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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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한때 유행했던 이 질문은 많은 사람들을 잠시나마 철학자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질문을 받은 사람 또한 뭔가 그럴싸하게 이야기해야 할 거 같아 거창한 답을 생각하거나 기대하게 되는데, 나 또한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답을 알게 되는 순간 질문자는 야유의 돌팔매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무엇이 있을 것 같은가? 한번 생각해 보시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과’가 존재한다. 싱겁다고? 역시 실망했다고? 그러면 ‘과’를 한 번 빼보자. 사람사람....역시 이상하고 어색하고 기본적으로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나도 예전에는 어이없다고 웃고 넘겼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보다 더 정확한 답이 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 실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과’의 존재는 앞의 사람과 뒤의 사람이 다름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는 ‘과’가 존재하는 만큼 적당한 거리도 존재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는데, 이 인연의 깊이에 따라 거리도 다르게 존재한다. 친구, 연인, 선후배, 직장동료, 모임회원 그리고 우리가 가족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부나 부모자식간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내가 너일 수 없고, 너가 나일 수 없듯이’ 반드시 인정해야 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거리가 존재한다. 이것은 너무 멀면 서운하다 할 것이고 너무 가까우면 갑갑함이 느껴진다 할 것이다. 그래서 ‘적당’ 이라는 단어가 사람 사이에서 이렇게 어려운 단어인지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그 ‘적당한 거리’의 기준이 서로 다를 때 많은 불협화음이 발생하게 되는데, 가까운 사이일수록 선을 넘기가 쉽다.
아이의 할머니와 아이를 보면 그것이 아주 잘 보인다. 할머니는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엄마처럼 키워오신 분이다. 다행히 그 동안은 별 마찰 없이 잘 지냈지만, 17살이 된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특히나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아이에게 예전엔 듣기 싫어도 그려려니로 넘어가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말대답과 반항이라는 반기를 앞세우기 시작하였다. 반항…. 이 표현도 사실은 어른 입장에서 볼 때 반항이지,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 생각을 표출하는 수단일 뿐이다. 할머니의 비합리적인 말들과 아직도 어린 아이로 취급하는 언사를 참아내지를 못하고 이의를 제기하면 할머니는 몇 시간씩 삐지시곤 한다.
아이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을 보면 그것이 때때로 아이에게 폭력이 됨을 알 수 있다. ‘먹어라’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할머니는 아이의 배고픈 상태와 식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음식을 권하시는 분이다. 같이 식사를 할 때도 ‘많이 먹어라, 더 먹어라’라는 말이 끊이시질 않고,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과일이나 생선 같은 것도 무조건 ‘먹어라’라는 이야기로 접시부터 들이미신다. ‘정이 많으신 분이네!’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먹고 싶지 않을 때 조차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권유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괴로움을 모를 것이다. 이런 모습이 어쩌다 보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인심 좋다는 소리를 듣게 하지만, 늘 그런 권유에 시달리는 아이는 그것을 폭력으로 여긴다.
충분히 의사 표현을 하지만, 습관보다 무서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어디 이것뿐일까? 아이가 혼자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일에서조차 할머니는 간섭을 하고 싶어 한다. 아이가 크면서 생긴 공간에서 할머니는 아직 발을 빼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번번이 부딪칠 수 밖에. 그 부딪침으로 서로는 상처와 서운함을 안게 된다. 덕분에 아이와 나는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더 끈끈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주변에서도 많이 목격이 된다. 부모와 자식이 그리고 부부지간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너무 많은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 관계가 갑갑함으로 대치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노자의 <도덕경>에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작은 생선은 속을 발라내지 않고 통째로 굽게 되는데 쓸데없이 뒤적거리지 말고 한쪽이 잘 익을 때까지 지켜보았다가 때가 되었을 때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다. 큰 나라를 다스릴 때 중앙정부가 지방의 일을 사사로이 간섭하지 말고 가만두는 정치를 해야 함을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만 국한 되겠는가? 한 가정을 운영함에 있어서도 이 방식을 취해야 함이 옳다고 생각된다. 부부간에도, 부모자식간에도 이런 무위가 자리를 잡아야 서로 독립된 인간으로서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말하는 무위는 무관심이 아니라 깊은 관심과 보이지 않는 손길로 작은 생선이 잘 구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 자신만의 생선 굽는 법을 터득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할 수 없으므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구어라, 저렇게 구어라’ 간섭이 시작되면, 그 사람은 평생 자기만의 생선 맛을 찾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구어 주는 생선 맛에 길들여질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정에서의 무위를 다른 말로 ‘거리 예찬’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들만의 조리법을 찾아 갈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의 취향을 알 수 있도록, 무관심이 아니라 믿음과 인내심으로 기다리면서 생선을 굽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그들이 구운 생선으로 맛있게 식사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의 인생도 맛있을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 나의 ‘거리 예찬’이다.
그러면 엄마들의 하소연 ‘한 평생을 너희들에게 줄 생선을 굽느라 불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라고 한탄하는 소리도 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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