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야
- 조회 수 2289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내가 아는 그는
류시화
내가 아는 그는
가슴에 멍 자국 같은 새 발자국 가득한 사람이어서
누구와 부딪혀도 저 혼자 피 흘리는 사람이어서
세상 속에 벽을 쌓은 사람이 아니라 일생을 벽에 문을 낸 사람이어서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마시는 사람이어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 속의 별을 먹는 사람이어서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지평선 같은 사람이어서
그 지평선에 뜬 저녁 별 같은 사람이어서
때로 풀처럼 낮게 우는 사람이어서
고독이 저 높은 벼랑 위 눈개쑥부쟁이 닮은 사람이어서
어제로 내리는 성긴 눈발 같은 사람이어서
만 개의 기쁨과 만 개의 슬픔
다 내려놓아서 가벼워진 사람이어서
가벼워져서 환해진 사람이어서
시들기 전에 떨어진 동백이어서
떨어져서 더 붉게 아름다운 사람이어서
죽어도 죽지 않는 노래 같은 사람이어서
-------
시집을 깔고 앉아 키스하던 연인이 떠난 후 시집을 펼쳐 들었다. 그 맬랑꼴랑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시를 읽을 수 없었다. 어느 시인의 언어가 그것 이상이랴.
오늘은 나의 시에 빠져 더 이상 시인의 시를 읽을 수가 없다. 신이 나의 손을 빌려 써 내려간 여섯 시간의 긴 시. 자꾸만 행간을 읽고 은유를 감지하고 곁들여진 풍경을 응시하며 여백의 아름다움과 감정의 몰입을 음미하게 된다. 며칠 동안은 이럴 것 같은데 어쩐다지. 어쩔 수 없지. 빠져 살아야지. 본디 감동적인 시는 읽고 또 읽고 혼자서도 되뇌어보고 위로 받고 간직하게 되니까. 그나저나 궁금하다. 신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천사가 되신 스승님은 아실 테지.
잿빛 하늘과 부슬거리는 비, 어제와 같지만 어제와 다른, 천상의 날.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849 | [버스안 시 한편]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야 | 2014.08.23 | 2250 |
3848 | [버스안 시 한편] 영혼 | 정야 | 2014.08.22 | 2130 |
3847 | [버스안 시 한편] 내 영혼이 나에게 충고했네 | 정야 | 2014.08.21 | 2452 |
3846 | [버스안 시 한편]나무가 흔들리는 것은 | 정야 | 2014.08.20 | 2482 |
» | [버스안 시 한편] 내가 아는 그는 | 정야 | 2014.08.19 | 2289 |
3844 |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 햇빛처럼 | 2014.08.19 | 2756 |
3843 | [버스안 시 한편] 이타카 | 정야 | 2014.08.18 | 2868 |
3842 | [버스안 시 한편]주석 없이 | 정야 | 2014.08.16 | 2467 |
3841 | [버스안 시 한편] 내가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 정야 | 2014.08.15 | 2488 |
3840 | [버스안 시 한편] 천 명 중의 한 사람 | 정야 | 2014.08.14 | 2528 |
3839 | [버스안 시 한편] 인연 [1] | 정야 | 2014.08.13 | 2429 |
3838 | [버스안 시 한편] 지상에 뜬 달 한줌 | 정야 | 2014.08.12 | 2456 |
3837 | 안부인사. | 햇빛처럼 | 2014.08.11 | 2248 |
3836 | [버스안 시 한편] 선천성 그리움 | 정야 | 2014.08.11 | 2363 |
3835 |
추억2 ![]() | 햇빛처럼 | 2014.08.09 | 2200 |
3834 | 추억 [1] | 햇빛처럼 | 2014.08.09 | 2084 |
3833 | [버스안 시 한편]만약 시인이 사전을 만들었다면 [3] | 정야 | 2014.08.09 | 2922 |
3832 | [버스안 시 한편]무지개 [2] | 정야 | 2014.08.08 | 2139 |
3831 | [버스안 시 한편]바람의 집 [2] | 정야 | 2014.08.07 | 2725 |
3830 | [버스안 시 한편]비밀이 사랑을 낳는다 [3] | 정야 | 2014.08.06 | 2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