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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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류시화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말들이 달라졌으리라
봄은 떠난 자들의 환생으로 자리바꿈하고
제비꽃은 자주색이 의미하는 모든 것으로
하루는 영원의 동의어로
인간은 가슴에 불을 지닌 존재로
얼굴은 그 불을 감추는 가면으로
새는 비상을 위해 뼛속까지 비우는 실존으로
과거는 창백하게 타들어 간 하루들의 재로
광부는 땅속에 묻힌 별을 찾는 사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그래서 그가 그 시를 잊었을 때
그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것
만일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세상의 단어들이 바뀌었으리라
눈동자는 별을 잡는 그물로
상처는 세월이 지나서야 열어 보게 되는 선물로
목련의 잎은 꽃의 소멸로
죽음은 먼 공간을 건너와 내미는 손으로
오늘 밤의 주제는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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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 아랫부분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가슴에 있는 노래를 배우는 것’-작자미상> 이라고 작게 적혀 있다.
시인은 이 한마디에 영감을 얻었나보다.
시인의 사전을 더 만들어볼까?
바람은 나무를 간질이는 보이지 않는 손
추억은 허공에 날리는 엷은 미소
여름은 열매를 향한 지독한 갈망
너는 알 수 없는, 잡히지 않는 나
시인이 나라를 다스린다면
노란 리본 매달일 없을 텐데
곡기 끊고 가슴칠일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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