월등하시길 빌면서 남은 잉크를 말린다.”

1 서론

015 여러분이 공부하고 있는 분야는 매우 다양할 뿐만 아니라 아예 동양고전과 인연이 없는 학과도 많기 때문입니다. 강의에 앞서 동양고전에 대한 여러분과 나의 관심을 서로 견주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016 감옥에서는, 특히 독방에 앉아서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감옥의 독방이 그런 공간입니다. 우선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유년 시절에서부터 내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을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 사회가 지향했던 가치에 대해서 반성하게 됩니다.

>일상 생활에서 이런 것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은 없을까? 무엇을 위해 그렇게 빨리 급하게 뛰어다니는고? 목적지는 알고 가시나? 무엇이 틀리고 옳은지 생각은 하면서 가시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는 열어놓고 가시나?

017 말하자면 나의 사고와 정서를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 의식을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성은 동시에 우리 시대에 대한 반성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019 노촌 선생의 삶은 어느 것 하나 당대의 절절한 애환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의 한 가지를 예로 들자면 노촌 선생님을 검거한 형사가 일제 때 노촌 선생을 검거했던 바로 그 형사였다는 사실이지요. (중략) 친일파들이 오히려 반민특위를 역습하여 해체시켰던 해방 정국의 실상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도 없지요.

>아이러니, 모순을 또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삶이자 질긴 생명력

021 중국 고대 문헌은 마치 현대 문헌처럼 친숙하게 읽히고 있습니다. 전승과 해독에 있어서 세계 유일의 문헌입니다. 그 규모가 엄청날 수밖에 없지요. 고전을 읽겠다는 것은 태산준령 앞에 호미 한 자루로 마주 서는 격입니다.

>저도 선생님 덕분에 호미 한 자루 손에 쥐었습니다. 어여 이끄소서.

021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관점입니다.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021 사회 변혁기는 사회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은 담론이 주류를 이룹니다.

023~024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중략)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에 존재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배타적 독립성이나 개별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는 것이 관계론적 구성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026 과학적 방법이나 첩경에 연연해 않고 그저 우직하게 암기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확실한 성과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저 우직하게….나는 이 말과 거리가 멀다. 이 말 앞에서 부끄럽다. 우직하게그렇게 걷고 싶다. 황소걸음처럼 말이다.

027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를 자주 바라보게 되듯이 좋은 문장을 발견하기만 하면 어학은 자연히 습득되리라고 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암기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원문들 해독하고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면 금상첨화지요.

>책을 읽었어도 그 순간 마음으로 잠깐 짧은 미팅만을 하고 지나갔기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분명히 읽은 책이고 아는 구절임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맴맴 돌 뿐이다. 좋은 글과 깊은 조우를 해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깊이가 부족하지 않겠는가?

028 우리가 어떤 본질에 대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먼저 그것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최대한 수용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028~029 그런 첨에서 차이를 보려는 시각은 결국 한쪽을 부당하게 왜곡하는 것이 아닐 수 없으며, 기껏해야 지엽적인 것이나 표면에 국한된 것을 드러내는 수밖에 없지요.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결국 차별화로 귀착되는 것이지요. (중략) 어떠한 경우든 차별화는 본질을 왜곡하게 마련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 점을 특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지요.

029 긍극적으로는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수많은 관계 그리고 수많은 시공으로 열려 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입니다.

030 서양 문화의 기본적 도구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종합 명제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흄과 칸트의 견해입니다. 서양 근대 문명은 유럽 고대의 과학 정신과 기독교의 결합이라는 것이지요. 과학과 종교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기독교 신앙은 선을 추구합니다. 과학 정신은 외부 세계를 탐구하고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종교적 신앙은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회의 갈등을 조정합니다.

030 그러나 서양 문명은 이 두 개의 축이 서로 모순되고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인 결함이라는 것입니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모순된 구조라는 것이지요. 과학은 비종교적이며 종교 또한 비과학적이라는 사실입니다.

032 오늘날 많은 담론들이 동양과 서양의 사회 구성 원리에 주목하는 까닭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바로 근대사회, 나아가서는 서구 문명의 구성 원리로부터 연유한다는 반성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032~033 그러나 최근에 동양에 대한 관심은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신대륙에 대한 콜럼버스의 관심입니다. (중략) 오늘날의 주류 담론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세계화 논리는 한마디로 거대 축적 자본의 사활적 공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씁쓸하다. 땅 따먹기와 자기 세력 넓히기의 끝은 어디일까? 순수한 호기심은 어디로 갔을까?

0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실천적 관점입니다. 동양학에 대한 관점을 바로 이 지점에 세우는 작업이야말로 실천적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점을 참여점으로 하는 고전 독법이 진정한 의미에서 고전을 새롭게 재조명하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천과 참여점. 그래 답은 실천이다. 실천되지 않는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실천되지 않는 꿈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서 힘을 갖기 위해서는 행동이 답이다.

036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베버의 체계에는 동양 사상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관계론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관점이 결여되고 있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살아가는 일은 소박한 현실이 곧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037 진리란 일상적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고독한 사색에 의해 터득되는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진리란 이미 기성의 형태로 우리의 삶의 저편에 또는 높은 차원에 마치 밤하늘의 아득한 별처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사랑하고 관조하는 구도 속에 진리는 존재합니다.

038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최고의 질서란 그것의 상위질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자연 이외의 어떠한 힘도 인정하지 않으며, 자연에 대하여 지시적 기능을 하는 어떠한 존재도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이란 본디부터 있는 것이며 어떠한 지시나 구속을 받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자연이며 그런 점에서 최고의 질서입니다.

040 “봄여름에는 도끼와 낫을 들고 산에 들어가 나무를 베지 않고 촘촘한 그물로 하천에서 고기를 잡지 않는것이지요. 동양 사상의 현실주의란 이러한 자연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인간과 인간관계를 두루 포괄하는 사회적 내용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043 모든 사상은 대립, 모순, 긴장, 갈등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044 노자는 자연을 최고의 자리에 두는 것이지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것이지요.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 대하여 무위무욕할 것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오만과 좌절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유가의 인본주의를 견제하고 그 좌절을 위로하는 종교적 역할을 도가가 맡고 있는 셈입니다.

2 오래된 시와 언

052 우리가 <시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의 사실성에 있습니다.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지만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이지요.

053 <시경>독법은 우리들의 문화적 감성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되기보다는 정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함은 물론입니다.

056 <시경>에는 모두 350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 절반이 넘는 양이 국풍입니다. 국풍은 각국의 채시관이 거리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입니다. 이처럼 백성의 노래를 수집하는 주나라의 전통은 한나라 이후에도 이어져 악부라는 관청에서 백성들의 시가를 수집하게 됩니다.

>채시관….이 기관은 지금의 어디에 속할까?

061 멀리 뻗어 있는 장성을 따라 시선을 던지며 그 엄청난 역사에 감탄하기도 하고 벽돌 한 장 한 장에 담겨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에 몸서리치기도 했습니다.

>만리장성을 보러 갔을 때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별게 아닌 것 처럼 느껴져 실망했는데, 만리장성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을 때의 장관은 밑에서 보는 거와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그때는 이런 애환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 지킨다는 것이 어이없도록 슬프구나!

061 맹강녀의 전설은 이렇습니다. 진시황 때 맹강녀의 남편 범희양이 축성노역에 징용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편지 한 장 없는 남편을 찾아 겨울옷을 입히려고 이곳에 도착하였으나 남편은 이미 죽어 시골마저 찾을 길 없었지요. 당시 축성 노역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이 죽으면 시골은 성채 속에 묻어버리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맹강녀가 성벽 앞에 옷을 바치고 며칠을 엎드려 대성통곡하자 드디어 성채가 무너지고 시골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맹강녀는 시골을 거두어 묻고 나서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것이지요. 맹강녀 전설입니다.

>아름답고 슬프구나!

063 ‘수지풍중 초부립을 대구로 넣어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

068~069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난 후에 서적을 불사르고 학자들을 매장하는 문화적 탄압, 이른바 분서갱유를 하게 되지만 그는 무엇보다 천하 통일 사업의 일환으로 중국의 문자를 통일합니다. 이 문자의 통일은 엄청난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고대 문자와 고대 기록의 해독을 가능하게 합니다.

>무섭고 잔인한 역사 위에 인류에 대한 위대한 선물

069 시저가 이집트를 점령하고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도서관과  <이집트사>를 포함한 장서 70만 권을 소각한 사실, 그리고 그로부터 400여 년 후 로마 황제가 이교를 금지하면서 유일하게 고대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던 이집트 제사장들을 추방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 사회의 고대 문자 해독 능력이 인멸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시저는 자기의 정복욕을 앞세워 많은 것들을 무시하고 파괴했다. 한 인간의 야망이 인류에 미친 영향은 위대하면서도 잔인하다.

071 이 무일 편에서 개진되고 있는 무일 사상은 주나라 역사 경험의 총괄이라고 평가됩니다. 생산 노동과 일하는 사람의 고통을 체험하고 그 어려움을 깨닫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무일 사상은 주나라 시대라는 고대사회의 정서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 문화와 중국 사상의 저변에 두터운 지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정서라고 생각합니다.

071 하방운동은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당 간부, 정부 관료들을 농촌이나 공장에 내려보내 노동에 종사하고 군 간부들을 병사들과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게 함으로써 현장을 체험하게 하는 운동이었지요. 간부들의 주관주의와 관료주의를 배격하는 지식인 개조 운동으로, 문화혁명 기간 동안 1천만 명이 넘는 인원이 하방 운동에 동원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일을 실천하기 위해 펼친 하방운동은 아주 값진 운동이고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방법론의 문제도 의의 못지 않게 중요하다. 전 직장에서 하방운동의 일종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의의는 좋았으나, 현장의 말을 제대로 보고 들으려 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그리고 승진을 위해 거쳐가야 하는 자리였으므로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의의를 제대로 전파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취지로 시작한 하방운동이 조직을 갉아먹는 벌레가 되었다.

072 한마디로 무일은 불편함이고 불편은 고통이고 불행일 뿐이지요.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 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074 주공은 일반삼토, 일목삼착이라는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입니다. 한 끼 밥 먹는 동안에도 세 번씩이나 먹던 밥을 뱉어내고 손님을 맞으러 달려 나가는가 하면, 한 번 머리 감는 사이에도 세 번씩이나 젖은 머릿단을 움켜쥐고 손님을 맞으러 달려 나갔다는 것이지요.

>내가 사람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주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076 명심해야 하는 것은 이것은 사회가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조로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낭비이면서 역사 경험의 낭비입니다.

077 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의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피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082 이상과 현실의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이 오래된 주제에 대한 굴원의 결론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가장 정갈하게 간수해야 하는 갓끈을 씻고 반대로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 것입니다.

3 <주역>의 관계론

087 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이란 쉽게 이야기한다면 물을 긷는 그릇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바라로부터 물을 긷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름의 인식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그릇이 집집마다 있었지요. 여러분도 물을 긷는 그릇을 한 개씩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주역>에 담겨 있는 사상이란 말하자면 손때 묻은 오래된 그릇입니다. 수천 년 수만 년에 걸친 경험의 누적이 만들어낸 틀입니다. 그 반복적 경험의 누적에서 이끌어낸 법칙성 같은 것입니다. 물 긷는 그릇에 비유할 수 있지만 또 안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물과 현상을 그러한 틀을 통해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089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상(), (), ()으로 나눕니다. 상은 관상 수상과 같이 운명 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은 사주팔자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는 것에 반하여 점은 선택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인간의 지혜와 도리를 다한 연후에 최후로 찾는 것이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 인간의 지혜와 도리를 다한 연후에 최후로 찾는 것이 점이라나도 점을 많이 본적이 있었는데, 최후가 아닌 과정에서 점을 찾은 것이 다른 점이군.

101 어쨌든 개인에게 있어서 그 자리가 갖는 의미는 운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됩니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나아가서는 일을 그르치게 마련입니다.

>나도 이런 자리에 간 적이 있지. 가정에서. 잘못 찾아간 나의 자리는 그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 자리를 떠나려고 수습하는 것도 엄청난 나의 에너지를 앗아갔지. 자기의 자리를 찾는 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알이 아니야. 가정은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았는데, 나의 일의 자리는 어디일까?

101 나는 그 자리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 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리에서도 여백의 미가 필요했구나! 나는 여백의 미를 잘 살리는 사람인가?

103 내가 중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과 뒤에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가장 풍부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바둑 7급이 바둑 친구가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바둑 1급은 비슷한 상대를 만나기가 쉽지 않지요. 중간은 그물코처럼 앞뒤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고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본능적으로 중간을 선호한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의 입장에서 중간보다 더 좋은 위치는 없는 듯 하다. 그런데 가끔은 헛갈릴 때도 있으니 나를 얼마나 모르는 것인가?

107 <주역>은 글자 그대로 주나라 역사 경험의 총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나라 역시 그 이전의 여러 문화 사상의 총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역>과 주나라 문화 사상은 이후 중국 문화와 동양적 사고의 기본 틀이 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107 위편삼절이라 하였습니다. 죽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하지요.

>평생의 스승을 만나거나, 위편삼절 할 수 있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로 큰 축복이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인연이 닿지 않은 탓으로 여겼기에 나에게는 왜 저런 인연이 허락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 인연은 찾아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맺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이것 또한 나의 불찰이고 나의 순수하지 못한 마음 밭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시절인연을 탓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순수한 마음을 소유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110 그러나 혁명은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태화의 근본임에 틀림없습니다. 혁명은 한 사회의 억압 구조를 철폐하는 것입니다. 억압당한 역량을 해방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혁명은 흔히 혼란과 파괴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여러분은 지천태라는 뒤집힌 형국, 즉 혁명의 의미가 어떻게 태화의 근본일 수 있을까 다소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혁명을 치르지 않은 나라가 진정한 발전을 이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혁명을 치르지 않은 사회가 두고두고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는 예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습니다.

>혁명과 쿠데타의 차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혁명: 시민이 주체자이고, 기존의 질서를 모두 뒤엎고 새로운 질서를 창립하는 행위(revolution), 쿠데타: 군부(기득권)이 주체자이고, 기득권 중 밀려났던 세력이 다시 힘을 되찾는 행위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마지막 혁명을 한 것은 언제인가? 혹시 쿠데타를 한 사람들은 혁명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리고 소수를 전체로 생각하는 편협 된 생각을 하고 있는 자들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116 자읍고명은 자기의 마을에서만 명을 받든다. 즉 명이 널리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116 정린은 바른 일도 비난 받는다는 뜻입니다. 한 나라의 마지막을 보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 대부분의 역사가 그렇고 일생이 그렇고 모든 과정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124~125 어쨌든 희망은 현실을 직시하는 일에서부터 키워내는 것임을 박괘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을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고 나목으로 추풍 속에 서듯이 우리 시대의 모든 허위의식을 떨어내고 실상을 내면하는 것에서부터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직시 없이 희망만 갖고 있으니,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뒤를 돌아보니 나의 희망도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고 허황된 것이 많이 있었던 듯하다.

125 엽락이분본, 입은 떨어져 뿌리의 거름이 됩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를 든든히 해야 하는 것이지요. 경제적 자립성, 정치적 주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28 실패가 있는 미완성은 반성이며, 새로운 출발이며, 가능성이며,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완성이 보편적 상황이라면 완성이나 달성이란 개념은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성이나 목표가 관념적인 것이라면 남은 것은 결국 과정이며 과정의 연속일 뿐입니다.

128~129 오늘날 만연한 속도의 개념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속도와 효율성, 이것은 자연의 원리가 아닙니다. 한 마디로 자본의 논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도로의 속성을 반성하고 길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정말 적응이 안 되는 것 중에 하나는 속도이다. 너나 없이 속도를 부르짖으니 참으로 자기만의 속도를 가진 사람이 살기가 더 팍팍하다. 쓸데없는 열등감이 가끔 들때도 있다. 인생을 전 속력으로 달려야 하는 때도 있지만, 자기가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달리는 지도 모르고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 속도를 내는 사람을 보면 나는 참으로 안타깝다.

129 ‘은 도로와 다릅니다. 같은 길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 발견의 계기이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여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나는 항상 나의 길을 걷고 싶다. 길 위에서 즐기고 싶다.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싶다. 속도 때문에 이런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다.

129 목표와 과정은 서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선하지 않으면 진미 할 수 없고 진미하지 않고 진선 할 수 없는 법입니다. 목적과 수단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목적은 높은 단계의 수단이며 수단은 낮은 단계의 목적입니다.

4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137 공자의 시대는 기원전 500년 춘추전국시대입니다. 5천년 중국 역사에서 꼭 중간으로, 중국 사상의 황금기인 소위 백화제방의 시대입니다.

138~139 첫째, 춘추전국시대는 철기의 발명으로 특징지어지는 기원전 5세기 제2농업혁명기에 해당합니다.

둘째, 춘추전국시대는 사회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함께 구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사회 변동기입니다.

셋째,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의 백화제방의 시기입니다.

143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 않으니 어찌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

147 그러나 생각하면 과거에 대한 우리의 관념만큼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영원히 지나가고 다시 오지 않는 과거는 없습니다. 몇천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고분의 주인공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까맣게 잊었던 과거의 아픔 때문에 다시 고통받기도 하고, 반대로 작은 등불처럼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옛 친구를 10년이 훨씬 지난 후에나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시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매우 허약하고 잘못된 것이지요.

149 과거 현재 미래가 각각 단절된 형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사유의 차원에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하는 것은 결코 객관적 실체에 의한 구분일 수가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의 통일체입니다.

>미래의 오색찬란한 꿈만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제대로 된 꿈을 꾸기 위해서는 과거를 인정해야 하고 현실을 이해해야 하며 그 바탕 위에 계획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실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51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효율과 경쟁을 강조하는 자본가는 전문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전문화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자본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는 것이지요. 자본가는 어느 한 분야에 스스로 옥죄이기를 철저하게 거부해왔던 것이지요.

153 덕치가 평화로운 시대 즉 치세의 학이라고 한다면 행정명령과 처벌에 의한 규제를 중심에 두는 법치는 난세의 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5 “어부가 바닷고기 다 잡을 수 있나요?” 처벌받는 사람은 법을 어긴 사람이 아니라 다만 운이 나쁜 사람인 것이지요.

155~156 시카구치 안고의 <타락론>에 의하면 사회적 위기의 지표로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집단적 타락 증후군도 여러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만, 우선 이 교통법규 위반 사례와 같이 모든 사람이 범죄자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적발된 사람만 재수 없는 사람이 되는 그러한 상황입니다. 또 한 가지는 유명인의 부정이나 추락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는 마음 대신에 고소함을 느끼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지요. 부정에 대한 분노를 느끼거나 추락에 대하여, 그것도 사회 유명인의 그것에 대하여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단계가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라는 것이지요. 타인의 부정이 오히려 자신의 부정을 합리화할 수 있는 계기다 된다는 것이지요.

>집단적 타락 증후군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는 이것을 단단히 앓고 있다.

158 미인은 대체로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 일익을 담당하려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소위 꽃으로 존재하려는 경향이 우세합니다. 미인이라는 자의식이 없는 사람이 열심히 일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에 비해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지요. 존재론과 관계론의 차이입니다.

>ㅍㅎㅎㅎ 나는 그래서 어떤 모음에서건 적극적인가? 미인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존재를 인식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미인은 꽃으로의 존재하려는 경향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자세가 부족하다니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래서 공주는 외롭고 나는 바쁜가 보다.

160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163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나에게는 군자의 모습도 소인의 모습도 다 있구나!

166 도대체 자기 흉내를 내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지요.

166~167 물론 이 글의 뜻은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것으로 미모보다는 건강이 더 중요하고 건강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167 (루쉰) “무쇠 방에 갇혀 죽어가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는중국인의 각성을 위하여 치열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170 자공이 정치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정치란 경제, 군사, 그리고 백성들의 신뢰이다자공이 묻기를 만약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 “군사를 버려라” “만약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리지 않을 수 없다면 어는 것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경제를 버려라. 예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었지만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장의 의미를 꼭 들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어찌 이것이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겠는가? 개인도, 부부도 부모 자식 지간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171 ‘무신불립’,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일화입니다.

181 학교 연구실에서 학문에만 몰두하는 교수가 현실에 어두운 것이 사실입니다. 반대로 자기 경험을 유일한 잣대로 삼거나 보편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일을 처리하면 위험한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자신의 경험에서 이론을 이끌어내는 사람들, 즉 대부분의 현장 활동가들은 대단히 완고합니다. 자기 경험만을 고집합니다. 생산직 기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인적인 자존심으로 자기 방식을 고집합니다. 경험적 지식은 매우 완고합니다. 따라서 경험주의를 주관주의라고 합니다.

>책상머리에서의 고집과 자기 경험을 믿는 경험적 주관주의의 완고함이 다를 게 무엇인가? 어차피 다 자기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똑같은데. 나는 경험주의를 우선으로 고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관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본다.

182 현실적 조건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며 동시에 특수한 경험에 매몰되지 않는 이론적 사고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략) 배우면 완고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화이 협소한 경험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학이란 하나의 사물이나 하나의 현상에 맺고 있는 관계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기 경험에 갇혀서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읽지 못할 때 완고해지는 것입니다.

>배척하고 배척해야 할 것이다. 그것의 해법은 배움. 그래서 나는 평생 학생을 지향한다.

186 사실 진정한 지란 무지를 깨달을 때 진정한 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의 지가 어느 수준에 있는 것인가를 아는 지가 참된 지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야말로 지의 최고 형태라는 것이지요.

>맞는 말. 내가 무엇을 모르는 지가 지의 최고의 형태.

188 제갈공명의 명석한 판단은 무사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하를 도모하려는 사사로운 욕심이 없었음은 물론, ‘윗사람이 되려고 하는 욕심마저도 없었지요. 이처럼 무사하기 때문에 공평할 수 있고 공평하기 때문이 이치가 밝아질 수 있는 법입니다. (중략) 어쨌든 자기의 공을 숨기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이 장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겸손함을 뒷받침하는 것이 무욕과 무사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무사, 무욕….지향하면서도 안되는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긴장하지 않을 때, 나는 나일 수 있는데 나도 모르게 욕심이 투영되는 순간 모든 기능이 50%이하로 떨어진다. 긴장은 나에게 최대의 적이다. 글을 쓸 때도, 말을 할 때도, 모든 행동을 할 때 플러스가 되는 것이 거의 없다.

191 마찬가지로 마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려는 심리적 충동도, 실은 반대편의 비판을 두려워하는 심약함이 아니면, 아무에게나 영합하려는 화냥끼가 아니면, 소년들이 갖는 한낱 감상적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이라 해야 합니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인 듯 하다. 나의 심리적 충동은 심약함에 있다. 두렵기 때문이다. 왜 두려운지 나를 보는 시선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 다는 것과 그것을 수용한다는 것이 말만큼 쉽지는 않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이런 평가에 대해서 더 열렸으면 좋겠다.

192 만인으로부터 호감을 받는 경우와 만인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경우 둘 다 좋지 않다는 것이지요. 양극단은 실제로는 없는 것입니다. 위선 또는 위약인 경우에만 상정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구조도 아니며 동시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대립과 모순이 있으며 사랑과 증오가 함께 존재하는 세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실상을 최소한 미화하거나 은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199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200 “낙은 관계의 최고 형태인 셈입니다. 그 낙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어떤 터득이 가능한 것이지요.

>내가 지향하는 최고도 바로 낙이다. 이것이 없는 삶은 죽음이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나만의 재미를 찾아 몰두하는 것이 힘든 상황을 헤쳐나가는 방법이다. 이것이 언제나 내가 삶이 즐거운 방법이다.

5 맹자의 의

211 공자가 춘추시대 사람이라면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입니다.

219 현자는 여민동락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즐거움이란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인생을 즐기고 있기는 하지만, 여민동락은 어렵다.

222 풍년이 들어 곡식이 흔한 해에는 개와 돼지와 사람들의 양식을 먹고 있는데도 나라에서는 이를 거두어 저장할 줄 모르고, 흉년에 굶어 죽은 시체가 길거리에 뒹굴고 있어도 곡식 창고를 열 어 백성들을 구휼할 줄 모릅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서도 이것은 내 탓이 아니라 흉년 탓이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고 이는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이 칼이 죽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만약 왕께서 죄를 흉년 탓으로 돌리지 않으신다면 천하의 모든 백성들은 왕에게로 귀의해올 것입니다.

233~234 모든 운동의 원인은 내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이든 국가든, 자기반성이 자기 합리화나 자위보다는 차원이 높은 생명운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242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황폐화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라는 것은 그 뼈대가 인간관계입니다. 그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바로 사회의 본질이지요. 지속성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지속적 관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서로 양보하게 되고 스스로 삼가게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남에게 모질게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곡속장을 통하여 반성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나도 사람을 더 귀하에 여기여 한다는 것에 실감한다. 말 그대로 지속성이 없고, 한번 보고 말 사람이기에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럴진대 어찌 다른 사람을 욕할까?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고 했다.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248 나는 맹모보다는 한석봉의 어머니가 더 휼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식을 지도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맹모처럼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몸소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자식이 그것을 본받게 했던 것이지요.

249~250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는 것이다. <서경> <태갑>편에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6 노자의 도와 자연

253~254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의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입니다. 노자의 귀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이란 문명에 대한 야만의 개념이 아님은 물론이고 산천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254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의 논리가 그것이지요. 여기서 법은 본받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는 체계입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253~254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입니다. 노자의 귀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이란 문명에 대한 야만의 개념이 아님은 물론이고 산천과 같은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254 노자는 다른 학파들의 주장과는 달리 일체의 인위적 규제를 반대합니다. 인위적 제도나 규제는 당시의 혼란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책이 되지 못하여 도리어 혼란과 불의를 가중시킬 뿐이라는 기본적 입장을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256 자본주의 역사는 자본 축적의 역사이고 자본 축적은 모순의 누적 과정입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 누적된 모순으로 말미암아 축적 과정 그 자체의 작동이 불가능하게 되는 전반적 위기의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과 위기는 패권 국가들의 집단적 담합과 폭력적 개입에 의하여 그것이 억제된 상태일 뿐입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물리적 억압과 간섭이 그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문화와 의식구조에 있어서 엄청난 허구와 비논리적 논리가 구축됩니다.

262 <노자>는 무위와 관조라는 동양적 사유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사상일 뿐 아니라 고학, 문화,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264 노자 철학에 있어서 무는 제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다는 의미는 무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의 의미는 무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유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식물의 경우도 잡초가 가장 자유로운 식물이라는 것이지요. 이름이 붙여진 경우는 인간의 지배 밑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무와 무명은 같은 범주에 속합니다.

>사람은 명예를 갖고 싶어하면서도 잡초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어하니 참 모순된 존재로구나! 둘을 취할 수 있으려면 또 다른 경지에 올라야겠구나!

269 도란 어떤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법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는 윤리적인 강상의 도가 아님을 물론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최대한의 법칙성 즉 우주와 자연의 근본적인 운동 법칙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 의미의 도라는 것은 노자가 의미하는 참된 의미의 법칙, 즉 불변의 법칙을 의미하는 것이 못 됨은 물론입니다. 노자의 도는 인간의 개념적 사고라는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사유를 뛰어넘는 것이지요.

269 명의 경우도 도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언어로 붙인 이름이 참된 이름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름이란 원래 약속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란 그 실체를 옳게 드러내지 못합니다. 개미에게 물어보면 개미라는 이름은 자기 이름이 아니지요.

>맞는 말이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이름에 갇히게 된다. 어쩌면 나도 내 이름이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되기도 했지만, 그 이름에 갇혀 산 인생이라 할 수 있겠다. 이름, 갇힌다. 누구에겐가 의미 있는 사람으로 불리기를 바라면서 갇히는 것을 싫어하는 이 양극의 성질을 갖고 사는 인간은, 죽을 때까지 모순과 싸워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274 미와 선은 지역이나 시대에 갇혀 있는 사회적 개념입니다. 미와 선의 그러한 특성을 한마디로 인위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기존의 인위적인 미와 인위적인 선에 길들여진 우리의 관념을 반성하자는 것이 이 장의 핵심입니다.

277 노자는 이 장에서, 먼저 잘못된 인식을 반성한 다음 올바른 방식으로 실천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말없이 실천하고, 자랑하지 말고, 개입하지 말고, 유유하고 자연스럽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 실천론의 요지입니다. 그렇게 할 때만이 그 성과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춘추전국시대를 지배하는 협소한 인식을 반성하고 조급한 실천을 지양하자는 것이지요. 열린 마음과 유장한 걸음걸이로 대응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지요.

>말없이 실천하고, 자랑하지 말고, 개입하지 말고….나는 아직 멀었다. 노자의 실천방식을 따라갈면.

278 노자가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는 매우 순박하고 자연스러운 질서입니다. 우선 현을 숭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80 ‘소비가 미덕이라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공리입니다. 절약이 미덕이 아니고 소비가 미덕이라니. 끝없는 확대 재생산과 대량 소비의 악순환이 자본 운동의 본질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입니다.

>마케팅에 낚인 거지.

282~283 노자 정치학의 압권이 바로 생선 굽는이야기입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 굽듯이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생선을 구울 때 생선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집다가 부스러뜨리는 것이 우리들의 고질입니다. 생선의 비유는 일상생활의 비근한 예를 들어서 친근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이나 소위 국가와 사회를 경영하는 방식을 반성할 수 잇는 정문일침의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283 <노자> 독법의 기본은 무위입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만 무위는 무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나 가치가 아니라 방법론입니다. 실천의 방식입니다. 혼란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284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285 “천지의 도는 이로울지언정 해롭지 않고, 성인의 도는 일하되 다투는 법이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물은 결코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산이 가로막으면 멀리 돌아서 갑니다.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비켜갑니다. 곡류하기도 하고 할수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가파른 계곡을 만나 숨 가쁘게 달리기도 하고 아스라한 절벽을 만나면 용사처럼 뛰어내리기도 합니다. 깊은 분지를 만나면 그 큰 공간을 차곡차곡 남김없이 채운 다음 뒷물을 기다려 비로소 나아갑니다. 너른 평지를 만나면 거울 같은 수평을 이루어 유유히 하늘을 담고 구름을 보내기도 합니다.

295 가장 이상적인 정치 즉 태상의 정치는 백성들이 임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임금이 백성들의 삶에 간여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제력 하유어야재’, “임금의 권력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할 정도로 백성들에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경우입니다. 최고의 정치는 무치라는 것이지요. 그 다음이 백성들이 친애하고 칭송하는 입금입니다. 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그 다음이 두려운 임금입니다. 권력을 행사하고 형벌로 다스리는 패권 정치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운 임금보다 못한 임금이 바로 백성들이 업신여기는 임금입니다. 멸시의 대상이 되는 임금이지요.

>이런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으려면 쓴 소리를 해줄 수 있는 측근들이 있어야 할 텐데

300 ‘대작약굴에 대해서 왕필은 곧음이란 한 가지가 아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중략) 가장 중요한 원칙 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구태여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작은 일에 매달리고 그 곧음을 겉으로 드러내게 마련이지요. 어떤 분야든 최고 단계는 특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좁은 틀을 시원하게 벗어나 있게 마련이지요.

7 장자의 소요

309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중략) 이 우물 안 개구리의 비유는 장자사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참치라는 닉네임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넓은 세상을 보며 살고 싶은 소망은 활동반경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지식이나 지혜도 이에 참치처럼 넓은 바다에서 놀았으면 한다.

311 장자의 소유요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입니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소유요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 사상의 핵심입니다.

318 장자의 세계에서 최고의 경지는 도를 터득하여 이를 실천하는 노장의 경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도와 일체가 되어 자유자재로 소요하는 경지를 의미합니다.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고, 무엇에도 거리낌 없는 경지가 장자의 절대 자유의 경지라 할 수 있습니다.

334~335 불치병자가 밤중에 아기를 낳고 급히 불을 들어 살펴보았다. 급히 서두른 까닭은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였다.

천하가 길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자기가 불치병자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깨닫고 지식만으로 자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이 참담할 정도로 가슴을 적십니다. 엄중한 자기 성찰과 냉철한 문명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338 장자가 말하기를 이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천수를 다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352 “지혜란 무엇인가?”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궤를 여는 도둑을 막기 위하여 사람들은 끈으로 단단히 묶고 자물쇠를 채운다. 그러나 큰 도적은 궤를 훔칠 때 통째로 둘러메고 가거나 주머니째 들고 가면서 끈이나 자물쇠가 튼튼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세속의 지혜란 이처럼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모아주는 것이다.”

>큰 도적을 위해….돈이면 안되는게 별로 없는 세상이니 그렇지.

8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362 <한비자>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법가를 대표하는 사상입니다. 천하 통일을 주도한 사상이란 점에서 법가는 비주류하고 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묵자>, <순자>, <한비자>가 중국 사상의 전체 흐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비주류에 속한다고 해야 합니다.

375 겸애는 별애의 반대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겸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평등주의, 박애주의입니다. 묵자는 사회적 혼란은 바로 나와 남을 구별하는 차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나아가 서로 이익이 되는 상리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상리의 관계는 개인의 태도나 개인의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구조와 제도의 문제임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382 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은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공격 전생이 이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찌하여 지백과 부차의 일을 거울로 삼지 않는가?

>비출 거울이 없어서 모르겠는가? 그것보다는 탐욕이 앞서는 것이겠지.

392~393 묵자의 삼표는 첫째는 역사적 경험이며, 둘째는 현실성이며, 셋째는 민주성입니다.

399~400 묵가는 중국 사상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초의 좌파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시대의 패권적 질서와 지배 계층의 사상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 세력으로 등장하여 기층 민중의 이상을 처음으로 제시하였습니다. 투철한 신념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대중 속에서 설교하고 검소한 모범을 보였으며, 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묵가가 이런 사상을 갖고 전파한 인물인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매력적인 인물일세.

9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408~409 하늘만을 하늘같이 바라보거나 하늘을 칭송하는 숙명론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운명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순자의 사상 체계입니다.

>순자라는 뉘앙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었구나!

413 성악설은 인성론이 아니라 순자의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교육론과 예론, 제도론을 전개하기 위한 근거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사실입니다. 전국시대의 사회적 혼란의 제거를 실천적 과제로 삼았던 순자가 그의 주장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천론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성선설의 관념성을 비판하는 것이 바로 성악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잘못 알고 있었구나!

418~419 순자의 예론은 사회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 이론입니다. 첫째 예란 물을 기르는 것이며, 둘째 그 물로써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툼과 혼란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다툼과 혼란을 방지하되 물질의 생산과 소비에 일정한 한계를 두어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예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423 순자가 교육론을 전개하는 것은 첫째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0 법가와 천하 통일

433 법가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변화를 인정하고,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현실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의의 정치는 변화된 현실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사상이라는 것이지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인의의 정치를 주장하는 것은 고삐 없이 사나운 말을 몰려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법가의 인식입니다.

442 법가의 법은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핵심입니다. 바로 이 점이 법가 비판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역시 군주는 아니더라도 지배 계층이 법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해야 합니다. 입법과 사법을 동시에 장악하고, 금과 권을 동시에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요. 대부는 예로 다스리고 서민은 형으로 다스린다는 과거의 관행이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견준다면 비판의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이 시대에는 이런 강력한 법이 아니면 통치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444 이러한 법이 지상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이 공개성, 공정성 그리고 개혁성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449 나라는 작은데 대부의 여지는 크고, 임금의 권세는 가벼운데 신하의 세도가 심하면 나라는 망한다. 법령을 완비하지 않고 지모와 꾀로써 일을 처리하거나, 나라를 황폐한 채로 버려두고 동맹국의 도움만 믿고 있으면 망한다. 신하들이 공리공담을 좇고, 대부의 자제들이 변론을 일삼으며, 상인들이 그 재물을 다른 나라에 쌓아놓고, 백성들이 곤궁하면 나라는 망한다. 궁전과 정원을 꾸미고, 수레.의복.가구 들을 호사스럽게 하며, 백성들을 피폐하게 하고 재화를 낭비하면 나라는 망한다. 날짜를 받아 귀신을 섬기고, 점괘를 믿으며 제사를 좋아하면 나라는 망한다.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만 따르고 많은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한 사람만을 요직에 앉히면 나라는 망한다.

>, 지혜롭다. 세상이 어찌 이리도 같은 수레바퀴로 돌아갈까? 삶의 모습은 많이 변하였으나 수레바퀴의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구나!

452 여러분도 탁을 가지러 집으로 가는 사람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탁이란 책입니다.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탁을 가지러 갑니다. 현실을 본뜬 탁을 가지러 도서관으로 가거나 인터넷을 뒤지는 것이지요. 현실을 보기보다는 그 현실을 본뜬 책을 더 신뢰하는 것이지요. 발을 현실이라고 한다면 여러분도 발로 신어보고 신을 사는 사람이 못 되는 것이지요.

>나도 마찬가지 사람이다.

11 강의를 마치며

475 세계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마저 찬란한 꽃으로 바라보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바로 이 현실을 수많은 꽃으로 가득 찬 화엄의 세계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신영복선생님을 20년 동안 건강하게 복역하게 만든 힘이구나!

498 주자가 <중용>을 통하여 제기하려고 하는 가장 절실한 주제는 바로 도의 큰 근원이란 하늘에서 명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으로서 그것을 따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인간적 도리의 구체적 덕목은 예악형정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사회적 가치라는 것이지요.특별사면으로

509 시와 산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몇 가지 부언해둡니다.

첫째, 사상은 감정의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합니다. 사상은 이성적 논리가 아니라 감성적 정서에 담겨하고 인격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둘째,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영입니다.

(중략)

이러한 정서와 감성을 기르는 것은 인성을 고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면서 최후의 방법입니다. 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마음씨가 바르고 고운 사람이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시와 산문을 읽어야 한다는 이유가 이와 같습니다.

>시의 힘은 단 하루만 읽어도 기운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것을 체험하며 놀란 적이 있었다. 좀 더 오랜 시간 깊이 있게 읽다 보면 아마 많은 변화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은 상자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으니까. 그 해법을 시에서 찾아볼까?

3 내가 저자라면

그의 글은 맑다. 그의 글은 깊다. 그의 내공이 샘난다. 그가 겪어야했떤 고난과 억울함보다 그가 가진 것들을 부러워하는 내가 어리석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벽 이슬처럼 영롱하면서 울림이 있는 그의 글과 내공이 참으로 좋구나!

<뼈대와 목차>

1 서론

2 오래된 시와 언

3 <주역>의 관계론

4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5 맹자의 의

6 노자의 도와 자연

7 장자의 소요

8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9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10 법가와 천하 통일

11 강의를 마치며

이 책을 통해서 동양고전의 큰 틀이 느껴진다. 어렵게만 생각되었던 부분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좋았던 장과 절>

전체적으로 내용이 아주 좋다. 은은한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이런 분을 이 시대에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동시대인의 축복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큰 분이며 존경할 수 있는 분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특히 이 책은 리뷰를 100장은 너끈히 하고도 남을법한 내용으로 꽉 차 있다. 맑으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들을 쉽게 이해시켜주는 대목이 좋았다. 특히 2장은 전체를 밑줄을 긋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027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를 자주 바라보게 되듯이 좋은 문장을 발견하기만 하면 어학은 자연히 습득되리라고 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암기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원문들 해독하고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면 금상첨화지요.

>책을 읽었어도 그 순간 마음으로 잠깐 짧은 미팅만을 하고 지나갔기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분명히 읽은 책이고 아는 구절임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맴맴 돌 뿐이다. 좋은 글과 깊은 조우를 해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깊이가 부족하지 않겠는가?

0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실천적 관점입니다. 동양학에 대한 관점을 바로 이 지점에 세우는 작업이야말로 실천적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점을 참여점으로 하는 고전 독법이 진정한 의미에서 고전을 새롭게 재조명하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천과 참여점. 그래 답은 실천이다. 실천되지 않는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실천되지 않는 꿈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서 힘을 갖기 위해서는 행동이 답이다.

038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최고의 질서란 그것의 상위질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자연 이외의 어떠한 힘도 인정하지 않으며, 자연에 대하여 지시적 기능을 하는 어떠한 존재도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이란 본디부터 있는 것이며 어떠한 지시나 구속을 받지 않는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자연이며 그런 점에서 최고의 질서입니다.

071 이 무일 편에서 개진되고 있는 무일 사상은 주나라 역사 경험의 총괄이라고 평가됩니다. 생산 노동과 일하는 사람의 고통을 체험하고 그 어려움을 깨닫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무일 사상은 주나라 시대라는 고대사회의 정서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 문화와 중국 사상의 저변에 두터운 지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정서라고 생각합니다.

071 하방운동은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당 간부, 정부 관료들을 농촌이나 공장에 내려보내 노동에 종사하고 군 간부들을 병사들과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게 함으로써 현장을 체험하게 하는 운동이었지요. 간부들의 주관주의와 관료주의를 배격하는 지식인 개조 운동으로, 문화혁명 기간 동안 1천만 명이 넘는 인원이 하방 운동에 동원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일을 실천하기 위해 펼친 하방운동은 아주 값진 운동이고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방법론의 문제도 의의 못지 않게 중요하다. 전 직장에서 하방운동의 일종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의의는 좋았으나, 현장의 말을 제대로 보고 들으려 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그리고 승진을 위해 거쳐가야 하는 자리였으므로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의의를 제대로 전파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취지로 시작한 하방운동이 조직을 갉아먹는 벌레가 되었다.

103 내가 중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과 뒤에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가장 풍부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바둑 7급이 바둑 친구가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바둑 1급은 비슷한 상대를 만나기가 쉽지 않지요. 중간은 그물코처럼 앞뒤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고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본능적으로 중간을 선호한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의 입장에서 중간보다 더 좋은 위치는 없는 듯 하다. 그런데 가끔은 헛갈릴 때도 있으니 나를 얼마나 모르는 것인가?

107 위편삼절이라 하였습니다. 죽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하지요.

>평생의 스승을 만나거나, 위편삼절 할 수 있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로 큰 축복이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인연이 닿지 않은 탓으로 여겼기에 나에게는 왜 저런 인연이 허락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 인연은 찾아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맺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이것 또한 나의 불찰이고 나의 순수하지 못한 마음 밭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시절인연을 탓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순수한 마음을 소유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124~125 어쨌든 희망은 현실을 직시하는 일에서부터 키워내는 것임을 박괘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을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고 나목으로 추풍 속에 서듯이 우리 시대의 모든 허위의식을 떨어내고 실상을 내면하는 것에서부터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이구나!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직시 없이 희망만 갖고 있으니,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뒤를 돌아보니 나의 희망도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고 허황된 것이 많이 있었던 듯하다.

<보완점>

*강의를 조곤조곤하게 듣고 있는 느낌이나 점심 시간 이후에 강의를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다. 특히 공자와 맹자편이 전체적으로 지리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인용문을 발췌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말이 간결하지가 않고 길어지기 때문에 인용문도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고사성어나 싯귀를 인용할 때 한자의 음을 붙여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여기서 짧게 소개된 동양고전들이 아쉽다. 그의 목소리로 좀 더 깊이 있는 강의를 들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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