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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19일 15시 56분 등록

 

 

따뜻한 밥 한 그릇

 

 

임테기 깨끗한 한 줄을 보았다. AC~~확 삐뚤어지고 싶다. 시험관 2차인데, 이번엔 성공률이 40~60%라는 냉동수정란 이식이었는데, 다음번에 다시 과배란을 해서 채취를 하자면 또 수혈을 받아야 하는데, 또 냉동이 나올 수 있을까? 나이는 43인데, 여름 내내 전전긍긍, 도대체 언제 끝이 나나…...

 

남편은 인사이동 회식이 저녁에 잡혔다. 삼겹살 집에서 회식한다 길래 앉은 자리에서 한 근 먹는 평소 기량을 십분 발휘하라고 응원하며 보냈다. 혼자 먹는 저녁 밥이 슬플 줄 알았다. 근데 5인용 전기압력솥으로 내 손으로 갓 지은 밥이 너무 맛이 있는 거다. 김이 오르는 흰밥에다 찐 깻잎을 얹어 간장을 찍어 먹었다. 경상도식 쌈은 쌈장을 찍기도 하지만 이렇게 송송 썬 청량고추와 깨소금, 참기름 듬뿍 든 뻑뻑한 장물을 곁들이기도 한다. 이 깻잎은 엄마가 새로 산 밭에 심은 들깨 순을 쳐 주신 거다. 내가 쌈을 워낙 좋아하는 줄 아니까 따주셨다. 밥 먹기 전과 먹은 후의 전환이 명확하다. 심하게 멀쩡해졌다. 시험관시술 때문에 2주 애기처럼, 공주처럼 잘 놀았구나, 그 동안 배아들이 내 자궁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며 엄마처럼 사는 게 행복했었구나, 오늘까지만 놀고 내일부터 다시 해보자, 앞으로 남편한테도 절대로 찬밥 주지 말고 찬 없어도 밥이라도 금방 해서 상을 차려주자.  

 

따뜻한 밥을 지어주는 거, 이건 우리 집안 여자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제일 방식이었다. 증조할머니가 엄마, 아빠를 잃은 세 손주를 향해 시작했다. 부모 없이, 어려운 여건이었어도 자신에 대해 무한한 사랑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이 곁에서 지켜 보아주면 그 아이들은 삐뚜러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변함없이 자신의 곁을 지켜주신 할머니를 천의 여인이라고 불렀다. 천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다고. 그녀는 자녀를 일곱을 낳았다. 아들 셋에 딸 넷이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그 중 두 아들을 보도연맹사건으로 하루 만에 잃었고, 딸 하나가 과부가 되었고, 막내아들이 행방불명되었다. 혼자가 된 두 며느리 중 하나는 바로 개가하고 다른 한 며느리가 집에 남아 자기 아이 둘과 조카, 아이들 셋을 이분과 같이 길렀다. 그 며느리마저 개가했다. 십대의 손주 셋이 그녀에게 남겨졌다. 증조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말없이 끼니마다 따뜻한 밥을 해 먹이셨다. 가마솥에다 불을 때서 하는 밥이었다. 밭을 매다가도 동네에서 일을 보다가도 밥 시간이 되면 나는 우리 손주들 밥 하러 갈라네하면서 달려오셨다. 아버지는 늘 이 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목이 멘다.       

 

할머니 역시 증조할머니가 내 아버지에게 했던 역할, 커다란 나무 같고 반석 같은 할머니였다. 대신 개가해서 만난 손주들을 향해서다. 그 자리는 엄마, 또는 할머니의 자리이지 여자의 자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7살에 엄마를 잃고 작은집에 맡겨졌다. 14살에 혼인을 했다. 전쟁 중이었던 25살에 여자는 두 아이를 데리고 혼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녀가 혼자된 지 13년 만에, 38살에 새로 만난 남자는 중혼이었다. 혼인관계를 정리를 하면서 만났다면 첫번째 부인의 두 아들, 두번째 부인의 다섯 아이, 세번째 부인의 한 아이 모두가 엄마와 아빠 사이의 적법한 자녀로 등재될 수 있음에도 뒤에 온 두 부인은 호적이 없었고, 아이들은 첫번째 부인의 아이들로 기록되었다. 그에게는 그런 중혼과 수없는 여자들이 필요했던 역사와 재능이 있었겠지. 어쨎든 할머니는 개가해서 얻은 아들의 8살 때부터 과일행상을 해서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시켰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아이들 엄마와 아빠가 집에 없는 상황에서 역시나 세 손주를 혼자 길렀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그 손주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 곧 돌아가시겠다고 모두가 예측하는 의료보호 의료원에서조차 간이침대 2개를 놓고 초등학생, 중학생인 손자들을 옆에서 재웠다. 그리고 침상에 누워서 하루 두 번 남묘호렌게교제목을 모셨다. 할머니 옆에서 자본 걸 나는 행운이라 생각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할머니는 제목을 모시고, 나는 그 옆에서 절을 했다. 병원에 누워서는 배 위에서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셨다. 그건 할머니의 에너지원이었으리라. 나는 할머니가 용사였다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내가 내려간다고 연락을 하면 소면을 삶아서 건지고, 다시 국물을 내어놓고 기다렸다. 상추를 쫑쫑 다져서 비벼주셨다. 나는 이쪽 손주들 중에 유일하게 할머니의 밥을 먹어본 손주다.  

 

떠난 지 50년 만에 살았던 동네로 돌아와 한 달만에 돌아가셨다. 늘 어머니가 그리웠던 아버지는 제사권과 매장권을 가졌다. 매일 가는 밭에다가 어머니의 산소를 쓰셨다. 이름을 적은 신위를 넣은 항아리를 같이 묻고 봉분을 합장 크기로 만듦으로써 아버지는 전쟁 중에 잃어버린 할아버지를 기념했다. 할머니로서는 살아있는 이들이 자신의 무덤에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었을테다. 나는 내 어머니보다 그녀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왔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버지의 마음이 가 머무는 자리에 관심이 많았다. 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된 할아버지와 집에 안 계신 할머니의 빈 자리에 대한 관심 역시 아이의 생존법이었으리라. 할머니가 무덤의 형태로 돌아오신 뒤 더 이상 그 역할이 필요없어졌다. 왜 나는 왜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를 젖과 품의 대상으로 여겼을까? 알 수 없다.

 

나는 누구에게 따뜻한 밥을 얻어 먹었나? 당연히 우리 엄마다. 엄마의 철칙은 매일 아침은 무조건 새 밥을 해서 식구들에게 따듯한 밥을 먹인다는 거였다. 점심 때와 저녁 때는 보온밥통 것을 먹거나 찬 밥을 쪄서 먹더라도 아침에는 무조건 새 밥을 해서 먹였다. 엄마의 곁을 떠나오는 날 까지 단 하루도 엄마가 늦잠을 자서 아침을 안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 봉고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다닐 때도 새벽밥을 먹었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은 무조건 새로 해서 차려서 같이 먹고 일을 가셨다. 그건 엄마에게 있어 일종의 의식이었다.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에게 그 말은 생활 속에서 실재하는 거였다.

 

어쩌면 따뜻한 밥 한 그릇과 엄마가 나를 위해 따주신 깻잎 때문에 나는 쉬 마음이 가라앉았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여자분들의 계보를 잇는 자손인 게 자랑스럽다. 그분들을 닮고 싶다. 따뜻한 밥 한 그릇, 새벽 미명과 저녁 설거지를 해서 그릇을 엎어놓고 드리는 조석기도를 내 골수에다 상속받고 싶다. 그래서 나도 따뜻한 밥 한 그릇 퍼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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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8 01:53:35 *.182.55.106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우주를 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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