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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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다는 것
10기 김정은
묵자는 겸애를 사회관계 속에서 이웃을 내 몸처럼, 남의 가족을 내 가족처럼,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생각하고 이롭게 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타적 사랑을 통해 전국시대 전쟁을 막았던 묵자의 사상이 과연 현대에도 통할 수 있을까?
“삼동아, 놀자.”
묵자를 읽으면서 뜬금없이 떠오른 삼동이, 삼동이는 내 첫 사랑의 이름이다. 빡빡머리에 흰색 러닝셔츠 하나만 걸쳤지만 누구보다 똘똘한 눈빛을 가진 아이 삼동이. 다섯 살 나는 동갑내기 삼동이에게 시집 보내 달라고 졸랐단다. 엄마는 점심 먹을 때만 되면 사라진 나를 찾아 나섰고, 난 어김없이 삼동이네 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더랬다.
우리집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삼동이네 집에는 형이 있었다. 삼동이와는 10살 정도 터울이 지는 큰 형이었는데, 그 형은 항상 누워 있었다. 아마 팔다리를 못 쓰는 지체장애인이었던 것 같다. 점심 먹을 때가 되면 삼동이는 밥상을 차렸다. 미리 해 놓은 밥을 뜨고, 찬장에서 반찬을 꺼내고, 수저를 놓는 한마디로 ‘리얼 소꿉놀이’ 였다. 밥상이 다 차려지면 삼동이와 나는 밥을 먹기 전에 거사를 치러야 했다. 밥에 물을 말아 훌훌 잘 넘어가게 되면 그 밥을 떠서 큰 형에게 먹이는 것이다. 다섯 살 삼동이가 큰 형을 낑낑대며 일으켜 세우면, 나는 그 형의 입에 밥을 넣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삼동이의 부모님은 삼동이에게 큰 형을 맡기고 아침 일찍 일 하러 나가셔서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셨다. 키는 나보다 작았지만 나보다 훨씬 똘똘했던 다섯 살 삼동이는 밥상 차리는 것도 밥상 치우는 것도 척척 잘 해냈다. 설거지며, 청소며, 팔 다리를 못 쓰는 큰 형 돌보는 일까지 척척 해내는 삼동이를 보면서 다섯 살 어린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심이 샘솟았던 것 같다.
삼동이와 나의 아지트는 삼동이네 집 앞 마당이었다. 거기서 놀다가 큰 형이 부르기라도 하면 우리는 얼른 들어가서 형을 보살폈다. 그것은 그 당시 나의 가장 재미있고 또한 의미있는 놀이였다. 다섯 살 어린 나는, 집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것보다 삼동이네에서 삼동이와 같이 밥상을 차리고, 삼동이 형에게 밥을 먹이며, 같이 먹는 밥이 훨씬 맛있었다. 내가 함께 하는 것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일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다섯 살 어린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삼동이도 내가 함께 했기에 혼자 하기 힘든 일을 잘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묵자를 읽으면서 삼동이가 떠오른 것은 내 이타적인 사랑의 첫 경험이기 때문이다. 묵자는 스스로 자기 사상을 천하무인 즉, ‘천하에 남이란 없다’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는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칠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했던 삼동이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나도 여전히 실종자들은 차디찬 바다 속에 있다. 100일 동안의 긴 세월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와 정부에 대치하고 있다.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를 보는 것 같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곡기를 끊고 한 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행진하기 시작한지 벌써 3주가 넘었다. 현대의 ‘안티고네’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보편적인 사랑, ‘겸애’는 묵자가 주장한 성스러운 말이다. 춘추전국시대를 주름잡았던 묵가의 사상은 천하가 통일되면서 중국 사회에서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지고 만다. 통치 세력의 통치 논리와 상관없는 사상은 없어지기 마련일 것이다. 반대로 2천년 긴 세월 동안 금서가 되어 잠자고 있던 <묵자>를 찾아 읽는 것은 전국시대와 다를 바 없는 현대 사회를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 다섯 살 삼동이와 내가 함께 했던 것처럼, 현대판 ‘안티고네’들과 함께 한다는 것, 그저 함께 하는 것으로 나는 묵자의 ‘겸애’를 내 삶 속에서 실현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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