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정야
  • 조회 수 2616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4년 8월 19일 15시 21분 등록


내가 아는 그는

 류시화

 


내가 아는 그는

가슴에 멍 자국 같은 새 발자국 가득한 사람이어서

누구와 부딪혀도 저 혼자 피 흘리는 사람이어서

세상 속에 벽을 쌓은 사람이 아니라 일생을 벽에 문을 낸 사람이어서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마시는 사람이어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 속의 별을 먹는 사람이어서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지평선 같은 사람이어서

그 지평선에 뜬 저녁 별 같은 사람이어서

때로 풀처럼 낮게 우는 사람이어서

고독이 저 높은 벼랑 위 눈개쑥부쟁이 닮은 사람이어서

어제로 내리는 성긴 눈발 같은 사람이어서

만 개의 기쁨과 만 개의 슬픔

다 내려놓아서 가벼워진 사람이어서

가벼워져서 환해진 사람이어서

시들기 전에 떨어진 동백이어서

떨어져서 더 붉게 아름다운 사람이어서

죽어도 죽지 않는 노래 같은 사람이어서

 

 

-------

시집을 깔고 앉아 키스하던 연인이 떠난 후 시집을 펼쳐 들었다. 그 맬랑꼴랑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시를 읽을 수 없었다 어느 시인의 언어가 그것 이상이랴.

오늘은 나의 시에 빠져 더 이상 시인의 시를 읽을 수가 없다. 신이 나의 손을 빌려 써 내려간 여섯 시간의 긴 시. 자꾸만 행간을 읽고 은유를 감지하고 곁들여진 풍경을 응시하며 여백의 아름다움과 감정의 몰입을 음미하게 된다. 며칠 동안은 이럴 것 같은데 어쩐다지. 어쩔 수 없지. 빠져 살아야지. 본디 감동적인 시는 읽고 또 읽고 혼자서도 되뇌어보고 위로 받고 간직하게 되니까. 그나저나 궁금하다. 신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천사가 되신 스승님은 아실 테지.

잿빛 하늘과 부슬거리는 비, 어제와 같지만 어제와 다른, 천상의 날.




IP *.110.68.199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869 [버스안 시 한편] 희망은 한 마리 새 정야 2014.09.20 2723
3868 [버스안 시 한편]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정야 2014.09.19 3996
3867 [버스안 시 한편] 문득 [1] 정야 2014.09.18 3326
3866 [버스안 시 한편] 살다가 보면 정야 2014.09.18 3714
3865 이풍진세상에서 이수 2014.09.17 2440
3864 [버스안 시 한편] 늙어 가는 아내에게 [1] 정야 2014.09.16 3490
3863 [버스안 시 한편] 한마음 정야 2014.09.15 2729
3862 [버스안 시 한편]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 정야 2014.09.13 5297
3861 [버스안 시 한편]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정야 2014.09.13 4328
3860 [버스안 시 한편] 보름달 정야 2014.09.11 2693
3859 [버스안 시 한편] 아버지의 그늘 [2] 정야 2014.09.03 2793
3858 [버스안 시 한편] 치자꽃 설화 정야 2014.09.02 2649
3857 [버스안 시 한편] 우화의 강1 정야 2014.09.01 2680
3856 [버스안 시 한편] 스미다 정야 2014.08.30 2744
3855 [버스안 시 한편] 상처가 나를 가둔다 정야 2014.08.29 2557
3854 [버스안 시 한편] 버팀목에 대하여 정야 2014.08.28 4198
3853 [버스안 시 한편] 흰 바람벽이 있어 정야 2014.08.27 2711
3852 [버스안 시 한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정야 2014.08.26 2874
3851 기계를 좋아해~ file 타오 한정화 2014.08.26 2633
3850 [버스안 시 한편] 바람의 말 정야 2014.08.25 2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