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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4일 01시 57분 등록

묵자

10기 김정은

 

묵자, 기세춘 역저, 바이북스, 2009

 

1. 저자에 대하여

 

묵자 (BC 470?~390?)

철학자, 과학자, 경제학자, 반전운동가, 혁명가

 

묵자에 대한 여러 가지 전적을 정리하고 연구한 양계초의 <자묵자학설>에 근거하여 묵자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종합해 보면 묵자는 기원전 492년에서 468년 사이에 태어나서 기원전 420년에서 376년 사이에 생을 마쳤다. 역사 시기로 볼 때, 전국 시대에 해당하는 공자 이후 맹자 이전에 태어나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묵자는 하층민 집안 출신으로 이러한 출신 배경은 그의 사상을 형성하고 그의 행동을 펼쳐 나감에 있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묵자는 목수 출신으로서 왕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위정자들 때문에 고통 받는 민초를 대변하였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애민적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면서도 실천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전국시대에 묵가(墨家)는 유가에 병립하는 양대 주류 학파였다. 한비자(韓非子) "세상의 현학은 유)와 묵()이다"라고 하였으며, 한나라 시대 초기에는 학자를 통칭하여 "유묵"이라 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묵자의 사상은 거의 유가사상에 반대되고 있다. 혁명적인 사회 개혁을 주장한 혁신주의자였던 묵자는 공자가 봉건 귀족 계급을 편들고 입신 출신 하려 한다며 어린이만도 못하는 지혜를 뽐내는 자’, ‘남의 창고로 배부르고 남의 밭으로 술 취하는 자또는 희대의 간악하고 간사한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즉 같은 시대에 살았던 공자와 묵자는 보수 혁신의 견원지간이었다.

 

묵자는 이 세상을 대동 평등 공동체 사회로 개혁하기 위하여 지배 문화와 착취 제도 및 지배계급에 대하여 전면적인 혁명을 주장하는 사회 혁명가이며, 동시에 노동자 출신으로서 억압 착취당하는 기층 민중 편에 서서 평생을 바쳐 투쟁한 평등주의자로서, 그 억압과 착취의 고리가 재화의 소비구조 즉, 문화 제도 등 상부구조에 있다고 보고 재화의 본래 목적을 초과하는 소비의 전형적인 제도인 전쟁을 없애고, 지배 계급의 무용한 낭비, 인민을 떠난 음악, 호화로운 장례 제도 등 과시 소비를 토대로 한 지배 착취 문화를 혁신함으로써, 노동 착취의 목적을 제거하여 착취 구조를 차단하고자 했다.

 

묵자는 겸애설(兼愛說)을 가르쳤다. 겸애는 사람들이 격의 없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하는 것으로, 하늘의 뜻도 바로 겸애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묵자는 서로를 이롭게 한다("교리 · 交利")는 보편적 시각에서 강본(强本, 勤勉 · 근면)과 절용(節用, 儉約 · 검약) 등을 주장했다. 기타 유명한 사상으로는 반귀족적 인재등용론인 상현(尙賢)과 비전론(非戰論)인 비공(非攻) 등의 사상이 있다. 묵자를 시조로 하는 묵가의 특징적인 주요 사상으로는 겸애설(兼愛說) · 상현론(尙賢論) · 절용론(節用論) · 비악론(非樂論) · 절장론(節葬論) · 비명론(非命論) · 명귀론(明鬼論) · 상동론(尙同論) · 천지론(天志論) 등이 있다.

 

묵자는 공자의 인()이 보편적인 사랑이 아니라는 점을 폭로하며, 진정한 사랑은 보편적이어야만 한다고 역설했던 철학자다. 묵자의 철학은 겸애兼愛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기세춘 선생은 묵자의 겸애 사상이 기독교의 보편애와 유사하다는 논지를 펴기도 했다. 평등주의와 노동자주의로 대표되는 묵자의 사상은 전국시대 가장 많은 인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한 무제 때 공자의 유교가 국교가 된 이후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200년 후 순자로부터 묵자의 사상은 노동자의 도일 뿐이라며 비난 받았지만, 2천 년 후 그의 사상이 마르크스에게 계승된다. 묵자, 예수, 마르크스 등 세 사람이 지향한 이상사회는 모두 똑같이 천하무인의 대동사회 즉, 해방된 평등 공동체였다.

 

한 무제 이후 세상에서 사라진 묵자는 17세기 초 명나라 때에 들어와서야 도가들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18세기에 와서야 최초츼 주해서가 나왔다. 19세기에 들어와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출간된 후 겨우 <묵자>의 결정판이 세상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현대 세계는 좌편향으로 좌절한 좌파와 이데올로기로 부활하려는 우파가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시대다. 막다른 골목에서 세상을 버리고 신선이 되려는 도피는 망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혼란의 시대, 묵자의 사상은 어두운 길에서의 밝은 등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묵자의 사상

 

겸애설 유가의 인애를 뛰어넘는 인류애

유가가 부모형제들의 혈연관계를 윤리의 기본에 두는 데 반하여, 묵가는 그러한 차별에 관계하지 말고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다. 묵자는 모든 이들이 하늘 앞에 동등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집합적인 사랑의 실현에 참여하여 하늘을 모방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비전론·비공론 침략전쟁의 부정과 방어전쟁의 인정

묵자는 백성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 겸애사상과 함께 비전과 비공을 주장하였다. 비전과 비공은 부족과 부족, 집단과 집단,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겸애 사상의 적용이라 할 수 있다. 비전과 비공은 말 그대로 남에 대한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침략전쟁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논리이다.

 

상현론 반귀족적 인재등용론

유가가 인재의 등용에 있어 덕의 유무를 기준으로 하여 군자와 소인의 차별을 엄격히 하는 데 반하여 묵가는 농민이건 상공업자건 구애할 것 없이 재능있는 자는 계속해서 등용하라는 상현론(尙賢論)을 주장하였다. 당시 사회의 실정에 비추어볼 때, 상현론은 반귀족적인 인재등용론이었다.

 

절용론·비악론·절장론 근검절약을 통한 백성애의 표현

유가가 관혼상제나 일상의 의식을 중시하는 데 대하여 묵가는 군주의 긴요하지 않은 지출은 줄이라는 절용론(節用論), 궁중 음악 등은 그만두라는 비악론(非樂論), 그리고 장례의식 등은 간소하게 하라는 절장론(節葬論)을 주장했다.

 

비명론·명귀론

유가가 인도(人道), 즉 인간의 도덕적 실천을 중히 여기면서도 또한 인력으로는 어떻게 하기 어려운 천도(天道)나 천명(天命)을 인정하는 데 반하여, 묵가는 일체 명()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비명론(非命論)을 주장했다. 그리고 인간의 행위의 선악은 모두 귀신에게 감시받으며 귀신은 정확하게 그에 대응하여 상벌을 내린다는 명귀론(明鬼論)을 주장했다.

 

상동론·천지론

유가가 개개인의 도덕적 자각을 중요시하고 어느 군주를 섬기느냐 하는 판단의 자주성을 인정하는 데 반하여, 묵가는 하위자(下位者)는 상위자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상동론(尙同論)과 인간 중의 최상위인 천자(天子)도 천(: 하늘)에 복종해야 한다는 천지론(天志論)을 주장했다.

 

묵자 들여다 보기

 

1. 지금 어떤 사람이 남의 과수원에 들어가 그곳의 복숭아나 오얏을 훔치면 여러 사람들은 듣고서 그를 비난할 것이고 위에서 정치하는 사람은 그를 잡아 처벌할 것이다. 이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남을 해치면서 자신을 이롭게 했기 때문이다. 남의 개나 닭, 돼지를 훔친 자는 그 불의가 남의 과수원에 들어가 복숭아나 오얏을 훔친 것보다 더욱 심하다. 이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남을 해친 것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진실로 남을 해치는 것이 더욱 많을수록 그의 불인함이 더욱 심해져서 죄가 더욱 무거워진다. 남의 마구간에 들어가 남의 말이나 소를 훔친 자에 이르러서는 그 불인과 불의가 남의 개, , 돼지를 훔친 것보다 더욱 심하다. 이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남을 해친 것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진실로 남을 해친 것이 더욱 많을수록 그의 불인함이 더욱 심해져서 죄가 더욱 무거워진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의 옷을 벗기고 그의 창이나 칼을 훔친 사람은 그 불의가 남의 마구간에 들어가 남의 말이나 소를 훔친 것보다 더욱 심하다. 이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남을 해친 것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진실로 남을 해친 것이 더욱 많을수록 그의 불인함이 더욱 심해져서 죄가 더욱 무거워진다. 이와 같은 일에 대해 천하의 군자들은 모두 알고서 그것을 비난하면서 불의라고 말한다. <묵자> 「비공·

 

2. 지금 크게 불의를 행해서 남의 국가를 공격하는 데 이르는 경우는 그릇된 줄을 모르고 이를 따라 칭찬하면서 의로움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의로움과 불의함의 구별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라고 말하며 반드시 한 사람 분의 사형의 죄가 있도록 한다. 만약 이처럼 말해간다면 열 사람을 죽이면 열 배의 불의가 되어 열 사람 분의 사형의 죄가 있도록 해야 하며, 백 사람을 죽이면 백 배의 불의가 되어 백 사람 분의 사형의 죄가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에 대해 천하의 군자들은 모두 알고서 그것을 비난하면 불의라고 말한다. 지금 크게 불의를 행해서 남의 국가를 공격하는 데 이른 경우는 그릇된 줄을 모르고 이를 따라 칭송하며 의로움이라고 말하지만, 진실로 그가 불의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을 적어 후세에 전하기까지 한다. 만약 그가 불의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찌 그의 불의함을 적어서 후세에 전하겠는가? <묵자> 「비공·상」

 

3.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강자는 반드시 약자를 핍박할 것이고, 부자는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며, 신분이 높은 자는 비천한 자를 경시할 것이고, 약삭빠른 자는 반드시 어리석은 자를 기만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전란과 찬탈과 원한이 일어나는 까닭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반대하면 무엇으로 그것을 바꾸겠는가? 묵자가 말했다. “서로 사랑하며[兼相愛] 서로 이롭게 하는[交相利] 원칙으로 그것을 바꾼다.” <묵자> 「겸애·

 

4. 모두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하는 원칙이란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묵자가 말했다. “다른 나라 보기를 자기 나라 보는 것과 같이 하고, 남의 봉토 보기를 자기 봉토 보는 것처럼 하며, 남의 몸 보기를 자신의 몸 보는 것같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제후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임금과 신하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베푸는 은혜와 바치는 충성이 있게 된다. 또 아비와 아들이 서로 사랑하면 인자하고 효성스럽게 되며, 형제가 서로 사랑하면 화목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서로 사랑하면 강한 이가 약한 이를 핍박하지 않으며, 다수가 소수에 행패를 부리지 않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신분이 높은 이가 비천한 이를 경시하지 않으며, 약삭빠른 이가 어리석은 이를 속이지 않게 된다. 세상의 모든 전란, 찬탈과 원한은 서로 사랑한다면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진 이는 이것[兼相愛]을 찬미하는 것이다.” <묵자>「겸애·중」

 

2.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다시 책을 펴내며

 

7

일찍이 중국의 쑨원은 고대의 사랑을 말한 사람으로 묵자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 묵자가 말한 겸애는 예수의 박애와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한국의 유명한 성서학자 고 문익환 목사는 묵자의 하느님은 예수의 하느님과 쌍둥이처럼 닮았으며, 석가, 묵자, 예수는 한 뿌리에서 나온 세 가지라고 천명했다.

 

1992년 완역판 서문

 

8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는 누구일까? 우리로선 우선 공자, 예수, 마르크스 세 분을 꼽는다면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회의와 염증을 느껴 속세의 모든 문화와 제도를 거부하고 산 속에서 불사약초를 캐 먹고 숨어 사는 백발노인 노자 장자와 달리, 이 세 분들은 모두 속세에서 인민들과 더불어살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공자는 귀족 지배계급에 유세하여 출세를 얻고자 권세가들을 찾아다니고, 상갓집마다 찾아가 두건을 얻어 쓰며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유식하고 똑똑한 호상으로 그릴 수 있으며, 묵자는 학벌도 없는 목수 출신으로 세상을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사상가며 또한 반전 노동운동을 지도하는 노동자로 그릴 수 있겠고, 예수는 정치에는 눈을 돌리고 광야에서 양을 치며 지옥 같은 난세가 끝나고 새 세상이 오기를 별을 보고 점을 치는 착한 예언자로 그릴 수 있겠으며, 마르크스는 자본가 계급을 몰아내고 노동자 계급을 쟁취하려는 탁월한 사회사상가며 동시에 지하혁명당 이론가의 모습일 것이다.

 

【 해설 】

1장 묵자는 누구인가?

출신성분 / 묵자의 사상적 위상 / 묵자는 혁명가 / 묵가는 협객집단

 

24

동이족의 후예

묵자의 출신에 대해서는 한족이 아닐 것이라는 데는 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아랍족 설 혹은 동이족 설 등 정설은 없다. 필자는 그가 동이족이라고 믿는다. 설사 동이족이 아니라고 해도 묵자의 하느님에 대한 시각을 볼 때, 그는 아랍 문화인 난생 신화를 가진 남방의 토착 한족과는 다른 친신하강 신화를 가진 외래의 유목 또는 수렵 민족의 후예가 분명하다.

 

25

전국 시대 송나라 묵적이 책을 짓고 <묵자>라 했다. 그렇다면 묵자는 백이숙제의 후손이 된다. 백이숙제는 반전평화 사상의 원조이니 묵자의 평화사상도 그 조상 때부터 전승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3

중국 최초의 철학자

묵자는 중국의 전통과는 색다르게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말한 철학자였다. 중국의 고대 문헌은 대체로 역사서이거나 언행록인 데 비해 <묵자>는 유일하게 체계적 논변으로 되어 있다.

 

34

노동계급의 지도자

묵자가 활동할 당시는 춘추 말기였다. 해마다 몇 차례씩 일어나는 전쟁으로 노동자계급인 사농공상 중 공민의 역할이 커지면서 그들의 불만도 점점 높아갔다. 그리고 난을 일으키는 데에 공민들이 큰 역할을 할 정도로 계급의 자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는 무엇보다 공민 계급의 지도자인 묵자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혹자는 묵자가 선비 계급이 아니고 노동자계급이라면 어떻게 그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묵자는 가문이 몰락하여 목수라는 공민 신분이 되었으나 본래 고죽국의 왕자인 백이와 숙제의 후손이므로 그처럼 많은 책을 읽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37

인류 최초의 반전 평화 운동가

이미 철기 사용이 보편화되었고 쌀농사도 농업 혁명이 일어난 제1물결의 변혁기였다. 주 왕권이 쇠약해지자 국유지였던 농지의 사적 소유가 성행하고 이에 따라 귀족과는 별도로 농업자본가 내지 상업자본가가 등장했으며,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생산을 담당하던 농노들이 사적 노예로 전락했다. 뿐만 아니라 대인이라 일컬어지는 봉건귀족의 힘이 약화되고 소인이라 일컬어지는 패권을 추구하는 일부 귀족들과 신흥 자본가와 엘리트 관료 계급이 군웅할거하여 약육강식의 토지겸병 전쟁이 끊임없던 난세였다.

백성들은 전쟁에 나가 죽고 다칠 뿐만 아니라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해 더욱 착취를 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쟁을 감당하고 수행했던 민중들이 자기들의 힘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이 때 묵자가 나타난 것이다. 묵자는 평등과 사랑의 하느님 사상을 전파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민중운동을 펼치며 사회개혁을 주장했다.

 

39

미신을 반대한 동양 최초의 과학자

묵자는 목수 출신의 동양 최초의 과학자였다. 그의 수많은 과학 이론은 <경설>편에 수록되어 있다. 그는 미신을 반대한 실용주의자이기도 했다.

 

42

의를 위해 목숨을 버려라

묵자는 실천하고 조직하고 투쟁한 사회혁명가였다. 그는 내 말은 반석과 같으니 깨뜨릴 수 없다고 외치며 의를 위해 목숨을 버려라고 요구했다.

 

44

구체제를 혁파하라

백성을 입장을 대변한 묵자는 기존 체제를 지키는 것을 거부한다. 성왕의 역사, 백성이 보고 들은 것, 백성의 이익, 이 세 가지를 모든 가치의 절대 조건이라고 하며, 이 삼표론을 근거로 전통적 도덕 체계를 모두 뒤엎어 버린다.

 

48

천하의 만국 만인을 두루 평등하게 사랑하라

묵자가 말하는 성왕의 도는 백성에 의해 선출된 천자가 천제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은 히늘의 신민인 백성의 뜻과 민의 이익이라고 보았다. 공묵이 다 같이 사회 평화와 민생을 걱정하지만, 공자는 지배계급의 시각이었고, 묵자는 민중적 시각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50

운명론은 폭군이 지어낸 속임수

묵자는 천제와 귀신을 인정했으나 운명론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대했다. 민중이 모든 개혁과 혁명에 소극적인 까닭은 운명론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 혁파하지 않고는 혁명을 할 수 없다.

 

54

묵가는 협객 집단

묵가들은 묵자 당시부터 협객 집단으로 출발한 듯하다. 묵자 스스로도 어느 군주에게도 예속되지 않았다. 그는 봉토를 떼어주겠다고 초청해도 가지 않았고 목숨을 걸고 반전 운동을 했던 협객이었다. 묵자를 따르는 무리는 180여 명인데 칼날 위를 걷고 불길 속에 뛰어드는,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용사들이었다고 한다. 묵가들은 공동체 생활을 한 것 같다. 그리고 겸애를 실천하기 위해 자기 자식도 남과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했다.

 

59

묵자의 제자들은 장자가 활동하던 전국 중기에는 3파로 분열된 것 같다. 묵가 3파는 묵자 본연의 가르침을 지키려는 순수파, 현실에 영합하려는 반동파, 그리고 이들을 절충하려는 절출파 등이다.

<묵자>라는 책이 상중하로 나누어진 것은 이 3파의 글을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상편은 순수파, 중편은 절충파, 하편은 반동파의 글이라고 본다.

 

2장 보수와 진보의 쌍벽

 천하가 공묵에 기울다 / 묵가들의 유가 비판 / 공자의 인애는 신분차별적이다

 

묵가들이 유가 비판

 

65

유가의 지혜가 어찌 갓난아기보다 낫겠는가?

묵자는 보수적인 유가들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묵자는 사민 중에서 선비 계급과 농민 계급의 그 다음 차례인 공민 계급이었으며 유명한 과학자요, 기술자였다. 그런 그에게 유가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도 없이 옛 것만을 지키려는 어리석은 자들로 보였을 것이다.

 

67

군주는 가치의 표준이 아니다.

묵자가 하늘을 강조한 것은 가치의 표준으로서 필요했기 때문이다. 묵자 당시 지배 계급들에게 하늘은 천명론, 즉 왕권신수설의 주체였으므로 천자만이 하늘제사를 주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하늘은 천자와 귀족 등 지배계급의 특권을 담보해 주는 수호신이었다.

그러나 묵자는 본래 하늘은 천자에게 천명을 내리는 하늘이 아니라 겸과 애의 표상이며 민중을 위한 해방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가치의 표준은 천자, 군주, 관리, 부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공자의 천명과 종법 질서와 그것을 지지하는 주례와 군사부일체론을 거부하는 혁명적인 주장이었다.

 

69

공자의 학문을 민중을 도울 수 없다.

묵자는 평등주의자이며 대동사회를 지향했으므로 노예적 종법 질서와 소강 질서를 지향하는 주례에 찬성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주례에 대한 묵수를 반대했다. 그는 예를 상대방에 대한 공경이라고 정의했지만, 그 경이란 것이 높은 자에게는 공평하지만 천민에게는 직분에 얽매이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그는 새것을 지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75

유가는 두드려야 울리는 종인가?

군자들은 높은 종각에 깔려 있는 종처럼 누군가가 때리면 울리고 그렇지 않으면 조용히 있는 것을 덕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나라에 도가 있으면 몸이 도를 따라 나아가 섬기며 그 대가로 밥을 얻어먹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몸은 도를 따라 밥을 버리고 그 곳을 떠나야 한다. 주인이 부르면 나아가고 부르지 않으면 부를 때까지 음풍농월하면서 신선 노릇을 하는 것이 그들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묵자는 유가와는 반대로 도가 없는 곳을 찾아가 도를 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침략을 획책하는 도가 없는 나라를 찾아가 목숨을 걸고 전쟁 중지를 요구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면 제자들을 이끌고 모든 사람들이 피난을 가는 침략 받는 나라로 찾아가 방어 임무를 스스로 담당했다. 그는 도가 있는 나라를 찾아가 일자리를 달라고 구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한 고을을 떼어 주겠다고 요청해도 특권 계급이 되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77

묵자의 사랑은 공자의 사랑과 다르다

공자와 묵자는 다 같이 사랑을 말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공자는 근친애이며 묵자는 이웃사랑이다. 공자는 혈연공동체를 지향했고 묵자는 인류 공동체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묵자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천하무인이다. 이는 혈연을 초월한다. 그래서 맹자는 묵자를 아비 없는 놈이라고 비난했던 것이다.

 

78

묵자의 겸애는 부처의 자비와 같다.

묵자는 평등한 사랑을 주장하고, 공자는 인을 체애, 즉 차별적인 사랑이라고 비판한다. 겸이란 아우름과 평등을 의미하며, 그 반대는 개별의 체와 차별의 별이다. 공자의 인은 개인의 혈연에 대한 사랑을 말하지만 묵자의 겸애는 혈연적 신분 관계를 초월한 공동체 안에서 인간 각자의 주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주목되는 것은 평등한 사랑을 부처님의 자비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 설정은 마르크스(1818~1883)의 문제였고 21세기에도 고심하는 문제로 남아 있다. 마르크스는 개개인이 소외되지 않는 유적 존재를 실현하는 공동체를 공산사회라고 말한 바 있다. 즉 공동체는 그 성원인 개인들이 소외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결속되어야 한다. 묵자가 소망했던 겸애 공동체도 개체가 공동체로 환원 흡수되어 소진되지 않고 도리어 개성을 유지 발현하는 연합체였던 것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의 유적 존재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82

인은 극기지만 겸애는 이기를 포함한다.

공자의 인은 극기였으나 묵자의 겸애는 극기가 아니다. 겸애는 애기를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 포함시킨다. 묵자는 의를 이로움으로 보았으므로 극기를 말하지 않았다. 이것이 공묵이 다른 가장 중요한 특색이다.

 

83

평등한 사랑은 공동체의 필수조건

유가들은 평등한 사랑이란 인정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묵자는 평등한 사랑은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건이며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3장 종교사상

 동양의 하느님 / 서양의 신 / 동양의 유물론 / 묵자의 하느님과 예수

 

141

묵자의 하느님

하느님 신앙은 고대 동서양에 공통된 문화 현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묵자의 하느님 신앙이 특별히 중국의 독단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현저히 다른 모습인 것을 유의해야 한다. 묵자의 하느님은 조선의 한울님이나 예수의 하느님과 너무도 닮은 모습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43

묵자의 하느님이 인격신이란 점에서는 기독교와 비슷하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은 그리스적인 영향을 받아 육체를 가진 신이었으나 묵자의 신은 육신을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묵자의 하느님의 인격은 섭리에 가깝다. 그래서 묵자는 역사의 주체인 신이 아니고 인간 자신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즉 역사에 있어서는 하느님은 민중과 별도의 인격을 갖지 않고 민중의 뜻이 바로 하느님의 인격이었다. 이 점에서 한국의 서남동(1918~1984), 안병무(1922~1996), 문익환(1918~1994) 목사 등이 민중신학과 출발점과 지평이 매우 유사하다.

 

146

묵자 사상의 핵심은 겸애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은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겸은 별의 반대로 두루 평등하다는 뜻이다. 묵자는 유가들의 인은 개인적이며 차별적인 사랑 즉 체애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공자의 인은 노예나 농노의 불평등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사회적 평등인 겸애와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평등 공동체를 지향하는 묵자의 겸애는 효와 충을 강조하진 않지만 공맹의 인은 가부장적 가족 질서와 씨족의 가문 질서를 국가로 확대하려는 봉건제를 지향하므로 효와 충이 강조된다. 묵자는 겸애를 사회관계 속에서 이웃을 내 몸처럼, 남의 가족을 내 가족처럼,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생각하고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겸애는 마르크스가 공산사회가 소외되지 않는 인간을 말한 유적 존재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147

묵자의 하느님은 정의의 근원이 되는 신이다. 묵자가 말하는 의는 영구불변의 관념론적인 도리가 아니라 민중의 이익이라고 말한다. 묵자가 말하는 정의는 민중과는 상관없이 미리 정해져 있는 신비한 것이 아니라 민중이 결정하는 민중의 이익이었다.

묵자에게 목숨보다 귀중한 것이 정의였으므로 자기를 죽여 천하가 보존된다면 그것은 천하를 이롭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인민을 이롭게 하는 것, 그것이 내 생명보다 뒤하고, 또한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151

묵자의 하느님은 예수의 하느님의 전범이다. 묵자는 하느님의 뜻인 평등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을 의로운 정치라 하고, 이러한 정의 정치는 억눌리고 가난한 자들 즉 소국, 약자, 소수, 천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가난한 사람, 힘없는 늙은이, 어린이와 고아 등 소외된 민중을 해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묵자는 노예와 도적까지도 평등하게 사랑했다. 묵자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위해 날이 저물어 가는데도 오던 길을 다시 돌아서는 선한 목자였으며, 그의 사랑은 집을 나가 어디론가 떠도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결코 버리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이었다.

특히 묵자가 평생 동안 목숨을 걸고 반전 평화 운동을 한 것은 전쟁이야말로 패배한 소국 인민들을 노예로 삼는 제도였기 때문이며,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압제와 수탈을 유지 확대하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그는 반전운동을 민중 해방운동의 고리로 여겼던 것이다.

 

152

묵자의 하느님은 인간을 자기의 종으로 삼지 않는다. 하느님의 뜻이 민중의 뜻이었으므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려면 인간을 소외로부터 해방하여야 한다. 묵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민중의 이익은 하느님의 뜻이므로 목숨을 바쳐 투쟁하라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당시 이러한 묵자의 언행은 봉건제도에 반기를 드는 것이므로 목숨이 위태로운 혁명적인 것이었다.

 

154

묵자의 평등사상은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백성이므로 천하 만민을 평등하게 사랑하고 차별을반대한다는 하느님 사상을 기초로 한다. 이에 따라 묵자는 서양의 천부인권설보다 2천년을 앞서 인민주권설, 군주계약설, 천자선출론을 주장했다.

또한 묵자는 국가의 목적에 대해 소극적으로는 불의한 자가 제도를 부리거나 부귀를 누리지 못하도록 억제해야 하는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노동자 농민 장사치 등 누구나 유능하면 왕후장상으로 선출될 수 있는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56

묵자는 고대 사상가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노동을 하는 동물임을 발견했다. 이것은 혁명적인 발견이었으며 인간이 자주적 존재라는 선언이다. 이것은 노동을 할 수 없는 동물은 하느님이 직접 주재하는 것이므로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으나 하느님으로부터 노동의 특권을 부여 받은 인간은 자유의지가 주어졌으므로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묵자는 천명론 내지 운명론을 비난한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민중은 역사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운명은 하느님이 미리 결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은 백성 개개인을 모두 주권자로 창조했으므로 사람마다 각자의 의가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천자를 선출하여 만인의 의를 하느님의 뜻으로 통합해야 한다.

 

4장 철학사상

 존재론 / 시간의 철학 / 인식론 / 가치론

 

183

묵자는 영원한 하늘과 땅을 생각하고 나아가 상하 사방과 광막하고 무한한 세계인 천지를 우라고 한다면 해와 달과 별이 아침저녁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계속되는 시간의 세계는 주라고 보았던 것이다. 묵자의 시간론이 탁월한 것은 시간을 공간과 분리하지 않고 공간의 운동이라고 생각한 점이다.

 

189

묵자의 시간론

인간은 태어남, 늙음, 병고, 죽음 등 자신의 유한성에 좌절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연의 끝없는 반복을 발견하고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어떤 것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우리는 그 어떤 것을 본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시간론이라고 말하고 그 본질에 대한 물음을 형이상학 또는 존재론이라고 한다. 앞서 존재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묵자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를 시간과 공간으로 설명했으며, 시간을 공간의 이동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존재의 필요조건으로 규정한다. 또한 공간적 우주는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갈파했다. 이처럼 묵자는 시간을 자연 시간으로 보았으며 공공간으로 규정한 것이 특색이다. 그리고 이것은 존재의 변화와 변하지 않는 본질을 통합하고 시간과 공간을 통합한 것이다.

 

202

묵자는 생명을 하느님이 창조한 것이라고 했으나 한편으로는 현상학적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생명은 물질적인 형체와 정신적인 지각이 머문 곳이며 시간적인 우주와 공간적인 우주가 분리되지 않고 충만하려는 운동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생명을 공간과 시간, 즉 우주의 운동으로 파악한 것이다. 즉 묵자에게 죽음은 단지 운동의 정지다. 그러므로 죽음은 공간의 이동이 없으며 따라서 시간도 없다.

이처럼 묵자는 생명론에서 생명의 본질인 영혼이나 생명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19세기 현상학이나 생철학자들과 상통한다. 그들은 생명이란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근원적 현상이므로 생명의 본질은 형이상학적으로 궁구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생명 현상 또는 인간의 실존을 사색의 중심에 둔다.

특히 묵자가 생명의 창조성을 강조한 것이나 하느님의 사랑을 언급한 부분은 20세기 생철학의 대표자인 베르그송을 연상하게 한다.

묵자의 시간론은 영생을 설파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공간의 변화와 이동이 시간이라는 묵자의 직선운동의 시간론은 수구를 반대하고 개혁을 통한 안생성의 대동사회를 실현하는 데 맞닿아 있다. 그는 종교가가 아니라 혁명가였던 것이다.

 

204

형이상학은 존재와 그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인식론은 그 인간이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다. 인식론이 철학의 주된 과제로 제기된 것은 계몽주의 시대인 17세기부터다. 로크의 <인간오성론>(1960)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1781)은 그 대표적인 저술이다.

이미 2,500년 전에 묵자는 하느님과 귀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운명이 존재하지 않음을 인식론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묵자의 이러한 시도는 후세 서양에서 스콜라 철학자들에 의해 다시 제기됐다. 사실 서양의 중세 철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묵자는 소박하나마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식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구분하고, 사실판단은 민중의 이목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경험만이 사실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것으로 경험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12

묵자의 인식론

사실 묵자의 인식론은 존재 판단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가치판단을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묵자의 인식론이 실천적이라는 점에서 2천 년 후 마르크스의 인식론의 선구였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중국의 마오쩌둥(1893~1976)은 묵자의 인식론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묵자의 당면과제는 과연 가치의 준거는 무엇인가의 문제였다. 묵자는 하느님을 가차의 표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은 겸애와 교리라고 말했다. 그런데 교리 즉 민중의 상호 이익을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복잡하다. 공동선 즉 공동의 이익을 구하는 문제다. 그것을 찾는 방법에 대한 해답이 바로 삼표론이다. 이처럼 그의 인식론은 실천적이었던 것이다.

 

223

묵자의 가치론 삼표론

묵자는 하느님의 뜻만이 가치의 근원이며 표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그 천지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이에 그는 모든 존재판단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세 가지 표준 이른바 삼표를 제시한다. 첫째 표준은 본인데 하늘의 뜻을 실행한 바 있는 성왕의 역사적 경험을 표본으로 삼는 것이며, 둘째 표준은 원인데 판단 주체인 인민의 이목에 따르는 것이며 셋째 표준은 용인데 실제로 인민의 이용후생에 이로운 것을 따른다는 것이다. 본이란 본받을 표본이란 뜻으로 보편적인 선을 의미하는 것이며 원이란 그누언으로 삼아야 하는 공동 선을 의미하는 것이며, 용이란 백성의 이익을 위한 구체적인 실용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25

삼표론의 의의

첫째, 가치의 근원이 군사부가 아니라 백성의 뜻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봉건 지배 체제를 부정하는 혁명 선언이었다. 당시 봉건 윤리에서는 부모의 스승에 대한 효경, 남녀와 신분의 차별, 임금에 대한 충의를 나라와 사회를 지탱하는 삼강이라 하여 최고의 도덕 규범으로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처음으로 이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이다. 즉 하늘의 대리인은 천자이며, 천자의 법은 주례이고, 주례를 집행하는 자는 군사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사부의 말은 하늘의 말이며 진리이고 가치가 된다.  그래서 군사부는 일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묵자의 삼표론은 이러한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인 삼강을 반대하고 본받을 표준은 오직 인민의 뜻과 이익뿐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둘째, 백성의 뜻만이 하늘의 뜻이며 가치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이는 전체 인민의 뜻, 즉 민지에 총체성을 부여한 것이다. 총체성 또는 전체성이란 모든 부분 현상을 전체의 계기로서 고찰하는 관점으로서 이 때 전체는 주체와 객체, 사유와 존재의 통일을 전제로 한다. 총체성의 모태는 정과 반의 모순이 고차원의 세계 정신 또는 절대정신으로 통합 지양된다는 헤겔의 변증법적 관점이다. 여기서도 전체성은 형이상학적인 고정된 전체가 아니라 역동적인 변증법적 개념이다.

셋째, 가치가 충돌할 때 묵자는 그 판단의 주체가 신이 아니라 백성의 선택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인본주의를 넘어 민본주의 내지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넷째, 도 또는 인 등 관념적인 가치를 부정하고 인민의 실질적인 이익을 최고 가치로 규정한 것이다. 이는 유가의 인을 부정하는 혁명 선언이다. 묵자는 하늘의 뜻을 백성의 뜻인 겸애와 교리라고 해석하고 따라서 의는 곧 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의는 이이므로 가치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고 경험에 기초한 사실과 실용의 기초 위에서 판단하고 선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유신론자이면서도 당시 지배적인 인식 틀인 유심론에 관념론을 거부하고 인간 개개인의 경험을 중시하는 경험론으로 흐른다.

다섯째, 인민이 가치의 주체임을 선언한 것이다.

 

5장 논리학

 명실론 / 묵자의 논리학 / 묵자의 논리학과 삼단논법 / 묵자의 명실론과 논리실증주의

 

234

묵자의 명실론

묵자의 명실론은 공자의 정명론에 대한 비판적 대안이다. 정명론은 성왕이 만든 문자와 말씀 등 명을 바르게 지키자는 뜻이다. 공자가 활동했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수백 년의 전란으로 이러한 신분 계급 질서가 문란해졌다. 이에 공자는 이를 회복하고자 주례 부흥을 주장했고 이를 위해 정명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묵자의 명실론은 명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실에 합당한 명만이 옳은 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43

묵자의 논리학

묵자의 논리학의 큰 줄기는 대취 소취론이다. 대취는 이익은 큰 것을 취한다는 원칙이며, 소취는 해로운 것은 작은 것을 취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묵자에 의하면 이=, =악이므로, 해로움을 취한 것은 악을 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득이 불의=악을 취해야 하는 경우는 가장 작은 불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작은 불의도 자기에게 이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묵자는 해 중에서 작은 것을 취하는 것은 의를 구하고자 함이지 이를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6장 정치사상

 민주적 정치론

 

258

천부평등권

묵자의 장치사상의 특색을 말한다면 평등론과 대동사회론을 꼽을 수 있다. 묵자의 평등론의 근원은 하늘의 뜻에 두는 천부인권론을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의 평등론은 신분, 빈부로 인해 차별을 받지 않는 기회의 평등이다. 즉 그는 인권의 평등, 이른바 자유의 평등을 주장한 것이지 소득의 평등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265

인민주권론

묵자는 백성이 주권자라고 선언하고, 천하의 의를 통일하기 위해 천자를 선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계약설

기원전 5세기의 묵자에게서 18세기 루소가 말한 사회계약설의 소박한 원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공자의 왕권 천명론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만큼 진보적인 것이다.

 

266

언론과 신분이동

묵자는 하느님의 뜻에 대동할 것을 주장했으나 한편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한 열린 민주주의자였다. 그는 동과 이를 상보적인 것으로 보았고, 큰 합동은 작은 다름들이 한 무리로 모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언론을 열 것과 신분의 이동을 보장할 것을 주장했다.

 

268

중앙집권관료제

당시 시대적 요구인 신분의 사회적 이동과 국가의 중앙집권화 및 관료제화를 유가들은 반대했으나 묵가들은 환영했다. 천하 도의의 통일을 말하는 상동은 중앙집권을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이것은 법가들도 주장한 것으로 결국 진나라의 천하통일에 의해 실현됐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묵자를 국가주의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고대나 중세의 신분제 사회에서는 왕권의 강화는 신권의 약화를 의미하며 이는 훈구 세력과 토호 세력의 전횡을 막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므로 보수파는 신권의 강화를 주장하였고, 개혁파는 왕권의 강화를 바랬던 것이다.

 

7장 공동체론

 대동사회 / 소강사회 / 서양의 공동체론 / 공동체의 조건과 인류의 회심

 

277

묵자의 안생생 사회

묵자는 평등공동체를 지향한 공화주의자였다. 그의 이상사회는 대동사회였다. 그의 천하무인은 천하 만인은 모두 남이 아니라 한 형제요 동포라는 뜻으로 공동체 사회를 표현한 말이다. 묵자의 상동은 대동을 숭상한다는 뜻이다. 묵자의 안생생은 안락한 살림살이라는 뜻으로 대동사회를 경제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307

묵자의 공동체운동은 생명존중인 애와 공동체 정신인 겸을 하나로 묶어놓은 것이 특징이다. 묵자는 자신의 사상을 천하에 남이란 없다는 한 마디로 요약한다. 이 말은 온 세계와 인류가 남이 아니고 한 가족이라는 뜻이다. 특히 그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조직하여 몸소 노동을 했으며, 생명 죽임의 전쟁을 생명 살림 공동체의 가장 큰 적으로 규정하고 평생 동안 전쟁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이처럼 인유가 지향했던 생명 공동체는 개별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공동체며 전쟁과 억압이 없는 평화 공동체, 서로의 생명에 이로운 살림 공동체, 자유와 평등이 조화되는 자주 관리 공동체며 노예와 소외가 없는 해방 공동체

 

8장 경제사상

 묵자는 경제학의 시조 / 묵자는 진보주의의 시조

 

319

묵자는 중국의 전통 철학과는 달리 경제를 중시한 실사구시의 사상가였다. 즉 통치와 도덕률보다도 정치 사회 문화의 구조적인 제도를 중시하고 허무보다는 현실을 명분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중시한 특이한 사상가였다.

 

321

묵자의 가격론

묵자는 기원전 5세기에 경제 이론을 말한 인류사 최초의 경제학자였다. 묵자의 가격론은 최근의 이론과도 배치되지 않는 정교한 것이어서 2,500년 전의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정밀한 가격론으로 미루어 볼 때 가격론 외에도 전해지지 않았을 뿐 많은 경제학적 성과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찌 되었든 가격론 하나만 가지고도 그가 얼마나 위대한 경제학자였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323

묵자의 절용론

묵자가 말하는 절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절용과는 그 함의가 다르다. 묵자는 옛사람이 아는 절약은 오늘날 내가 깨달은 절용은 아니다라고 우리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 근본적으로 묵자는 백성이 굶어 죽고 얼어 죽는 것은 인(지배계급)의 낭비문화 때문으로 보았다. 그가 말한 절용은 절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절도 있는 소비라는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인민의 이용후생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은 생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백성의 노동과 자원을 지배계급의 우월성과 자기과시를 위해 낭비하는 것이다.

둘째, 재화는 그 본래의 목적대로 소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이나 옷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초과하여 귀족의 치장으로 사용하거나, 칼과 창은 맹수를 물리치기 위함인데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것은 목적을 일탈한 소비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초과소비라고 명명한다.

셋째, 후한 장례로 노비와 재물을 땅에 묻거나 오랜 상례로 노동 시간을 빼앗거나, 호화로운 음악으로 재물을 낭비하고 노동을 저해하거나, 전쟁으로 많은 물자를 파괴하는 등의 초과 소비 문화를 절용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자는 실용에 눈이 가려 문화를 모른다고 비판했으며, 장자는 인간의 본성을 억제하고 문화를 비난하는 묵자의 도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했다.

이에 저자는 순자와 장자가 묵자를 곡해했다고 지적한다. 묵자의 절용론은 결코 절약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재화의 용도에 맞도록 절도 있게 소비하는 절용을 주장할 뿐 절약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풍족한 재화의 공급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묵자의 절용론은 금욕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하고 평화로운 대동사회, 안락하고 풍료로운 안생생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묵자의 소비론은 인민의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중시하면서도 초과노동으로 수고롭지 않고 여유로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332

묵자는 진보주의 시조

묵자는 신분과 재산의 상속은 자기 노력에 의하지 않는 부귀로서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재산의 사적 소유를 반대하고 공동 소유를 주장했다. 그는 사유제도가 있는 한 도둑을 없앨 수 없다는 민중적이고 혁명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묵자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재산 상속과 사유 재산을 반대했다는 것만으로 그는 위대한 인간해방의 시조라 할 것이다.

 

334

완전고용과 균분

묵자는 완전 고용, 필요공급, 절용, 초과 소비, 균분을 주장한 인류 최초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상가였다.

 

9장 사회문화사상

 묵자의 노동 해방 사상 / 초과 소비론 / 호사스런 음악과 장례 반대

 

336

묵자의 노동 해방 사상

묵자는 그 어느 사상가보다 소외된 민중을 생각하는 민중적 사상가였다. 그는 배고픈 자가 밥을 얻고, 헐벗은 자가 옷을 얻고, 피곤한 자가 쉴 곳을 얻고, 전쟁과 어지러운 세상의 평화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며 몸소 투쟁했다.

그가 위대한 것은 노동의 의미와 중요성을 발견한 인류 최초의 사상가였다는 점이다. 그에게 인간의 인간 된 징표는 노동이었다. 다른 모든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만이 노동을 하고 노동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은 노동은 인간의 특권이며 동시에 존재 조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는 노력 없는 부귀를 반대했다. 묵자를 좌파의 시조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37

노예변증법

묵가들은 대개 종묘지기나 노동을 하는 천민 출신들이었다. 그러므로 묵가들은 생산 노동을 천시하고 싫어하는 유가들을 거지와 같은 존재라고 혹독하게 비난했다. 또한 묵자는 노동을 하지 않는 노예 소유자들은 스스로는 살아갈 수 없고 노예에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밝혀냈다.

 

341

노예 해방, 노동 해방

묵자는 노동을 중시했지만 근면을 강조한 적은 없다. 묵자는 재화의 부족을 기술 부족과 노동자의 게으름으로 돌리지 않았다. 헐벗고 굶주리는 이유는 모두 사회의 잘못된 재화와 문화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묵자는 게으름을 찬양한 적은 없다. 그는 전쟁과 낭비 등 재화의 목적을 초과하는 초과소비로 인하여 노동이 착취되는 만큼의 초과노동을 하면서도 헐벗고 굶주린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묵자의 소망은 강제되지 않은 한가한 노동, 자기 자신의 창조를 위한 노동을 하며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압제와 착취가 없는 이상 사회를 이루는 것이었다.

 

10장 반전 평화론

 전쟁은 무엇인가? / 묵자의 반전 평화운동

 

361

묵자의 반전운동

묵자는 인류사에 최초로 전쟁에 대해 고찰하고 반전운동을 전개한 사상가였다. 그는 전쟁을 도덕적 정치적으로 고찰할 뿐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고찰한다. 그는 전쟁은 노예주들이 노예를 얻기 위한 살인 행위하고 규정했다.

 

묵자는 군주와 국가, 도리와 진리 등 그 어떤 보편적 이념보다도 인간의 생명과 민중의 이익을 더 중시한 사상가였다. 묵자는 스스로 자기 사상을 천하에 남이란 없다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구눈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칠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이 말은 인류 역사상 묵자 이외에는 아무도 주장하지 못한 성스러운 말이었다.

 

363

묵자에 의하면 전쟁은 노예를 만들어내는 정치제도라는 것이다. 일찍이 묵자와 거의 동시대인 헤라클레이토스가 지적한 대로 전쟁은 노예를 사냥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자유인들은 노동을 천시했으므로 헤겔이 지적한 대로 노예변증법에 의해 노예의 노동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불구화된 계급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살아가려면 노에 노동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마치 육식 맹수들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지 못하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지배자들은 노예를 지배했지만 노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불구화되어 노예 없이는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려 결국 노에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이것을 노예 변증법이라고 말한다.

 

368

묵자는 전쟁이 일어나려 하면 제자들을 공격받는 나라로 미리 보내 방어에 임하게 하고 자신은 침략하려는 나라로 가서 왕과 만나 담판했다. ‘만약 공격한다 해도 300명의 제자들이 나의 우수한 방어 무기를 가지고 지키고 있으므로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설득했다. 그래서 묵자는 송나라를 공격하려던 초나라를 설득하여 전쟁을 사전에 막았으며 초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막았고, 노나라를 공격하려던 제나라를 저지시킨 일도 있었다.

 

371

묵자는 인류 최초의 위대한 반전 평화운동가였다. 그러나 묵가들은 탄압을 받아 자취를 감추었고 그의 책은 2천 년 동안 금서가 되었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은 전쟁 반대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묵자는 송나라를 위해 초나라의 침략을 막아주었는데도 송나라 사람들은 그를 고마워하기는커녕 냉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전쟁 반대 운동을 중지하지 않았다. 오늘날도 전쟁과 전쟁 영웅은 성찬을 받고 평화운동가는 이단자로 냉대를 받는다. 그러나 반전 평화운동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2년 전 급성맹장염으로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되었었다. 남편에게 병원에서 시간 때우기에 좋은 책 좀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공자의 일생>과 <논>를 가져다 주었다. 덕분에 나는 맹장 수술을 받은 후 <공자의 일생>을 읽게 되었다. <공자의 일생>은 재미있었다. 공자가 재상이 되기 위해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는 모습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를 보았고, 백인백색 제 각기 색깔이 다른 제자들과 <논어>라는 화단을 가꾸어 나가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인류의 4대 성인으로 예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공자를 꼽는다. 예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까지는 수긍할 만 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공자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공자가 성인일까? 일단 내 관점에서는 ‘No’ 이다. 이유를 대기에 내 논리가 턱없이 부족했지만 <공자의 일생> <논어> 두 권의 책으로는 공자를 성인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이번에 <묵자>를 읽으면서 내가 왜 공자를 성인으로 인정하지 못했는지 <묵자>의 논리를 들어 파악할 수 있었다. 묵자는 공자를 비판한다. 공자를 뒤집어 <묵자>를 완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자는 관료 출신으로 귀족주의적이다. 벼슬에서 쫓겨난 후에는 13년 동안 제후들로부터 벼슬을 구하려 천하를 주유했지만 묵자는 제후들이 땅을 떼어주겠다는 제의도 거절하고 민중의 편에 서서 죽음을 무릅쓰고 반전운동을 한 투쟁가였다. 공자의 유교는 혈연주의다. 우주 자체를 하나의 혈연으로 본다. 유교는 인간을 하느님의 분신으로 본다. 그래서 하느님에게도 효()를 해야 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묵자의 천(·하느님) 개념은 다르다. 묵자는 인간을 하느님의 피조물로 본다. 하늘()의 뜻을 실현해야 할 신민으로 보는 것이다. 공자의 이기주의나 지배이데올로기로 변하기 쉬운 혈연주의와 달리 묵자는 겸애로 평화를 이루려 한다.

 

공자를 비판하는 것을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던 <묵자>, 지배계급의 통치논리와는 대치되기에 2천 년 동안 금서가 되었지만, ‘천하무인’(천하에 남이 없다)을 내세운 묵자는 천하만민이 모두 남이 아니라 한 형제이자, 동포라는 평등공동체, 안생생(安生生)사회를 이루기 위한 경전이다. 나는 감히 인류의 4대 성인으로 공자를 대신하여, 철학자, 과학자, 경제학자, 반전운동가이자 혁명가인 묵자를 새겨 넣고 싶다.

 

목차 및 구성

 

다시 책을 펴내며

1992년 완역판 서문

일러두기

【 해설 】

1장 묵자는 누구인가?

출신성분 / 묵자의 사상적 위상 / 묵자는 혁명가 / 묵가는 협객집단

2장 보수와 진보의 쌍벽

 천하가 공묵에 기울다 / 묵가들의 유가 비판 / 공자의 인애는 신분차별적이다

3장 종교사상

 동양의 하느님 / 서양의 신 / 동양의 유물론 / 묵자의 하느님과 예수

4장 철학사상

 존재론 / 시간의 철학 / 인식론 / 가치론

5장 논리학

 명실론 / 묵자의 논리학 / 묵자의 논리학과 삼단논법 / 묵자의 명실론과 논리실증주의

6장 정치사상

 민주적 정치론

7장 공동체론

 대동사회 / 소강사회 / 서양의 공동체론 / 공동체의 조건과 인류의 회심

8장 경제사상

 묵자는 경제학의 시조 / 묵자는 진보주의의 시조

9장 사회문화사상

 묵자의 노동 해방 사상 / 초과 소비론 / 호사스런 음악과 장례 반대

10장 반전 평화론

 전쟁은 무엇인가? / 묵자의 반전 평화운동

【 원전읽기 】

1편 친사親士2편 수신修身3편 소염所染

4편 법의法儀5편 칠환七患6편 사과辭過

7편 삼변三辯8편 상현尙賢 상 제9편 상현尙賢

10편 상현尙賢 하 제11편 상동尙同 상 제12편 상동尙同

13편 상동尙同 하 제14편 겸애兼愛 상 제15편 겸애兼愛

16편 겸애兼愛 하 제17편 비공非攻 상 제18편 비공非攻

19편 비공非攻 하 제20편 절용節用 상 제21편 절용節用

25편 절장節葬 하 제26편 천지天志 상 제27편 천지天志

28편 천지天志 하 제31편 명귀明鬼 하 제32편 비악非樂

35편 비명非命 상 제36편 비명非命 중 제37편 비명非命

39편 비유非儒 하 제40?42편 경경설經說 상 제41?43편 경경설經說

44편 대취大取45편 소취小取46편 경주耕柱

47편 귀의貴義48편 공맹公孟49편 노문魯問

50편 공수公輸

주요 용어 및 인명 찾아보기

원문 출전 찾아보기

 

묵점 기세춘 선생과 함께 하는 <묵자>. 2천년 동안 금서였던 <묵자>. 춘추전국시대 공자와 더불어 공묵이라 일컬어질 만큼 제자백가의 거두였던 묵자. 하지만 그를 따르던 수많은 묵가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17세기 초가 되어서야 도가의 경전 속에서 발견된 책 <묵자>. 총 해설부와 번역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설부에서는 묵자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설명하고 있다. 번역부에서는 현존하는 <묵자> 53편 중비성문’, ‘영적사등 방위 전술을 기록한 11편의 병서를 제외하고 나머지 42편을 모두 번역되어 원문과 함께 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감동적인 장절

 

277

묵자의 안생생 사회

묵자는 평등공동체를 지향한 공화주의자였다. 그의 이상사회는 대동사회였다. 그의 천하무인은 천하 만인은 모두 남이 아니라 한 형제요 동포라는 뜻으로 공동체 사회를 표현한 말이다. 묵자의 상동은 대동을 숭상한다는 뜻이다. 묵자의 안생생은 안락한 살림살이라는 뜻으로 대동사회를 경제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307

묵자의 공동체운동은 생명존중인 애와 공동체 정신인 겸을 하나로 묶어놓은 것이 특징이다. 묵자는 자신의 사상을 천하에 남이란 없다는 한 마디로 요약한다. 이 말은 온 세계와 인류가 남이 아니고 한 가족이라는 뜻이다. 특히 그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조직하여 몸소 노동을 했으며, 생명 죽임의 전쟁을 생명 살림 공동체의 가장 큰 적으로 규정하고 평생 동안 전쟁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이처럼 인유가 지향했던 생명 공동체는 개별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공동체며 전쟁과 억압이 없는 평화 공동체, 서로의 생명에 이로운 살림 공동체, 자유와 평등이 조화되는 자주 관리 공동체며 노예와 소외가 없는 해방 공동체

 

323

묵자의 절용론

묵자가 말하는 절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절용과는 그 함의가 다르다. 묵자는 옛사람이 아는 절약은 오늘날 내가 깨달은 절용은 아니다라고 우리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 근본적으로 묵자는 백성이 굶어 죽고 얼어 죽는 것은 인(지배계급)의 낭비문화 때문으로 보았다. 그가 말한 절용은 절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절도 있는 소비라는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인민의 이용후생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은 생산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백성의 노동과 자원을 지배계급의 우월성과 자기과시를 위해 낭비하는 것이다.

둘째, 재화는 그 본래의 목적대로 소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이나 옷은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초과하여 귀족의 치장으로 사용하거나, 칼과 창은 맹수를 물리치기 위함인데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것은 목적을 일탈한 소비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초과소비라고 명명한다.

셋째, 후한 장례로 노비와 재물을 땅에 묻거나 오랜 상례로 노동 시간을 빼앗거나, 호화로운 음악으로 재물을 낭비하고 노동을 저해하거나, 전쟁으로 많은 물자를 파괴하는 등의 초과 소비 문화를 절용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371

묵자는 인류 최초의 위대한 반전 평화운동가였다. 그러나 묵가들은 탄압을 받아 자취를 감추었고 그의 책은 2천 년 동안 금서가 되었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은 전쟁 반대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묵자는 송나라를 위해 초나라의 침략을 막아주었는데도 송나라 사람들은 그를 고마워하기는커녕 냉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전쟁 반대 운동을 중지하지 않았다. 오늘날도 전쟁과 전쟁 영웅은 성찬을 받고 평화운동가는 이단자로 냉대를 받는다. 그러나 반전 평화운동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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