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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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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4일 11시 56분 등록

■칼럼13■

도,를 아십니까?



1×××년 12월 31일.


성냥팔이 소녀


 새해가 시작되고 한 해가 저무는 밤. 밤. 어둠.

 불빛이 새어 나오는 어느 집 처마 아래, 작은 불꽃들이 연이어 이어지다 곧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누군가 관심을 가졌다면 작은 불꽃이 왜 자꾸 반짝이는지를 알았을 것인데 전혀, 사라질 관심도 없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굶주린 한 소녀가 매서운 추위 속에서 걷다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의 따뜻한 난로와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예쁘게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쳐다본다. 자신의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성냥 한 개비를 긋는다. 어차피 더 이상 팔리지 않을 성냥, 집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소녀는 성냥갑 속에서 성냥 한 개비를 꺼내 긋는다. 작은 불꽃이 켜지는 순간마다 따스한 난로와 음식을 생각한다. 마지막 한 개비를 그을 때, 사랑하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한다. 그리고 영원히 할머니 곁에 머물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1×××년 1월 1일.


어느 신문에서


 오늘 오전 9시경 신원 미상의 한 소녀가 ××가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신고자는 개를 끌고 지나던 행인으로 갑자기 개가 달려 나가 눈을 헤쳐 시체를 찾아내었다고 밝혔다. 발견 당시 소녀는 가벼운 외투차림으로 눈덩이에 묻혀 있었다. 주위에는 성냥갑과 탄 성냥개비가 무수하게 흩어져 있어 아마도 소녀가 추위를 녹이려고 성냥을 피웠으리라 추정된다. 12세 정도로 추정되는 소녀는 급하게 손을 녹이려고 했는지 열 손가락이 불에 그을어 지문을 채취할 수 없었으며 한겨울에 가벼운 외투차림인 것으로 보아 노숙자로 추정하여 시신은 노숙자 안치소로 옮겨졌다.


20××년 ×월 ×일.


횡단보도를 건너기가 싫다


 이 땅의 성냥팔이 소녀들이 사라진 밤을 지나, 혹은 보이지 않는 환한 한낮. 한낮. 빛.

 차들이 뒤엉키며 경적을 삐이익 울려댄다. 혼자인 이들은 바쁘게 걸으며 지그재그의 몸놀림으로 사람들과 차들과 가게 앞 간판들을 잘 피해간다. 혼자이지 않은 이들은 세상 무엇 바쁠 게 있냐는 듯 느릿한 걸음으로 팔짱을 끼며 웃어 대느라 수시로 길을 막는다. 타인에게 부딪혀도 잠깐, 그들은 제 옆의 사람과의 이야기에 빠져 아무것도 보지 않는 듯 거리를 걷는다.

 횡단보도는 이러한 사람들 무리가 총체적으로 집합되게 되는 장소다. 또한 그들의 각 행동들이 그대로 멈춰라, 일시정지 상태로 있는 곳. 이 틈을 비집고 늘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모금함을 든 다양한 사람들이다. 사단법인 노인회에서도 나오고 장애인협회에서도 나오고 불우이웃돕기를 하겠다는 일념이라며 학생들이 하트를 그려 넣은 상자를 디민다. 뿐이랴, 알록달록 돼지 저금통을 내밀기도 한다. 서류 결재판을 내밀어 보여 주며 손가락으로 콕콕 짚어 주는 이들도 있다. 농아인이 내민 글귀가 보인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도움을 주세요. 감사합니다.”

 신호등 빨간불이 여전히 ‘움직이지 마, 그대로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에게 움직이지말라고 하는 것이 맞는가. 나에게 할 말이 아니지 않아? 세상은 오래도록 적색 경고등이 깜빡 깜빡였건만. 보이지 않는 걸까. 아무도 그것을 쳐다보지 않고 모두 관심가지지 않는다.

 아, 그대로 멈춰라! 아직 주문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19××년 ×월 ×일


계단은 사랑을 날리는 방해꾼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었을 뿐이었다.

 오래도록 나는 모금함에 동전이라도 넣어야 직성이 풀렸고 사무실로 찾아오는 이들에게도 돈을 쥐어 줬으며 그들이 내미는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사들였다. 내가 가진 것이 없기에 최소한의 것만을 하든 혹은 그 이상을 하든 그것이 인간으로서 ‘당연이 해야 하는 것’이란 의식이 오래도록 자리잡았다. 그들에게 쥐어줄 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 한다는 생각까지가 내게 스며든 생각이었다. 내게 그런 생각을 심어 준 것은 도대체 어떤 사상이냐!

 그렇게 그들과 나를 달리 보며 안쓰러워하며 세상을 살았다. 그런 나를 보며 안쓰럽게 세상을 살았다. 어쨌든 그것을 소위 ‘베품’이라 한다면 나는 베품에서 누리는 기쁨에 도취되기도 했다가 더 베풀지 못하는 내 상황 때문에 심각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심적으로.

 어느 날이던가는 잭팟을 터뜨리는 것도 아닌데 하루에 연달아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내 일터로 찾아와 무작정 손을 내밀어 돈을 달라하기도 하고 똑같은 브랜드인데도 10배가 넘는 값으로 껌을 팔고 이태리타올을 팔고 화장지를 팔고 나프탈렌을 팔기도 했다. 간혹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며 초상화나 수채화 액자를 들고 오기도 했고 또한 자신이 만든 것이라며 각종 악세사리를 들고 오기도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힘들고 어렵고 아픈 사람들이라 말하고 있었고 나의 감정에 호소해 내 지갑에서 돈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찾아오지 않으면 전화로 걸려오는 같은 이들을 만나야 했다. 어쨌든 이들이 많이 찾아올수록 내 지갑은 더욱 무거워졌다.  현금을 찾아 지갑에 넣는 일이 많아졌으니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면서 무작정 ‘아프다, 힘들다, 도와달라’라고 빈 손을 내미는 이들을 돌려보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는 그들을 돌려보냈고 대신 차라리 무엇이라도 들고 와 파는 이들의 물건을 샀다. 전자는 적나라하게 말해서 내겐 구걸하는 이들이 되었고 후자는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것보다는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여 나름의 ‘일을 하는 이들의 의지에 더 마음을 기울인 것이다. 그렇게 연로까지는 아니지만 할머니로부터 화장지를 사들이고 얼마 안 되어 또다시 소아마비라며 다리를 절룩이는 아저씨가 나타났다. 할머니로부터 화장지를 사고 내심 나의 ’온정‘에 도취되어 있던 탓인지 당장 필요도 없는 화장지 뭉텅이를 또 샀다. 걱정스러운 얼굴과 힘내시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은 채 말이다. 그리고 돌아섰을 때, 창 밖은 얼마나 환했던지, 또 멀리 보이는 도시는 얼마나 상큼해 보였던지. 그보다 더 내 마음은 뿌듯했기에 창문턱에 걸터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더욱 도취되었던 그때, 소아마비라던 아저씨가 달려가고 있었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다시 봐도 그 아저씨였다. 조금 전 두두둑 한 소리가 계단을 뛰어나가던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였던 모양이다. 이미 며칠 전 길을 잘못 들어 차비도 없어 집에 가지 못한다는 아이에게 차비를 쥐어줬건만 타도시에 산다던 그 아이는 길거리에서 과자를 먹으며 놀고 있다는 얘기를 듣지 않았던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도 했지만 의식적일 수도 있겠다. 어찌 감히 ‘사회복지를 공부한다는 사람으로서’라는 생각. 사회복지윤리강령을 내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힘들어하고 외로워하고 아픈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일 것에 대한 명령. 그렇다. 그것은 어느덧 의무처럼 가슴에 박혀나가는 것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한 그로써 내가 가지는 감정이 나름의 우월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충격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돈 몇푼 쥐어주고 그들의 물건을 사들이며 그저 우월감이나 느끼고 있었던가. 나는 이렇게 한다라는 데 대한 우월감. 그만큼 나는 선량하고 복지라는 것을 말할 자격이 있다는 데 대한 당연시였던가. 그리고 그들을 돕지 않았을 경우 내 자신이 몹시도 나쁜 인간이라는 공식으로 괴로워하며 내 감정을 소모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현실적으로 나나 그들 역시도 변화되지 않고 발전되지 않았을 일들을 하느라 내 감정을 허비하며 내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19××년 ×월 ×일


도를 아십니까


 이들을 또 만났다. 거리에서 부딪치기 싫은 또 하나의 사람들. 멀쩡히 가는 내 앞길을 2인 1조로 막아서며 “도를 아십니까?” “당신의 얼굴에 조상덕이 있습니다”라는 이들.

 이들의 실체가 무엇일까. 뭘 말하고자 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계속 떠들어봐라 하며 이들의 말을 듣기도 했다. 듣다가 적당히 반박하기도 하며 딱히 터미널에서는 달리 갈 곳도 없기에 차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은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나를 아는 이들이 서로가 아는 사람이라 착각하며 그냥 지나쳤을 정도로 나는 스스로 제법 많은 도를 아십니까 꾼들의 말상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종착역이 무엇이었던가. 다른 이들의 말로는 제사를 지내러 가야 한다며 제상을 차려 놓고 제를 지내라 했다고 들었다. 젯값을 내놓으라고 한다던가. 몇 만원에서부터 몇 백만 원까지. 다행인지 그렇게 그들이 제를 지내는 곳까지는 따라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만난 끝물들의 결론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이 뭔대요?”

 “제가 공부하는 사람이라서요. 밥값 좀 주세요. 단돈 천원이라도”

 그러니까 온갖 이치를 깨치고 사람의 본성을 파악하고 자연의 흐름을 알고 세상살이에 큰 깨달음을 얻겠다는 저 ‘도인’들의 ‘도’의 귀결은 ‘돈’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도에서 ㄴ받침 하나.


2014년 ×월 ×일


 2000년의 시간이 흘러 묵자를 마주한다. 급속히 사라진 그들의 주장을 만난다. 많은 사건들을 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생각이 사람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일까를 생각한다. 각 정체성을 가진 고유한 개인과 그들의 생각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무리들은 늘 같은 자리에 있어 왔다는 생각이 든다.

 2000년 전의 세상이 오늘과 다르지 않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그들의 사상과 주장이 오늘날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그들의 사상은 사랑을 받았다 배격되었다. 오늘날도 여전히 이들의 주장은 말줄임표 속에 머물러 있다.

 세상은 변한다고 한다. 본성도 변한다고 한다. 변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들도 수두룩하다. 묵자의 겸애와 비공 사상이 참 와 닿기는 하나 그때처럼 지금 역시도 이러한 사상들이 멀리로 물러나는 것을 보게 된다. 슬픈 현실, 슬픈 논리들. 

 묵자의 겸애를 일컬어 보편적 복지 주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최소한의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기초생활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을 묵자는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2000년도에 정부측에서가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와 하층민의 요구로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십여년이 흘렀다. 당시만 해도 이 법이 국민의 최소한의 생활만이라도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이라며 많은 기대를 했고 한층 발전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었다. 허나,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고 하층민들의 삶은 피폐하기 그지없다. 어느 하나 성냥팔이 소녀에게 관심 가지지 않고 삶에 힘겨운 이들은 살아보고자 횡단보도와 사무실을 떠돌며 모금함을 내민다. 일을 해도 가난하고 일하지 않아도 가난한 현실에서 온정과 애정은 소멸해가려 한다. 무엇보다도, 어느덧 지배논리가 확산되어 수천년 전에나 있었던 복지에 대한 의식이 생겨나고 있기도 하다. 불쌍한 이들에 대한 동정으로서의 복지, 그리고 그들에게 과하게 낭비되는 세금으로 인식되는 복지.

 인류의 삶이 ‘도’를 잃어버리듯 소멸되었다. 오늘날 ‘도’는 있는가. 사상이 넘쳐나던 그때에도 사라진 사상이 있고 사람이 있듯이 우리들 가슴속에는 정녕 어떠한 ‘도’가 자리를 잡고 세상을 바라보는지 모르겠다. 그대, 정녕 도를 아십니까? 



IP *.23.23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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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4 12:40:35 *.94.41.89

도를 알면 자리피고 있겠죠!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복지 정책이 확대되면서 일반인 들은 복지에 대한 의무감을 덜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 세금으로 대신하고 있으니 스스로는 돌아보지 않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아직, 우리는 세금이 아까운 사회에 살고 있고 세금이 어떻게 잘 쓰일지는 고민하지 않는 것같습니다.

저도 예산 심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도무지 제대로 본적이 없으니 말입니다.

 

오늘 글은 정말 좋습니다. 글쓰기의 도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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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4 13:10:59 *.104.9.216
아~~~좋네요.
뭐라고 리플 달기 어려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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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4 16:47:43 *.113.77.122

도를 아십니까와 얘기를 나누었을 에움이 연상되네

그들의 종착역이 '도'에서 '돈'이었다니 ~ 역시 에움앞에서는 '도'도 실체를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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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4 17:11:14 *.196.54.42

그대, 정녕 도를 아십니까?  묵자 같은 실천가에게나 어울리는 질문 같네요.

앎과 행함이 하나되는 경지 - 이를 위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도도 닦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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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5 01:10:41 *.124.78.132

저도 강박적으로 동전을 넣고 자일리톨을 사던 때가 있었는데.. 그리고 잊고 있었던 도를 아십니까?에 끌려갈 뻔한 적도 생각이 나네요.

그저 얼굴에 복이 가득하다는 말에 좋아라하면서 그들의 말을 경청하다가 자꾸 어딜 가자고 해서 무서워 도망왔다는... ㅋㅋ

오늘도 에움언니의 글에 크게 감동받고 가요~!! 정녕 그대는 천재!!~ ^^*

저에게 쓰다말았다던 언니의 편지 내용도 자못 궁금해지는데요~ 그 언젠가는 받아볼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 가득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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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5 10:22:25 *.218.175.50

에움의 저력이 나오는 듯 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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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5 14:29:49 *.235.74.185

길에서 <도를 아십니까?> <당신의 얼굴에는 조상의 덕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접근하는 사람들은 돈을 목적으로 그렇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순진리회라는 종교단체에서 포교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교회에서 예수를 믿으라고 흔히 포교활동을 하는 것처럼 대순진리회는 그렇게 자신들의 종교를 숨긴채 도를 아십니까? 당신은 조상덕이 있습니다... 라는 식으로 호기심과 사람의 마음을 붕띄워 기분좋게 해주고 포교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이 정말로 그의 얼굴에 조상의 덕이 있어서 그런것이 아니라 개나소나 아무에게나 <당신의 얼굴에는 조상의 은덕이 있는 소중하고 특별한 분입니다>하며 누구에게나 말하고 그 말에 혹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종교에 빠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음..
나도 저런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 나는 그들이 가자고 한 장소까지 갔었던 사람인데..
내 경험담을 잠깐 말해볼까요?







2002년 어느 가을날..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떤 여인이 나에게 다가와 <조상의 은덕이 넘치는 분이세요>라는 말과 함께 이상한 여러 말을 해대었다.
곧 개벽의 세상이 오는데 도를 닦고 기도를 해야만 그 개벽의 세상에서 새로운 몸으로 살 수 있다고, 그래야 본인은 물론 가족과 전생의 수 많은 조상님들도 구원을 얻고 생명을 받아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뜬금없는 한 여인의 이상한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지만 얼마후에 또다시 그런 말을 하는 또다른 사람을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두번째의 만남에서도 무시하고 돌아섰지만 똑같은 말을 두번의 사람에게서 그렇게 들으니까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들의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만약에 세 번째도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이 원하는대로 그들을 따라가서 자세히 구체적으로 그들의 말을 듣기로 결심했다.
그 후 얼마뒤에 드디어 세 번째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면서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자신을 23살의 이화여대에 다니는 대학생이라고 말한 그 여학생은 가까운 곳에 자신들의 공간이 있으니까 가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겠다고 제안을 했다.
마침 집에서도 그리 멀지않은 곳이라서 나는 은쾌히 그녀를 따라 갔다.
3층에 있는 40평쯤 되어보이는 공간에서 30여 명쯤의 사람들이 일대일로 작은 책상에 서로 앉아 한사람은 무언가를 열심히 가르치고 다른 한사람은 열심히 듣고 있었다.
나도 곧 작은 책상에 앉아 나를 그곳에 이끌고 온 그 여학생과 일대일로 마주앉아서 그녀의 설명을 들었다.
일상의 사소한 현상과 세상의 모습들을 자신들 종교와 연관지어서 설명하는데 나는 참 재미있게 들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에서는 전혀 말도 안되는 것이었지만..
가령 예를 들어서, 그들은 영화 <매트릭스>는 누가 만들었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당연히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었다고 했지만 그들은 그 영화는 신이 만들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지금의 눈앞의 현실은 가짜라는 메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신이 그 영화속에 그런 뜻을 담게 하고 만들도록 감독과 배우들을 조종하여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말을 누가 하면 정신병자라고 할 텐데.. 종교단체에서 하니까 뭔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런 허무맹랑한 말은 비단 대순진리회뿐만은 아닐 것이다.
기독교에서도 무슨 예수가 자신의 엄마가 남자와의 성관계없이 성령으로 임신해서 태어났다고 하거나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났다거나 하는 식의 말들은 저런 대순진리회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은 허무맹랑한 말일 것이다.



혼자있으면서 이런 말을 들으면 콧방귀를 뀌거나 웃어 넘길지 몰라도 바로 앞에서 어떤 사람이 진지하게 설명하고 또 그 밖의 다른 여러사람들도 그것에 동조되어 믿고 있다면 콧방귀를 뀌었던 사람은 결코 콧방귀를 뀔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혼자서는 자유롭지만 사회적으로 많은 인간들이 개나소나 어떤 것을 믿으면 자기 자신도 그런 군중의 생각속으로 빠지게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
설날이나 추석이나 제삿날때에 차례상에 음식을 장만하고 절을 하면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음식을 먹고간다는 이런 해괴하고 미개한 짓을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이 하고 있는데 이런 미신을 대한민국사람들은 결코 미신이라고 하지 않고 자신들의 좋은 전통이니 풍습이니 하며 21세기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긍정하고 따르고 있다.
혼자서하면 망상이 되는 것이지만 다수가 하면 진실이 되는 것이 인간세상의 특징이다.




시간이 어느덧 흘러 집에 갈려는데 그녀는 오늘까지해서 앞으로 3일동안은 자신들 도장에 나와서 이야기를 듣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안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둥의 말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집에서도 가깝고 그녀의 이야기들이 재미있어서 나는 흔쾌히 수락하고 3일동안 그곳에 가서 공부(?)를 했다.
3일동안 그곳에서 이야기들을 듣고 그녀는 나에게 대순진리회의 신도가 될 것을 제안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고 하며 더 생각해 봐야겠다고 하고선 헤어졌다.
나는 그곳을 나와 다시는 대순진리회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 종교로부터 벗어났지만 순진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들의 그런 이야기에 넘어가서 대순진리회의 신자가 되었을 것이다.
몇년 전에 TV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인가? <추적 60분>이던가?
아무튼 그런 방송에서 대순진리회에 대해서 나왔었는데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다.
대순진리회는 현재 파가 갈라져서 서로 원수처럼 되어있다고 한다.
몇개의 서로 다른 지도부가 서로 자신들이 대순진리회의 정통이라고 우기며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 대순진리회를 이끌어 가야한다며 이권다툼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와중에서 칼부림까지 일어나 살인미수사건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그 여학생이 나에게 말한 대순진리회에 대해 간단하게 요약해 보자면...
한 해의 계절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우주의 계절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져 있는데 지금은 여름이 거의 다 가고 곧 가을이 오는데 이 가을이 곧 천국의 세상이라고 한다.
이 가을로 바뀌는 시점에서 개벽이 일어나 세상 모든 것이 멸망하고 강증산을 신으로 모시고 도를 닦은 사람들만이 새로운 몸을 얻어 새로운 가을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한다.

곧 지구에는 대재앙이 일어나 천지가 진동하며 모든 것이 멸하게 되는 대개벽의 세상이 온다고 한다.
지난 봄과 여름의 세상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이 서로 싸우고 갈등하며 살았었지만 그런 싸움과 갈등속에서도 심신이 올바르고 착한 사람들만이 조상의 은덕을 받아 개벽의 멸망순간에도 살아남아 우주의 가을, 즉 천국의 세계의 세상으로 변한 지구에서 싸움과 갈등없이 상생의 조화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순진리회의 신자가 되어 열심히 도를 닦고 개벽을 준비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조선시대 말엽에 강증산( 강일순이라고도 불림 )이라는 사람이 살았었는데 대순진리회에서는 이 사람이  온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신이라고 한다.
대순진리회 신자들은 이 강증산을 상제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강증산(강일순)이라는 인간을 검색해보니까 1871년에 태어나서 1909년에 39세의 나이로 죽은 자였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고 동학농민운동이 끝난 뒤에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자 전국을 떠돌며 유교, 불교, 도교등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모악산 대원사절에서 도를 닦던 중에 깨달음을 얻어 개벽의 세상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자신의 교리를 설파하던중 39세의 나이에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
증산도, 태극도, 대순진리회등등이 그를 상제신으로 모시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들이다.
나는 강증산을 상제신으로 모시는 인간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강증산이가 개벽이 올 것이라고 했을 때가 1900년정도쯤으로서 그후 114년이 지났는데 그 백여년동안에 곧 개벽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강증산을 믿었던 사람들은 개벽을 보기도 전에 늙어 죽었는데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12년전,
나에게 곧 개벽이 올거라고 말했던 그 여학생은
아직도 개벽을 기다리고 있을까?
아직도 망상속을 헤매고 있을까?
길에서 나에게 조상의 은덕이 넘치는 사람이는둥 해가면서 사람을 기분좋게 붕 띄워 놓고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했던 그 여학생의 행태를 그 후 나는 수도 없이 겪었다.
대순진리회에서 집단으로 신도들을 풀어서 포교활동을 가끔씩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나처럼 그런 경험들을 겪었을 것이다.
그들의 행태를 가만히 보노라면 길에서 개나소나 아무나 붙잡고서 <당신은 조상님이 선택한 사람입니다>등의 말로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시켜 놓는다.
길에서 이런 식으로 자신들 종교의 정체를 숨기고 사람을 기분좋게 우선 만들어 놓고 꼬신다음에 설득해서 넘어오도록 하는 대순진리회의 이런 포교활동에 나는 매우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에서처럼 정정당당하게 예수를 믿으라고 하며 직접적으로 포교활동을 하지 않고
자신들 정체를 숨기고 이런 교활한 방식으로 포교활동을 하는 대순진리회신자들에게 나는 가끔 욕을 퍼부어 주기도 한다.
이제는 길에서 <도를 아십니까?> <당신은 조상의 덕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해대는 대순진리회 신자들에게 나는 <내가 너따위들의 거짓된 종교에 넘어갈 사람처럼 보이냐?> 하며 단칼에 거절해 버린다.
길에서 한사람 혹은 두사람이 어떤 다른 한사람을 세워 놓고 열심히 설명하는 듯한 모습을 본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대순진리회의 포교활동 모습이다.









세월호사건을 통해서 구원파라는 종교에 빠진 인간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서 우리는 종교에 빠진 인간들의 미개하고 해괴한 짓들을 보았다.

300여명의 무고한 생명이 끔찍하게 죽은 사건인데도 그 사건의 당사자인 유병언을 교주처럼 모시고 있는 구원파신자들의 그런 그릇된 행동을 보면서 종교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지금 예수가 살아있는데 그 예수가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면 지금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신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예수의 검찰수사를 방해할 것이다.

유병언을 도피시킨 것처럼 예수를 보호하고 예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종교에 미치면 약도 없다.
종교는 인간의 정신적 마약이다.
천국을 미끼로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앗는 악의 손길이다.
세상은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보고 살아야지 결코 감정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상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인간의 감정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나 소용있는 것이지 결코 세상의 진실을 알고자 할 때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가끔씩 주문처럼 로퍼트 퍼시그의 말을 떠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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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 로버트 퍼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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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 불조심 !!
자나깨나 종교조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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