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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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 사랑을 낳는다
이재무
더 이상 비밀이 없는 삶은 누추하고
누추하여라 사랑하는 이여, 그러니
내가 밟아온 저 비린 사연을 다 읽지는
말아다오 들출수록 역겨운 냄새가 난다
나는 안다 내 생을 그대 호기심 많은
눈이 다녀갈수록 사랑이 내게서 멀어져간다는
것을, 오월의 금빛 햇살 속에서
찬연한 꽃 한 송이의 자랑을 자랑으로만
보아다오 절정을 위해 온 생을 앓아온
꽃의 어제에 더 관심이 많은 그대여,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이 아직 우리에게 비밀이기 때문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살기 위해
소리 없는 처절한 절규를 쉬지 못한다
생의 이면이 늘 궁금한 그대여,
그 어떤 갈애가 그대의 잠을
앗는 날은 어둠이 실비처럼 내리는
여름의 서늘한 숲 속에서 한 마리 새의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걸어가보아라
그대는, 그대가 만들어내는 작은 발자국
소리에도 크게 놀라 두리번거릴 것이다
숲은 파고들수록 외경과 비의로 가득 차고
그대는 문득 살아 있다는 것의 존엄과
두려움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생이 비루하지 않고 신성한
선물이라는 것을 보고 온 그대는 충분히
아름답다 내가 그대를 한없이 그리워하는
것은 그토록 간절했으나 여직 그대의 생에
내 기다림의 손이 가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 보아라, 생의 비밀이 사라진 뒤
지상의 거리에 넘쳐나는 그 무수한
추문과 널브러진 사랑의 시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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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펼쳐본 시집에서 들어온 시다. 아, 들켰다. 꺼냈다 넣었다 하던 천 년 전 비밀을 가만히 간직하라고 한다.
비밀은 왜 이리 가만히 있으려 하지 않는가. 비밀스럽지 않은 비밀이면서.
비 오는 달밤
깊은 새벽에 도착한 나를
경주는 대합실에 재워주었다
고분 앞에 숙소를 정할 때도 몰랐다
그곳이 그 곳인지를
어둠도 내리고 비도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받쳐들고 나가니 그곳에 그가 서있었다
반갑고 어줍고
두 개의 우산을 하나로 걸었다
그도 그곳을 알아보는 듯 했다
천년 전 그때도 그랬던 것 같다
반갑고 어줍고
오래된 무덤은 두렵지 않게 높았고
만만하지 않게 위엄을 가졌다.
맞아 이곳이었어 신기하다 여기서 만나다니 여기서 묵다니
크고 작고 높고 낮은 무덤 사이를 거닐 때 비는 여전히 내리고
가로등 불빛이 달빛인양 무덤을 감싸 안을 때 우린 여전히
반갑고 어줍고
빗방울 머금은 잔디가 발가락을 간질이고
비 머금은 바람 살결 스칠 때
우산 밖으로 뛰쳐나가 강아지처럼 뛰라고 마음은 요동쳤지만
그의 곁을 선택했다
우산 덕분이다
아득한 예전 그때도 그랬다
어줍고 아련하고
비 오는 달밤
잿빛 구름 흘러가고
거미는 부지런히 은빛 거미줄을 하늘에 걸고 있었다
그는 거미줄 따라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남겨진 나 여전히
어줍고 아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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