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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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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4일 09시 35분 등록

집안 행사로 번잡한 주말, 늦잠을 잔 것을 자책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조급하게 두꺼운 책을 넘기고, 해야할 일들을 플래너에 적어 넣고, 집으로 오고 계신 집안 어른들의 현재 위치를 체크하며 왜 이렇게 바쁘게, 그러면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며 지내고 있나 생각하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하하하하" 갑자기 방 안에서 숨 넘어갈 듯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스마트폰을 부여잡고 배꼽을 잡으며 웃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다. 휴일이면 종종 볼 수 있는 특별할 것도 없는 장면이지만 오늘 따라 나는 심통이 났다. 결국 남편에게 퉁명스럽게 말한다. "뭐가 그렇게 재밌길래 맨날 그렇게 혼자서 웃는거야? 같이 좀 웃자." 남편이 이내 달려와 유머 게시판을 보고 있자니 사람들의 재치 넘치는 댓글이 너무 재밌다고 나에게 그 내용을 보여준다. "그게 뭐가 재밌다고. 시덥잖은 내용이구만."이라고 한 마디 던지고 혼자 속으로 불평을 한바탕 늘어 놓았다. '아니, 나는 이렇게 마음이 바쁜데 왜 이렇게 무사태평이지? 이제 나는 회사도 잠시 쉬는데 남들 같으면 더욱 초조해서 이것저것 투자할 곳도 알아보고 자신 또한 자기 계발을 한다고 난리일텐데 저 사람은 우리의 미래는 걱정되지도 않는건가? 어쩜 저렇게 그저 즐거울까?' 라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연애시절 부터 남편은 일상에 집중하고, 또 작은 일에 재미 있어하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늘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이 가득하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나도 저래야 하는데..라며 불안해 하고, 분 단위로 계획을 짜며 내일의 하루를 구상하는데 여념 없는 나에게, 남편의 모습은 신기하기만 했다. 겨울을 맞아 회사 정원에 세워진 대형 눈사람을 보며 '아니 저런 건 왜 세우는거야? 참 할 일이 없구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메마르고 팍팍한 삶을 살던 나와 달리 남편은 '퇴근 길  세워진 눈사람 봤어? 목도리도 했더라. 정말 귀여워.'  '오늘 눈사람의 표정이 바뀌었어. 신기하다. 집에 가는 길이 더욱 재미난 걸' 이라며 사진까지 찍어 매일 매일 달라지는 눈사람 상태에 대한 메시지를 보내곤 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또 매력적이기도 했다. 나 또한 그의 영향을 받아 퇴근 길 정원 이곳저곳을 살피며 조형물들의 변화를 재밌어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전등 덕분에 아름다워진 회사 건물에 감동 받기도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를 마감하고 집에 오면 아무 말을 하기가 싫어 동생에게 "잘자"란 인사 하나 남겨버리고 그저 잠들어 버리기 일 수 였는데, 집에 바래다 주며 하루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거리는 그를 보며 나 또한 하루를 반추하며 즐겁고 재미났던 일들을 공유하는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그 당시 모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던 사랑의 힘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잠시나마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이 안정되어 가면서 부터 나는 작은 기쁨을 만끽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주변에 내가 갈망하던 꿈을 이룬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나를 책망했다. 다른 사람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는 것은 절대 못하겠으니 그저 좋은 날이 오길 기다려야지..라는 마음으로 지내왔던 지난 수년간이 덧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좋은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징조가 나타나자 그 누구보다도 큰 절망을 하게 된 것은 아마 그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나는 책을 보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근심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결국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기 전 주말,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기는 커녕, 작은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남편에게 외려 비난의 화살을 쏘고 만 것이다.


잠시 떠나는 내게 많은 이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일상의 작은 승리에 기뻐하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습관을 기르라는 충고가 크게 와 닿았다. 내가 그간 작은 승리들을 무시하는 바람에 지나치게 지쳐버린 것 같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분명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실천을 하지 못했다. 감사할 일들이 무척 많았지만, 그저 더 잘하지 못했음을 아쉬워 하는 시간이 많았다.  연구원 생활에서도 그러했다. 매주 월요일 저녁,  '일주일간 수고했어' 라며 축배를 들기보다는 "아. 또 나는 이정도 밖에 못했네."라고 한숨을 쉬기 바빴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며, 나는 지하철역에서 아가씨!라고 불러준 할머니 덕분에 활짝 웃었고, 지하철 출구를 나가자 마자 바로 도착한 버스에 기뻐하기도 하고, 8년만에 보는 동기를 만나 낯선 사람들 속에 그래도 안면이 있는 누군가가 있음에 감사하기도 했다. 교재를 사러간 제본실에서 조금 돈이 부족했는데 그저 이름만 적고 가라며 쿨하게 외상을 해주신 일에도 자꾸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간만에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작지만 즐거운 사건들을 늘어놓고 있자니 행복감이 더욱 커졌다. 분명 두려움이 가득한 채로 시작한 하루였는데,  나의 이야기를 듣던 남편은 오히려 재미난 하루를 보낸 것 같다며 부러워했다.  주역에서도 이야기 한다. 내 한 몸, 내 가정을 건사하는 작은 행복을 이루는 것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간 진리들을 많이 흡수했지만, 실천으로 옮기려는 노력은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다짐만 하고 행동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참에 작은 일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오늘 바로 감사 일기를 시작했다. 앞으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일상의 행복들에 집중할 수 있기를! 이렇게 부족한 글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마무리한 것에 스스로 칭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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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4 10:12:10 *.196.54.42

시작이 좋아요... 마무리 기다릴게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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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5 00:43:46 *.124.78.132

늘 응원 감사합니다 ^^* 미리미리 올리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말이죠 ㅠㅠ

구달님의 유쾌한 기운을 한껏 받아 마무리했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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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4 12:47:45 *.94.41.89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고 값어치 있는 시간으로 만들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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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5 00:46:11 *.124.78.132

감사합니다 ^^!! 만류하신 것처럼 사실 기회비용이 너무 큰 길이긴 한데, 그 당시에는 왜 이렇게 괴롭던지요.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생각하고 남다른 시간을 보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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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4 16:26:30 *.113.77.122

다 때가 되면 이루어지는 것인데 많이 아둥바둥했던것 같아. 조금은 여유를 가지면서 해도 크게 달라지는것 없더라고 ^^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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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5 00:50:44 *.124.78.132

네 그런 것 같아요 ^^ 돌이켜보니 괜스레 혼자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냥 슬퍼하고 있었더라고요.

아마 그것도 다 이렇게 해보고 나니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상황이 이렇게 될려고 흘러온 것 같기도 하고..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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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5 23:19:53 *.218.175.50

달려봐야 쉬고 싶은 생각도 들고, 이 방법이 아닌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법이지.

그 동안의 녕이의 역사가 앞으로 주춧돌이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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