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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일 22시 41분 등록


Book review


노자/장자 장기한 외. 삼성세계사상 3/삼성출판사


2014. 8.1


강종희


 


  1. 저자에 대하여

     

     

    노자는 여러모로 신비스런 인물이다. 출생과 사망 연도도 모르겠고, 중국의 양대 사상 중 하나를 일군 거인이나 실존 인물인지도 확실치 않다. 노자라는 인물에 대해 알려진 자는 대부분 추정이란 이야기다.

     

    그의 생애는 중국 춘추시대 중기에서 전국시대 초기, 수많은 국가가 세워졌다 무너지고 계급질서, 생산관계와 세계관이 송두리 바뀌는 격변의 시대를 관통했으며, 굳이 따지자면 대략 기원전 570년에서 479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출생지는 초나라 고현(현 하남성 녹읍)이며,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성은 이()씨고 이름은 이()이며 자는 담()이다. 그는 무너져 가던 주나라에서 황실의 도서관장을 지냈다.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를 물었다는 기록으로 추정컨데 공자보다는 연상이었으며, 그 외 개인적인 행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노자가 도덕이 학문이 높을수록 자신을 숨기고 나타내지 않는 것이었음을 생각할 때, 당연한 일인지도.

     

    노자가 쇠퇴한 주나라를 떠나면서 국경을 넘으면서 관련 윤회가 은퇴를 할 작정이면 책을 적어달라는 간청에 상.하편의 책을 지어 남긴 것으로 전해지지만, 그 후 행적이 묘연하여 아무도 그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후에 일어난 도교에서는 이런 사실을 더욱 신비화해서 노자가 그 때 국경을 떠나 인도로 가서 불교도들을 교화시켰다고 주장하나 근거는 없다.

     

    노자의 아들은 이름이 종()이고 위나라의 장()으로 군인의 길을 걸었으며 단간이라는 영지에 봉해졌다. 종의 아들은 주, 주의 아들은 궁, 궁의 현손(玄孫)은 가()로 한나라 효문제를 섬겼고 가의 아들 해는 교서왕 앙의 태부였으며, () 에 자리는 잡았다.

     

    그러나 이런 사기의 기록도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었는지 이를 터무니없다 비판한 학자들도 많았다. 다만 공자와의 만남의 기록이 몇 군데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며, 실제 인물로서 공자보다 나이가 많고 주나라의 도서관장을 오래 지내 학식이 풍부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은 상하편 총 81장으로 된 책으로 상권은 도경(道經), 하권은 덕경(德經)으로 구분한다. 도경은 주로 도, 형이상학적 원리를 풀었고 하편 덕경에서는 도에 입각한 덕, 즉 행동에 대한 것들을 풀었단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자 [老子]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2006.5.22, 휴머니스트), 삼성세계사상 노자편에서 발췌 요약


 


 


  1. 마음 속에 들어온 글


 


노자 해제


 


16. “사람은 땅을 좇고, 땅은 하늘을 좇고, 하늘은 도를 좇는다.”


그런데 도는 무어라 말할 수 없어 무() 라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에서 만물이 저마다 있고 자라고 변화한다. 이렇게 인식할 수 없는 무형의 도에서 만물이 저마다 스스로 있는 현상계로 나타나고 있으니, 있는 현상계의 모습을 가지고 볼 때 도는 바로  스스로 있는 것(自然)이다. 따라서 노자는 도는 자연을 좇는다고 하였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은 영어의 NATURE의 뜻만이 아니다. 타력적(他力的)인 존재가 아니다. 타력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있고 스스로 되고 스스로 변하는 것,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모든 것을 포함한 것이다.


 


여기서 노자가 강조하는 무위자연의 본뜻을 밝혀야 하겠다. 즉 인위적인 조작을 하지 않고도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바로 도(). 우주, 천지 및 대자연을 움직이는 힘이나 법칙은 사람의 힘이나 사람이 만든 법칙이 아니다. 그것은 곧 무위자연이고 도며, 도 속에 있는 도리다.


 


16. 반은 도()의 동()이다. 즉 만물은 상반(相反)되는 방향으로 운동했다가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며 이를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노자에 나오는 반()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되돌아온다는 것은 반() 즉 복귀한다는 뜻과, 상반되는 운동을 한다는 뜻과, 정반대되는 것으로 변화한다는 뜻이 그것이다.


 


원래 도는 만물의 시원으로 절대다. 그러나 도는 만물에 퍼져 나타나고 영원하게 활동한다. 그러므로 절대이며, 눈에 보이지 않던 도가 눈에 보이는 만물에 나타났고, 또 절대가 모든 만물에 쪼개졌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던 도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만물 속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만물은 결국 다시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의해 무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18. 그러나 나와 남, 삶과 죽음, 선과 악은 바로 하나이며, 위치를 바꿔볼 때는 내가 남이고 남이 나인 것이다. 사람은 이러한 도를 모르고 하나만 고집하고 한쪽으로만 나가려 하기 때문에 많은 미망이 생기고 결국은 멸망하고 만다. 자연의 도를 따르면 살고, 거역하면 죽게 마련이다. 도는 만물을 조화 속에 언제까지나 생성화육하는 것이다….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둥근 그릇에 넣으면 둥글고 모딘 데 넣으면 모가 진다. 많이 모아도 물이요, 작게 갈라 놓아도 물이다. 뜨겁게 끓어 증발해도 물이고, 얼어도 물이다. 다시 말해서 물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자기를 잃지 않는다.


 


또 물은 아래로 처진다.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은 서로 모여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한 방울의 물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강물이나 바다는 위력이 있고 크다. 한 방울의 물은 가장 약하지만 노도(怒濤)는 무섭다. 즉 가장 유약한 것이 가장 강할 수 있다.    


 


  1. 常道 꾸며진 관념의 명도(名道)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이다.

     

    31.

    말로 표상(表象)해낼 수 있는 도는 항구불변한 본연의 도가 아니고, 이름지어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참다운 실재의 이름이 아니다

     

    ()는 천지의 시원이요 유()는 만물의 어머니다.

    그러므로 항상 무에서 오묘한 도의 본체를 관조해야 하고, 또한 유에서 광대무변한 도의 운용을 살펴야 한다.

    무와 유는 한 근원에서 나오는 것이고 오직 이름만이 다르다. 이들은 다같이 유현(幽玄)하다. 이들은 유현하고 또 유현하며 모든 도리나 일체의 변화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33.

    주역: 현은 유매심원(幽昧深遠) 하다는 뜻. 오징은 현은 유매하고 사람이 측정해서 알 수 없다는 뜻이라 했다. 즉 인간의 감관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존재를 현이라 했다….

     

    도는 지극히 현묘하지만, 알 수 없는 그것으로부터 모든 도리와 변화가 근원한다.    

     

    주해: 도는 형이상학적 실재다. 따라서 인간의 인식이나 표상을 초월한 존재다. 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구불변하고 어디에나 편쟇 있으며 또 만지만능의 능력이자 도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현상적인 표상작용으로 규제될 수 없다. 어떠한 말이나 개념으로 고정될 수 없는 것이 도다.

     

    이러한 도가 노자철학의 중심개념이다. 편의상 이것을 노자 속에서 추리면 다음과 같이 파악할 수 있다. 1)우주, 천지, 만물의 실체다. 2)모든 창조, 변화, 발전의 원동력이다. 3)만물 운행의 질서적 원리다. 4)인간 행위의 근원적 준칙이다.

     

    34.

    주해: “태초에 말이 있었다고 하는 성서의 그리스도교 사상과 처음부터 말을 부정하는 노자 사상의 대비 속에서 노자 철악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노자 철학은 명석한 로고스를 추구하는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로고스를 초월한 것, 카오스를 문제로 삼는 철학이며, 또한 유럽의 이성철학과 반대에 서는 철학이다. 성서를 바탕으로 자라난 유럽적 사고가 어둠보다는 빛을, 무형보다는 유형을, 무보다는 유를 중하게 여기는 데 비해, 노자철학은 빛보다는 어둠을, 유형보다는 무형을, 유보다는 무를 근원적인 것으로 보고자 한다. 밝고 화려한 세계보다는 어둡고 가라앉은 세계를, 첨예한 것보다는 둔중한 것을 격심한 변동보다는 차분한 안정을 중하게 여기고, 시끄러움보다는 정적을, 문명보다는 소박을, 전진보다는 복귀를 강조한다. 노지의 철학은 말하자면 중국 역사의 진흙탕 속에 뿌리를 내린 철학이다. 그것은 유린당한 자의 강인성, 대지에 밀착한 끈기, 중심을 밑으로 내려뜨린 자만이 지닐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살아나가겠다는 철학이며, 더는 붕괴될 수 없는 철학, 즉 모든 인간의 작위가 무로 돌아간 데서 나의 삶을 찾는 천하무적의 난세철학이다.” – 후쿠나카 교수를 인용

     

  2. 相和 상대계의 병존의 원리를 도가에서는 상화(相和)라 한다.


38.


주해: 인간적인 잔꾀를 부리지 않고도 영원하고 절대인 하늘의 이를 따르는 사람이 바로 도를 체득한 성인이다. 해탈(解脫)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적인 작은 가치체계나 욕구에서 벗어나 무위자연에 올라타는 것이다.  


 


  1. 無爲 무위는 자연의 순리를 지키는 도가의 법방인 것이다


 


주해: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심으로 다달한 세계나 무위자연의 자연스런 힘이나 이루어지는 결과가 크고 넓고 영구한 안목으로 볼 때는 뵬 차이가 없게 마련인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과학의 업적도 대우주의 조화 앞에서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미미한 성과에 불과한 것이다.



04. 和光 존재하는 모든 것과 공명(共鳴)을 이루며 어우러지는 것을 화광(和光)이라 한다.


 


도의 본체는 공허하다. 그러나 그 작용은 무궁무진하다.


도는 심오하여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만물을 생육화성하여 마치 만물의 근본인 종주 같다.


도는 만물의 예리한 끝을 꺾고, 만물의 분쟁을 풀고, 만물의 지나친 빛을 부드럽게 고르고, 만물의 더러움을 동화한다.


도는 소리없이 깊이 숨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만물을 생육화성함으로써 태고 때부터) 영원히 있는 것 같다.


나는 도가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천재보다도 앞에 있으며 천제의 으뜸가는 시조인 것 같다.


 


43.


주해: 이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신 이전의 실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을 최고의 근원적 절대자로 보았으나 노자는 그보다 앞에 도를 내세웠다.


 


05. 芻狗 사람들이 추구(芻狗)를 무관심하게 대하듯 천지 또한 만물을 무심으로 바라본다.



천지는 무정한 존재이다. (인간적인 사랑도 하지 않고)모든 만물을 추구(芻狗)같이 담담하게 여긴다. (만물이 자연의 도리를 따라 제물로 있고 제물로 자라게 내버려 둔다.)


도를 터득한 성인도 무정하게 무자비하다. 백성들을 추구같이 여긴다. (백성들에게 사사로운 인정이나 사랑 같은 것도 베풀지 않고 스스로 무위자연의 도를 따르게 내버려 둔다.)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와 같다고나 할까! 텅 비었는데도 원기가 끝없이 일어나고 그의 활동으로 생육화성이 더욱 잘 나타난다.


말이 많으면 이내 막히고 많다. 허정한 도를 지키는 것이 가장 좋다.


 


주해: 인간의 모든 번뇌 애착의 미망에서 온다.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무위자연에 돌아가는 길 밖에 없다. 불교가 이러한 점에서 통하고 유교의 청령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불교는 자비를 높이고 유교를 인을


 


08. 水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소박하게 사는 도가의 덕성을 말한다.


51.


주해: 노자의 유약, 비하, 부쟁의 철학은 작은 것, 인위적인 것, 현세적인 것을 버리고 큰 자연의 영원한 것을 얻자는 두둑한 배짱에서 나온 사상이다. 이는 하나를 부정하고 나머지는 모든 가능성을 얻자는 위대한 부정 정신의 소산이기도 하다.


 


11. 無用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바탕으로 한다.


55. 서른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다같이 꽂혀 있으나, 바퀴통의 한복판 빈 곳에 바로 수레를 작용시키는 요인이 있다.


흙을 이겨서 기물을 만들지만 기물의 텅 빈 곳에 바로 기물의 쓸모가 있다


문이나 창을 뚫어 방을 만들지만 방의 공간이 바로 쓰이는 곳이다.


그런고로 유()의 물건이 이롭게 쓰이는 까닭도 결국은 공허한 무()가 활용되기 때문이다.


 


12. 爲腹 감각적 세계를 멀리하고 내실을 기한다는 뜻이다.


57. 그러므로 무위자연의 도를 터득한 성인이 다스릴 때에는 오직 생명의 근원인 배를 실하게 채워주는 역할을 할 뿐, 사특한 빛을 쫓는 눈을 위하는 인공적 작위를 꾸미지 않는다. 성인은 외형적 감각세계를 버리고 내실적 무위자연을 취한다. 


 


58. 주해: ‘그런고로 성인의 다스림은 마음을 허정하게 하고 배를 실하게 채운다고 했다. 즉 배를 위한다는 것은 인간 생명의 근본인 배를 부르게 하여 무위자연의 도를 따라 생육화생하게 한다는 뜻이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는 것은 감관이나 감각적 생활 또는 교사다욕의 인위적 조작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인이 다스리는 것을 바라는 마음은 결국 철학자가 정치지도자가 되길 바랬던 서양철학자들의 속내와 같은 꿍꿍이인가 싶어 주목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것 같다. 철학자와 성인이 또 다르고, 그것을 원했던 이유나 양상도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15. 徐淸 無爲 諸法 으로 삼아야 된다.


63.


누가 능히 혼탁하고 동탕하는 것을 조용히 멈추어 점차로 맑게 할 수 있으랴!


누가 능히 안정되고 허정한 것을 생동시켜서 점차로 살아나게 할 수가 있으랴!


 


이러한 무위자연의 도를 몸에 간직하고 있는 자는 보름달같이 스스로 차고자 하지 않는다.


오직 스스로 차고자 하지 않으므로, 능히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이루어질 수가 있다.


 


66. 주해: 이런 경지는 바로 만물을 소리없이 생육화성하는 자연이다. 오자의 이상적 선비는 바로 자연과 혼연일체가 될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스스로 차고자 하지 않는다. 하늘같이 언제나 텅 비어 있다. 텅 비어 있으므로 아무리 낡고 오래 되어도 다시 새로운 생명을 이룰 수가 있다. 즉 유한한 현상계를 초월한 무한한 영생자(永生者)인 것이다.


 


17. 自然 성인의 다스림은 자연과 같다.


최상의 정치는 무치(無治)의 경지로, 백성들이 전혀 알지 못한다.


다음의 정치는 덕치(德治) 의 경지로, 백성들이 친근감을 느끼고 좋아한다.


그 다음의 정치는 법치(法治)의 경지로, 백성들이 겁을 내고 좇는다.


끝의 경지는 포학이며, 백성들로부터 미움과 욕을 받는다.


 


주해:  넷을 추리면 무치(無治), 덕치(德治), 법치(法治), 포학(暴虐)이다.


이 중에서 노자는 무치만을 높이고 주장하고 내걸었다. 즉 무치의 경지에서는 무위자연의 도를 따라 만물이 다 실하게 생육화성하며, 전혀 인위적 압력이나 간섭을 의식하지 않는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여름에 여물고 가을에 시들고 겨울에 잎이 떨어지고 메마르지만 이듬해의 봄이 되면 다시 꽃이 핀다. 이것이 무에서 유가 나오고, 그 유가 다시 근원으로 돌아갔다가 또다시 나오는 것이다. 금년에 핀 꽃만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꼭 움켜쥐고 있으려는 태도는 미망이다. 그렇듯이 오늘에 살고 있는 나만을 꼭 잡고 놓치지 않겠다는 것은 미망이다. 더욱이 순간적이고 하나에 불과한 나라고 하는 인간의 욕심에 매달려 언제를 어지럽히고 많은 나즉 백성을 학대하는 잘못된 정치는 인간의 미망 중에도 가장 큰 미망이 아닐 수 없다.


백성들로 하여금 오직 나는 스스로 있다하는 느낌을 갖도록 해야 하겠다.     


 


이 말이 너무 마음에 든다. 오직 나는 스스로 있다. 오직 스스로 있는 사람. 얼마나 멋진 경지인지. 그런 사람이 되겠다. 아마도 노자가 내가 받아들이는 이 느낌으로 그 의미를 쓰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근래 들어본 어떤 말보다 감동이다.


 


18. 大僞 작위에 의해 만들어진 어긋난 질서를 말한다.


대도(大道) 가 쇠진하므로 인의(仁義) 의 도덕이 나타났고


지혜를 짜내므로 인위적 위계가 있게 되었다.


가족 사이가 화목하지 못하므로 효자 같은 윤리를 내세우게 되었고


국가가 어지럽고 흐트러지므로 충신의 존재가 두드려지게 되었다.



23. 希言 희언동진(希言同塵)은 누구와도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무위자연의 도는 모든 것을 스스로 이룬다.


그러므로 강풍은 아침나절 줄곧 불 수가 없고, 폭우도 하루 종일 계속해서 올 수가 없다.


강풍이나 폭우는 누가 불고 오게 하나? 바로 천지다. 천지도 폭풍우를 오래 있게 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인간의 경우는 더욱 못 할 것이다.


그런고로 도를 따르면 도와 일치하고


덕을 따르면 덕과 일치하고


모든 것을 잃으면 잃은 상태에서 합치게 된다.


도와 일치하면 도가 좋아하여 (모든 것을 무위 자연속에서) 얻게 하고


덕이 일치하면 덕이 좋아하여 (인의예지) 속에서 얻게 하고


도와 덕을 잃으면 무도실덕이 좋아하여 포악한 결과를 얻게 한다.


성신이 모자라면 신임을 얻지 못한다.


 


25. 四大 자연(天地)과 순응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89. 혼돈하면서도 이루어지는 무언가가 천지보다도 먼저 있었다.


그것은 소릭 없어 들을 수도 없고,


형태가 없어 볼 수도 없으나


홀로 우뚝 서 있으면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두루 어디에나 번져 나가며 절대로 멈추는 일이 업서


천하만물의 모체라 할 수가 있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겠다.


억지로 자호를 지어 도라 부르고


억지로 이름을 지어 대라 할 뿐이다.


 


28. 無極 가장 근접된, 복귀하는 문호이다.


 


남성의 힘을 쓸 수 있으면서도 여성적인 겸허와 유약을 지키면 천하의 물을 모아 흐르게 하는 골짜기 같이 될 수 있다.


천하의 골짜기가 되므로 영구불변하는 무위의 덕에서 떨어지지 않고 따라서 영아 같이 순진소박한 상태로 복귀할 수가 있다.


 


34. 不宰 지배하여 종속시키지 않는 도가의 정신을 부재(不宰)라 한다.


 


큰 도는 어디에나 넘쳐있고, 좌우를 지배하여, 만물이 도에 의해 나오지만 자신이 자랑하지 않고, 모든 공적이 이루어지지만 도는 소유하지 않고, 만믈을 양육하고 보호하지만 도는 주인격으로 만물을 부리지 않는다.


 


36. 微明 밝음을 숨기는 것이다.


 


움츠리고자 하면 반드시 펴야 하고


약하게 만들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주고


폐절시키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흥성하게 해주고


탈취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그자에게 준다


이러한 도리를 미묘한 총명, 즉 미명(微明)이라 한다.


유약이 반드시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기게 마련이다.


물고기가 깊은 모을 벗어날 수 없듯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심오한 도리를 함부로 사람에게 내보여서는 안 된다.


 


40. 有無 철학의 궁극이며 도학의 완성이다.


 


126. 반대로 순환하여 복귀하는 것이 도의 활동이다.


유약한 것이 도의 작용이다.


 


128. 주해: 반은 도()의 동()이다. 즉 만물은 상반(相反)되는 방향으로 운동했다가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며 이를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천하만물은 유에서 나오고, 유는 무에서 나온다.….


 


도의 작동은 순환이다. 그러면서 도는 유한한 현상계를 초월한 절대인 허무를 시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도의 작동은 만물을 무인 도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무한한 절대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41. 善貸 적당하게 풀려있어 둥그런 덕성을 띄고 있음을 말한다.


으뜸가는 사람은 도를 듣고 깨달으면 열심히 노력하여 실천한다.


중간치의 사람은 도를 들어도 반신반의하므로 있는 듯 없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하층의 사람은 도를 듣고는 크게 웃으며 전적으로 무시한다. 하기는 하층의 사람이 웃지 않는다면 도라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42. 三生 [道生一二三]


 


강하고 포악한 자는 제 명에 죽지 못한다.


 


남들이 가르치는 바를 나도 가르치겠다


즉 억센 사람은 제대로 죽지 못한다고 했다.


나도 이 말을 모든 가르침의 바탕으로 삼겠다. 



48. 損利 어떻게 인위적 지식을 자연의 지혜로 승화시키느냐를 말한다.


학문을 배우면 지식이나 욕구가 나날이 늘고, 도를 닦으면 지식이나 욕구가 나날이 줄어든다.


줄어들고 줄어들어 결국에는 무위(無爲) 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59. 早服 외계와 그대로 공명하는 상태인 것이다.


백성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는 수렴(收斂)하는 것이 제일이다.


오직 수렴해야 빨리 도에 복귀 순복할 수가 있고


빨리 도에 순종하는 것을 덕을 많이 쌓는 것이라 하고


덕을 많이 쌓으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고


이기지 못할 것이 없으면 끝을 알지 못하게 뻗어나간다


 


60. 鬼性 '상대적 미혹으로 남으려는 교활한 속성을 말한다.


158. 큰 나라를 다스릴 때는 작은 생선을 지지듯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63. 無味 성인이 살아가는 재미.


무위로서 다스리고, 무사로서 처리하고, 무미로서 맛으로 여긴다.


큰 것은 작은 데서 나오고, 많음은 적음에서 생긴다.


덕으로써 원한에 보답한다.


쉬운 데서 어려운 일을 풀어야 하고, 작은 데서 큰 일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


천하의 난사도 반드시 쉬운 데서 일어나고


천하의 대사도 반드시 작은 데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성인은 끝까지 스스로 크다고 자처하지 않는다. 따라서 큰 일을 이룩할 수가 있다.


 


64. 愼終 변화가 끝나 이루는 마디이다.


안정된 것은 지니기 쉽고


아직 징조가 나타나지 않은 일은 처리하기 쉽고


취약한 것은 풀어지기 쉽고


세미한 것은 흐트러지기 쉽다


일은 생기기 전에 처리해야 하고 나라는 흐트러지기 전에 다르셔야 한다


 


이거 위기관리의 정석인데? 써먹어야겠다.


 


65. 大順 세속적 지혜를 경계함.


167. 주해: 이상적인 정치는 인간의 겨활한 지능이나 간교한 농간을 배제하고 모든 사람이 순진 소박한 상태에서 이루어질 수가 있다. 즉 법이나 벌보다는 양심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양심보다도 무지, 무욕, 무위를 바탕으로 할 때 인간사회는 자연과 더불어 평화와 안락을 누릴 수 있다고 노자는 믿었다.


 


71. 藏知 관한 장지를 말함.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 가장 좋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것이 흠이다.


성인은 흠이 없다. 자기의 흠을 흠으로 여기므로 흠이 없다


 


논어에서 공자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해라고 했다. 이는 노자가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탓한 태도와 통한다 그러나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라고 했다. 이에 대해 노자는 알아도 모른 척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76. 柔生()이 되어 외계와의 공명이 순조롭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은 갓났을 때는 유약하지만, 죽어서는 단단하게 된다.


초목도 각 자랄 때는 부드럽지만 죽을 때는 말라서 굳게 된다.


그러니까 억세고 굳은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


 


그런고로 무력이 강하면 결국 이기지 못하고,


나무도 억세면 결국은 잘리고 만다.


강하고 큰 것은 결국 밑에 깔리게 마련이고, 유약한 것은 결국은 위로 오르게 마련이다.


 


81. 愈有 무위자연에 따라 행함에 저절로 성장하는 것.


 


진실한 말은 밖으로 꾸미지 않고, 꾸민 말은 속에 진실함이 없다.


착한 사람은 말을 잘 하지 않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착하지 못하다.


도를 깊이 아는 사람은 말단적인 지식에 넓지 않고, 말단적 지식에만 넓은 사람은 도를 깊이 알지 못한다.


 


성인은 자기를 위해 쌓아놓지 않는다.


본래 남을 위하여 (모두 주므로) 도리어 자기에게 더 많이 있게 되고


본래 남을 위하여 모두 베풀므로 도리어 자기에게 더 많게 된다


 


하늘의 도는 오직 만물을 이롭게만 하고 다치지 않으며


성인의 도는 오직 남을 위하여 베풀기만 하고 다투지 않는다.


 


진실한 말은 밖으로 꾸미지 않고, 꾸민 말은 속에 진실함이 없다는 구절이 들어온다. 그 말을 이해하는 데 15년의 커리어와 43년의 인생이 필요했구나.  에효, 에효….


 


 


  1. 내가 저자라면

     

    노자의 선택은 사실 장자를 읽어야 하는 다음 번 과제를 위한 사전작업의 의미가 더 컸다. 처음 관심이 갔던 맹자는 분량이 너무 어마어마했고, 그 다음 재미있다 생각되었던 행동주의자 묵자를 조금 읽다가, 그의 겸애사상과 엄혹한 행동원칙이 너무 숨을 조여오기에 내려놓고 노자를 택한 것이다. 남편의 서재에서 발견한 삼성출판사의 세계사상전집의 첫 5권이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 순자 등 신영복의 강의에 등장한 모든 사상가를 다루고 있기에 다행이었다. 비록 출판한 지 20년도 더 된 책들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책은 인쇄 상태와 편집 레이아웃이 쪼끔 구닥다리일 뿐 주해나 구성은 괜찮았다. 어려운 한자부분은 당연히 건너뛰었지만, 원문의 직역과 주석, 주해와 다 무리 없이 읽히는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다만, 목차를 보자마자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이었다. 한자 까막눈인 나로서는 저 81개의 한자항목이 대체 뭔 소리인지, 그저 기나긴 난수표의 리스트로만 보였던 까닭이다. 요즘의 독자를 위해서라면 친절하게 음과 풀어낸 제목 하나 정도는 붙여줘야 한다. 그래서 목차는 그나마 핵심구절이 딸려있는 다른 도덕경의 목차를 그냥 훔쳐서 여기에 옮겨놨다. 그러니까 밑의 목차에서 한글 제목만 빼면 삼성세계사상 노자편의 목차가 된다.


 


목차


 


  1. 常道 꾸며진 관념의 명도(名道)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이다.
    02. 相和 상대계의 병존의 원리를 도가에서는 상화(相和)라 한다.
    03.
    無爲 무위는 자연의 순리를 지키는 도가의 법방인 것이다.
    04.
    和光 존재하는 모든 것과 공명(共鳴)을 이루며 어우러지는 것을 화광(和光)이라 한다.
    05.
    芻狗 사람들이 추구(芻狗)를 무관심하게 대하듯 천지 또한 만물을 무심으로 바라본다.
    06.
    谷神 천지의 바탕에 자리한 원신(元神)이며 다른 명칭이다.
    07.
    成私 '개체를 버려 개체의 완성을 기한다'는 구도의 규범이 되는 말이다.
    08.
    水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소박하게 사는 도가의 덕성을 말한다.
    09.
    身退 공수신퇴(功遂身退)야말로 도에 부합하는 것이다.
    10.
    六階 탈축(脫畜),기유(氣柔),현람(玄覽),무위(無爲),유자(維雌),장지(藏知)를 육계라 한다.
    11.
    無用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바탕으로 한다.
    12.
    爲腹 감각적 세계를 멀리하고 내실을 기한다는 뜻이다.
    13.
    爲我 자기 완성을 통한 세상의 변혁을 강조하는 것, 이것이 도가의 위아(爲我 )이다.
    14.
    知始 도통의 진모는 천지창조의 이치를 확오하여 진아(眞我)를 깨닫는 데 있다.
    15.
    徐淸 無爲 諸法 으로 삼아야 된다.
    16.
    虛極 허극(虛極)을 이룸으로 복귀함을 본다.
    17.
    自然 성인의 다스림은 자연과 같다.
    18.
    大僞 작위에 의해 만들어진 어긋난 질서를 말한다.
    19.
    素樸 자연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인간을 '갓 베어낸 통나무'에 비유.
    20.
    食母 自然 의해 길러짐을 말한다.
    21.
    衆甫 삼라만상이 무리지으면서 제 쓰임새대로 변화해 나간다는 뜻.
    22.
    曲全 曲則全 통한 曲圓 지녀야 한다.
    23.
    希言 희언동진(希言同塵)은 누구와도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24.
    不處 머무름이 없다는 뜻으로 불가의 무주(無住)와 상통한다.
    25.
    四大 자연(天地)과 순응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26.
    超然 바탕에 가까워진 상태에서 외계와 공명을 일으키는 경지를 말한다.
    27.
    要妙 '시의적절한 처세의 이치를 말한다. 불가의 방편이 있다.
    28.
    無極 가장 근접된, 복귀하는 문호이다.
    29.
    神器 상대계는 원신(元神)이 만든 작품이다.
    30.
    壯老 강성하면 노쇠하게 되는 이치를 장로(壯老)라 한다.
    31.
    尙左 작위를 하게 될 때에는 최대한 무위를 지키라는 말을 하고 있다.
    32.
    甘露 감로(甘露)란 영혼이 평화에 잠겼을 때 주변을 촉촉이 적시는 수기를 내포한 기운이다.
    33.
    天愁 구도자는 향수 대신 천수(天愁)를 지녀야 한다.
    34.
    不宰 지배하여 종속시키지 않는 도가의 정신을 부재(不宰)라 한다.

    35. 執象 求道 哲學 출발점이다.
    36.
    微明 밝음을 숨기는 것이다.
    37.
    無名이름에 관심 없는 풍토를 말한다.
    38.
    上德 한가지 德性 매여 있지 않음을 말한다.
    39.
    珞石 돌처럼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을지라.
    40.
    有無 철학의 궁극이며 도학의 완성이다.

    41. 善貸 적당하게 풀려있어 둥그런 덕성을 띄고 있음을 말한다.
    42.
    三生 [道生一二三]
    43. 至柔 無爲 이로움.
    44.
    知止 조화를 이루어 상생의 용화(用化)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45.
    若缺 온갖 제약과 도덕관념을 넘어서서 순수자연을 회복하려는 도가의 의지.
    46.
    知足 知足 구도의 출발이다.
    47.
    見名 도가식 격물치지(格物致知)이다.
    48.
    損利 어떻게 인위적 지식을 자연의 지혜로 승화시키느냐를 말한다.
    49.
    孩心 無常心 상태가 성인의 마음이며 孩心이다.
    50. 攝生 相對界 미혹을 벗어남을 말한다.
    51.
    玄德 자연의 말한다.
    52.
    習常늘상 비추고 있는 상태이며 생활의 이다.
    53. 施畏 에서 벗어남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54.
    修觀 화광현동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법방.
    55.
    和至 수관(修觀)을 통한 화광현동의 경지가 화지이다.
    56.
    玄同 절대와 상대 두 가지 모습의 공존! 이것이 도가의 이상상(理想象)이다.
    57.
    自化 때에 맞춘 제자 양성의 .
    58. 知迷 상대세계의 미혹됨을 깨닫는 것이다.
    59.
    早服 외계와 그대로 공명하는 상태인 것이다.
    60.
    鬼性 '상대적 미혹으로 남으려는 교활한 속성을 말한다.
    61.
    先下 스스로 먼저 낮추는 것이다.
    62.
    聞道 들을 줄 아는 견식.
    63.
    無味 성인이 살아가는 재미.
    64.
    愼終 변화가 끝나 이루는 마디이다.
    65.
    大順 세속적 지혜를 경계함.
    66.
    善下 담는 성품을 말한다.
    67.
    三寶 ,,
    68. 和德 다툼이 없는 덕, 즉 어울림의 덕이다.
    69.
    爲客 외계를 담을 수 있는 도가적 삶의 방향.
    70.
    易冥 너무 쉬워서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함을 말함.
    71.
    藏知 관한 장지를 말함.
    72.
    大威 공명이 미치는 현동의 범위를 통한 참된 권위.
    73.
    天網 불교적 표현을 빌리면 크게는 인과율이고 작게는 윤회의 사슬을 말한다.
    74.
    孰敢 감히 나서지 않아 무위로 가는 것.
    75.
    無生 집착함이 없이 관하며 사는 초월적 삶.
    76.
    柔生()이 되어 외계와의 공명이 순조롭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77.
    張弓 조화의 도가식 용어이다.
    78.
    若反 변화무쌍한 상대계의 시비를 가리는 도가적 잣대.
    79.
    無親 대상을 구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순수 공명이 이루진다.
    80.
    樂俗 무위자연의 문화를 즐기는 것.
    81.
    愈有 무위자연에 따라 행함에 저절로 성장하는 것.

     


노자를 이해하기에 조금은 짧은 독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주해와 역이 매우 상세하고 번역도 무리가 없다 생각했지만, 나는 이 책에 대해서는 반론이나 논평을 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한편으로는 구구절절 너무 올헤 여겨지는 말씀이라 그런 것도 있었겠지. 묵자를 들여다 봤을 때의 그 논리적이고 치밀한 문장전개와 엄혹한 행동주의를 엿볼 수 있는 꽉 짜인 구성에 조금은 질렸었다. 반대로 노자는 그의 사상과 통하는 것인지 몰라도 여백이 넘친다. 경구 형식의 나열이다 보니, 그가 말한 대로 빈 공간이 있어야 소용한다는 것처럼, 빈 곳이 많아 보이는 그의 글이 더 광대하고 심오한 뜻을 전하기에 더 적절한 것도 같다.   


 


앞 쪽에서 빼곡하게 옮겨 적을 것이 많았던 반면, 뒤쪽, 즉 덕경에 해당하는 부분은 반복도 좀 있고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건너뛴 부분이 꽤 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워낙 이미 갈무리된 생각이 함축적인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는지라 뺄 것은 전혀 없어 보인다. 이것이 옛 성현들의 책을 리뷰할 때의 징크스다. 구구절절 내 머리 속에 이미 옳은 것으로 각인되어 있는 말씀들을 어찌 달리 생각하랴.   어떤 면에서는, 내가 그리스철학이나 여타 낯선 문화의 신화나 이야기, 또는 SF와 호러 같은 낯선 공간의 이야기들을 선호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이제 든다. 더 자유롭게 비판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달까? 아마도 뼛 속 깊이 뿌리 박힌 나의 시조들에 좌우되지 않고 자유로운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흐흐…. 의외로 내게 와 닿은 것은 위기관리나 커뮤니케이션 관련 강의를 할 때 써먹음 좋을 것 같은 두 구절이었다.


 


57. 그러므로 무위자연의 도를 터득한 성인이 다스릴 때에는 오직 생명의 근원인 배를 실하게 채워주는 역할을 할 뿐, 사특한 빛을 쫓는 눈을 위하는 인공적 작위를 꾸미지 않는다. 성인은 외형적 감각세계를 버리고 내실적 무위자연을 취한다. 


 


58. 주해: ‘그런고로 성인의 다스림은 마음을 허정하게 하고 배를 실하게 채운다고 했다. 즉 배를 위한다는 것은 인간 생명의 근본인 배를 부르게 하여 무위자연의 도를 따라 생육화생하게 한다는 뜻이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는 것은 감관이나 감각적 생활 또는 교사다욕의 인위적 조작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64. 愼終 변화가 끝나 이루는 마디이다.


안정된 것은 지니기 쉽고


아직 징조가 나타나지 않은 일은 처리하기 쉽고


취약한 것은 풀어지기 쉽고


세미한 것은 흐트러지기 쉽다


일은 생기기 전에 처리해야 하고 나라는 흐트러지기 전에 다르셔야 한다


 


17. 自然 성인의 다스림은 자연과 같다.


69. 최상의 정치는 무치(無治)의 경지로, 백성들이 전혀 알지 못한다.


다음의 정치는 덕치(德治) 의 경지로, 백성들이 친근감을 느끼고 좋아한다.


그 다음의 정치는 법치(法治)의 경지로, 백성들이 겁을 내고 좇는다.


끝의 경지는 포학이며, 백성들로부터 미움과 욕을 받는다.


 


주해:  넷을 추리면 무치(無治), 덕치(德治), 법치(法治), 포학(暴虐)이다.


이 중에서 노자는 무치만을 높이고 주장하고 내걸었다. 즉 무치의 경지에서는 무위자연의 도를 따라 만물이 다 실하게 생육화성하며, 전혀 인위적 압력이나 간섭을 의식하지 않는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여름에 여물고 가을에 시들고 겨울에 잎이 떨어지고 메마르지만 이듬해의 봄이 되면 다시 꽃이 핀다. 이것이 무에서 유가 나오고, 그 유가 다시 근원으로 돌아갔다가 또다시 나오는 것이다. 금년에 핀 꽃만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꼭 움켜쥐고 있으려는 태도는 미망이다. 그렇듯이 오늘에 살고 있는 나만을 꼭 잡고 놓치지 않겠다는 것은 미망이다. 더욱이 순간적이고 하나에 불과한 나라고 하는 인간의 욕심에 매달려 언제를 어지럽히고 많은 나즉 백성을 학대하는 잘못된 정치는 인간의 미망 중에도 가장 큰 미망이 아닐 수 없다.


백성들로 하여금 오직 나는 스스로 있다하는 느낌을 갖도록 해야 하겠다.     


 


오직 나 스스로 있다. 이 말을 자꾸 곱씹게 될 것 같다. 오직 나 스스로. 무치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말을 나는 자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나로 인하여 충만한, 그로 인하여 나 스스로 있는, 흔들리지 않고 쭉 뻗은 나무 같은 인간을 상상한다. 나도 그러고 싶다.  나 스스로 있기 위한 몸부림을, 우린 평생을 거쳐 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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