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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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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0일 14시 07분 등록


네덜란드에서는 16세가 넘으면 술, 담배가 합법이라네요. 학교 공식행사에서도 술을 마신다구요. 남녀교제에 대해 말하자면, 교내에서는 성관계만 안하면 모두 통과이고, 교외에서는 피임만 잘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네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네덜란드에서 첫 성관계를 갖는 나이는 17.7세이고, 입시 외의 모든 것이 금기시되는 우리나라는 15.1세라는 거지요. 이것이 정확한 통계인가 싶어 눈을 비비며 구은정의 <소심한 깡다구가족, 산티아고 길 위에 서다>를 읽었습니다.

 

저자는 3년  전 42세의 나이에 중1, 중3 남매를 데리고 네덜란드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세금을 뺀 돈으로 유학을 와서 남편은 방도 없이 절(일터)에서 생활한다구요. 이 책은 중3, 고3이 된 아이들과 산티아고를 걸으며 쓴 책인데, 그 길은 계기만 되었고, 성인이 된 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대부분입니다. 아들의 소원이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대형마트에 가는 것과, 소파가 있는 거실에서 TV를 보는 것이라거나,  어릴 때 그토록 갖고 싶던 바비인형을 한 번도 못 가져 본 것에 대해 아직도 딸이 가슴아파 한다는 부분에서 저자의 생활철학을 엿볼 수 있네요.  필요없는 물건은 일체 사지 않는다는 주의지요. 남편과의 평등한 일상이 가장 큰 과제였다고 하는데, 아들 학교의 급식봉사를 번번이 아빠가 갔다는 것을 보면 부부 간에 실천지수도 높았던 것 같습니다.  

 

책 내용에 산티아고 얘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해바라기밭으로 이루어진 지평선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부분에서 저도 처음 알았네요.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지역이 김제평야 뿐이라는 것을요! '생장 피트 포르'의 순례자사무소에 정년퇴직한 것으로 보이는 한국인 자원봉사자 두 분이 있었다거나 그 분들이 연결해준 알베르게에 혼란스러울 정도로 한국사람이 많았다는 데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구요. 조근조근 딸에게 일러주는 말에는 저자보다도 나이가 많은 제가 귀담아 들을 것도 많았습니다. 엄마 자신도 서툴기그지없는 성인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딸이 성장기에 가졌을 상처를 보듬어주고, 부모와의 관계를 비롯한 사회적인 처신은 물론 1인분의 권리와 책임을 다 하기 위한 기본기를 다진달까요. 예를 들면 정치영역에서는 정의를 배우고,  경제영역에서는 자유의 가치를, 관계에서는 돌봄의 가치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한쪽 영역에만 과하게 참여하게 되면 다른 영역에서 배워야 할 가치를 배울 수 없다는 부분에서, 치우치는 성향이 강한 저는 찔끔했네요.

 

드디어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인 800Km의 걷기가 끝나고, 딸은 나중에 파트너와 함께, 아들은 아빠와 함께 이 길을 다시 걷고 싶다고 합니다. 힘들었지만 그 힘듦이 좋았다니, 그저 땡볕아래 걷기만 했는데 아이들이 훌쩍 성숙한 느낌이 드네요.  저는 산티아고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지만, 남들이  다 늦었다고 할 나이에 유학이라는 도전을 한 것을 포함해서, 성년이 된 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책 한 권으로 묶어낸 저자의 성취가  보기 좋습니다. 

 

여행에서 돌아 온 지 열흘이 넘었는데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네요. 마치 짝사랑하듯 여행지의 풍물이 눈에 삼삼하여 생활인의 자세를 회복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던 차에 친정엄마가 제주가 참 좋더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들 때문에 무거운 마음에 등불 하나가 반짝 하고 켜집니다. 아직 총기좋고 건강하시지만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팔순의 엄마에게 세상구경을 시켜드리고 싶다는 구상입니다. 제주에서 장기간 머물러도 좋겠고, 엄마가 좋아하는 나물을 캐고, 옥수수를 따고, 알밤을 줍는 곳에서 진득하게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우선은 제주가 강하게 땡깁니다. 이런!  엄마의 말씀 한 마디에 다시 한 번 살아보자고 마음이 돌아섭니다.  저지르지 않으면 못 사는 유형인데, 저지를 것이 없어 자꾸 가라앉는 중이었거든요.  모험이 사라진 시대에 어쩌면 여행이 최대의 도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아무런 의미도 남아있지 않다면, 도전 자체가 아름다운 것일지도요.

 

 

 

"인간을 소우주라 하듯, 보잘것없는 범인의 삶도 생의 수많은 진리를 포함하고 사회란 큰 아치 구조물을 형성하는 돌이다. 서로의 옆 작은 돌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공감'을 높여 삶을 좀 더 용감하고 아름답게 꾸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소심한 깡다구가족, 산티아고 길 위에 서다"  저자 소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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