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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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그는
류시화
내가 아는 그는
가슴에 멍 자국 같은 새 발자국 가득한 사람이어서
누구와 부딪혀도 저 혼자 피 흘리는 사람이어서
세상 속에 벽을 쌓은 사람이 아니라 일생을 벽에 문을 낸 사람이어서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마시는 사람이어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 속의 별을 먹는 사람이어서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지평선 같은 사람이어서
그 지평선에 뜬 저녁 별 같은 사람이어서
때로 풀처럼 낮게 우는 사람이어서
고독이 저 높은 벼랑 위 눈개쑥부쟁이 닮은 사람이어서
어제로 내리는 성긴 눈발 같은 사람이어서
만 개의 기쁨과 만 개의 슬픔
다 내려놓아서 가벼워진 사람이어서
가벼워져서 환해진 사람이어서
시들기 전에 떨어진 동백이어서
떨어져서 더 붉게 아름다운 사람이어서
죽어도 죽지 않는 노래 같은 사람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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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깔고 앉아 키스하던 연인이 떠난 후 시집을 펼쳐 들었다. 그 맬랑꼴랑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시를 읽을 수 없었다. 어느 시인의 언어가 그것 이상이랴.
오늘은 나의 시에 빠져 더 이상 시인의 시를 읽을 수가 없다. 신이 나의 손을 빌려 써 내려간 여섯 시간의 긴 시. 자꾸만 행간을 읽고 은유를 감지하고 곁들여진 풍경을 응시하며 여백의 아름다움과 감정의 몰입을 음미하게 된다. 며칠 동안은 이럴 것 같은데 어쩐다지. 어쩔 수 없지. 빠져 살아야지. 본디 감동적인 시는 읽고 또 읽고 혼자서도 되뇌어보고 위로 받고 간직하게 되니까. 그나저나 궁금하다. 신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천사가 되신 스승님은 아실 테지.
잿빛 하늘과 부슬거리는 비, 어제와 같지만 어제와 다른, 천상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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