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2377
- 댓글 수 2
- 추천 수 0
바람의 집
기형도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 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 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줌 바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
내 유년 시절, 생기다 만 냥 잔병치레가 잦은 나는 엄마의 걱정거리였다. 호롱불이 일렁이며 천장으로 오르는 밤이면 동생보다 더 엄마 곁은 내 차지였다. 나는 파리한 눈으로 엉성히 닫힌 방문을 바라보곤 했다. 한지방문에는 달빛이 있었고 처마끝 그림자가 드리웠고 풀벌레 소리가 있었다. 아랫마을 가신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도 있었다. 겨울 밤이면, 윗목에서 호강하는 고구마를 꺼내 두텁게 깎아 먹었다. 단단한 단맛과 약간의 텁텁한 생고구마 맛, 그립다. 딸은 엄마처럼 굴고 딸의 딸은 또 엄마를 간직한다. 엄마는 영원하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838 | 어느 늙은 KLO대원의 쓸쓸한 죽음 [1] [1] | 풍운아 | 2004.02.26 | 3327 |
3837 | 어느 늙은 KLO대원의 쓸쓸한 죽음 [1] | 풍운아 | 2004.02.26 | 2220 |
3836 | 자전거 [1] | 김용관 | 2004.03.03 | 2329 |
3835 | 새로운직장에 적응하는방법 [1] | 잘난농삿군 | 2004.04.03 | 3235 |
3834 | 기분좋은몸살 [2] | 백명경 | 2004.04.05 | 2090 |
3833 | 어느 장애인의 수기 [1] | 김용관 | 2004.04.06 | 2257 |
3832 | 30대 여자들에게.. [1] | 김미영 | 2004.04.06 | 3890 |
3831 |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 [1] | 노브레인 | 2004.04.13 | 2264 |
3830 |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1] | 강경란 | 2004.04.24 | 2415 |
3829 | 국밥에 소주 한잔 걸치고 작천정 맑은 물에 발이나 담가보자... | 김용관 | 2004.04.26 | 2476 |
3828 | 아름다운 온라인 세상에서.... | 사랑의기원 | 2004.05.02 | 2002 |
3827 | 골반바지의 미학, 편안함, 세대차이? | 사랑의기원 | 2004.05.07 | 2563 |
3826 | 아름다운 세상. | 달님 | 2004.05.14 | 2237 |
3825 | 오늘 만난 시- 옹달샘 [1] | 강경란 | 2004.05.14 | 2473 |
3824 | 명랑스쿨버스 아저씨의 행복한 일[펌] | 키스톤 | 2004.05.18 | 2749 |
3823 | 오월 | 강경란 | 2004.05.19 | 2001 |
3822 | -->[re]한국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 안해보셨나요..? [2] | 진정한 바보 | 2004.05.22 | 1896 |
3821 | 책이 나에게 주는 것... | 진정한 바보 | 2004.05.24 | 2265 |
3820 | 눈물을 갖기 원합니다. | BELL | 2004.05.26 | 2261 |
3819 | 세상을 바꾸는 작은관심. | 달님. | 2004.05.31 | 23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